숭어 마스크 레플리카 ㅣ 이매진 드라마톨로지 1
하일지.정영문.서준환.김경주 지음, 장정일.김경주 기획 / 이매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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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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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일이 이름난 작가 네 명의 희곡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알고 보면 장정일 본인이 우리나라 연극 발전에 제일 공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동아일보사의 신춘문예 희곡부문에 <실내극>으로 당선한 극작가이기도 하다. 희곡집도 네 권이나 냈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안 팔리는 문학책이 희곡집이라 책이 나왔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장정일의 극작품을 발견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장정일은 책을 편집해서 서문과 발문을 썼을 뿐, 각 작품의 창작에 개입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희곡을 쓴 네 명의 작가/시인은 하일지, 정영문, 서준환, 그리고 김경주이다. 이름만 대도 눈앞이 환해지는 작가들. 하여간 나는 그랬다. 이이들의 작품을 책 한 권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으니까.


  하일지. 1990년대 경마장 주변을 서성이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던 동덕여대 문창과 명예교수. 나도 당연히 당시 <경마장 가는 길>에 열광해서 이이의 경마장 시리즈를 연달아 사 읽었고, 다른 애독자와 마찬가지로 연달아 실망하다가 몇 번의 경마장을 끝으로 이별을 고했던 작가. 한 팔 년 전에는 오랜만에 하일지 생각이 나서 그의 장편소설 <손님>을 사 읽었다가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는데 더 곤혹스러운 건, 독후감을 썼는데 독후감의 아주 일상적인 단어의 조합이 하필이면 야설 탐색꾼들의 레이더에 걸려 꽤 오랜 동안 반갑지 않은 방문을 받아야 했던 우스운 기억도 있다. 그래서 하일지에 대한 관심이 거의 꺼진 줄 알았다가, 이번에 또 하일지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피식, 웃음과 더불어 작지 않은 흥미가 돋던 것이다.

  작품 제목이 <파도를 타고>.

  <경마장 가는 길>에서 이미 본 듯한 분위기. 남자는 15년 동안 중학교 교사를 했다. 그래도 자기 집 하나 마련할 수 없는 암담한 남한 땅. 학교에서도 좋은 꼴 못 봐,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늙은 부모도 봉양해야 해, 아들 딸 하나씩 있는 것들도 벌써 사춘기를 맞아 박박 기어오르기 시작하거나 귀엽기는 하지만 남들 하는 대로 학원 보내며 제대로 키우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 좌절에 휩싸인다. 그리하여 남자가 선택하고, 결심해서 실행해버린 것이, 전재산을 다 팔아 작은 배 한 척을 사서 무작정 남쪽 따뜻한 섬을 향해 한국 땅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미 <경마장 가는 길>에서 파리에 유학했다가 돌아온 30대 주인공 R이 한국에서 다시 경험하는 답답함, 자유롭지 못함에 서서히 질식하는 과정을 읽은 적이 있어서, <파도를 타고>의 주인공인 40대 남자의 좌절이 새롭지 않다. 남자가 품은 가장 지독한 좌절은, 15년간 중등학교 교사를 했어도 한 칸짜리 자기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거.

  미친 거 아냐? 전제가 “서울에서 집 한 칸”이다. 그렇게 될 줄 몰랐어? 이 남자, 마음먹고 서울을 떠서, 뜨기는 뜨지만 멀리도 아니고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살기로 작정만 했다 하면 하일지 연배에 중등학교 15년 경력이면 근사한 아파트 한 채는 물론이고 남는 돈으로 적어도 소나타 한 대는 굴렸겠다.

  장정일도, 이 책을 낼 때가 하일지도 근무하는 동덕여대 문창과 초빙교수를 할 때여서 그랬는지, 하일지를 두둔하며 하는 말이, 중학교 교사 15년에 내 집도 못 샀는데, 그까짓 독도가 누구 땅이면 어떻다는 말이냐는 거. 아주 시니컬하지만 꼭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은 누구에게나 곤고한 것이고, 내 손톱 밑에 잔가시 박인 것이 제일 아픈 법이니까. 근데 <경마장…>도 그렇고 <파도를 타고>도 그런데, 하여튼 파리 유학을 했건, 중학교 교사를 했건 간에 주인공인 R과 남자는 우리나라의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누려야 마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별볼일 없는 집의 맏아들이자 유부남인 R은 파리에서 사귀고 같이 잤던 부잣집 딸 J와 여전히 파리에서 맺었던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희곡의 남자는 죽어도 서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 자기 집 하나 장만 못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하일지를 포함한 이들도 어떤 의미에서 연못 안 개구락지들일 수도 있다는 건 아마 본인들도 모를 걸? 재미없어, 재미없어.


  제일 기대했던 작가가 정영문.

  책에 실린 네 편의 희곡 가운데 유일하게 정말로 공연 실적이 있는 작품이 정영문의 <당나귀들>이란다. 내가 읽어도 네 편 중에서 제일 좋다. 그러나 조심하실 것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정영문이라는 거. 아니나 다를까, <당나귀들>은 부조리극이다. 희곡을 별로 읽지 않은 분들이 읽으면, 스토리하고 전혀 무관하게 돌아가는 장면들이 많이 낯설 수밖에 없다.

