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창비시선 316
이기인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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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집을 읽기 전에 이기인이란 시인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 그리하여 그가 1967년 인천 생이며,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 책의 앞날개 소개말만 읽고, 어쨌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니까, 먹고 살만 한 시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런 전제로 시집을 여니 첫 페이지에 “최하림 선생님의 영전에 바칩니다.”라고 헌사가 쓰여 있어, 서울예대 문창과에서 선생을 사사하고, 시집이 나온 2010년에 졸한 스승을 애도하는 시도 있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시를 읽어보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오랜만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당신을 만났지요
 나는 당신의 등뼈를 본 첫번째 사랑이지요
 당신의 등뼈에 붙은 살이 얼마나 얇은지 알고 있는 사랑이지요
 그렇게 얇은 삶이 바람에 견딘 것을 알고
 손가락으로 당신의 등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일과
 뒤돌아서서 날 깨우쳐주신 마른 가슴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내가 처음부터 만질 수 없었던 당신의 몸은 바람이 부는 동안
 내가 사는 골목까지 날아와 기다렸지요
 당신은 그때 젖은 시집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몸으로 들어왔지요
 혼자서, 납작하게 살아온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줄까요
 불빛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이야기를 밤새 읽다가, (전문. 띄어쓰기가 어긋나지만 원문에 따랐음. 이하 인용시도 같음.)



 시는 은유의 잔치. 시인 이기인이 은사 최하림의 진짜 등뼈를 쓰다듬어본 적이 있을까, 없을까. 사우나 같이 가봤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선생의 시를 가슴으로 읽었다는 은유로 이해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은사의 시를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으니까. 매우 아름다운 시다.
 내가 시집을 고르는 방법은 언젠가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요즘 인터넷 책방에서 미리보기 기능을 써 앞쪽에 있는 시 몇 수를 읽고 마음에 들어야 구매하는 것. 이 책 역시 첫 번째 시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가 마음에 들어 사게 됐다.
 그런데, 시집을 읽어가면서, 첫 번째 실린 시가 내 생각처럼 문창과 은사 최하림을 기억하는 헌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 정철의 <관동별곡>을 천하에 둘도 없는 연애 시로 읽은 거하고 비슷한 기분이다. 위의 시에서 말하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만난 ‘당신’은 하필이면 시집을 낸 2010년에 죽은 은사 최하림일 수도 있지만, 이후 고르게 등장하는 시적 대상, 과일장수, 장발의 지저분한 거지, 청소부, 철거지역 주민, 건축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공장 노동자, 나이 든 농부 등등 세상의 모든 약자들일 수도 있다. 뒤에 해설을 읽어보니 이기인의 처녀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에서 ‘ㅎ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를 소녀로 호칭했다가, 이제 처녀시집 속의 소녀들이 시인과 함께 나이를 먹어 각계각층의 약자가 되어 있어 그들을 노래한다는 의미로 씌어있다. 암만해도 해설이 타당하다.
 예를 들어 이런 시 한 번 읽어보자.



 소금꽃


 그날에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지 못한 것은 공장에 피어 있는 꽃 생각 때문이네
 오직 나를 위해 피어난 꽃그늘이 있는데
 그 꽃들은 생일도 없이 한줄기 꽃으로 혼자서 피어 있네
 일하는 사람의 젖은 작업복을 보면서 한나절을 걱정한 적 있는데
 그의 등에 소금꽃이 하얗게 핀 걸 나중에 나중에야 보았네
 등에 핀 꽃을 보지 못하였던 이, 밥풀 냄새 나는 젖은 가슴만을 안고서
 그날에
 버석버석한 웃음 흘리며 한송이 꽃처럼 흔들, 흔들거렸네
 그날에 그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온 이는
 공장에서부터 따라와 그의 등에 미안하게 앉아 있는 하얀 소금꽃이었네  (전문)



 아름다운 시다. 근데 좀 이상하다. 시인은 관찰자에 머문다. 현장에서 함께 노동하는 운동성을 시 속에서 발견할 수 없다. 왜 그럴까. 21세기라서? 땀이 말라붙어 등판에 남아있던 소금의 결정이 셔츠에 그대로 남아 있는 채 동료의 생일 축하 자리에 가는 일은, 공장에 샤워 시설이 없다는 뜻이다. 아직도 그런 현장이 남아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런 공장에서 기꺼이 노동을 하는 노동자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 이 시에서는 조금도 밝혀주지 않지만 나는 등짝에 소금꽃을 피운 채 생일 파티에 참석한 노동자가 외국인이라는 데 만원 건다. 그래서 시의 운동성이 없는 걸까? 시를 책상 위에서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만국의 노동자라는 건 그냥 구호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라서?
 내 생각으로는 아니다. 책 뒤에 실린 “시인의 말”을 보면, 그동안 시인의 아이가 심장수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곤궁과 고뇌를 겪으며 한줌 시를 소망’했을 것이다. 이런 처지에 어찌 운동성을 유지하는 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다른 이도 아닌 ‘자기 자식’의, 다른 수술도 아니고 ‘심장수술’을 견디는 스트레스 속에서 시적 운동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 시인은 흔히 ‘용산참사’라고 불리는 용산 4구역 철거현장을 노래하면서도,



