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 국립극단 희곡선
이용훈.윤미현.김정윤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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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1957년부터 시작했다는데, 연도별로 수상작을 책으로 펴낸 것은 《2024 창작희곡공모 선정작》과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두 권인 것 같다. 이렇게 늦게나마 연도별 공모작 수상작을 책으로 남긴 일이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만시지탄도 감출 수 없다 2025년 희곡공모에는 모두 175편의 희곡이 응모하여 당선작 이용훈의 <모노텔>과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 윤미현의 <옥수수밭 땡볕이지>,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를 선정해, 2026년에 국립극단에서 책으로 발간했다. 국립극단은 전에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젊은 극작가들을 발굴해 《희곡우체통 낭독 희곡집》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2019 펜데믹 때문에 2020년 낭독회 자체가 무산되어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한다. 그저 짐작이다.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매년 희곡공모가 이어지고 결과를 남기는 일은 의미가 깊다. 아무쪼록 끊기지 않고 계속 희곡공모와 희곡선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당선작, 이용훈 작 <모노텔>.

  모노텔은 경기도 서북쪽 국도에서 살짝 들어간 은밀한 곳에 있는 모텔이다. 20년 전에 전국적으로 시골 땅값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업종 가운데 하나가 모텔이었다. 그동안 팬션이나 자연휴양림, 기타 게스트하우스 등의 발달로 이제 모텔은 사양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희곡의 무대가 되는 모노텔도 이젠 도로보수 외국 노동자 등이 장기숙박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내국인 손님이 찾지만 전처럼 연인이나 불륜 커플은 드물고, 알코올 중독자가 몇 날 며칠 동안 아무 신경 안 쓰고 술을 퍼 마시거나,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를 맞거나, 정신 장애가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방’을 훼손시키려는 진상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

  한때 호텔 못지 않은 시설과 청결 등을 자랑한 모텔이 서서히 낡은 숙박시설로 변하는 도중에 모텔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평면 TV, 5G 와이파이 같은 장비도 들여놓고, 결제 역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세상에 지는 해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모텔 이름이 모노텔. 등장인물은 야간청소 노동자, 프런트 안내인, 주간 청소 노동자 부부, 알코올 중독자, 형사 두 명. 그리고 에필로그로 가면 다수의 군인과 유령이 등장하는데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내 의견으로는 에필로그, 완전히 뱀다리다.

  모노텔. 다른 등장인물 중에 ‘당신’과 ‘나’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텔에 온 것이라기보다 혹시 이것들 동반자살하려고 온 거 아닌가 싶다.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린다. 하여간 이 두 명을 제외하고 작품은 거의 대부분 모노드라마 형식이다.

  바로 앞에서 얘기한 커플 말고는 각 씬마다 한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몇 페이지에 이르는 독백을 한다.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지금의 모노텔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진상들과 종업원들 사이의 마찰이나 상호 불신감 등등.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별의 별 손님을 경험한 프런트 안내인과 청소 노동자들. 아무래도 모텔업이 전반적으로 사양 모드로 들어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띌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난장판과 우울. 재미있지만 밝게 재미있지는 않다. 당선작으로 뽑은 것에 불만 없다. 만일 에필로그가 없었더라면.

  왜 에필로그?

  이런 에필로그는 사족. 진짜 사족 중에서도 사족. 앞에 길게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우수상 수상작인 윤미현 작 <옥수수밭 땡볕이지>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 작품 속에는 1980년대 초반에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 출신 가족인 반쪽짜리 대문 집 어머니 가족과 당시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던 녹슨 대문 집 어머니 가족, 그리고 동년배이지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 대상으로 화장품 외판을 하던 빨간 대문 집 어머니 가족이 등장한다.

  짧게 말해서, 40년 전에 구로공단에서 힘든 노동을 하던 부모,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노동자로 살며, 천안 부탄가스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아들, 수도꼭지 공장에서 오른 팔이 잘린 아들, 직장 내 상습적 성희롱으로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딸을 내세워, 가난의 세습, 힘든 노동이 대를 이어가는 절망의 현재를 그려낸다.

  정말 가난은 절대로 세습되는 것일까? 세월이 조금 바뀌어 지금은 지도층 계급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 계급을 세습해주기 위하여 제도조차 자기들 입맛에 맞추려고 하고 있고, 이것이 가난의 세습보다 더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인데. 202X년에는 극빈의 상태에 처한 최하 계층을 제외하면 어떻게 해서든 상위계층에 진입할 “바늘 구멍 만한” 기회가 있기는 있다. 윤미현은 그 바늘 구멍 만한 기회에는 관심이 없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자기들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지도층 계급의 비겁함 정도는 함께 말을 해주었어야지. 증거가 있냐고? 있지만 그만 하자.