  전쟁이 터져 전선에서 전령들이 막 도착해 전황을 보고하는데, 황당하기 그지없다. 왕은 벌써 나라 밖으로 도망가버렸고, 왕의 동생이 자리를 얻은 장군은 지난 전쟁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장군, 나라 최고 군 통수권자로 있는데, 이번 침공을 어떻게 막을지 무지막지 고민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말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애국자 장군? 뭐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전선을 어떻게 구축하고, 어느 지형을 이용하여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하다못해 진지가 다 뚫리면 퇴로를 어떤 식으로 확보하느냐 하는 건 장군의 머릿속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숙고에 숙고를 멈추지 않는다. 단 한 가지도 결정하지 않으면서.

  만조백관을 대표하여 등장하는 신하1과 신하2 역시 전령1이 전선에서 수도까지 뛰어오며 지나친 포도원에 포도가 잘 익었는지, 익었으면 몇 송이 따오지 그랬느냐는 등의 헛소리만 지껄이는데, 만일 부조리극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쯤에서 거품 물고 책을 집어 던질 지도 모른다.

  이런 건 비단 <당나귀들>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정영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서, 미리 주의를 하고 읽으면 좋겠다.


  표제작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를 실은 서준환.

  서준환은 장편소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어 보았다. 그 책 읽으면서 내내 혁명기의 공포정치가 이루어지는 혁명재판소와 로베스피에로의 집에 국한한 장소의 폐쇄성 때문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서준환이 애초에 한예총 연극원에서 극작을 공부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하여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을 읽을 때 느낀 폐쇄성,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 희곡으로 쓰는 게 마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한 방에 싹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는 성매매 업소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깊게 공부했던 서준환답게 각각 대립하는 층위의 뫼비우스 적 혼돈을 그리고 있다. 장소가 성매매업소라고 해서 괜히 야한 생각을 하거나 그런 장면을 기대할 필요 없다. 희망사항, 안 나온다.


  마지막으로 실은 <블랙박스>는 시인 김경주가 시처럼 쓴 희곡.

  비행기 안에 탄 두 남자의 대화가 거의 전부. 이건 희곡일까, 시일까? 시면 어떻고 희곡이면 어떠랴. 그냥 읽으면 되는 것이지. 근데 실제로 공연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좋다. 희곡이라고 다 공연을 전제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근데, 읽는 것도 쉽지 않던데? 처음부터 끝까지 둘의 대화에 아주 가끔 스튜어디스가 나타나 뭐라 하기는 한다. 근데 등장인물 소개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카파와 미하일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은 마네킹과 목소리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2인극도 2인극 나름이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들은 평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이리 뛰어갔다가 저리 뛰어가고, 뭐 그런데, <블랙박스>의 주인공 카파와 미하일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입으로만 조잘조잘. 그러니까 할 말이 뭐가 있겠어? 난기류와 비행기 창 밖의 광경과 내려다보이는 거, 그리도 구름 속 정도겠지. 아오, 또다시 밀폐성.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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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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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릭 모디아노의 2010년 출간 작품. 4년 후에 모디아노는 노벨 문학상을 받는다. 와, 째졌겠다.

  모디아노가 1945년, 해방둥이, 을유생이니까 지금 81세. 노벨상 받았을 때는 69세. 이 책은 65세 때 찍었네? 65세면 프랑스는 물론이고 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도 필명을 엔간히 날렸던 시기. 나는 이이의 대표작이라고도 하고, <지평>을 번역한 권수연의 표현에 의하면 노벨상 수상작이라고도 하는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해서 유명하기는 하지만 나하고 별로 안 맞는 작가 정도로 생각했다가, 이어서 읽은 <도라 브루더>와 <까틀린 이야기>도 하나 같이 재미를 못 봐 이후에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어보니 또 괜찮아 지금껏 생각나면 한 권씩 읽는 소설가로 여기게 됐다. 하긴 뭐 내가 읽거나 말거나 모디아노가 신경이나 쓰겠어? 그냥 자뻑에 차서 하는 말이지.


  작품은 일흔 살은 넘은 것처럼 보이는 늙은 작가 보스망스가 지난 시절, 젊었을 적의 일화를 떠올리면서 시작한다. 그는 과거의 한 시기, 그 시절 이후의 여타 시기들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긴다.

  말 어렵게 하지? 내가 그런 게 아니라 모디아노가 쓴 말을 요약한 거다.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려는 건 저 기원전부터 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전공과목인데, 20세기 들어와 이런 경향을 소설 쓰는 사람들까지 원용하기 시작해서 이런 문장이 등장하는 거다. 저걸 쉽게 얘기하면, 지난 시절에 있었던 일을 오랜 세월동안 생까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당신하고 나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슷비슷하게 사는 거와 별로 다르지 않게.

  근데 왜 이제 와서, 다 늙어 이런 “현재 속 유예된 삶”이 어쩌고 저쩌고 할까? 왜긴 왜야, 소설 쓰려고 그러는 것이지. 소설 가운데 9할은 옛 생각하면서, 자기가 경험하거나 봤거나, 적어도 남이 사는 걸 듣고 작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늙은 작가 보스망스는 이제 스물한 살 시절의 50년 전 과거로 돌아가, 검정 몰스킨 수첩에 그 예전에 있었던 것들의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 날짜, 특정 장소, 철자가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이름 등. 그러면서 그, 보스망스는 생각한다:

  나는 왜 다른 길이 아닌 바로 이 길을 걸어왔던가?

