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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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다섯, 중편 하나가 실린 작품집. 사기당한 느낌이다. 마지막에 실린 80쪽짜리 중편 <그랑 주떼>는 읽은 책이다. 같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십 년 전에 찍은 단행본 <그랑 주떼>와 같은 작품이다. 본문을 다 합해도 220쪽에 불과하거늘 여기서 80쪽 분량을 이미 단행본으로 사서 읽은 독자가 이 책을 샀으면, 물론 목차 제대로 안 보고 산 작자가 눈이 삐어서 삽질을 한 거겠지만, 어떤 기분일까? 아마 그지 같은 경우라고 푸짐하게 욕 한 번 했을 거같다. 욕 먹어 싸다. 모른 척하고 이렇게 책 내는 데 동의한 김혜나 씨도 반성… 이하 생략. 게다가 김혜나 스스로 <그랑 주떼>는 전작이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제리>와 <정크>에 이은 청춘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는데 말씀이야.

  지금은 민음사에서 절판이긴 하지만 적지 않은 독자가 <정크>는 모르겠고 <제리>, 김혜나 표 <제리>는 기억할 거 같다. 참 구질구질한 청춘들이 등장하는 이 삼부작으로 말할 거 같으면, 무진장 징징댔지 않나 싶다. 인천에 가까운 전문대학에 다니며, 설마 진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삶을 포기한 듯 함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 무한 섹스와 동성애와 약물에 전 ‘자기 학대’의 그림이, <제리>에서는 처음이라 그랬는지 안타깝고, 마음 짠하고, 불쌍하더니 <정크>에서도 마찬가지니까 세상에나, 그렇게 한 순간에 정이 뚝 떨어지던 경험. <그랑 주떼>로 와서 김혜나는 자기 학대의 시작을 조금씩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앓았던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력이 약화되고 사시가 생겨 초등학교 다닐 때 급우들한테 사팔뜨기라고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그래서 공부도 못하던 실제 경험(어제 읽은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에서도 수막염에 의한 청력 손실이 나오더니 오늘 <그랑 주떼>에서도 수막염. 이 정도면 정말 조심해야 할 질병이다.) 진짜인지, 소설이라 있을 법한 거짓인지 모를 초등 저학년 시절에 당한 성폭력의 기억. 작가 스스로 “청춘 삼부작”이라 했으니 3부에서 밝힌 이 두 가지 내상, 성처로 인해 <제리>와 <정크>의 주인공들이 그리 자기 학대의 삶을 ‘아무렇게나’ 꾸려가면서도 방향 찾기조차 포기를 했나 보다.

  필리핀에서 온 외숙모 로레나의 이야기인 <로레나>와 타이틀 롤인 <청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랑 주떼>도 이미 읽은 텍스트만 아니었다면 괜찮았다고 할 것 같은데 암만해도 이 얘기는 기분 나빠 못하겠다.

  전체적으로 김혜나 표 맞다. 상처를 보여주는 정도가 아니라 양 엄지 손가락으로 환부를 넓혀 벌건 속살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째졌는지 독자의 눈으로 목격하라는 듯한 날 것의 조망. 데뷔작인 <제리>에서는 더 했다. 이 책 초판이 2018년이니까 82년생 혜나 씨 서른여섯 살, <제리> 나오고 8년 지났을 뿐인데 그래도 부드러워진 거다.

  단 한 편만 고르라면 나는 단연 <로레나>를 선택한다. <로레나>만 골라서 별점을 매긴다면 넷 이상. 한 권을 통째로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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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10-07 0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빌려서 읽으셨죠? 그러면 다행, 아니면 좀 많이 억울하겠어요. ㅎㅎ

