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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튤립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평점 :
재미난 작가. 19세기를 프랑스 소설문학의 황금기로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한 명. 신고전주의의 새물결 이란 공허한 선언을 완전히 뭉개버린 낭만주의의 전사. 흑인 노예 출신 어머니를 둔 물라토 출신, 그러나 나폴레옹 시절에 장군을 역임했던 풍운아 아버지가 뒤마에겐 어떤 역할을 했을까. 혹시 그래서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역사소설들이 특히 더 재미있을까? 그건 다 프랑스 문학 평론가에게 맡기고 난 그냥 책을 즐기기만 하면 장땡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이야기. 바로 옆나라 프랑스에선 태양왕 루이 14세가 전성기를 맞아 오직 심심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네덜란드한테 찾아가 레프트 잽을 다르르르 날리곤 했던 시기. 두르려놓고는 꼭 한 마디를 보태니, "까불지마!" 네덜란드 입장에선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이 늘 그렇듯이 이리저리 눈치 보면서 명줄을 늘이기에 완전 넙치 눈깔이 되던 때, 정말 축구 하나 기막히게 잘하는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오렌지 군단의 영도자 오렌지 가문을 중심으로 한 공국체제와 당시만 해도 혁신적인 정치제제인 공화정을 주장하던 세력간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절에 적절히 적응하고 아니고의 문제일 뿐이었다.
당시 공화정을 주장하던 권세있는 형제가 있었으니 형 코르넬리스 드 비트, 동생 얀 드 비트. 그러나 정세는 오렌지 공 윌리엄을 등극시키면서 코르넬리스는 이미 암살음모의 누명을 쓰고 헤이그의 감옥에서 고문까지 받고 죽음만 기다리던 상태였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의 격변기엔 죽고 죽이는 사람들 양 편이 공히 정의로운 사람일 수도 있으니 오직 '자신들만의' 확신과 진리와 통찰에 의하여 행위하기 때문. 드 비트에겐 유배형이 내려지고, 사형이 아니라 유배형에 격분한 시민들은 드 비트 형제를 척살하기 위해 헤이그 감옥 앞 광장을 잔뜩 메우고 있다. 이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본문만 350쪽으로, 그것도 민음사 세계문학의 럴럴한 편집으로 350쪽으로, 뒤마의 소설로 치면 매우 짧은 분량이다. 근데 그거 말고도 뒤마가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순간순간을 묘사하는 재치와 직관적 순간의 포착과 그리하여 그런 것들을 통해서 독자가 전율할 수밖에 없는 실감과 재미와 흥미진진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의 스토리에 관한 더 이상의 첨언은 그야말로 낭비다. 어떻게 글을 쓰면 뒤마 만큼 술술 읽힐 수 있을까. 그것도 원어가 아니라 번역한 글이 말이다. 소설가나 소설가 지망생들은 이에 대해 한 번 숙고해볼 만하지 않을까. 문장 하나하나를 감각적이고 주머니 속에서 톡, 튀어나온 송곳처럼 쓰는 것도 좋겠지만 역시 소설의 문장들은 읽기 편하게 죽죽 힘차게 벋는 힘을 수반해야 제대로 된 맛일 터이니.
만원 한 장이면 이 책 살 수 있다. 그럼 하루 혹은 이틀이 재미있거나 행복하다.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어떤 경우보다 훌륭한 당신의 킬링 타임을 보장한다. 이거, 유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