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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트의 만찬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5
이자크 디네센 지음, 추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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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크리스텐체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은 영어권에서 ‘이자크 디네센’이라는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타니아 블릭센 등 여러 필명을 썼다고 한다. 이이는 덴마크 코펜하겐 북쪽의 롱스테들룬트에서 출생해서, 지금도 이이의 “카를 블릭센 박물관”이 룽스테들룬트의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모양이다. 아버지는 부르주아 지주가문 출신의 작가, 군인, 정치가였고, 어머니는 선주船主 가문 출신으로 부르주아 유니테리언 상인의 딸이었다.
지적이고 보수적 정치인이었던 아버지는 20대 중반에 위스콘신에서 치페와 원주만과 잠깐, 1년 반 정도 살기도 했다는데, 거기서 뭔 짓을 했는지 그 새에 딸을 하나 두었고, 귀국할 때는 맨손으로 올 수 없어서 몸 안 가득 매독균을 가져왔단다. 집에 와서는 하녀와의 사이에 혼외자 한 명을 낳아 세계 인구증가에 이바지했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아버지는 자신의 장모와 아내에 계속 충실하겠다고 다짐해서 충격을 주었다는데, 위키피디아에 영어로 쓰인 ‘mother-in-law’라고 썼으니, 법적으로 맺어진 가족, 즉 이자크 디네센의 외할머니와 엄마를 지칭하는 것이겠다. 하녀와 하녀의 엄마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한 내가 짱구였다. 나는 잠깐 헛갈렸지 뭐야? 하여튼 매독으로 인한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빠는 이자크, 즉 카렌이 아홉살이던 1895년에 쉰 살의 나이로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숟가락 놨다.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아기 입에 은수저가 물려 있었던 이자크는 아빠가 죽은 후에 엄마하고 외갓집에 가서 확실한 유니테리언 정서 속에서 본격적인 부르주아 숙녀로 성장해가며 여권신장에 관한 논의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열세 살이던 1898년에는 스위스에서 1년 동안 프랑스말을 배웠고, 열일곱 살 때 코펜하겐에서 샬롯 소데 미술학교, 1903년부터 3년 동안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20대 중반에는 학문의 외연을 키우기 위하여 파리, 런던, 로마에서 공부했단다.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은 부계쪽으로 사촌의 가문이라고 나와있다. 유럽 종자들 족보는 좀 이상하다. 그러면 이자크 디네센도 폰 블릭센-피네케 가문이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하여튼 이자크가 사촌 한스를 좋아해 안달을 했지만, 한스가 눈길 한 번 안 주는 바람에 잔뜩 열을 받은 이자크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쌍둥이 형제 브로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한테 안다리 후리기, 진한 관계를 맺어 ‘닭 대신 꿩’을 낚았다.
워낙 큰 부르주아 가문이라서 이 집안의 재산은 세상 곳곳을 통해 나날이 불었는데, 한스 대신 브로드와 결혼한 게 조금 걸렸는지, 연인은 덴마크 정착에 어려움을 겪으며, 일단 가문에서 커피 사업에 투자한 케냐 몸바사로 가서 1914년에 결혼신고를 해 카렌은 본격적으로 폰 블릭센-피네케 남작부인의 자리에 올라, 이혼을 거쳐 남편이 재혼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남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즐겼다. 그러면 뭐해? 결혼 1년 후인 1915년 남편 블릭센 남작이 장인을 본받아 덜컥 매독을 옮아와 부부는 이후 수은치료에 이어 비소 치료를 받았고, 이 영향 때문에 이자크는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야 했던 것을.
이후 이이가 아무리 복잡하고 곤란한 개인사를 엮었더라도 당시 거의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한 복지를 누렸으니 뭐 그런가 보다 하자. 하여튼 케냐에 살 때 경험한 건 우리나라에 이자크 디네센이 아니라 카렌 블릭센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써서 엮었다. 그렇게 한 세상 잘 살다 간 부르주아 소설가.
《바베트의 만찬》은 중단편 다섯 작품이 실린 소설집.