Falstaff 2024-10-08 04:26   좋아요 2 | URL
넵. 다행히 빌려 읽었습니닷! ㅋㅋㅋ 아니었다면.... 안 샀을 거 같기도 하고 뭐 그렇네요.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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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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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레이철 커스크를 한 번 읽었나? 아닌 줄 알았다. 그러다가 원래 제목이 The Country Life인 것을 우리말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 생활>로 바꾸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낸 것을 읽은 게 기억났다. <…시골생활>로 서머싯 몸 상을 받아 “모던-클래식”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겠지. 서머싯 몸 상은 서른다섯 살 미만의 청년 작가에게 주는 건데 1998년엔 네 명의 신진 작가가 받았다. 1997년과 1999년에도. 얼핏 수상자 면면으로 보니, 도리스 레싱, 킹슬리 에이미스(마틴의 아빠), V.S. 나이폴, 앤절라 카터, 마틴 에이미스, 줄리언 반스, 피터 애크로이드, 새라 워터스, 존 맥그리거, 제이디 스미스 등인데 원래는 한 해에 한 명 주던 걸 요즘엔 대여섯 명한테 확확 뿌려준다. 그러니 당신이나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영국작가(셰익스피어, 필딩, 디킨스, 새커리는 빼고)가 다 받았다고 생각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다. 뭐 그렇다는 것이지 수상자가 많은 걸 가지고 레이철 커스크가 별로다, 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레이첼 커스크는 캐나다 서스캐처원(이곳 북부에는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주 새스커툰에서 영국인 부모의 (순서에 입각해) 딸, 딸, 아들, 아들 가운데 둘째로 1967년에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거의 L.A에서 보내다가 1974년에 드디어 조국(어째 이제는 이 단어가 좀 어색하다)인 영국 서퍽에 정착한다. 일곱 살. 앞뒤 잴 거 없이 완벽한 영국사람이다. 성공회가 아니라 가톨릭 가정이긴 하지만. 공부도 잘했나 보다. 옥스포드 뉴 칼리지 국문과 졸업했다. 당연히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여 쓰고 있는데, 커스크가 첫 작품 <아그네스 구하기>를 발표한 것이 1993년 스물여섯 살 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을 출간하기 전까지 뭐했을까? 은행가와 짧게 첫번째 결혼생활을 했다는데 부모에 이어 은행가 남편에 기대 자기만의 방과 연 5백 파운드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경제활동을 했을까? 했겠지. 아닐 수도 있겠다. <…시골생활>과 <…변주곡>의 여성 주인공은 법무관과 교수/학과장이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단한 수준의 인텔리겐치아 계급이기는 하지만 계기가 생기는 순간, 가차없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시골 부자 가정의 오페어로 들어가고(<…시골생활>), 아니면 귀 한 쪽이 들리지 않는 외아들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한다.


  왜 이딴 거 가지고 까탈이냐고? 아니, 거 뭐.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 의하면 레이철 커스크가 “영국 젊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제일 앞에서 말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남자의 일상을 통해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 쟁점인 부부간 역할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해서, 그게 좀 께름칙해 그렇다.

  토니와 토머스 브래드쇼 부부는 둘 다 잘 나가는(것처럼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잠깐 동안은. 토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딸 알렉사를 낳고, 섹스와 인연을 (거의)끊은 기간을 다 포함해 8년간 하는 일 없이, 물론 공부는 계속 했겠지, 가정주부로 살다가 한 달 전에 새 직장, 1류는 아니지만 2류 정도 되는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는 덜컥, 학과장 자리에 올랐다.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몬테규 가에 고만고만한 집에 산다. 부르주아적 분위기가 풍기지만 정작 주민들은 박봉에 시달리는 성마른 인상을 한, 그러니까 정말로 박봉에 시달리지는 않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토니가 학과장이 되니, 남편 토머스는 여름 휴가를 받은 후, 여름이 끝날 때까지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9월이 되자 스스로 알아차린 것이, 이젠 자유스러워졌거나 추방당했다는 거였다. 어디에서부터? 직장에서의 자유 또는 추방. 즉, 이제부터 토머스는 자유의지로 직장인이 아닌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는 거다. 대신 토니가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가장이 되고. 이렇게 작품은 제목대로 브래드쇼 가족의 변주곡이 되는 거다.

  토니와 토머스 브래드쇼 부부만 나오면 아무래도 분량이 적어질 것 같았을까? 커스크는 그래서 토머스의 형 하워드과 동생 레오 가족도 우정출연 정도의 수준이 아닌, 당당한 조연 정도의 무게로 등장해 나름대로 에피소드를 만든다. 제목에 변주곡variation을 붙였으니 형과 아우의 성향과 사는 방법은 달라야 하겠지? 형 하워드는 브래드쇼 집안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25세이 이미 부자가 됐고, 그때부터 머리도 벗겨지기 시작한 반면, 막내 레오는 완벽할 정도로 편안한 삶을 살아, 토머스가 보기에 레오가 하는 일에는 어쩐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토머스는 하워드는 장조major, 레오는 단조minor의 삶이라 한다. 그럼 토머스 부부는? 장조와 단조 사이의 조변화 같은 변주의 삶이지.

