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여행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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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영국 소설. 내가 왜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영국 소설을 읽었느냐 하면, 작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런스 스턴이기 때문이었다. 18세기의 한복판 1759년에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 (이하 “트리스트럼 섄디”로 씀)>. 하긴 50년 전에 벌써 다니엘 디포와 조너선 스위프트가 각각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를 써서 영국 소설의 전통을 세계만방에 고한 적이 있었으니 <트리스트럼 섄디>가 나온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 있었겠다.

  <트리스트럼 섄디>와 <감성 여행> 두 권으로 짐작하건대, 로런스 스턴은 전형적인 희극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독자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희극이 아니라, 물론 <트리스트럼 섄디>를 읽은 후의 감상이지만, 대단히 독특한 어법으로 무장한 희극 작가, 그래서 18세기 중엽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이것 참, 로런스 스턴이 정말 포스트 모던하지 않은가, 혀를 차게 됐더란 것. 그런 장면 하나만 소개한다.


  을유문화사가 찍은 을유세계문학전집 51권, <신사 트리스트럼 섄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의 제1권, 제12장은 작가 로런스 스턴의 실재 친구를 모델로 한 인물, 유지니어스의 훈계, 채무를 오래 이행하지 않다가 어느 한 순간에 인생 훅 가는 수가 있다는 설득을 귓등으로 듣다가, 드디어 채무자들의 기습 공격을 받아 그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 교구 목사 요릭 이야기이다. 스턴은 이 목사님 요릭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대리석 묘비명을 흉내 낸 가로로 긴 직사각형 안에 “애재哀哉라, 가여운 요릭!”이라 썼고, 이어지는 두 페이지를 아무런 글자 없이 그냥 검은 색으로 덮어 씌워 버렸다.

  그런데 도박을 즐긴 죄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해 죽은 목사의 이름이 ‘요릭’? 그렇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 그 요릭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5막에 나오는 전직 덴마크 궁정 광대이자 땅에서 사토장이들이 파낸 해골 바가지로 등장해 햄릿의 대사 “아아 나의 가여운 요릭! 나는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한 마디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해골 바가지가 된 인물. 아니, 해골 바가지. <트리스트럼 섄디>의 요릭이 <헴릿>의 요릭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요릭이라는 성姓이 흔한 이름이 아니라 독자는 저절로 덴마크 궁정 광대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멈출 수 없을 터. 근데 이 해골 바가지 이야기가 너무 긴 거 같지? 다 이유가 있다. 로런스 스턴이 <트리스트럼 섄디>를 쓰고 9년이 지나 발표한 또다른 희극 소설 <감성 여행>에서 이 요릭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딱 한 번이기는 하지만 연극 역사에서 T.S. 엘리엇이 주장한 “객관적 상관물”의 대표적이고 고전적 예시가 <트리스트럼 섄디>의 한 등장인물로, 객관적 상관물과는 전혀 관계없는 조연으로 나왔다가, <감성 여행>에 다시 출연하는 거다.

  이걸 적당하게 섞기 위하여 셔츠 여섯 벌과 검은색 실크 바지 한 벌만 트렁크에 넣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 요릭은 트리스트럼 섄디의 아버지인 월터 섄디의 친구이며, 당연히 트리스트럼과도 스스럼없는 사이로 설정했다. <감성 여행>에서 요릭의 직업은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건 <트리스트럼 섄디>처럼 교구 목사는 아니라는 것.


  하여간 화자이면서 주인공인 ‘나’ 요릭이 불과, 그저 21마일 떨어진 도버행 역마차에 오르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다음날 정기선을 타고 해협을 건너 칼레에 도착, 본격적인 프랑스 여행을 시작하는데, 첫 장면, 그러니까 영국인 요릭이 프랑스 땅 칼레에 도착해 처음 눈에 띈 사람이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승. 그러나 수도승이기도 하고 일흔 살은 되어 보이는 걸승乞僧, 빌어먹는 거지 중이기도 하다. 그 중을 보면서 요릭은 단단히 결심한다. 단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흠. 그러면 영국 국교 목사라고 해도 믿을 만하긴 하네.