이자크 디네센은 당시 유럽 문학계가 알아주던 재미있는 이야기꾼이었던가 보다. 읽어보니 그럴 만하겠다. 진짜 재미있게 구성으로 그걸 또 풀어나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단, 20세기 초의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읽으면 어떠냐고? 물론 재미있다. 근데 작품들이 성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초년생 정도가 읽으면 아주 딱일 듯하다는 말씀.
이 이자크 디네센은 소설가로 나름대로 조금 불리한 입장이기도 했다는데,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몇 번인가 이이를 수상자로 선정하고 싶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놀림감이 되곤 하던 “스칸디나비아 작가 우대” 또는 편향의 의심을 떨치기 위하여 최종 결정자를 뽑을 때는 디네센을 제외했다는 풍문이(겠)다. 그 정도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꾸몄다. 그러나 지금 읽어보면 중학생 수준으로. 물론 내 의견에 반대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그걸 넘어서 화를 내는 분도 있을 터이지만 한 아마추어 독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주면 좋겠다.
《바베트의 만찬》의 표제작 <바베트의 만찬>이 이자크 디네센의 대표작이라고 하며,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나 이이가 죽고 34년이 지난 1996년이라 원작에 대한 저작권료는 누가 챙겼는지 몰라? 하여튼 그리하여 오늘 독후감은 중/단편 <바베트의 만찬>만 읽어보는 걸로 하겠다.
작품의 무대는 노르웨이 작가들이라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숱하게 무대로 삼은 피오르 지형의 바닷가에 오종종한 집들이 원색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마을. 이 동네를 ‘베를레보그’라고 하자. 이 가운데 노란색으로 단장한 제법 큰 집에 나이 많은 두 처녀 자매가 살았으니 둘 다 키 크고 늘씬한 몸매를 평생 회색과 검은색 드레스 속에 감추고 다녔다. 워낙 단정한 옷차림이어서 유행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산 이들 가운데 언니가 마르티네, 동생이 필리파. 적어도 65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은,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이 지역에서 독실한 교파를 일군 목사이자 예언자였기 때문이다. 자기는 결혼해서 딸 둘을 두었더라도 두 딸은 남자한테 손목 한 번 잡혀보지 못할 삶을 살게 만든 기독교 원리주의자 비슷했을 터. 그의 주장은,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해서 진정한 현실은 오직 그들이 기다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있다고 굳게 믿어, 세속의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는 거. 그럼 됐지, 뭐하러 늘그막에 결혼을 해 딸 둘을 두었느냐고? 이런 아버지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떴고, 숟가락 놓자마자 중심을 잃은 신도들은 서로 질시하고, 소외시키고, 소외당하고, 미워하고, 떼를 지어 무리끼리 대놓고 싸우면서 흐지부지 되었어도 그러나, 여전히 자매의 노란 집에 모여 계속 성경을 읽고 있기는 하다.
12년 전, 비오는 깜깜한 밤. 노란 집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려서 현관을 열어보니 비탄과 공포에 떨며 갈 곳 없이 헤매는 도망자 여인이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이를 집에 들여 몸을 추스리게 한 다음에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여자의 이름이 바베트. 분명 작은 노란 집에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 큰 체격의 프랑스 식 미녀. 바베트는 자신이 요리를 좀 할 줄 아니까 하녀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 만하면 된다고. 자매는 이를 불쌍히 여겨 그저 잡안의 잡일만 해오던 나이 어린 동네 꼬마를 집에 보내고 대신 바베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이렇게 산 것이 12년 세월이니 이젠 서로 알 건 다 알겠지? 이 가운데 하나가 바베트한테는 자동 발행되는 로또 복권이 한 계좌 있다는 것. 자주 말하기를, 언젠가 이 복권이 맞기만 하면 1만프랑 이상의 상금을 받아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란 집의 늙은 자매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소설 처음 보나? 저 뒤에 가면 정말로 복권이 맞아 작품이 뒤집어지겠는 걸? 이런 꿍꿍이를 하기 시작한다. 권총이 나오면 언젠가는 누군가 방아쇠를 당기듯이, 이자크 디네센이 괜히 복권 이야기를 한 건 아니잖아?
