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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 ㅣ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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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가 내가 주목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언젠가는 결국 읽겠지, 이런 마음이 스미스의 서가 앞을 지날 때마다 늘 들었었다. 결국 <여름>을 읽고 반년 만에 책을 뽑아 열람실로 올라갔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뭘까? 가을부터 시작하는 스미스의 4계 시리즈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그렇거나 말거나 독자는 일단 읽고, 읽은 다음에 나름대로 생각하면 그걸로 끝이다. 4계절 시리즈에 이어져 있건, 그렇지 않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
요즘 책에는 뒤에 “역자 해설”이나 “작품 해설” 같은 게 붙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의 안 붙어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 아니다. 그런데 페이지 수는 엄청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 무려 3백페이지에 달하는 신묘한 편집 기술을 자랑했건만 역자나 평론가 해설 없이 정가가 1만7천원. 10% 할인가 15,300원 이상을 주어야 내 책장에 꽂을 수 있다. 책의 저자와 역자는 인세 받아 산다고 쳐도, 공부 열라 해서 평론가로 등단했건만 교수나 교사 또는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강사, 하다못해 동사무소 문화강좌 자리도 얻지 못한 이들은 뭐해서 먹고 사는지 내가 다 걱정이 된다니까?
스미스의 4계절 시리즈에서 내내 주장했던 것이, ①영국으로 유입된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대한 인권문제, 특히 유치 시설과 지원 서비스의 열악함, ②브렉시트에 따른 고립과 우익 민족주의의 대두, ③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 등의 정치적 사안이 중심이었고, 마지막 <여름>에는 여기에 ④COVID-19 격리수용을 보탰다. 작가의 개인적 사실인지 아니면 더 하고 싶은 정치적 이야기가 있어서 만든 허구인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화자 ‘나’의 아버지가 감염병이 아닌 심장병으로 COVID-19 시대에 입원한 상태이며, 감염병 예방 조치의 일환으로 감염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증명하는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접적인 면회가 불가능 한 시기를 시간적 무대로 정했다.
영국에서 이 시절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중 화자 샌디 그레이, 애칭 ‘샌드’가 주장하기에 인구비례 해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는데, 발병 이후 어느 정도 진압이 되었는지 영국 정부가 어쨌든 이동의 자유를 허용한 시기.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전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샌드도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코로나 진단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과 마주 대면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주제는 도요새와 통행금지. 도요새로 대표하는 자유 왕래와 통행금지, 즉 감금. 그러나 도요새, 자유 비행과 이동의 자유를 대변하는 도요새는 역으로 “통행금지”에서 대장간 소녀의 어깨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한한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언정.
2021년의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가 한 통 왔다. 진짜로 난데없는 대학 같은 과 동기동창 마티나 잉글리스로부터. 동기동창이라고 친한 친구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룹 세미나를 할 때에도 다른 조로 묶여 함께 공부해본 적도 없고, 미팅도 같이 해본 적 없고, 하다못해 미장원도 다른 미장원에 다녔다. 아, 시, 영어시는 영어시인데 영국 시인이 아니라 미국 시인 e.e. 커밍스가 쓴 영시를 읽고 비평하는 실용비평세미나에 우연히 같은 시인에 대해 발표할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세미나 전날이던가 하여간 임박한 날 저녁에 마티나가 샌드의 기숙사 방에 쳐들어왔다. 무작정 하는 말이, 아이들이 너더러 수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 특히 문학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네가 제일이라던데? 하면서 눈물바람 부터 했다. 내일 발표할 커밍스의 시를 자기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래 샌드가 커밍스의 시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힌트를 주었고, 그랬더니 마티나는 한술 더 떠서 내일 샌드가 발표할 자료의 복사본을 한 부 달라고 하는 거였다. 뭐라? 발표 내용을 미리 한 부 달라고? 샌드는 거절한다. 그러면 마티나가 샌드가 작성한 발표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미리 발표할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에. 마티나는 울며불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고 궁상을 떨어, 마음 좋은 샌드가 상당한 부분을 제공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티나는 차라리 파Farr 다리에서 떨어져버리거나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결연히 말했기 때문에. 샌드가 그래서 한 마디 보태기는 했다.