  다른 우수상 수상작,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

  연애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작품. 연애는 연애인데 남성 동성애. 연애 이야기는 결국 이별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주인공 심진원의 직업이 요리 연구가이다. 어떻게 연구를 하느냐 하면, 특정 요리에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전에 먹었던, 먹어봤던 음식의 재현을 의뢰하면 요구한대로 그 음식을 재현해주는 일이다. 쉽지 않을 일. 어쩌면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먼저 의뢰인이, 자신이 다시 맛보고 싶어하는 음식의 맛을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 몇 가지와, 그것의 강약 정도로 미각을 설명하고, 그 미각을 띄게 만드는 이름을 모르는 재료까지 설명해야 할 터인데, 이건 음악이나 회화를 문자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더불어 진원의 연인 승주의 관계. 승주는 게임 프로그래머. 그래서 작품 내내 게임과 관련한 묘사가 나오는데, 나는 게임 동네 언어는 거의 백치 상태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헤어진 연인 승주에 대한 기억 또는 추억, 그리고 애정을 빌미로 한 친절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간섭. 읽어볼 만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희곡도 괜찮은 수준이다(아쭈? 지가 뭐라고.). 읽을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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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5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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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렌 크리스텐체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은 영어권에서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타니아 블릭센 등 여러 필명을 썼다고 한다. 이이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롱스테들룬트에서 출생해서, 지금도 이이의 “카를 블릭센 박물관”이 룽스테들룬트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모양이다. 아버지는 부르주아 지주가문 출신의 작가, 군인,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선주船主 가문 출신으로 부르주아 유니테리언 상인의 딸이었다.

  지적이고 보수적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위스콘신에서 치페와 원주만과 잠깐, 1년 반 정도 살기도 했다는데, 거기서 뭔 짓을 했는지 그 새에 딸을 하나 두었고, 귀국할 때는 맨손으로 올 수 없어서 몸 안 가득 매독균을 가져왔단다. 집에 와서는 하녀와의 사이에 혼외자 한 명을 낳아 세계 인구증가에 이바지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자신의 장모와 아내에 계속 충실하겠다고 다짐해서 충격을 주었다는데, 위키피디아에 영어로 쓰인 ‘mother-in-law’라고 썼으니,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 즉 이자크 디네센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하녀와 하녀의 엄마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한 내가 짱구였다. 나는 잠깐 헛갈렸지 뭐야? 하여튼 매독으로 인한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빠는 이자크, 즉 카렌이 아홉살이던 1895년에 쉰 살의 나이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숟가락 놨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아기 입에 은수저가 물려 있었던 이자크는 아빠가 죽은 후에 엄마하고 외갓집에 가서 확실한 유니테리언 정서 속에서 본격적인 부르주아 숙녀로 성장해가며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열세 살이던 1898년에는 스위스에서 1년 동안 프랑스말을 배웠고, 열일곱 살 때 코펜하겐에서 샬롯 소데 미술학교, 1903년부터 3년 동안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20대 중반에는 학문의 외연을 키우기 위하여 파리, 런던, 로마에서 공부했단다.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은 부계쪽으로 사촌의 가문이라고 나와있다. 유럽 종자들 족보는 좀 이상하다. 그러면 이자크 디네센도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튼 이자크가 사촌 한스를 좋아해 안달을 했지만, 한스가 눈길 한 번 안 주는 바람에 잔뜩 열을 받은 이자크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쌍둥이 형제 브로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한테 안다리 후리기, 진한 관계를 맺어 ‘닭 대신 꿩’을 낚았다.

  워낙 큰 부르주아 가문이라서 이 집안의 재산은 세상 곳곳을 통해 나날이 불었는데, 한스 대신 브로드와 결혼한 게 조금 걸렸는지, 연인은 덴마크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며, 일단 가문에서 커피 사업에 투자한 케냐 몸바사로 가서 1914년에 결혼신고를 해 카렌은 본격적으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의 자리에 올라, 이혼을 거쳐 남편이 재혼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남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즐겼다. 그러면 뭐해? 결혼 1년 후인 1915년 남편 블릭센 남작이 장인을 본받아 덜컥 매독을 옮아와 부부는 이후 수은치료에 이어 비소 치료를 받았고, 이 영향 때문에 이자크는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야 했던 것을.

  이후 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곤란한 개인사를 엮었더라도 당시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한 복지를 누렸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자. 하여튼 케냐에 살 때 경험한 건 우리나라에 이자크 디네센이 아니라 카렌 블릭센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써서 엮었다. 그렇게 한 세상 잘 살다 간 부르주아 소설가.


  《바베트의 만찬》은 중단편 다섯 작품이 실린 소설집.

  이자크 디네센은 당시 유럽 문학계가 알아주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던가 보다. 읽어보니 그럴 만하겠다. 진짜 재미있게 구성으로 그걸 또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단, 20세기 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읽으면 어떠냐고? 물론 재미있다. 근데 작품들이 성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초년생 정도가 읽으면 아주 딱일 듯하다는 말씀.

  이 이자크 디네센은 소설가로 나름대로 조금 불리한 입장이기도 했다는데,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몇 번인가 이이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던 “스칸디나비아 작가 우대” 또는 편향의 의심을 떨치기 위하여 최종 결정자를 뽑을 때는 디네센을 제외했다는 풍문이(겠)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몄다. 그러나 지금 읽어보면 중학생 수준으로.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걸 넘어서 화를 내는 분도 있을 터이지만 한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

  《바베트의 만찬》의 표제작 <바베트의 만찬>이 이자크 디네센의 대표작이라고 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나 이이가 죽고 34년이 지난 1996년이라 원작에 대한 저작권료는 누가 챙겼는지 몰라? 하여튼 그리하여 오늘 독후감은 중/단편 <바베트의 만찬>만 읽어보는 걸로 하겠다.


