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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향 - 가족 3부작
김원 지음 / 문장의바다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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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아마도 오늘이 2024번째 맞는 크리스마스, 성탄절이겠구나. AD 0년은 없지? 예수님이 1년 12월 25일생이니 첫번째 크리스마스, 성탄 기념일 또는 성탄 축일은 2년 12월 25일 첫돌 때. 돌잡이로 뭘 집어드셨을꼬? 올해가 2025년이면 2024번째 크리스마스라고 해야 맞는 거 아닐까? 워워, 하여간 지금 새삼스레 그걸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고, 하필이면 성탄절에 《만리향》 같은 우울한 작품의 독후감 업로드 일정이 잡혀 심히 유감스럽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서두를 이렇게 꺼냈다.
자연인 ‘나’의 입장에선 크리스마스가 아무런 날도 아니다. 이젠 매일이 노는 날이라서 휴일이 뭐 그렇게 좋은 날도 아니다. 도서관 휴관일이라 취미생활도 즐기지 못하는 날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313년 밀라노 칙령 이후) 1천7백년 동안 유럽인들이 기념했고, 2백년 전부터 극소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념했으며, 70년 전 한국전쟁 이후 숱한 젊은이들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 추다가 간혹 임신까지 한 날이니 이만한 유감은 표해 주어야 옳은 듯하다. 눈에 훤하다. 이 말을 들은 가톨릭 환자 술친구가 하실 말씀이. 그렇다고 꼭 이렇게 입방정을 떨어야 속이 시원 하겠니? 뭐 이거 비슷하겠지.
극작가 김원. 인터넷의 부정확한 바이오와 책갈피, “작가의 말”을 요약해 이야기해보자. 1980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자라 대중금속공고를 졸업했다. 2007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해 데뷔했고 대표작으로 <만선>, <만리향>, <만가>로 이어지는 가족 삼부작을 꼽는다. 희곡 창작 외의 직업으로 막노동꾼, 석면해체공, (자)관악캣대디연합 초대회장을 역임했든지 지금도 회장이든지 둘 중 하나다. 여기서 (자)라고 함은 내가 알기로 합자회사를 말하는데 정말 고양이 키우는 남자들이 모여 회사, 이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게젤샤프트, 법인을 만들었는지, 그냥 재미삼아 해본 말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캣맘도 있거늘 켓대디라고 없을쏘냐!
명색이 한 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 책이 나온 2024년말까지 꽉 차게 44년 동안 집안에 돈도 한 번 제대로 벌어 가지고 온 적이 없었어도 어머니는 한 번도 원망조차 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도 그동안 놀고먹은 것이 아니라는 걸 가족에게 생색내기 위하여 낸 거라고 주장한다. 좀 궁색하다. 그래서 “작가의 말”을 이렇게 마친다.
“그대에게 부탁한다. 살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사라. 그대가 이 책을 사는 순간, 그대의 문학성과 나의 황량한 통장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김원은 몰랐겠지. 마지막 말을 읽는 독자의 심정을. 당신이 뭣이건데 당신의 작품을 읽음으로써 내 문학성이 풍요로워질지 아닐지 확신하지? 말 뽄새나 곱게 하든지 말이야. 크리스마스 새벽부터 시비거는 건 아니고, 성탄절을 맞아 극작가 김원도 좀 겸손해졌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낼 모래면 나이 50이 앞에 와 있을 터이니.
《만리향》은 앞에서 말한 이이의 대표작, “가족 삼부작”을 한 권에 다 실었다. <만선>, <만리향> 그리고 <만가輓歌>.
가족. 가장 가까운 관계. 어떻게 해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피로 엮인 사람들. 너무 가까워 구성원들은 서로 쉼 없이 상처입고, 상처 주고, 가장 적나라한 부끄러움을 공유하는 지긋지긋한 쳔형天形이자 축복의 관계. 행복한 가정은 극과 이야기로의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한 가정/가족을 써봤자 늘 그게 그거라서 작가는 어떤 불행한 가족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터. 따라서 《만리향》의 세 작품 역시 골치 아픈 세 가족의 이야기.
첫 작품 <만선>. 만선滿船이다. 나는 <만선>하면 천승세의 걸작 희곡 <滿船>을 떠올린다. 천승세를 읽은 게 대학 다닐 때였나 그랬다. 가끔 공연을 하는 거 같은데 정작 책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희곡 보존 현실이 이렇다. 김원의 <만선>은 당연히 천승세와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으로 다른 건 배가 그물을 쳐 잡는 대상. 천승세의 만선이 참조기도 아니고 부세였다면, 김원의 배는 가족을 낚았다. 가족을 바다에서 낚아? 그러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가족들이 바다에 빠진 상태여야 한다. 근데 아직 빠지지 않은 가족 한 명이 그들을 다시 배위로 올려야 “만선이다, 만선!”하고 외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된다. 이 가족은 80대 치매를 앓는 남자 노인과 50대 중반/초반인 아비/어미, 이들의 자식이자 노인의 손주들인 20대 아들과 딸로 되어 있다. 화끈하게 얘기해버리면, 이들은 평생 어디 한 번 놀러가본 적도 없으면서 식구 전부, 다섯 명이 몽땅 동해바다로 왔다. 기념삼아 횟집에서 거하게 한 상 차려 먹었다가, 밑반찬, 책의 표현으로 ‘스키다시’를 잘못 먹어 단체로 설사가 쏟아질 지경이다. 한번도 바뀌지 않을 장소, 무대가 그리 크지 않은 고기잡이 배 선창.