  이쯤에서 앞에서 했던 걸 이어보자. 남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主婦 말고 主夫) 선택하면 작품이 페미니즘이 되는 건가? 뭐 그럴 수 있기는 하겠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언제적 이야기? 2009년작. 21세기다. 한 가족의 가장(여편이 됐든, 남편이 됐든)이 갑자기는 아니겠고 누적된 타격에 조금씩 금이 가 번아웃이 되는 걸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는 힘들겠지만, 그래서 사회 여러곳에서 사고가 터지는 거겠지만, 만일 그 상태에 이르면 부부간에 깊이 이야기를 해서, 이제껏 일 한 사람은 쉬어야 마땅하다. 대신 먹고 살기 위해 다른 편이 수입을 담당해야 하겠지. 그게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떤데?

  실제로 이 책에서 토머스 브래드쇼는 정식 연주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베토벤과 쇼팽도 치고,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하다가 왼손과 오른손이 똑 같은 혹은 비슷한 정도의 비중으로 다른 박자로 연주(템포 루바토!)해야 한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해도 치열한 건 치열한 거다. 그러면 <…시골생활>에서 스텔라 기븐스의 <춥지만 편안한 농장>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면, 혹시 토머스 브래드쇼의 피아노 연주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를 주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염두에 둔 거 아냐?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반면에 아내이자 알렉사의 엄마인 토니는 2류 대학 국문과의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사회 생활 상 빠질 수 없는 파티에 갔다가 생전 처음 만난 나이든 신사, 평생 스톡홀름에서 산 독일인 의사, 석 달 동안 런던의 병원에 파견 온 이방인과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원나잇을 즐기고, 샤워도 하지 않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 설마 이 책이 이래서 페미니즘이란 것도 아니지? 아니겠지? 결말을 알면 더 기가 막힐 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리 읽어도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더는 회사에 다니기 싫다. 누구나 다 경험한다. 나도 수십번은 그랬을 거다. 그러나 정말로 때려치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때, 우연히 아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대학의 학과장이다. 자기가 벌지 않아도 아내의 수입이면 하나밖에 없는 딸 학교 다니는 거하고, 국영수 학원 보내는 거하고,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때마침 여름 휴가다. 유럽인들 휴가는 무척 길다. 근데, 원래 오래 놀면/쉬면 더 놀고/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여름이 끝났다. 휴가도 끝났지만 토머스는 직장에 가기 싫다. 아내 토니는 새로 학과장이 되어 일상에도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이는 듯하다. 나는 휴가철에 직접 해보니까 집안일, 밥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다. 그럼 아내한테 말이나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 드는 것도 별스럽지 않다. 토니도 생각해보니, 여차하면 이런 사람들 간혹 “극단적 선택” 한다는 걸 TV에서 봤거든. 겁이 덜컥 날 수도 있지. 그래서 어이 토머스, 관둬, 때려 치워. 했겠지, 과부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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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0-04 04: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김혜나, 《청귤》
화요일.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
목요일. 수사나 포르테스, <알바니아의 사랑>
금요일. 에리히 아우어바흐, 《미메시스》 ---- 개봉박두!
 
