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이야기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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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가 내가 주목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언젠가는 결국 읽겠지, 이런 마음이 스미스의 서가 앞을 지날 때마다 늘 들었었다. 결국 <여름>을 읽고 반년 만에 책을 뽑아 열람실로 올라갔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뭘까? 가을부터 시작하는 스미스의 4계 시리즈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그렇거나 말거나 독자는 일단 읽고, 읽은 다음에 나름대로 생각하면 그걸로 끝이다. 4계절 시리즈에 이어져 있건, 그렇지 않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

  요즘 책에는 뒤에 “역자 해설”이나 “작품 해설” 같은 게 붙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의 안 붙어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 아니다. 그런데 페이지 수는 엄청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 무려 3백페이지에 달하는 신묘한 편집 기술을 자랑했건만 역자나 평론가 해설 없이 정가가 1만7천원. 10% 할인가 15,300원 이상을 주어야 내 책장에 꽂을 수 있다. 책의 저자와 역자는 인세 받아 산다고 쳐도, 공부 열라 해서 평론가로 등단했건만 교수나 교사 또는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강사, 하다못해 동사무소 문화강좌 자리도 얻지 못한 이들은 뭐해서 먹고 사는지 내가 다 걱정이 된다니까?


  스미스의 4계절 시리즈에서 내내 주장했던 것이, ①영국으로 유입된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대한 인권문제, 특히 유치 시설과 지원 서비스의 열악함, ②브렉시트에 따른 고립과 우익 민족주의의 대두, ③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 등의 정치적 사안이 중심이었고, 마지막 <여름>에는 여기에 ④COVID-19 격리수용을 보탰다. 작가의 개인적 사실인지 아니면 더 하고 싶은 정치적 이야기가 있어서 만든 허구인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화자 ‘나’의 아버지가 감염병이 아닌 심장병으로 COVID-19 시대에 입원한 상태이며, 감염병 예방 조치의 일환으로 감염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증명하는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접적인 면회가 불가능 한 시기를 시간적 무대로 정했다.

  영국에서 이 시절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중 화자 샌디 그레이, 애칭 ‘샌드’가 주장하기에 인구비례 해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는데, 발병 이후 어느 정도 진압이 되었는지 영국 정부가 어쨌든 이동의 자유를 허용한 시기.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전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샌드도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코로나 진단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과 마주 대면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주제는 도요새와 통행금지. 도요새로 대표하는 자유 왕래와 통행금지, 즉 감금. 그러나 도요새, 자유 비행과 이동의 자유를 대변하는 도요새는 역으로 “통행금지”에서 대장간 소녀의 어깨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한한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언정.


  2021년의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가 한 통 왔다. 진짜로 난데없는 대학 같은 과 동기동창 마티나 잉글리스로부터. 동기동창이라고 친한 친구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룹 세미나를 할 때에도 다른 조로 묶여 함께 공부해본 적도 없고, 미팅도 같이 해본 적 없고, 하다못해 미장원도 다른 미장원에 다녔다. 아, 시, 영어시는 영어시인데 영국 시인이 아니라 미국 시인 e.e. 커밍스가 쓴 영시를 읽고 비평하는 실용비평세미나에 우연히 같은 시인에 대해 발표할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세미나 전날이던가 하여간 임박한 날 저녁에 마티나가 샌드의 기숙사 방에 쳐들어왔다. 무작정 하는 말이, 아이들이 너더러 수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 특히 문학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네가 제일이라던데? 하면서 눈물바람 부터 했다. 내일 발표할 커밍스의 시를 자기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래 샌드가 커밍스의 시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힌트를 주었고, 그랬더니 마티나는 한술 더 떠서 내일 샌드가 발표할 자료의 복사본을 한 부 달라고 하는 거였다. 뭐라? 발표 내용을 미리 한 부 달라고? 샌드는 거절한다. 그러면 마티나가 샌드가 작성한 발표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미리 발표할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에. 마티나는 울며불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고 궁상을 떨어, 마음 좋은 샌드가 상당한 부분을 제공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티나는 차라리 파Farr 다리에서 떨어져버리거나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결연히 말했기 때문에. 샌드가 그래서 한 마디 보태기는 했다.

  “네 방은 1층이잖아?”

  이 말에 둘이 함께 웃음을 쏟아내던 기억이 났다. 기어이 마티나는 울음을 쏟아내긴 했어도.

  e.e. 커밍스. 훗날 매카시의 마녀사냥을 적극 지지하고 노골적으로 성차별, 인종차별적 시구를 흩뿌려 놓을 시인. 시나 좀 못쓰기나 하지, 참. 산다는 게 그랬다.

  마티나가 거의 40년 만에 전화를 해서, 뭐라 했느냐 하면, 지금 국립박물관의 보조 큐레이터로 근무하는데 당일치기로 대륙에 가 보물급 열쇠 한 점을 가지고 입국하는데 히스로 공항 출입국사무소 직원한테 걸려, 입국할 때와 다른 여권을 소지한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라서인지 창문 없고, 출구 손잡이 없는 폐쇄공간에 일곱시간 반 동안 감금되었던 일을 토로했다. 한참을 떠들다가 언제 만나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자고, 자기가 어렸을 때는 피겨 스케이트로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그랬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통화하는 중에 감히 나 한테 “변덕스런 샌드”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등 뒤에서 그렇게 샌드를 부르는 지는 알았어도 한 번도 직접 면전에서 변덕스런 샌드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성별에 관계없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어서 그랬을까? 하여간 그건 그거고, 일단 별로 영양가 없는 통화는 끝났다.


  문제는 마티나 잉글리스, 결혼 후 지금까지 마티나 펠프가 샌드와 통화/대화 후에 집에서 성격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전화 한통에? 혹시 일곱시간 반의 감금 때문 아닐까? 하여간.

  그래서 마티나가 낳은 아이들, 쌍둥이 리와 이든 펠프가 샌드의 집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어엿하게 감염병 시대에 남의 집, 그것도 안으로, 실내로 들어오려 하니 일단 문 앞에서 한 번 막고, 문을 열고 현관 앞에서 막았다. 리와 이든은 엄마가 변한 것이 샌드 때문이라고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다.

