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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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태. 1985년에 우리나라에서 UFO가 가장 빈발하게 발견되는 강원도 W시에서 출생해 고려대 언론학부를 졸업했다. 37세 때인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무겁고 높은>이 당선하여 데뷔했다. 대학 졸업 후부터 데뷔할 때까지 설마 그냥 놀았겠어?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했거나, 사업을 했거나 그랬겠지.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실린 단편소설 아홉 편의 발표시기를 보면, 데뷔작을 포함한 2022년 네 편, 2023년 네 편, 2024년 한 편. 그러니까 분기별로 한 편가량 꾸준히 발표를 한 셈이다. 그동안 습작했던 걸 다시 고쳐 발표했을 수도 있고, 직장 또는 직업 때려 치우고 본격적으로 전업작가 생활로 접어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작품들이 흥미롭다. 소설집의 제목을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으로 뽑은 것처럼, 작가는 기본적으로 왼쪽 성향을 가졌다. 그러나 주변에서 지겹게 발견하는 투쟁적 유아독존의 왼쪽은 아니고, 흔히 오른쪽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자본이나 학력 같은 권력에서 소외된 마이너리티 사이의 삶을, 이렇게 말해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따듯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이 마이너리티들의 어울림을, 예전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어수선했던 고위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한 정당의 총수가 말했듯이, 시냇가의 가재, 붕어, 개구리들이 자기들끼리 분수를 알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재, 붕어, 개구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급 탈출/타파 노력은 사실 시냇물 속에서 벌어지겠지만, 진짜로 사람들이 사는 사회 속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들은 기껏해야 다 들으려면 몇 시간이나 걸리는 전세계 각국의 언어로 녹음한 인터내셔널가를 유튜브를 통해 들을 뿐이다. 어디서 본 거 같지? 나만 그런가?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어 버린 김수영 같지 않아?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권진주와 김니콜라이. 권진주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편의점, 생과일주스 가게, 무한리필 돼지갈비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졸업을 했고, 그러면 뭐해, 두어 군데 사무실에 취직을 했지만 수당 없는 초과근무와 급여 지연, 갑질, 성희롱에 학을 떼고 이마트인 것이 틀림없을 대기업의 비정규직원으로 취직해 식품 쏜살배송 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니콜라이는 특성화고에 들어가 선반, 밀링 같은 쇠 가공 쪽으로 자격증을 몇 개 땄지만 자격증과 전혀 관계없는 식품공장을 시작으로 이러저러한 공장을 전전하다가, 경기도 남동쪽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그래도 중학교 동창, 그것도 반창이니 반가웠겠지? 이들은 곧 전화번호를 교환해서 진주가 먼저 삼겹살에 소주를 사고, 다음엔 한국 태생 고려인 3세 니콜라이가 감자탕에 소주를 사는 등 어울리다가, 비정규직의 직장생활이 길어질 수는 없는 법이라서 비슷한 시기에 경기도 남서쪽으로 옮겨 아예 한 집에 살기로 한다. 니콜라이가 귀화를 하려면 먼저 영주권을 따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민 평균 수입의 일정 수준에 해당하는 재외국인에게만 영주권이 주어지는 조항에 의거하여, 이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연수입이 3천8백은 되어야 한다. 꿈 깨야지 뭐. 근데 한국인과 결혼하면 곧바로 영주권을 얻고, 즉시 귀화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나? 어쩌셔? 진주하고 결혼신고만 하면 될 거 아냐? 근데 그게 쉽게 되겠어? 세상 사는 일 마음 같지 않아서 그저 유튜브 틀어놓고 인터내셔널가만 겁나 부르는 거지,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 버리는 것처럼.


  처음 읽는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아마 첫 소설집일 걸? 그러면 처음 읽는 것이 당연한데, 마음에 든다. 시선이 과격하지 않고, 꽤나 진보적 성향이지만 웅변하지 않는다. 별로 꾸미지 않는 문장으로 작품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섬세하게, 실핏줄 같이 쓸 수 있다는 걸 아주 잠깐씩 팍, 보여주기도 한다. 서른일곱 살까지 습작을 했다면, 공력이야 말해 뭐하겠어. 엉겁결에 후다닥 등단하는 행운을 잡은 몇몇 로또들 보다 많이 윗길이다.

  근데 이미 꼰대의 대열에 들어간 내게 김기태의 작품 속에는 작가가 생각도 못한 허들이 놓였다는 건 몰랐겠지.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21세기도 아니고 1990년 이후에 나온 국내/해외 대중음악에 관해서는 완전 깡통이다. 반면에 김기태는 대학에서 언론학부를 졸업했다니 예전 방식으로 말하자면 신문방송학과 맞지? 성시경이 졸업했다는 과. 그래서 TV 프로그램과 K-팝, 걸그룹, 보이그룹 등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그걸 진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기태의 단편 몇 개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는 건 아니지만 좀 갑갑했던 건 사실이다. 제일 앞에 실린 <세상 모든 바다>는 물론이고, “짝짓기 프로그램”이란 걸 묘사하는 두번째 실린 작품 <롤링 선더 러브>도 정말 그런 짝짓기 프로그램이 있었고, 출연한 사람들한테 그렇게 무도한 작업을 하라고 했다고?

  왜 내가 <1박2일>이나 예전 MBC에서 비슷한 시간에 하던 오락 프로그램을 딱, 끊어버렸느냐 하면, 단지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거 하나 가지고, 방송이라는 권력이 출연진, 소위 방송인, 강호동, 이승기, 엠씨몽, 이수근, 유재석, 박명수, 하하, 기타 등등 한테 온갖 창피스러운 꼴을 당하게 해서 그랬다. 연예인이라는 거 하나 가지고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망가뜨려놓고 낄낄거릴 수 있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렇지. 에구, 다른 말이 너무 길어졌네.


