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문학과지성 시인선 230
진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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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전북 고창에서 나 전북대 국문과와 전주대 미술교육과를 졸업해 국어와 미술 교사로 일한 조금 특별한 쌤이었다. 학부를 두 번 다녀서 그런가, 시인 등단은 33세였던 1978년 “시와 의식”을 통해서 했다. 한국예술인단체총연합회 전주지부 회장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전주 일대, 즉 전북지방에 대한 애착이 가득한 시들을 많이 쓴 거 같다. “~거 같다.”라고 표현한 건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이 내가 처음 읽은 진동규의 시집이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시집을 검색해보니 오래 전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연을 했던 현빈이 이 시집을 들고 몇 컷을 찍은 적이 있나 보다. 몇 명이 그림을 보고, 현빈이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으니 꽤 좋은 시집인가비여? 해서 사 읽었더니, 생짜 초보한테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을 터. 우짤꼬? 막 복잡한 한자가 쓰여 있기도 하고, 이미 천몇백년 전에 죽은 왕의 이름도 나오고, 어질어질 했겠지. 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상병욱선생께서 부여 사람이었는데 쌤을 통해 처음으로 견훤이라는 인물을 알았다. 문경군 가은 사람으로 고려의 장수였다가 후백제를 세워 초대 황제로 등극한 천하장사. 한 때는 왕건도 벌벌 떨게 만든 맹장, 용장, 지장이지만 덕장이 아니라서 결국 왕건에게 귀화한 인물.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후백제가 주로 터를 잡았던 것이 완주군 일대. 삼국시대에는 완주에서 문경까지 곳곳의 벌판에서 아주 활발하게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그래 진동규가 전주시 덕진연못에서 연꽃을 보고 이런 노래를 지었다.



  눈썹 끝에 연꽃 피는

                  ― 德津採蓮


  젊은 장수 견훤은 반월성 짓고 눈 지그시 앉아 눈썹 끝자리쯤 해서 연못을 팠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해낸 일이고 보면 그 속 헤아릴 수야 없겠습니다만, 선화 공주랑 배 띄우고 놀았던 서동의 미륵사 연뿌리 옮기어 꽃피게 하였던 것을 보면 글쎄, 아마도 무왕 대에 현신하지 않은 미륵을 당신은 꼭 보리라 믿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야심찬 대왕님 그때 반월성은 흔적도 없고 아스라한 세월의 눈썹 끝자리 철 찾아 연꽃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그러는 걸 보면 고개 숙이는 그대 진정 선화 공주이려니 싶어 가슴 두근거리고 그럽니다. (전문. p.11)



  德津採蓮은 덕진채련. 덕진(연못)에서 연꽃을 따다, 라는 뜻이다. 훗날 백제의 무왕이 되는 젊은 서동이 역시 훗날의 선덕여왕의 여동생 선화공주가 그리 예쁘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잠입해 들어가 동네 꼬마들에게 군것질거리 마를 주고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으니, “선화공주님은 밤마다 서동을 남몰래 방으로 끌고 들어가 얼레리 꼴레리.” 이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선화공주는 서동을 따라가 훗날 무왕의 비가 되었으나, 막강한 남편 무왕이 문경 근방의 벌판에서 조국 신라와의 전투에서 용감하게 전사해버려 졸지에 과부가 되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지.

  진동규는 옛 백제땅이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전이 있는 전주를 왔다갔다 하다 덕진연못에 들러 때마침 활짝 핀 연꽃을 보며 그곳에 지었다 하는 반월성과 덕진연못의 주인 견훤과, 무왕, 선화공주 모두를 불러모았던 거다. 옛 왕조의 왕들과 왕비를 불렀으니 시인의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진주 출신 가운데 애매한 사람이 있다. 정여립鄭汝立. 인망이 높은 이이를 흠모해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는데, 그러면 몸 조심을 좀 해야지. 금강 상류인 전북 진안에 죽도라고 있었다. 그곳에 서실을 차리고 대동계를 모았다. 당시 선비들이 자발없이 뜀박질하지 않고 근사하게 할 수 있는 스포츠가 국궁 말고 거의 없었다. 그래서 활을 쏘며 지화자, 관중이요, 웃고 노래하고 술 마셨을 터. 선조 때 기축옥사로 화를 입은 정여립의 집 건너마을 이름이 ‘댁건너’란다. 당연히 ‘댁’은 정여립 영감 댁을 말하겠지. 대수리는 다슬기의 방언이고. 그럼 제목은 이해가 되렸다.



  댁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

                          ― 月岩撈摸


  살던 집은 텃자리까지 파버렸습니다. 그 이웃까지 뒤집어 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 가게 하였습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버렸지만 그때 그 집 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북으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셈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댁건너 마을 사람들은 上竹陰 下竹陰하면서, 서방바우 각시바우 애기바우 그 피울음을, 상댁건너 하댁건너 점잖던 자기 마을 이름 위에 불러보기도 해보지만, 어떻게 변명 말씀 한번 엄두를 못내고 죽어 지내왔습니다.

