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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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난 작가. 19세기를 프랑스 소설문학의 황금기로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한 명. 신고전주의의 새물결 이란 공허한 선언을 완전히 뭉개버린 낭만주의의 전사. 흑인 노예 출신 어머니를 둔 물라토 출신, 그러나 나폴레옹 시절에 장군을 역임했던 풍운아 아버지가 뒤마에겐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혹시 그래서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역사소설들이 특히 더 재미있을까? 그건 다 프랑스 문학 평론가에게 맡기고 난 그냥 책을 즐기기만 하면 장땡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이야기. 바로 옆나라 프랑스에선 태양왕 루이 14세가 전성기를 맞아 오직 심심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네덜란드한테 찾아가 레프트 잽을 다르르르 날리곤 했던 시기. 두르려놓고는 꼭 한 마디를 보태니, "까불지마!" 네덜란드 입장에선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 늘 그렇듯이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명줄을 늘이기에 완전 넙치 눈깔이 되던 때, 정말 축구 하나 기막히게 잘하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오렌지 군단의 영도자 오렌지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국체제와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정치제제인 공화정을 주장하던 세력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절에 적절히 적응하고 아니고의 문제일 뿐이었다.

 당시 공화정을 주장하던 권세있는 형제가 있었으니 형 코르넬리스 드 비트, 동생 얀 드 비트. 그러나 정세는 오렌지 공 윌리엄을 등극시키면서 코르넬리스는 이미 암살음모의 누명을 쓰고 헤이그의 감옥에서 고문까지 받고 죽음만 기다리던 상태였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의 격변기엔 죽고 죽이는 사람들 양 편이 공히 정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으니 오직 '자신들만의' 확신과 진리와 통찰에 의하여 행위하기 때문. 드 비트에겐 유배형이 내려지고, 사형이 아니라 유배형에 격분한 시민들은 드 비트 형제를 척살하기 위해 헤이그 감옥 앞 광장을 잔뜩 메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본문만 350쪽으로, 그것도 민음사 세계문학의 럴럴한 편집으로 350쪽으로, 뒤마의 소설로 치면 매우 짧은 분량이다. 근데 그거 말고도 뒤마가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순간순간을 묘사하는 재치와 직관적 순간의 포착과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전율할 수밖에 없는 실감과 재미와 흥미진진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의 스토리에 관한 더 이상의 첨언은 그야말로 낭비다. 어떻게 글을 쓰면 뒤마 만큼 술술 읽힐 수 있을까. 그것도 원어가 아니라 번역한 글이 말이다. 소설가나 소설가 지망생들은 이에 대해 한 번 숙고해볼 만하지 않을까. 문장 하나하나를 감각적이고 주머니 속에서 톡, 튀어나온 송곳처럼 쓰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소설의 문장들은 읽기 편하게 죽죽 힘차게 벋는 힘을 수반해야 제대로 된 맛일 터이니.

 만원 한 장이면 이 책 살 수 있다. 그럼 하루 혹은 이틀이 재미있거나 행복하다.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경우보다 훌륭한 당신의 킬링 타임을 보장한다. 이거,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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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3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친구가 이거 정말 재밌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 뒤마 <삼총사> 읽으면서 심장 쫄깃했던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17-03-03 14:34   좋아요 1 | URL
영화보는 거처럼 박진감도 있고 막 그렇더라고요.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합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2-07-20 14:14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밌었어요… 킬링타임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좀 아 너무 옛날 소설이다 이러면서 읽다가 뭔가 유치한 데 매력적이라서 빠져서 읽었답니다. 1800년대의 베스트 셀러 였던 거죠? ㅋㅋㅋㅋ 삼총사도 이렇게 재밌나요? ㅋㅋㅋ 누가 읽었나 하고 찾아봤는데 역시 걸드문트 님은 읽고 리뷰까지 남기셨네요 ㅋㅋㅋ 신기방기!!!

Falstaff 2022-07-20 18:39   좋아요 0 | URL
옙. 삼총사도 재미납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도 재미납니다.
삼총사 민음사 1권 보시면 쇤네가 쓴 독후감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어마어마하게도,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으로 가히 뒤마의 대표작 아니겠습니까. 역시 인간은 돈이 많으면 좋아요. ㅋㅋㅋㅋ

삼총사도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오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 민음사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죠.
 