  그 얼굴에 심상찮은 모피모자를 쓰고 개를 줄에 묶고 끌고 가던 실루엣이 미지 속으로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보스망스의 생각 두 번째에 관하여.

  첫 번째 생각을 조금 더 실물처럼 그린 것에 불과한데, 내가 시비를 걸고자 하는 건, 개하고 산책을 하는 일은 좋은 일이고, 바람직하고, 추천할 만하다. 산책을 하려면 개의 크기나 사납기 정도와 관계없이 목줄을 하고 걷는 것도 훌륭하다. 문제는 목줄을 한 개를 “끌고 가?”

  이게 산책이냐?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자. 개 주인이 있어서 개 목을 묶은 줄을 앞에서 영차영차 끌고 가는 형국을. 정상적인 ‘개와 함께 하는 산책’이라면 개가 앞장, 주인이 뒤에 서서 여유롭게 걸어야 하는 거 아냐? 주인 성질이 얼마나 급하면 개 앞에 서서 이리 와, 이리 왓! 목줄을 콱 땡기고 난리를 치는 모습이 확 들어오지 않나? 잘 하면 발로 옆구리 차기도 하겠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요즘 이렇게 개 끌고 가다 걸리면 실형 받는 수가 있다. 참. 김건희 여사가 제청해 만든 개고기 취식 금지법은 이제 김여사 세월이 끝났으니 폐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개 먹자고 개 식용을 권고하는 주장이 아니라 뭐든 금지 법안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정치하는 인간들이야 금지법 만드는 게 제일 쉬워서 좋기는 하겠지만. 뇌물 수수, 공금 횡령, 변호사법 위반 같은 거야 금지해야겠지. 허연 씨, 안 그려?


  그리하여 50년 전 기억 속의 테이프.

  오페라 거리를 걷는 보스망스.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 메로베. 이름하고 얼굴이야 생각날 수 있겠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소리도 기억난다. 떨림과 음색까지. 퇴근하는 증권거래소 건물 사람들 틈에서 쏟아져 나온 메로베와 갈색머리의 불독 닮은 서른다섯 정도의 최고 연장자이며 ‘리슐리에 대행사’의 한 지소 소장, 그리고 색안경을 낀 금발남자와 함께 등장하는 갓 스무 살의 여성 마르가레트 르 코즈.

  “저는 마르가레트 르 코즈예요. 르 띄고 코즈를 써요.”

  프랑스 엄마가 베를린에서 낳은 프랑스 여자. 그러나 기한이 만료된 여권만 신분증으로 가지고 다니는 여성이며, 리슐리외 대행사의 한 지점에서 앞으로 두 주일 후에는 그만 둘 예정 또는 운명인 여자. 시위대의 거친 물결 속에서 시위와 관계없이 처음 만난 마르가레트와 보스망스. 인파에 밀려 눈 위가 찢어진 마르가레트를 보스망스가 약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으며, 며칠 후에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사무실을 방문해 그녀를 만난다. 마르가레트가 직접 세 명의 직원을 소개해서 5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메로베의 얼굴과 이름과 목소리가 기억나건만, 이들 세 남자는 보스망스에게 시내에 있는 체육관의 자기들 모임 ‘즐거운 도당’에 참여하기를 권한 기억, 이에 보스망스가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한 뒤로는 조직생활이 별로 내키지 않아서요.”라고 애매하게 헤어진 기억만 남기고 작품 <지평>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어쩌랴, 이게 기억의 한계인 걸. 게다가 보스망스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기억한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하느님도 모른다. 만일 그 ‘하느님’이라는 양반이 정말로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

  몇 년 후, 보스망스는, 이땐 이미 마르가레트 역시 보스망스의 곁을 떠난 다음이었을 텐데, 1월중에서도 맹렬하게 추운 새벽 두 시, 택시를 타고 차 앞쪽 인도 가장 자리에 맨발이 드러난 샌들을 신고 서 있던 남자가 메로베, 그래서 다가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기억도 50년이 지난 다음에 검정 몰스킨 수첩에 적어 넣는다.


  이런 기억들.

  하지만 기억은 보스망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마르가레트의 기억도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마르가레트의 스위스 생활. 몇 달 전부터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 부아야발. 정말 사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 그저 폼을 잡기 위한 소도구로 권총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 갈색머리의 삼십대 키 큰 남자. 하도 스토킹을 하는 바람에 부아야발의 요구, 극장에 함께 간 날, 밤이 되자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가 부아야발한테 귀싸대기를 오지게 한 대 얻어터진 마르가레트. 세상에 이런 일이. 설마 부아야발이 진짜 마르가레트를 사랑한 거야?

  스위스에서 보모 일을 하던 당시였는데, 집 주인이자 바람둥이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아내가 있는지 아니면 이혼당했는지 알 수 없는 바게리안은 자신의 비서, 아니면 노르웨이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 않는 날 기꺼이 마르가레트와 사랑을 나눈 모양이고, 훗날 마르가레트가 파리로 자리를 옮기자 묵을 호텔 비용과 생활비 부담을 제안하지만 마르가레트는 거절한다.