  감염이 된 상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샌드는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절대로 코로나에 감염이 되면 안 될 처지. 지금 저들이 있는 곳이 현관이지만 실내로 들어오거나, 몸은 현관에 있지만 바이러스가 실내로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일 뿐. 샌드는 차라리 아버지의 늙은 개 셰프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쪽을 택했다. 이 장면, 읽으면 무지하게 열받는다. 내 집으로 아무런 양해 없이 쳐들어온 타인 때문에 내가 집을 나가야 하다니. 아버지 집에 가서 마티나 휴대폰으로 전화하니까, 이런, 마티나도 지금 샌드의 집에 머물고 있고, 조금 있으면 남편과 다른 자식 하나도 샌드의 집에 도착할 거란다. 자기 집을 몽땅 뺏긴 상태.

  이거 어디서 봤지? 내가 처음 읽은 앨리 스미스의 책, <데어 벗 포 더>. 알지 못하는 친구의 친구 집 파티에 가서 슬며시 2층의 한 침실로 들어가더니 아예 방을 점거해버린 남자 이야기. 자그마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음식 같은 작은 물품을 옮길 용도의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죽어버린 <호텔 월드>.

  마티나와 그 가족들, 이거 무단 점거 아냐? 하긴 앨리 스미스는 이런 이야기가 요즘 신경쓰는 정치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좋기는 하지.

  아직 나는 작품의 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도요, 도요새가 상징하는 자유 이동과 통행금지와 마티나가 공항에서 겪은 격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출발선이 이렇게 해서 그어졌다는 얘기만 했을 뿐. 남은 건 본격적인 달리기. 준비. 차려.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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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연대기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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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971년에 알바니아에서 알바니아어로 출간된 원본을, 1973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을 이창실이 다시 번역, 즉 알바니아어-프랑스어-우리말 순서로 중역한 책이다. 서쪽으로 에게해를 면한 알바니아는 북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에 코소보, 동쪽엔 북 마케도니아, 그리고 남쪽으로 오랜 세월 알바니아를 적극적으로 간섭한 역사를 지닌 그리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이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그리스와 오랜 영토 다툼을 하다가 1987년에 현재의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이 그리스 접경도시인 지로카스트라. 산비탈이 진 곳에 수백년 동안 돌집을 하나 둘 지어 마을을 형성해 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안 가봐서 모른다. 이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마을이 대개 그런 식이라 그러려니 할 뿐이다. 책 속의 주인공 소년이자 화자 ‘나’의 집도 이런 비탈에 지은 돌집이고 동네에서 제일 크고 넓은 집이라니 대대로 마을 유지 정도였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경사가 급한 비탈에 생긴 마을이라서 누가 술 한 잔 장히 자시고 골목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낙상이라도 하면 남의 집 지붕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산악지형의 도시 아래 계곡엔 풍부하지 않지만 물이 흐르고 계곡과 계곡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다. 전쟁통에 이런 다리는 대개 끊어질 운명에 처하지만 이 마을의 다리는 끝까지 꿋꿋하게 서 있다. 다리를 건너면 또다시 급한 경사의 산악지대가 나타나는 한편 왼쪽으로는 소 방목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넓은 벌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벌판에 ‘나’의 외갓집이 있어서 집에 일이 있으면 부모가 ‘나’를 외갓집으로 며칠 보낸다. 외갓집에서 2백보 정도 떨어진 옆집에 수자나라는 여자 아이가 있어서 ‘나’가 도시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해주면 넋을 잃고 듣는데 그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외갓집에 가라면 무척 좋다.

  카다레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풍경이다. 산비탈의 도시, 산과 산을 잇는 다리와 계곡을 흐르는 강, 그리고 산지 사람들이 보기에 넓은 평야. 이 평야를 통해 튀르키예군, 그리스군 또는 독일군이 도시로 침공하며, 이탈리아군이 도시를 먼저 점령한 후 평야쪽으로 펼쳐 나간다. 역사상 거의 언제나 약소국이었던 알바니아 사람들은 이 침략군들이 눈에 보이면 다시 새로운 상황이 생긴 것으로 인정하고 창문이나 지붕에 흰색 커튼을 내다 걸어 이들을 들여보낸다. 또는 이국의 병사들에게 저항하다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패색이 짙어진 다음에 그을음이 묻은 흰 침대보를 창분 밖에 걸쳐 놓든지.

  아쉽지만 그렇게 살아야 했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이스마일 카다레가 1936년생. 병자년 쥐띠. 작품을 시작할 당시 계곡에서 불쑥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이상한 도시는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화된 상태였다고 말한다. 도시는 12~13세기에 한 성주가 높은 산허리에 성탑을 세우면서 생기기 시작해 이어 다닥다닥 돌집이 붙기 시작했다. 15세기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 처음으로 도시가 텅 비워졌으며, 몇 백 년 후에는 튀르키예 군사들의 살육을 피하기 위해 거의 모든 주민들이 도시를 떠났었다. 이제 2차 세계대전을 맞아 아비시니아를 점령한 이탈리아군이 아주 잠깐의 영광을 위하여 독일과 연맹을 이루어 알바니아를 차지한 후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영국과 협력하기로 한 그리스에 역전패를 당해 다시 그리스군에 의하여 점령당했다. 본격적인 세계대전으로 번진 전쟁 동안 스탈린그라드에서 쌍코피가 터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방면으로 철군을 하며 다시 한번 알바니아는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간다.