  그 집 뒷산 월암에 달이 뜨면 댁건너 사람들은 월암 아래 소에 들어 대수리를 잡는답니다. 관솔불들을 밝히고, 주춧돌 기둥뿌리 항아리 깨진 것, 뭐 그 집 주인 뼛속까지 빨아 먹고 자란 대수리들을 잡는답니다. 일삼아 잡아내고 그런답니다.  (전문. p.12)



  서인이 동인의 씨를 말리려고 정여립과 관련한 인물들은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도륙을 낸 모양이다. 그게 이 동네 댁건너 사람들까지도 피해가 갔겠지. 근데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흘러 북으로 흐른다는 소문”이 무엇인고? 정여립이 난을 일으켜, 전주천의 물이 한강까지 올라가면, 지리학에 전혀 배움이 없어서 금강이 어떻게 한강수로 흘러가는지는 관계하지 않고, 겨울이 올 때 한강이 꽝꽝 얼 것이고, 이때 말에 오른 정여립이 전라와 경상에 있는 자기 지지군을 모아 한양으로 짓쳐 올라가 왕상을 도륙낸다는 유언비어를 말한다. 이런 야만의 시절이었으니 어찌 정여립이 명을 보전할 수 있었겠는가. 다 억울한 죽음이고 한낮 정치싸움이었을 뿐인 것을. 하긴 요즘 보면 큰 정당 하나 완전히 골로 갈 것 같긴 하다만. 역사는 흐른다? 큭큭큭.

  이렇게 시집의 1부는 진동규가 터 잡고 사는 전라북도 전주시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의 역사를 노래하고 있다. 명색이 한국예술인단체총연합회 전주지부 회장을 역임했으니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수도 있고. 김유정문학관장을 지낸 전상국도 그의 소설집 《굿》에서 김유정에게 두 편을 헌정한 적이 있으니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다.


  생활인으로서의 진동규. 내내 개인주택에 살다가 편한 아파트로 이사를 한 모양이다. 개인주택에는 별 생각도 못한 공간에 완전히 잃어버린 기억 속의 예상치 못한 물건들도 어딘가에 모아져 있다. 정말 상상도 못한 것들. 직업이 교사이고 시인이었으니 당연히 발표하지 않은 원고도 있고, 그리다 남은 캔버스도 있고 그랬겠지.



  불꽃


  아이들 편하다고

  아파트를 얻어가는데

  이사 옮길 때마다 웬만한 것들

  눈 딱 감고 버리고 그랬는데

  토요일 한나절을 또 불 처지른다

  학교 다닐 때 썼던 원고 뭉치도 나오고

  용머리 고개 호리꾼 시절도 나온다

  다락에 쌓아둔 그림 속에서는 지난 겨울

  쥐 한 가족이 살림을 차리고 갔다

  내 자화상 어깻죽지를 새김질해서

  새끼랑 키우고 나간 모양이다.

  꽃 피고 낙엽 지고

  눈 쌓이던 동네 고샅 고샅

  한 귀퉁이씩 다 새겨놓았다

  싸잡아 내친 캔버스가 텃밭 한 귀

  얼키고설키며 내 키를 넘는다

  이렇게 활활 타는 불꽃이면

  얼마나 후련한 것을

  안 풀리던 세월

  지글지글 기름을 태우며 떠난다

  너울거리며 너울거리며 간다  (전문. p.44~45)



  쉬운 시라서 척 읽으면, 탁 알겠다. 그냥 이사하면서 별의 별 거 다 나왔고, 그 중에 버릴 건 버리고, 쓰레기봉투에 담으려면 봉투 값이 아까울 것들은 아예 마당 귀퉁이에서 태워 버렸는데, 얼마나 많았던지 불길이 키를 넘는 모습. 태우는 마음이 좋기도 힘들다. 물건만 타는 게 아니고 거기에 묻은 누추한 시절의 짠한 추억까지 타버리는 거라서. 한번쯤 겪어 보셨을 테니 이해하실 듯.

  근데 이 시집은 시인 근처에 사는 독자는 재미나게 읽겠는데, 나처럼 떨어져 있는 사람한테는 좀 실감이 덜 날 정도로 전라북도 전주와 완주 근방에 (아이 씨, 이렇게 쓰면 까칠한 분이 영어로 한다고 한 마디 안 하시려나) 전주와 완주 근방에 오리엔티드 되어 있다. 1부에서는 지형과 그곳에 담긴 역사. 뒤로 가면 사람들, 1999년 현재 鵲村(작촌) 조병희 선생처럼 살아 있는 사람도 있고 이미 가버린 삼례의 김춘식 씨, 이평 아전을 했던 판소리의 보존자 신재효 선생 등등.. 6부로 가면 예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것들까지. 참 알뜰하게 모았다.

  그렇다고 이 시집 하나 들고 전주와 완주 거리를 어슬렁거릴 수도 없는 거잖아? 왜 안 돼? 한 번 해볼까? 아서라, 기름값 엄청 올랐더라. 연금생활자 주제에…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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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1-18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빨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1-18 15:38   좋아요 0 | URL
흥, 안 갈겁니다. 넘 추워요. ㅎㅎㅎ

잠자냥 2025-11-18 16:01   좋아요 0 | URL
주말에 다시 기온 올라갑니다! 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5-11-18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금생활자는 그래도 일종의 행복한 삶에 속하지 않습니까!

