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긴다. 4년 전에 읽은 시집. 심지어 사서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 또 읽었다. 독후감도 또 썼다. 진짜 웃긴다. 세상에 이런 일이. 하긴 살면서 무슨 일인들 일어나지 않을쏘냐. 4년 동안 시를 읽은 감상이 어떻게 변했을까?

  다시 쓴 거 또 읽어보니까 진짜. 진짜, 진짜 웃기다. 본문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처음 읽은 박소란의 시집" 쇤네 미친 거 아님? 아니면 알츠하이머?




  이번에 쓴 독후감은 이렇다. 별점 3



  시인의 이름은 오래 전에 들어 귀에 익었다. 정작 읽어본 시가 없었지만. 이름이 재미있으니까. 소란. 웃는 난, 笑蘭. 소란騷亂스러운 소란. 뭐 대강 이런 이미지였다. 본명일까? 본명이면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1981년생이니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미소를 지으며 웃을 소笑자를 넣을 수 있었겠다. 이름에 쓰는 ‘소’자는 대개 흴素나 새둥지 소巢, 밝을 소昭 같은 걸 쓰는데 웃을 소는 이이가 처음이다. 그래서 이름자를 보자마자 단박에 기억하고 있었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자라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9년에 문학수첩을 통해 등단한 시인. 간략해서 좋다. 요즘 동국대와 동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가 핫하다. 이젠 문예창작과가 없는 대학이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각 대학(원)별로 누가누가 시인 소설가를 많이 배출하느냐, 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데 남산 기슭 동국대가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듯. 근데 내가 뭐 알아? 어떻게 시인, 소설가 출신을 보면 동국대 문창과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는 것뿐이지.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은, 내 주제에 무슨 특별한 증거가 있거나, 증거를 갖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고 그냥 심정상 그렇다는 건데, 숱한 문예창작과들의 경쟁 도구가 당년도 데뷔 시인, 소설가를 몇 명이나 배출하느냐, 하는 데 몰려 있는 거 같아서. 어느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몇 명이나 보내느냐, 하는 것으로 고등학교의 질을 판단하려는 것 비슷하게 말이지. 뭐 그렇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우리 시와 소설이 비슷해진다는 의견은 양심상도 그렇고 아는 것이 없어서도 주장하지 못하겠다. 그냥 내 짐작이 그럴 뿐이니, 아마도 오산 가운데 큰 오산일 것이다. 이런 헛소리가 마땅하지 않더라도 심한 질타는 참아 주시면 좋겠다.


  처음 읽은 박소란의 시집. 도서관에 박의 시집이 몇 권 있다. 이 가운데 원래는 《심장에 가까운 말》을 읽으려 했다. 근데 소설책에는 훨씬 덜한 반면, 시집엔 왜 그리 밑줄을 많이 그어 놓는지. 밑줄 그어진 시는 생각보다 읽기가 어렵다. 내 시각으로 보아 전혀 중요하지 않은 대목에 그것도 삐뚤빼뚤, 정성이 한 개도 없는 줄이 그어져 있으면 시를 읽는 분위가 싹 잡쳐버리고 만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10년 전에 출간한 《심장에 가까운 말》은 10년 동안 한두 명이 밑줄을 그어 놓은 게 아니어서 도무지 읽어줄 수 없어 대신 고른 시집이 《한 사람의 닫힌 문》. 동네 도서관 서가의 책에 밑줄이 하나도 안 그어져 이걸 선택했다.

  그런데 시인의 이름하고 어울리지 않게 왜 이리 우울해? 시들이 주로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버림받고, 의지처를 잃고,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뭐 그렇다. 시집의 제일 앞에 내세운 시가 <벽제화원>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시립 승화원의 옛 이름이 벽제화장장. 이곳 초입에도 다른 화장장 들어가는 길목과 마찬가지로 꽃 파는 화원이 늘어서 있다. 시인이 승화원에 갈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구나 갈 일이 있어 화장로 앞에서 눈물 한 번 짜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한 장소. 시인은 화원을 보면서 노래했다.



  벽제화원



  죽어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를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 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전문. p.10~11)



  아무렴. 아무도 예쁘다 하지 못하지. 승화원에 화장장만 있는 게 아니거든. 공용 납골당도 있고, 개인 납골묘도 있고, 숱한 수목장에 안치된 골분함도 있고, 뼛가루 뿌리는 산골터도 있는 장소에, 누가 함부로 빨갛고 파랗고 샛노란 꽃을 들고 갈 수 있겠어? 그러니 벽제화원, 화장장 인근의 꽃집에 희거나 노란 주로 국화류의 꽃다발만 전혀 저렴하지 않게 팔겠지. 봄부터 소쩍새가 열라 울어주는 바람에 가을에 핀 국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같은 꽃도 보기에 따라 아름답다거나 예쁠 수 있지만, 절대로 꽃으로 보고 예쁘다 할 수 없는 장소와 환경과 분위기 뭐 그런 거지. 그렇게 살다 가면 그걸로 끝인 게 인생이니 이리 유별을 떨 필요도 사실 없다. 하지만 유별 떨 필요가 없다고 유별날 짓을 하지 않으면 그게 시인이야?

  이런 시 한 번 읽어보실래?



  비닐봉지



  알 수 없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그리워하는지


  퇴근길에 김밥 한줄을 사서

  묵묵한 걸음을 걷는


  묵묵한 표정을 짓는

  입가에 묻은 참기름 깨소금을 가만히 혀로 쓸 때마다

  알 수 없는,

  참 알 수 없는 맛이다


  밥을 먹을 때면 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째서

  그것은 죽은 사람의 얼굴인가


  쉽게 구멍이 나는


  버리면 된다, 이런 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검게 읊조리는


  자정이 지난 골목을 혼자 서성이는

  까닭도 없이

  달리는

  내처 나는, 날아보는, 제 더러운 날개를 찢어버리려는 새처럼

  어디로든


  언제든

  도무지 썩지 않는 (전문. p.18~19)



  밤, 특히 겨울 밤에 아스팔트나 보도를 횡행해 날아다니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고 쓴 시가 한 둘이 아니다. 인상깊게 쓴 검은 비닐봉지 시를 읽은 적 있는데 가물가물, 아마 집에 있을 터인데 누가 지은 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근데 박소란의 비닐봉지가 검은 색이라는 증거가 없다. 그냥 비닐봉지. 아마도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먹고, 잔치국수 한 그릇 후루룩 마시는 결에 함께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한 줄 먹고 입 주변에 깨소금이나 참기름을 묻혀 나오면서, 사장님 깁밥 한 줄 싸주세요, 해서 알루미늄 포일에 싼 김밥을 비닐 봉지에 넣어 받았겠지. 박소란. 밥을 먹으면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는데 늘 죽은 사람이거든. 그래 독자는 비닐봉지가 결국 검정 비닐봉지로 딱 연상하게 만든 다음, 이제 시는 삶의 방법으로의 먹음에서 자정이 지난 골목을 배회하며, 날아다니며, 세상의 불운과 죽음을 살포하는 불길한 검은 비닐봉지의 세상으로 만들어냈다. 그것 참. 저 앞에서 말했듯이 시 두 수가 슬프고, 외롭고, 무섭고, 버려지고, 무엇보다 우울하다.