  이 과정을 1936년생인 카다레가 다 기억하고 있을까? 분명히 기억 속에는 이탈리아군, 그리스군, 그리고 독일군의 점령과 당시 피난길을 떠난 기억은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기억만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이의 기억도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말처럼 “유년시절은 과거시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짓말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이라기보다 당시에 들은 이야기와 이야기의 여러 파편을 모아 서로 연결하고, 추리하고, 픽션이라는 툴을 이용해 가공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돌’은 당연히 도시가 돌집으로 만들어졌으니 도시를 이룬 돌, 즉 도시의 연대기를 말할 터이고. 이 작품을 출간한 것이 1971년. 전쟁이 끝나고 26년 후. 한일월드컵이 2002년. 벌써 23년 반이 됐다. 이 행사를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여길 수도 있으니 사람이 죽어나가고, 총맞아 죽고, 찢어져 죽고, 펑 터져 죽는 충격이 월드컵 축구 시합보다 몇 십 배 더 컸을 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여전히 선연한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의 재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화자 ‘나’는 아이. 열 살 미만으로 보이는 소년이다.

  막이 올라가면 이 오랜 도시의 나이든 사람들이 ‘나’의 집 응접실에 모여 도시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이 장소에서 거론되지 않는 도시의 일은 없을 정도. 늙은 할머니 제조가 소식 한 가지를 가져왔다. 체초 카일의 딸 한테 불길한 턱수염이 남자처럼 자라고 있단다. 체초 카일은 이걸 숨기기 위해 딸을 방에 가두고 밖에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동네에 마네 보초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이의 아들 이사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였다. 글쎄 안경을 쓴 거다. 불길한 유리를 눈 앞에 대면 세상이 찌그러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그걸 눈 바로 앞에 대야 제대로 보인다니, 정말 말세가 왔는가 보다. 몇 주 전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내 복판에 자기나라 수녀들이 머물러 살라고 시멘트로 하얀 집을 지었다. 이걸 주민들은 종이집이라 부른다. 종이로 사람 사는 집을 짓다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니까 역시 세상은 말세다, 말세. 결혼식 때 신부화장을 전담하는 노파 피노 어멈은 늘 말세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아무리 전쟁중이라도 어디서나 결혼은 하는 법이라 피난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아 오해를 받아 책 뒤편에서 목매달아 죽는 형벌을 받아야 했던 여인.

  비가 온다. 많이 온다. 도시는 경사가 급해 비가 오면 산 꼭대기에서 바위나 흙이 밀려 내려와 심할 때는 집 한두채가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골목을 따라 급류가 생겨 물이 갑자기 아래 강으로 쓸려 내려가 식수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큰집은 마당 아래 큰 물 저장고를 만들어 갈수기 때 동네 주민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근데 적당히 물을 저장해야지 탱크가 넘치게 물을 받으면 오히려 집이 중력에 의하여 아래쪽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올해 ‘나’의 집이 그랬다. ‘나’가 큰 저장고 아래로 고개를 디밀어 보니 엄청난 양의 물이 탱크를 채웠다. ‘나’는 궁금하다.

  “사람과 물. 이 둘 중 누가 더 갇혀 있는 것을 괴로워할지 혼자 생각해보고 있었다.” (p.11)

  전쟁 당시의 알바니아 국민, 카다레의 고향 지로카스트라, ‘나’의 집이 있는 산허리의 도시, 돌집, 이동이 힘든 산악지역의 도시 자체가 사람들을 갇힌 상태로 있게 만든다. 그래서 다 큰 여자의 턱에 수염이 돋는 일, 공부를 한 청년의 눈에 안경을 쓰는 일, 이탈리아 수녀들이 종이로 만든 집에 사는 일 같은 것은 검은 구름에서 푸른 말을 타고 세상을 멸하려 쏟아져내려오는 불의 천사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스마일 카다레는 1989년부터 시작한 동유럽의 해방 시절에 유독 봄바람이 늦게 오는 알바니아를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해버릴 예정이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소년인 ‘나’는 이런 게 오히려 다 재미있다. 누나의 턱에 수염이 나는 것, 공부 많이 해 눈이 나빠진 옆집 사는 (아직 주민들은 모르지만) 젊은 공산주의자 이사형의 책꽂이에서 <맥베스>를 뽑아와 열 번도 넘게 읽으니 스코틀랜드의 왕 시해와 살인범의 상태가 이해되던 것도. 열일곱 살 먹은 명랑한 작은 이모는 시집가려고 식탁보 같은 곳에 열심히 수를 놓고 있다가 엉뚱하게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혼자 몸으로 산에 올라 반 파시즘 공산 파르티잔이 되는 것도 혹시 독일군 총에 맞아 죽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재미있고 근사한 일이다. 우리 이모가 산에 갔어! 얼마나 광 나는 일이냐는 말이지.

  죽마고우 옆집 친구 일리루의 형 야베르가 말한다. “너희는 노예로 자라서 자유로운 도시가 뭔지 몰라.”


  아이의 눈을 통해 전쟁과 전시의 시민들을 보았다. 그러니 전쟁은 실제 전쟁만큼 심각하지 않다. 간혹 적들의 폭격기와 은근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소년이니까. 전시라서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고 적나라한 인성이 그래도 나타나는 일도 많다. 흔히 아이들이 아프면서 배운다는 데, 전쟁이야말로 다른 어느 것보다 아픈 기억일 터이니 빨리, 많이 배운다.

  막 결혼했지만 사내 구실을 못한다고 소문이 난 막수트.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혼인을 해서 그런지 소문이 나자 두문불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사라졌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모멸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그랬을까? 숱한 이웃을 이탈리아 군에 고발하는 첩자짓을 서슴지 않았고, 이런 비밀은 절대 끝까지 가지도 않는 일이라 이탈리아군이 물러나고 독일군이 재점령할 잠깐의 사이에 산사람들이 내려와 포고령에 의하여 총살에 처해버린다.

  영국 공군에 의한 폭격, 독일 탱크의 진군. 산골의 한 돌집 도시가 힘겹게 한 시절을 견디는 광경을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 힘들지만 결코 절망적인 시선도 아니다. 지지고 볶고, 죽고 죽이고, 굶어 피죽도 못 얻어먹어도 사람은 살아간다.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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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12-23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5별. 4는 아쉽고 아쉽다. 5는 조금 과하다.

yamoo 2025-12-2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다레가 알바니아 근처 출신이었다니!! 여태껏 스페인출신이라는 착걱 속에서 살았네요..ㅎㅎ

Falstaff 2025-12-23 16:06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ㅎㅎ 함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

감은빛 2025-12-24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을 읽으니 머리 속에 그림처럼 여러 장면들이 그려지네요.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저 어제 책 주문했는데, 어제 주문하기 전에 이 글을 읽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이 책은 해가 바뀌어야 주문하겠네요.