Falstaff 2025-11-18 15:41   좋아요 1 | URL
아휴, 국민연금 얼마나 된다고요. 여태까지 살던 규모를 팍 줄일 수 있으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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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1985년에 우리나라에서 UFO가 가장 빈발하게 발견되는 강원도 W시에서 출생해 고려대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37세 때인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무겁고 높은>이 당선하여 데뷔했다. 대학 졸업 후부터 데뷔할 때까지 설마 그냥 놀았겠어?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했거나, 사업을 했거나 그랬겠지.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실린 단편소설 아홉 편의 발표시기를 보면, 데뷔작을 포함한 2022년 네 편, 2023년 네 편, 2024년 한 편. 그러니까 분기별로 한 편가량 꾸준히 발표를 한 셈이다. 그동안 습작했던 걸 다시 고쳐 발표했을 수도 있고, 직장 또는 직업 때려 치우고 본격적으로 전업작가 생활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들이 흥미롭다. 소설집의 제목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으로 뽑은 것처럼, 작가는 기본적으로 왼쪽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주변에서 지겹게 발견하는 투쟁적 유아독존의 왼쪽은 아니고, 흔히 오른쪽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자본이나 학력 같은 권력에서 소외된 마이너리티 사이의 삶을, 이렇게 말해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따듯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이 마이너리티들의 어울림을, 예전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어수선했던 고위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한 정당의 총수가 말했듯이, 시냇가의 가재, 붕어, 개구리들이 자기들끼리 분수를 알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재, 붕어,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급 탈출/타파 노력은 사실 시냇물 속에서 벌어지겠지만, 진짜로 사람들이 사는 사회 속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들은 기껏해야 다 들으려면 몇 시간이나 걸리는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녹음한 인터내셔널가를 유튜브를 통해 들을 뿐이다. 어디서 본 거 같지? 나만 그런가?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어 버린 김수영 같지 않아?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권진주와 김니콜라이. 권진주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편의점, 생과일주스 가게, 무한리필 돼지갈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졸업을 했고, 그러면 뭐해, 두어 군데 사무실에 취직을 했지만 수당 없는 초과근무와 급여 지연, 갑질, 성희롱에 학을 떼고 이마트인 것이 틀림없을 대기업의 비정규직원으로 취직해 식품 쏜살배송 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니콜라이는 특성화고에 들어가 선반, 밀링 같은 쇠 가공 쪽으로 자격증을 몇 개 땄지만 자격증과 전혀 관계없는 식품공장을 시작으로 이러저러한 공장을 전전하다가, 경기도 남동쪽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그래도 중학교 동창, 그것도 반창이니 반가웠겠지? 이들은 곧 전화번호를 교환해서 진주가 먼저 삼겹살에 소주를 사고, 다음엔 한국 태생 고려인 3세 니콜라이가 감자탕에 소주를 사는 등 어울리다가, 비정규직의 직장생활이 길어질 수는 없는 법이라서 비슷한 시기에 경기도 남서쪽으로 옮겨 아예 한 집에 살기로 한다. 니콜라이가 귀화를 하려면 먼저 영주권을 따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 평균 수입의 일정 수준에 해당하는 재외국인에게만 영주권이 주어지는 조항에 의거하여, 이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연수입이 3천8백은 되어야 한다. 꿈 깨야지 뭐. 근데 한국인과 결혼하면 곧바로 영주권을 얻고, 즉시 귀화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나? 어쩌셔? 진주하고 결혼신고만 하면 될 거 아냐? 근데 그게 쉽게 되겠어? 세상 사는 일 마음 같지 않아서 그저 유튜브 틀어놓고 인터내셔널가만 겁나 부르는 거지,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 버리는 것처럼.


  처음 읽는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아마 첫 소설집일 걸? 그러면 처음 읽는 것이 당연한데, 마음에 든다. 시선이 과격하지 않고, 꽤나 진보적 성향이지만 웅변하지 않는다. 별로 꾸미지 않는 문장으로 작품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섬세하게, 실핏줄 같이 쓸 수 있다는 걸 아주 잠깐씩 팍, 보여주기도 한다. 서른일곱 살까지 습작을 했다면, 공력이야 말해 뭐하겠어. 엉겁결에 후다닥 등단하는 행운을 잡은 몇몇 로또들 보다 많이 윗길이다.

  근데 이미 꼰대의 대열에 들어간 내게 김기태의 작품 속에는 작가가 생각도 못한 허들이 놓였다는 건 몰랐겠지.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21세기도 아니고 1990년 이후에 나온 국내/해외 대중음악에 관해서는 완전 깡통이다. 반면에 김기태는 대학에서 언론학부를 졸업했다니 예전 방식으로 말하자면 신문방송학과 맞지? 성시경이 졸업했다는 과. 그래서 TV 프로그램과 K-팝, 걸그룹, 보이그룹 등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그걸 진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기태의 단편 몇 개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는 건 아니지만 좀 갑갑했던 건 사실이다. 제일 앞에 실린 <세상 모든 바다>는 물론이고, “짝짓기 프로그램”이란 걸 묘사하는 두번째 실린 작품 <롤링 선더 러브>도 정말 그런 짝짓기 프로그램이 있었고, 출연한 사람들한테 그렇게 무도한 작업을 하라고 했다고?