  작품의 무대는 노르웨이 작가들이라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숱하게 무대로 삼은 피오르 지형의 바닷가에 오종종한 집들이 원색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 이 동네를 ‘베를레보그’라고 하자. 이 가운데 노란색으로 단장한 제법 큰 집에 나이 많은 두 처녀 자매가 살았으니 둘 다 키 크고 늘씬한 몸매를 평생 회색과 검은색 드레스 속에 감추고 다녔다. 워낙 단정한 옷차림이어서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 이들 가운데 언니가 마르티네, 동생이 필리파. 적어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독실한 교파를 일군 목사이자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결혼해서 딸 둘을 두었더라도 두 딸은 남자한테 손목 한 번 잡혀보지 못할 삶을 살게 만든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했을 터. 그의 주장은,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해서 진정한 현실은 오직 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있다고 굳게 믿어, 세속의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 그럼 됐지, 뭐하러 늘그막에 결혼을 해 딸 둘을 두었느냐고? 이런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떴고, 숟가락 놓자마자 중심을 잃은 신도들은 서로 질시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고, 미워하고, 떼를 지어 무리끼리 대놓고 싸우면서 흐지부지 되었어도 그러나, 여전히 자매의 노란 집에 모여 계속 성경을 읽고 있기는 하다.

  12년 전, 비오는 깜깜한 밤. 노란 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을 열어보니 비탄과 공포에 떨며 갈 곳 없이 헤매는 도망자 여인이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이를 집에 들여 몸을 추스리게 한 다음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여자의 이름이 바베트. 분명 작은 노란 집에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큰 체격의 프랑스 식 미녀. 바베트는 자신이 요리를 좀 할 줄 아니까 하녀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 만하면 된다고. 자매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저 잡안의 잡일만 해오던 나이 어린 동네 꼬마를 집에 보내고 대신 바베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이렇게 산 것이 12년 세월이니 이젠 서로 알 건 다 알겠지? 이 가운데 하나가 바베트한테는 자동 발행되는 로또 복권이 한 계좌 있다는 것. 자주 말하기를, 언젠가 이 복권이 맞기만 하면 1만프랑 이상의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란 집의 늙은 자매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소설 처음 보나? 저 뒤에 가면 정말로 복권이 맞아 작품이 뒤집어지겠는 걸? 이런 꿍꿍이를 하기 시작한다. 권총이 나오면 언젠가는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듯이, 이자크 디네센이 괜히 복권 이야기를 한 건 아니잖아?


  자매가 젊은 시절에는 둘 다 미스 스칸디나비아 진 수준의 미녀였다. 하도 아름다워서 피오르 지역에서는 자매를 채 갈 남자는 없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그냥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 살면서 한 번도 인연을 만나지 못하기도 쉽지 않다.

  먼저 등장한 남자가 로렌스 로벤히엘름 중위. 바깥 세상에서 온 경기병 장교. 하도 골통짓을 해 빚더미에 올라 열받은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시집간 시골마을 포숭으로 보냈는데, 거기가 베르레보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것. 로벤히엘름 중위는 온갖 공을 들였지만 기어이 언니 마르티네한테 딱지를 맞고 정신을 바짝 차려, 군기도 바짝 오른 상태로 부대에 복귀한다. 이후 건실하고 용맹한 군인으로 변신해 줄기차게 승진을 거듭, 덴마크의 훌륭한 장군이었다가, 명예로운 퇴역장군으로 늙어간다.

  두번째 방문자는 당시 마흔 살이던 파리의 유명 오페라 가수 아실 파팽. 그가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1주 공연을 마치고 주위 권유로 노르웨이 해안가에서 쉴 목적으로 온 곳이 베르레보그. 여기 교회에 갔다가 둘째 필리파가 놀라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뽑아내는 성가를 듣는 순간, 사랑을 느끼면서 목사에게 특별 성악 레슨을 제안해 받아들여진다.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와 야생화, 북유럽의 백야가 담긴 여인의 음성이라니 최고의 수식은 다 모인 거다(키르스텐 프라그슈타트?). 그러나 아실 파팽 역시 평생 숫처녀로 지낼 각오로 충만한 필리파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남은 건 뭐? 그렇지! 바베트의 복권 당첨. 드디어 터졌다. 이제 자매는 바베트가 큰 돈을 얻었으니 틀림없이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바베트는 파리로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 돈으로 직접 만찬을 열어 그동안 보살펴준 자매와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겠다고 뜻을 전해 받아들여졌다.

  피오르 지역의 만찬이래봤자 대구 요리와 청양고추 넣고 끓인 대합탕 정도겠지. 이렇게 생각했을 터. 하지만 바베트는 전직이 파리에서도 최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부르주아 중에서도 최 상류 부르주아들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니 세상에나. 나폴레옹 3세 말기, 프랑스 코뮌 시절에 코뮌 그룹에 동조해 바리케이트에 올랐던 일 때문에 전국에 지명수배되어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까지 도망했지만 정작 직업은 정치적으로는 반대했던 부르주아의 혀를 위한 요리사였던 것. 이런 바베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뻑적지근한 만찬을 꾸몄어도, 노르웨이의 한적한 바닷가, 가옥이라고 백 채가 될까 말까 한 코딱지 만한 마을의 촌 사람들이, 바베트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든 고급 요리를 먹고 그게 좋은지 아닌지도 몰랐던 만찬.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날의 손님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포숭의 고모댁을 방문한 덴마크 장군이 있었으니, 누구나 존경해마지않는 로벤히헬름 장군이었던 것. 그는 식전주가 세상에서 제일 최고급이라는 것을, 수프 역시 파리에서도 쉽게 맛보기 어려운 바다거북으로 만든 것임을, 케비아가 덩어리 채 식탁에 놓였으면서도 색깔 때문인지 손님들의 포크가 여간해 닿지 않았다는 것 등등, 모든 음식을 이해하고, 먹어본 적이 있고, 심지어 파리의 어느 식당의 주방장 누가 만들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겸손한 어조로 고마움을 얹어 이야기한다. 마음 속에서 여전하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사랑하다가 죽을 첫사랑 마르티네에게.

