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리의 말 - 제163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다카야마 하네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소명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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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달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품 세 편을 읽었다. <헌치 백> 독후감 초두에 밝혔듯이 일본 현대 소설을 좀 읽어볼까 싶어 작품을 고르는데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품 몇 편을 무작위로 선택한 거였다. 아쿠타가와 상은 ‘신인’이 아니라 ‘신진’ 작가들의 중단편 소설 중에서 당선작을 골라 상품으로 지금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회중시계와 상금 백만 엔을 준다고 한다. “신진” 작가라는 점이 괜찮거나 좋은 일본 “현대” 소설을 선택할 수 있는 기재일 거 같아서 일단 세 편을 골랐는데, 결론만 말하면 나와 그리 맞지 않았다는 것. 책, 작가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다카야마 하네코는 1975년생 소설가. 2020년에 <슈리의 말>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으니 당시 나이 45세. 얼핏 ‘신진’이라는 수식이 어울릴 것 같지 않겠지만, 이이가 소설을 서른 살이 넘어 쓰기 시작했고 주로 SF 장르에 종사한 관계로 순소설로는 말 그대로 신진이라 할 수 있었겠다. 도야마 현에서 나서 도쿄에 있는 다마 미술대학 회화과를 다니며 일본화를 전공했다 한다. 이후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그 방면으로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 30대가 되어 글 쓰는 일에 본격적으로 마음을 두어 34~35세에 성인 대상 소설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이후 SF 소설을 주종목으로 여러 문학상을 받으며 성취를 이루다가, 한 출판사 편집자가 “현실 속 장소를 무대로 해서” 소설을 써보자고 제안해 쓴 것이 <슈리의 말>이란다.

  <슈리의 말>은 애초 독립국 “류큐”였다가 메이지 시대 때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를 무대로 하는 소설인데, 굳이 오키나와를 선택한 이유는 이이가 일본 프로야구, 특히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열렬한 팬인데 이 팀의 동계훈련 장소가 오키나와라서 거기 구경 갔다가 마음에 들어 소설로 쓰게 된 거란다. 우리나라의 삼성 라이온스도 전지훈련을 오키나와에서 하는 바람에 친숙하다고, 서문 격인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에 썼다.


  오키나와는 말 그대로 비운의 땅, 비운의 섬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 군국주의와 일왕에 대한 충성, 일종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입은 섬 주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종전 후에도 무려 30년 동안 미군정의 지배를 받는 등 ‘비운’이라는 단어 하나 가지고는 설명하기 힘든 지역이다. 메도루마 슌의 소설집 《물방울》에 오키나와의 참상과 지형 같은 것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다른 작품의 독후감을 쓰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실례이지만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작품이란 측면에 국한해 말하자면 《물방울》이 <슈리의 말>보다는 몇 길 위쪽이니 참고하시면 좋겠다.

  제목에 나온 슈리首里는 오키나와 시내의 한 행정구역. 태평양전쟁 당시 최대 교전 지역으로 도시가 거의 초토화되어 전쟁 이후에 옛 정취를 살려 다시 세우다시피 한 곳이다. 워낙 태풍이 잦고 고온 다습한 지역이라 소박한 성城과 건축물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 가운데 미나코가와라는 곳은 전후 외인주택 지구였다가 지금은 내국인과 아시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숙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일본 본토 출신의 노년 여성 요리順 씨의 자그마한 콘크리트 주상복합 건물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민속학에 매진한 시민 연구자로 나이가 든 상태에서 미나코가와로 이주해 이 건물 1층에 사설 오키나와 자료관을 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을 겁나게 외로운 사람들이다. 요리 씨 역시 마찬가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평화운동, 자연운동에 큰 관심을 쏟는 바람에 가족과 제법 심한 거리감이 있었다. 심지어 자연운동을 하면서는 집을 나가 산 속에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는데, 때마침 일본에 이런 공동체가 종종 테러를 저지르는 바람에 주민들과 매우 서걱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나이가 좀 들어 오키나와에 정착해 섬 곳곳을 다니며, 이걸 필드 워크라고 표현하는 모양인데, 유물이나 유품, 고대인과 전쟁 당시 죽은 이들의 뼛조각 같은 것들을 모아 전시관에 보관하고, 자료를 작성했다.