 달의 검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밤


 검어진 용산을 지나가는 버스가 멈춘다 불이 난 망루에서 함께 내려오지 못한 이의 외투와 신발이 한쪽으로 치워졌다 그들의 불안이 치워졌다 그들의 불면이 깨끗하게 치워졌다 버스에서 내린 검은 얼굴들이 한주먹 파편처럼 길바닥으로 쏟아져나왔다 검게 그을린 뒷모습이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져버렸다 뜨거운 망루에서 뛰어내린 달빛이 이봐요 저기요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타버린 집의 허공에서 살아남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당신의 이야기는 저 높은 곳에 살았잖아요 당신의 이야기는 옛집에 지금도 살아요 불면의 잠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긴 밤을 돌아다니며 달의 쪽방으로 기어들어가 호오 입김을 분다 뜨거운 계단에 주저앉은 아빠들의 이야기는 숯처럼 검은 눈물을 흘린다  (전문)



 아직도 식지 않은 계단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 내일의 새로운 싸움을 약속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시를 전형적인 ‘먹물시’라고 칭한다. 지식인 또는 그와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약자나 일반적으로 약자로 인식하고 있는 계급의 주장에 동의하고, 지지하는 성격을 지녔지만 그들의 싸움엔 반 발짝 거리를 두는 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시인이라고 별 수가 있는 게 아니니까. 시를 써서 먹고 살려면 월간 수입도 아니고 연간 5백만 원 벌이로 버틸 수 있는 깡다구가 있거나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시인 역시 소시민이니까. 게다가 노조 가입도 못해 누구한테 구조요청을 할 수도 없는 백척간두에서 물구나무를 선채로 사는 인간들을 우리는 시인이라 일컫는다.



 쌀자루



 마루 위에서 뒹구는
 쌀자루 흰 평구리를 부축하던 아내는 허리가 아파서 누워버렸다
 동전을 모으는 아이는 빈 맥주병을 들고 나가 30원을 받아들고 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낮인데도 형광등을 켜야 신문을 읽을 수 있다니
 나는 슈퍼로 달려가서 맥주병은 50원인데 왜 30원이냐고 따졌다
 아이는 슈퍼 주인처럼 옆에 서서 이 동네에서는 모두가 그래요 한다
 30원을 먹은 돼지저금통의 내장은 그렇게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날 나는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미발표 시의 제목을 바꾼다
 ‘나는 미쳤다’라는 시의 제목을 ‘처음에 나는 미치지 않은 아버지였다’
 가난하지만 시가 변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은행에 가져갈 고지서를 모으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한때는 계산이 미숙한 것까지를 좋아했던 아내는 슬슬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는 돼지저금통을 찰랑찰랑 흔들다 잠에 빠지고
 아이가 갖고 싶은 지구용사 썬가드 로봇은 꿈속에서 변신을 시도할 것이다


 아내가 겨우 방문을 열고 나와 쪼그려앉았다
 자루에서 끌려나온 쌀은 오늘 저녁에도 끓어넘친다
 나는 꺼진 촛불처럼 있다가 밥상으로 달려가 정다운 수저 네 벌을 차례대로 눕힌다
 아이들 것은 그렇다 치고 저 잘난 나의 수저는 왜 이토록 입이 큰가


 온 가족을 모아놓고 첫술을 떠야 하는데 첫술을 떠야 하는데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하는지 씹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전문)



