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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47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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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이철 커스크를 한 번 읽었나? 아닌 줄 알았다. 그러다가 원래 제목이 The Country Life인 것을 우리말 <어느 도시 아가씨의 아주 우아한 시골 생활>로 바꾸어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낸 것을 읽은 게 기억났다. <…시골생활>로 서머싯 몸 상을 받아 “모던-클래식”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겠지. 서머싯 몸 상은 서른다섯 살 미만의 청년 작가에게 주는 건데 1998년엔 네 명의 신진 작가가 받았다. 1997년과 1999년에도. 얼핏 수상자 면면으로 보니, 도리스 레싱, 킹슬리 에이미스(마틴의 아빠), V.S. 나이폴, 앤절라 카터, 마틴 에이미스, 줄리언 반스, 피터 애크로이드, 새라 워터스, 존 맥그리거, 제이디 스미스 등인데 원래는 한 해에 한 명 주던 걸 요즘엔 대여섯 명한테 확확 뿌려준다. 그러니 당신이나 내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영국작가(셰익스피어, 필딩, 디킨스, 새커리는 빼고)가 다 받았다고 생각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다. 뭐 그렇다는 것이지 수상자가 많은 걸 가지고 레이철 커스크가 별로다, 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레이첼 커스크는 캐나다 서스캐처원(이곳 북부에는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주 새스커툰에서 영국인 부모의 (순서에 입각해) 딸, 딸, 아들, 아들 가운데 둘째로 1967년에 태어나, 유소년 시절을 거의 L.A에서 보내다가 1974년에 드디어 조국(어째 이제는 이 단어가 좀 어색하다)인 영국 서퍽에 정착한다. 일곱 살. 앞뒤 잴 거 없이 완벽한 영국사람이다. 성공회가 아니라 가톨릭 가정이긴 하지만. 공부도 잘했나 보다. 옥스포드 뉴 칼리지 국문과 졸업했다. 당연히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여 쓰고 있는데, 커스크가 첫 작품 <아그네스 구하기>를 발표한 것이 1993년 스물여섯 살 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작품을 출간하기 전까지 뭐했을까? 은행가와 짧게 첫번째 결혼생활을 했다는데 부모에 이어 은행가 남편에 기대 자기만의 방과 연 5백 파운드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경제활동을 했을까? 했겠지. 아닐 수도 있겠다. <…시골생활>과 <…변주곡>의 여성 주인공은 법무관과 교수/학과장이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대단한 수준의 인텔리겐치아 계급이기는 하지만 계기가 생기는 순간, 가차없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시골 부자 가정의 오페어로 들어가고(<…시골생활>), 아니면 귀 한 쪽이 들리지 않는 외아들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한다.
왜 이딴 거 가지고 까탈이냐고? 아니, 거 뭐.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 의하면 레이철 커스크가 “영국 젊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제일 앞에서 말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남자의 일상을 통해 현대 페미니즘의 중요 쟁점인 부부간 역할 갈등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해서, 그게 좀 께름칙해 그렇다.
토니와 토머스 브래드쇼 부부는 둘 다 잘 나가는(것처럼 보이는) 직장인이었다. 잠깐 동안은. 토니는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딸 알렉사를 낳고, 섹스와 인연을 (거의)끊은 기간을 다 포함해 8년간 하는 일 없이, 물론 공부는 계속 했겠지, 가정주부로 살다가 한 달 전에 새 직장, 1류는 아니지만 2류 정도 되는 대학의 교수 자리를 얻었다. 그리고는 덜컥, 학과장 자리에 올랐다. 런던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몬테규 가에 고만고만한 집에 산다. 부르주아적 분위기가 풍기지만 정작 주민들은 박봉에 시달리는 성마른 인상을 한, 그러니까 정말로 박봉에 시달리지는 않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토니가 학과장이 되니, 남편 토머스는 여름 휴가를 받은 후, 여름이 끝날 때까지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9월이 되자 스스로 알아차린 것이, 이젠 자유스러워졌거나 추방당했다는 거였다. 어디에서부터? 직장에서의 자유 또는 추방. 즉, 이제부터 토머스는 자유의지로 직장인이 아닌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는 거다. 대신 토니가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가장이 되고. 이렇게 작품은 제목대로 브래드쇼 가족의 변주곡이 되는 거다.