  그러면 바베트는? 이튿날 덴마크를 거쳐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랐을까? 오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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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소설가
임현 지음 / 창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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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에 전남 순천에서 나서 전남대 국문과와 한예종 연극원을 다녔다. 2014년에 등단해 12년 동안 중편소설 1편과 단편소설집 세 권을 출간했고, 2017년에 문학동네가 주는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행복한 소설가》는 임현이 2021년부터 2026년 상순까지 쓴 단편을 모은 책.


  한예종 예술사(M.F.A.)를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이러네, 저러네 뭔 말이 많을 수 있을까? 오늘 독후감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쓰려 한다. 잘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는 임현처럼 쓰는 작가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영롱한 색의 거미줄처럼 섬세한 문장들이 대세를 이루어 이제는 단단하게 다진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글을 읽으면 반가울 정도다. 임현의 글도 그랬다. 반가웠다. 비록 글이 담은 서사가 예전 시절 같이 좀 큼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러나 나는 이 독후감에서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어쨌든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표제작품인 <행복한 소설가>에서 말한다. 작가에게 시간이 나면 하는 일: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목록을 확인하기도 하고, 몇해 전에 출간한 내 소설집에 혹시라도 새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나 찾아보며 실망하기도 했으며” (p.257)


  임현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낸 책의 독자 서평이나 댓글을 찾아보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작가들도 예외가 아닐 걸? 하지만 그걸 자기 스스로 찾아보고, 좋아하거나 실망한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솔직한 감상을 쓰지 않는다. 벌써 작가, 역자, 또 ‘엮은이’ 심지어 출판사 편집자나 직원한테 여러 차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괜히 피곤하게 신경쓰이는 피드백을 다시 받기 싫다.

  거기다가 임현의 작품은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간혹 심각하게 우울하고, 작품마다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자살에 실패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기가 낸 책의 독자 리뷰 같은 걸 꼼꼼하게 읽는다고 하면, 아이고, 거기다 대고 쥐뿔도 아는 게 없는 독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꾸 길어진다. 하여간 자기 글에 대한 평가를 찾아본다는 작가의 글에 대한 코멘트는 줄이는 게 상책이다.

  작품들이 마음에 든 편이다. 그렇다고 팍, 와서 꽂힌 정도는 아니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잘 생각한 거다. 임현은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반응한다.


  “누군가는 나의 문장들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게 또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혹스럽거나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딘가 답답한 마음에 혼자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릴 때도 많았다. (p.264)


  임선생도 쪼잔하게, 작품을 한 번 썼으면 그만이지, 그걸 독자가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는다고 별 생각을 다 하시네. 모든 독자가 자기 의도대로 읽어줄 걸 바랐나? 그걸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커지면, 독자리뷰에 비밀댓글 달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다. 그러지 마시라. 책 팔았으면 다음엔 책을 샀거나 빌려 읽은 사람 거다. 이후엔 괜한 참견일 뿐이다. 쓸 때 좀 더 잘 쓰면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작가질 하기 힘든 것이지 뭐.


  하나만 더 쓸까? 임현은 사람 또는 사회의식의 선악, 그 절묘한 경계선을 관찰하는 게 장기인 것 같다. 작품 속에 소위 의식 테스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갑과 노트북을 공원 벤치에 올려두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누가 훔쳐가지 않는지 관찰하는 거. 또는 진상 고객으로 분장한 전문 배우가 역시 종업원으로 분장한 전문배우한테 호통치고 급기야 종업원이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면, 이들 주위의 손님이나 행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테스트.

  나도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 이런 거 몇 번 봤다. 근데 볼 때마다 열이 뻗쳐 기분이 무척 상했다.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희들은 어떤 종자이기에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양심에 따라 행위하지 않은 피시험자가 있어서 그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건 어떻게 하고? 아니, 이런 건 전적으로 다음 문제이고, 도대체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나가는 자유인을 이리 욕보일 수 있느냐는 거다.

  임선생도 이런 거에 한 번쯤은 시비할 만했건만 그건 또 그냥 지나가버리더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잘 읽었다. 문장이 탄탄해서 좋았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을 관찰하는 시각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찾아 읽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건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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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23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셋은 아무래도 좀 박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넷은 주고 싶지 않은.... 내 맘대로.

2026-10-2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6-10-2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그 ‘테스트‘ 좀 불편하긴 한데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불편했던 이유가 도청 때문이었거든요. 저는 누가 제 말과 행동을 그렇게 계속 몰래 관찰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ㅠㅠ

저도 점점 별 넷이 기본이 되어갑니다. 배달앱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되네요. 별 셋이 나쁜 건 아닌데도 셋을 주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셋을 주기도 하는데 절대 나쁜 책이란 뜻이 아닌데...

