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96
세사르 아이라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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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년생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세이스트, 번역자, 평론가. 대표적인 다작 작가라고 한다. 출간한 책이 백 권이 넘고, 1년에 두 권에서 다섯 권까지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세사르 아이라는 이 책 <바라모>가 유일하다.


  작품의 주인공 바라모 씨를 소개하자면, 1923년에 쉰 살 정도니까 1873년 정도에 파나마 콜론 시에서 그래도 연줄이 좀 있는 파나마 남자 튜뇬 데 바라모 씨와 광동어를 사용하는 중국인 엄마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파나마에서는 운하 개통으로 유럽의 아시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게 반어법인지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운하 건설과 개통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곳과 심지어 동유럽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서유럽에서는 주로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극한 남초 현상이 빚어져 남자들이 결혼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바라모가 나이 들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빌빌 거리자, 아직 살아 있던 아버지 튜논 데 바라모 씨 연줄로 정부 청사의 말단 자리에 넣어주었다. 말단 공무원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나, 그건 파나마도 마찬가지여서 장가도 들지 못하고 이 나이, 쉰이 될 때까지 가장 한심하고 전형적으로 교과서 적인 남자 루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죽, “연줄로 간신히 일자리를 얻어 근근이 살아가며 어머니 집에 들어 앉아 혼자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형국이다.


  독후감의 시작을 이렇게 했다고, 이 작품을 서사 위주의 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 산이다. 아무쪼록 독자는 처음부터 긴장을 좀 하고 책을 여는 편이 좋다. 미리 이렇게 말해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바라모가 정부청사에서 퇴근하는 길. 날은 한 달의 마지막 날. 봉급 받는 날이라서 퇴근 전에 경리과에 들러 월급을 받았다. 누런 얇은 봉투에 넣은 현금, 지폐와 동전까지 일일이 세서 담은 봉급을 받는 건 과거의 K 스타일이고, 파나마 P 스타일은 봉투도 없이 그냥 지폐와 동전을 건네주면 그걸 손에서 손으로 받아 그냥 주머니에 쑥 집어넣고 갈 길 가면 되는 모양이다.

  근데 바라모 씨는 이 시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대략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에 걸쳐 긴 시를 한 편 쓴다. 놀랍게도 이전에는 시를 써본 적도 없고, 쓰기는커녕 반 세기 동안 읽어본 적도 없다. 이런 사람이 길고 긴 시를 썼는데, 써 놓고 덧붙이거나 수정한 부분 하나 없이 완성한 것도 모자라, 시가 이날 이때까지 “현대 라틴 아메리카 시의 걸작으로 찬사 받는” 위대한 <아기 예수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중판, 3판, 4판… n판까지 영원무궁토록 찍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숱한 평론가와 시인들은 이 작품을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고 단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놀랠 노자다. 바라모는 심지어 이 한 작품에 자기 문학적 인생을 다 소비해 다시는 시를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곳에서 영혼이나마 편히 안식하기를.

  작품의 시작이 위와 같다. 그러면 독자들은 <바라모>는 바라모 씨가 문제의 시를 쓰게 되는 전말이 작품의 주요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게 맞다. 하지만 어떻게 시를 쓰게 되는지 그 이야기를 납득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걸? 그러면 머리에 쥐 한 번 나 보자.


  시작은 바라모가 근무를 마치고 경리과에 가서 월급을 받을 때였다. 그는 월급을 받는 순간 알았다. 월급으로 받은 지폐 가운데 100페소짜리 두 장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바라모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위조지폐를 손에 쥐어본 적이 없다.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위조지폐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나 외국에 놀러갔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주운 적 있다. 딱 집어 든 순간, 이게 위조지폐구나, 말로만 듣던 100달러짜리 위조 노트구나, 금방, 거의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 그러니 바라모의 월급 속에 100페소짜리 위조지폐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건 의심하지 말자(나는 호텔 바에 가서 위스키 한 잔 마시고 위조지폐로 의심되는 돈을 냈다가 무슨 검사를 한 지배인이 위조라고 알려주어 앉은 자리에서 (웃어야 할 거 같아서 웃으며) 박박 찢어버렸다).

  바라모는 말단 공무원. 그냥 시민이라도 그럴 텐데 심지어 공무원이 위조지폐를 사용하거나, 심지어 가지고 있다는 것만 들켜도 당장 감옥행일 것 같다. 바라모는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지도 못하는 한심하고 난처한 상태로 접어든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단 한 번도 시를 써 본 적이 없다. 시 말고도 다른 어떤 장르의 문학 작품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다. 이래서 결국 어떻게 위조지폐와 시라는 관계가 상호 개체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p.108). 아이고, 나도 지금 “개체성과 보편성”이라고 쓰긴 썼지만 써 놓고 다시 읽어보니까 갑갑하기 그지없다.

  이 두 장의 위조지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나’ 바라모 씨한테 왔느냐, 하는 문제. 이것들은 “새로운 이질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바라모에게 도래했단다. 이질성? 여태까지는 가져본 적도, 손으로 만져보거나 눈으로 본 적도 없는 위조지폐라는 금단의 것이 무려 두 장이나, 지금 바라모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이질성.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퇴근하느라 청사의 정문을 나서니 광장. 자기 앞에 8미터짜리 검정색 세단 관용차가 길을 막고 탁, 정지한다. 자동 창문이 아니어서 운전수가 손잡이를 뱅뱅 돌리니 창문이 스르륵 내려가며, 검은 피부의 운전수가 바라모에게, 노련한 도박꾼인 바라모의 어머니가 딴 돈을 건네준다. 1페소짜리 지폐와, 지폐를 감싸 반으로 접힌 종이조각. 검정색의 8미터짜리 관용 세단 때문에 바짝 긴장했던지 갑자기 당이 떨어진 바라모는 빨간 젤리를 1페소짜리로 사 먹으려 하다 우여곡절 끝에 먹지 못하고 길가 나뭇가지 끝에 걸어 놓았고(책의 마지막쯤 다시 등장한다), 종이에는 알아보지 못할 암호 같은 것들이 마구 쓰여 있다. 이게 무엇일까? 혹시 복권 당첨 번호? 그러나 숫자는 보이지 않는 걸?