  시집을 읽는 내내 밝고 기뻐서 시인의 이름 소란笑蘭처럼 청아한 아름다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랑과 연애마저 그러했다.



  원룸



  비의 꿈을 꾼다


  윗방이 이사를 오고 난 후 줄곧

  장대처럼 굵고 거센 오줌 소리를 듣는다


  밥을 먹으며 듣는다

  잠을 자며 듣는다


  침대에 누워

  그 소리를 가만히 듣다보면 천장이 왈칵

  쏟아져내릴 것 같다 꿈은

  흥건히 젖어 막무가내로 불어 어디론가 떠내려갈 것만 같다


  지금쯤이면 그의 꿈도 흐르고 있겠지, 내가 오줌을 누면

  우산도 없이 우리는 만나

  꿈과 꿈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인사를 나누겠지


  누렇게 얼룩진 아침은 황급히 뒷걸음쳐 숨겠지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겠다

  기어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그 사랑은 참 우습고 더러운 사랑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겠지 지그시 서로의 귀를 막으며 (전문. p.62~63)



  원룸 윗방에 튼튼한 국가대표급 전립선 보유남성이 이사 왔나 보다. 그랬더니 아무 때나, 밥 먹을 때, 잠잘 때를 가리지 않고 콰르르르, 이과수폭포처럼 사나운 물총을 난사한다. 아, 씨. 부러워라. 침대에 누워서 오줌발 소리를 들으면 왈칵 천장이 무너져 영화 <지만지>의 폭우 장면처럼 휩쓸려갈 것 같단다. 여기서 의식이 확장된다. 시인이 오줌을 누면 정말 있는지, 없는데 있는 것처럼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꿈에서 그를 만나, 이 다음 연, “누렇게 얼룩진 아침” 그러니 젖은 꿈, 즉 몽정의 밤을 보낸다. ‘그’와 나는 이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이 사랑마저 우울하다. 우습고 더럽기 때문에. 지그시 서로 귀를 막으며 거짓말을 찍어대고 있을 터이니.

  같은 주제로 얼마든지 유쾌한 시를 쓸 수도 있다. 이윤기(맞다 그 이윤기. 에코의 <장미의 이름>,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한 이)가 한밤중에 윗집에 혼자 사는 스튜어디스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들으며 유쾌한 상상을 했듯. 소설집 <나비 넥타이>에 나온다. 윗층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난만하고 맹랑한 오줌 누는 소리. 그걸 들으며 그도 내가 누는 오줌 소리를 들으면 좀 야한 생각이 들까? 생각할 수도 있고, 꿈에서나마 만나 사랑할 수도 있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문제는 역시 마지막 연. 구태여 박소란은 그 사랑을 더러운 사랑으로, 오직 오줌과 누렇게 얼룩진 사랑으로 몰고 간다.

  이런 시집이 많다. 이래서 시집 읽기가 점점 어려워/어지러워진다. 물론 시를 읽는 스펙트럼이 짧아 이렇게 느끼는 거겠지만 마음에 드는 시집 골라 읽기가 갈수록 쉽지 않다. 세월 탓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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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2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픔, 소외, 두려움, 버림받음, 잊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읽은 책 깡그리 잊고 새 책처럼 또 읽는 게 우리 인생 아닙니까? ㅋㅋㅋㅋ

Falstaff 2025-12-29 16:0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자냥님은 역시 재치 만땅이셔요.

2025-12-2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0 0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5-12-29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사서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 저도 그런 책이 많아요 ㅎㅎ

Falstaff 2025-12-29 16:10   좋아요 0 | URL
위에 자냥님 코멘트처럼 책 ˝쫌˝ 읽는 사람의 숙명 아닐까요? ㅎㅎ

그레이스 2025-12-29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무심코 꺼내서 읽은 책에서 같은 줄에 밑줄을 긋게 되는데, 처음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밑줄 그은 것도 자신이었다고!

Falstaff 2025-12-29 16:13   좋아요 1 | URL
쥐스킨트가 그런 이야기도 했군요! 저 같은 경우에... 전에 쓴 독후감과 오늘 올린 페이퍼, 함께 인용한 시가 하나밖에 없어서.... 근데, 시 한 수가 얼맙니까? ㅎㅎㅎ 이렇게 위안하고 있습니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 브로츠와프의 쥐들
로베르트 J. 슈미트 지음, 정보라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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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로베르트 J. 슈미트 본인이 1962년에 폴란드의 브로츠스와프에서 태어났다. 위키피디아에 공상과학 및 판타지 작가, 역자 및 저널리스트라고 나와 있다. 이이의 작품은 더 이상 읽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의 바이오 역시 더 파본들 무엇하랴. 어쩜 세상에 나하고 이리도 맞지 않는 작가도 없을 듯. 슈미트 씨, 우리 다신 보지 말자고.

  이 책은 역자 정보라와 폴란드 작가의 궁합, 딱 그거 하나 보고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다. 먼저 발견한 건 <브로츠와프의 쥐들 : 철창>이었는데 서점에서 상품 내용을 보니까 1부가 <브로츠와프의 쥐들 : 카오스>라서 이왕 읽을 건 처음부터 읽자, 싶어 이걸 먼저 신청했다.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다음편을 신청하면 될 터이니. 하이고, 잘 생각했지.