  이렇게 그저 생각나는 기억 이야기. 결론은, 저 위에서 말한 적 있다.

  “과거의 한 시기, 후의 어린 시절과 연결되지 못한 채 영원히 현재 속에 유예된 삶.”

  다른 말로 간단하게 말하면, 버.킹.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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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10-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전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정말요.

Falstaff 2026-10-20 20:1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얘기하신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달리고 있는 듯하더라고요.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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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코야마 히데오는 1957년에 도쿄에서 출생한 미스터리 작가이자 만화 작가라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만화라고? 소설가 치고는 이색 직업을 가지고 있군, 싶어서 검색해보니, 만화를 그리는 화백이 아니라 만화의 원작 대본을 책임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란다. 도쿄에 있는 국제상업대학, 현 도쿄국제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군마현에 있는 지방신문의 기자로 12년 동안 있다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데뷔작은 <루팡의 행방>. 제목으로 보아 청소년을 위한 가벼운 미스터리 물이 아닐까 싶다(믿지 마시라, 추측한 거다).

  내가 읽은 책 <빛의 현관>에서는 행방불명 사건이 벌어지고, 그걸 형사나 탐정이 수사에 나서서 갖은 추리와 도주, 추격 끝에 체포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작품은 아니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 당할 때 가족의 해체를 경험한 건축사가 자신의 가족과 직장, 건축사로서 인생 최고의 작품인 집의 소유주, 일본에 망명했던 독일인 건축가 등등을 등장시킨, 일종의 추리극이기는 한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지지만, 잘 차려진 오첩반상 비슷한 대중소설이라고 할까 싶다.

  그러니까, 추리소설이기는 하지만 추리소설 쪽의 장르문학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상당한 부분을 순문학 쪽으로 기울고 있어서 장르의 경계 없이 ‘그냥 소설’로 생각하고 읽으면 딱 좋겠다. 어제 읽은 정영문 식으로 말하자면 “재래식 소설.” (재래식 소설, 진짜 웃겼다.)

  근데, 적어도 소설의 핵심 사건이 되는 “실종 사건”이라면, ①겁나게 부잣집, 적어도 재벌급 가족의 일원, ②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 AI, 식량, 에너지) 기술을 가진 과학자, ③만 명 가운데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자나 남자, 이 정도가 아니라면 적어도 ④조직폭력단의 두목이거나 두목의 애인 혹은 딸 정도는 돼야 어울릴 터.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니다. 어쩌면 찌질할 수도 있는 수입가구전문 판매점의 주인도 아니고 지배인 급의 키 작고 통통한 남자. 거기서도 해고당하고, 이혼까지 당해서 이제 자기도 ‘인터넷 수입상품전문점’을 차리고 싶어하는 남자. 가구제작 장인의 아들이면서, 가구 제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가업을 잇지도 못한 자. 어째 좀 후져 보이지? 납치는 당했지만, 이런 외모와 재력, 학벌, 지능을 감안해보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다. 참 세상 야박하다. 소설도 그렇다.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아오세 미노루. 지상 100m 댐 최상부에 붙어 몸을 구부리고 콘크리트 패널을 짜맞추는 작업에 관한 한 업계에서 알아주는 일인자의 2녀1남 가운데 막내. 댐 최상부에서 하는 작업이라 일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댐 건설현장으로 가족 모두 이사해 새로운 댐의 꼭대기에 매달려야 해서, 가족들은 댐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사택에서 몇 년씩, 길어봐야 1~2년 살다가 다른 곳으로 또다시 이사를 했다. 이러니 두 누나들과 마찬가지로 아오세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했는데, 비록 사는 곳과 환경이 열악해도 작업의 위험도를 감안해 아버지가 받는 보수가 반 아이들 부모가 벌 수 있는 현금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따돌림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겠지? 어린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다. 아오세는 그래서 친구 없이 사는 법에 어린 시절부터 통달할 수 있었고, 대신 산새를 비롯한 여러 새들의 우는 소리를 구별할 줄도 알 정도로 새와 친했다. 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나오지만 그런 거 다 소개하자면 내가 소설 한 편을 써야 할 판이다. 그냥 넘어간다.

  아오세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다녔다. 아버지는 건축은 말고 자기 일을 이어 돈 잘 버는 콘크리트 패널 전문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이라서 대학 진학을 위해 결혼해 도시로 나간 누나 집에 머물며 공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떴다. 그래도 건축과에 입학해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사무소인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떡잎을 알아본 아카사카 씨가 집중 교육을 시켜, 굳이 비싼 돈 주고 졸업까지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2학년까지 다니다가 관뒀다. 이때 함께 건축과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오카지마 아키히코와 노세 다쿠미. 훗날 오카지마는 아오세의 은인이라면 은인이 되고, 노세는 연애부터 건축 실력까지, 그러니까 공적, 사적 양 방향으로 몽땅 아오세한테 판판이 깨지지만 사회적으로는 무지하게 성공하는 건축가가 된다.