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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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슨 화이트헤드의 2011년 작품. 내가 읽은 이이의 세 번째 책. <니클의 소년들>과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다른 소설이었듯이 <제1 구역>은 앞에 읽은 두 권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달라도 너무 달라서 과연 같은 작가가 쓴 작품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이제 24년이 흐른 21세기에 퓰리처 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소설가인 화이트헤드는 작품마다 다른 주제와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설마 “좀비” 소설을 쓸 줄은, 생각 못했다. 태생적으로 좀비 같은 비정상 괴물이 출몰하는 소설, 영화 기타 작품을 혐오하는 터, 동양의 강시는 귀엽기라도 했지만, 과연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책의 초반을 읽는 내내 의심스러웠다. 실제로 앞부분에서는 책을 덮기 바로 전까지 여러 번 가기도 했다. 이 책은 좀비 무리와 대항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소설이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얼굴을 찡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여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끝까지. 화이트헤드가 작품을 쓴 2011년에는 펜데믹 이전이다. 그라운드제로 이후 10년이고. 미국, 특히 뉴욕 맨해튼 토박이인 콜슨 화이트헤드의 경우 그라운드제로의 경험이 생생하게 박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당시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 그리고 아무리 세계최대도시 뉴욕이라 할지라도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 앞에서는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터. 이런 상념은 인간에 한 종의 바이러스를 만들어 냈고, 인간을 숙주로 해서 최초의 한 명을 워킹데드, 좀비로 만들어버렸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최초의 좀비는 눈에 띄는 사람의 목이나, 팔뚝이나, 다리, 옆구리에서 야구공 하나만큼의 살점을 뜯어내 먹는 것으로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게 했다. 하지만 2024년에 책을 읽는 독자는 몇 년 이어진 펜데믹을 거치는 바람에 ‘바이러스’라는 단어 하나만 들어도 양쪽 이마에서 알루미늄 빛을 발하는 촉각이 솟아나와 새삼스럽게 소름이 끼치게 만들거나, ‘또 바이러스 이야기야?’ 조금은 지겨운 생각이 들게 만든다. 어쨌거나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독자의 개인적 경험까지 보태져, 독자가 작가보다 더 다양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러니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니, 이런 면에서는 흥미롭기까지 하다.


  작품의 주인공은 삼인칭 대명사 ‘그’로 불리는 남자다. 어려서 로이드 삼촌을 좋아했다. 삼촌은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남쪽) 라피엣 거리의 강화유리로 벽을 장식한 아파트 건물의 19층에 살았다. ‘그’는 삼촌을 좋아했다. 롤 모델일 정도로. 수시로 애인이 바뀌고, 애인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그’의 첫번째 숙모가 되기 희망했지만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삼촌을 집을 최신식으로 꾸몄다. 벽 한 면을 다 가리는 초박형 TV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최신식 오디오/비디오 장치가 여덟 장소에 비밀리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장르를 불문한 음악이 쏟아져 내려왔지만, ‘그’는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과 해변 그리고 다른 마천루를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나도 이렇게 살고 말리라.

  ‘그’는 전형적인 B학점 삶을 살았다. 전혀 돋보이지 않지만 잘 하는 축에 들고, (살면서 계속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냥 저냥 어떤 상태라도 적응해 중간 이상 정도로 생존하는 데 특화되었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있는 청년. 나는 죽을 수도 없을 거야. 어떤 경우라도 살 방법이 눈에 뜨일 테니까 말이지. 정말 이런 유형의 인간이 있다.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미움도 받지 않고, 그렇다고 크게 칭찬받는 법도 없는데 끈질긴 사람. 화이트헤드가 좋아하는 인간형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별다른 생각없이, 아버지의 권유도 있고 하니, 6년을 목표로 잡고 법학을 공부한다. 공부하면서 여기 저기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경험도 쌓고. 만일 바이러스가 아니었으면 준비중인 법률가 시험 역시 B 정도의 성적으로 무난히 통과해 변호사가 되어 넥타이를 맨 수트 차림으로 맨해튼의 사무 건물에서 B 학점 정도의 업무수행능력 평가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시작은 비록 부모님 집 지하실을 개축한 자기 숙소이지만 B학점 정도의 능력있는 변호사를 하며 자산을 모으면 언젠가는 로이드 삼촌처럼 다운타운의 고층 아파트에서 살 날도 오리라.