 시인 자신이 사회적 약자다. 미발표 시들이나 써 모아놓는 가난한 가장이 어떻게 다른 약자들을 위해 시 속에 운동성을 삽입할 수 있나. 나폴레옹이 했던 말이 진리다. 승리는 위stomach에서 나온다는 거. 운동도, 혁명도, 진보도, 문학도 밥 먹은 후에나 가능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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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즈 엔드 1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7
포드 매독스 포드 지음, 김일영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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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권 구입가 93,000원. 합해서 정확하게 1,600쪽의 장편소설. 완독에 걸린 시간은 닷새 반나절. 93,000원이면 내가 즐기는 진로 골드 25% 소주가 70병이다. 두 달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걸 닷새 반 만에 홀랑 없애버려? 그렇게 하시라. 이게 네 권, 총 10부, 1,600쪽을 방금 전에 다 읽은 정직하지만 짧은 감상이다.
 포드 매독스 포드는 문예출판사의 “문예 세계문학선” 시리즈에서 놓치면 아쉬운 작품인 <훌륭한 군인>을 읽고 단박에 매료되었던 작가다. 전형적인 부르주아 신사계급들을 스위스의 한 요양시설에 모아놓고 등장인물 각각이 서로 처한 갈등과 갈증을 매력적으로 묘사해놓은 것에 완전히 넘어가버렸었다.
 <훌륭한 군인>은 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5년에 출간해 원 제목이었던 “가장 슬픈 이야기”를 바꾸어야 했던 반면, 9년이 지나 1924년에 집필을 끝낸 <퍼레이즈 엔드>는 크게 나누어 1권에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2권은 처음 참전을 하고 전쟁신경증을 판정받아 영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전장에 복귀할 때까지, 3권은 복귀한 전장부터 1918년 빼빼로 데이인 11월 11일 종전기념일 장면까지, 마지막 4권은 전후 다시 찾은 삶에 관하여 묘사를 하고 있다. 누가 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전쟁 전후까지를 아우르는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퍼레이즈 엔드>보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작품 <티보가의 사람들>을 권하겠지만, 이 책도 만만하지 않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고, <티보가....>를 읽은 다음에 기회가 또 있으면 읽어보라고 권하겠다.
 긴 장편소설이니 당연히 스토리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책은 영국의 티전스Titjens 가문의 네 번째 아들 크리스토퍼의 삼각관계를 그린 이야기이다. 물론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전혀 감흥이 오지 않는다. 20세기 초반, 1910년대 크리스는 아직도 17, 18세기 적 의식인 신사도와 명예에 목을 매고 사는 마지막 토리주의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당시 토리주의자를 21세기 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진정한 꼰대’ 정도? 또는 ‘진정한 보수’? 당연히 여자가 등장한다. 삼각관계니까. 큰 키에 늘씬한 외모와 천성적으로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경국지색의 미인 실비아. 그러나 전형적인 팜 파탈. 크리스의 법적 아내다. 드디어 막이 오르면 크리스는 잉글랜드라는 섬에, 실비아는 대륙에 있어, 부부 사이엔 북대서양이 가로막는 형상. 영국 육군에 대단한 겁쟁이 장교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을 ‘퍼론’이라 하고 계급이 소령이었는데, 생긴 건 뭐 그리 나쁘지 않아 실비아가 퍼론 소령을 옆에 끼고 무도회에서 야반도주(책에선 ‘야간도주’)를 벌였던 것. 이를 안 실비아의 총명한 어머니 세터스웨이트 부인께서는 딸의 불륜 소식이 런던 사교계에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요양 차 스위스로 떠나며, 조만간에 딸이 합류하여 자신을 간호해 줄 것이란 소문을 퍼뜨린다. 그러나 그런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된다.
 그러면 실비아는 왜 크리스의 이마에 뿔이 돋게 했을까. 실비아가 아직 결혼 전일 때 드레이크라고 하는 유부남하고 정을 통해왔었다. 20세기 초반에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생기면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임신.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실비아는 자기보다 나이어린 크리스토퍼 티전스를 꼬드겨 결혼을 하고 아홉 달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 아들 마크 티전스 2세를 출산한다. 