  아오세는 키 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카리와 결혼한다. 이 짝짓기 경쟁에서 아오세가 꺾은 라이벌이 부잣집 아들이자, 대학 건축과 동기동창이자,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에서 아오세의 경쟁 부서인 공건물 시공팀에서 일하던 노세 다쿠미. 연애와 결혼을 둔 1차 승부에서는 아오세가 간신히 이겼다. 이때 산새의 울음소리만 가지고 어떤 새인지 아는 아오세의 재주가 크게 가산점을 받았다. 아카사카 건축사무소의 2차 승부에선 노세의 완전한 승리. 때는 일본의 버블 붕괴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파국으로 아오세가 일하던 사적 건축은 거의 완전히 거덜이 난 반면, 공적 건축은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최소의 유지가 필요했던 것이 노세가 생존할 수 있었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오세는 정리해고를 당하기 전에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자진해 먼저 사직서를 던졌고, 이를 알게 된 아내 유카리는 마음 속으로 대단한 불만이 싹텄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혼 후 버블 경제 시기에 아오세 부부는 조금 무리를 해서 도쿄 중심가에 괜찮은 맨션을 구입했는데, 아오세가 사직을 한 후에 가정을 위한 고정비만큼도 수입이 없음에도, 다른 해고자들처럼 아무 일이라도 해야 하건만 아오세는 그래도 건축 엔지니어 가오 문제가 있어서 그저 백수로 남아 있었던 것이 부부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절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이혼에 이르렀고, 도쿄의 맨션에는 아내 유카리와 딸 히나코가 살고, 아오세는 허랑방탕한 알코올 의존자로 점점 빠져들 즈음, 혜성같이 나타나 자기 건축 사무소에서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해 수렁에서 건져준 사람이 또다른 건축과 동기동창 오카지마 아키히코다.


  아오세 미노루. 오카지마와 노세가 보기에도 자기들보다 능력이 월등한 천생 건축사. 하지만 아오세는 한 번 크게 인생을 실패해보았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어디가서 말빨이 좀 달린다. 이게 성격상 결함으로 조금 나타나는 듯하다. 사회생활에서만 그랬으면 좀 나은데, 아내 유카리도 오카지마와 노세하고 업계에서 공적으로 친밀한 전문 인테리어 디자이너. 아오세가 빌빌거린다고 한 마디 하면, 아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듣기 싫기는 하겠지, 그래도 충동적으로 극도의 열을 받아 크게 소리지르며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토록 사랑하면서도.

  만일 이 가족이 살 집을 짓는다면, 아오세는 아버지의 콘크리트 작업을 보며 자라서 그랬는지 자기 건축 인생을 시시각각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외벽의 포장이 바뀌는 서양식 콘크리트 집을 짓는 걸 주요 테마로 생각한 반면, 유카리는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어린 시절의 집, 오랜 농가 안채에 일본 전통가옥을 증축한 따듯한 목재 집에서 살고 싶어했다. 이젠 콘크리트 집이나 목재 집이나 다 끝난 일이지만.

  이들이 이혼하고 벌써 8년. 딸 히나코가 유치원 다닐 때 아오세가 도쿄의 맨션을 떠나 지금은 도쿄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의 도코로자와의 원룸에 살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 도쿄의 카페에서 딸을 만나 이야기하고, 밥과 차도 마실 뿐이다. 아이가 이젠 자기 삶을 알기 시작하는 열세 살, 사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작품은 비가 오는 3월 아오세가 히나코를 만나러 도쿄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오세는 작년 11월에 시나노오이와케에다 집을 한 채 지었다.

  금슬이 좋으면 생긴 것도 닮는다고, 생김새도 비슷한 요시노 부부가 오카지마 건축사무소에 찾아와 아오세가 지은 집을 본 적이 있다고, 자기들이 살 집을 꼭 직접 지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시나오오이와케의 땅 80평. 건축비 최대 3천만엔. 그리고:

  “아오세 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그래서 아오세가 지었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터부시되는 북향 창을 원하는 만큼 낼 수 있는 사방이 탁 트인 땅이라, 노스 라이트North Light를 채광의 구역으로 하고 다른 빛은 보조로 돌리는 은은한 빛의 전당을 만든 것. 침실의 북으로 난 창문 커튼을 젖히면 들어오는 짜낸 베일 같은 노스 라이트. 그 너머 보이는 아사마 산의 장엄한 모습. 노스 라이트.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은 노스 라이트, 북쪽에서 스미는 빛이었다. 창문은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

  아오세가 언젠가 만들고 싶었던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놀랍게도 목재 건물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집 주인 요시노 부부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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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10-16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셨군요! 저는 십여 년 전에 「64」를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 폴스타프님과 같았어요. 이건 단순 추리소설이 아니다! 라구요. ㅎㅎ 경찰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배신을 64만큼 자세하게 보여준 소설이 또 있을까 싶어요. 『빛의 현관』도 평이 좋아서 읽고 싶었는데 또 그냥 흘려보냈네요. 저도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Falstaff 2026-10-16 18:58   좋아요 1 | URL
냅! 이 책 재미있었습니다. ㅎㅎㅎ 64도 언젠가는 읽어봐야 하겠군요.
이 양반, 은근히 매력있는 듯. ㅋㅋㅋㅋ

yamoo 2026-10-1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작가도 있었네요...이 소설 재밌으면 찾아서 읽겠습니다!
도통 감을 못잡겠어요..ㅎㅎ 별4개인데...일본 만화 작가라...