  왜 내가 <1박2일>이나 예전 MBC에서 비슷한 시간에 하던 오락 프로그램을 딱, 끊어버렸느냐 하면, 단지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거 하나 가지고, 방송이라는 권력이 출연진, 소위 방송인, 강호동, 이승기, 엠씨몽, 이수근, 유재석, 박명수, 하하, 기타 등등 한테 온갖 창피스러운 꼴을 당하게 해서 그랬다. 연예인이라는 거 하나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망가뜨려놓고 낄낄거릴 수 있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렇지. 에구, 다른 말이 너무 길어졌네.


  제일 앞에 실린 <세상 모든 바다>는 발단에서 K-팝 그룹 ALL THE SEAS OF THE WORLD, 세상 모든 바다, 약칭 “세모바” 또는 “SMB” 공연이 잠실운동장에서 있는데, 공연이 끝난 후 세모바가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야외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 그걸 보기 위해 14만 명이 몰린다. 이곳에서 한국에 유학 중인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거류민 3세의 아들’ 하쿠가, 경북 해안 지역에 있는 해진군에서 콘서트 때문에 올라온 중학생 영록을 만나고, 곧 헤어진다. 자취집으로 돌아온 하쿠가 14만명이 운집한 잠실에서 몇 명이 죽는 사고가 난 것을 TV를 통해 알게 되고, 사망자 명단에 해진군의 중학생 영록도 포함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하쿠는 영록을 잊지 못해 낙후된 해진군을 방문한다. 거의 망가져가는 도시. 군청 앞에 작은 테이블을 차려놓고 한 아주머니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원래는 여러 명이 모여 시작을 했지만 날도 춥고, 유동인구도 없어서 점점 작은 규모로 이어가다가 그래도 시위를 멈출 수 없어 오늘은 한 명만 서 있게 된 모양이었다. 시위의 주장은, 경북도와 해진군의 원안대로 이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변에 산업도 없고, 제대로 된 어항도 없으며, 그저 작은 온천지대 하나뿐이라 해진군은 점점 낙후되고 있어서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려 하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몇 년씩이나 중단 또는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쿠는 자기라도 원전유치 청원에 서명하려다가, 일본인이기도 하고, 자기 정보 노출 문제도 있고, 원전을 굳이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어서, 마침 차가 왔다는 핑계로 그냥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은 이해하겠다. 세상의 모든 원자력은 나쁘다? 자주 나쁘지만 어떤 때는 덜 나쁘다. 아주 가끔은 그래도 써야 한다. 원전이 석탄발전에 의한 지구 온난화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으며 경제적이다. 아직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 발전은 원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낮은 효율을 낼 뿐이다. 자연발전을 고집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싼 전기요금을 감수해야 한다. 열배, 혹은 50배? 어쩌면 미친 트럼프의 비자 수수료처럼 한 방에 100배.

  원자력발전 반대, 지구 온난화 반대를 주장하시는 분. 올 8월 전기요금 얼마 내셨나 궁금하다. 내가 먼저 밝히겠다. 8월 사용량 264KWh, 요금 38,750원. 9월엔 182KWH, 28,500원. 다른 집보다 많이 썼는지, 적게 썼는지 모른다. 우연히 책상 위에 놓여 있길래 그냥 써본 거다.

  찬 태양광, 반 원전과 관련해서 내가 제일 관심있는 것은 원전을 쓰지 않으면 당연히 전기 가격이 치솟을 텐데 도시 빈민이 에어컨을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가동 시간만큼’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7월 말에, 에어컨이 없으면 여름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싶어서 3일 동안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지내보겠다고 했다가, 딱 하루 버티고 에어컨 다시 틀었다. 그러고나서 지금 세상은 에어컨 없으면 살기가 쉽지 않다고 결론 냈다. 앞으로는 전기 자동차, 전기 버스, 전기 화물트럭, 전기 화물선박, 전기 비행기까지 만들어 써야 하는 시절이 바로 코 앞에 닥쳤다. 동시에 지구가 더 더워지지 않기 위하여 대량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여전히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 에너지 발전을 주장하는 분들 보기가 좀 민망하다. 당신들은 열배, 오십배 비싼 전기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없는 사람은 어쩌라고? 당신이 정말 좌파라면, 진보진영이라고 자부한다면 계급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원자력 결사반대 주의자였던 다와다 요코와 오에 겐자부로 같은 반 원자력 운동가들의 한달 전기 사용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왜 궁금할까?