유디트 / 헤롯과 마리암네 대산세계문학총서 105
프리드리히 헤벨 지음, 김영목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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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얘기하는대로 이스라엘 삼국지, 즉 구약성서를 기반으로 쓴 희곡 두개를 실은 책. <유디트>와 <헤롯과 마리암네>. 유디트는 뭐하는 여잔줄 알았고 마리암네는 몰랐다. 유디트도 사실 구약을 읽어서가 아니라 서양소설을 읽는데 가끔 등장해서 아는 것이지 난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돌아오지 않은 탕아다.

 그래서, 솔직히 별 감흥 없이 읽은 책. 이 책에서 가장 멋있는 건, 전적으로 기독교에 관심 없는 이방인의 눈으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인데, 바로 책 껍데기 그림이다. 당연히 구글 검색해서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어떤 모습인지 찾아냈다. 보실래?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대가리


 놀랍게도 우리나라 출판사 중에서도 메이저 가운데 메이저 문학과지성사가 이 그림을 누가 그렸는지, 원화는 어디에 있는지, 원화의 소유자에게 저작권료는 줬는지 아닌지를 책 어느 구석에도 명시하지 않았다는 거.


 두 희곡을 발표하고 초연을 한 것이 1840년과 48년. 당시엔 무대 위에서 남자 중의 남자, 영웅 가운데 진짜 영웅 홀로페르네스의 대가리를 자르는 것이 매우 획기적인 연출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그다지 와닫지 않는 게 사실.

 <유디트>는 알고 있는 얘기였음에도 이랬으니 <헤롯과 마리암네>는 더했으면 더하지 않았다는 건 얘기할 필요도 없다. 근데 여기서 살로메가 등장하는데, 와일드를 통해서 알고 있는 살로메하고는 완전 다르던데, 이래서 문학에서도 진화가 있다는 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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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출발 대산세계문학총서 7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선영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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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자크, 참 감탄스럽다. 19세기 초반에 절정기를 달리던 작가. 조만간 독후감 올릴 알렉상드르 뒤마도 빅토르 위고도 그렇고 입심 하나는 진짜 대단한데, 내가 이들과 또래인 푸시킨을 좋아하지만 역시 입심, 말빨, 구라 기타등등 이런 것들을 다 합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프랑스 사람들과 누가 있어 함부로 어깨를 견주겠는가. 가만. 발자크가 1799년, 뒤마가 1802던가? 위고도 언제리 비슷하고. 그럼 발자크, 뒤마, 위고가 있어서 프랑스 소설문학이 그리 찬란한 19세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는 거 같다. 다연히 뒤를 이어서 다시 한 번 눈부신 작가들, 플로베르, 모파상, 스탕달 같은 후배들이 연이어 나와주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기초는 발자크와 뒤마, 위고 아녀?

 이거, 전적으로 19세기 작품.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될 것이, 먼저 제목을 보시라. "인생의 첫출발". 당신은 모르겠으나, 나는 성인이 되어 나만의 인생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뒤를 돌아다보면, 결정적인 실수 또는 창피스러운 또는 발설하지 못할 낭패 같은 것을 몇 번 거쳤는데 그런 것들이 참 다행스럽게 내 인생을 좌우할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건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근데 인생의 중요한 실패 또는 실수 같은 것도 정작 아주 사소하고 간혹 웃긴 일부터 시작하기도 하니 진짜 아이러니.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내가 발자크를 참 좋아하는 것이, 생긴 건 어째 우락부락에다가 고집불통 심술장이 같은데 사람들의 허파와 염통 사이에 있는 화학물질을 기막히게 잘 포착해서 거기다 특급 소스를 뿌려 독자의 식탁에 올려놓는 초일류 주방장이기 때문. 염통과 허파 사이에 뭐가 있느냐고? '감정' 또는 '마음'.