  여러 번 이야기한 거 같은데, 정보라가 소개한 폴란드 작가들. 스타니스와프 비트키예비치와 브루노 슐츠, 그리고 스타니스와프 렘. 이 책들이 좋아 정보라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많이 팔리지 않을 거 같은 책을 번역해주어 독자 입장에서 얼마나 흡족했겠느냐고. 그래서 이번에 또 정보라가 번역한 폴란드 작가의 작품이 나왔길래 다른 정보는 귓등으로 흘리고 그대로 희망도서 신청을 해버렸으며, 나는 또다시 내가 사는 도시의 기업체, 자영업자, 시민들이 현금으로 낸 지방세를 축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방에 두 권 다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

  미리 말하고 지나가자. 이 책의 독자 평점이 좋다. 아마 이 장르, 과학은 아니고 공상, 판타지 소설 방면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한테는 명작까지는 모르지만 그 비슷한 수준에 근접한 작품으로 치는 모양이다. 그러니 이 독후감을 읽고 작품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거부감은 터무니없을 확률이 높다.


  작품은 1963년 8월 9일 금요일 19시 50분, 브로츠와프 시 외곽에 있는 키에우초프스카 거리 43a번지 소재 격리병동에서 시작한다. <브로츠와프의 쥐들> 1편이 2014년에 출판되었다니까 당시는 2019년에 시작한 전세계적 감염병과 거리가 있을 텐데, 슈미트는 브로츠와프 시 몇 군데에 격리 폐쇄병동을 만들어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들을 3주간 수용했다. 3주 안에 발병하지 않은 사람은 음성으로 판정하여 다시 집과 직장으로 보내 정상생활을 하게 했다. 브로츠와프 시민들을 위협하는 치명적 바이러스는 출혈성 천연두였다. 두창이라고 하기도 했다. 작품의 무대가 1963년이라서 천연두가 치명적이지 지금은 인간에 의하여 완전히 박멸된 또는 박멸되었다고 여기는 바이러스이다.

  키에우초프스카 거리의 격리병동의 경계를 담당하는 경찰부대의 지휘관은 파트리크 미엘레흐 경사. 도시 외곽의 옛 엔진공업학교 부지에 위치한 병동을 완벽하게 격리시켜 시민들을 치명적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심각한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기도 했으나 신경정신과 치료를 충실하게 받아 지금은 전혀 알코올을 흡수하지 않고 지낸다. 물론 경비대장의 덕택은 아니겠지만 이 격리병동에 있다가 퇴원한 후에 천연두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효과적인 격리 정책을 썼다고 봐도 좋다. 이는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의료진의 헌신적이며 (공산)당적인 임무 수행의 결과라고 보아야겠는데, 이 가운데 아름다운 금발의 간호사 아그니에슈카 크로코비츠가 미엘레흐 경사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아그니에슈카는 환자가 발생하면 발생한 가정으로 출동하는 왕진 팀의 일원으로 환자와 환자 가족의 1차 밀접 접촉자라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감염자 또는 증상발현자가 발생하면 즉시 공산당중앙의료위원회에 전화하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은 상태에서 몇 십분이고 대기하다 도착한 의료차량을 타고 돌아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에휴. 여기까지 읽고, 이 작품은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든지, 파트리크 미엘레흐 경사와 아그니에슈카 크로코비츠 간호사 사이의 연애 사건이 불꽃 튀겠구나, 라고 생각해 나름대로 흥미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3년 8월 9일 오후 7시 50분, 격리병동 5동 2층의 창문이 박살이 나면서 간호사 이나 므위치츠카가 그대로 추락해 떨어졌다. 이어서 두 명이 더 추락했다. 이들은 불행하게도 머리가 먼저 땅에 닿는 즉시 경추가 부러졌으며 팔과 다리 뼈가 골절되었다고 한눈에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비틀려 있었다. 깜짝 놀란 미엘레흐. 그는 격리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아직은 연인으로 가까워지지 않은 아그니에슈카와 눈을 맞추며 사랑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므워치츠카 간호사가 천천히 땅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흰 간호사 제복은 온통 새빨간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고 오른쪽 무릎 아래 종아리에는 부러진 뼈가 허옇게 드러난 상태였음에도. 척추가 더 이상 받쳐주지 못한 머리통은 이상한 각도로 매달려 있고, 양팔을 앞으로 내민 채로 아그니에슈카를 향해 빠르지 않은 몸짓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보고 있던 수많은 환자들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져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므워치츠카 간호사가 아닌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세 번째 추락한 사람이 맨손으로,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미엘레흐가 연정을 품고있던 아그니에슈카의 복부, 배를 찢었고, 열린 복부에서 회분홍색 내장과 역겨운 가스 냄새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도살의 시작이었다. 가시가 맨몸에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을 무릅쓰고 철조망을 넘어 도망하려는 인파와 사방에서 들리는 아비규환의 비명,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중에도, 이미 죽은 것이 확실한 세 구의 시신은 아그니에슈카의 계속 경련하는 신체를 미엘레흐의 시선 앞에서 찢어발기고 있었다. 그의 사랑을.

  곧이어 다른 움직이는 ‘변질자’들 무리가 미엘레흐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허리춤에 찬 권총을 꺼내 쏘았으나 권총 정도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됐다. 변질자들은 가시철망이 몸에 박히는 건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심하게 넘으려 하고 있었다. 앞에 선 변질자들이 가시철망에 걸려 있으면 뒤를 따르는 다른 변질자 무리가 앞선 변질자를 밟고 넘어섰다. 아주 빠르지는 않지만 쉬지도 않고, 속도도 늦추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움직였다.

  이때 퍼뜩 드는 생각이, 격리병동이라는 것이 잠재적 천연두 바이러스 보균자들을 흩어지지 않게 해서 대중에게 위협이 되지 않겠지만 저 괴물 또는 짐승들의 타깃이 되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요약해 말하자면 거의 모든 피 격리자들, 단지 몇몇 명만 뺀 대부분의 피 격리자들이 이 변질자 또는 괴물,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말로 해서 좀비들에게 산채로 뜯어 먹히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또다른 좀비로 변하게 된다.


  어떠셔? 읽을 만하신가?

