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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 국립극단 희곡선
이용훈.윤미현.김정윤 지음 / 걷는사람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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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의 창작희곡공모는 1957년부터 시작했다는데, 연도별로 수상작을 책으로 펴낸 것은 《2024 창작희곡공모 선정작》과 《2025 창작희곡공모 선정작》 두 권인 것 같다. 이렇게 늦게나마 연도별 공모작 수상작을 책으로 남긴 일이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동시에 만시지탄도 감출 수 없다 2025년 희곡공모에는 모두 175편의 희곡이 응모하여 당선작 이용훈의 <모노텔>과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 윤미현의 <옥수수밭 땡볕이지>,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를 선정해, 2026년에 국립극단에서 책으로 발간했다. 국립극단은 전에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젊은 극작가들을 발굴해 《희곡우체통 낭독 희곡집》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2019 펜데믹 때문에 2020년 낭독회 자체가 무산되어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짐작한다. 그저 짐작이다.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어떤 형식이든지 간에 매년 희곡공모가 이어지고 결과를 남기는 일은 의미가 깊다. 아무쪼록 끊기지 않고 계속 희곡공모와 희곡선집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당선작, 이용훈 작 <모노텔>.
모노텔은 경기도 서북쪽 국도에서 살짝 들어간 은밀한 곳에 있는 모텔이다. 20년 전에 전국적으로 시골 땅값을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업종 가운데 하나가 모텔이었다. 그동안 팬션이나 자연휴양림, 기타 게스트하우스 등의 발달로 이제 모텔은 사양 사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희곡의 무대가 되는 모노텔도 이젠 도로보수 외국 노동자 등이 장기숙박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가뭄에 콩 나듯이 내국인 손님이 찾지만 전처럼 연인이나 불륜 커플은 드물고, 알코올 중독자가 몇 날 며칠 동안 아무 신경 안 쓰고 술을 퍼 마시거나, 향정신성 의약품 주사를 맞거나, 정신 장애가 있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방법으로 ‘방’을 훼손시키려는 진상 손님들이 주로 찾는다.
한때 호텔 못지 않은 시설과 청결 등을 자랑한 모텔이 서서히 낡은 숙박시설로 변하는 도중에 모텔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하여 평면 TV, 5G 와이파이 같은 장비도 들여놓고, 결제 역시 무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만, 세상에 지는 해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모텔 이름이 모노텔. 등장인물은 야간청소 노동자, 프런트 안내인, 주간 청소 노동자 부부, 알코올 중독자, 형사 두 명. 그리고 에필로그로 가면 다수의 군인과 유령이 등장하는데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내 의견으로는 에필로그, 완전히 뱀다리다.
모노텔. 다른 등장인물 중에 ‘당신’과 ‘나’도 있기는 하지만 이 두 명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텔에 온 것이라기보다 혹시 이것들 동반자살하려고 온 거 아닌가 싶다.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린다. 하여간 이 두 명을 제외하고 작품은 거의 대부분 모노드라마 형식이다.
바로 앞에서 얘기한 커플 말고는 각 씬마다 한 명의 등장인물이 나와서 몇 페이지에 이르는 독백을 한다. 당연히 자기 입장에서 지금의 모노텔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진상들과 종업원들 사이의 마찰이나 상호 불신감 등등. 근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별의 별 손님을 경험한 프런트 안내인과 청소 노동자들. 아무래도 모텔업이 전반적으로 사양 모드로 들어가,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를 띌 수밖에 없기는 하다. 이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난장판과 우울. 재미있지만 밝게 재미있지는 않다. 당선작으로 뽑은 것에 불만 없다. 만일 에필로그가 없었더라면.
왜 에필로그?
이런 에필로그는 사족. 진짜 사족 중에서도 사족. 앞에 길게 썼다가 다 지워버렸다.
우수상 수상작인 윤미현 작 <옥수수밭 땡볕이지>도 비슷한 의견이다.
이 작품 속에는 1980년대 초반에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 출신 가족인 반쪽짜리 대문 집 어머니 가족과 당시 위장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던 녹슨 대문 집 어머니 가족, 그리고 동년배이지만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 대상으로 화장품 외판을 하던 빨간 대문 집 어머니 가족이 등장한다.
짧게 말해서, 40년 전에 구로공단에서 힘든 노동을 하던 부모, 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 노동자로 살며, 천안 부탄가스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아들, 수도꼭지 공장에서 오른 팔이 잘린 아들, 직장 내 상습적 성희롱으로 삶의 이유를 잃어가는 딸을 내세워, 가난의 세습, 힘든 노동이 대를 이어가는 절망의 현재를 그려낸다.
정말 가난은 절대로 세습되는 것일까? 세월이 조금 바뀌어 지금은 지도층 계급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 계급을 세습해주기 위하여 제도조차 자기들 입맛에 맞추려고 하고 있고, 이것이 가난의 세습보다 더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인데. 202X년에는 극빈의 상태에 처한 최하 계층을 제외하면 어떻게 해서든 상위계층에 진입할 “바늘 구멍 만한” 기회가 있기는 있다. 윤미현은 그 바늘 구멍 만한 기회에는 관심이 없다. 좋다. 그럴 수 있다. 그러면 자기들 지위를 세습하기 위한 지도층 계급의 비겁함 정도는 함께 말을 해주었어야지. 증거가 있냐고? 있지만 그만 하자.
다른 우수상 수상작, 김정윤의 <극동아시아 요리 연구>
연애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작품. 연애는 연애인데 남성 동성애. 연애 이야기는 결국 이별 이야기일 경우가 많다. 이 작품도 그렇다.
주인공 심진원의 직업이 요리 연구가이다. 어떻게 연구를 하느냐 하면, 특정 요리에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자신이 전에 먹었던, 먹어봤던 음식의 재현을 의뢰하면 요구한대로 그 음식을 재현해주는 일이다. 쉽지 않을 일. 어쩌면 불가능한 작업일 수도 있다. 먼저 의뢰인이, 자신이 다시 맛보고 싶어하는 음식의 맛을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맛 몇 가지와, 그것의 강약 정도로 미각을 설명하고, 그 미각을 띄게 만드는 이름을 모르는 재료까지 설명해야 할 터인데, 이건 음악이나 회화를 문자로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더불어 진원의 연인 승주의 관계. 승주는 게임 프로그래머. 그래서 작품 내내 게임과 관련한 묘사가 나오는데, 나는 게임 동네 언어는 거의 백치 상태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주된 스토리 라인은 헤어진 연인 승주에 대한 기억 또는 추억, 그리고 애정을 빌미로 한 친절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간섭. 읽어볼 만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희곡도 괜찮은 수준이다(아쭈? 지가 뭐라고.). 읽을 기회가 생겨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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