  핵 에너지를 반대하는 환경주의자의 주장도 다각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환경주의자라지만 싫어도 써야 하는 필요악도 있어서, 이걸 원자력 발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에 현혹되는 순진한 분도 있는 법이다. 과학을 배제하는 진보, 나는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원자력 발전에”는” 찬성하는 친환경주의자이다. 자연발전이 비약적으로 도약하여 원전보다 전기 생산 가격이 조금만 비싸지거나, 같아지거나, 저렴해질 때까지라는 조건이다. 아무 조건 없이 반원전을 외치는 분들, 귀댁의 8월 전기 사용량이 궁금하다. 내 집 사용량보다 당연히 훨씬 적을 것으로 믿는다. 강조하는데, 마침 8월, 9월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앞에 있어서 하는 말이다.


  김기태가 또 책을 내면 그것도 틀림없이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은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하긴 했지만 바로 5분 전에 누군가 먼저 신청을 해서, 입고가 됐고, 이후 무수한 이용객들이 예약을 하는 바람에 5월에 나온 책을 이제야 읽었다. 바라건대 뚝심 잡고 제대로 장편 한 편 써 보면 어떨까?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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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사랑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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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도 4반세기가 지났는데, 이렇게 소설 쓰기, 있기, 없기? 앙가슴이 무너질 용의가 없으면 아예 책을 열지도 마시라. 여전히 손짓 하나로 심리 묘사가 가능하다는 말이지?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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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Omer Z. 리반엘리 지음, 고영범 옮김 / 가쎄(GASSE)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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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줄퓌 리바넬리 <세레나데>가 워낙 좋아서 그런가, 이후 이이의 작품을 읽은 다음엔 그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불안>을 읽은 지금은, 혹시 <세레나데>를 읽을 당시 오늘 아침에 읽은 <불안>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 리바넬리 특유의 감정 과잉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감지는커녕 과장에 홀랑 빠져 내가 흔히 이야기하고는 하던 빼어난 문장에 의한 마취 혹은 최면에 취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의혹까지 생기고 말았다.

  아, 지금 <불안>이 재미가 없다거나, 감동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충분히 재미있고, 알지 못했던 잔인한 인종청소를 당한 불행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기도 하다. 다만 이걸 묘사하는 리바넬리의 문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아오, 이 이야기는 애초부터 독후감 말미에 쓰려고 마음먹고 있던 건데 제일 먼저 말해버리고 말았다. 조금 있다가 20년이 훌쩍 넘는 단골 횟집에서 쐬주 마시자는 약속이 있다. 암만해도 그래서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다. 배도 좀 고프고. 배 고프면 제대로 잘 판단이 안 되잖아?


  화자 ‘나’의 이름이 이브라힘.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저널리즘에 종사한다. 쉬운 얘기로 신문기자다. 전엔 ‘기자’하면 어깨에 후까시 팍 들어간 줄 알아서, 기자가 되기 위한 시험 ‘기시’를 사시, 행시, 외시와 더불어 4대 고시라 칭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신세계백화점 옥상에서 돌 던지면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맞는다. 시인, 화가, 그리고 기자. 그래서 기자더러 기자라고 부르면 기분 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저널리스트라고 해야 씩 웃으며 콧김을 뿜고.

  만일 살인 사건이 나면 튀르키예 신문엔 살해된 시신 사진을 그냥 싣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출간하자마자 데스크에서 기자들 집합시켜놓고 각종 험한 시체들 사진 가운데 실을 만한 사건을 추리는 중에 이브라힘의 눈에 오래 잊고 있던 저 먼 시절의 초등학교 동창의 죽은 모습이 들어왔다. 후세인. 수십년간 철권 통치를 했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아니라 튀르키예 동쪽 시리아 국경 근처의 오래된 타운 마르딘에서 의사로 일하던 친구. 그가 죽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두 친형 살림과 압둘라가 운영하는 피자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이 다 끝난 한밤중에 청소와 정리를 하느라 남아 있다가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백인우월주의자이며 반무슬림집단인 깡패들에게 칼로 수십곳을 찔려 치명상을 입고, 앰뷸런스로 응급실로 옮겼지만 처치 중에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는 외신과 사진. 후세인의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은 응급의료전공의 인도인 의사였다. 환자가 죽기 전에 무어라 의사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마지막 말을 하는 것 같아서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을 한 것이 남아, 훗날 이브라힘 기자가 들을 수 있었으니, 이랬다.

  “한때는, 난 사람이었다.”

  튀르키예는 두터운 햄이 좌우로 누운 것처럼 생겼다. 왼쪽에는 스스로 유럽인이라고 여기거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1천5백만 명이 밀집해 사는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자유스럽고 분방하게 살고, 오른쪽으로 가면 갈수록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면서 아직도 20세기 이전의 지독한 이슬람 관습에 따라, 사막 비슷한 환경에서 그래도 꿋꿋하게 살고 있다. 이브라힘이 살던 마르딘으로 말하자면 일찍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향유했던 유서 깊은 곳이지만, 최근 불과 몇 십 년 만에 사랑과 자비와 친절의 종교인 무슬림이 급격하게 원리주의화 되면서 인근 국가에서 벌어진 이슬람대 이슬람, 과격 이슬람 ISIL에 의한 오랜 종교 에지디 신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사막과 산악을 넘어 밀려온 곳이다. 이브라힘은 이곳 마르딘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닌 후에, 더 좋은 교육을 위하여 부모가 이스탄불로 보내 그곳에서 학업을 마치고 기자로 활동하고 있던 것. 이브라힘의 부모는 세상을 떴고, 결혼은 파국을 맞아 전 재산 탈고 모자란 건 영끌해서 산 집을 전처에게 주고 이혼서류에 인감도장을 찍었으며, 신문사 스탭들간의 지옥 같은 경쟁 속에서 완전히 피폐해졌다, 라고 여기는, 이른바 위기 상황에 처한 상태.