  아휴, 난 아니었다. 근데 혹시 모른다. 위에 조금 소개한 것 같은 엽기적 장면이 작품의 앞부분에 한 번, 중간에 또 한 번, 나중에 다시 한번, 이렇게 세 번 정도 나온다면 뭐 그런대로 읽을 만하겠다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 다음 장면은 같은 날 20분 후, 인민경찰 지역본부의 최상위 바로 아래 고급 지휘관의 사무실이다. 금요일 밤을 맞아 보드카 등 가벼운 마실 거리를 즐기는 가운데 최상위 결정권자들은 총기 사용을 절대 금지한 채 브로츠와프를 떠났다. 주말 동안 어떤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자기 소관으로 하지 않고 전권 위임한 지휘관 대리 우카시 브란디스 대위에게 떠넘기기 위하여. 그런데 브란디스 대위는 바보인가? 천만의 말씀이지. 그와 동류의 지휘관들 역시 소위 피박을 면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한다. 그깟 민간인 목숨 몇 개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다음 서기장 자리에 자기가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항해중에 배가 침몰할 것 같으면 탈출하려고 먼저 날뛰는 쥐들. 그래서 작품의 제목이 <브로츠와프의 쥐들>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미엘레흐 경사가 전화로 이들에게 ‘변질자’ 발생을 통보했고, 또다른 경찰 병력을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무기를 소지한 상태로 출동시켰음에도 그들 역시 변질자, 좀비에게 전원 당하고 만다. 그리고 잔혹함의 수위가 가면 갈수록 더하다. 이젠 피해자의 배 속에서 나온 회분홍색 창자마저 살아 숨쉬는 자의 발목을 잡아채기 위하여 꿈틀거리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그렇다고 작은창자로 줄넘기를 하는 건 아니고.

  몇 페이지 넘기면 또 간호학교 기숙사. 기숙사에서 잠자고 있던 간호학교장과 학생들도 남아나긴 글렀다. 이 여성들도 또 좀비들에 의하여 몸이 찢어지고, 그들에게 신체 일부가 먹히고… 그만하자, 그만해.

  이게 뭐야? 이거 뭐 도무지 읽어줄 수가 있어야지. 총 767페이지 가운데 278페이지까지 억지로 읽고 때려 치웠다. 아,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피 같은 세금이 또 이렇게 날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 흑흑.

  좀비 이야기는 내 수준에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제1 구역> 정도가 딱이다. 슈미트는 너무 독하고 세다. 포르노 수준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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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26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저도 좀 궁금했는데 폴스타프 님이 때려친 책으로... 접수.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26 15:19   좋아요 1 | URL
진정 엽기발랄 도무지 적응 불가였습니다. 자냥님도 걍 때려 치시는 걸로.... ㅎㅎㅎ
 
만리향 - 가족 3부작
김원 지음 / 문장의바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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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아마도 오늘이 2024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성탄절이겠구나. AD 0년은 없지? 예수님이 1년 12월 25일생이니 첫번째 크리스마스, 성탄 기념일 또는 성탄 축일은 2년 12월 25일 첫돌 때. 돌잡이로 뭘 집어드셨을꼬? 올해가 2025년이면 2024번째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닐까? 워워, 하여간 지금 새삼스레 그걸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고, 하필이면 성탄절에 《만리향》 같은 우울한 작품의 독후감 업로드 일정이 잡혀 심히 유감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자연인 ‘나’의 입장에선 크리스마스가 아무런 날도 아니다. 이젠 매일이 노는 날이라서 휴일이 뭐 그렇게 좋은 날도 아니다. 도서관 휴관일이라 취미생활도 즐기지 못하는 날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1천7백년 동안 유럽인들이 기념했고, 2백년 전부터 극소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념했으며, 70년 전 한국전쟁 이후 숱한 젊은이들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다가 간혹 임신까지 한 날이니 이만한 유감은 표해 주어야 옳은 듯하다. 눈에 훤하다. 이 말을 들은 가톨릭 환자 술친구가 하실 말씀이. 그렇다고 꼭 이렇게 입방정을 떨어야 속이 시원 하겠니? 뭐 이거 비슷하겠지.


  극작가 김원. 인터넷의 부정확한 바이오와 책갈피, “작가의 말”을 요약해 이야기해보자. 1980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 대중금속공고를 졸업했다. 2007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해 데뷔했고 대표작으로 <만선>, <만리향>, <만가>로 이어지는 가족 삼부작을 꼽는다. 희곡 창작 외의 직업으로 막노동꾼, 석면해체공, (자)관악캣대디연합 초대회장을 역임했든지 지금도 회장이든지 둘 중 하나다. 여기서 (자)라고 함은 내가 알기로 합자회사를 말하는데 정말 고양이 키우는 남자들이 모여 회사,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게젤샤프트, 법인을 만들었는지, 그냥 재미삼아 해본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캣맘도 있거늘 켓대디라고 없을쏘냐!

  명색이 한 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 책이 나온 2024년말까지 꽉 차게 44년 동안 집안에 돈도 한 번 제대로 벌어 가지고 온 적이 없었어도 어머니는 한 번도 원망조차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도 그동안 놀고먹은 것이 아니라는 걸 가족에게 생색내기 위하여 낸 거라고 주장한다. 좀 궁색하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이렇게 마친다.

  “그대에게 부탁한다. 살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사라. 그대가 이 책을 사는 순간, 그대의 문학성과 나의 황량한 통장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김원은 몰랐겠지. 마지막 말을 읽는 독자의 심정을. 당신이 뭣이건데 당신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내 문학성이 풍요로워질지 아닐지 확신하지? 말 뽄새나 곱게 하든지 말이야. 크리스마스 새벽부터 시비거는 건 아니고, 성탄절을 맞아 극작가 김원도 좀 겸손해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낼 모래면 나이 50이 앞에 와 있을 터이니.


  《만리향》은 앞에서 말한 이이의 대표작, “가족 삼부작”을 한 권에 다 실었다. <만선>, <만리향> 그리고 <만가輓歌>.

  가족. 가장 가까운 관계. 어떻게 해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피로 엮인 사람들. 너무 가까워 구성원들은 서로 쉼 없이 상처입고, 상처 주고, 가장 적나라한 부끄러움을 공유하는 지긋지긋한 쳔형天形이자 축복의 관계. 행복한 가정은 극과 이야기로의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가족을 써봤자 늘 그게 그거라서 작가는 어떤 불행한 가족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터. 따라서 《만리향》의 세 작품 역시 골치 아픈 세 가족의 이야기.