Falstaff 2025-12-24 04:29   좋아요 0 | URL
새털 같은 나날인데 서두르지 마셔요. 연말과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바람의 잔해를 줍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6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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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에 가족의 원래 고향인 미시시피 덜레일로 이사해 청소년 시절까지 보낸 제스민 워드. 중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미시시피주와 겨우 천여 명이 사는 고향 덜레인은 워드에게 애증의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워드는 스탠포드에서 영문학학사, 미디어 석사. 몇 년 지나 2005년에 다시 미시간 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를 취득했다. 바로 이 해, 2005년 8월에 미국 남동부 해상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했다. 플로리다를 관통한 1등급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멕시코 만에 머무르면서 하루만에 초대형 급인 5등급 허리케인으로 몸집을 키운 후 드디어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상한다. 이 영향으로 뉴올리언스와 인근 지역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으니, 카르리나 양이 호수의 제방을 무너뜨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때 숱한 사망자와 실종자 그리고 이재민이 발생해 수만명이 뉴올리언스 돔 경기장과 컨벤션 센터 등에 수용되었는데, 지금도 기억하거니와 전기와 용수 등의 문제로 고생 깨나 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연일 송출했었다. 왜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을 하느냐면, 2005년에 내가 빌어먹고 살던 회사의 당시 회장이 겨우 14세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파키스탄계 미국인 수재였는데, 회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갑자기 흡혈귀로 변신해 모든 지역의 인원감축, 급여 동결, 복지 프로그램 취소와 더불어 극단적인 원가절감을 강조, 직원 전체, 말로만 직원 전체가 아니라 진짜로 모든 직원을 들들 볶아대고 있던 찰나, 뉴올리언스의 수퍼돔과 컨벤션 센터의 참상과 이에 따른 인종간 갈등 등의 방지를 위하여 전세계 법인이 솔선해 모금을 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인원감축과 급여동결, 복지 취소, 그리고 달달 볶는 원가절감으로 파김치가 되어 버린 직원들한테 뭐? 태평양 건너 멀고 먼, 얼굴을 봐도 누가 누군지 구분도 못할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아 달러로 바꿔 보내주자고? 걔네들 천조국 국민 아냐? 그 회장새끼도 자기가 파키스탄 출신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더 지랄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 회장새끼 아니었으면 좋은 마음으로 모금에 응했을 것인데 사는 게 뭐 그렇지.

  게다가 각 국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내지만 인당 인건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 법인을 철수하겠다고 날이면 날마다 엄포를 뻥뻥 쳐대던 와중에 피 같은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나겠느냐고? 정말 우리나라가 직원의 인당 인건비가 제일 높았을까? ‘생산직 직원 인건비’는 그렇다. 일본, 타이완, 이탈리아, 미국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다. 임원 인건비는 아니다. 2005년에는 확실하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 같다.

  하여간 2005년 워드가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카트리나가 상륙해 이이의 고향땅을 결딴냈고,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고 달려갔건만 제방을 무너뜨려 온 천지가 물바다가 되어 그저 발만 동동 굴러댈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미시시피 인근의 가상 흑인 거주 마을 부아소바주에 카트리나가 오기 전 열흘, 당일, 그리고 다음날까지 12일 동안의 흑인 가족 이야기이다. 따라서 작가의 체험담이 아니고 전적으로 픽션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물론 작가의 가족이나 이웃, 주변사람들이 하는 말을 다 채록해서 참고했겠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로즈와 클로드 바티스테 부부는 연년생으로 랜들, 스키타, 그리고 주인공인 외동딸 에쉬를 낳아 없는 살림이지만 흑인 커뮤니티 부아소바주 마을에서 만족하며 살았다. 삼남매가 연년생 비슷한 터울이었다가 이후에 태기가 없었는데, 에쉬가 여덟 살이 되자 늦게 아이가 들어섰고, 엄마는 막내 아들 주니어를 출산한 직후 즉시 병원으로 옮겼지만 안타깝게도 그걸로 끝이었다.

  처음엔 아빠가 주니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타 먹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위로 삼남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고 주니어를 키우게 했다. 그러니 막둥이한테 두 형과 누나와는 엄마 비슷한 관계일 수밖에. 아빠도 열심히 산다. 홀아비가 된 이후에 술이 더 늘어 알코올의존 성향이 짙어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이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고, 부아소바주로 향해 온다는 카트리나에 대비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일생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의 술. 가족은 빈곤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집은 40년 만의 5등급 허리케인을 버틸 만큼 튼튼하지 않은데, 그나마 하나 있는 벌이 수단인 트럭도 이제는 수리하지 못할 정도로 낡아 버렸다. 게다가 고물 트럭을 이용해 집을 보수하려다가 허리케인이 오기 전날 한 번에 아버지가 손가락 세 개를 날려버렸으니 이를 어쩔꼬.

  맏아들 랜들은 농구실력이 뛰어나다. 자기 생각으로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하는데, 국영수 공부해서 대학 가는 건 꿈도 꿀 수 없어서 농구 특기생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 여름 농구 캠프에 들어가야 하지만 입회비가 문제다. 얼른 보면 집안일엔 관심 없고 오직 농구 하나에만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만에. 집안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주니어는 랜들의 등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모르고, 랜들 역시 한 순간이나마 막둥이를 품에서 내려놓을 생각이 없다.

  둘째 스키타. 엄마를 닮은 랜들처럼 키가 크지는 않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뭉친 소년. 얼핏 보면 아빠나 형제, 누이보다 자기가 돌보는 ‘차이나’라는 이름의 맹견 흰색 핏불테리어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차이나가 초산으로 새끼를 분만하는 것이 작품의 첫 장면이다. 말이 핏불테리어지, 이게 보통 맹견이 아니라서 주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공격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가족 누구도 차이나와 차이나의 주인인 스키타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꼭 그래서 만은 아니고 스키타 역시 고집불통에 사나운 성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집안 돌아가는 걸 식구 가운데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는 건 가족 아무도 모른다.