  반면에 후세인은 끝까지 마르딘에서 버텼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작은 키와 곱상한 피부에서 눈치챌 수 있다시피 힘도 없어서 친구들과 팔씨름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대신 모두 배워야 하는 꾸란에 관해서는 가장 뛰어났다. 공부 머리가 좋았다는 말이다. 집안에서도 부모 말씀에 복종하고, 하나 있는 누이동생한테 자상하며 온갖 집안일을 마다하지 않는 좋은 아들이었고, 때마침 (이브라힘이 이스탄불에서 공부하는 동안) 인근에 대학이 생겨 의과대학을 졸업해 지역 의사로 있었다.

  전형적인 선한 무슬림인 후세인은 이슬람국가를 천명하는 극단적 이슬람 ISIL이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서 내전을 일으켜 숱한 사람들이 난민촌에서 텐트 생활을 하기 시작하자, 두 손을 걷어 부치고 캠프에 들어가 이들 가운데 환자와 어린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난민 가운데서도 ISIL에 의하여 가장 난폭한 폭행을 당한 사람들이, 이슬람과 기독교는 물론이고 유대교보다 더 오래된 종교인 에지디 신자들이었다. ISIL 집단은 에지디 신자 가운데 15세 이상의 남자와 생리를 멈춘 나이든 여성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참수, 목을 잘라 버렸고, 생리를 하는 모든 여성은 강간을 한 후 노예로 삼았으며, 아직 초경 전의 어린 여자 아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동족 남자들이 자기가 보는 앞에서 목이 댕거덩 잘려 모래땅 위로 떨어지고, 가까운 어디론가 지하실 비슷한 곳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집단으로 윤간을 당한 후, 담배 한 갑 가격으로 노예로 팔려간 어린 여자들은, 어쩌면 당연하게 정신을 놓아 버리는 일이 잦았다. 가끔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적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기도 했을 수밖에. 더 가끔, 아주 간혹, ISIL로 위장한 에지디 신자가 한정된 돈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에지디 여성을 사서 국경 근처까지 데려가 튀르키예까지 사막과 산을 넘어 도망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후세인이 마르딘의 캠프에서 만난 여자들은 거의 모두 이런 경로를 따라왔던 것이고, 난민 속에는 적의 아이를 출산한 멜렉나즈라는 여자도 끼어 있었다.

  매력적인 눈을 가진 미인이지만 후세인이 멜렉나즈의 외모에만 끌린 것은 아닐 듯하다. 이 여자 품에 안긴 갓난 여자 아이 네르기스는 눈동자를 하얀 막이 덮고 있어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으로 출생했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멜렉나즈를 사랑하게 된 후세인.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 되지만 후세인이 멜렉나즈를 동정한 것을 사랑으로 착각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선의가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확인한 멜렉나즈는 후세인의 청혼을 받아들여 함께 후세인의 집으로 가지만, 에지디의 율법으로도, 이슬람의 율법으로도 둘의 결합은 허용되지 않았다.

  여기에 어느새 마르딘에도 과격 이슬람 ISIL의 분자가 생겨 어느 날 후세인에게 총을 난사해, 어깨와 왼쪽 팔에 총상을 입어 입원하게 된다. 이를 들은 미국의 두 형은 즉각 후세인을 설득하여 일단 미국으로 와서 재난을 피하고, 정식 서류를 갖춰 멜렉나즈와 아이도 데려가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인들은 이슬람의 모든 종파를 과격 이슬람과 동일시하게 됐고, 무슬림 자체를 증오하는 집단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리하여 두 명의 큰 덩치 백인이 후세인을 칼로 난도질해 죽여버렸던 것.


  작품의 중요한 내용이 ISIL이 에지디 교인들에게 가한 학살과 학대 등이다. 이런 지독한 고통을 당한 에지디 여성의 아픔을, 줄퓌 리바넬리는, 이스탄불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저널리스트로 생활하는 소부르주아 또는 상위 중산층의 괴로움, 직장에서의 무한 경쟁, 이혼으로 인한 자산의 탕진, 거대도시에서의 각박한 삶 등에 지친 이브라힘의 고뇌와 퉁치려 한다. 이게 날 극도로 언짢게 했다. 비교를 해도 비슷하게 해야지, 참수와 강간과 노예 상태의 에지디 사람들과 소부르주아의 일상적 고통을 수평비교 하려 하다니, 에잇!