그래 우리의 크리스토퍼 역시 법적으로는 완벽하게 자신의 아들로 호적에 오른 아들이 자신의 소생인지, 아니면 공무원인 자신의 신분기록에 형편없는 평판을 적어놓은 드레이크의 아들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는 이유는, 크리스가 형이 셋 있지만, 첫째 마크는 프랑스 무용수 출신 여성과 아이 없이 동거 중이고 여성은 이미 출산할 수 없는 나이에 처했으며, 둘째와 셋째 형, 그리고 누이동생은 인도와 인도 부근의 바다 위에서 군인과 간호병의 신분으로 전사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작품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등장하는 ‘그로비’ 지역의 저택과 철광산을 포함한 대지의 상속권이 크리스의 아버지 마크에서 자기 큰 형 마크에 이어 자기 아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은 마크 2세로 넘어가게 되기 때문. 이런 과정 속에 실비아와 크리스의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건 세상 사람이면 다 이해할 수 있을 터. 크리스는 천성이 신사라 누구의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못해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많은데, 이 가운데 미치광이 두쉬민 목사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으나 목사 부인은 크리스의 친구인 맥마스터란 남자와 눈이 맞고 나중에 동거를 거쳐 혼인까지 하게 된다. 실비아는 이 사실을 악의적으로 비틀어 런던 사교계와 상류층에 자신의 남편 크리스가 두쉬민 목사의 불쌍한 아내, 이디스 에텔 두쉬민과 불륜관계라고 거짓 선전을 하고 다닌다. 경국지색의 미모와 세련된 매너, 훌륭한 치장을 한 귀부인의 우아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말을 누가 있어서 부인하고 의심하겠는가. 런던의 거의 모든 사람은 크리스가 정신 빠진 인간이고 실비아가 불쌍한 피해자인 것으로 단정을 한다. 심지어 아버지의 친한 친구의 딸 발렌타인 워놉 양을 구워삶아 출산까지 했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퍼뜨려, 이 소식을 믿은 성인聖人같은 어머니는 심적 타격을 받아 죽어버리고, 역시 거짓말을 사실로 이해하고 있던 큰 아들 마크를 찾아와 사실 여부를 확인한 아버지 역시 심상해 자살을 해버린다. 이 정도면 실비아야말로 서양 문학사에 기록할 만한 팜 파탈 정도 아닌가.
 처음부터 비겁하고 찌질한 퍼론 소령을 사랑해 야반도주한 실비아가 아니다. 오직 한 가지 목적. 남편 크리스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것. 애초 목적에 모자람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실비아는 잠깐 동안의 애인 퍼론 소령을 버리고, 어머니가 평생 의지하던 콘셉 신부와 함께 머무는 스위스의 요양소에 가서 콘셉 신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하지만 실비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미쳐 쫓아다니게 될 때 실비아의 삶은 지옥으로 변할 거요.”
 원래 소설에서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실비아는 사실 남편 크리스토퍼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얻는데 실패함에 따라, 사사건건, 가는 곳마다, 심지어 전쟁터까지 쫓아와 남편에게 치명적 불행을 안기려 하는 것. 실비아한테 나가떨어진 크리스토퍼 앞에 등장하는 아가씨, 발렌타인 워놉 양. 실비아의 선언이 진실이라면, 성 마리아 이후 최초로 순결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인. 이이는 전직 최고의 라틴어 전문가였으며 크리스의 아버지와 막역한 관계였던 죽은 부친과, 17세기 이후 가장 훌륭한 소설을 쓴 어머니를 둔 젊고 가난한 아가씨. 크리스토퍼와 발렌타인, 둘의 순결한 사랑은 오랜 군불을 때듯 묵지근하니 달아오르는데, 모든 인간이 자기 같은 줄 아는 실비아는 콘셉 신부의 예언대로 곧바로 지옥에 빠져 점점 더 극악한 고통을 크리스에게 쏟아 부으려하는 점입가경에 이른다.
 꽤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은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더 이상은 직접 읽어보시라 이쯤에서 말겠다. 1권 1부 정도만 가비얍게 언급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사실 포드 매독스 포드의 작품을 한 마디로 하면, 유구하고 심심하다. 그러면서도 독자를 깊게 몰두시키는 성격묘사 같은 것이 탁월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든다. 딱 두 편을 읽었으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말도 안 되는 거 알지만, 만일 당신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전쟁터나 사건들을 기대한다면 후회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거의 모든 좋은 소설은 근본적으로 심리소설 아닐까 싶다.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고, 영향을 받으며, 영향을 끼치는지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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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6-1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일로 이렇게 자세하게 줄거리를 밝히실까! 하고 생각하면서 줄거리 부분은 띄엄띄엄 읽었는데, 이게 고작 1권 1부 정도까지의 스토리군요! 기대됩니다. 이 작품. 그런데 책값이 만만치 아니하여,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야겠군요.