  셋째가 주인공이자 외동딸 에쉬. 얘만 형제 가운데 공부에 소질이 있다. 지금은 그리스 신화, 이 중에서도 메데이아에 관해 열심히 뇌활동을 하고 있다. 열두 살 때 랜들 오빠의 친구이고, 아직도 자주 집에 놀러 오는 매니 오빠가 자신의 몸을 만졌고,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다시 좋아져 그냥 내버려둬 첫 경험을 했다. 이후에도 매니 오빠가 좋다. 다른 남자애들도 에쉬에게 접근했다. 에쉬는 거절하는 귀찮음보다 허락하는 간편한 방법을 택해 상당히 많은 남자애들과 숲 덤불 속으로 향했다. 이 사이에 매니 오빠는 자기 마음도 알아주지 않고 다른 여자애와 애인 사이가 됐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에쉬를 범했으며, 특히 최근 다섯 달 동안엔 매니 오빠하고만 했는데 어느덧 열다섯 살이 된 에쉬가 덜컥 임신을 해버리고 말았다.

  막둥이 주니어. 이제는 좀 컸다. 그래도 식구 가운데 제일 작다. 미국 남부의 집을 보면 집과 땅 사이에 공간을 띄운다. 해충이나 독사 같은 것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 이 틈 사이에 주로 잡동사니 같은 것을 집어넣고는 하는데, 이것 가운데 하나를 꺼내 오기에 주니어의 체구가 아주 딱이다. 주니어 역시 그곳이 자기 아지트로 생각해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면 얼른 그곳으로 내뺀다. 대여섯 살 정도의 소년이라 틈만 나면 밖에 나가 놀려 하지만 막둥이는 역시 막둥이. 집에서 그나마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당연히 식구 모두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차이나.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다. 한 마리는 씨를 준 수컷의 주인 로키에게 주어야 하고, 나머지 가운데 한 마리 정도만 주인 스키타가 키울 것이다. 다른 새끼들은 팔아서 큰형 랜들의 농구 캠프 가입비로 쓸 예정이지만 안타깝게도 생각대로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랜들의 대학 입학도 물 건너 간다. 날 때부터 맹견, 그리고 투견. 어렸을 때는 투견장에서 지기도 했지만 조금 큰 다음 부터는 적수가 없었다. 지금은 출산한 직후라서 투견장에 세우는 건 무리. 그러나 소설에 투견이 일단 나왔다 하면 개싸움 장면이 빠질 수 없는 법. 작가 제니스 워드는 투견장에서 맞상대하는 수컷 개가 사람이 생각하기에 수컷으로 가장 악독한 방법으로 차이나를 공격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당연히 실제 상황에서는 전혀 가능하지 않는 장면이나 픽션이니까 넘어가자. 그럼에도 마음 약한 독자가 읽기에 부담이 될 만큼 잔혹한 장면을 글 좋은 솜씨로 묘사하고 있으니 각오하고 읽으시라.


  그리고 드디어 상륙하는 5등급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멕시코만에서 5등급으로 몸집을 키운 다음 미시시피에 상륙할 당시는 3등급, 조금 약해졌다고 위키피디아에 쓰여 있지만 그딴 거 중요하지 않다. 역대급의 피해를 주고, 많은 사상자, 실종자, 재해민이 발생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게다가 제방이 터져 쏟아지는 물은 바티스테 가족의 집을 무너뜨리고 침수시켜 버린다. 거실에 모여 있다가, 다락방으로 올라가고, 천장을 뜯어 지붕까지 올라간 아빠, 형제자매, 차이나와 새끼들. 범람한 물은 이제 튼튼하지 못한 집 전체를 기울이고, 더 지붕에 머물렀다가는 여지없이 가족 전부 물귀신이 되고 말 처지.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미국 소설이다. 미국 소설에서 가족은 함부로 죽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지만 이 어려움 속에서 적어도 손실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지? 그렇다. 손실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그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다.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미국 소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 가족애.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할 말 다 했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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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 - 쑤퉁 장편소설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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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반 만에 쑤퉁을 다시 읽는다. 당시 <쌀>을 읽으면서 나는 이후 또 쑤퉁을 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그 말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읽는다. 전에 50~60년대 초반에 출생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첫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옌롄커와 위화 그리고 쑤퉁까지. 어린 시절에 대기근과 문화혁명, 대약진운동 같은 큰 사건에 대해 듣고,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어쩌면 가족이 피해 당사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터이니 좀 독해져 있었을 수도 있겠다. 처음 읽은 옌롄커의 <풍아송>, 처음 읽은 쑤퉁의 <쌀>은 도무지 즐겁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거칠어 두 번은 읽지 못할 작가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독자는 중국 작가에 비해 참 곱게 늙어가는 거 같았다.

  그러다 어찌어찌 옌롄커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건 옌롄커보다 조금 선배 작가들, 다이허우잉과 모옌 같은 이들의 작품이 그래도 중국 소설을 더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옆구리를 찌르는 거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이제는 옌롄커, 위화, 쑤퉁은 물론이고 류전윈, 거페이 등, 추천을 받으면 서슴없이 읽는다. 그게 확장되어 타이완 소설까지 이젠 막 읽는다. 하필 쑤퉁을 다시 찾는 데 근 9년이 걸린 것은, 도서관 서가의 쑤퉁 책 위에 먼지가 너무 쌓여 손 대기가 거시기해서. 이번엔 마음잡고 물휴지 한 장 가지고 들어가 앞뒤, 위아래 박박 닦고 대출해 읽었다. <하안>이 그나마 먼지가 덜 두껍게 쌓여서 고른 거다. 다른 이유는 없다.