  그러나 문장의 힘은 무섭다. 아무 생각 없이 명문장을 자랑하는 리바넬리의 글을 좇다가는 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럼 어느 문장이 그런데 이리 난리냐고? 이렇게 묻지 마시라. 나도 인용하려고 메모를 하긴 했건만 약속시간 다 됐다. 당신 같으면 독후감이 중혀, 민어 백숙에 쐬주 각 2병이 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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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바지
카를 슈테른하임 지음, 김기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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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른하임. 이름만 딱 봐도 유대인 집안이다. 유대인 은행가 카를 율리우스 슈테른하임 씨하고 눈이 맞은 루터교 신자 집안의 어머니 로사 마리가 카를을 낳고 2년 후에 혼인신고를 했다.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한 모양이다. 어머니 쪽이 루터교에, 가난한 노동자 계급이라서. 어쨌거나 아들 카를은 부잣집 자제 답게 뮌헨대학, 괴팅겐대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각 철학, 심리학, 법학을 공부했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흔한 학사 학위도 못 따고 졸업도 하지 못했다. 22세 때인 1900년에 바이마르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시작해 첫번째 결혼을 했고, 6년 후에는 엄청난 지참금을 가지고 온 테아 뢰벤슈타인과 두번째 결혼을 해 인생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했다. 한 방에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의 백배 이상을 확보한 슈테른하임은 ‘울프의 공식’에 의거해 자기 마음대로 작가들과 어울려가며 자신도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것 보라니까?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를 갖지 못하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걸 제공해 줄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라고 내가 몇 번이나 강조했잖아. 인생은 한 방이여.

  흥미로운 건, 이들의 딸 도로테아가 적어도 1/4이 유대인, 뢰벤슈타인도 유대인 가문이라면 최대 3/4이 유대인일 터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전사의 일원으로 활약하다 독일군에 체포되어 라벤스브뤼크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거기서 죽었는지 살아 남았는지는 위키피디아도 모르는 모양이다. 카를 슈테른하임은 1차 세계대전은 여유자금이 넘쳐 흐를 당시가 되어 스위스로 피신해 징집을 피했지만, 2차 세계대전은 그러하지 못해 벨기에에서 숨어 살다가 다행히 나치에 잡히지 않고 1942년에 죽어 묘지에 묻힐 수 있었다.


  슈테른하임의 장기는 독일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 시절을 일컫는 “빌헬미네 시대에 신흥 독일 중산층의 도덕적 감성을 풍자”하는 거였다고 위키피디아 첫 칸에 나온다. 오늘 독후감을 쓰는 <속바지>도 확실하게 그렇다. 이이는 1912년 이후에 비극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데, 책 뒤편 “지은이에 대하여”에 재미있는 내력이 있어서 소개한다.


  “1912년 슈테른하임의 <동 쥐앙(Don Juan)>이 베를린의 독일 극장에서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을 때의 일이다. 필립왕 역을 맡은 배우가 신하에게 “이 바보 같은 건 누가 썼지?”하고 묻는 장면에서 누군가 객석에서 ‘슈테른하임요!’하자 극장 안은 온통 웃음바다로 변했고 ‘브라보!’를 외치는 소리가 끊일 줄 몰랐다고 한다. 슈테른하임은 이 스캔들에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다시는 비극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작품에서는 낭만적 요소와 신비적 요소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극단적인 야유와 빈정거림으로 가득 차 있는 희극이었다. 희극은 시민 사회를 향한 슈테른하임의 조소를 효과적으로 퍼붓게 해 부르주아의 약점을 폭로하는 수단이 된다.” (p.189)


  위에 따온 글은 슈테른하임의 <속바지>를 이해하는데 꽤 큰 도움을 준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은유나 상징, 문학적 호소 같은 건 얄짤없이 그냥 고속도로로 직진해, 하고 싶은 말을 극단적으로 야유하고 빈정거린다는 거. 그걸 통해 현대 독일 중산층의 찌질함을 폭로하고 있다는 거다.

  작품의 남자 주인공이 테오발트 마스케. 여자 주인공은 루이제 마스케. 부부다. 이 ‘마스케’ 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작품을 연달아 발표하여 소위 ‘마스케 삼부작’이라고도 하는가 본데, 굳이 외울 필요 없다. 시험에 안 나온다. 테오발트가 바로 현대 독일의 중산층이다. 연수 700탈러를 버는 중∙하급 공무원.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과 속바지가 무슨 관련이 있어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속바지. 때는 1909년 이전의 베를린. 당시 유럽에는 팬티가 없었다. 삼각팬티는 1954년에 일본의 ‘사쿠라이’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손자를 위하여 디자인해 입혔던 것을 특허출원,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전에는 전 세계에서 다 헐렁한 형태의 ‘고쟁이’ 비슷한 걸 입었는데 이걸 총칭해 “속바지”라 부른다. 20세기 초반에는 합성 고무가 없어서 고무는 저 아프리카의 콩고 같은 오지 중의 오지에서 수입해와 상당히 비싼 재료라, 그걸 가공해 팬티 끈, 그러니까 속바지 끈으로 사용하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대신 천으로 끈을 만들어 죄어 묶어 썼겠지.

