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소설가
임현 지음 / 창비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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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에 전남 순천에서 나서 전남대 국문과와 한예종 연극원을 다녔다. 2014년에 등단해 12년 동안 중편소설 1편과 단편소설집 세 권을 출간했고, 2017년에 문학동네가 주는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행복한 소설가》는 임현이 2021년부터 2026년 상순까지 쓴 단편을 모은 책.


  한예종 예술사(M.F.A.)를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을 읽고 이러네, 저러네 뭔 말이 많을 수 있을까? 오늘 독후감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쓰려 한다. 잘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는 임현처럼 쓰는 작가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영롱한 색의 거미줄처럼 섬세한 문장들이 대세를 이루어 이제는 단단하게 다진 콘크리트를 연상시키는 글을 읽으면 반가울 정도다. 임현의 글도 그랬다. 반가웠다. 비록 글이 담은 서사가 예전 시절 같이 좀 큼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러나 나는 이 독후감에서 작품이 내 마음에 들었건, 아니건, 어쨌든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표제작품인 <행복한 소설가>에서 말한다. 작가에게 시간이 나면 하는 일: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목록을 확인하기도 하고, 몇해 전에 출간한 내 소설집에 혹시라도 새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나 찾아보며 실망하기도 했으며” (p.257)


  임현이 특별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낸 책의 독자 서평이나 댓글을 찾아보는 건 아니다. 거의 모든 작가들도 예외가 아닐 걸? 하지만 그걸 자기 스스로 찾아보고, 좋아하거나 실망한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이렇게 내놓고 말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는 솔직한 감상을 쓰지 않는다. 벌써 작가, 역자, 또 ‘엮은이’ 심지어 출판사 편집자나 직원한테 여러 차례 항의를 받은 적이 있어서 괜히 피곤하게 신경쓰이는 피드백을 다시 받기 싫다.

  거기다가 임현의 작품은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간혹 심각하게 우울하고, 작품마다 주인공이 자살하거나 자살에 실패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자기가 낸 책의 독자 리뷰 같은 걸 꼼꼼하게 읽는다고 하면, 아이고, 거기다 대고 쥐뿔도 아는 게 없는 독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자꾸 길어진다. 하여간 자기 글에 대한 평가를 찾아본다는 작가의 글에 대한 코멘트는 줄이는 게 상책이다.

  작품들이 마음에 든 편이다. 그렇다고 팍, 와서 꽂힌 정도는 아니다. 뭐 이 정도면 되지 않겠어?


  잘 생각한 거다. 임현은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반응한다.


  “누군가는 나의 문장들로부터 의도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게 또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당혹스럽거나 화가 날 때도 있었고, 어딘가 답답한 마음에 혼자서 자꾸 무언가를 중얼거릴 때도 많았다. (p.264)


  임선생도 쪼잔하게, 작품을 한 번 썼으면 그만이지, 그걸 독자가 자기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는다고 별 생각을 다 하시네. 모든 독자가 자기 의도대로 읽어줄 걸 바랐나? 그걸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 커지면, 독자리뷰에 비밀댓글 달아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거다. 그러지 마시라. 책 팔았으면 다음엔 책을 샀거나 빌려 읽은 사람 거다. 이후엔 괜한 참견일 뿐이다. 쓸 때 좀 더 잘 쓰면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래서 작가질 하기 힘든 것이지 뭐.


  하나만 더 쓸까? 임현은 사람 또는 사회의식의 선악, 그 절묘한 경계선을 관찰하는 게 장기인 것 같다. 작품 속에 소위 의식 테스트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갑과 노트북을 공원 벤치에 올려두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누가 훔쳐가지 않는지 관찰하는 거. 또는 진상 고객으로 분장한 전문 배우가 역시 종업원으로 분장한 전문배우한테 호통치고 급기야 종업원이 무릎을 꿇는 일이 벌어지면, 이들 주위의 손님이나 행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테스트.

  나도 유튜브 같은 매체에서 이런 거 몇 번 봤다. 근데 볼 때마다 열이 뻗쳐 기분이 무척 상했다.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희들은 어떤 종자이기에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민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일종의 양심에 따라 행위하지 않은 피시험자가 있어서 그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건 어떻게 하고? 아니, 이런 건 전적으로 다음 문제이고, 도대체 이런 테스트를 하는 너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지나가는 자유인을 이리 욕보일 수 있느냐는 거다.

  임선생도 이런 거에 한 번쯤은 시비할 만했건만 그건 또 그냥 지나가버리더군.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잘 읽었다. 문장이 탄탄해서 좋았고,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을 관찰하는 시각도 마음에 들었지만 또 찾아 읽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 건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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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23 0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셋은 아무래도 좀 박한 거 같은데, 그렇다고 넷은 주고 싶지 않은.... 내 맘대로.

2026-10-2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10-23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6-10-2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그 ‘테스트‘ 좀 불편하긴 한데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불편했던 이유가 도청 때문이었거든요. 저는 누가 제 말과 행동을 그렇게 계속 몰래 관찰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ㅠㅠ

저도 점점 별 넷이 기본이 되어갑니다. 배달앱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되네요. 별 셋이 나쁜 건 아닌데도 셋을 주면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요ㅠㅠ 그래도 셋을 주기도 하는데 절대 나쁜 책이란 뜻이 아닌데...

Falstaff 2026-10-23 19:10   좋아요 0 | URL
그죠, 관찰 카메라라는 명목으로 몰래 테스트하는 거 정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같은 별 넷이라도, 차마 다섯 개를 찍을 수 없는 아까운 별 넷이 있는 반면에, 그냥 그런데 또 까기에는 좀 그런 별 넷도 있어서.... 물론 전반적인 별점 인플레이션이 대부분이고요.
근데 암만해도 여기가 책가게니까, 될 수 있으면 좋게 얘기하는 게 맞는 일일 거 같기도 해서 ㅎㅎㅎ 그거 참. 살면서 쉬운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