“네 방은 1층이잖아?”
이 말에 둘이 함께 웃음을 쏟아내던 기억이 났다. 기어이 마티나는 울음을 쏟아내긴 했어도.
e.e. 커밍스. 훗날 매카시의 마녀사냥을 적극 지지하고 노골적으로 성차별, 인종차별적 시구를 흩뿌려 놓을 시인. 시나 좀 못쓰기나 하지, 참. 산다는 게 그랬다.
마티나가 거의 40년 만에 전화를 해서, 뭐라 했느냐 하면, 지금 국립박물관의 보조 큐레이터로 근무하는데 당일치기로 대륙에 가 보물급 열쇠 한 점을 가지고 입국하는데 히스로 공항 출입국사무소 직원한테 걸려, 입국할 때와 다른 여권을 소지한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라서인지 창문 없고, 출구 손잡이 없는 폐쇄공간에 일곱시간 반 동안 감금되었던 일을 토로했다. 한참을 떠들다가 언제 만나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자고, 자기가 어렸을 때는 피겨 스케이트로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그랬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통화하는 중에 감히 나 한테 “변덕스런 샌드”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등 뒤에서 그렇게 샌드를 부르는 지는 알았어도 한 번도 직접 면전에서 변덕스런 샌드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성별에 관계없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어서 그랬을까? 하여간 그건 그거고, 일단 별로 영양가 없는 통화는 끝났다.
문제는 마티나 잉글리스, 결혼 후 지금까지 마티나 펠프가 샌드와 통화/대화 후에 집에서 성격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전화 한통에? 혹시 일곱시간 반의 감금 때문 아닐까? 하여간.
그래서 마티나가 낳은 아이들, 쌍둥이 리와 이든 펠프가 샌드의 집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어엿하게 감염병 시대에 남의 집, 그것도 안으로, 실내로 들어오려 하니 일단 문 앞에서 한 번 막고, 문을 열고 현관 앞에서 막았다. 리와 이든은 엄마가 변한 것이 샌드 때문이라고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다.
감염이 된 상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샌드는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절대로 코로나에 감염이 되면 안 될 처지. 지금 저들이 있는 곳이 현관이지만 실내로 들어오거나, 몸은 현관에 있지만 바이러스가 실내로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일 뿐. 샌드는 차라리 아버지의 늙은 개 셰프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쪽을 택했다. 이 장면, 읽으면 무지하게 열받는다. 내 집으로 아무런 양해 없이 쳐들어온 타인 때문에 내가 집을 나가야 하다니. 아버지 집에 가서 마티나 휴대폰으로 전화하니까, 이런, 마티나도 지금 샌드의 집에 머물고 있고, 조금 있으면 남편과 다른 자식 하나도 샌드의 집에 도착할 거란다. 자기 집을 몽땅 뺏긴 상태.
이거 어디서 봤지? 내가 처음 읽은 앨리 스미스의 책, <데어 벗 포 더>. 알지 못하는 친구의 친구 집 파티에 가서 슬며시 2층의 한 침실로 들어가더니 아예 방을 점거해버린 남자 이야기. 자그마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음식 같은 작은 물품을 옮길 용도의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죽어버린 <호텔 월드>.
마티나와 그 가족들, 이거 무단 점거 아냐? 하긴 앨리 스미스는 이런 이야기가 요즘 신경쓰는 정치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좋기는 하지.
아직 나는 작품의 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도요, 도요새가 상징하는 자유 이동과 통행금지와 마티나가 공항에서 겪은 격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출발선이 이렇게 해서 그어졌다는 얘기만 했을 뿐. 남은 건 본격적인 달리기. 준비. 차려.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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