  도저한 장창(長江)의 지류인 진췌강(金雀江)은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봐야 일본술 사케 하나만 나올 뿐이라서 진짜 있는 강인지 허구의 강인지 당췌 모르겠지만 동정호 남쪽의 후난성 일대를 흐르는 강처럼 보인다. 이 진췌강을 따라 여러 선대船隊가 오르내리며 펑황진, 유팡진, 마차오진의 물자를 보급하고 생산물을 다른 고장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크게 양분하면 각 진 그러니까 뭍에 사는 사람들과 진췌강을 오가며 배위에 삶의 터전을 잡은 물 사람들로 나눌 수 있어서 쑤퉁은 물 사람들을 하河, 진 사람들을 안岸이라 칭해 작품의 제목을 <하안河岸>이라 했으리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뭍에 사는 사람들은 뱃사람들 알기를 우습게 알고, 천하게 알고, 막 대해도 괜찮지는 않지만 큰 허물은 아닐 것들로 생각했다. 그건 프롤레타리아가 계급투쟁에 성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확립한 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이하동문으로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9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그때 역시 뭍에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밀려난 불가촉 천것들의 향, 소, 부곡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시간을 저 앞으로 당겨 대 일본 전쟁 시기에 이 동정호 이남 후난성 부근에는 이름난 열사가 있었으니 덩사오샹. 덩 열사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말이 있단다. 이것들을 섞어 (내가) 스토리를 만들어보자면 이렇다.

  펑황진에서 크게 장의사를 하던 집안의 아름다운 외동따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계급의식이 강해 가난함을 좋아하고 부유함을 경멸해 흙투성이 농투성이를 사랑했다. 남자를 따라 산골로 시집을 가니 하는 일도 마땅하지 않았고 사람들도 자신을 은근히 따돌리는 거 같아서 아들 하나 들쳐업고 집안에 불을 확 싸지른 다음에 친정 펑황진으로 돌아왔다. 이때 전쟁이 한창이어서 진췌강 일대가 온통 붉은 피로 물들었을 때, 덩사오샹은 진췌강 유격대를 위하여 총기와 탄약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사람이 죽으면 큰 관 속에 시신과 총기 그리고 총알을 함께 넣어 묻은 다음, 유격대 대원에게 관이 들은 새 묫자리를 알려주면 대원들이 알아서 총과 총알을 가져간다. 거의 완벽한 방법이다.

  그러다 한 번은 겨우 총 세자루를 운반해야 하는 명이 떨어져 큰 보따리에 아들과 함께 총을 넣고 길을 떠나 유팡진에 있는 정자까지 짊어지고 갔다. 하지만 운이 다했는지 정자에는 일본 장교와 중국인 유지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정보가 샌 거다. 자기의 생명은 끝났음을 눈치챈 덩사오샹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재판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총살을 요구한 것도 일언지하에 거절당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됐다. 대신 자루 속 아들은 마차오진으로 보내달라고 유언했는데 이것 역시 확답을 하지 않았다.

  덩사오샹은 목매달려 죽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동족 한 명이 아들을 버들광주리에 담아 진췌강에 띄워 보내 며칠 후 정말로 마차오진의 게으름뱅이 낚시꾼 펑라오쓰의 그물에 걸린다. 펑이 광주리를 열어보니 광주리 바닥에 커다란 잉어가 반짝이는 등짝으로 부레옥잠 한 덩어리를 받치고, 이 위에 아이가 앉아 벙긋 웃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 엉덩이에 물고기 모양의 몽고반점이 생겼다고. 펑라오쓰가 예전에 수적질을 해먹고 살던 불한당이라 자기가 키울 수 없어 마차오진의 고아원에 맡겨 놓았다.

  드디어 일본군이 물러가고 해방을 맞아, 정부 요원이 덩사오샹 열사의 후손을 찾아 고아원에 왔는데, 누가 누군지 알아야지? 그래 펑라오쓰를 데려와 덩사오샹과 닮아 보이는 사내 아이를 데려왔더니 펑은 아이들의 엉덩이를 훌떡 까놓고 몽고반점이 가장 물고기처럼 생긴 아이를 손가락잘하며 저 아이가 덩사오샹 열사의 아들이 분명하다 했으니 이이가 바로, 주인공은 아니고, 주인공 쿠둥량의 아버지 쿠원쉬안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덩사오샹 열사의 아들로 알았던 이.


  어린 쿠원쉬안은 정부에 의하여 발탁되어 공부도 엘리트 코스를 따라 했고, 열사의 아들답게 총명해 머리도 똑똑한데다가 마음도 넓어 덩 열사가 죽은 현장인 정자에 추모비도 세운 유팡진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열사의 아들이라 출세길은 따논 당상. 그리하여 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이자 진의 공작 선동대이며 지방방송국의 메인 앵커이기도 한 차오리민과 결혼해 외동아들 쿠둥량을 낳았고, 진의 서기로 진급했다. 서기는 공산당 직급이지만 오히려 진의 장보다 더 강한 세력을 쥔 자다. 지역 공산당의 최고 자리이니 당연하다. 이런 사람이 매사 정확하고 올바르게 민원을 처리하는 등, 물론 사소한 부정이야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늘 인자하게 진의 인민을 보살폈으니 존경을 받지 않기도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배꼽 아래 달린 돌출물 관리가 좀 미흡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예수교를 믿지 않아서 다행이지, 어떻게 십계명 가운데 일곱번째 계명만 골라서 어기는지, 이웃의 아내는 전부 자기 것인 줄 알았다니까?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이런 판국에 더 높은 기관에 민원이 올라가겠어, 안 올라가겠어? 아마도 이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해에 드디어 지구 조사단이 파견 나와 아버지가 정말로 덩사오샹의 아들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제일 큰 의문은, 아버지가 해적질 하던 펑라오쓰와 배 타고 창녀질을 하던 논다니 사이의 사생아였다는 거. 이건 보고서에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유팡진 전체에 널리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창문 없는 별실이 있는 여관에서 석달을 조사받은 후에 완전히 기력이 빠져 집으로 왔고, 그날로 진 서기 자리는, 집에 와서 아버지와 장기를 두곤 하던 아버지의 부하직원이자 선전부장 자오춘탕이 맡았다. 자오춘탕에게 두 여동생이 있었는데 둘 다 아버지가 홀딱 해치웠단다. 자오춘탕도 모르지는 않았던 듯.