Falstaff 2026-10-23 19:10   좋아요 0 | URL
그죠, 관찰 카메라라는 명목으로 몰래 테스트하는 거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같은 별 넷이라도, 차마 다섯 개를 찍을 수 없는 아까운 별 넷이 있는 반면에, 그냥 그런데 또 까기에는 좀 그런 별 넷도 있어서.... 물론 전반적인 별점 인플레이션이 대부분이고요.
근데 암만해도 여기가 책가게니까, 될 수 있으면 좋게 얘기하는 게 맞는 일일 거 같기도 해서 ㅎㅎㅎ 그거 참. 살면서 쉬운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ㅋㅋㅋㅋ
 
밤의 가장자리에서 - 2024년 퓰리처상 수상 장편소설
제인 앤 필립스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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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도시 버케넌에서 출생한 작가. 52년생이니까 벌써 일흔네 살이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몇몇 유명작가가 그러했듯이 아이오와 대학 내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 학위에 준하는 M.F.A. Master of Fine Arts를 받았다. 이 코스를 밟은 미국 작가들 가운데 유명 작가 몇 명만 꼽아보면, 존 치버, 필립 로스, 매릴린 로빈슨, 앤드루 포터, 마이클 커닝햄 등이다. 이 정도면 미국 문단의 한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수준.

  M.F.A.를 취득한 후 젊은 시절동안 다른 작가들이 겪는 몸살도 좀 앓다가, 작품, 주로 단편소설집을 출간해 두각을 나타냈고, 덕분에 여러 대학에 출강할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2005년부터 20년까지 15년 동안 러트거스대학 뉴어크 캠퍼스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고. 재직중에 러트거스 대학에도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비슷한 M.F.A. 과정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했단다.

  경력 가운데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지금 독후감을 쓰는 <밤의 가장자리에서 Night Watch>가 2024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것이 돋보인다. 책의 출간은 2023년이니 이때가 일흔한 살. 가장 최근의 작품이고 이제는 고령이라, 어쩌면 마지막 작품일 수도 있겠다.


  소소한 불만은 왜 우리말 제목을 “밤의 가장자리에서”라고 했을까, 하는 것. 원문 그대로 “야경꾼”이라고 하면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출판사의 고심도 이해가 가지만 책을 다 읽어보면 역시 “야경꾼”이 제목으로 더 그럴 듯하다.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보자.

  작품의 무대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전체가 애팔래치아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했고, 서쪽으로 조금 평원이 펼쳐 있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노랫말에도 들어 있는 동네라 올드팝 팬들한테는 익숙할 수도 있을 걸? 이곳 산악지형, 아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능선 바로 아래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사는 열두 살 소녀 코나리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시간적 배경은 1874년과 10년 전인 1864년. 1864년이라면 61년에 발발한 미국 내전이 가장 뜨겁게 불이 붙던 시기. 이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것 보다 코나리가 이곳 산골에서 출생하게 된 내력부터 알아보자.


  오래전, 더블라 할머니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 더블라 할머니 가족들은 아일랜드의 기근을 피해 진짜로 거지꼴을 하고 뉴욕항에서 내려 지친 발을 끌고 남부 농장지대에 도착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당연히 폭력적이었지만 어린 딸 더블라는 예외였다. 조금 세월이 흐르자 두 오빠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버지 역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백인 지주들은 이 아일랜드 이민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양을 관찰하던 흑인들 역시 아일랜드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더블라는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민간약재나 민간의료 같은 것을 아주 잘 배웠는데, 이게 백인 지주가 보기에는 턱없이 사악한 주술 같았고, 검둥이 노예들 눈에는 자기들이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민간요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나름대로 더 친해졌던 모양이다. 더블라가 성장해 큰 노예농장의 유모로 들어갔는데, 집의 여자 주인이 몸이 약해서인지 낳은 아이들이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이런 집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예 여자가 하루는 갓난 아이를 데려왔다. 흰 피부와 검은 곱슬머리를 한 잘 생긴 유아. 얼마 전에 죽은 늙은 농장주가 마지막 열과 힘을 다 해 마지막으로 여성 노예의 몸에 만들어 놓은 사내 아이. 이 아이가 세상에 나온 건 아무도 모르고, 피부색이 하야니까 더블라의 사촌이 낳은 아들, 그러니까 더블라의 조카로 삼아 키우면 노예 신분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름도 없는 ‘그저 아이’는 농장주의 아이들이 더블라의 젖을 다 먹고 난 후에 남은 젖을 빨 수 있었고, 그게 모자라면 묽게 쑨 오트밀 같은 걸 먹였다. 그래도 날이 갈수록 키가 크고, 힘도 세고, 기골이 장대한 소년으로 자랐다.

  줄줄이 사산을 하거나 낳은 아이들이 크지도 못하고 픽픽 죽어가던 농장주, (더블라한테 갑자기 생긴 조카와 사실상 배 다른 형뻘인 농장주)한테도 그래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조금 큰 아들이 하나 있었고, 이제 새롭게 딸을 엘리자를 얻었지만 만날 아프기만 했던 아내는 대신 세상을 떴다. 이 엘리자를 받은 사람도 더블라. 남자와 노예만 있는 집에서 엘리자를 키운 사람 역시 더블라. 엘리자는 더블라를 엄마처럼 따랐고, 무엇이든지 상의했다.