  여기서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 챘어야 했다. 바라모가 쓴 시가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 그런데 1페소짜리 지폐를 감싼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이 마치 암호 같은 이해하지 못할 문자들. 아방가르드 시를 읽어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 현대시를 읽기 위해서는 암호해독기가 필요하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러니 적어도 시가 이 종이에 쓰여진 암호 같은 문자와 조금은 연결이 되겠구나, 이걸 눈치채지 못한 형광등이 누구? 맞다. 나였다. 아이고, 이런.

  바라모의 직업은 종합청사에 근무하는 말단 공무원. 박봉에 시달리느라 장가들 생각도 못하고 여전히 엄마 집에서 빌붙어 사는 쉰 살 중늙은이. 1920년대 쉰 살이면 꼬부랑 할배인 건 파나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바라모가 선택한 부업이 작은 동물 박제 만들기. 이 부업이 바라모가 책을 내게 만들어주는 신공을 부릴 지 누가 알았겠느냐고. 1920년대 파나마에서는 저작권 개념도 없었고, 그래서 숱한 인쇄소가 중소 출판사를 겸하던 때인데, 이날, 즉 바라모가 월급으로 위조지폐 두 장을 포함해 받은 그날 밤에, 이 출판사 사장 세 명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자기 부업을 이야기하자, 박제에 관한 책을 내라고, 원고료 2백페소를 주겠다고 해서 그는 나중에 불세출의 시 <아기 예수의 노래>가 될 원고를 쓰게 되는 것.

  그러면 시는 어떤 내용이기에 “언어적 측면에서 가장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아방가르드의 기원이자 정점”이라는 평가를 들을까? 아, 이건 결코 알려드릴 수 없다. 이게 핵심이라서. 다만 노련한 도박꾼 어머니의 침대 매트리스 영수증하고 관련이 있다는 말만 찔끔 일러드릴까? 그래도 될까 싶지만 뭐 이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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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원 - 162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가와고에 소이치 지음, 김진아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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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에 일본 가고시마 긴코초에서 태어난 가와고에 소이치는 오사카에서 자라 교토의 류코쿠대학 문학부 역사학과를 다니다 때려치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다니다 중퇴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서 대학 중퇴는 좀 드문 경우라고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대학 중퇴가 왜 드문 일인지는 말해주지 않아 이유는 모르겠다. 뭐 그런가 보다. 이후 밴드 활동도 하고, 우편 주문 회사에 다니기도 하면서 소설을 썼다는데 <열원熱源 Heat Source>로 2019년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나오키 상을 받았다.

  나오키 상. 그게 이번에 가와고에를 고른 이유다. 일본 현대소설을 좀 읽고 싶어 했다. 근데 아는 작가와 작품이 없어서, 일본의 현대 문학도 틀림없이 주목할 만한 작가를 보유하고 있을 터인데 널리 알려져 내가 읽은 재미있는 소설책이 없었다는 게 늘, 조금 불만이었다. 일본 작품을 읽어 보기로 작정을 하고, 널리 알려진 일본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책 세 권을 읽었다. <헌치 백>, <도롱뇽의 49재> 그리고 <슈리의 말>. 세 권 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나도 성질이 나서, 아쿠타가와 상 시상식과 같은 날, 같은 건물의 위층에서 시상한다는 일본의 또다른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 상을 받은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출간 기준으로) 신작을 골라 읽은 것이 <열원>이다. 출판사 마르코폴로에서 2026년 6월에 초판을 찍었다. 아쿠타가와 상은 주로 순문학에서 수상작을 선정하고, 나오키 상은 문학성과 더불어 대중성도 감안한다고 들었다. 뭐 그런가 보다.


  그런데 말입니다, 출판사 마르코폴로가 낸 번역서하고 나는 도무지 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최근에 읽은 마르코폴로 책이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아베 코보, 크리스타 볼프, 엘사 모란테 등인데, 어째 즐겁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자들이 대개 이제 문학 서적 번역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그들의 노고에 비해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할까? 오해하지 마시라. 그분들의 외국어 실력에 관해 논하자는 말이 아니라, 번역을 해 우리말로 만든 문장이 그리 매끈하지 않았다는 정도를 말하는 중이다. 이 책에서도? 아쉽지만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서장序章은 1945년 8월 15일. 어제 일왕이 항복선언을 해서 전쟁이 끝났다. 소비에트 군은 그럼에도 아직 일본군이 사할린 섬 남쪽을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해 상륙전을 벌이기로 작정한다. 소비에트 군? 공산주의 군대로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파시스트 나치들을 섬멸하고 곧바로 동쪽으로 이동해 파시스트 일본군을 뿌리 뽑으려 대륙간횡단열차를 타고 집결해 타타르 해협을 앞에 둔 소베츠카야가반 항구의 부두. 해협 건너 사할린 섬이 아련하게 보일 듯하다. 중대장 소로킨 대위가 중대원 앞에 나서서 연설한다. 그 초두.