  이 프란치스코파 걸승을 시작으로 프랑스의 곳곳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과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로런스 스턴 또는 요릭은 말한다. 한가한 사람들이 외국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으니, 첫번째가 육신이 병약해 좋은 공기와 물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둘째가 정신이 우매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감성적 여행객”들은 필요에 의해 길을 나서는 것이고 때로 긴요한 사정이 있어서. 솔직히 무슨 말인지, 어떤 뜻인지 모르겠다. 필요에 의해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을 왜 “감성적”이라고 부르는 지. 그냥 대충 좋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막 던지다가 “감성적”이라는 말이 그럴 듯해서 “감성적 여행객”이라 한 거 같다. 하긴 아무러면 어떠냐.


  하여간 프랑스 땅 칼레에 와서 첫날을 여관에서 묵었다. 원래 군인이었다가 45세까지 부대낌만 많은 군대생활을 정리하고 수도원에서 안식의 성소를 찾은 프란치스코회 소속 걸승, 여관 주인 데상 씨, 여관에서 만난 틀림없이 좋은 배경을 지닌 것 같은 26세 정도로 보이는 여성, 지난번에 칼레에 들렀을 때 친해졌지만 3개월 전에 죽어 6마일 떨어진 성당 부속묘지에 매장된 로렌조 신부 등등의 이야기를 희극 소설의 재치로 써내려 간다.

  이 가운데 아무래도 가장 재미있는 건, 칼레의 여관에 숙소가 모자라 좁은 침대가 둘 놓인 요릭의 방에서 26세의 귀족(처럼 보이는, 진짜로 백작의 조카로 밝혀지는) 여성과 이이의 하녀, 이렇게 세 명이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일 터인데, 21세기에 사는 현대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뭐 그리 읽을 만하지 않다. 흥미롭지도 못하고.

  요릭의 여행은 계속되어 아미앵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때마침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7년 전쟁을 하고 있던 터. 이를 이제야 알아챈 로런스 스턴은 허겁지겁 이를 무마하기 위하여 프랑스 백작과 요릭을 만나게 해놓고, 백작으로 하여금 프랑스의 어떤 곳이라도 갈 수 있으며, 그곳에 해당 관청과 모든 공무원들은 요릭을 위하여 최고의 서비스를 하라는 특별 여권을 장만해준다. 이렇게 해 놓으니까 이제 일개 여행객인 요릭도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귀족과 사교계에 진입하게 됐고, 그의 현란한 입놀림으로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한 번 적당히 접대하고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파리를 떠날 때까지 지극한 관심을 쏟아붓게 된다.


  이럭저럭 재미있을 거 같지? 그러나 정말로 책을 읽으려 마음먹었다면, 다시 한 번 이 책이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시기 앙망함. 비극이라면 동서와 고금을 통틀어 슬픈 건 모든 사람이 슬픈 거니까 여전히 셰익스피어도 읽고, 소포클레스도 읽는 것이지만, 희극은 조금 다르다. 희극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과 문화에 따라 웃음 코드가 각각 개별적이다. 서양 사람들이 웃고 즐길 내용에서 동양 사람들이 눈에서 소금물을 짜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이런 현상을 빗대 일찍이 톨스토이 백작이 이렇게 말한 거다.

  “행복한 가정은 다 고만고만하게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참 가지가지로 불행하다.”

  맞다. 내가 억지로 가져다 붙인 말이다. 하여간 희극 소설이라고 해서 18세기 영국인이 아닌 21세기 한국인도 마찬가지로 키득거릴 수 있다는 보장이 1도 없으니 그저 주의하기 바란다는 정도. 내 독후감 말고 다른 사람들이 쓴 책 읽은 소감을 다양하게 구경한 다음에 책을 선택해도 결코 늦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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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8-2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읽어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흥미가 확 떨어지네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