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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첫출발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7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선영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발자크, 참 감탄스럽다. 19세기 초반에 절정기를 달리던 작가. 조만간 독후감 올릴 알렉상드르 뒤마도 빅토르 위고도 그렇고 입심 하나는 진짜 대단한데, 내가 이들과 또래인 푸시킨을 좋아하지만 역시 입심, 말빨, 구라 기타등등 이런 것들을 다 합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프랑스 사람들과 누가 있어 함부로 어깨를 견주겠는가. 가만. 발자크가 1799년, 뒤마가 1802던가? 위고도 언제리 비슷하고. 그럼 발자크, 뒤마, 위고가 있어서 프랑스 소설문학이 그리 찬란한 19세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해도 별 무리는 없는 거 같다. 다연히 뒤를 이어서 다시 한 번 눈부신 작가들, 플로베르, 모파상, 스탕달 같은 후배들이 연이어 나와주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기초는 발자크와 뒤마, 위고 아녀?
이거, 전적으로 19세기 작품.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시면 안 될 것이, 먼저 제목을 보시라. "인생의 첫출발". 당신은 모르겠으나, 나는 성인이 되어 나만의 인생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뒤를 돌아다보면, 결정적인 실수 또는 창피스러운 또는 발설하지 못할 낭패 같은 것을 몇 번 거쳤는데 그런 것들이 참 다행스럽게 내 인생을 좌우할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건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근데 인생의 중요한 실패 또는 실수 같은 것도 정작 아주 사소하고 간혹 웃긴 일부터 시작하기도 하니 진짜 아이러니.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내가 발자크를 참 좋아하는 것이, 생긴 건 어째 우락부락에다가 고집불통 심술장이 같은데 사람들의 허파와 염통 사이에 있는 화학물질을 기막히게 잘 포착해서 거기다 특급 소스를 뿌려 독자의 식탁에 올려놓는 초일류 주방장이기 때문. 염통과 허파 사이에 뭐가 있느냐고? '감정' 또는 '마음'.
19세기 초 1820년대 세계 최고의 선진국 프랑스에서도 간선 도로엔 마차가 운송을 담당했는데 어느 날 이 마차에 복잡한 목적을 띈 승객들이 타게 되고 그들은 먼 길을 가는 동안 심심파적으로 자신의 앞으로 해야 할 것, 자신이 과거에 경험했던 모험과 정의수행의 과정, 유명한 사람들의 숭고한 열정의 댓가로 스스로의 육체에 부여할 수밖에 없었던 추악하고 수치스럽고 가리고싶기 만한 상처 같은 것을, 누구는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면서까지 농담삼아 지껄이며 길을 줄이고 있다. 그 속에는 특정인과 특정인을 위해 일할 사람들과, 특정인을 사기칠 목적인 농부와, 특정인과 별 관계가 없으나 그의 치명적 약점 또는 놀림감을 알고 있는 인간들이 타고 있어 특정인으로 하여금 승객들이 앞으로 자기에게 저지르려고 하는 행위를 미리 알게 되고, 결코 꺼지지 않는 수치의 총합이 지옥불보다도 더 지독함을 알게되기도 하고, 선의로 고통을 줄여주려고 하는 친절도 힐끗 보게 된다.
딱 여기까지. 이 책이 본문만 250쪽일 정도로 별로 두껍지 않아 내용에 관해 더 이야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내가 아무리 재미나게 이야기하더라도 직접 발자크를 읽어가며 그의 혓바닥, 아니 손가락이겠지, 하여간 그가 만들어내는 스토리 만하겠는가. 난 이번엔 양심상 그렇게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