  졸업이 가까워졌을 때 친구 카일과 함께 작은 도박을 하며 즐기기 위해 애틀랜틱시티에 가서 실컷 놀고 돌아오던 날의 교통체증. 이때가 바이러스의 시작쯤이었을 것이다. 트래픽 잼에 걸려 밤늦게 집에 도착한 ‘그’는 부모를 깨우지 않기 위하여 살금살금 걸어 자기의 ‘휴게실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쯤이면 부모는 2층 디지털비디오 플레이어 앞에서 반쯤 졸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잠시 시간을 더 보내다가 ‘그’는 결국 애틀랜틱시티에서 딴 돈을 자랑하고 싶어 계단을 올라간다. ‘그’는 여섯 살 때던가, 어려서 기척없이 부모의 방문을 연 적이 있었고, 그래서 부모의 침대 위 행위를 목격한 적이 있어서 이날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예전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러했듯, 어머니가 누운 아버지 옆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니, 아버지의 갈라진 복막 속에서 꺼낸 창자 한 조각을 홀린 듯이 열정적으로 갉아먹고 있었던 거였다.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어머니는 바이러스의 침공을 받아 속칭 ‘해골’ 또는 ‘망령’의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그’는 당장 집에서 도망나와 벌판, 시골지역으로 탈출해 목숨을 유지했다. 당연히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닥뜨렸지만 그때마다 B학점의 생존본능과 행운을 만나 환난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책에서 재미있게 묘사하지만 그걸 여기에 옮기면 나중에 읽을 독자의 재미를 떨어뜨릴 것 같다. 이 중에서도 마지막 거의 잡혀서 게걸스런 해골들의 저녁식사가 되든지 자신도 해골의 일원이 될 절체절명, 위기일발의 순간, 버펄로, 라고 부르는 임시군사정부의 군대에 의하여 구출되고, ‘그’는 생존자들이 만든 정착캠프 ‘행복한 땅’에 잠깐 머물다가 민간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비전통적 부대인 수색대에 들어간다. 여기서 세 명으로 이루어진 오메가 팀에 합류했으니, 팀장 케이틀린, 팀원 게리와 ‘그’.

  이들이 초기에 맡았던 임무 가운데 꽉 막힌 I-95번 도로를 순찰하라는 것이 있었다. 차량들은 다 정차 상태이고, 차 안에 든 사람처럼 보이는 것들은 시체 아니면 차량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해골, 좀비들이었다. 임무는 좀비가 있으면 머리통을 쏘아 죽이고, 차량을 도로 옆으로 치워 이동로를 확보하는 것. 비교적 간단한 임무였다. 하지만 교량이 나왔다. 교량에 갓길이 없어 작업이 한층 어려워진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유개 탑차. ‘그’를 포함한 팀원들은 (당시엔 지금 팀원들이 아니었다) 똑 같은 매뉴얼에 따라 탑차를 개방했고, 바로 그 순간 탑차 안에서 탈출하지 못했던 수십 명의 좀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으며 대원들이 그것들을 향해 총을 쏘아댔지만 역부족이라 교량 아래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살 수 있다는 확실하게 무모한 생각에 사로잡혀 뛰어내리는 대신 승합차 꼭대기로 올라가 단신으로 좀비 수십 마리를 다 해치워버렸다.

  나중에 팀원이,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왜 뛰어내리지 않느냐 물었고, ‘그’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고백했다. 여기저기서 폭소를 터뜨리며 이 순간부터 ‘그’를 마크 스피츠로 부르는 것으로 결정해버렸다. 그래서 이 다음부터 주인공의 이름이 마크 스피츠가 된다. 마크 스피츠는, 나는 아직 그의 콧수염  난 모습을 기억하는데, 검은 9월단의 테러로 크게 흠집이 난 뮌헨 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수영선수로 최초의 7관왕, 금메달 일곱개를 딴 영웅이다. ‘그’가 수영을 못하니, 수영 챔피언, 영웅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여준 것.


  버펄로는 뉴욕 맨해튼에 콘크리트 벽을 설치하고 강철로 만든 조임쇠로 연결해 튼튼한 방벽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1구역. 버벌포의 해병대가 진입해 도심 광장에서 큰 소리로 해골들을 부르니, 해골 입장에서는 만찬 초대로 여겨 곳곳에 흩어져 있던 맨해튼의 거의 모든 해골이 광장에 집결했고, 군대는 수월하게 이들을 몰살해버렸다. 이제 도심에는 거의 해골이 없어진 상태. 이곳에 민간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수색대가 들어와 열리지 않아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한 좀비들과 붙박이 망령들을 해치우는 임무를 맡는다. 좀비/해골은 익히 아실 것. 붙박이 망령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마네킹처럼 자신이 죽은 상태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몰두하고 있던 작업을 여전히 계속하기 위하여 근처에 붙박이처럼 서성대고 있는 감염자들. 물론 이들도 이미 죽은 상태인 건 마찬가지다. 수색대는 좀비들을 해치우기도 하지만 주요 타격 대상이 이 붙박이 망령이다.