 19세기 초 1820년대 세계 최고의 선진국 프랑스에서도 간선 도로엔 마차가 운송을 담당했는데 어느 날 이 마차에 복잡한 목적을 띈 승객들이 타게 되고 그들은 먼 길을 가는 동안 심심파적으로 자신의 앞으로 해야 할 것,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모험과 정의수행의 과정, 유명한 사람들의 숭고한 열정의 댓가로 스스로의 육체에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추악하고 수치스럽고 가리고싶기 한 상처 같은 것을, 누구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면서까지 농담삼아 지껄이며 길을 줄이고 있다. 그 속에는 특정인과 특정인을 위해 일할 사람들과, 특정인을 사기칠 목적인 농부와, 특정인과 별 관계가 없으나 그의 치명적 약점 또는 놀림감을 알고 있는 인간들이 타고 있어 특정인으로 하여금 승객들이 앞으로 자기에게 저지르려고 하는 행위를 미리 알게 되고, 결코 꺼지지 않는 수치의 총합이 지옥불보다도 더 지독함을 알게되기도 하고, 선의로 고통을 줄여주려고 하는 친절도 힐끗 보게 된다.

 딱 여기까지. 이 책이 본문만 250쪽일 정도로 별로 두껍지 않아 내용에 관해 더 이야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내가 아무리 재미나게 이야기하더라도 직접 발자크를 읽어가며 그의 혓바닥, 아니 손가락이겠지, 하여간 그가 만들어내는 스토리 만하겠는가. 난 이번엔 양심상 그렇게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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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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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문학을 좀 읽어보면 180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들 까진 글을 쓸 때 뭔가 고딕적인 분위기르 띄는 성향이 많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어제 얘기한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에서도 주인공 캐서린이 열일곱 살 먹을 때까지 주로 괴기, 심령(비슷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 영향을 받은 관계로 온천도시 바스로 놀러가 문제의 노생거 수도원에 들렀는데 음산한 분위기 속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괴기, 심령소설의 분위기에 취해 왔다리 갔다리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주로 읽는 것들을 보면 주로 고딕 소설들. 그래서 그런가 북해를 횡단해 주로 상트 배째라부르크에 살던 20여 살 아래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의 작품에서도 이런 고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 <벨킨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은가마는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니 (이 말 나오면 언제나 곧바로 언급하다시피) 어디 가서 이 말 인용하지 마시라. 개망신당할 수 있다.

 <벨킨 이야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먼저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이 누구냐, 하는 걸 얘기해야 하는데 푸시킨보다 한 살 많은 1798년 생 총각으로 스물 다섯살 까지 군복무를 하다가 갑자기 양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작은 영지로 귀향해서 농장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일 잘하고 있던 집사를 해고하고 일을 도모하지만 끝내 빌빌거리다가 나이 서른살 되던 1828년 가을, 감기에 이은 열병에 걸렸는데 근동에서 제일 가는 발가락 및 발바닥 티눈 전문 의사의 끈질기고 정성어린 가료 끝에 숟가락 놓은 인간이다. 이 작자가 농장은 안 되지 살 맛도 나지 않지 하는 와중에 짧은 이야기를 몇 편 써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벨킨 이야기>라고 푸시킨은 설레발을 친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의 미덕은, 바로 재밌다는 거다. 첫번째 글이 <발사>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작품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결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이지, 결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까지 쓰니까 양심상 더 쓸 수 없는 거. 이게 또 짧은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독후감을 쓰는 애로사항이다. 더 이야기를 하자니 이미 이 짧은 이야기를 다 들으신 거 같을 수 있고, 그러자니 말을 꺼내기만 하고 심술부리는 거 같기도 하고. 좋다, 하나만 더하자면, 결투할 때 먼저 제비를 뽑아서 누가 먼저 권총을 쏠 것인가를 정한 다음, 첫번째 인간이 맞추면 그냥 게임 끝나는데 만일 맞추지 못하면, 이때 정말 터무니 없이 맞추지 못했건, 맞줄 수 있는데 일부러 옷깃을 스치게, 아니면 쓰고 있던 모자에 구멍 만 내게 쏜다든지를 막론하고, 어쨌든 맞추지 못하면 짧은 제비를 뽑아 이제 순서가 된 두번째 사수는 만일 지금 쏘고 싶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 어디서도 쏠 수 있는 모양이다. 물론 결투 전에 약속을 해야 되겠지만. 하여간 서양의 이 엉뚱한 결투문화, 울 나라에 없는 건 참 다행이다.

