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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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1977년 유월 초하루에 모스크바 남서쪽 서 시베리아 초입의 타타르 자치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엔지니어 아버지 샤밀 야힌과 의사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당연히 타타르어를 사용했고 탁아소에 다니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데뷔작 <줄레이카>는 타타르 사람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모델로 쓴 작품이었다. 1930년 초에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강제적으로 집행한 이주 정책에 의하여 할머니는 유럽권 소비에트 지역이었던 타타르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 모진 고생을 한 후 16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주 정책을 따르지 않은 죄목으로 처형을 당했고. 조부모의 내력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나의 아이들>을 읽으며 ①작가 야히나를 독일계 소비에트 혈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라는 것, ②작품의 뒷부분에 나오는 강제 이주 정책은 작가의 조부모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야히나는 데뷔작 <줄레이카>에 이어 두번째 작품으로 <나의 아이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도 할머니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탄생하기 쉽지 않았을 듯하다. 할머니가 시베리아에 가서 생활할 당시 그곳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일종의) 유배자들과 깊은 우의를 맺어 <나의 아이들>의 등장인물인 독일계 소련인들의 사정을 손녀에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나덴탈’이라 명명한, 볼가강 뒤쪽 스텝 지역에 둘러싸인 작은 우주의 중심인 가상의 독일인 집단 거주촌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위 사항은 위키피디아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정확한 자료가 아니다.


  카스피해의 북쪽으로 유입하는 볼가강변의 광활한 스텝지역에는 몽골족의 후예인 칼마크인들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땅의 지질이 농업에 적합하다는 영국인의 보고서를 읽은 예카테리나 여제는 칼마크인들을 집중 징발하는 등의 교묘한 방법으로 유목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고 빈 자리에 코사크 사람을 보내 농사를 짓게 한다. 그러나 중서유럽의 농지에 비해 현격하게 생산성이 떨어지고, 때마침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농이 대폭 증가했던 형편이어서 주로 독일로부터 많은 수의 농업 이민을 받아들이게 된다. 베스트팔렌, 작센, 티롤, 뷔르템베르크, 알자스, 로렌, 바덴, 헤센 등 각지의 독일인들이 최초의 식민지 주민 자격으로 배를 타고 볼가강변 크론시타트에 도착했을 때, 기골이 장대한 독일여성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제 예카테리나 2세는 발목까지 털이 숭숭 난 하늘 같은 말 위에 앉아 큰 목소리의 표준 독일어로 동족에게 외쳤다.

  “나의 아이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러시아의 아들 딸들이다! 우리의 든든한 날개 아래로 오라! 우리가 그대들을 보호하고 아들딸처럼 보살펴주겠노라! 대신 그대들은 새로운 조국에 그 어떤 조국보다 충성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거부하는 자는 지금 당장 오던 길로 돌아가라! 썩은 심장과 연약한 손을 가진 자는 원치 않느니!”

  이래서 작품의 제목 “나의 아이들”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외친, 러시아 제국 황제의 아이들 가운데 과거에는 독일인이었으나 이제 러시아에 충성하는/해야 하는 러시아 이민자를 가리킨다.

  그나덴탈에는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바람에 별의 별 독일어가 다 섞여 있어, 1910년대 후반 기준으로 통일 독일에서 사용하는 독일 표준어와 많이 다른 이 지방 고유의 사투리가 정착되었다. 이곳에서 낳고 자란 토박이이지만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 교사 야코프 이바노비치 바흐도 러시아어라고는 학교에서 배운 백 개도 되지 않는 단어밖에 알지 못한다고 하니 이들만의 작은 섬을 이루고 살았던 셈이다. 나중에 공산 권력을 쥐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스탈린 입장에서 이 공동체를 탄압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내용도 작품 속에 나온다. 이 탄압은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후 결성한 볼가 독일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해산 장면이며, 이전에도 볼가강변의 독일 이민들은 예카테리나 대제가 약속한 징집 면제 혜택을 취소하고, 1920년대 초 대기근 당시 식량 공급 중단으로 수십만 명이 아사하는 등의 환란 속에 속속 볼가강을 떠나 귀국하거나 새로운 이민지로 향하기도 했다. 이렇게 1918년부터 1938년까지 볼가강변의 독일인 지역을 배경으로 그나덴탈의 학교 교사였던 바흐의 삶을 쓴 작품이 <나의 아이들>이다.