  첫 작품 <만선>. 만선滿船이다. 나는 <만선>하면 천승세의 걸작 희곡 <滿船>을 떠올린다. 천승세를 읽은 게 대학 다닐 때였나 그랬다. 가끔 공연을 하는 거 같은데 정작 책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희곡 보존 현실이 이렇다. 김원의 <만선>은 당연히 천승세와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건 배가 그물을 쳐 잡는 대상. 천승세의 만선이 참조기도 아니고 부세였다면, 김원의 배는 가족을 낚았다. 가족을 바다에서 낚아?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가족들이 바다에 빠진 상태여야 한다. 근데 아직 빠지지 않은 가족 한 명이 그들을 다시 배위로 올려야 “만선이다, 만선!”하고 외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 이 가족은 80대 치매를 앓는 남자 노인과 50대 중반/초반인 아비/어미, 이들의 자식이자 노인의 손주들인 20대 아들과 딸로 되어 있다. 화끈하게 얘기해버리면, 이들은 평생 어디 한 번 놀러가본 적도 없으면서 식구 전부, 다섯 명이 몽땅 동해바다로 왔다. 기념삼아 횟집에서 거하게 한 상 차려 먹었다가, 밑반찬, 책의 표현으로 ‘스키다시’를 잘못 먹어 단체로 설사가 쏟아질 지경이다. 한번도 바뀌지 않을 장소, 무대가 그리 크지 않은 고기잡이 배 선창.

  가족은 전부 밧줄로 허리를 감아 연결되어 있다. 삼부작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가족 중 장애인이 한 명 이상 등장하는 것. 노인이 치매인 건 앞에서 말했고, 아비는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의족이며, 딸도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지체장애인이다. 다섯 가운데 세 명이 장애인인 가난한 가족. 미장 일을 하던 아버지는 덤프 트럭에 받쳐 장애인이 되었는데 여태 뺑소니 사고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때 받은 합의금을 몽땅 경마장 말밥으로 날려 버린 거였다. 이후로 엄마가 궂은 일을 하며 집안을 꾸려나갔다가 이사할 때 모자란 보증금 때문에 사채를 쓰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눈덩이로 변해버렸다. 안 되는 집안은 다양하게 안 되는 법이라서, 민중의 지팡이,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들은 범죄자들로부터 소소하게 상납금을 챙겨 그나마 가계에 보탰는데 이게 들통이 나 권총을 든 채로 근무이탈, 가족 모두, 이렇게 살면 뭐 하니, 단체로 자살하기 위해 동해안으로 왔고, 근사한 횟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으며, 만찬 도중 은전 30냥에 팔린 식구는 없었지만, 그놈의 “스키다시” 먹은 죄로 물똥이 급하게 된 상태. 이 고기잡이 배도 아들이 권총으로 선주를 협박해 빼앗은 것이라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해경이 들이닥칠 것이 뻔해, 거사를 위해 얼른얼른 물에 빠져야 하건만, 그게 어디 쉬워? 쉬운 일이냐고?


  두번째 작품 <만리향>은 중국음식점이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파는 한국식 중국음식점. 검색해보니 “만리향”이란 옥호의 중국음식점이 전국에 널렸다.

  책 속의 만리향은 죽은 아빠가 직접 주방을 담당했던 집이다. 곧이곧대로 원래 레시피를 바꾸지 않고 주문 후 조리 방식을 고집해 맛집으로 이름이 나 각종 방송에서 촬영을 나왔지만 자기 얼굴이 매체에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아빠는 딱 한 번,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만리향의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지금은 40대 초반인 첫째가 주방을 맡고 있다. 다른 중식집처럼 짜장과 짬뽕 국물을 아침 일찍 한 솥 끓여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보온 상태의 소스와 국물을 면에 담아 가져다 주니 그게 제대로 맛이 나겠어? 손님은 날마다 줄고, 그냥저냥 먹고는 사는데 점점 찌그러져 가는 건 사실이다. 첫째가 공부를 잘해 대처에 나가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가 그만 찌그러져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주방을 물려 받았다.

  둘째는 이번 드라마 때문에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고 아빠 친구의 여동생이 일본에 가서 일본 조폭과 낳은 아들이란 걸 처음 알았다. 주목! 두 형제와 아버지 사이에는 맺힌 것이 오지게 많다. 근데 그건 둘째의 입양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보통의 가정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일 뿐, 저 밑에는 서로를 배려해주려는 마음이 깊다. 하여간 둘째는 아빠가 공부 잘하는 형만 싸도는 거 같아 사춘기를 맞자마자 본드 흡입하고, 싸움박질 하면서 밖으로만 나돌다가 일찌감치 가출해버려 지금 이때까지 따로 살고 있다.

  셋째는 딸. 딸 하나만 정상이다. 전에 유도를 꽤 잘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가족의 중심을 잡는 역할.

  그리고 엄마. 60대 중반의 과부댁. 엄마한테는 넷째가 있었다. 딸이었는데 지체장애였다. 5년 전, 이 지체장애인 딸이 사라졌다. 이후로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하다못해 고아원까지 안 뒤져본 곳이 없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국의 전봇대라는 전봇대에 빠짐없이 넷째의 사진과 심인 광고를 붙였지만 아무 소식도 없다. 이제 하나 기대고 싶은 건 샤머니즘. 굿을 하고 싶다. 엄마의 간절한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세 자식들. 그러나 문제는 돈. 자식들은 굿의 목적이 넷째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정신과 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라는 걸 포착해 한 바탕 연극을 마련하는데, 재미있다.


  마지막에 실린 <만가輓歌>는 말 그대로 누가 죽는다. 죽으면서 그냥 요즘 유행대로 화장해 날리던지 가족의 묘에 묻던지, 납골당에 안치하면 될 것을 자기 죽으면 꼭 집에서, 옛날처럼 초상을 치루고, 반드시, 어기지 말고 반드시 상여를 태워 매장해주기를 바랐다. 이 집도 공부 잘하는 첫째 아들이 특전사에 장교로 자원 입대했다가 다리가 결딴나 장애가 생겨 상이 제대한 상태이다. 나라에서 나오는 유공자 연금으로 먹고 산다. 그러니 무슨 돈이 있어 상여까지 태워 장사를 지내나? 다 준비가 있었다. 죽은 아버지가 자기 장사 치룰 돈은 마련해 놓고 죽은 것. 이 돈이 두 형제와 딸, 세 명의 다툼이 될 거 같지? 안 그렇다. 이 가족 역시 속에 맺힌 건 태산의 바위만큼 많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배려이다.

  재미있는 책이니 도서관에 있으면 읽어보셔도 좋겠다.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굳이 사서 읽어, 문학성을 풍부하게 하셔도 좋고.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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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12-25 0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

잠자냥 2025-12-2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입방정에 웃고 갑니다!🤣

Falstaff 2025-12-26 04:00   좋아요 0 | URL
읏으면 복이 와요!

그레이스 2025-12-2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탄절 지났으니,,, 해피 뉴이어입니다!

