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원 - 162회 나오키상 수상작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가와고에 소이치 지음, 김진아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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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8년에 일본 가고시마 긴코초에서 태어난 가와고에 소이치는 오사카에서 자라 교토의 류코쿠대학 문학부 역사학과를 다니다 때려치웠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다니다 중퇴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서 대학 중퇴는 좀 드문 경우라고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이 대학 중퇴가 왜 드문 일인지는 말해주지 않아 이유는 모르겠다. 뭐 그런가 보다. 이후 밴드 활동도 하고, 우편 주문 회사에 다니기도 하면서 소설을 썼다는데 <열원熱源 Heat Source>로 2019년에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나오키 상을 받았다.

  나오키 상. 그게 이번에 가와고에를 고른 이유다. 일본 현대소설을 좀 읽고 싶어 했다. 근데 아는 작가와 작품이 없어서, 일본의 현대 문학도 틀림없이 주목할 만한 작가를 보유하고 있을 터인데 널리 알려져 내가 읽은 재미있는 소설책이 없었다는 게 늘, 조금 불만이었다. 일본 작품을 읽어 보기로 작정을 하고, 널리 알려진 일본의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책 세 권을 읽었다. <헌치 백>, <도롱뇽의 49재> 그리고 <슈리의 말>. 세 권 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그래서 나도 성질이 나서, 아쿠타가와 상 시상식과 같은 날, 같은 건물의 위층에서 시상한다는 일본의 또다른 유명 문학상인 나오키 상을 받은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출간 기준으로) 신작을 골라 읽은 것이 <열원>이다. 출판사 마르코폴로에서 2026년 6월에 초판을 찍었다. 아쿠타가와 상은 주로 순문학에서 수상작을 선정하고, 나오키 상은 문학성과 더불어 대중성도 감안한다고 들었다. 뭐 그런가 보다.


  그런데 말입니다, 출판사 마르코폴로가 낸 번역서하고 나는 도무지 합이 맞지 않는 거 같다. 최근에 읽은 마르코폴로 책이 도메니코 스타르노네, 아베 코보, 크리스타 볼프, 엘사 모란테 등인데, 어째 즐겁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자들이 대개 이제 문학 서적 번역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그들의 노고에 비해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고 할까? 오해하지 마시라. 그분들의 외국어 실력에 관해 논하자는 말이 아니라, 번역을 해 우리말로 만든 문장이 그리 매끈하지 않았다는 정도를 말하는 중이다. 이 책에서도? 아쉽지만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서장序章은 1945년 8월 15일. 어제 일왕이 항복선언을 해서 전쟁이 끝났다. 소비에트 군은 그럼에도 아직 일본군이 사할린 섬 남쪽을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해 상륙전을 벌이기로 작정한다. 소비에트 군? 공산주의 군대로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서 파시스트 나치들을 섬멸하고 곧바로 동쪽으로 이동해 파시스트 일본군을 뿌리 뽑으려 대륙간횡단열차를 타고 집결해 타타르 해협을 앞에 둔 소베츠카야가반 항구의 부두. 해협 건너 사할린 섬이 아련하게 보일 듯하다. 중대장 소로킨 대위가 중대원 앞에 나서서 연설한다. 그 초두.


  “한 가지 전달 사항이 있다. 어제 14일, 일본이 항복했다. 오늘 정오에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라디오 방송으로 국민에게 이 소식을 알리실 예정이다.” (p.14)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한 장 넘겨 새로운 페이지의 첫 줄에 쓰여 있어서 나는 앞 페이지에서 갑자기 장면전환을 해 일본군 진영인 줄 알았다. 명색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시행하는 스탈린 치하의 붉은 혁명 군대 중대장이, 그것도 무려 몇 년 동안 레닌그라드에서 쥐와 개와 사람의 시신을 먹어가며 파시스트 나치들을 버텨내고 드디어 베를린을 함락시킨 혁명 군대가 “오늘 정오에 황제 폐하께서 소식을 알리실 예정”이라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원작의 작가 가와고에 소이치는 일본 태생의 일본인이니까 자기네 왕한테 존대를 바치는 습관 때문에 의례 그렇게 썼더라도, 비록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걸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정말로 소비에트 붉은 군대의 중대장이 적국의 왕한테 했을 법한 단어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일본 왕 이름이 스탈린이기라도 한 거야?