 <벨킨 이야기>는 위에서 얘기한 <발사>를 포함해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옴니버스 작품. 물론 벨킨이라는 사람이 진짜 있어서 정말로 그가 써놓은 작품이라고 오해는 하지 않으시겠지?


 <스페이드 여왕>? 물론 이걸 읽기 위해 책을 산 게 맞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아주 재밌는 같은 제목의 오페라. 그것의 원본인데 어찌 읽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나.

 아, 실례. 이 작품에서 숨어있는 주인공이 여든 넘은 안나 페도토브나 백작부인이다. 그이가 젊은 시절 프랑스에 자주 놀러갔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파리의 사교계를 완전히 한 손아귀에 장악했음은 물론이고 남편마저 그이의 위세에 눌려 거의 집사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편 백작부인은 도박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주로 잃는 쪽으로 일가견이 있어 집구석을 완전 거덜내고 말아 이를 극복하고자 불사의 약과 현자의 돌을 발명해 신에게 죄를 짓고 영원히 고통받는 영원한 유대인 생 제르맹 백작에게 비싼 값을 치루고 도박에서 돈을 딸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안나 페도토브나 백작부인의 친손자 톰스키의 입에서 나오고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에선 1막의 '톰스키의 발라드'란 제목으로 들을 수 있다. 한 방 쾅!

 

 그래 어찌어찌해서 독일계 러시아인 게르만German, 러시아 발음으로 하자면 헤르만이지만 번역자 '최선'은 독일계임을 강조해서 '게르만'이라고 표기했다. 하여간 게르만이 어찌어찌해서 사랑의 꿈을 꾸고 있는 백작부인의 수양딸, 말이 좋아 수양딸이지 거의 몸종인 리자의 연모에 받기 이르고, 그걸 이용해 백작부인으로부터 도박에서 돈을 딸 수 있는 세 장의 카드를 알게 되는데, 여기서 스톱.

 인생살이가 그리 만만해? 절대로 아니지. 거기다가 허공을 떠다니는 짓궂은 유령의 윙크까지 당신의 삶을 간섭하고 있는 거야. 물론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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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2-27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번역이 좀 아쉬웠어요. 너무 너무 옛날 말투 ㅠㅠ 그래도 작품은 참 흥미진진합니다.

Falstaff 2017-02-27 16: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백자평에서 봤습니다.
전 옛날 말투에 대해선 뭐 별로 거부감이 없어서요. 암만해도 날이 갈수록 꼰대가 돼가는 거 같아요. ㅠㅠ
 
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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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오스틴을 처음 읽었을 때, 작품이 <오만과 편견>이었는데 빅토리아 시대 이전에 이런 작품을 썼다는 거 하나 가지고 참 이 처녀 대단하네 싶었다. 그래 흥미를 가지고 있던 차에 하나를 더 읽고 독후감도 쓴 적이 있다. 한 번 책껍데기 그림 보시라.

 


 <에마>하고,오늘 낼 하는 늙은이들만 살라고 모아놓은 노생거老生居 수도원하고(제목에 관한 농담인 거 다 아시지?)그림이 똑같다. 조지 던롭 레슬리가 그린 <장미들>.

 하여간, 난 <에마>로 제인 오스틴하고는 끝났다.

 전에 충북대 독어교수 문광훈이 네이버 열린연단이란 컬럼인지 뭔지에서 <노생거 수도원>에 관해 아예 용비어천가를 읊어서, 평소에 <노생거...>를 쓰레기라고 인식하고 있던 차에 별 같잖은 소릴 다 듣는다는 짧은 판단으로 댓글에다가 '열 일곱살 고2 짜리 아가씨가 현실과 허구 사이를 헤매고 다니고 아무것도 하는 거 없이 부자 총각 만나 팔자 고치는 얘기일 뿐인데 과찬인 거 같다'고 했다가, 아이고 어머니, 제인 오스틴 좋아하는 아주머니들이 왜 그리 많은지 이건 완전히 만인의 적이 되는 기분이 들어 어마 뜨거라 싶은 마음에 잽싸게 댓글 지운 적이 있었다. 점심 잘 먹고 와서 생전 안 하던 짓을 했더니 거 세상 인심이, 그냥 낮잠이나 잠깐 잘 것을 말야. 그게 2016년 말. 참 언짢은 것이 엄마 아빠가 애면글면 돈 모아 기껏 독일 유학보내 독일문학전공 박사까지 따게 했더니 이게 독일책도 아닌 영국책에 대해, 물론 나보다야 훨 많이 알겠지만 이리 유난을 떠나. 그럼 영문학 전공한 숱한 인간들은 뭘 먹고 살라는 말이냐고 괘씸하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조금 배운 인간이니까, <노생거...>와 제인 오스틴에 대한 내 감상이 불공정했을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읽어보되 그중에서도 좀 두꺼운 거,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젤 두꺼운 책 <에마>를 골라 읽되, 이것 역시 내 기준에 염병이면 다신 오스틴 안 읽는다, 라고 마음 먹었다가, 마음 먹은대로 됐다.