Falstaff 2019-06-10 14:00   좋아요 0 | URL
녭. 현명한 선택입니다.
이런 책은 도서관 대출로 아주 적격입니닷!!! ㅋㅋㅋ
 
느릅나무 아래 욕망 열린책들 세계문학 171
유진 오닐 지음, 손동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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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를 단장의 슬픔으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느릅나무 아래 욕망>을 이제야 읽은 이유는 에드워드 토머스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를 진짜 재미없게 들어서다.

 

 

 조지 매너헌이 런던 심포니를 지휘하고 당시 미국 국가대표 남성 성악가였던 제리 해들리와 제임스 모리스가 각각 에벤과 케벗 씨 역을 했음에도, 작곡가가 각 소절, 거의 모든 소절을 레가토처럼 쓸데없이 길게 끄는 바람에 어처구니없게도 원작 자체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끄게 만들어버렸다. 물론 오페라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저 까마득한 선배 작가들이 만든 <페드라와 이폴리트>, <메데이아>에서 조금씩 재료를 가져와 의붓 엄마와 아들 사이의 성적 접촉, 유아 살해 등을 다루고 있지만, 하여간 오페라는 이번에 읽은 원작과 비교하자면 한참 재미없었다. 그래 지금 뭐라 후회하고 있는가 하면, 아 씨, 진작 읽을 걸.
 엇, 이제 보니 책의 주제를 노출해버렸잖아?
 나는 <밤으로의 긴 여로>의 독후감을 딱 한 줄 썼다. “피를 토해 쓴 백조의 절창”이라고. 이거 말고 더 할 말이 없었다.
 <밤으로의 긴 여로>도 그렇고 <느릅나무 아래 욕망>도 그렇고, 둘 다 이이의 절창이다. 도무지 어떻게 반론을 펼 여지가 없을 만큼의 욕망과 사랑과, 집착과 광기가 몰아친다. 이 책을 이미 읽으신 분은 틀림없이 동의하시리라 믿는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심정적으로, 후달린다.
 피곤하지만 않으면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의 희곡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뭐랄까, 만만하지 않은 부담감이 한 방에 확 밀려드니 각오하고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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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0
캐서린 앤 포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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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집은 미국의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가 쓴 세 권의 책, 1972년 판 <처녀 비올레타>, 1950년 판 <순교자>, 1934년 판 <아시엔다>를 옮긴 것이다. 세 권의 중단편선에 있던 작품을 적절하게 배열하여 1편 <꽃피는 유다나무>, 2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3편 <기울어진 탑>으로 다시 배열해놓았다. 원본이 되는 세 권의 책, 각각의 표제작은 1편 <꽃피는 유다나무> 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출판사 현대문학이 나름대로 타당하게 분류를 했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읽었다. 그랬겠지. 아니면 세 권의 책을 860쪽이 넘는 한 권으로 묶지는 않았을 듯하니. 적어도 세계문학 단편선에 관한 한 출판사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만족을 주니까. 게다가, 캐서린 앤 포터, 이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정작 읽어보니 우리나라 번역문학 수준이, 이런 소설가를 2017년 12월 29일이 돼서야 처음 번역 출간했다는 거 하나 가지고, 야만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과장이 아니다. 못 믿겠으면 직접 읽어보시든지.
 생소한 작가라서 이이의 인생을 조금 살펴보자. 1890년에 텍사스에서 출생, 1980년 메릴랜드에서 졸. “지극히” 보수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남부 사회에서 불우한 유년기 보냄. 열여섯 살에 남부 출신 마초 존 헨리 쿤츠와 결혼해 8년 동안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함. 남편(새끼)한테 얻어 터져 뼈가 부러지고 유산까지 하는 바람에 당시에 흔치 않던 이혼을 감행하고 남부를 떠나 사회활동 시작. 다섯 명의 남자와 결혼해 다섯 번의 이혼을 거치는 동안 무명작가에서 퓰리처상에 빛나는 인기작가가 됨. 행운은 언제나 불행과 합동으로 들이닥치는 법이라 그동안 결핵과 임질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기도 하고 스페인 독감으로 염라대왕 전殿에도 잠깐 다녀옴. 덴버와 뉴욕,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계까지 종횡무진하며,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문인들과 교류함.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등 안 돌아다닌 곳이 없고, 멕시코에선 혁명에 참가하기도 했다는데, 설마 혁명 수뇌부는 아니었겠지.
 이 정도면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작가다. 그러나 부럽지 않다. 불우한 유년기와 완고, 고루한 남편에게 얻어터지던 틴 에이지 어린 신부 시절은 포터의 나머지 생애 내내 깊은 낙인으로 찍혔을 테니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치가 떨렸을까. 이 책에 실린 스무 편의 작품의 무대는 그녀의 삶을 보냈던 멕시코, 텍사스 흑토지대의 농장, 유럽, 루이지애나 등 다양하다. 포터의 데뷔작은 <마리아 콘셉시온>. 책에 첫 번째로 실린 단편이다. 1922년 뉴욕에서 썼다고 작품의 마지막 괄호 안에 적혀 있다. 마리아 콘셉시온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남편 후안이 동네 처녀 마리아 로사와 불륜을 벌이는 꼴을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소품으로 무대를 멕시코의 작은 도시로 설정했다. 멕시코에서 혁명이 벌어지자 남편 후안은 혁명군인지 정부군인지 하여간 군대에 징집되어 나가면서 옆구리에 마리아 로사를 차고 떠나, 아이 하나를 둘러메고 탈영해 돌아와, 우리말로 하자면 ‘두 집 살림’을 하는 얘기.
 내가 읽어본 남부 출신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 플래너리 오코너, 카슨 매컬러스, 윌라 캐더, 존 스타인벡 정도인데, 책 뒤에 달린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이 되었다시피 캐서린 앤 포터야말로 텍사스 저 촌구석 출신임에도 무대가 세계각지로 분포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유년기와 첫 결혼시기를 매우 불행하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거를 지닌 작가들 가운데 흔히 자신의 고통에 천착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포터는 과거 경험을 소외당하고, 약하고, 피해를 입는 여러 개별적 영혼에 이입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아울러 많은 작품에서 마리아-해리-미란다, 이 세 명으로 이루어진 남매가 쉬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각별하다. 형제가 더 많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 마리아-해리-미란다 커플은 늘 직접 행위자로 여러 작품에 동시 출현을 하며, 독자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이들 중 미란다와 작가 포터를 한 인격으로 볼 수도 있고, 사실 또 그렇게 된다(‘되더라’라고 쓰자).
 짧은 이야기도 많고, 중편, 긴 중편(혹은 경장편)으로 구성된 작품 하나하나, 재미없는 소설이 없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가슴 속에 약간 아리지 않는 것도 없다. 혹시 모르겠다. 작가가 작품 속에 오롯하게 자신을 담을 때 독자가 이런 느낌을 받는지. 굳이 비교해 서열을 두어 동무님들에게 권한다면, 저번에 읽은 현대문학사 세계문학 단편선 32권 <진 리스 - 한잠 자고나면 괜찮을 거예요 부인 외 50편>보다 이 책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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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3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 리스> 단편집 보다는 이 책이 좀 더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전 이 책 절반정도만 읽고 멈춘 상태인데! ㅋㅋㅋ 폴스타프 님은 한번에 해치우셨군요!