  “한 가지 전달 사항이 있다. 어제 14일, 일본이 항복했다. 오늘 정오에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라디오 방송으로 국민에게 이 소식을 알리실 예정이다.” (p.14)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한 장 넘겨 새로운 페이지의 첫 줄에 쓰여 있어서 나는 앞 페이지에서 갑자기 장면전환을 해 일본군 진영인 줄 알았다. 명색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하는 스탈린 치하의 붉은 혁명 군대 중대장이, 그것도 무려 몇 년 동안 레닌그라드에서 쥐와 개와 사람의 시신을 먹어가며 파시스트 나치들을 버텨내고 드디어 베를린을 함락시킨 혁명 군대가 “오늘 정오에 황제 폐하께서 소식을 알리실 예정”이라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원작의 작가 가와고에 소이치는 일본 태생의 일본인이니까 자기네 왕한테 존대를 바치는 습관 때문에 의례 그렇게 썼더라도,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걸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정말로 소비에트 붉은 군대의 중대장이 적국의 왕한테 했을 법한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일본 왕 이름이 스탈린이기라도 한 거야?

  그리고 일본에서만 쓰는 단어가 있다. 이걸 적당한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건만, 일본식 한자어가 따라붙은 걸 그대로 사용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가 곳곳에 짱박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네이버 국어사전을 아예 열어놓고 읽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역자는 뭐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럼 교정교열을 책임지는 자들은 뭐한 거임? 메모를 해 놓지 않아 딱 어떤 단어라고 예를 들 수 없어서 증거를 내밀라고 하면 그건 못하겠다.


  작가 가와고에 소이치의 역사관도 마음에 안 든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폴란드인 민족학자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가, 이 인물은 황제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15년 유형에 10년 위수 판결을 받아 사할린에서 죽을 고생을 한 실제 인물인데, 도쿄에 출장을 와 도쿄 인근 와세다의 유명한 벚꽃 구경을 갔다. 난만한 벚꽃의 흐드러진 낙화. 상상이 가시지? 그걸 보더니 1905년 러일 전쟁 피해자를 연상한다. 그리하여 폴란드 혁명가가 동반한 일본인 하세가와한테 말하기를:


  “지난 전쟁 때 9만 명에 가까운 일본 병사가 죽었네.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는 15만 명이 넘지. 그자들은 분명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거야.” (p.385)


  염병을 한다.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기 위한 기초공사로 러시아의 손을 때게 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을 진짜 몰랐을까? 그것도 남의 나라 조선의 제물포 앞바다에서.

  함께 있던 하세가와도 한 마디 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거나 다쳤겠지. 하지만 전쟁터에서 스러진 러시아 병사들은 일본의 사쿠라를 모두 베어내고 강을 메워버리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p.385)


  이러니 내가 열폭을 하겠어, 안 하겠어? 만일 러시아가 일본한테 이겼으면 어땠을까? 1917~18년 러시아 혁명 후에 우리나라도 소비에트 연방에 자동 귀속될 수도 있었지 않을까? 그놈이 그놈이지 뭘.


  진짜 주인공은 야요마네쿠후. 사할린, 일본말로 가라후토 출신의 아이누 족이다. 그냥 아이누, 순록을 기르는 오로크, 개썰매를 타는 니쿠분 족 등 선주민들이 자기 땅의 개념 없이 모여 살던 섬이었다. 그러다 와진이라 칭하는 일본인들도 오고, 동쪽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죄수들을 유형보내 실질 지배를 하려 했던 러시아 사람들도 와서 살던 곳. 고아 야요마네쿠후는 큰아버지와 열두 살 연상의 사촌형이 키웠다. 진짜 자식보다 더 잘 해주는 것이 아이누의 당연한 습속. 아홉살 때 러시아-일본 조약으로 사할린이 러시아의 영토에 합병되자 홋카이도에서 살다가 마을이 연달아 콜레라, 두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절반 너머 인구가 줄자 일본 여권을 내서 다시 사할린으로 넘어왔다.

  이 야요마네쿠후도 실제 인물이다. 나도 독후감 쓰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폴란드인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와 그의 아이누 아내, 그리고 두 자손 모두 실재했던 인물인 걸 알고 아이고 깜짝이야, 했다는 것 아닌가 말이지. 야요마네쿠후는 세계최초로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하는 남극탐험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는데, 이게 왕립이나 국가에서 정식으로 지원하는 탐험대가 아니라 전직 일본군 위관 장교가 이끄는 사립 탐험대라서 썰매개 관리자 자격으로 다녀왔단다.

  작품 속에서는 어린 열다섯 살 시절에 동네에서 제일 예쁜 열일곱 살 아가씨 카사라스이한테 사랑고백하러 가는 친구 시시라토카와 함께 가 주었다가 자기가 먼저 고백하는 바람에 평생 시시라토카만 만났다 하면 주먹다짐을 하는 우정을 닦게 된다. 시시라토카는 모르겠고, 이들과 함께 삼총사를 이루는 열살의 명민한 소년 센토쿠 다로지 역시 실제 인물이다. 그러니 출연진의 절반 정도는 실제 인물로 봐도 좋다.

  책은 188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할린과 홋카이도에 살던 아이누의 삶과, 그들에 대한 문명의 지배 그리고 미래. 같은 의미에서 유럽인의 문명과 문화,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그들에게 지배당하는 나머지 인종의 삶과 미래 같은 걸 다루고 있다. 당연히 부처님 말씀이 아닐 수 없지만 색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취재를 통해 쓴 것 같아 생생한 편이다. 읽기 쉽게 진도도 팍팍 나가지만 뭐 그게 다다. 아이누 이야기를 하면서 기껏 그게 다다, 라 하고 마는 건 아이누 인들하고 척이 져 그런 게 아니고, 제일 앞에서 말했듯이 어째 나하고는 합이 맞지 않는 작품이라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들도 그렇고, 나오키 상을 받은 이 책도 마음에 안 들고. 나오키 상 받은 책 한 권만 더 읽어보고 일본 소설을 더 읽을지 말지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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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8-2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코폴로에서 펴낸 책들.... 작가 이름이나 작품만 보면 흥미 돋는데... 정작 읽어보면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제 생각도 좀 잘 안 읽혀서 그런 거 같아요.. ㅠㅠ

나오키상 수상작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보다 더 별로 아닌가요? ㅋㅋ 전 나오키상 수상작에는 더 손이 안 가더라고요.... 음.