 본문만 702쪽. 해설과 연표까지 합하면 718쪽. 12,600원. 쪽당 단가 18원에서 조금 못미치니 가성비가 나쁜 편은 아니다. 아니, 훌륭하다. 다만 오스틴을 좋아하는 사람에 한해서. 먼저 밝힐 것은, 지금 <에마>에 대한 독후감을 쓰고 있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노생거...>와 열린연단에서 내 댓글에 대한 것들은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 완전히? 에이, 나도 사람인데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최대한 책 <에마>에만 집중해서 쓴다는 걸 알아주십사.

 타이틀 롤 에마는 참 좋은 나이 스물 한 살. 만 나이니까 우리로 따지면 대학 3학년. 딸 둘 있는 쁘띠 부르주아 집구석의 둘째 딸. 엄마는 일찌감치 세상 하직하고, 언니는 시집가서 아이 다섯을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는 건전한 가정주부. 변호사 형부 역시 세상을 좀 시니컬하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아주 모범적인 중산층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 원체 늙어서 장가든 아버지는 에마한텐 할배나 증조부 터울이라 세상의 모든 관심은 건강과 보건 뿐이고 운동능력은 거의 상실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완전 토박이에 신사계급의 우드하우스 가문이어서 지역에선 명사에다가 누구나로부터 그에 걸맞는 존경을 받고 있다.

 에마가 자신의 가정교사 테일러 양을 신사계급의 동네 홀아비, 20대 초중반의 잘생기고 돈 많은 외삼촌에게 후견을 받아 세상 어려운 줄 모르는 청년의 아버지에게 소개를 해서 결혼에 성공하는 걸로 소설은 시작하고, 그리하여 에마는, 얘야말로 진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이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지적 능력과 판단력, 예의범절 심지어 예지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초 일류 수퍼우먼인줄 단단히 착각하고 산다. 그래서 벌어지는 사달.

 에마 앞에 눈부신 미모를 갖춘 열일곱살 짜리 사생아 아가씨 해리엇이 등장한다. 영국의 고만고만한 여학교에 다니다가 교장의 눈에 들어 교장의 집에서 사숙하고 있는데, 에마가 보기엔 저만한 인물로 시집 한 번 잘 가면 그야말로 인생역전, 로또는 절로가라고 거기다가 공,후,백,자,남작 부인이란 칭호는 받지 못하겠는가 말이지. 근데 알고보니 지금 동네의 건실한 농사꾼 청년 로버트 마틴하고 눈이 맞은 상태다. 비록 청년이 진짜로 건실하여 나날이 부유해지고 그렇다고 건방져지기는커녕 점잖고 예의바르며 갈수록 똑바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시골 촌놈. 결정적으로 세련되지 못한 것이 흠이다. 오른 손을 두번 돌려 여인네한테 멋있는 코티시도 할 줄 모르고, 만나뵙는 영광을 주셔서 눈물이 앞을 가리옵니다, 경의에 찬 치사를 뽑을 줄도 모르는 촌무지랭이. 그럼에도 감히 어여쁘기가 한량없는 헤리엇 양을 넘봐? 이거 넘한 거 아냐? 지가 뭐라고 옆에서 열받은 에마. 헤리엇 곁에서 찬란한 미래상과, 진정한 신사의 멋진 매너와,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에 대한 온갖 암시를 주입함으로써, 촌놈 로버트의 정중하지만 세련되지 않은 청혼을 무참하게 박살내게 만든다.