  이날로 어머니는 끌과 망치로 대문에 영광스럽게 빛나던 “열사가문”이란 붉은 명패를 순식간에 때려 부수고 아들 쿠둥량에게 소리친다.

  “오늘부터는 꼬리 내리고 사람답게 살아! 놀이란 놀이는 무조건 금지야!”


  공산당 서기의 외아들이었으니 위세가 어땠을지 말로 하면 입 아프겠지?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이웃집 우라이쯔, 치라이쯔 형제와 애들 누나를 만나 조금의 다툼이 있었다. 근데 그애들 누나가 쿠둥량의 얼굴에 냅다 침을 뱉아 버렸다. 세상이 변한 걸 아이들도 금세 알아버린 것. 이제 쿠둥량은 당 서기의 아들이 아니라 ‘헛방귀’로 불리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해도 헛방귀, ‘말로만’이라는 뜻이다. 아무도 진지하게 듣지 않을 것이고, 어떤 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뜻. 그리고 그건 점점 사실이 된다.

  위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전직 유팡진 당서기 쿠원쉬안은 샹양 선대의 7호선을 맡아 지내라고. 이렇게 쿠원쉬안과 쿠둥량은 아내이자 엄마인 차오리민과 떨어져 진췌강 위의 뱃사람으로 살아야 했다.

  이제 새롭게 부각하는 것은 유팡진 사람들 즉 출신성분과 계급, 극좌 이데올로기가 문화혁명이라는 광풍을 초래한 뭍사람들과, 그것에 소외당하고 존엄성도 잃어버린 인간들이 모인 공간인 진췌강 사람들의 대립, 대립까지는 아니고 차별화해서 사는 모습을 그리는데 역점을 둔다. 당연히 13세부터 26세까지의 쿠둥량이 주인공이니 사랑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재미있다. 대립과 분노와 투쟁과 발전에 전력하는 뭍(岸) 사람들과 이에 소외되었지만 보살핌과 협력과 배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는 강(河) 사람들의 다름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듯. 남우세스럽지만 내 경우를 들어보자면, 은퇴를 하니 무엇보다 경쟁하지 않고 시험 치룰 이유 없이 사는 것 만 가지고도 강 위로 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땅을 버리고 강에 오르니 좋고 편하다. 그저 조용히 살다가 가면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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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12-1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도서관 직원들 책에 쌓이 먼저 안 털어내나요? 어떻게 이용객이 털어야하는 건가요?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파라 이건가요? 참... 저의 경우는 경쟁하고 시험 치르는 게 싫어서 사회로 못 나가긴 했죠. ㅎㅎ 속편하게 사는 게 장땡이죠. 좋아 보이십니다. ^^

Falstaff 2025-12-19 15:21   좋아요 1 | URL
털어내도 매일 할 수 없어서 결국엔 종이에 눌어 붙게 되더군요. ㅎㅎㅎ
물론입니다. 속 편한 세상이 장땡입죠. ^^

yamoo 2025-12-1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부쩍 별5개가 종종 출현하네요...저는 중국이나 일본 소설은 별로 찾아 읽지 않은 편인데...별5개는 좀 고민이 되네요.. 것두 재밌다니...일단 찜해놔야 겠습니다..ㅎㅎ

Falstaff 2025-12-19 15:22   좋아요 0 | URL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아마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수준이 제일 높습니닷! ㅋㅋㅋㅋ
함 읽어 보셔요.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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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로버트 네이선은 1894년에 뉴욕의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기는 한데, 단언하노니, 네이선의 작품은 한 권도 더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파르딤 유대인? 이슬람은 무려 4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를 북북 갈면서 반도 수복과 무어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서고트족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백 년 전 중국 명나라가 발명해 막강한 몽고족을 굴복시킨 신무기, 소총을 수입해 드디어 무슬림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싹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눈에는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나 그게 그거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내버려 두었다가는 언젠가 다시 무슬림으로 하여금 이베리아 반도를 재탈환하게 만들지도 모를 불온분자들. 실제로 무슬림이 4백년을 내리 통치했던 건 아니다. 중간에 서고트족이 한번 되찾기는 했었다. 이때 세 불리했던 무슬림이 아프리카 사하라 북쪽의 무슬림에게 긴급 무선통신을 보내 (돈쓰돈돈 도도쓰돈 쓰쓰쓰 돈돈돈……)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이 지원군이 진짜 무슬림 원리주의자 비슷한 족속이어서 반도인들을 더 강압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뭐 아나? 특급 작가 포이히트방거가 쓴 <톨레도의 유대여인>에 이런 게 좀 나온다. 이 당시 죄 없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죄 없는 인간이 어딨어? 그냥 당한 것에 비하면 죄가 덜하다는 의미이지) 서고트 족속의 눈 밖에 난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 다른 데 가서 인용하지 마시라.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이리하여 반도를 회복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석달도 되지 않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은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맨몸으로 쫓겨나 주로 서부 인도로 향했다. 이들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아.마.도. 가명 조지프 앤턴, 본명 살만 루슈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루슈디가 이때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세파르딤 유대인 이야기를 하도 재미나게, 많이 써서 그렇다. 루슈디는 무슬림 집안 출신의 바람둥이. <악마의 서>를 써서 눈알 하나를 잃었어도 (이슬람법 상 사면되었으나 무슬림 환자들한테는) 아직도 완전히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이자 비종교적 무슬림이다. 하여간 이때 고민이야 했겠지만 잽싸게 기독교로 개종해서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유대인을 일컬어 서부 세파르딤, 또는 이베리아, 또는 세파르딕 유대인이라 한단다.

  별 재미도 없고 황당하기만 한 소설의 독후감을 읽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냥 한 번 소개했다. 뭐 일종의 시시한 잘난 척이기도 하다.