Falstaff 2026-08-21 16:10   좋아요 0 | URL
마르코폴로... 거참, 포기하기엔 작가들이 워낙 빵빵해서 늘 찾아 읽다가 쓴맛 다시기만 하는데요, 참나...
아쿠타가와상이 나오키상보다 더 친근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내 경우입니다만, 수상작품의 분량이 나오키에 비해 월등하게 짧아서 얼른 해치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ㅋㅋㅋ

blanca 2026-08-2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병을 한다,는 말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요. 일제 시대 제국주의자들 시선으로 본 당시 상황 묘사 같은 거 저는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 즐겨 읽는 편인데도 이런 부분이 저와 안 맞는다 싶으면 안 읽혀요.

Falstaff 2026-08-21 16:12   좋아요 0 | URL
일본 정부는 아예 근대사를 잘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특히 자국을 전범이 아니라 원폭 희생자라는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이런 일도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현대 일본 소설 찾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ㅎㅎ

케이 2026-08-21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수 년 전 동인천에 러시아 해군들이 쏘다닌 적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였어요. 대체 왜 쟤네들이 동인천 일대를 쏘다니는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글에서 말씀하신 일본과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우리나라 서해에서 싸웠고 그때 전사한 러시아 유명 군인 추모행사가 있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 알았답니다. 남의 나라 앞바다에서 그러고 둘이 싸웠다는 것을. 정말 굴욕이죠.
저는 왜인지 살아있는 일본 작가의 소설은 대학 때 조금 읽고 전혀 읽고 있지 않습니다. ㅋㅋㅋ 그냥 정서가 안 맞는 것 같아요. 벚꽃을 보며 전사한 군인을 생각하는 장면 정말 일본 사람이 쓴 소설답네요
벚꽃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고 끝까지 가보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집착과 그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확대 재생산 강화하며 10대 시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그냥 일본 문화 전반의 특징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로세아니놈들이나 일본놈들이나 악랄하기는 똑같았겠죠. 언젠가 저희 외할머니가 625때 러시아 군인들이 동네에 들이닥쳐서 벌인 악행을 얘기해 주신 적이 있었답니다. 동네 젊은 여자들이란 여자들은 전부다 강간하고 다녔다고. (러시아 군인들을 로세아니놈들이라고 불렀던 것도 저희 외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것) 다시 생각해도 정말 불행했네요.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
마지막으로 읽으실 일본 소설이 뭐일지 기대됩니다.
늦여름 평안하세요.

Falstaff 2026-08-21 16:20   좋아요 1 | URL
전쟁이라는 폭력이 그렇게 만든 거 같습니다. 자기한테 폭력을 쓸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면 인간이라는 종은 그걸 무비판적으로, 무한정 써버리려 한다잖아요. 아휴, 전쟁은 정말 없어야 하는데요....
저번에 일본 소설 추천을 몇 권 받아서, 그것 까지는 읽어본 후에 결정하려 합니다.
9월이 머지 않았네요. 늘 건강하세요.
 
감성 여행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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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영국 소설. 내가 왜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영국 소설을 읽었느냐 하면,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런스 스턴이기 때문이었다. 18세기의 한복판 1759년에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이하 “트리스트럼 섄디”로 씀)>. 하긴 50년 전에 벌써 다니엘 디포와 조너선 스위프트가 각각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써서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계만방에 고한 적이 있었으니 <트리스트럼 섄디>가 나온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 있었겠다.

  <트리스트럼 섄디>와 <감성 여행> 두 권으로 짐작하건대, 로런스 스턴은 전형적인 희극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독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희극이 아니라, 물론 <트리스트럼 섄디>를 읽은 후의 감상이지만, 대단히 독특한 어법으로 무장한 희극 작가, 그래서 18세기 중엽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이것 참, 로런스 스턴이 정말 포스트 모던하지 않은가, 혀를 차게 됐더란 것. 그런 장면 하나만 소개한다.


  을유문화사가 찍은 을유세계문학전집 51권,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의 제1권, 제12장은 작가 로런스 스턴의 실재 친구를 모델로 한 인물, 유지니어스의 훈계, 채무를 오래 이행하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에 인생 훅 가는 수가 있다는 설득을 귓등으로 듣다가, 드디어 채무자들의 기습 공격을 받아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 교구 목사 요릭 이야기이다. 스턴은 이 목사님 요릭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대리석 묘비명을 흉내 낸 가로로 긴 직사각형 안에 “애재哀哉라, 가여운 요릭!”이라 썼고, 이어지는 두 페이지를 아무런 글자 없이 그냥 검은 색으로 덮어 씌워 버렸다.

