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ㅣ 입장들 2
정영문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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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문의 2018년 작품. 이이가 1996년에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등단했으니 <…사무라이>를 출간했을 때는 벌써 22년의 짬이 쌓였을 때였다. 사실 내가 정영문의 소설을 읽고 이러니 저러니 할 계제가 안 되는 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정영문도 안다. 그리하여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주로 작가가 쓴 <…사무라이>에서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여기저기 조금씩 뽑아 소개할 뿐이란 점을 기억하시라.

  정영문이 문단 밥을 22년 동안 먹고 나니 문득 소설이 특정 서사, 즉 사람이라는 인격을 가진 등장인물의 행위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 나 원 참, 기가 막히네. 지금 내가 인용하려는 부분이 책의 뒤표지에 딱 CTRL+V가 되어 있다. 그가 뭐라 했느냐 하면:


  “어쩌면 재래식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언젠가 이후로 쓸 수 없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소설 속에 등장시킨 소설적 인물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 같았고, 그 인물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았는데, 나는 남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p.59)


  작가가 스스로 만든 등장인물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으려면 최선의 방법이 등장인물을 없애는 것이고, 등장인물을 없애면서 동시에 소설을 쓰려면,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자기가 직접 경험하고, 보고, 먹고, 듣고, 비비적거린 실제 이야기, 물론 실제는 실제라 해도 적당한 과장이나 축소, 아니면 은근한 거짓말 정도야 허락이 되겠지만, 어쨌든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할 터, 마침 정영문은 2010년 봄과 여름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체류한 적이 있어서 이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어떤 작위의 세계>로 쓴 경험을 오늘에 되살려, 이번 2017년에는 텍사스에 있는 미국인 친구 부부, 소설가 남편 D와 미술, 미술 가운데서도 특별히 조각으로 이름을 낸 N의, 댈러스에 있는 집에서 11월부터 얼마간 머물렀던 모양이다. 정영문은, 당연히 서울로 돌아와, 텍사스에서 초안 일부를 잡긴 했겠지만, 하여튼 서울에서 당시의 체험과 생각했던 것, 또는 생각했던 것을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렇게 새로운 소설을 쓰긴 쓰는데, 이번 소설에서 정영문이:


  “유일하게 궁금한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말하는 것이 없는,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이 차이가 없는,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이런 이야기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할 수 있나 보는 것뿐이었고, 이 글 역시 그것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것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주지 않는, 단어와 어구의 반복적인 사용을 얼마나 할 수 있나 보는 것이기도 했다.).”  (p.37)


  앞의 인용은 “재래식 소설”을 지양하게 된 내력을 말했다면, 이번 인용은 재래식이 아닌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설명하는 바, 밑도 끝도 없고, 만일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도 계속 옆으로 새는 이야기, 하나 마나, 들으나 마나, 읽으나 마나 한 이야기이며, 그걸 묘사하는 것도 독자가 즐거움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반복적인 어구를 계속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걸 조금만 뒤집어 생각하면 만일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견딜 수 있거나, 그 지경을 넘어 독자가 반복적인 어구를 사용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만 하다면, 이 짧은 분량의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즐길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이 책을 안 읽어본 독자는, 그러면 모든 문장들,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문장들이 전부 반복하는 묘사로 가득할 것인가가 궁금할 수도 있을 터인데, 이 책을 읽어본 독자가 말해드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채우는 모든 묘사가 같거나 비슷하거나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 구절을 계속 반복적으로 채운다는 걸 미리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반복적인 묘사로 채우기만 했을 뿐, 작가가 염두에 둔 묘사의 기법, 염두에 두었지만 작가 정영문이 묘사의 기법을 구사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을 했는지 아닌지, 독자는 작가가 구사한 기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닌지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아서, 작가는 독자가 이해했는지, 독자는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진짜로 써먹었는지 써먹지 못했는지 도무지 알아챌 방법이 없는 문제가 벌어지는 바, 작가가 자신이 써먹었다고 주장하는 묘사의 기법은, 자신이 2017년 11월부터 일정기간 머물렀던 미국 텍사스의:


  “이런저런 것들에 대한 근거 없는 가설을 세우다 마는 것으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의식의 마비 기법과 의식의 착란 기법이 뒤섞인 소설로 그것을 보면 지나가는 개도 웃고 갈 소설”  (p.21)


  이라고 주장하는데, 소설가 정영문, 이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자기가 쓴 소설이 개도 웃고 갈 소설이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 <…사무라이>가 재래식 소설의 바운더리를 넘고자 했다면, 그러면 <…사무라이>에는 스토리가 전혀 없느냐, 하는 건 아니고, 있기는 있으되, 진짜 사건인 건 텍사스 대농장의 농장주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농장주인지 아니면 진짜 농장주라고 술김에 큰소리만 뻥뻥 치는 한 물 간 카우보이 나부랭이인지 헛갈리는 백인 남자를 술집에서 만난 일,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악명 높은 도시가 된 댈러스의 한 거리에 늑대 동상을 세우기로 한 친구 부부 N과의 대화 내용, 텍사스에 있는 농장을 전부 둘러보려면 말을 타고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다 보지 못할 정도로 커서 트럭을 타고 다녀야 했다거나, 근데 그건 새발의 피고, 정말로 큰 텍사스의 농장에는 자가용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는 물론이고 활주로까지 깔아 놓은 곳도 있다는 등의 것들이 진짜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행동을 했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영문의 머리 속에서 마음대로 생각한 것들에 관한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느냐 하면,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와, 존 F 케네디를 암살한 오스왈드를 암살한 잭 루비의 콜트 코브라 38구경 권총 같은 것들, 예컨대 텍사스의 명성을 가장 끔찍하게 만든 건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아니었겠느냐, 하는 거, 뭐 기타 등등 이런 거, 즉 위에서 정영문이 실토했듯이 진짜로 읽어보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소설 거리들이라지만 그래도 그가 주장하는 것 가운데 절절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독일에서 관념철학을 공부한 정영문의 친구를 정영문이 관찰한 내용으로: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는 말이 안 되는 말을 아주 난해하게 해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게 해 누가 더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일종의 내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역시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는 데 남다른 데가 있었다.”  (p.34)


  는 것이었으니, 내가 평소에 주장한 바, “철학이라는 학문은 쉬운 얘기를 어떻게 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하느냐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과 매우 비슷해, 깜짝 놀랄 수도 있어, 내가 짧은 메모를 하나 써서, 이렇게 붙인 바 있다. “개공감!”

  여태까지 두서없이 <…사무라이>에 관해 독후감입네, 써 보았지만, 이 책을 읽어보실 분은 이 영양가 없는 독후감에 조금의 관심을 두실 필요 없이 그냥 팍, 읽어버리고, 정영문이 주장한 바 대로, 밑도 끝도 없고, 계속 옆으로 새기만 하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같은 묘사를 반복하는 의식의 흐름 또는 의식의 마비, 아니면 의식의 착란을 견딜 수 있는지 기꺼이 시험에 들 각오를 한 연후에 읽는 편이 좋을 수도 있는데, 만일 개도 웃고 갈 이야기가 독자의 취향에 맞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아니할 수 없을 터이니, 제위께서는 주목하셔도 좋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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