 뭐 이런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무려 700쪽이 넘는 작품의 한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고, 이 작품이 빅토리아 시대가 시작되기도 전인 1810년대에 쓰인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제인 오스틴이 여자를 보는 눈이 당시 일반인이 여자를 보는 눈 이상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 느므느므 아쉽다. 오스틴에게 여인은 당시엔 사실 거의 완전히 사라진 기사도 정신에 입각하여 숭배를 받아야 하는 인종이지만 기꺼이 남편으로 대변되는 남성에 복종해야 할 운명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에마가 아무리 똑똑하고 거기다가 재치까지 있고 눈치빨라 정말 참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며 결혼 대상자이긴 하지만 신분차이의 극복에 대해서는 아무 철학도 없다. 여기서 주목. 당시 잉글랜드는 앞선 산업혁명으로 세상의 어느곳에서보다도 일찍 부르주아들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권력을 갖으면서 신분제 역시 대단한 혼란에 빠지는데도 에마는 신분제도야말로 넘기가 어려워야 하는 굳은 벽일수록 좋으며 오직 신분제도의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건 여자들의 뛰어난 외모로 특정하고 만다.

 내 말 혹은 의견이 틀려? 전에 읽었던 <오만과 편견>과 <노생거 수도원> 다 그런 거 아냐? 거기선 주인공들이 바로 그거 하나 때문에, 아 잠깐. 많은 분들이 오직 외모, 라고 하는 내 의견에 거품을 무실 지도 모르지만 좀 양해해주시기를 바라며 계속 독후감을 이어가자면, 당시 수준으로 기본 이상의 교육을 받아 신사가족 가량의 예의범절엔 도가 텄다는 전제로, 얼굴 예쁘고 몸매 잘 빠진 거 가지고 상류계급 총각의 혼을 빼 신분상승을 이루었으나, 적어도 <에마>에선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스틴이 그리는 여인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은 이 작품이 더해서, 타이틀 롤 에마는 사실 인생살이가 일천한 헛똑똑이로만 묘사된다. 아니라고? 그래, 그건 당신 생각이고 하여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 하나 확실하게 밝혀둘 것은, 오스틴의 소설은 재미있다. 적어도 읽는 재미는 보장한다는 거.

 그리고, '토머스 매콜리'가 어떤 작자인 줄은 모르겠는데(지금 네이버 검색해보니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라고 한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산문계의 셰익스피어다"

 매콜리, 이 새끼 이거 미친 거 아냐?




 독후감 첨 쓸 땐 책 제목과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는 애마, 영화 <애마부인> 에피소드도 쓰려 했다가 잊었다. 다 쓰니까 아참, 생각나는데 나중을 기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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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2-2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기준에 염병이면 다신 오스틴 안 읽는다, 라고 마음 먹었다가, 마음 먹은대로 됐다.‘ ㅋㅋㅋㅋㅋ 글에 쓰신 내용으로만 봐도 고구마 몇 개는 먹은 기분이 들 것 같아 제인 오스틴 작품은 역시 안 읽는 걸로;;;

Falstaff 2017-02-27 16:36   좋아요 0 | URL
지금 부터 200년 전 작가인걸 감안하면 대단하긴 대단한데 다만 기호가 제 취항이 아니란 것이지요.ㅠㅠ 글을 읽다보면 특별한 수사법도 없이 걍 쓰면서 재미나게 만드는 거, 그건 정말 괜찮더라고요.

먼어 2020-03-13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저는 제인 오스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Falstaff님 서평 너무 재밌게 읽고 갑니다~ㅋㅋㅋㅋ
댓글을 안 달 수 없는 서평이네요ㅋㅋㅋㅋ 역시 고전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선호가 다른 듯 합니다.
다른 서평도 기대할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_^

Falstaff 2020-03-13 17:19   좋아요 0 | URL
아이고, 뭐라 꾸짖는 대신 칭찬(처럼 들리는 댓글)을 주시니 황감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럼요, 고전이고 뭐고, 작가가 뭐 대숩니까. 세상의 모든 작가는 독자, 그러니까 저 한 명을 위해 쓰다가 죽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