  그런데 도박을 즐긴 죄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해 죽은 목사의 이름이 ‘요릭’?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 그 요릭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5막에 나오는 전직 덴마크 궁정 광대이자 땅에서 사토장이들이 파낸 해골 바가지로 등장해 햄릿의 대사 “아아 나의 가여운 요릭! 나는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한 마디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해골 바가지가 된 인물. 아니, 해골 바가지. <트리스트럼 섄디>의 요릭이 <헴릿>의 요릭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요릭이라는 성姓이 흔한 이름이 아니라 독자는 저절로 덴마크 궁정 광대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멈출 수 없을 터. 근데 이 해골 바가지 이야기가 너무 긴 거 같지? 다 이유가 있다. 로런스 스턴이 <트리스트럼 섄디>를 쓰고 9년이 지나 발표한 또다른 희극 소설 <감성 여행>에서 이 요릭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딱 한 번이기는 하지만 연극 역사에서 T.S. 엘리엇이 주장한 “객관적 상관물”의 대표적이고 고전적 예시가 <트리스트럼 섄디>의 한 등장인물로, 객관적 상관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조연으로 나왔다가, <감성 여행>에 다시 출연하는 거다.

  이걸 적당하게 섞기 위하여 셔츠 여섯 벌과 검은색 실크 바지 한 벌만 트렁크에 넣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요릭은 트리스트럼 섄디의 아버지인 월터 섄디의 친구이며, 당연히 트리스트럼과도 스스럼없는 사이로 설정했다. <감성 여행>에서 요릭의 직업은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건 <트리스트럼 섄디>처럼 교구 목사는 아니라는 것.


  하여간 화자이면서 주인공인 ‘나’ 요릭이 불과, 그저 21마일 떨어진 도버행 역마차에 오르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다음날 정기선을 타고 해협을 건너 칼레에 도착, 본격적인 프랑스 여행을 시작하는데, 첫 장면, 그러니까 영국인 요릭이 프랑스 땅 칼레에 도착해 처음 눈에 띈 사람이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승. 그러나 수도승이기도 하고 일흔 살은 되어 보이는 걸승乞僧, 빌어먹는 거지 중이기도 하다. 그 중을 보면서 요릭은 단단히 결심한다. 단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흠. 그러면 영국 국교 목사라고 해도 믿을 만하긴 하네.

  이 프란치스코파 걸승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과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로런스 스턴 또는 요릭은 말한다. 한가한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으니, 첫번째가 육신이 병약해 좋은 공기와 물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둘째가 정신이 우매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감성적 여행객”들은 필요에 의해 길을 나서는 것이고 때로 긴요한 사정이 있어서. 솔직히 무슨 말인지,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 필요에 의해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을 왜 “감성적”이라고 부르는 지. 그냥 대충 좋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막 던지다가 “감성적”이라는 말이 그럴 듯해서 “감성적 여행객”이라 한 거 같다. 하긴 아무러면 어떠냐.


  하여간 프랑스 땅 칼레에 와서 첫날을 여관에서 묵었다. 원래 군인이었다가 45세까지 부대낌만 많은 군대생활을 정리하고 수도원에서 안식의 성소를 찾은 프란치스코회 소속 걸승, 여관 주인 데상 씨, 여관에서 만난 틀림없이 좋은 배경을 지닌 것 같은 26세 정도로 보이는 여성, 지난번에 칼레에 들렀을 때 친해졌지만 3개월 전에 죽어 6마일 떨어진 성당 부속묘지에 매장된 로렌조 신부 등등의 이야기를 희극 소설의 재치로 써내려 간다.

  이 가운데 아무래도 가장 재미있는 건, 칼레의 여관에 숙소가 모자라 좁은 침대가 둘 놓인 요릭의 방에서 26세의 귀족(처럼 보이는, 진짜로 백작의 조카로 밝혀지는) 여성과 이이의 하녀, 이렇게 세 명이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일 터인데, 21세기에 사는 현대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뭐 그리 읽을 만하지 않다. 흥미롭지도 못하고.

  요릭의 여행은 계속되어 아미앵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때마침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7년 전쟁을 하고 있던 터. 이를 이제야 알아챈 로런스 스턴은 허겁지겁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프랑스 백작과 요릭을 만나게 해놓고, 백작으로 하여금 프랑스의 어떤 곳이라도 갈 수 있으며, 그곳에 해당 관청과 모든 공무원들은 요릭을 위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하라는 특별 여권을 장만해준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이제 일개 여행객인 요릭도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귀족과 사교계에 진입하게 됐고, 그의 현란한 입놀림으로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한 번 적당히 접대하고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파리를 떠날 때까지 지극한 관심을 쏟아붓게 된다.


  이럭저럭 재미있을 거 같지? 그러나 정말로 책을 읽으려 마음먹었다면, 다시 한 번 이 책이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시기 앙망함. 비극이라면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슬픈 건 모든 사람이 슬픈 거니까 여전히 셰익스피어도 읽고, 소포클레스도 읽는 것이지만, 희극은 조금 다르다. 희극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웃음 코드가 각각 개별적이다. 서양 사람들이 웃고 즐길 내용에서 동양 사람들이 눈에서 소금물을 짜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이런 현상을 빗대 일찍이 톨스토이 백작이 이렇게 말한 거다.

  “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참 가지가지로 불행하다.”