  로버트 네이선이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라고? 여기서 저명하다는 건 사는 곳이 뉴욕이니까, 그냥 돈이 많은 집안이라 생각하면 딱 맞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 로버트도 스위스에서 사교육을 받은 다음에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일찍 장가드는 바람에 가족 먹여 살리느라 학교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몇 개가 영화화되는 바람에, 아따 이거다, 문학성이고 뭐고, 소설 역시 잘 팔리는 대중소설이 대빵이다 싶어 줄창 대중소설만 쓰다 갔다. 많은 작품을 양산했지만 이제 독자는 <제니의 초상>과 <주교의 아내>만 아주, 아주, 아주 드물게 읽어보고 실망할 뿐이다. 영화로 만든 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안 봤다. 혹은 보긴 봤는데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제니의 초상>에는 제니퍼 존스와 조셉 코튼이 출연했다니 아주 오래전 KBS 명화극장에 나왔었을까?


  작품은 일인칭 화자 ‘나’의 시점이다.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주인공은 이벤 애덤즈. 초상 속 인물은 제니 에플턴. 작품은 ㅆㄴㄹ, “씨나락”,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다.

  이벤 애덤즈는 훗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니까 당연히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다. 게다가 여태까지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만 죽어라 하고 그리던 화가. 일찍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작품 목적상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자주 끼니를 거를 정도. 시간적 공간이 아무리 미국 대공황 시기라고 한들 불과 몇 년 전에 그림 공부를 위하여 파리 유학을 시켰고, 유학 중 파리의 명소와 카페와 음식점을 섭렵할 수 있었을 정도인 가문의 자제가, 마치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의 주인공 수준이면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역시, “예술가의 괴로움, 추위와 굶주림이 아닌 다른 종류의 혹독한 괴로움”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건 “천재의 생명이, 자기 작품이 생명의 즙이 얼어붙은 채 꼼짝없이 죽음의 계절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란다.

  1981년에 이 책을 번역한 이덕희는 그때는 몰랐겠지만 만년에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정신적 고통이 육신의 고통에 비하여 보잘것없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 책의 중판이 나오고 1년이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뜬 마지막 아날로그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이덕희의 불운한 말년을 생각하면 이벤 애덤즈의 “영혼의 즙”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때는 1938년 겨울.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던 중이다. 훗날 센트럴 파크가 될 공원에서 셋방 겸 작업실이 있는 웨스트사이드에 가려면 양 방목장을 건너야 한다. 아휴.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에 양sheep목장이 있었다니! <제니의 초상> 뒤로 가면 이벤이 제니를 그린 초상을 팔아 선수금으로 3백 달러를 받는데, 1백 달러 정도는 자기 용처로 쓰고 2백 달러로 양목장 부근의 아무런 맹지라도 땅 좀 사놓지!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도시 뉴욕의 양목장 말이지.

  하여간 무거운 화구가 든 가방을 든 채 양 방목장을 가로질러가려는 건 당연히 차비가 없어서다. 방목장 부근의 몰가街. 안개가 자욱한 가로를 굶주려 기진맥진 걷고 있었으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상태였을 지도 모른다. 근데 안개 낀 밤중에 거리 복판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돌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소녀가 말한다. 이름은 제니.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선생님만 괜찮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이벤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안개 낀 밤중에 거리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다 큰 남자가 경찰관에게 인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거리를 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 특히 경찰에게 눈에 뜨인다면, 유괴범이나 변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여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자기는 부모와 함께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어린 시절의 유진 오닐처럼 부모가 배우이고 지금은 햄머슈타인 뮤직홀에서 밧줄 위에서 요술을 부리는 공연을 한단다. 공연이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둘이 걸으며 이벤이 들은 이야기다. 그는 직감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햄머슈타인 뮤직홀은 수년 전 이벤이 소년이었을 때 이미 박살난 공연단체 아닌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오전에만 학교에 간다는 제니도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차림새이고. 옛날식 코트와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 보닛. 어디서 봤더라? 맞다. 미술관의 계단 위에 걸린 그림, 누구더라? 부라슈? 그림 속의 소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제니가 보닛 챙 아래로 이벤을 올려다보며 억양 없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디서 내가 왔을까

  아무도 모르네 ―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곳으로

  모두들 가네.

  바람은 불고,

  바다는 흘러 ―

  그래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네


  작품이 절반 이상 지나면 위 노래 가사가 결정적 결말을 나타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초장에는 큰 관심 없이 지나가게 된다. 아니, 벌써 이 책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몰가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제니는 더 이상의 동행을 거부한다. 돌아서 가기 바로 전에 제니는 이벤에게 말한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러진 않으실 테죠, 아마.”


  4일 후, 이벤은 제니를 스케치한 그림이 담긴 가방을 든 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매튜스 화랑을 지난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화랑에서 헨리 매튜스를 발견한 이벤은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곤혹스러운 처지를 당한 마음 약한 매튜스 씨는 건성으로 그림을 휙휙 보다가 제니의 스케치를 보고는 당장 그것을 사버린다. 30달러. 이건 대단히 좋습니다. 이전에 어디선가 이런 어린 소녀를 본 적이 있답니다. 어디였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 같은 소녀라는 말이 아니고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매튜스는 이벤에게 풍경이 아닌 초상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특히 여성을 그리라고. 남성의 초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지만, 여성의 초상은 늘 새롭고 신비한 것이란다.

  몇 주가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다. 이벤이 호수 위에서 낡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가 다시 만난 제니. 몇 주가 흘렀을 뿐인데 제니는 그 새 더 큰 것 같다.

  다시 몇 주가 지난 춥고 지저분한 셋방에 돌아와보니, 셋방 주인 지크스 부인이 방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으로 전한다. 또다시 제니. 더 큰 모습. 이젠 다 자란 숙녀 같기도 하다. 지크스 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어떠셔? 속성으로 커버린 제니하고 이벤 사이에 불장난이 생기겠어, 안 생기겠어? 물론 빵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미리 우유부터 벌컥벌컥 마실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ㅆㄴㄹ 소설임을 명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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