자매가 젊은 시절에는 둘 다 미스 스칸디나비아 진 수준의 미녀였다. 하도 아름다워서 피오르 지역에서는 자매를 채 갈 남자는 없다고 여길 정도였으니 그냥 그렇게 상상할 수밖에. 하지만 세상 살면서 한 번도 인연을 만나지 못하기도 쉽지 않다.
먼저 등장한 남자가 로렌스 로벤히엘름 중위. 바깥 세상에서 온 경기병 장교. 하도 골통짓을 해 빚더미에 올라 열받은 아버지가 자기 동생이 시집간 시골마을 포숭으로 보냈는데, 거기가 베르레보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것. 로벤히엘름 중위는 온갖 공을 들였지만 기어이 언니 마르티네한테 딱지를 맞고 정신을 바짝 차려, 군기도 바짝 오른 상태로 부대에 복귀한다. 이후 건실하고 용맹한 군인으로 변신해 줄기차게 승진을 거듭, 덴마크의 훌륭한 장군이었다가, 명예로운 퇴역장군으로 늙어간다.
두번째 방문자는 당시 마흔 살이던 파리의 유명 오페라 가수 아실 파팽. 그가 스톡홀름 왕립 오페라극장에서 1주 공연을 마치고 주위 권유로 노르웨이 해안가에서 쉴 목적으로 온 곳이 베르레보그. 여기 교회에 갔다가 둘째 필리파가 놀라운 소프라노 목소리로 뽑아내는 성가를 듣는 순간, 사랑을 느끼면서 목사에게 특별 성악 레슨을 제안해 받아들여진다.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와 야생화, 북유럽의 백야가 담긴 여인의 음성이라니 최고의 수식은 다 모인 거다(키르스텐 프라그슈타트?). 그러나 아실 파팽 역시 평생 숫처녀로 지낼 각오로 충만한 필리파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파리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남은 건 뭐? 그렇지! 바베트의 복권 당첨. 드디어 터졌다. 이제 자매는 바베트가 큰 돈을 얻었으니 틀림없이 파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고, 바베트는 파리로 가기 전에 자기가 자기 돈으로 직접 만찬을 열어 그동안 보살펴준 자매와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겠다고 뜻을 전해 받아들여졌다.
피오르 지역의 만찬이래봤자 대구 요리와 청양고추 넣고 끓인 대합탕 정도겠지. 이렇게 생각했을 터. 하지만 바베트는 전직이 파리에서도 최고급 레스토랑의 셰프였다. 부르주아 중에서도 최 상류 부르주아들만 바베트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하니 세상에나. 나폴레옹 3세 말기, 프랑스 코뮌 시절에 코뮌 그룹에 동조해 바리케이트에 올랐던 일 때문에 전국에 지명수배되어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까지 도망했지만 정작 직업은 정치적으로는 반대했던 부르주아의 혀를 위한 요리사였던 것. 이런 바베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뻑적지근한 만찬을 꾸몄어도, 노르웨이의 한적한 바닷가, 가옥이라고 백 채가 될까 말까 한 코딱지 만한 마을의 촌 사람들이, 바베트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든 고급 요리를 먹고 그게 좋은지 아닌지도 몰랐던 만찬.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이 날의 손님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포숭의 고모댁을 방문한 덴마크 장군이 있었으니, 누구나 존경해마지않는 로벤히헬름 장군이었던 것. 그는 식전주가 세상에서 제일 최고급이라는 것을, 수프 역시 파리에서도 쉽게 맛보기 어려운 바다거북으로 만든 것임을, 케비아가 덩어리 채 식탁에 놓였으면서도 색깔 때문인지 손님들의 포크가 여간해 닿지 않았다는 것 등등, 모든 음식을 이해하고, 먹어본 적이 있고, 심지어 파리의 어느 식당의 주방장 누가 만들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걸, 겸손한 어조로 고마움을 얹어 이야기한다. 마음 속에서 여전하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사랑하다가 죽을 첫사랑 마르티네에게.
그러면 바베트는? 이튿날 덴마크를 거쳐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올랐을까? 오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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