  시냇물(der Bach) 바흐는 젊은 날부터 시에 대한 애정이 커서 노발리스, 프리드리히 실러, 하이네 등을 가르칠 수 있는 독일어 수업을 좋아했으나, 아뿔싸, 비쩍 마른 몸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도 별로 없는 교사라서 지독하게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학교 종루에서 종을 울려 그나덴탈의 하루를 여는 것으로 거의 매일 같은 일과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시냇물 선생한테 저녁 식사에 초청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오늘 오후 다섯 시에 볼가강변에 도착하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우도 그림 씨. (독일인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귀에 익숙하다. 바흐, 그림, 바그너, 프롬, 디트리히, 심지어 괴물 ‘코흐’까지. 야히나가 독일계가 아닌 게 분명하다.)

  책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왼쪽엔 절벽에 둘러싸인 산지라 사람 살기에 적당하지 않고, 오른쪽에는 광활하게 흑토로 덮인 농경지와 스텝지역으로 구분하지만,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본 것과 하류에서 상류로 볼 때 헛갈릴 수 있다. 강의 서쪽이 산악지대, 동쪽이 평야지대인 거 같다. 어린 시절 나도 이런 가사의 노래를 줄곧 부르고 했다.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강물 위에 / 스텐카라친 배위에서 노랫소리 드높다 / 돈코사크 무리에서 피어나는 아우성 / 오만할 손 공주로다 / 우리들은 주린다.” 아무래도 민란의 무리들이 숨어 있기엔 벌판보다 산이 좋을 터. 그림 씨는 거의 산 꼭대기 숲 속의 빈터에 거대하고 기다란 통나무 집과 부속건물로 창고, 가건물, 가축 우리, 얼음창고를 짓고 살았다.

  그림 씨한테는 오는 성령강림절에 열일곱 살이 되는 딸 클라라라고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자기가 생각하기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바보라서, 이제 곧 결혼을 시켜야겠는데, 라이히, 즉 독일인에게 시집을 보내려면 뭐를 좀 가르쳐야 할 거 같아, 바흐에게 클라라한테 바보라는 티만 좀 나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클라라는 바흐 생전 처음으로 다 큰 여학생 상대로 개인수업을 하는 학생이 된다. 클라라 그림은 열일곱 해를 사는 동안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단다. 물론 강을 건넌 적이 없다는 의미일 터. 어차피 고립된 지형이라 집 밖에 나가더라도 강만 건너지 않으면 집안의 일꾼 말고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찍 아내를 여읜 우도 그림 씨는 마치 독일의 옛이야기에 나오는 완고한 왕처럼 클라라를 산 위의 집에 가두어 두고 세상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던 거였다. 바흐 선생이 이 악한 것 무리에 포함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림 씨의 지시로 20세기도 벌써 훌쩍 흐른 시절에, 선생과 학생 사이에 병풍을 치고 병풍 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클라라는 예의 바르지만 지식적으로는 거의 백지 상태였다. 바흐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클라라보다 상처를 더 잘 받고 더 감수성이 예민한 경우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가을. 그림 씨는 가족 전부 내일 당장 독일로 돌아갈 거라고 통보해버린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바흐. 며칠 후 집 앞에 앉은 바흐의 눈에 클라라가 등장한다. 강을 따라 배로 사라토프로 가서 열차로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까지 가는 일정이었지만, 사라토프에서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아버지한테 탈출해 운 좋게 별 탈 없이 그나덴탈에 도착해 학교 사택까지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바흐의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클라라를 밤새도록 내려다보는 바흐.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이 부시게 예쁜 클라라. 바흐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미인이었다. 이윽고 잠이 깨고, 바흐가 묻는다.

  “이제 어쩌죠?”

  클라라가 대답한다.

  “이제 우리, 부부가 아니던가요?”