  그리고 일본에서만 쓰는 단어가 있다. 이걸 적당한 우리말로 번역해야 하건만, 일본식 한자어가 따라붙은 걸 그대로 사용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없는 단어가 곳곳에 짱박혀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네이버 국어사전을 아예 열어놓고 읽는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역자는 뭐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럼 교정교열을 책임지는 자들은 뭐한 거임? 메모를 해 놓지 않아 딱 어떤 단어라고 예를 들 수 없어서 증거를 내밀라고 하면 그건 못하겠다.


  작가 가와고에 소이치의 역사관도 마음에 안 든다.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폴란드인 민족학자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가, 이 인물은 황제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15년 유형에 10년 위수 판결을 받아 사할린에서 죽을 고생을 한 실제 인물인데, 도쿄에 출장을 와 도쿄 인근 와세다의 유명한 벚꽃 구경을 갔다. 난만한 벚꽃의 흐드러진 낙화. 상상이 가시지? 그걸 보더니 1905년 러일 전쟁 피해자를 연상한다. 그리하여 폴란드 혁명가가 동반한 일본인 하세가와한테 말하기를:


  “지난 전쟁 때 9만 명에 가까운 일본 병사가 죽었네. 전쟁으로 인한 부상자는 15만 명이 넘지. 그자들은 분명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와 거기서 사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거야.” (p.385)


  염병을 한다.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기 위한 기초공사로 러시아의 손을 때게 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을 진짜 몰랐을까? 그것도 남의 나라 조선의 제물포 앞바다에서.

  함께 있던 하세가와도 한 마디 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거나 다쳤겠지. 하지만 전쟁터에서 스러진 러시아 병사들은 일본의 사쿠라를 모두 베어내고 강을 메워버리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p.385)


  이러니 내가 열폭을 하겠어, 안 하겠어? 만일 러시아가 일본한테 이겼으면 어땠을까? 1917~18년 러시아 혁명 후에 우리나라도 소비에트 연방에 자동 귀속될 수도 있었지 않을까? 그놈이 그놈이지 뭘.


  진짜 주인공은 야요마네쿠후. 사할린, 일본말로 가라후토 출신의 아이누 족이다. 그냥 아이누, 순록을 기르는 오로크, 개썰매를 타는 니쿠분 족 등 선주민들이 자기 땅의 개념 없이 모여 살던 섬이었다. 그러다 와진이라 칭하는 일본인들도 오고, 동쪽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죄수들을 유형보내 실질 지배를 하려 했던 러시아 사람들도 와서 살던 곳. 고아 야요마네쿠후는 큰아버지와 열두 살 연상의 사촌형이 키웠다. 진짜 자식보다 더 잘 해주는 것이 아이누의 당연한 습속. 아홉살 때 러시아-일본 조약으로 사할린이 러시아의 영토에 합병되자 홋카이도에서 살다가 마을이 연달아 콜레라, 두창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절반 너머 인구가 줄자 일본 여권을 내서 다시 사할린으로 넘어왔다.

  이 야요마네쿠후도 실제 인물이다. 나도 독후감 쓰기 위해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폴란드인 브로니스와프 피우수트스키와 그의 아이누 아내, 그리고 두 자손 모두 실재했던 인물인 걸 알고 아이고 깜짝이야, 했다는 것 아닌가 말이지. 야요마네쿠후는 세계최초로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하는 남극탐험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는데, 이게 왕립이나 국가에서 정식으로 지원하는 탐험대가 아니라 전직 일본군 위관 장교가 이끄는 사립 탐험대라서 썰매개 관리자 자격으로 다녀왔단다.

  작품 속에서는 어린 열다섯 살 시절에 동네에서 제일 예쁜 열일곱 살 아가씨 카사라스이한테 사랑고백하러 가는 친구 시시라토카와 함께 가 주었다가 자기가 먼저 고백하는 바람에 평생 시시라토카만 만났다 하면 주먹다짐을 하는 우정을 닦게 된다. 시시라토카는 모르겠고, 이들과 함께 삼총사를 이루는 열살의 명민한 소년 센토쿠 다로지 역시 실제 인물이다. 그러니 출연진의 절반 정도는 실제 인물로 봐도 좋다.