  속바지도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는 집구석에서나 입었다. 서민 계급은 요즘 말로 노팬티로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래 여름날 모시 바지를 입은 할배들은 축 늘어진 부랄이 흔들흔들 또는 달랑거리는 걸 맨눈으로도 볼 수 있었다고,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들었다. 여자들은? 보일 것이 없잖아? 당연히 안 보이지. 흔하게 보이면 그땐 흉도 아닌 거니까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람.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사람이 좀 털털했던 모양이지? 하루는 황제께서 행차를 하시는데, 황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베를린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구경을 하는 중에 하필이면 마스케 부인, 루이제 한테 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지나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뿔싸, 하늘도 무심하시지, 딱 이 시간을 맞추어 루이제의 속바지 끈이 스르르 풀려버렸고, 그래서 당연히 루이제의 속바지도 중력의 법칙에 의해 다리를 따라 또 스스륵 미끄러져 발목에 척, 걸쳐버린 걸, 글쎄, 빌헬름 2세가 봤는지 못 봤는지, 보긴 봤는데 황제 체면이 있어서 못 본 척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거다.

  봤겠어? 못 봤겠어? 나는 못 봤다는 데 만원 건다.

  근데 남편 테오발트는 그게 아니다. 서방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여 자만심이 상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의처증이 도져 그런 것도 아니다. 만일 황제가 자기 마누라의 속바지가 흘러내린 꼴을 보았다면, 저런 칠칠치 못한 여편네를 둔 남자가 공직을 맡았다는 걸 용서하지 않아, 아마도 근일 내에 해고당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테오발트는 자기 마누라 루이제가 무지 예쁘게 생겼다는 것도 모르고 사는 진짜 찌질이. 그리하여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야단치고, 두드려 패기 시작한다. 연수 700탈러 타령을 하면서.


  이제 동네방네 이웃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게 됐단 말이야. 마스케 부인 속바지가 벗겨졌다고! 그것도 국왕폐하 면전에서 말이야. 나 같은 말단 공무원이. 나도 죄가 있지. 이런 여편네를 둔 죄 말이야. 이런 칠칠치 못한 쌍것. (그대로 머리를 휘어잡아 테이블에 대고 내리친다.)

  700탈러를! 그걸로 우린 방 몇 칸을 지탱할 수 있고 잘 먹고 옷 사 입고 겨울에는 난방을 할 수 있단 말이다. 희극 구경 갈 수 있게 표를 살 수 있고, 의사나 약사에게 가지 않아도 되게 건강이 우릴 보살펴주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즉, 황제가 루이제의 속바지를 봤다면 자기가 해고당해 700탈러를 벌지 못할 거여서 열을 받은 거다. 진짜 웃긴 건, 이 부부가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겨우 일년 밖에 안 되긴 했지만, 아직 아이도 없고, 루이제의 배도 비어 있다는 거다. 왜냐하면, 700탈러 수입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너무 힘이 드니 벌이가 조금 나아질 때까지 임신을 하지 말자고 남편 테오발트가 일방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근데 1909년 이전에 어떻게 피임을 해? 완전한 방법이 있지. 아무렴. 이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 피임법. 그냥 손만 잡고 자는 거. 하기는 뭐.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런 찌질이니까 아내 루이제가 남다른 미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

  루이제의 속바지가 치마 아래로 흐른 장면을 여러 사람이 보기는 봤다. 여기서 끝나면 연극이 안 되잖아?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마스케 집의 남는 방 두 개를 임대한다고 창문에 써 붙여 놓았던 것. 여태까지 한 사람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더니, 속바지가 흘러내린 바로 당일, 두 명의 남자가 방을 빌겠다고 들이닥쳤다. 한 명은 부르주아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자기는 학자 겸 작가라고, 자기 일터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에서 글을 쓰고 싶어 여기까지 와서 방을 빌리려 한다는 스카론 선생. 다른 한 명은 옆에 있는 이발소도 아니고 서너 블록 떨어진 이발소의 수석 이발사인 만델슈탐. 둘 다 속내는 루이제를 어떻게 한 번 자빠뜨려볼까 싶어 덤벼든 거다.

  웃기게도 남편 테오발트는 이들로부터 받을 임대료, 특히 예상보다 높은 월세를 제시한 스카론 씨 때문에 다른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두 남자는 결혼은 했지만 (결혼 전엔 모르겠고) 결혼한 다음에는 한 번도 즐기지 못해서 생각보다 쉬운 먹잇감이기도한 루이제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성공하느냐고? 그건 안 알려드리고, 남자들의 대시를 상담해주던 옆집 아가씨 게르트루드 도이터 양이 루이제와 어울리다가 독자 또는 관객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남자, 테오발트 씨를 자빠뜨리는 데 성공한다.

  재미있다. 루이제는 암만해도 이발사 만델슈탐보다는 작가 스카론에게 더 관심이 가겠지? 스카론은 며칠 만에 계약과 관계없이 1년치 월세를 몽땅 지불하고 집에서 나가버리고, 다른 남자가 스카론 만큼은 아니지만 좋은 가격으로 그 방에 다시 들어오니, 테오발트 마스케 선생은 돌 한 번 던져 새 세 마리를 잡았겠네? 그리하여 이제 제법 돈을 만진 테오발트. 루이제에게 은근히 다가와서 하는 말이:

  “이제 우리도 아이 한 번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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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3 2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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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 0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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