  맞다. 내가 억지로 가져다 붙인 말이다. 하여간 희극 소설이라고 해서 18세기 영국인이 아닌 21세기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키득거릴 수 있다는 보장이 1도 없으니 그저 주의하기 바란다는 정도. 내 독후감 말고 다른 사람들이 쓴 책 읽은 소감을 다양하게 구경한 다음에 책을 선택해도 결코 늦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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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8-2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읽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흥미가 확 떨어지네요.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8-20 21:28   좋아요 0 | URL
<트리스트럼 섄디...> 읽었으면 그냥 그걸로 만족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디 아워스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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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에 신시내티에서 난 용띠 아저씨 마이클 커닝햄은 캘리포니아 L.A 인근에서 자라 캘리포니아 최고 명문 스탠포드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글 좀 쓰는 사람들한테는 무지 유명한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 석사 학위를 얻었다. 여기 동문 가운데 누가 있느냐고? 존 치버, 필립 로스, 그리고 경애해 마지않는 매릴린 로빈슨 등등. 이 명단 가운데 마이클 커닝햄의 이름도 당당하게 올라 있다. 이이는 졸업 후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약하고 있고, 나이가 많아 아직도 하고 있는 줄은 모르겠는데 예일 대학 문예창작 수석 강사를 하고 있든지, 했든지 그렇다. 예일 대학이 미국 코네티컷, 뉴욕하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디 아워스>에서 클러리서 본, 옛 남친이자 현 남사친 로버트로부터 ‘델러웨이 부인’이라고 불리는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 뉴욕에서 산다. 즉 작품의 1/3 이상이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다음으로, <디 아워스>에는 세 명의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장유유서라 생년이 빠른 순서로 소개하자면 제일 언니가 버지니아 스티븐 울프, 가운데가 로라 지엘스키 브라운이고 막내가 클러리서 본. 아다시피 버지니아 울프는 동 시대의 이름난 귀족 출신 여성 작가 비타 섹빌웨스트와의 동성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가운데 로라 브라운은,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 지 전혀 모른 채 태평양 전투에 참전한 용사이자 세 살 어린, 친동생의 학교 동기동창 댄 브라운하고 결혼해, 맏아들 리치를 낳고 1949년 현재 둘째 아이를 임신중인데 훗날 딸을 낳을 예정이다. 막내 클러리서도 처음엔 자신이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열여덟 살 시절에 열아홉 먹은 리처드와 처음 경험을 했는지 그냥 시늉만 하다가 끝났는지 조금 헛갈린다. 확실한 건 훗날 틀림없이 남자하고 잤고, 그래서 임신을 했으며, 아빠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르면서 살아갈 딸 줄리아를 출산한다. 확실하게 첫사랑인 리처드는 자기 제자들과 바람 피우기 여념이 없을(예정인) 올리버와 불 같은 연애를 하면서 곁을 떠나버리고, 이젠 샐리와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함께 살고 있다. 클러리서의 딸 줄리아 역시 아무거나 예쁜 옷만 입으면 완벽하게 어울릴 일생에 몇 년 안 되는 짧은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지만 만날 남성용 스웨터에 가죽 부츠만 신고 다니면서 엄마 클러리서가 질색을 하는 나이 든 여자와 연애중이다.

  작은 언니 브라운 부인의 자녀도 그러냐고? 흠. 이거 중요한 힌트인데, 좋다 알려드리지. 1949년에 엄마 배 속에 들어 있던 딸은 다 커서 음주운전 차에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즉사하고, 훗날 간경화로 생을 마감할 남편의 1949년 생일날 엄마와 함께 아빠한테 줄 케이크를 굽던 리치는 동성애자로 큰다. 당연히 로라 브라운 역시 엉겁결에 옆집 여자와 키스를 하는 바람에 자신 역시 동성애 인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에 집착하던 것처럼 극도의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시간적 공간인 199X년까지 멀쩡하게, 건강하게 살아 있다. 성격이 무진장 까다롭다고 소문이 나서 그렇지.


  이 작품 속에 동성애자 밀도가 대단히 높다. 나도 책을 다 읽고 독후감을 쓰기 위하여 위키피디아에서 커닝햄을 검색해볼 때까지는 몰랐다. 커닝햄이 동성애자이고 동성 결혼도 했단다. 위키에는 배우자의 이름도 나오지만 구태여 그것까지 따 올 필요는 없겠다. 하기는 앞부분에서 리처드가 게이라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199X년 6월의 어느 날. 이 날은 리처드가 커루더스 상을 받는 날이다. 오후 여덟 시에. 커루더스 상이 무엇인가 하면, 주로 시나 소설에 뛰어난 업적을 이룬 시인, 작가에게 주는 상으로 알년에 한 번, 뭐 이런 식으로 정기적으로 시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을 봐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중요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 심사해서 주는 대단한 상이다. 워낙 가끔 시상하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별로,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조금 그렇기는 해도.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리처드의 옛 애인이자 여사친이며 절친이기도 한 델러웨이 부인, 클러리서 본은 주변 친지들을 모시고 오후 다섯 시에 그럴 듯한 파티를 열 예정이다. 당연히 파티 전문 케이터링 업체에 의뢰하여 늦어도 네시 반에는 식음료가 완비될 것이고, 딱 하나 미진한 것이 있었으니 1925년에 진짜 델러웨이 부인이 그러했듯이 꽃이 풍족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클러리서가 직접 뉴욕 시내로 나가 단골 꽃가게에 가 장미를 한 아름 사오는데, 길에서 만난 (초청장을 보내지 않은)여러 동성애 남녀이자 나름대로 문학, 영화계에서 어깨에 힘 좀 준다는 사람에게 오늘 파티에 오라고 권했던 참이다.

  이 사람들을 초청하면서 이들과 리처드의 관계를 연상하는 대목에 접어들면, 리처드, 놀랍게도 동성애자에게 냉소적이다. 샐리와 근 20년간 동거하는 클러리사한테 이런 오랜 동거는 “클러리서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여자 전체를 욕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기억. 근육질의 남자들끼리 하는 사랑과 실연을 다룬 로맨스 소설을 써서 역겨울 만큼 많은 돈을 번 게이 작가 월터 하디를 향해서는 “어린 소년들을 유혹하는 남자들보다 영원히 젊은이로 남으려고 애쓰는 게이들이 세상에 더 해롭다”고 말했다. 월터가 46세로 제법 나이 들었지만 여태 캡을 쓰고 나이키를 신는 만년 소년 행세를 하는 게 꼴 보기 싫었겠지. 근데 알고 보면 리처드가 천성적으로 악담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를 닮아서. 딸뿐 아니라 아들한테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거든. 그래서 리처드도 게이가 됐나? 그건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동성애가 유전 형질은 아닌 거 같은데.