  세월이 흘러 완전한 청년이 된 더블라의 조카는 말 관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마구간지기의 도제로 들어갔고, 엘리자 역시 나날이 커서 어느덧 열여섯, 열일곱 살이 되었다. 근데 이 두 십대 청춘들이 서로 좋아하는 거라. 그게 어른들의 눈에 안 보이고 배겨? 그걸 눈치챈 엘리자의 아버지는 천하디 천한 아일랜드 잡것들의 후손이 감히 자기 딸을 넘보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날을 잡아 청년을 붙잡아 매고, 농장 소유의 말 엉덩이에 하듯이 농장 소유임을 드러내는 낙인을 엉덩이가 아니라 가슴팍에 찍어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피가 철철 흐르는 낙인 위에다 채찍질까지 해버렸다.

  더블라 아주머니가 아일랜드의 민간요법으로 여러 약초와 동물성재료를 섞어 만든 고약을 바르기도 하고 약초를 태워 피운 연기로 훈증을 해 주어 일주일 만에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나았다. 청년 입장에서, 더 정확하게 말해 “청년들”입장에서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달도 없는 그믐밤, 더블라 아주머니와, 이이의 조카라고 알려진 청년과, 농장의 아가씨 엘리자는 마구간에서 말 세 필을 끌어내 조용히 암흑 속으로 사라져 북쪽으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북쪽 산골짜기로 떠나갔다.

  이때 다 나았다고는 하지만 조카는 정상 상태가 아니었고, 평생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본 엘리자도 홀몸이 아니어서, 주로 키 크고 강단 넘치고, 힘도 세고, 신기도 좀 있는 더블라 아주머니가 이들을 데리고 애팔래치아 산맥, 보수적인 부자들이 빼곡하게 몰린 버지니아를 가르는 산맥의 서쪽, 앞으로는 웨스트버지니아로 불릴 지역에 정착한다. 엘리자는 첫 아이를 사산한 뒤, 비탈에서 밭을 개간하고, 사냥도 하고, 과일도 수확하며 고생스럽지만 행복한 나날을 지내다가 딸을 낳았으니 이름을 ‘코나리’라고 했다.


  코나리가 세상 구경을 하기도 전에 미국 내전이 터졌다. 정의감에 불타는 코나리의 아빠이자 더블라의 이름없는 조카는 단박에 북군에 가담하기로 결심해 집을 떠나, 앞으로 십여년 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예정. 엘리자는 남편도 없이, 자기를 받았고, 젖을 먹였으며, 엄마나 다름없이 키운 더블라 아주머니에 기대 딸을 낳았으니 코나리는 앞으로도 아버지 볼 날이 없을 팔자였겠구나.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황량하고 공포스러운 시절에도 세월은 갔다. 그리하여 1874년이 왔고, 1861년 12월생이라 아직 열두살에 불과한 코나리는, 꼬맹이라고 부르는 남동생, 그리고 태어난지 불과 몇 주 안 되는 여자, 남자 쌍둥이가 생겼다. 자기를 키워준 더블라 할머니의 집은 능선 거의 꼭대기에 있어서 어릴 적에는 자주 올라가 할머니와 같은 침대에서 자기도 했는데, 이제는 파파와 마마, 그리고 터울이 많이 나는 세 동생과 산다. 근데 문제가 있다. 엄마는 모든 의욕을 놓은 상태. 이젠 말도 안 한다. 이른바 실어증.

  파파라는 남자가 코나리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란 건 팍 이해가 가지? 게다가 남군 출신이다. 전쟁 중에 껄렁한 북군과 함께 코나리의 집에 쳐들어와, 먼저 엘리자를 겁탈하려다가 오히려 엘리자에게 죽임을 당한 북군을 묻어 버리고, 집안에 있는 모든 것, 정말로 모든 것, 재산, 사람, 땅, 정신까지 몽땅 소유해버린 악당. 자신을 이름 대신 파파라고 부르라는 가스 라이팅 전문가이자, 나중에 밝혀지듯 정신이상자이면서 사이코패스. 그렇다고 연쇄 살인을 할 정도의 깊은 사이코패스는 아니고 전문가가 봐도 그런 성향이 농후한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집은 엉망이 됐고, 코나리의 세 동생 모두 파파가 마마 한테 만든 것인데도 전혀 관심조차 없다.

  마마는 쌍둥이를 낳아 가슴에서 젖이 철철 흐르지만 젖을 먹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하루 종일 모든 집안 일도 하고 꼬맹이, 큰 동생을 숄에 묶어 가슴에 안고 다니는 코나리가 쌍둥이들을 엄마 가슴에 가져가 직접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켜준다. 쉽게 말해 사람 사는 꼴이 아니다.

  파파라는 작자는 집안 꼴이 이럼에도 철저하게 더블라 할머니와의 접촉을 금한다. 눈에 띄기만 해도 권총을 쏘며 접근하지 못하게 위협할 정도이지만, 더블라 할머니는 아일랜드 민속, 민간신앙에서 배운 통찰력의 눈으로 이 가족을 훤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파파도 죽을 지경이었겠지. 천성이 양아치인데 이 산골짜기에서 좁은 동네에 박혀 세월을 보내자니, 그것도 실성한 여자와 실성한 여자가 낳은 네 아이하고 함께 지내려니까. 그리하여, 나중에는 더블라 할머니의 현명한 설계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하루는 시내의 큰 부잣집 남자가 상처를 하여, 죽은 아내가 입던 고급 드레스, 셔츠, 내복, 신발 일습을 얻게 되었고, 그걸 마마한테 입혀보니, 불쑥, 좋은 생각이 드는 거였다.