  이제 마크 스피츠가 된 ‘그’는 훗날, 어느 시점부터 자기가 살고 싶어했던 맨해튼의 인적 없는 거리를 소총을 맨 채 서성이며 지금 자기가 소멸시키고 있는 해골과 붙박이 망령의 정체에 대해 생각한다. 8학년 시절 과학 실험시간의 파트너, 간이 마트 계산원, 대학 3학년 봄학기 시절의 여자친구, 그리고 삼촌. 은행원, 지하철 철도원, 극장 매표소 직원, 배추가게 아저씨.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마크 스피츠 옆에서 자연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던 그냥 보통의 사람들과 또 부르주아들과 약간의 범죄자들과, 노숙인도 있을 수 있고, 하여간 같은 시대를 산 너와 나 같은 인간이었던 존재들. 나는 작가의 이런 사색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박제된 은유’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는 걸 아닐까 싶었다. 갑자기, 한 순간에 인간의 (뇌를 포함한)몸에 침투하여 이상 생명체로 탈바꿈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라고 해도 좋고, 911테러 같은 난데없는 폭력이라 해도 괜찮으며, 보통의 생활인은 걱정해보지도 않았던 유동성 위기로 인한 파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콜슨 화이트헤드. 같은 좀비 소설을 써도, 글 좋고 훌륭한 사변을 요리할 줄 아는 작가가 쓰면 역시 결과물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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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0-03 0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점 4는 아깝다. 그렇다고 5를 찍자니 과하고. 4.5 읎나?

stella.K 2024-10-03 10:15   좋아요 4 | URL
가끔 그런 책이 있긴하죠? 3개는 적고 4개 주자니 많고. ㅋ
이책 좋으셨나 봅니다. 작가마다 패턴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가는 능력이 탁월한가 봅니다. 혹시 또 그런 작가 있나요?

Falstaff 2024-10-03 11:18   좋아요 4 | URL
자주 있어요! ㅎㅎㅎ 3반, 4반... 딱 3,4,5 이렇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요 뭐. 좋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이처럼 다양한 방면으로 글 쓰는 작가는 누가있나... 모르겠군요. 또 누가 있을꼬??
 
사는 이유
에이미 헴플 지음, 권승혁 옮김 / 이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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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에 시카고에서 태어나 16세에 캘리포니아로 갔다가 70년대 중반에 뉴욕으로 이사했단다. 이 책은 헴플이 1985년에 펴낸 첫 작품집이라고 하니, 많은 작품이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하는 게 이해된다. 수많은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자)최근에는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에서 MFA, 예술분야 실기 석사과정을 가르치고 있단다. 단편 전문 작가.


  단편 전문이라서 그런지 열다섯 작품을 2백쪽도 되지 않는 분량에 때려 넣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책이지만 그래도 한 페이지에 스물두 줄이 들어가게 편집했다. 아쉽게도 나는 며칠 전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집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읽었다. 그래서 아직도 머리속에는 캘리포니아와 근방의 이곳저곳이 바글바글하다. 물론 브라우티건의 캘리포니아는 전쟁 시절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라서 헴플의 캘리포니아와는 많이 다르지만 하여간 그렇다.

