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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킨 이야기 / 스페이드 여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최선 옮김 / 민음사 / 2002년 4월
평점 :
서양 문학을 좀 읽어보면 180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들 까진 글을 쓸 때 뭔가 고딕적인 분위기르 띄는 성향이 많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어제 얘기한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에서도 주인공 캐서린이 열일곱 살 먹을 때까지 주로 괴기, 심령(비슷한) 소설들을 많이 읽어 영향을 받은 관계로 온천도시 바스로 놀러가 문제의 노생거 수도원에 들렀는데 음산한 분위기 속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괴기, 심령소설의 분위기에 취해 왔다리 갔다리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오스틴의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주로 읽는 것들을 보면 주로 고딕 소설들. 그래서 그런가 북해를 횡단해 주로 상트 배째라부르크에 살던 20여 살 아래 작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의 작품에서도 이런 고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 <벨킨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은가마는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니 (이 말 나오면 언제나 곧바로 언급하다시피) 어디 가서 이 말 인용하지 마시라. 개망신당할 수 있다.
<벨킨 이야기>에 관해서 말하자면, 먼저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이 누구냐, 하는 걸 얘기해야 하는데 푸시킨보다 한 살 많은 1798년 생 총각으로 스물 다섯살 까지 군복무를 하다가 갑자기 양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작은 영지로 귀향해서 농장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일 잘하고 있던 집사를 해고하고 일을 도모하지만 끝내 빌빌거리다가 나이 서른살 되던 1828년 가을, 감기에 이은 열병에 걸렸는데 근동에서 제일 가는 발가락 및 발바닥 티눈 전문 의사의 끈질기고 정성어린 가료 끝에 숟가락 놓은 인간이다. 이 작자가 농장은 안 되지 살 맛도 나지 않지 하는 와중에 짧은 이야기를 몇 편 써놓은 것이 있으니 바로 <벨킨 이야기>라고 푸시킨은 설레발을 친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의 미덕은, 바로 재밌다는 거다. 첫번째 글이 <발사>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작품에서 특히 자주 볼 수 있는 결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이지, 결투를 주제로 하고 있다, 까지 쓰니까 양심상 더 쓸 수 없는 거. 이게 또 짧은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독후감을 쓰는 애로사항이다. 더 이야기를 하자니 이미 이 짧은 이야기를 다 들으신 거 같을 수 있고, 그러자니 말을 꺼내기만 하고 심술부리는 거 같기도 하고. 좋다, 하나만 더하자면, 결투할 때 먼저 제비를 뽑아서 누가 먼저 권총을 쏠 것인가를 정한 다음, 첫번째 인간이 맞추면 그냥 게임 끝나는데 만일 맞추지 못하면, 이때 정말 터무니 없이 맞추지 못했건, 맞줄 수 있는데 일부러 옷깃을 스치게, 아니면 쓰고 있던 모자에 구멍 만 내게 쏜다든지를 막론하고, 어쨌든 맞추지 못하면 짧은 제비를 뽑아 이제 순서가 된 두번째 사수는 만일 지금 쏘고 싶지 않으면 나중에 언제 어디서도 쏠 수 있는 모양이다. 물론 결투 전에 약속을 해야 되겠지만. 하여간 서양의 이 엉뚱한 결투문화, 울 나라에 없는 건 참 다행이다.
<벨킨 이야기>는 위에서 얘기한 <발사>를 포함해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옴니버스 작품. 물론 벨킨이라는 사람이 진짜 있어서 정말로 그가 써놓은 작품이라고 오해는 하지 않으시겠지?
<스페이드 여왕>? 물론 이걸 읽기 위해 책을 산 게 맞다.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아주 재밌는 같은 제목의 오페라. 그것의 원본인데 어찌 읽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나.
아, 실례. 이 작품에서 숨어있는 주인공이 여든 넘은 안나 페도토브나 백작부인이다. 그이가 젊은 시절 프랑스에 자주 놀러갔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파리의 사교계를 완전히 한 손아귀에 장악했음은 물론이고 남편마저 그이의 위세에 눌려 거의 집사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한편 백작부인은 도박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주로 잃는 쪽으로 일가견이 있어 집구석을 완전 거덜내고 말아 이를 극복하고자 불사의 약과 현자의 돌을 발명해 신에게 죄를 짓고 영원히 고통받는 영원한 유대인 생 제르맹 백작에게 비싼 값을 치루고 도박에서 돈을 딸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안나 페도토브나 백작부인의 친손자 톰스키의 입에서 나오고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에선 1막의 '톰스키의 발라드'란 제목으로 들을 수 있다. 한 방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