Falstaff 2025-12-28 06:18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은 새해에 ‘복‘ 같은 추상명사 말고요, 연초에 로또 한 방 팍, 맞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지는 이야기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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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읽지 않으려 했다. 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가 내가 주목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언젠가는 결국 읽겠지, 이런 마음이 스미스의 서가 앞을 지날 때마다 늘 들었었다. 결국 <여름>을 읽고 반년 만에 책을 뽑아 열람실로 올라갔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뭘까? 가을부터 시작하는 스미스의 4계 시리즈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다고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그렇거나 말거나 독자는 일단 읽고, 읽은 다음에 나름대로 생각하면 그걸로 끝이다. 4계절 시리즈에 이어져 있건, 그렇지 않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 말씀.

  요즘 책에는 뒤에 “역자 해설”이나 “작품 해설” 같은 게 붙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거의 안 붙어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린 말 아니다. 그런데 페이지 수는 엄청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 무려 3백페이지에 달하는 신묘한 편집 기술을 자랑했건만 역자나 평론가 해설 없이 정가가 1만7천원. 10% 할인가 15,300원 이상을 주어야 내 책장에 꽂을 수 있다. 책의 저자와 역자는 인세 받아 산다고 쳐도, 공부 열라 해서 평론가로 등단했건만 교수나 교사 또는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강사, 하다못해 동사무소 문화강좌 자리도 얻지 못한 이들은 뭐해서 먹고 사는지 내가 다 걱정이 된다니까?


  스미스의 4계절 시리즈에서 내내 주장했던 것이, ①영국으로 유입된 북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 대한 인권문제, 특히 유치 시설과 지원 서비스의 열악함, ②브렉시트에 따른 고립과 우익 민족주의의 대두, ③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 등의 정치적 사안이 중심이었고, 마지막 <여름>에는 여기에 ④COVID-19 격리수용을 보탰다. 작가의 개인적 사실인지 아니면 더 하고 싶은 정치적 이야기가 있어서 만든 허구인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화자 ‘나’의 아버지가 감염병이 아닌 심장병으로 COVID-19 시대에 입원한 상태이며, 감염병 예방 조치의 일환으로 감염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증명하는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직접적인 면회가 불가능 한 시기를 시간적 무대로 정했다.

  영국에서 이 시절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중 화자 샌디 그레이, 애칭 ‘샌드’가 주장하기에 인구비례 해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하는데, 발병 이후 어느 정도 진압이 되었는지 영국 정부가 어쨌든 이동의 자유를 허용한 시기. 그러나 시민들은 여전히 전염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샌드도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코로나 진단 테스트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과 마주 대면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의 주제는 도요새와 통행금지. 도요새로 대표하는 자유 왕래와 통행금지, 즉 감금. 그러나 도요새, 자유 비행과 이동의 자유를 대변하는 도요새는 역으로 “통행금지”에서 대장간 소녀의 어깨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국한한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언정.


  2021년의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가 한 통 왔다. 진짜로 난데없는 대학 같은 과 동기동창 마티나 잉글리스로부터. 동기동창이라고 친한 친구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룹 세미나를 할 때에도 다른 조로 묶여 함께 공부해본 적도 없고, 미팅도 같이 해본 적 없고, 하다못해 미장원도 다른 미장원에 다녔다. 아, 시, 영어시는 영어시인데 영국 시인이 아니라 미국 시인 e.e. 커밍스가 쓴 영시를 읽고 비평하는 실용비평세미나에 우연히 같은 시인에 대해 발표할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세미나 전날이던가 하여간 임박한 날 저녁에 마티나가 샌드의 기숙사 방에 쳐들어왔다. 무작정 하는 말이, 아이들이 너더러 수재의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 특히 문학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는 네가 제일이라던데? 하면서 눈물바람 부터 했다. 내일 발표할 커밍스의 시를 자기는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단다. 그래 샌드가 커밍스의 시를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느냐, 라고 힌트를 주었고, 그랬더니 마티나는 한술 더 떠서 내일 샌드가 발표할 자료의 복사본을 한 부 달라고 하는 거였다. 뭐라? 발표 내용을 미리 한 부 달라고? 샌드는 거절한다. 그러면 마티나가 샌드가 작성한 발표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미리 발표할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에. 마티나는 울며불며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고 궁상을 떨어, 마음 좋은 샌드가 상당한 부분을 제공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티나는 차라리 파Farr 다리에서 떨어져버리거나 기숙사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결연히 말했기 때문에. 샌드가 그래서 한 마디 보태기는 했다.

  “네 방은 1층이잖아?”

  이 말에 둘이 함께 웃음을 쏟아내던 기억이 났다. 기어이 마티나는 울음을 쏟아내긴 했어도.

  e.e. 커밍스. 훗날 매카시의 마녀사냥을 적극 지지하고 노골적으로 성차별, 인종차별적 시구를 흩뿌려 놓을 시인. 시나 좀 못쓰기나 하지, 참. 산다는 게 그랬다.

  마티나가 거의 40년 만에 전화를 해서, 뭐라 했느냐 하면, 지금 국립박물관의 보조 큐레이터로 근무하는데 당일치기로 대륙에 가 보물급 열쇠 한 점을 가지고 입국하는데 히스로 공항 출입국사무소 직원한테 걸려, 입국할 때와 다른 여권을 소지한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라서인지 창문 없고, 출구 손잡이 없는 폐쇄공간에 일곱시간 반 동안 감금되었던 일을 토로했다. 한참을 떠들다가 언제 만나서 함께 스케이트를 타자고, 자기가 어렸을 때는 피겨 스케이트로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그랬다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통화를 마쳤다.

  통화하는 중에 감히 나 한테 “변덕스런 샌드”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했다. 학교 친구들이 등 뒤에서 그렇게 샌드를 부르는 지는 알았어도 한 번도 직접 면전에서 변덕스런 샌드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내가 성별에 관계없이 연애를 하고 사랑을 나누어서 그랬을까? 하여간 그건 그거고, 일단 별로 영양가 없는 통화는 끝났다.


  문제는 마티나 잉글리스, 결혼 후 지금까지 마티나 펠프가 샌드와 통화/대화 후에 집에서 성격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전화 한통에? 혹시 일곱시간 반의 감금 때문 아닐까? 하여간.

  그래서 마티나가 낳은 아이들, 쌍둥이 리와 이든 펠프가 샌드의 집에 찾아왔다. 마스크를 하지 않은 상태로.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어엿하게 감염병 시대에 남의 집, 그것도 안으로, 실내로 들어오려 하니 일단 문 앞에서 한 번 막고, 문을 열고 현관 앞에서 막았다. 리와 이든은 엄마가 변한 것이 샌드 때문이라고 항의하러 찾아온 것이다.