Falstaff 2019-05-31 10:04   좋아요 1 | URL
옙.
전 한 방에 몇 십 권의 책을 사놓고 초간 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서, 순서를 지켜야 하거든요. 못된 버릇이지요. ㅠㅠ

목나무 2019-05-31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이 단편집 수록 작품들 다 좋아요. ^^
현대문학의 이 시리즈는 정말이지 계속 나와주었으면 좋겠어요. 덕분에 이런 작가도 알게되니 말이죠. ^^

Falstaff 2019-05-31 11: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현대문학을 급칭찬하게 됐습니다.
다음 달엔 그레이엄 그린을 읽을 겁니다. 그 책도 기대하고 있습지요. ^^

목나무 2019-05-31 11:35   좋아요 1 | URL
저 그레이엄 그린 다 읽었는데 좋아요!
특히 저는 앞부분에 실린 글들이 좋더라구요. 첫번째로 실린 단편(아이들이 집을 부수는 내용)은 진짜 인상깊었어요!
담달에도 즐독하셔요. ^^

Falstaff 2019-05-31 12:0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1. 인생책

 인터넷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있어 어떤 것이 인생책이며, 어떤 문장이 인생문장이냐고 물었다. 흠. 인생책. 인생책이란 것이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단박에 나오지 않더라. LDT, 레르몬토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로 이어지는 러시아 작가들, 이에 못지 않는 영어, 프랑스어, 독어권 거장들. 세르반테스를 필두로 라틴 아메리카까지 아우르는 스페인, 포르투갈 언어권 작품들. 게다가 인생책, 자신이 여태까지 살면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란 뜻 비슷하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때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기도 하리라. 철조망 있지? 그걸 왼쪽 관자놀이로 집어넣어 오른쪽 관자놀이로 뺀 다음 누군가가 양쪽을 두 손으로 잡고 뱅뱅 돌리는 것 같은 기분. 철조망? 철조망,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있으신가? 철조망에 눈알이 걸린 채로 죽어간 인간, 누혜. 그를 만들어낸 작가 장용학. 아주 예전에 신구문화사라는 출판사가 있어(검색해보니까 지금도 있다!), <현대한국문학전집>을 내놓았고 그 가운데 네 번째 책이 "장용학"이다. 1965년 출간. 모두 스물 몇 권의 책으로 되어 있으며 소설과 시를 망라했다. 이 책을 생각하면 슬프다. 집안이 거덜이 나 가족 해체를 당하는 와중에 친척집 지하 창고에 맡겨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과 이 신구문화사 전집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당해 심하게 손상되어 기어이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이 가운데 "최인훈"과 "장용학" 두 권만큼은 절대 버릴 수 없었다. 쥐똥을 까맣게 뒤집어 쓴 지하실에서 발견한 장용학. 바싹 말라 순식간에 바스스 헤질 것 같은 책을, 스카치 테이프로 붙혀가며, 그 후 네 번을 더 읽었다. <원형의 전설>. 인생책을 찾는 일. 그건 내 가슴 속에 묻어버려 이젠 더 이상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거의 아문 상처를 다시 내보이는 일이었다는 걸 미쳐 몰랐다.