  이렇게 우리의 시냇물 씨, 바흐 선생은 젊은 클라라와 결혼을 해 볼가강 건너 언덕 위 빈터의 통나무 집에 그들 만의 세상을 만든다. 혁명, 기근, 내전, 살육, 피난, 귀향 등 세상 밖의 모든 세파를 뒤로 한 채. 오래 오래. 물론 세상살이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바흐의 인생도 늘 행복한 건 아닐 수밖에.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카잔 출신의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해서 <나의 아이들> 출간 이전인 2016년에 영화 <선물>의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야히나의 다른 직업이 시나리오, 주로 시각에 호소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정도로 <나의 아이들>에는 시각적 묘사가 훌륭하다. 한쪽에는 절벽, 다른 쪽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 경계를 흐르는 거대한 볼가강. 강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고난의 이야기.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작품 속에 작지 않은 서사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것이고, 사실이 그러하다. 빼어나고, 거대하고, 광활하고, 난폭한 자연 현상과 기막히게 어울러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읽어보기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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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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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러시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룩셈부르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이의 삶이 평생 고단했으리라는 것쯤 훤하게 알 수 있다. 스무살이던 1918년 빼빼로 데이 11월 11일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니 전쟁에 나갔을 확률이 높고, 아무리 프랑스에서 살았다고 해도 1930년대와 40년대 반유대주의가 팽배한 유럽에서 생존하느라 질기게 고생을 했을 터이다. <나의 친구들>은 보브의 데뷔작으로 스물여섯 살이던 1924년에 발간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리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듯하다.

  작품은 1차 세계대전에서 손에 부상을 입어 전쟁 공로 훈장을 받고 지금은 상이군인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 빅토르 바통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가난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을 “나의 친구들”이라고 했다고 정말 바통의 친구들과의 우정을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뒤를 둘러봐도 의지가지 없으며 편한 대화 상대도 한 명 없는 청년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라 여기며 자신도 끊임없이 살고 있음을, 아니면 적어도 살아내고 있음을 확인하는,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상실될 뿐인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을 그렸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를 열면 룸펜 프롤레타리아인 빅토르 바통이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떠 감각하는 것들을 묘사한다. 습기에 얼룩진 벽지 여기저기에 공기가 들어가 들떠 있는 옥탑방에 살고 있는 화자 ‘나’는 우유가게 종업원으로 새벽 일을 마치고 9시에 돌아와 노래하며 청소를 시작하는 옆집 아가씨. 그이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으며, 이유가 남루한 외모의 가난뱅이이기 때문에 외면 받은 걸로 짐작하지만 뭐 그저 그렇다는 거다. 항상 심하게 기침을 해댈 만큼 병색이 완연한 영감님, 늘 바르게 생활하지만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같은 층의 노동자 르쿠안 씨 가족 등등.

  집 밖의 친구들. 싸구려 식당 주인이자 과부인 뤼씨 뒤누아, 가난한 사람한테 호의를 베풀다가 뒤통수를 치는 사기꾼 앙리 비야르, 자살하려 마음먹었다가 ‘나’ 빅토르가 주는 푼돈을 받고 술을 마시는 부랑아 뱃사람 느뵈, 자선을 베풀지만 ‘나’의 외로움이 만든 서툰 작은 실수 때문에 호의를 망가뜨리는 신사 라카즈, 싸구려 술집에서 노래하는 삼류 가수 블랑셰. 모든 관계가 허망하게 끝을 만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감탄한 것은 스토리라기 보다 묘사였다. 나는 이 책은 “프롤로그만 읽어도 별점 다섯”이라고 말한다. 그저 평범하게 방 안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지만 앞 뒤의 풍경을 연상하며 빅토르와 같은 렌즈를 적용하면 가슴이 쓰윽, 칼날에 베고 만다.


  “햇빛이 드는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일순간 빗방울처럼 반짝인다. 그것을 바라보며 일어서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그런 현기증은 금방 사라진다.

  나는 먼저 양말을 신는다. 양말을 신지 않으면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성냥개비들이 발바닥에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손으로 의자를 짚고 바지를 입는다. 구두 밑창을 들여다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신을 수 있을지를 계산한다. 그 다음에는 어제 세수할 때 생긴 물때로 눈금처럼 선이 그어진 세숫대야를 크게 벌려 상반신을 깊이 숙인 채로 세수를 한다.

  세수할 때는 멜빵을 어깨에서 풀어 허리 쪽만 고정한 채로 바닥에 벗어 놓는다. 이것이 나의 세면 규칙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세숫대야는 너무 작아서 양손을 담그면 물이 넘치고 만다. 거의 다 닳아 작아진 비누는 더 이상 거품이 나지 않는다.” (14~15쪽)


  가난하고 외롭고, 누구 하나 돌봐주지 않는 청년이니 부실한 영양도 문제일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빅토르는 기립성 저혈압 증상을 느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순간 방안을 배회하는 먼지조차 빗방울처럼 반짝인단다. 이것 말고도 아예 프롤로그를 통째로 다 인용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구질구질하고 궁상맞기 한이 없는 장면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묘사해 나간다. 이것이 큰 부상을 입고 별로 대가 없이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비자발적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이라서 자연스럽다. 맨발로 바닥을 딛으면 성냥개비가 발바닥에 들어붙는다고 하니 틀림없이 어젯밤에 발을 닦지 않고 그냥 잤을 것이다. 온기 없는 방에서 밤을 보냈으면서도 발바닥에 땀이 찰 정도의 결핍에 시달리는 장애인 청년의 살이.