  책은 188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할린과 홋카이도에 살던 아이누의 삶과, 그들에 대한 문명의 지배 그리고 미래. 같은 의미에서 유럽인의 문명과 문화,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그들에게 지배당하는 나머지 인종의 삶과 미래 같은 걸 다루고 있다. 당연히 부처님 말씀이 아닐 수 없지만 색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취재를 통해 쓴 것 같아 생생한 편이다. 읽기 쉽게 진도도 팍팍 나가지만 뭐 그게 다다. 아이누 이야기를 하면서 기껏 그게 다다, 라 하고 마는 건 아이누 인들하고 척이 져 그런 게 아니고, 제일 앞에서 말했듯이 어째 나하고는 합이 맞지 않는 작품이라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들도 그렇고, 나오키 상을 받은 이 책도 마음에 안 들고. 나오키 상 받은 책 한 권만 더 읽어보고 일본 소설을 더 읽을지 말지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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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8-2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코폴로에서 펴낸 책들.... 작가 이름이나 작품만 보면 흥미 돋는데... 정작 읽어보면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제 생각도 좀 잘 안 읽혀서 그런 거 같아요.. ㅠㅠ

나오키상 수상작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보다 더 별로 아닌가요? ㅋㅋ 전 나오키상 수상작에는 더 손이 안 가더라고요.... 음.

Falstaff 2026-08-21 16:10   좋아요 0 | URL
마르코폴로... 거참, 포기하기엔 작가들이 워낙 빵빵해서 늘 찾아 읽다가 쓴맛 다시기만 하는데요, 참나...
아쿠타가와상이 나오키상보다 더 친근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물론 내 경우입니다만, 수상작품의 분량이 나오키에 비해 월등하게 짧아서 얼른 해치울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ㅋㅋㅋ

blanca 2026-08-2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병을 한다,는 말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요. 일제 시대 제국주의자들 시선으로 본 당시 상황 묘사 같은 거 저는 도저히 못 읽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 즐겨 읽는 편인데도 이런 부분이 저와 안 맞는다 싶으면 안 읽혀요.

Falstaff 2026-08-21 16:12   좋아요 0 | URL
일본 정부는 아예 근대사를 잘 가르치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특히 자국을 전범이 아니라 원폭 희생자라는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이런 일도 벌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드는 현대 일본 소설 찾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ㅎㅎ

케이 2026-08-21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수 년 전 동인천에 러시아 해군들이 쏘다닌 적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였어요. 대체 왜 쟤네들이 동인천 일대를 쏘다니는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글에서 말씀하신 일본과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우리나라 서해에서 싸웠고 그때 전사한 러시아 유명 군인 추모행사가 있어서 왔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 알았답니다. 남의 나라 앞바다에서 그러고 둘이 싸웠다는 것을. 정말 굴욕이죠.
저는 왜인지 살아있는 일본 작가의 소설은 대학 때 조금 읽고 전혀 읽고 있지 않습니다. ㅋㅋㅋ 그냥 정서가 안 맞는 것 같아요. 벚꽃을 보며 전사한 군인을 생각하는 장면 정말 일본 사람이 쓴 소설답네요
벚꽃을 보며 죽음을 생각하고 끝까지 가보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집착과 그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확대 재생산 강화하며 10대 시절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그냥 일본 문화 전반의 특징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로세아니놈들이나 일본놈들이나 악랄하기는 똑같았겠죠. 언젠가 저희 외할머니가 625때 러시아 군인들이 동네에 들이닥쳐서 벌인 악행을 얘기해 주신 적이 있었답니다. 동네 젊은 여자들이란 여자들은 전부다 강간하고 다녔다고. (러시아 군인들을 로세아니놈들이라고 불렀던 것도 저희 외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것) 다시 생각해도 정말 불행했네요. 그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
마지막으로 읽으실 일본 소설이 뭐일지 기대됩니다.
늦여름 평안하세요.

Falstaff 2026-08-21 16:20   좋아요 1 | URL
전쟁이라는 폭력이 그렇게 만든 거 같습니다. 자기한테 폭력을 쓸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면 인간이라는 종은 그걸 무비판적으로, 무한정 써버리려 한다잖아요. 아휴, 전쟁은 정말 없어야 하는데요....
저번에 일본 소설 추천을 몇 권 받아서, 그것 까지는 읽어본 후에 결정하려 합니다.
9월이 머지 않았네요.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