 

 

 책에는 <원형의 전설>과 중편 <비인탄생>, <역성서설>, 단편 <요한시집>, <현대의 야>, <상립신화>가 실려있으며, 여태까지 발표한 모든 장용학 평론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김현의 해설 <에피메니드의 역설>이 들어있다. 한자를 배우지 않으신 분들은 이 책을 읽을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조사를 뺀 나머지 거의 모든 단어가 한자로 되어 있어서. 이후 두산출판에서 같은 목차로 완전히 한글로 바꿔 출간한 적이 있는데, 희한도 하지, 난 도무지 읽지 못하겠어서 술친구 줘버렸다. 몇 번 이야기한 가톨릭 환자 증세가 농후한 술친구. 그이는 무지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장용학은 환자였다. 무학여고 국어교사로 정년퇴직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97년이던가, 문학잡지에 마지막 인터뷰가 실렸다. 자신이 아직도 작가, 소설가로 불리는 걸 싫어했다. 이제 글을 쓰지 못하는데 무슨 작가며 소설가인가. 그는 이렇게 반문했다.

 


2. 인생문장
 숱한 문장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불행하고 희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더 불행하다." 젊은 시절의 정호승이 쓴 시에 나온다. 이젠 비록 시 쓰는 기계에서 고치에서 실 뽑듯 비슷한 시를 가공 생산하는 업자지만, 젊은 시절 괜찮은 서정시인이었다. 이거? 아니. "이미 죽어버린 내 몸뚱이 위로 누군가 유유히 오줌을 갈기고 떠나갔어." 최승자의 처녀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나온 문장인데 꽤 근사하다. 이거? 이것도 아니다.
 대학에 입학했다. 당연하게 서클, 요즘엔 동아리라고 불리는 서클에 가입을 했다. 내가 활동하던 서클 바로 옆에 "철학연구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아 개방공간을 캐비닛으로 분리를 하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모두 가난한 시절이었다. 요새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철학연구회 캐비닛에, 이후 몇 십 년이 지나 이젠 내 카톡 소개말에도 적혀 있게되는 인생문장이, 멋진 그림과 함께 쓰여 있었다.
 "진로眞露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정말이라니까. 보실랴?

 


3. 꼴값하는 영숙이
 영숙아, 어쩌려고.... 얘가 드디어 미쳤다. 그제 아침 변기 위에서 알았다. 염병할 계간지 '창피'가 영숙이의 중편소설을 실었단다. 창피도 미쳤다. 정말 개잡종들이다. 영숙이는 누차 얘기했듯이 데뷔작부터 플롯 표절로 시작해 오랜 세월 꾸준하게, 도전정신에 충만해 글 도둑질을 해 온 도둑년이다. 내 말이 비약이나 아마추어의 선입견이라고 생각하면 나무위키에서 검색해보시라. 어마어마하다. 근데 워낙 책이 잘 팔리는, 당연히 문학성 여부는 제쳐두자, 나는 영숙이가 쓴 <기차는 일곱시 반에 떠나네>이후 돈 아까워 절대 얘를 위해 돈을 쓰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책이 잘 팔리니 백낙천, 글씨 잘 보세요, 낙청이가 아니고 낙천입니다, 낙천, 백낙천이 의붓딸을 삼았는지 어땠는지, 늙은 몸을 이끌고 맨발로 뛰어나와서, 세상 사람들아, 내 위대한 허명을 걸고 말하노니, 영숙이가 어떤 영숙인데 글도둑질을 하겠느냐, 절대 아니다, 라고 했으며, 애초에 그가 발행인이었던 출판사 창피 역시 그게 '문자적 유사성'이지 어떻게 표절이냐고 대한민국 국민과 독자를 정말로 우습게 본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 영숙이가 다시 나팔을 불며 "푸르스름한 말 한 필"(요한묵시록 6장 8절에서 인용) 위에 타고 등장할 것이다, 라며 걱정 비슷하게 했었는데, 이것 봐라, 이것 봐. 얘가 사람이야? 창피가 당대 지식인들이 모인 출판사야? 이 상녀러 연놈들이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뭐 애초에 이럴 줄 알았지만, 막상 당하니까 정말 우습고 가소롭다. 이러니 내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문학작품에 정이 가겠어, 안 가겠어? 영숙이 얘도 이젠 나이도 먹고 했는데, 나이는 항문으로 먹었는지 아직도 철없고, 얌전하지만 버르장머리라곤 아예 없는 열두 살짜리 털도 안 난 아이 같으면 어쩌겠느냔 말이지. 이게 투정 아냐? 뭐라? 작가더러 글 쓰지 말라면 죽으란 얘기냐고? 아니다. 쓰던 말던 관심이 없지만 죽지는 말아라. 써. 안 쓰면 죽을 거 같다며? 그럼 써. 그리고 자비 출판해서 아는 사람끼리 돌려봐. 무대에는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어려운 말로 이런 걸 뭐라 그러는 줄 알아? 자숙自肅이란 거다. 죽을 때까지 자숙하라고. 영숙아, 넌 애초에 작가가 아니었어.