가족은 전부 밧줄로 허리를 감아 연결되어 있다. 삼부작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가족 중 장애인이 한 명 이상 등장하는 것. 노인이 치매인 건 앞에서 말했고, 아비는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가 의족이며, 딸도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지체장애인이다. 다섯 가운데 세 명이 장애인인 가난한 가족. 미장 일을 하던 아버지는 덤프 트럭에 받쳐 장애인이 되었는데 여태 뺑소니 사고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때 받은 합의금을 몽땅 경마장 말밥으로 날려 버린 거였다. 이후로 엄마가 궂은 일을 하며 집안을 꾸려나갔다가 이사할 때 모자란 보증금 때문에 사채를 쓰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눈덩이로 변해버렸다. 안 되는 집안은 다양하게 안 되는 법이라서, 민중의 지팡이,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들은 범죄자들로부터 소소하게 상납금을 챙겨 그나마 가계에 보탰는데 이게 들통이 나 권총을 든 채로 근무이탈, 가족 모두, 이렇게 살면 뭐 하니, 단체로 자살하기 위해 동해안으로 왔고, 근사한 횟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으며, 만찬 도중 은전 30냥에 팔린 식구는 없었지만, 그놈의 “스키다시” 먹은 죄로 물똥이 급하게 된 상태. 이 고기잡이 배도 아들이 권총으로 선주를 협박해 빼앗은 것이라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해경이 들이닥칠 것이 뻔해, 거사를 위해 얼른얼른 물에 빠져야 하건만, 그게 어디 쉬워? 쉬운 일이냐고?
두번째 작품 <만리향>은 중국음식점이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파는 한국식 중국음식점. 검색해보니 “만리향”이란 옥호의 중국음식점이 전국에 널렸다.
책 속의 만리향은 죽은 아빠가 직접 주방을 담당했던 집이다. 곧이곧대로 원래 레시피를 바꾸지 않고 주문 후 조리 방식을 고집해 맛집으로 이름이 나 각종 방송에서 촬영을 나왔지만 자기 얼굴이 매체에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아빠는 딱 한 번,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만리향의 존재를 알렸을 뿐이다.
지금은 40대 초반인 첫째가 주방을 맡고 있다. 다른 중식집처럼 짜장과 짬뽕 국물을 아침 일찍 한 솥 끓여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보온 상태의 소스와 국물을 면에 담아 가져다 주니 그게 제대로 맛이 나겠어? 손님은 날마다 줄고, 그냥저냥 먹고는 사는데 점점 찌그러져 가는 건 사실이다. 첫째가 공부를 잘해 대처에 나가 좋은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다가 그만 찌그러져 집에 와서 아버지한테 주방을 물려 받았다.
둘째는 이번 드라마 때문에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고 아빠 친구의 여동생이 일본에 가서 일본 조폭과 낳은 아들이란 걸 처음 알았다. 주목! 두 형제와 아버지 사이에는 맺힌 것이 오지게 많다. 근데 그건 둘째의 입양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보통의 가정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일 뿐, 저 밑에는 서로를 배려해주려는 마음이 깊다. 하여간 둘째는 아빠가 공부 잘하는 형만 싸도는 거 같아 사춘기를 맞자마자 본드 흡입하고, 싸움박질 하면서 밖으로만 나돌다가 일찌감치 가출해버려 지금 이때까지 따로 살고 있다.
셋째는 딸. 딸 하나만 정상이다. 전에 유도를 꽤 잘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가족의 중심을 잡는 역할.
그리고 엄마. 60대 중반의 과부댁. 엄마한테는 넷째가 있었다. 딸이었는데 지체장애였다. 5년 전, 이 지체장애인 딸이 사라졌다. 이후로 전국의 장애인 시설과 하다못해 고아원까지 안 뒤져본 곳이 없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전국의 전봇대라는 전봇대에 빠짐없이 넷째의 사진과 심인 광고를 붙였지만 아무 소식도 없다. 이제 하나 기대고 싶은 건 샤머니즘. 굿을 하고 싶다. 엄마의 간절한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세 자식들. 그러나 문제는 돈. 자식들은 굿의 목적이 넷째를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정신과 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함이라는 걸 포착해 한 바탕 연극을 마련하는데, 재미있다.
마지막에 실린 <만가輓歌>는 말 그대로 누가 죽는다. 죽으면서 그냥 요즘 유행대로 화장해 날리던지 가족의 묘에 묻던지, 납골당에 안치하면 될 것을 자기 죽으면 꼭 집에서, 옛날처럼 초상을 치루고, 반드시, 어기지 말고 반드시 상여를 태워 매장해주기를 바랐다. 이 집도 공부 잘하는 첫째 아들이 특전사에 장교로 자원 입대했다가 다리가 결딴나 장애가 생겨 상이 제대한 상태이다. 나라에서 나오는 유공자 연금으로 먹고 산다. 그러니 무슨 돈이 있어 상여까지 태워 장사를 지내나? 다 준비가 있었다. 죽은 아버지가 자기 장사 치룰 돈은 마련해 놓고 죽은 것. 이 돈이 두 형제와 딸, 세 명의 다툼이 될 거 같지? 안 그렇다. 이 가족 역시 속에 맺힌 건 태산의 바위만큼 많지만 기본적인 정서는 배려이다.
재미있는 책이니 도서관에 있으면 읽어보셔도 좋겠다. 작가의 말에 나온 것처럼 굳이 사서 읽어, 문학성을 풍부하게 하셔도 좋고.
성탄절, 즐겁게 보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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