Falstaff 2026-10-16 18:59   좋아요 1 | URL
그냥 큰 기대 하지 마시고 읽으시면 만족하실 듯합니다.
요즘 별점은 믿지 마세요. 어디서나, 누구한테나 인플레가 넘실댑니다. 저도 용기가 없어서 그냥 파도에 편승하고 있고요. ㅜㅜ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ㅣ 입장들 2
정영문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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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문의 2018년 작품. 이이가 1996년에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했으니 <…사무라이>를 출간했을 때는 벌써 22년의 짬이 쌓였을 때였다. 사실 내가 정영문의 소설을 읽고 이러니 저러니 할 계제가 안 되는 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정영문도 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주로 작가가 쓴 <…사무라이>에서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여기저기 조금씩 뽑아 소개할 뿐이란 점을 기억하시라.

  정영문이 문단 밥을 22년 동안 먹고 나니 문득 소설이 특정 서사, 즉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진 등장인물의 행위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 나 원 참, 기가 막히네. 지금 내가 인용하려는 부분이 책의 뒤표지에 딱 CTRL+V가 되어 있다. 그가 뭐라 했느냐 하면:


  “어쩌면 재래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언젠가 이후로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소설 속에 등장시킨 소설적 인물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 같았고, 그 인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p.59)


  작가가 스스로 만든 등장인물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으려면 최선의 방법이 등장인물을 없애는 것이고, 등장인물을 없애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려면,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먹고, 듣고, 비비적거린 실제 이야기, 물론 실제는 실제라 해도 적당한 과장이나 축소, 아니면 은근한 거짓말 정도야 허락이 되겠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할 터, 마침 정영문은 2010년 봄과 여름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한 적이 있어서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어떤 작위의 세계>로 쓴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이번 2017년에는 텍사스에 있는 미국인 친구 부부, 소설가 남편 D와 미술, 미술 가운데서도 특별히 조각으로 이름을 낸 N의, 댈러스에 있는 집에서 11월부터 얼마간 머물렀던 모양이다. 정영문은, 당연히 서울로 돌아와, 텍사스에서 초안 일부를 잡긴 했겠지만, 하여튼 서울에서 당시의 체험과 생각했던 것, 또는 생각했던 것을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렇게 새로운 소설을 쓰긴 쓰는데, 이번 소설에서 정영문이: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말하는 것이 없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없는,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이런 이야기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할 수 있나 보는 것뿐이었고, 이 글 역시 그것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 단어와 어구의 반복적인 사용을 얼마나 할 수 있나 보는 것이기도 했다.).”  (p.37)


  앞의 인용은 “재래식 소설”을 지양하게 된 내력을 말했다면, 이번 인용은 재래식이 아닌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설명하는 바, 밑도 끝도 없고, 만일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계속 옆으로 새는 이야기,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읽으나 마나 한 이야기이며, 그걸 묘사하는 것도 독자가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반복적인 어구를 계속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걸 조금만 뒤집어 생각하면 만일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견딜 수 있거나, 그 지경을 넘어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만 하다면, 이 짧은 분량의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즐길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 책을 안 읽어본 독자는, 그러면 모든 문장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문장들이 전부 반복하는 묘사로 가득할 것인가가 궁금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책을 읽어본 독자가 말해드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모든 묘사가 같거나 비슷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 구절을 계속 반복적으로 채운다는 걸 미리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복적인 묘사로 채우기만 했을 뿐, 작가가 염두에 둔 묘사의 기법, 염두에 두었지만 작가 정영문이 묘사의 기법을 구사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을 했는지 아닌지, 독자는 작가가 구사한 기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아서, 작가는 독자가 이해했는지, 독자는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진짜로 써먹었는지 써먹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아챌 방법이 없는 문제가 벌어지는 바, 작가가 자신이 써먹었다고 주장하는 묘사의 기법은, 자신이 2017년 11월부터 일정기간 머물렀던 미국 텍사스의: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가설을 세우다 마는 것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의식의 마비 기법과 의식의 착란 기법이 뒤섞인 소설로 그것을 보면 지나가는 개도 웃고 갈 소설”  (p.21)


  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설가 정영문, 이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자기가 쓴 소설이 개도 웃고 갈 소설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 <…사무라이>가 재래식 소설의 바운더리를 넘고자 했다면, 그러면 <…사무라이>에는 스토리가 전혀 없느냐, 하는 건 아니고, 있기는 있으되, 진짜 사건인 건 텍사스 대농장의 농장주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농장주인지 아니면 진짜 농장주라고 술김에 큰소리만 뻥뻥 치는 한 물 간 카우보이 나부랭이인지 헛갈리는 백인 남자를 술집에서 만난 일,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악명 높은 도시가 된 댈러스의 한 거리에 늑대 동상을 세우기로 한 친구 부부 N과의 대화 내용, 텍사스에 있는 농장을 전부 둘러보려면 말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커서 트럭을 타고 다녀야 했다거나, 근데 그건 새발의 피고, 정말로 큰 텍사스의 농장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는 물론이고 활주로까지 깔아 놓은 곳도 있다는 등의 것들이 진짜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영문의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생각한 것들에 관한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와,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를 암살한 잭 루비의 콜트 코브라 38구경 권총 같은 것들, 예컨대 텍사스의 명성을 가장 끔찍하게 만든 건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아니었겠느냐, 하는 거, 뭐 기타 등등 이런 거, 즉 위에서 정영문이 실토했듯이 진짜로 읽어보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설 거리들이라지만 그래도 그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절절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독일에서 관념철학을 공부한 정영문의 친구를 정영문이 관찰한 내용으로: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는 말이 안 되는 말을 아주 난해하게 해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게 해 누가 더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일종의 내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역시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데 남다른 데가 있었다.”  (p.34)