  나이가 더 드니, 본토에 사는 딸 미치途도 엄마 혼자 살게 두기 거시기해서 섬으로 이주해 함께 살며 시내에 작은 치과병원을 개원했다. 딸도 두 아들이 다 커서 이제 자기들의 가정을 꾸린 데다가 과부가 된 상태라 뒤돌아볼 것이 없었다.


  이 자료관에 무보수 자원봉사자 비슷한 신분의 여성 미나코未名子가 거의 날마다 와서 자료 정리에 힘을 보탰으니,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십여 년 전 중학생 시절에 낯가림이 심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에 가는 날보다 이곳에서 보낸 날들이 더 많았던 여성. 한참 힘든 시기였던 10대 중반부터 요리 씨에게 흠뻑 매료된 소녀였다. 무엇보다 여태 자기한테 요리 씨만큼 한 사물이나 사건에 관해, 사는 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진심을 다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속마음과 달리 천성이 겉으로 상냥한 성격이 아니었다고. 하여간 전에는 이 섬의 역사와 문화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미나코는 요리 씨의 영향을 받아 자료를 정리해가면서 대단한 관심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요리 씨는 이미 노년. 자료 관리 역시 아날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해, 예전 도서관 목록함이 그랬듯이 분류 카드를 일일이 손으로 작성하여 한의원의 약 서랍 비슷하게 생긴 자료함에 보관해 왔다. 미나코는 해당 유물, 유품을 카드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어 SD 카드에 담아 보관하기에 이른다.

  이 자료관은 관람 요금을 받지 않는다. 사실 요금을 받을 만큼 자료가 충실한 것도 아니다. 전쟁 중에 워낙 가혹한 폭격을 맞아 초토화되어 제대로 남아 있는 것도 없고, 학술적으로 민속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 전문성 역시 자신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을 요리 씨 스스로도 잘 알아 그렇게 조치한 것이겠지. 요리 씨가 건물주라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겠고. 그렇다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라서, 완전히 노쇠한 요리 씨가 자료관을 운영하지 못할 상태가 되면 저절로 폐쇄해야 하는 처지이다. 마니코가 비록 아버지한테 작은 단독주택 한 채를 물려 받기는 했지만 수입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 당연히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인터넷과 TV 홈 쇼핑이 득세하면서 미나코가 다니던 업체가 문을 닫아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가 몇 달 전에 취직을 했는데, 이 직업이 조금 묘하다. 다카야마 하네코가 SF 작가라서 가능했을 듯한 직업.

  세상 곳곳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 이 가운데 유독 일본어를 배웠으며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상일지언정 대면해 대화하고 싶은 소수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작품에서는 문독자問讀者 라고 지칭)을 상대로 퀴즈를 내는 일을 한다. 작품 속에는 세 명의 고객이 등장한다. 반다, 폴라, 그리고 기바노. 반다는 조국에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천재로 지금 지구를 맴도는 인공위성에 ‘혼자’ 탑승하고 있는 우주인. 폴라는 가족과 떨어져 남극의 빙하 밑 까마득한 해저에서 일하는 잠수정 승무원, 기바노는 전쟁 지역의 지하 셸터에서 생존해 있는 사람. 전부 극도로 외로운 이들이다. 그러나 모두 괜찮은 사람들.


  미나코의 삶이 이렇다.

  이 시절, 어린 시절부터 미나코에게 의지가 되어주던 요리 씨는 급격히 늙어가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확실하고, 건물 3층의 수상쩍은 장소, 괴이한 공간에서 혼자 근무하는 미나코도 지역 사람들한테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시기에, 미나코가 사는 슈리의 단독주택에 커다란 털 뭉치 비슷한 짐승이 한 마리 들어와 웅크리고 있었다. 동물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미나코는 문독자 가운데 한 명이 기바노로부터 그게 말이란 것을 알아내고, 말 중에서도 오키나와 토종 말로, 일반 경주마나 마차 끄는 말과 완전히 다른 독특한 말이란 것도 알아낸다. 그리하여 작품의 제목이 <슈리의 말>이 되는데, 정말 이런 말이 있기는 하겠지만 하여간 뭐 좀 그렇다. 말이나 등장인물이나. 오키나와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러하고. 사람도 외롭고, 말도 외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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