  감염이 된 상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샌드는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와의 면회를 위하여 절대로 코로나에 감염이 되면 안 될 처지. 지금 저들이 있는 곳이 현관이지만 실내로 들어오거나, 몸은 현관에 있지만 바이러스가 실내로 들어오는 건 시간 문제일 뿐. 샌드는 차라리 아버지의 늙은 개 셰프와 함께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쪽을 택했다. 이 장면, 읽으면 무지하게 열받는다. 내 집으로 아무런 양해 없이 쳐들어온 타인 때문에 내가 집을 나가야 하다니. 아버지 집에 가서 마티나 휴대폰으로 전화하니까, 이런, 마티나도 지금 샌드의 집에 머물고 있고, 조금 있으면 남편과 다른 자식 하나도 샌드의 집에 도착할 거란다. 자기 집을 몽땅 뺏긴 상태.

  이거 어디서 봤지? 내가 처음 읽은 앨리 스미스의 책, <데어 벗 포 더>. 알지 못하는 친구의 친구 집 파티에 가서 슬며시 2층의 한 침실로 들어가더니 아예 방을 점거해버린 남자 이야기. 자그마한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음식 같은 작은 물품을 옮길 용도의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죽어버린 <호텔 월드>.

  마티나와 그 가족들, 이거 무단 점거 아냐? 하긴 앨리 스미스는 이런 이야기가 요즘 신경쓰는 정치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좋기는 하지.

  아직 나는 작품의 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도요, 도요새가 상징하는 자유 이동과 통행금지와 마티나가 공항에서 겪은 격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출발선이 이렇게 해서 그어졌다는 얘기만 했을 뿐. 남은 건 본격적인 달리기. 준비. 차려.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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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연대기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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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971년에 알바니아에서 알바니아어로 출간된 원본을, 1973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을 이창실이 다시 번역, 즉 알바니아어-프랑스어-우리말 순서로 중역한 책이다. 서쪽으로 에게해를 면한 알바니아는 북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에 코소보, 동쪽엔 북 마케도니아, 그리고 남쪽으로 오랜 세월 알바니아를 적극적으로 간섭한 역사를 지닌 그리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이다. 20세기 중후반 들어 그리스와 오랜 영토 다툼을 하다가 1987년에 현재의 국경선을 확정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고향이 그리스 접경도시인 지로카스트라. 산비탈이 진 곳에 수백년 동안 돌집을 하나 둘 지어 마을을 형성해 좁은 골목이 복잡하게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안 가봐서 모른다. 이이의 책 속에 등장하는 마을이 대개 그런 식이라 그러려니 할 뿐이다. 책 속의 주인공 소년이자 화자 ‘나’의 집도 이런 비탈에 지은 돌집이고 동네에서 제일 크고 넓은 집이라니 대대로 마을 유지 정도였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경사가 급한 비탈에 생긴 마을이라서 누가 술 한 잔 장히 자시고 골목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 낙상이라도 하면 남의 집 지붕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산악지형의 도시 아래 계곡엔 풍부하지 않지만 물이 흐르고 계곡과 계곡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다. 전쟁통에 이런 다리는 대개 끊어질 운명에 처하지만 이 마을의 다리는 끝까지 꿋꿋하게 서 있다. 다리를 건너면 또다시 급한 경사의 산악지대가 나타나는 한편 왼쪽으로는 소 방목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넓은 벌판이 자리잡고 있다. 이 벌판에 ‘나’의 외갓집이 있어서 집에 일이 있으면 부모가 ‘나’를 외갓집으로 며칠 보낸다. 외갓집에서 2백보 정도 떨어진 옆집에 수자나라는 여자 아이가 있어서 ‘나’가 도시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해주면 넋을 잃고 듣는데 그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외갓집에 가라면 무척 좋다.

  카다레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풍경이다. 산비탈의 도시, 산과 산을 잇는 다리와 계곡을 흐르는 강, 그리고 산지 사람들이 보기에 넓은 평야. 이 평야를 통해 튀르키예군, 그리스군 또는 독일군이 도시로 침공하며, 이탈리아군이 도시를 먼저 점령한 후 평야쪽으로 펼쳐 나간다. 역사상 거의 언제나 약소국이었던 알바니아 사람들은 이 침략군들이 눈에 보이면 다시 새로운 상황이 생긴 것으로 인정하고 창문이나 지붕에 흰색 커튼을 내다 걸어 이들을 들여보낸다. 또는 이국의 병사들에게 저항하다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패색이 짙어진 다음에 그을음이 묻은 흰 침대보를 창분 밖에 걸쳐 놓든지.

  아쉽지만 그렇게 살아야 했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이스마일 카다레가 1936년생. 병자년 쥐띠. 작품을 시작할 당시 계곡에서 불쑥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이상한 도시는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화된 상태였다고 말한다. 도시는 12~13세기에 한 성주가 높은 산허리에 성탑을 세우면서 생기기 시작해 이어 다닥다닥 돌집이 붙기 시작했다. 15세기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 처음으로 도시가 텅 비워졌으며, 몇 백 년 후에는 튀르키예 군사들의 살육을 피하기 위해 거의 모든 주민들이 도시를 떠났었다. 이제 2차 세계대전을 맞아 아비시니아를 점령한 이탈리아군이 아주 잠깐의 영광을 위하여 독일과 연맹을 이루어 알바니아를 차지한 후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영국과 협력하기로 한 그리스에 역전패를 당해 다시 그리스군에 의하여 점령당했다. 본격적인 세계대전으로 번진 전쟁 동안 스탈린그라드에서 쌍코피가 터진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방면으로 철군을 하며 다시 한번 알바니아는 독일군의 수중에 넘어간다.

  이 과정을 1936년생인 카다레가 다 기억하고 있을까? 분명히 기억 속에는 이탈리아군, 그리스군, 그리고 독일군의 점령과 당시 피난길을 떠난 기억은 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기억만 가지고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이의 기억도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말처럼 “유년시절은 과거시제로 영원히 머물러 있는 거짓말의 공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이라기보다 당시에 들은 이야기와 이야기의 여러 파편을 모아 서로 연결하고, 추리하고, 픽션이라는 툴을 이용해 가공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돌’은 당연히 도시가 돌집으로 만들어졌으니 도시를 이룬 돌, 즉 도시의 연대기를 말할 터이고. 이 작품을 출간한 것이 1971년. 전쟁이 끝나고 26년 후. 한일월드컵이 2002년. 벌써 23년 반이 됐다. 이 행사를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여길 수도 있으니 사람이 죽어나가고, 총맞아 죽고, 찢어져 죽고, 펑 터져 죽는 충격이 월드컵 축구 시합보다 몇 십 배 더 컸을 전쟁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여전히 선연한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의 재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화자 ‘나’는 아이. 열 살 미만으로 보이는 소년이다.