  제일 앞에 실린 <세상 모든 바다>는 발단에서 K-팝 그룹 ALL THE SEAS OF THE WORLD, 세상 모든 바다, 약칭 “세모바” 또는 “SMB” 공연이 잠실운동장에서 있는데, 공연이 끝난 후 세모바가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야외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 그걸 보기 위해 14만 명이 몰린다. 이곳에서 한국에 유학 중인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 거류민 3세의 아들’ 하쿠가, 경북 해안 지역에 있는 해진군에서 콘서트 때문에 올라온 중학생 영록을 만나고, 곧 헤어진다. 자취집으로 돌아온 하쿠가 14만명이 운집한 잠실에서 몇 명이 죽는 사고가 난 것을 TV를 통해 알게 되고, 사망자 명단에 해진군의 중학생 영록도 포함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하쿠는 영록을 잊지 못해 낙후된 해진군을 방문한다. 거의 망가져가는 도시. 군청 앞에 작은 테이블을 차려놓고 한 아주머니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원래는 여러 명이 모여 시작을 했지만 날도 춥고, 유동인구도 없어서 점점 작은 규모로 이어가다가 그래도 시위를 멈출 수 없어 오늘은 한 명만 서 있게 된 모양이었다. 시위의 주장은, 경북도와 해진군의 원안대로 이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주변에 산업도 없고, 제대로 된 어항도 없으며, 그저 작은 온천지대 하나뿐이라 해진군은 점점 낙후되고 있어서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려 하지만 환경단체의 반대로 몇 년씩이나 중단 또는 연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쿠는 자기라도 원전유치 청원에 서명하려다가, 일본인이기도 하고, 자기 정보 노출 문제도 있고, 원전을 굳이 찬성하는 입장도 아니어서, 마침 차가 왔다는 핑계로 그냥 서울로 돌아오고 만다.


  원전에 반대하는 입장은 이해하겠다. 세상의 모든 원자력은 나쁘다? 자주 나쁘지만 어떤 때는 덜 나쁘다. 아주 가끔은 그래도 써야 한다. 원전이 석탄발전에 의한 지구 온난화를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수 있으며 경제적이다. 아직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 발전은 원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낮은 효율을 낼 뿐이다. 자연발전을 고집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싼 전기요금을 감수해야 한다. 열배, 혹은 50배? 어쩌면 미친 트럼프의 비자 수수료처럼 한 방에 100배.

  원자력발전 반대, 지구 온난화 반대를 주장하시는 분. 올 8월 전기요금 얼마 내셨나 궁금하다. 내가 먼저 밝히겠다. 8월 사용량 264KWh, 요금 38,750원. 9월엔 182KWH, 28,500원. 다른 집보다 많이 썼는지, 적게 썼는지 모른다. 우연히 책상 위에 놓여 있길래 그냥 써본 거다.

  찬 태양광, 반 원전과 관련해서 내가 제일 관심있는 것은 원전을 쓰지 않으면 당연히 전기 가격이 치솟을 텐데 도시 빈민이 에어컨을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가동 시간만큼’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7월 말에, 에어컨이 없으면 여름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싶어서 3일 동안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고 지내보겠다고 했다가, 딱 하루 버티고 에어컨 다시 틀었다. 그러고나서 지금 세상은 에어컨 없으면 살기가 쉽지 않다고 결론 냈다. 앞으로는 전기 자동차, 전기 버스, 전기 화물트럭, 전기 화물선박, 전기 비행기까지 만들어 써야 하는 시절이 바로 코 앞에 닥쳤다. 동시에 지구가 더 더워지지 않기 위하여 대량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에너지를 이용한 전기 생산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여전히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 에너지 발전을 주장하는 분들 보기가 좀 민망하다. 당신들은 열배, 오십배 비싼 전기료를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없는 사람은 어쩌라고? 당신이 정말 좌파라면, 진보진영이라고 자부한다면 계급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원자력 결사반대 주의자였던 다와다 요코와 오에 겐자부로 같은 반 원자력 운동가들의 한달 전기 사용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왜 궁금할까?

  핵 에너지를 반대하는 환경주의자의 주장도 다각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환경주의자라지만 싫어도 써야 하는 필요악도 있어서, 이걸 원자력 발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주장에 현혹되는 순진한 분도 있는 법이다. 과학을 배제하는 진보, 나는 이것을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원자력 발전에”는” 찬성하는 친환경주의자이다. 자연발전이 비약적으로 도약하여 원전보다 전기 생산 가격이 조금만 비싸지거나, 같아지거나, 저렴해질 때까지라는 조건이다. 아무 조건 없이 반원전을 외치는 분들, 귀댁의 8월 전기 사용량이 궁금하다. 내 집 사용량보다 당연히 훨씬 적을 것으로 믿는다. 강조하는데, 마침 8월, 9월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앞에 있어서 하는 말이다.


  김기태가 또 책을 내면 그것도 틀림없이 읽어볼 생각이다. 이 책은 내가 희망도서 신청을 하긴 했지만 바로 5분 전에 누군가 먼저 신청을 해서, 입고가 됐고, 이후 무수한 이용객들이 예약을 하는 바람에 5월에 나온 책을 이제야 읽었다. 바라건대 뚝심 잡고 제대로 장편 한 편 써 보면 어떨까?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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