  이 책은 읽어보라고 권유를 받은 후 곧바로 도서관 책 검색을 해서 관심도서에 등록을 해 놓았다가, 내가 다니는 집에서 백 미터 떨어진 도서관에는 없어서 상호대차 신청을 해 읽었다. 권유를 받고 정말로 읽은 터울이 너무 길어 권해주신 분께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여간 그래서, 좋은 책이라는 기대가 컸던 것이 문제였을까? 영어 원문은 어쩐지 모르겠다. 역자 권승혁이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로’ 책으로 낸 《사는 이유》는, 읽을 때는 문장이 섬세하고, 자연스럽고, 품위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머리속이나 마음 속에 남은 작품은, 아쉽게도 한 편도 없다. 아무래도 에이미 헴플은 서사를 읽을 생각을 하면 마땅하지 않은 작가인 것 같다. “것 같다”라고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짐작이다, 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문장이라도 머리/마음에 남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별로 그렇지 않다.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하나는 원서로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작가. 둘은 내가 제대로 알 수 있는 수준의 작가가 아닌 것. 어떤 경우라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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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회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1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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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렌 네미롭스키는 1903년 당시 러시아,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기원전부터 고리대금업에 관한 한 세계 어떤 인종보다 뛰어난 자질을 보였던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부유한 은행가였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벌어지는 걸 보고 즉시 러시아를 탈출, 핀란드를 거쳐 파리에 정착했다. 당시 러시아제국의 영토에 살다가 그곳을 탈출한 유대인 가운데 제일 안타까운 사람들이 유럽에 정착한 이들이다. 차라리 팔레스타인이나 미국, 아니면 라틴 아메리카를 선택하지 하필이면 서유럽에 정착해 그 고생을 하느냐는 말이지. 물론 당시에 알았나, 몰랐겠지.

  파리로 온 이렌 네미롭스키는 소르본 대학을 다니며 글을 쓰다가, 1926년 스물세 살 때 미셸 엡스타인과 결혼했다. 엡스타인. 유대인 성씨다. 이렌의 아버지처럼 은행가였단다. 1929년에 맏딸 데니스를 낳은 건 좋았는데, 1937년, 이미 전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팽배할 시점에 얼른 남북 아메리카 아무 곳이나 팔레스타인으로 뜨지 않고 둘째 딸 엘리자베스를 낳은 건 뭐람. 이 시점이 사실상 거의 마지막으로 유럽을 탈출할 수 있었던 기회였을 텐데. 아마 그때도 프랑스 정부가 옙스타인 가족에게 프랑스 국적 부여요청을 거부하고 있었을 걸? (맞다! 1938년에 국적 요구가 정식으로 거부당했다.) 1년 후인 1938년 독일 전역에서는 독일인들에 의한 유대인 린치 사건인 “수정의 밤”이 벌어지고, 또다시 1년이 지나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1940년 6월 23일, 군복을 입은 아돌프 히틀러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근사한 사진 한 장을 박으며, 이렌과 미셸 엡스타인의 인생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실제로 이렌 네미롭스키는 유대교를 버리고 천주교로 개종을 하며, 스스로 유대인과 거리를 둔 듯한 글을 기고하는 등의 행위를 했음에도 프랑스인이 되는 것에 실패하고, 1942년 프랑스 비시 정부의 경찰에 의하여 유대인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당해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이 아니라 발진티푸스로 죽는다. 남편 미셸 엡스타인은 파리 함락과 동시에 은행에서 해고당하고 아내 이렌이 죽은 몇 달 후 아우슈비츠에서 가스를 마시고 죽는다. 두 딸이 살아남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엄마의 작품을 1990년대 후반에 소개하는데, 남긴 것이 엄마의 일기인 줄 알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니, 참.


  이 책은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대표작은 당연히 1929년에 발표한 <무도회>. 조금 헛갈리는데, 1929년에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각색한 영화 대본으로 먼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1930년에 영화 <데이비드 골더>라는 제목으로 나왔고, 연극으로도 만들어 히트를 친 모양이다. 29년에 출판사 사장이 도대체 이 작품을 누가 쓴 것인지 몰라 신문광고까지 했지만 정작 이렌 네미롭스키는 첫아이 데니스를 낳기 위해 산과에서 용을 쓰고 있었다고. 그라셋 출판사는 겨우 스물여섯 살의 여성이 이렇게 강력한 작품을 썼다는 사실에 놀랐었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와 있다.