  여기서 맏언니 버지니아 울프의 시계는 1923년. 바야흐로 오랜 침묵 끝에 야심차게 <델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이다. 물론 곧 완성해 발표할 것이고, 평단의 사나운 손톱에 너덜너덜해질 예정이지만 대중들도 이이의 후속작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작품은 런던의 집이 아니라 버지니아의 엄마가 죽은 어린 시절에 발병한 조현병과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살던 런던 교외 지역에서 쓰기 시작한다. 런던까지 기차 타고 당시 속도로 30분 거리. 책의 프롤로그는 1941년에 외투 주머니에 큰 돌을 집어넣고 템즈 강으로 걸어 들어가 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울프의 무대는 하여간 1925년의 하루다.

  둘째 언니 로라 브라운은 <델러웨이 부인>을 열심히 읽고 있는 1949년 남편의 생일날이다. 지난 밤에도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느라 아침에 남편 미역국도 끓여주지 못해서 화가 나 있었다. 그래 아들 리치하고 둘이서 생일 케이크도 굽고 얼떨결에 부인병에 걸린 옆집 여자와 입술을 마주치기도 한 이상한 날, 그래도 <델러웨이 부인>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버틸 수 없게 되자 오후에 차를 몰고 변두리에 있는 호텔에 들어가 두 시간 여 동안 읽어 버린다. 집에 돌아와 성공적으로 자잘한 생일 밥상과 생일축하를 하고 드디어 밤이 몰려오자 홀로 욕실에 들어 약장에 든 수면제 한 통을 손에 쥐고 한참 고민에 빠졌던 브라운 부인.

  막내는 별명이 델러웨이 부인이니까 브라운 부인보다 더 울프 부인과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니다. 나름대로 똑 부러지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습도 할 줄 아는 현명한 52세 여성이다.

  뭐 다른 소설책 아니면 영화로 <디 아워스>를 보셔서 스토리야 더 잘 아시겠지만, 이 작품을 보다 더 버지니아 울프와 연결시켜주는 것은, 내가 읽기에, 마이클 커닝햄이 구사하는 문장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내가 읽기에 울프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나게 쓰기 위하여 커닝햄도 무지하게 연습을 했을 것 같다. 물론 나야 울프나 커닝햄이나 다 번역문으로 읽어서 단언할 수도 없고, 게다가 <델러웨이 부인>을 읽은 지도 꽤 오래 전이라 스토리마저 가물가물한데 문장까지 확실하게 그렇다, 주장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래도 하여간 문장을 읽은 느낌이 비슷하다고 하고 싶다. 나 말고 또 이렇게 읽은 분이 있나 싶어서 책가게 독자서평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아마 내 느낌도 분명히 헛다리겠다. 에휴, 얼마나 더 읽어야, 언제나 눈이 띄어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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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의 말 -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다카야마 하네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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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달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품 세 편을 읽었다. <헌치 백> 독후감 초두에 밝혔듯이 일본 현대 소설을 좀 읽어볼까 싶어 작품을 고르는데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품 몇 편을 무작위로 선택한 거였다. 아쿠타가와 상은 ‘신인’이 아니라 ‘신진’ 작가들의 중단편 소설 중에서 당선작을 골라 상품으로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회중시계와 상금 백만 엔을 준다고 한다. “신진” 작가라는 점이 괜찮거나 좋은 일본 “현대” 소설을 선택할 수 있는 기재일 거 같아서 일단 세 편을 골랐는데, 결론만 말하면 나와 그리 맞지 않았다는 것. 책, 작가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다카야마 하네코는 1975년생 소설가. 2020년에 <슈리의 말>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으니 당시 나이 45세. 얼핏 ‘신진’이라는 수식이 어울릴 것 같지 않겠지만, 이이가 소설을 서른 살이 넘어 쓰기 시작했고 주로 SF 장르에 종사한 관계로 순소설로는 말 그대로 신진이라 할 수 있었겠다. 도야마 현에서 나서 도쿄에 있는 다마 미술대학 회화과를 다니며 일본화를 전공했다 한다. 이후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그 방면으로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30대가 되어 글 쓰는 일에 본격적으로 마음을 두어 34~35세에 성인 대상 소설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이후 SF 소설을 주종목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으며 성취를 이루다가, 한 출판사 편집자가 “현실 속 장소를 무대로 해서” 소설을 써보자고 제안해 쓴 것이 <슈리의 말>이란다.

  <슈리의 말>은 애초 독립국 “류큐”였다가 메이지 시대 때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를 무대로 하는 소설인데, 굳이 오키나와를 선택한 이유는 이이가 일본 프로야구, 특히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열렬한 팬인데 이 팀의 동계훈련 장소가 오키나와라서 거기 구경 갔다가 마음에 들어 소설로 쓰게 된 거란다. 우리나라의 삼성 라이온스도 전지훈련을 오키나와에서 하는 바람에 친숙하다고, 서문 격인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에 썼다.


  오키나와는 말 그대로 비운의 땅, 비운의 섬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군국주의와 일왕에 대한 충성, 일종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입은 섬 주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종전 후에도 무려 30년 동안 미군정의 지배를 받는 등 ‘비운’이라는 단어 하나 가지고는 설명하기 힘든 지역이다. 메도루마 슌의 소설집 《물방울》에 오키나와의 참상과 지형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다른 작품의 독후감을 쓰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실례이지만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작품이란 측면에 국한해 말하자면 《물방울》이 <슈리의 말>보다는 몇 길 위쪽이니 참고하시면 좋겠다.