  이 지긋지긋한 것들을 다 묻어버릴 수도 없으니, 꼬맹이와 쌍둥이 가운데 남자 아이는 아이 없이 혼자 사는 과부한테 맡기고, 여자 아이는 불임가족한테 키워달라고 한 후에, 마마와 코나리를 마차에 태워 동네를 떠났다. 이제는 혼자 살고 싶은 것. 코나리한테도 아이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달거리를 시작하지 않아서, 아무리 악당이라도 초경도 하지 않은 아이하고는 관계하고 싶지 않아, 코나리를 마마와 함께 버리기로 결심한 거다.

  원래 큰 농장의 고명딸 출신인 엘리자한테 비싼 비단 드레스를 입혀 놓으니 세상에 이런 규수가 없다. 그래서 파파는 코나리에게 앞으로 마마한테 꼭 “재닛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코나리는 재닛 아가씨를 돌보는 몸종 정도의 하녀로 지내고.

  이렇게 도착한 으리으리한 곳이 마치 왕자와 공주가 사는 아름다운 궁전 같았는데, 시계탑과 첨탑까지 있는 그곳 대문의 황동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트랜스 엘러게니 정신병원”


  정신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코나리. 엄마는 당연히 귀한 집안에서 자란 재닛 아가씨, 코나리는 이름을 ‘엘리자 코널리’라고 즉석에서 고쳤다. 파파가 이들을 태우고 병원 앞 도로를 서성거릴 때, 창문 안쪽에서는 키 크고 건장한 북군 부상병 출신의 나이트 워치, 야경꾼이 이들을 관찰하고 있다가, 마차가 떠나고 여자 두 명이 노크로 현관을 두드릴 때 문을 열어 안으로 맞아주니, ‘오셰이’였다.

  폭탄 파편을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 맞아 눈알이 빠지고 두개골 제거술을 받은, 완전한 기억 상실자. 펜실베이니아 병원에서 오래 입원해 보기 힘든 부위의 환자라서 원장이 오셰이 씨에게 집중 치료를 해 생존하게 된 거한. 눈이 있던 자리에 원뿔 모양의 안대를 고정시켜 달고 다니는 오셰이 야경꾼을 따라다니는 조그만 꼬마 아이 위드.

  이들 모두 치유받아야 하는 환자들. 이들에 대한 작은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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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 지음, 윤희환 옮김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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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산 카나파니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아쉽다.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유대 작가는 아모스 오즈와 다비드 그로스만 등 제법 알려진 반면, 유대인에 의하여 2천년 동안 살던 터전에서 맨손으로 쫓겨난 팔레스타인의 이름난 작가는 별로 알지 못한다. 갈릴리 태생의 1974년생 아다니아 쉬블리 정도만 눈에 익다. 유대인. 유럽에서는 숱한 고난과 학살과 멸절의 위협을 고스란히 당한 민족이지만, 중동과 북아시아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당한 피해의식이 마치 특권인 양 현지인 종족들을 탄압해도 되는 것처럼 비타협 착취를 서슴지 않는, 그들의 선한 신의 선한 뜻을 악하게 실천하는 종족이다.

  물론 많은 유대인은 이런 정책에 반대하겠지. 이들과 달리 평화를 주장하는 다수의 선한 유대인은 불행하게도 논의에서 제외된다. 2차세계대전 전후 선량한 다수의 독일인들이 논의에서 제외되었듯이. 이 문제적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악행으로 인해 고스란히 삶의 모든 것과 생명 자체와 신체 일부를 상실당한 팔레스타인 원 거주인들. 그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나 이웃 바레인으로, 요르단,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쿠웨이트로 사막을 건너 모진 목숨을 이어가야 했다.

  1936년에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태어난 가산 카타파니와 가족들은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에 의한 위임통치의 종결과 동시에, 사실은 아직 종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영국 통치체제와 뒷방에서 뜻을 맞춘 유대인 군대에 의하여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고, 이때 유대 군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구성한 시온주의 민병대에 의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 신분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이주한다. 이때가 1948년. 열두 살의 카나파니는 가족 가운데 남자들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난민의 길을 떠나는 것을 보고 돌이킬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무슬림 소년의 가슴에 박힌 수치심.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에서 성장해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주는 교사로 일하며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아랍 문학을 전공하다가, 학내 정치문제, 아랍민족주의운동과 연계되어 퇴학을 당하고 만다. 이후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거쳐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에 가담해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등을 편집하는 일을 했다. 인민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가깝지 않을 수 없었던 카나파니는 점점 범 아랍민족주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으로 전환하는데, 이 와중에 아랍권을 벗어나 많은 외국 언론과 스칸디나비아 반시온주의 유대인과도 접촉한 것이 문제였을까? 그는 1972년 7월,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 정보특수작전연구소, 모사드가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열일곱 살 먹은 조카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세상을 떴다.


  소설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중편 표제작을 포함해 일곱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책은 2002년에 열림원에서 초판 출간되었다가 2006년에 절판, 20년이 지나 올해 다시 중판을 찍었다. 아마도 이스라엘,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인 영향도 있었을 듯하다.