  역자 후기에 최정은은 “에마뉘엘 보브의 디테일한 묘사는 마치 한 편의 영상 브이로그를 보듯이 눈앞에 그려져 문자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고 했다. 아, “디테일”은 내가 쓰려고 했던 단어인데 역자가 먼저 써버렸다. 독후감을 쓰면서 이런 아쉬움을 느끼기는 오랜만이다.

  비록 180쪽에 불과한 짧은 작품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어버린 건 참 드문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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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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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빌이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발표하고 5년이 지나 1981년에 출간한 책이 <케플러>. 하도 오래 태양을 육안으로 관찰하느라 나중엔 거의 맹인 수준이 된 코페르니쿠스. 16세기 초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거의 지옥 구경을 한 뻔했던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말에 케플러 교수가 쓴 <우주의 신비>라는 책을 통해 최초로 공식적인 옹호를 받았다. 그러니 코페르니쿠스를 썼으면 후속작으로 케플러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듯.

  케플러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리고 점성술사였다. 말을 좀 더듬고 도무지 조리있게 이야기할 줄 몰라 교수로써 인기가 거의 빵점 수준이었으나 당대에 비견할 학자가 없을 정도의 천재였다. 근데 사실 이런 교수들 짜증난다. 좋은 학자인 건 알겠는데 입에서 우물우물 하며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강의를 해놓고 학생만 때려잡는 교수. 나도 한 명 이상 알고 있다. 아마 이젠 다들 가셨을 거야. 케플러가 그짝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보헤미아에서 제국 수학자로 일하기 전까지 도무지 수입이 변변치 않아 점성술, 즉 별점을 쳐주고 돈을 좀 만들었던 모양이다. 책에 나오기를 당시 달력에는 별점을 쳐 해당 월에 벌이질 수 있는 일을 써 놓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 해는 케플러가 그것을 맡아 예를 들어 1월 백송엔 소식을 듣고, 2월 메조에 나비가 되어, 3월 사쿠라 산보간다. 4월엔 튀르크 인들이 침공을 할 운세라 성을 튼튼히 하고, 5월엔 천연두가 몰려올지니 반드시 손을 씻고 마스크 착용을 게을리하지 말지어다, 이런 메모를 달았다가, 이것들이 덜커덕 들어맞는 바람에 점성술사로의 명성이 드높았다고 한다. 케플러 자신도 점성술, 별점 보는 일이 천문학의 딸이지만 어머니 천문학을 먹여 살린다고 했단다.