  <무도회>가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없다. 파리의 은행 문 앞에 푸른 제복을 입고 서서 고객이 들어올 때마다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였다가, 고용주의 눈에 띄어 직원이 되었던 알프레드 캉프 씨. 그는 상사의 타자수로 일하던 로진 양과 연애를 해, 둘 사이에 외동딸 앙투아네트가 태어나기 바로 전 북통같이 부른 배에 웨딩드레스를 입힌 채 결혼을 했다. 이들은 파리의 허름한 파바르 가의 작은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캉프 씨가 다른 건 몰라도 돈복이 있는 건 확실해서, 2년 전인 1926년에 프랑화와 영국 파운드화가 널뛰기를 하는 걸 유심히 눈 여겨 보더니 자기 전 재산을 몰빵, 대박, 대박 중에서도 초대박을 쳤고, 원래 되는 인간은 하는 일 족족 되는 게 보통이어서, 이어지는 투기성 투자도 더블, 더블-더블의 연속상영, 남은 생애 동안 아내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비단신에 흙 한 번 밟지 않고 살 수 있는, 부르주아의 일원으로 우뚝 서게 됐다. 근데 결혼한 지 14년에 딸 앙투아네트 하나밖에 없는 걸 보니 우뚝 세운 건 돈 하나밖에 없었던 모양이지?

  전형적인 졸부. 이집 부모만큼 허세, 허영 덩어리로 과시하기 좋아하고, 크게 소리쳐 위압하기 좋아하는 인종을 우리도 많이 봤을 걸? 단시간에 급속도로 돈이 쏟아져 천민자본주의 시절을 충분히 경험했고, 어쩌면 아직도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지 모르니까 말이지. 알프레드 캉프는 금융업 권위자답게 부르주아 사회의 일원으로 도장이 박히기 원하고, 로진 캉프는 하층계급 출신이라 주로 공, 후, 백, 자, 남작과 그 부인들과의 교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싶다. 그리하여 의기투합한 부부는 무지막지한 돈을 들여 크게 무도회를 열기로 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자기네 집 안에 있는 걸 몰랐다. 열네 살 먹어 사춘기를 맞은 딸 앙투아네트. 평소 부모한테 별 애정은커녕 제대로 된 관심도 못 받은 채 사춘기를 맞아 특유의 반항심과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웬수. 그리하여 2백명을 예상한 큰 규모의 무도회에 한 바탕 거친 바람이 몰아치니, 그건 알려드릴 수 없지.


  하지만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마지막 네 번째 읽은 <그날 밤>이었다.

  여자와 남자는 스무 살에 만나서 이제 마흔다섯. 서로 사랑했지만 행복하게 살지는 못한 부부. 둘 다 격렬한 성격에 질투심으로 가득했고, 상대방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드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니 이들이 어떻게 지냈겠어, 25년 간을. 치열하게 싸우고나서 열정적이고 감미로운 화해로 끝나곤 하는 폭풍우의 연속이었겠지. 세월이 흘러 한 시절 대단한 미인이었던 여자는 화장을 해도 깊은 주름이나 씁쓸한 표정을 가릴 수 없었다. 애지중지했지만 원하지는 않았던 딸을 느지막이 낳은 다음엔 몸도 무거워지고 틀어져버렸다. 그러나 남자는 여전히 젊어 보였다. 이들은 프랑스에 정착하지 못해 모로코로 떠났고, 건축가였던 남자는 나이가 든 후에야 행운이 따라 이제 거의 부자가 됐다. 그러나 이 순간, 남자는 젊은 애인과 함께 달아나버렸고, 모로코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여자는 딸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와, 상트르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선생으로 일하는 동생 곁에서 살기 위해 눈까지 내리는 작은 역에서 내렸다. 이렇게 작품은 시작하고,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이 화자인 ‘나’이다.

  여자의 동생, 그러니까 ‘나’의 이모 알베르트의 집에 도착하니 마을 우체국의 직원인 블랑슈 아주머니, 다른 곳에서 역시 학교 교사를 하고 있으며 알베르트 이모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해 와 있는 마르셀 아주머니가 맞아 주었다. 12월 23일이었다.

  알베르트 이모는 여태 독신이다. 홀로 고독하지만 행복하고, 부족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 여인 앞에서 자신의 고통, 사랑의 잘못된 결과와 ‘나’일 수밖에 없는 잘못된 과실에 대하여 호소하는 엄마.

  결론은? 절대 밝히지 않겠다. 읽어가면서 그렇게 끝나겠지, 기대한 대로 되지만, 정말 그런 결말을 맞을 때, 독자는 복잡한 심정이 될 수도 있다. 멋진 단편이다. 오래 기억에 남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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