  막이 올라가면 이 오랜 도시의 나이든 사람들이 ‘나’의 집 응접실에 모여 도시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이 장소에서 거론되지 않는 도시의 일은 없을 정도. 늙은 할머니 제조가 소식 한 가지를 가져왔다. 체초 카일의 딸 한테 불길한 턱수염이 남자처럼 자라고 있단다. 체초 카일은 이걸 숨기기 위해 딸을 방에 가두고 밖에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동네에 마네 보초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이의 아들 이사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벌였다. 글쎄 안경을 쓴 거다. 불길한 유리를 눈 앞에 대면 세상이 찌그러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그걸 눈 바로 앞에 대야 제대로 보인다니, 정말 말세가 왔는가 보다. 몇 주 전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내 복판에 자기나라 수녀들이 머물러 살라고 시멘트로 하얀 집을 지었다. 이걸 주민들은 종이집이라 부른다. 종이로 사람 사는 집을 짓다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니까 역시 세상은 말세다, 말세. 결혼식 때 신부화장을 전담하는 노파 피노 어멈은 늘 말세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 아무리 전쟁중이라도 어디서나 결혼은 하는 법이라 피난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아 오해를 받아 책 뒤편에서 목매달아 죽는 형벌을 받아야 했던 여인.

  비가 온다. 많이 온다. 도시는 경사가 급해 비가 오면 산 꼭대기에서 바위나 흙이 밀려 내려와 심할 때는 집 한두채가 한 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골목을 따라 급류가 생겨 물이 갑자기 아래 강으로 쓸려 내려가 식수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이걸 방지하기 위해 큰집은 마당 아래 큰 물 저장고를 만들어 갈수기 때 동네 주민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근데 적당히 물을 저장해야지 탱크가 넘치게 물을 받으면 오히려 집이 중력에 의하여 아래쪽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올해 ‘나’의 집이 그랬다. ‘나’가 큰 저장고 아래로 고개를 디밀어 보니 엄청난 양의 물이 탱크를 채웠다. ‘나’는 궁금하다.

  “사람과 물. 이 둘 중 누가 더 갇혀 있는 것을 괴로워할지 혼자 생각해보고 있었다.” (p.11)

  전쟁 당시의 알바니아 국민, 카다레의 고향 지로카스트라, ‘나’의 집이 있는 산허리의 도시, 돌집, 이동이 힘든 산악지역의 도시 자체가 사람들을 갇힌 상태로 있게 만든다. 그래서 다 큰 여자의 턱에 수염이 돋는 일, 공부를 한 청년의 눈에 안경을 쓰는 일, 이탈리아 수녀들이 종이로 만든 집에 사는 일 같은 것은 검은 구름에서 푸른 말을 타고 세상을 멸하려 쏟아져내려오는 불의 천사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스마일 카다레는 1989년부터 시작한 동유럽의 해방 시절에 유독 봄바람이 늦게 오는 알바니아를 견디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해버릴 예정이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소년인 ‘나’는 이런 게 오히려 다 재미있다. 누나의 턱에 수염이 나는 것, 공부 많이 해 눈이 나빠진 옆집 사는 (아직 주민들은 모르지만) 젊은 공산주의자 이사형의 책꽂이에서 <맥베스>를 뽑아와 열 번도 넘게 읽으니 스코틀랜드의 왕 시해와 살인범의 상태가 이해되던 것도. 열일곱 살 먹은 명랑한 작은 이모는 시집가려고 식탁보 같은 곳에 열심히 수를 놓고 있다가 엉뚱하게 하라는 결혼은 안 하고 혼자 몸으로 산에 올라 반 파시즘 공산 파르티잔이 되는 것도 혹시 독일군 총에 맞아 죽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재미있고 근사한 일이다. 우리 이모가 산에 갔어! 얼마나 광 나는 일이냐는 말이지.

  죽마고우 옆집 친구 일리루의 형 야베르가 말한다. “너희는 노예로 자라서 자유로운 도시가 뭔지 몰라.”


  아이의 눈을 통해 전쟁과 전시의 시민들을 보았다. 그러니 전쟁은 실제 전쟁만큼 심각하지 않다. 간혹 적들의 폭격기와 은근한 일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소년이니까. 전시라서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고 적나라한 인성이 그래도 나타나는 일도 많다. 흔히 아이들이 아프면서 배운다는 데, 전쟁이야말로 다른 어느 것보다 아픈 기억일 터이니 빨리, 많이 배운다.

  막 결혼했지만 사내 구실을 못한다고 소문이 난 막수트.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혼인을 해서 그런지 소문이 나자 두문불출,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사라졌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라면 모멸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그랬을까? 숱한 이웃을 이탈리아 군에 고발하는 첩자짓을 서슴지 않았고, 이런 비밀은 절대 끝까지 가지도 않는 일이라 이탈리아군이 물러나고 독일군이 재점령할 잠깐의 사이에 산사람들이 내려와 포고령에 의하여 총살에 처해버린다.

  영국 공군에 의한 폭격, 독일 탱크의 진군. 산골의 한 돌집 도시가 힘겹게 한 시절을 견디는 광경을 소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다. 힘들지만 결코 절망적인 시선도 아니다. 지지고 볶고, 죽고 죽이고, 굶어 피죽도 못 얻어먹어도 사람은 살아간다.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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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12-23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5별. 4는 아쉽고 아쉽다. 5는 조금 과하다.

yamoo 2025-12-2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다레가 알바니아 근처 출신이었다니!! 여태껏 스페인출신이라는 착걱 속에서 살았네요..ㅎㅎ

Falstaff 2025-12-23 16:06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ㅎㅎ 함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

감은빛 2025-12-24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글을 읽으니 머리 속에 그림처럼 여러 장면들이 그려지네요.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저 어제 책 주문했는데, 어제 주문하기 전에 이 글을 읽었다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이 책은 해가 바뀌어야 주문하겠네요.

Falstaff 2025-12-24 04:29   좋아요 0 | URL
새털 같은 나날인데 서두르지 마셔요. 연말과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