  카나파니의 대표작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조금 독특하다. 주요 등장인물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에 의해 쫓겨난 난민들. 이제 난민촌이거나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는 팔레스타인 변두리에 머무는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 못해 중동 최대의 부국이라고 알려진 쿠웨이트로 밀입국하거나, 전문적으로 밀입국 브로커 짓을 하거나, 장군의 운젼병으로 물탱크 트럭을 몰고 쿠웨이트로 향하는 김에 용돈 좀 얻어볼까 싶어 약간의, 그러나 밀입국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돈을 받고 태워주는 역할을 한다.

  밀입국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아부 카이스는 십년 전에 고향에서 쫓겨났다. 레바논의 난민촌에서도 몸을 뉘어 가슴을 땅에 대면 여전히 고향 대지의 박동과 땅의 냄새가 혈관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그리움을 느끼는 사람. 어린 시절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는 못하고 공부는 하고 싶어서 교실 창문 아래에서 옅듣던 우스타즈 셀림 선생의 가르침,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거대한 강물이 합류하면서 샤트알아랍이라는 강물을 형성하고…”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맘이 아니라 기도를 인도할 수는 없지만 적이 쳐들어온다면 꼭 필요한 명사수일 것이라던 셀림 선생은 유대인이 마을을 장악하기 전날 밤에 신이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갔다.

  그의 늙은 아내는 7개월 후에 또 출산을 할 것이고, 딸 호스나는 아이를 낳고 두 달 만에 죽었으며, 아들 카이스도 아직 어리다. 쿠웨이트로 이민 가서 택시 운전을 해 부자가 된 친구 사아드가 말했다. 쿠웨이트에 가서 막일이라도 해. 거기서는 몇 푼 안 되지만 돌아오면 마음껏 쓸 수 있는 큰 돈이 될 거야. 당장 새로운 아기, 먹을 입이 생길 아부 카이스는 가지고 있는 돈과 여기저기서 꾸어 브로커 비용 15디나르를 마련해 난민촌을 떠났다.


  젊은 아사드는 아부 카이스와 접촉했던 브로커 뚱보 사내에게 15디나르를 지불하겠지만 쿠웨이트에 도착한 다음에 주겠다고 뻗댄다. 요르단에서 이라크로 밀입국할 때 벌써 같은 팔레스타인인이지만 더러운 브로커한테 한 번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작열하는 사막에서 내려주고는 길고, 길고 긴 H4 송유관 주위를 걸어서 가면 도로가 나오는데, 자기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햇볕 아래에서 얼마나 걸어야 하나? 죽을 때까지. 물론 산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죽을 지경에 아주 가까이까지 가야 할 걸? 그러니 젊고, 머리회전이 그나마 빠른 아사드는 15디나르를 동포인 뚱보 브로커에게 주긴 주겠는데, 쿠웨이트에 도착해서 주겠다는 거다.

  여기에 소년 마완이 합류한다. 마완은 가진 돈이 15디나르가 되지 않는다. 10디나르도 빠듯하다. 그래서 브로커에게 말만 꺼냈을 뿐, 단 한 마디도 더 붙여보지 못했다.


  이렇게 세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앞에 등장한 사람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쿠웨이트 장군의 운전수 아불 카이주란. 곤경에 처한 장군을 우연히 만나 서둘러 차량을 고쳐주고 목적지에 시간에 맞게 데려다 주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장군의 전속 운전수가 되어, 군용 지프, 개인용 세단은 물론이고, 가족 행사라도 있으면 즐길 거리, 먹거리 같은 것을 잔뜩 싣고 파티나 야외행사나 사냥터까지 싣고 가는 일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아불 카이주란 정도의 수입이면 떼돈을 벌고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터이지만, 가족은 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니 카이주란은 가욋돈이라도 얻고 싶다. 그리하여 생각한 것이 물탱크를 싣고 쿠웨이트 방향으로 갈 때, 팔레스타인 난민 밀입국자를 태워주고 대가를 받는 일. 그래서 아부 카이트, 아사드, 마완을 손님으로 받았다.

  쿠웨이트에 가기 위하여는 군용트럭이라서 부대 두 곳에 들러 서류에 사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기지에 도착하기 전 약간, 일 처리하는 데 약간, 출발하고 약간의 시간 동안 불법입국자들은 뜨겁게 가열된 철제 물통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물통 안의 온도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 남자가 길어야 7분 정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안 될 것처럼 생각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한 일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벌어져 물탱크 안의 동포들 모두 사망해버렸다.

  원래는 선한 마음으로, 뚱보 브로커가 받는 돈에서 삼분의 일 정도 저렴하게 이들을 편하게 밀입국시키려 했다가, 이제 시체가 된 세 명을, 운전수 아불 카이주런은 고민, 고뇌 끝에 쓰레기장에 가져다 던져 버리고 떠난다. 시동을 걸고 출발해 한 백미터 정도 갔다가 돌아온 카이주런은 다시 트럭에서 내려, 죽은 이들의 호주머니를 뒤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손목시계와 기타 돈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이미 뻣뻣하게 경직된 시신에서 거두어 자기 주머니에 넣은 다음에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난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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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10-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개척자, 폴스타프님!
세상은 정말 크고 넓습니다^^

Falstaff 2026-10-22 04:49   좋아요 1 | URL
개척자는요 뭘... 그냥 읽는 거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