 근데 영숙이가 정말 영숙이는 아닌 거 같다고요? 맞습니다. 영숙이 아닙니다. 본래 이름이 있었습죠. 얘가 몹씨 좋지 않은 일을 했거든요. 우리말 문법에 이런 경우에 적용되는 기가 막힌 현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데요,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초성자음 부끄럼 탈락'이라고. 그래서 이름이 '영숙'이로 바뀐 겁니다.

 

 

4, <분례기>에 관한 슬픈 이야기

 

 <분례기>에, 읽은 다음에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정신지체 부부가 등장한다. 정신지체자도 자신이 약간 모자르지만 비장애인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며 인생을 산다. 그래 부부 사이에 아이가 하나 생기는데 산통이 너무 커서 엄마가 아이를 보기만 하면 눌러 죽이려고 하는 거다. 그래 시어머니가 아이를 키우기에 이르는데, 문제는 퉁퉁 붓는 젖.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면 젖이 딱딱해지면서 고통스러운 유방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래 이걸 짜주어야 하건만 어떻게? 이때 같은 정신지체 장애인인 남편이 아이 대신 젖을 쭉쭉 빨아먹는다. 근데 암만해도 밍밍하고 좀 느끼할 거 같지? 남편도 딱 그렇다. 그래 젖을 다 빨아먹은 다음에 충청도 예산 사투리로 아내에게 한 마디 한다.
 "짐치."
 표준어로 하면 '김치'. 이게 구개음화되어 '짐치'로 발음하는 것. 젖을 먹어 느끼한 입을 김치 한 조각 먹어 말끔하게 입가심 하는 장면. 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래 이 이야기를 마누라쟁이한테 해주었겠다! 이게 사달. 내 마누라, 가는 곳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문제의 이 남편이라는 듯이 마구 해댄 거다. 어쩐지 마누라하고 친한 여자들 나 보면 싱글싱글 쪼개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이런 일이. 하이고 나 참. 쪽팔려 내가 사는 작은 도시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한다.
 여기까지면 뭐 그러려니 할 수도 (없지만 굳이 이야기 하자면) 있지만, 작은 아이도 그게 나 젊은 시절 내가 저질렀던 만행인줄로 확신하고, 엄마 말씀이니까 분명히 사실일 거야, 자기 애인한테, 지금은 물론 엑스 걸프렌드지만, 고스란히 다 말해줬단다. 밥 먹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밥알을 튀어가며 길길이 뛰었다. 아니라고, 그건 방영웅이란 소설가가 쓴 <분례기>에서 나오는 일화라고. 네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아이가 엄마 얼굴을 멍하게 바라보니까, 염병할 마누라가 배시시 웃으며, 그게 사실은, 이러더라.
 <분례기> 초판본도 역시 친척 지하실에서 전사해버리고 만다. 그래 새 책을 한 권 구하려 오래 알아봤다가 이제 한 권 발견했다. 6월이나 7월에 읽을 거 같다. 아 썅. 이 책 찍은 데가 출판사 '창피'다. 이 출판사가 환장하겠는 건, 맘에 들지 않으면 안 읽으면 그만인데, 도무지 읽지 않을 수도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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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5-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전 장용학 책은 ‘책세상‘에서 나온 <요한시집> 밖에 없는데, 저 한자투성이 장용학 책은 정말 탐나네요. 탐난다고 그 한자를 읽을 자신은 없습니다만. ㅋㅋㅋ

그나저나 영숙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백낙천ㅋㅋㅋ 창피 ㅋㅋㅋㅋㅋㅋㅋ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하셨군요. ㅋㅋㅋㅋ

Falstaff 2019-05-30 15:2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웃으면서 읽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저 한자투성이 신구문화사 전집의 ˝최인훈˝ 편에 실린 <광장>도 디테일이 문지에서 나온 것하고 좀 다릅니다. 이래저래 굉장히 귀한 전집으로 변신해서 신구문화사의 대표적 과거 업적으로 승격했더군요. 최악의 보관상태라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생각날 때마다 아주 절통입니다.

syo 2019-05-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세로쓰기다..... 사진에서 굉장한 위엄이 느껴집니다.

요며칠 영숙이 사건에 관한 많은 글들을 읽었지만, 그 글들은 이제 하나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초성자음 부끄럼 탈락‘이라니. 으아아아아아아아(‘으하하하하하하‘의 초성자음 포복절도 탈락)

Falstaff 2019-05-31 09:33   좋아요 0 | URL
게다가 두 줄 세로쓰기랍니다. 그래 두껍지 않은 책에 많은 분량을 실을 수 있던 것이지요. 글씨가 너무 작아 이젠 읽지 못해요. ㅠㅠ

ㅎㅎㅎ 재미있으셨나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