토니와 토머스 브래드쇼 부부만 나오면 아무래도 분량이 적어질 것 같았을까? 커스크는 그래서 토머스의 형 하워드과 동생 레오 가족도 우정출연 정도의 수준이 아닌, 당당한 조연 정도의 무게로 등장해 나름대로 에피소드를 만든다. 제목에 변주곡variation을 붙였으니 형과 아우의 성향과 사는 방법은 달라야 하겠지? 형 하워드는 브래드쇼 집안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25세이 이미 부자가 됐고, 그때부터 머리도 벗겨지기 시작한 반면, 막내 레오는 완벽할 정도로 편안한 삶을 살아, 토머스가 보기에 레오가 하는 일에는 어쩐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런 상태를 토머스는 하워드는 장조major, 레오는 단조minor의 삶이라 한다. 그럼 토머스 부부는? 장조와 단조 사이의 조변화 같은 변주의 삶이지.
이쯤에서 앞에서 했던 걸 이어보자. 남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主婦 말고 主夫) 선택하면 작품이 페미니즘이 되는 건가? 뭐 그럴 수 있기는 하겠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게 언제적 이야기? 2009년작. 21세기다. 한 가족의 가장(여편이 됐든, 남편이 됐든)이 갑자기는 아니겠고 누적된 타격에 조금씩 금이 가 번아웃이 되는 걸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는 힘들겠지만, 그래서 사회 여러곳에서 사고가 터지는 거겠지만, 만일 그 상태에 이르면 부부간에 깊이 이야기를 해서, 이제껏 일 한 사람은 쉬어야 마땅하다. 대신 먹고 살기 위해 다른 편이 수입을 담당해야 하겠지. 그게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떤데?
실제로 이 책에서 토머스 브래드쇼는 정식 연주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베토벤과 쇼팽도 치고, 바흐의 평균율을 연주하다가 왼손과 오른손이 똑 같은 혹은 비슷한 정도의 비중으로 다른 박자로 연주(템포 루바토!)해야 한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한다. 아무리 아마추어라 해도 치열한 건 치열한 거다. 그러면 <…시골생활>에서 스텔라 기븐스의 <춥지만 편안한 농장>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면, 혹시 토머스 브래드쇼의 피아노 연주는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연수 5백 파운드를 주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염두에 둔 거 아냐? 아니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지?
반면에 아내이자 알렉사의 엄마인 토니는 2류 대학 국문과의 학과장으로 있으면서 사회 생활 상 빠질 수 없는 파티에 갔다가 생전 처음 만난 나이든 신사, 평생 스톡홀름에서 산 독일인 의사, 석 달 동안 런던의 병원에 파견 온 이방인과 샤워도 하지 않은 채 원나잇을 즐기고, 샤워도 하지 않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 돌아온다. 설마 이 책이 이래서 페미니즘이란 것도 아니지? 아니겠지? 결말을 알면 더 기가 막힐 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무리 읽어도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더는 회사에 다니기 싫다. 누구나 다 경험한다. 나도 수십번은 그랬을 거다. 그러나 정말로 때려치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때, 우연히 아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게다가 대학의 학과장이다. 자기가 벌지 않아도 아내의 수입이면 하나밖에 없는 딸 학교 다니는 거하고, 국영수 학원 보내는 거하고,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때마침 여름 휴가다. 유럽인들 휴가는 무척 길다. 근데, 원래 오래 놀면/쉬면 더 놀고/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여름이 끝났다. 휴가도 끝났지만 토머스는 직장에 가기 싫다. 아내 토니는 새로 학과장이 되어 일상에도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이는 듯하다. 나는 휴가철에 직접 해보니까 집안일, 밥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다. 그럼 아내한테 말이나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 드는 것도 별스럽지 않다. 토니도 생각해보니, 여차하면 이런 사람들 간혹 “극단적 선택” 한다는 걸 TV에서 봤거든. 겁이 덜컥 날 수도 있지. 그래서 어이 토머스, 관둬, 때려 치워. 했겠지, 과부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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