  제목에 나온 슈리首里는 오키나와 시내의 한 행정구역. 태평양전쟁 당시 최대 교전 지역으로 도시가 거의 초토화되어 전쟁 이후에 옛 정취를 살려 다시 세우다시피 한 곳이다. 워낙 태풍이 잦고 고온 다습한 지역이라 소박한 성城과 건축물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가운데 미나코가와라는 곳은 전후 외인주택 지구였다가 지금은 내국인과 아시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숙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일본 본토 출신의 노년 여성 요리順 씨의 자그마한 콘크리트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민속학에 매진한 시민 연구자로 나이가 든 상태에서 미나코가와로 이주해 이 건물 1층에 사설 오키나와 자료관을 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을 겁나게 외로운 사람들이다. 요리 씨 역시 마찬가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평화운동, 자연운동에 큰 관심을 쏟는 바람에 가족과 제법 심한 거리감이 있었다. 심지어 자연운동을 하면서는 집을 나가 산 속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는데, 때마침 일본에 이런 공동체가 종종 테러를 저지르는 바람에 주민들과 매우 서걱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가 좀 들어 오키나와에 정착해 섬 곳곳을 다니며, 이걸 필드 워크라고 표현하는 모양인데, 유물이나 유품, 고대인과 전쟁 당시 죽은 이들의 뼛조각 같은 것들을 모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자료를 작성했다.

  나이가 더 드니, 본토에 사는 딸 미치途도 엄마 혼자 살게 두기 거시기해서 섬으로 이주해 함께 살며 시내에 작은 치과병원을 개원했다. 딸도 두 아들이 다 커서 이제 자기들의 가정을 꾸린 데다가 과부가 된 상태라 뒤돌아볼 것이 없었다.


  이 자료관에 무보수 자원봉사자 비슷한 신분의 여성 미나코未名子가 거의 날마다 와서 자료 정리에 힘을 보탰으니,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십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낯가림이 심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에 가는 날보다 이곳에서 보낸 날들이 더 많았던 여성. 한참 힘든 시기였던 10대 중반부터 요리 씨에게 흠뻑 매료된 소녀였다. 무엇보다 여태 자기한테 요리 씨만큼 한 사물이나 사건에 관해, 사는 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진심을 다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속마음과 달리 천성이 겉으로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다고. 하여간 전에는 이 섬의 역사와 문화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미나코는 요리 씨의 영향을 받아 자료를 정리해가면서 대단한 관심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요리 씨는 이미 노년. 자료 관리 역시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해, 예전 도서관 목록함이 그랬듯이 분류 카드를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여 한의원의 약 서랍 비슷하게 생긴 자료함에 보관해 왔다. 미나코는 해당 유물, 유품을 카드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SD 카드에 담아 보관하기에 이른다.

  이 자료관은 관람 요금을 받지 않는다. 사실 요금을 받을 만큼 자료가 충실한 것도 아니다. 전쟁 중에 워낙 가혹한 폭격을 맞아 초토화되어 제대로 남아 있는 것도 없고, 학술적으로 민속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전문성 역시 자신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을 요리 씨 스스로도 잘 알아 그렇게 조치한 것이겠지. 요리 씨가 건물주라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겠고. 그렇다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라서, 완전히 노쇠한 요리 씨가 자료관을 운영하지 못할 상태가 되면 저절로 폐쇄해야 하는 처지이다. 마니코가 비록 아버지한테 작은 단독주택 한 채를 물려 받기는 했지만 수입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 당연히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과 TV 홈 쇼핑이 득세하면서 미나코가 다니던 업체가 문을 닫아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가 몇 달 전에 취직을 했는데, 이 직업이 조금 묘하다. 다카야마 하네코가 SF 작가라서 가능했을 듯한 직업.

  세상 곳곳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이 가운데 유독 일본어를 배웠으며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상일지언정 대면해 대화하고 싶은 소수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작품에서는 문독자問讀者 라고 지칭)을 상대로 퀴즈를 내는 일을 한다. 작품 속에는 세 명의 고객이 등장한다. 반다, 폴라, 그리고 기바노. 반다는 조국에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천재로 지금 지구를 맴도는 인공위성에 ‘혼자’ 탑승하고 있는 우주인. 폴라는 가족과 떨어져 남극의 빙하 밑 까마득한 해저에서 일하는 잠수정 승무원, 기바노는 전쟁 지역의 지하 셸터에서 생존해 있는 사람. 전부 극도로 외로운 이들이다. 그러나 모두 괜찮은 사람들.


  미나코의 삶이 이렇다.

  이 시절, 어린 시절부터 미나코에게 의지가 되어주던 요리 씨는 급격히 늙어가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확실하고, 건물 3층의 수상쩍은 장소, 괴이한 공간에서 혼자 근무하는 미나코도 지역 사람들한테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시기에, 미나코가 사는 슈리의 단독주택에 커다란 털 뭉치 비슷한 짐승이 한 마리 들어와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미나코는 문독자 가운데 한 명이 기바노로부터 그게 말이란 것을 알아내고, 말 중에서도 오키나와 토종 말로, 일반 경주마나 마차 끄는 말과 완전히 다른 독특한 말이란 것도 알아낸다. 그리하여 작품의 제목이 <슈리의 말>이 되는데, 정말 이런 말이 있기는 하겠지만 하여간 뭐 좀 그렇다. 말이나 등장인물이나. 오키나와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러하고. 사람도 외롭고, 말도 외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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