  는 것이었으니, 내가 평소에 주장한 바, “철학이라는 학문은 쉬운 얘기를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하느냐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과 매우 비슷해, 깜짝 놀랄 수도 있어, 내가 짧은 메모를 하나 써서, 이렇게 붙인 바 있다. “개공감!”

  여태까지 두서없이 <…사무라이>에 관해 독후감입네, 써 보았지만,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이 영양가 없는 독후감에 조금의 관심을 두실 필요 없이 그냥 팍, 읽어버리고, 정영문이 주장한 바 대로, 밑도 끝도 없고, 계속 옆으로 새기만 하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같은 묘사를 반복하는 의식의 흐름 또는 의식의 마비, 아니면 의식의 착란을 견딜 수 있는지 기꺼이 시험에 들 각오를 한 연후에 읽는 편이 좋을 수도 있는데, 만일 개도 웃고 갈 이야기가 독자의 취향에 맞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이니, 제위께서는 주목하셔도 좋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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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자 - 끌려간 거인 ㅣ 묘보설림 21
샤오샹선 지음, 김지민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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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오샹선瀟湘神. 가명이다. 본명은 Luo Chuanqiao羅傳樵. 1982년생 타이완 소설가. 그리고 요괴 연구가. 놀랐지? 요괴. 내가 읽은 모든 소설 가운데 요괴가 제일 많이 등장하는 건 명나라 소설가 오승은이 쓴 <서유기>. 그 요괴 연구가, 맞다. 동우東吳대학 중문학과와 국립타이완대학 철학대학원 동양학부 석사과정에서 유교를 전공했단다. 인류학과 민속학에 관심이 지대해 타이완대학 원주민학 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샤오샹선의 족族이 궁금했다. 타이완의 여러 원주민 족을 비롯해 오키나와의 북, 중, 남쪽의 구성 족들에도 통달한 거 같아서. 하지만 <마신자>의 핵심 주제가 이 족별 구분, 분리를 지양하고 더 큰 세상을 만들자는 거라서 오히려 궁금해했던 것이 쪽팔리는 순간을 맞았다. 뭐 다 그런 거지.


  책은 본문이 24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인데, 그래도 만만하지 않다.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샤오샹선은 타이완의 작은 섬에 대한 내력과 그 섬에 내려오는 전설부터 시작해 타이완, 오키나와 등의 요괴, 그 사람들 말로 요마귀괴妖魔鬼傀를 뜻하는 마신자와 삿키의 과거 활약상 같은 것이 정신없이 출현한다. 샤오샹선이 요괴 연구가라잖아? 그러니 요마귀괴가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다만 문제가 독자인 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유물론자라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뜻하는 ‘ㅆㄴㄹ 소설’을 지극히 안 좋아하기 때문에 불행하게 됐다.

  그러니 간단하게 작은 섬, 옛적에 ‘투만’이라고 불린 곳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알아보자.

  아주 태고적에 이 작은 섬에 해초와 어란(물고기의 알)로 뒤덮인 거대한 짚신이 떠내려왔다. 얼마나 크냐 하면, 마을에서 제일 발이 큰 남자의 발보다 여덟에서 아홉 배 정도나 더 컸으니, 진짜 몸은 얼마나 큰 거인이겠는가 싶었다. 마을 촌장이 회의를 소집해서 말하기를, 이제 거인이 우리 마을로 쳐들어오면 거덜이 날 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냔 말이냐, 했더니 총명한 사람이 있어서, 거인이라도 자기보다 더 큰 거인을 보면 틀림없이 무서워할 것이니, 우리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짚신을 만들어 바다로 돌려보냅시다.

  이렇게 거인이 쫓겨났다는 이야기. 이게 거인한테는 얼마나 슬프면서도 한스러운 일이었겠냐는 것인데 그거야 보지를 못했으니 알 턱이 있나?


  다음은 마신자. 처음에 ‘마신자’라고 해서 나는 술 같은 건강음료를 ‘마신 자’를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이 요마귀괴를 뜻하는 거였다. 귀괴는 귀괴이지만 타이완 섬에 사는 귀괴가 마신자이고, 오키나와에 터를 잡은 귀괴는 싯키. 즉 속지주의에 따라 타이완 귀괴가 마신자. 문제는 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해 괜히 멀쩡한 오키나와 사람들한테 자결을 강요한 일본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픽픽 죽어나간 섬 사람들 말고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배를 타고 피난을 와 있었던 것. 그러면, 타이완에 피난 온 사람들의 귀괴는 속인주의에 따라 싯키일까, 속지주의에 의하여 마신자일까?

  이게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본문에 들어가면, 시대는 21세기. 타이완에서 이륙해 일본으로 향하는 여객기가 지상 3만5천 피트, 즉 10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기장 이름이 천신야오千鑫壵.

  신야오가 말한다. 비행하기 싫다고. 기가 막히는 부기장. 부기장의 이름은 알 거 없다. 나오지도 않는다. 하여간 부기장은 벙쪄서 지상 1만미터 상공에서 기장이 비행하기 싫으면 어쩌냐는 거다. 신야오가 얼버무리기를, 조종사 일을 더 하기 싫다는 뜻이었다고. 그러다 부기장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천신야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상공 10km에서. 부기장은 화장실에 가서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기장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에 했던 말이,

  “어?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셔요?”

  타이완어였다. 원주민의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니까 천신야오의 정체성은 타이완 산족山族. 중화인민공화국에 밀려 중국 땅에서 해협을 건너온 중화민국 한족한테 밀려 산으로 쫓겨간 원주민의 후예라서 산족이라 불린다.


  이제 족보가 복잡해진다.

  밀폐된 10km 상공의 조종실에서 실종된 기장 천신야오의 할머니 이름이 천황칭쯔. 이름이 칭쯔. 칭쯔의 엄마 이름이 나쓰코 오바. 오키나와 여성이다. 피난을 와 오빠 집에서 살다가 황씨 성을 가진 상인과 결혼해 딸 청쯔를 낳았다. 황청쯔가 천씨 성을 가진 남자하고 결혼해 천황칭쯔가 된 것. 그러니까 칭쯔는 반 오키나와 사람. 엄마와 마찬가지로 양 손등에 문어 먹물로 잔뜩 문신을 그려 넣었다. 오키나와 여인들의 징표라고 한다. 정확하게 오키나와 특정 족들의 징표.

  그런데 청쯔의 엄마 나쓰코 오바상이 사라졌다. 쥐도 새도 모르게. 틀림없이 마신자가 데려간 것이라고 말이 나왔다. 마신자가 데려가면 현장에서 1백이나 2백킬로미터 떨어진 곳, 흔히 산 속으로 뚝 떨어지는, 순간이동 비슷한 걸 하게 되는데, 마신자가 먹을 것 비슷한 것을 주어 생명이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사라진 사람들은 돼지나 닭고기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진흙이거나 동물의 분변이라나? 뭐 귀괴의 장난 비슷한 것일 수도 있고 진짜 납치해 평행우주로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복잡한데 나쓰코 오바가 이렇게 사라졌다.

  세월은 흘러 이제 나쓰코 오바의 진증손, 청쯔의 손자 천신야오가 저 높은 비행체에서 또 사라져 버린 것. 엣다, 화끈하게 더 알려드린다. 3년 전에 천쯔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집에서. 그러니까, 진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손자가 사라졌거나 순간이동을 했거나,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졌거나, 산속 요괴의 간식거리로 먹혔거나 하여간 그렇게 됐다.

  천신야오가 마지막으로 한 말, 부기장이 헤드셋으로 들은 말, “Appa, 어떻게 여기에 계세요?”에서 Appa는 타이완어로 ‘할머니’를 뜻한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갑자기 10km 상공의 밀폐된 비행기 조종실에 홀로 있던 손자 옆에 턱하니 나타나고, 즉각 비행기의 기장이 사라져 버린 것.


  그런데, 여태까지 말한 등장인물들 가운데 주인공은 없다.

  여객기 기장의 실종이 대단히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어서 타이완과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리하여 각 매스컴마다 집중보도에 열을 냈는데, 이 가운데 신문사 한 곳에서 천신야오의 고향인 난팡샤오에 특별 취재 기자 한 명을 파견한다. 이이의 이름이 뤄쉐펀. 천신야오의 학교 동아리 2년 선배. 앞에서는 1년 선배였다가 뒤로 가면 2학번 위라고 하니까 뭐 대강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면 된다.

  비슷한 나이라고 해서 딴 마음먹지 마시라. 최근에 만난 것도 10년 정도 됐다. 신야오는 약혼녀도 있다. 그래, 뤄쉐펀도 미혼 여성이다. 쉐펀이 난팡샤오에 와서 3년 전에 행방불명된 신야오의 할머니 댁을 탐방하고 나오는데, 물론 우여곡절이 있는 방문이었지만 내용은 건너뛰고, 딱 방문에 나오는 순간 마주치는 여성이 바로 신야오의 약혼녀 중유어. 이 두 여성이 신야오와 할머니 칭쯔, 그리고 진도를 더 나가면 진증조할머니 나쓰코 오바, 타이완어로 위청샤쯔의 실종까지 거론하면서 신야오의 행방불명의 실체를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마신자>는 이제 추리소설 방면으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이 추리극을 주도하는 사람이 진짜 주인공 뤄쉐펀이다.

  그래서 결국 요괴 연구가가 쓴 소설이 잘 꾸민 추리소설로 해결이 되느냐고? 에이, 내가 그걸 어떻게 맨입으로 이야기하나? 나는 체질에 맞지 않아서 별로였지만 이런 엽기, 괴기, 요괴가 출몰하는 기묘한 이야기 좋아하는 분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아니더라도 타이완과 오키나와 근방의 근현대사에 관심있는 분한테는 강추할 수 있을 작품. 그래서 좀 길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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