  작품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스승인 메스틀린 교수에게 실망해 슈타이어마르크 주의 그라츠에서 하던 수학교사 일을 때려 치우고 바르바라 뮐러의 세번째 남편이자 의붓딸 레기나의 양아버지가 된 3년차 유부남으로 한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와 천문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덴마크 사람 튀게 브라헤의 조수를 하기 위하여 프라하로 향하는 마차 안 풍경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주목. 튀게 브라헤. 덴마크 사람이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보헤미아에 거주하며 천문학 공부를 위한 자신만의 천문대 “우라니보르그”를 소유하고 있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아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굳게 믿는 학자이다. 이런 브라헤 선생이 학문의 적수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최초로 공식 옹호한 <우주의 신비>를 쓴 케플러를 고용한 것이다. 브라헤는 성인일까 잡인일까? 당연히 반반이다. 케플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가고, 하여튼 책에 의하면 직속 조수도 아니고 조수의 조수로 일하게 했다는 점을 들어 하필이면 그를 “고용”해 손아귀에 잡았다 해서 옹졸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신이 죽은 다음에 후임 제국 수학자로 케플러를 추천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실력을 인정한 학자적 양심을 가진 인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둥글고 매끈한 대머리에 금속으로 만든 인조코를 달고 다니는 튀게 브라헨 선생은 젊은 시절 사건에 휘말려 섣부르게 결투에 나섰다가 코가 달아나는 운명을 가진 이로, 요하네스 케플러가 <우주의 신비>를 출간한 다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 자기 학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 유럽 각지의 학자들에게 책을 발송했을 때,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는 수준의 짧은 편지를 보낼 뿐이었던 이탈리아의 거만한 갈릴레오와 달리 꽤 길게 쓴 따뜻한 편지를 보내 건투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이이는 자신의 천문대인 우라니보르그를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후원하기는 하지만 황실 재정집행관인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대인 카스파르 폰 뮐스타인이 정말 집행을 할지, 한다면 얼마나 서두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유대인의 이름까지 밝히는 건, 앞으로 케플러한테도 마찬가지로 체불 임금 지불 같은 돈이 나가는 일을 그저 글로만 “지불하겠다.”고 확인해주는 증서로 때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요하네스 케플러의 팔자가 앞으로도 그리 편하지 않을 거란 거다. 장인 욥스트 뮐러 씨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알부자로 딸이 두 번에 걸친 결혼에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버리자 평생 혼자 살라고는 할 수 없어서 삼혼으로 그나마 괜찮은 인간을 찾는다고 찾은 것이 케플러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쉬웠던 쪽이 뮐러 씨였지만 결혼하자마자 안면을 싹 바꾼 장인은 사위 알기를 구변, 즉 개똥으로 알아 늘 시원치 않은 돈벌이 같은 걸로 시비를 걸었다. 자기는 딸한테 적지 않은 돈을 지참금으로 주었다는 게 사위 타박의 근거이기도 했다. 아내 바르바라 역시 아버지를 탁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고 늘 불평불만을 일삼아, 의붓딸 레기나, 창백할 만큼 흰 얼굴과 은색이 도는 금발, 예쁘지는 않고 야위기까지 했으나 스스로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완성된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에게 정을 붙여 살았다. 그러나 처복 없는 남자가 자식 복이 있겠는가? 열일곱 살에 결혼해버린 레기나는 결혼과 동시에 지난 날의 부녀간 정을 싹 무시해버리고 만다. 다행스럽게 바르바라가 남편보다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만, 자기가 일찍 죽자마자 케플러 선생이 화장실에 가서 키득키득 웃을 것임을 벌써 알아버린 아내는 자신의 전재산을 첫번째 남편의 딸 레기나한테 백퍼센트 증여해버리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아내 바르바라는 남편이 옆에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을 뿐임에도. 하지만 믿지 마시라. 존 밴빌은 케플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픽션을 쓰고 있는 중이니.


  뭐 대충 이렇다. 작가는 뒤에서 이 책이 막스 카스파어의 전기 <케플러>와 욘 드라이어의 전기 <튀코 브라헤>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어 작품 가운데 주요 사건은 모두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다고, 아니면 적어도 틀린 내용은 자기 탓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설이라는 픽션이라는 걸 읽는 내내 염두에 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전기傳記를 좋아하지 않아 이런 류는 <닥터 코페르니쿠스> 한 편으로 충분했던 거 같다. 쉽게 얘기해서 <케플러>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건 내 취향에 국한해 드리는 말씀이오니 다른 분께서는 아무쪼록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기를 앙망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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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05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삽질
월요일: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화요일: 구젤 야히나, <나의 아이들>
목요일: 왕팅팅, 스류, <재∙봉 – 고할머니편>
금요일: 바이센융, <서자孼子>

포스트잇 2024-04-05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케플러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그렇잖아도 이책 궁금했거든요. 거기에 존 밴빌이라. ...

Falstaff 2024-04-05 16:25   좋아요 0 | URL
저는 밴빌의 <바다>를 좋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독후감 말미에 썼다시피 취향에 맞지 않아서 좀 고전했습니다.

stella.K 2024-04-05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 어떤건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겠군요.^^

Falstaff 2024-04-05 16:29   좋아요 2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라고요? 헥...
설마 제가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진 않았습죠?

그레이스 2024-04-05 16: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stella.K 2024-04-05 18:28   좋아요 1 | URL
아, 책소개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요. 앞의 시 자는 제가 붙인거고요. ㅋ

Falstaff 2024-04-05 19:38   좋아요 1 | URL
아휴.. 전 제가 그렇게 쓴 줄 알고 본문을 한 다섯 번 훑었을 겁니다. ㅋㅋㅋㅋ

stella.K 2024-04-05 19:41   좋아요 1 | URL
아유,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ㅠ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4-05 22: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코미디언스 페이지터너스
그레이엄 그린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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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인도 제도 산토도밍고 섬의 북쪽에 자리한 아이티 공화국을 배경으로 세 명의 영국인 남성이 펼치는 전형적인 백인 드라마. 그린답게 내놓고 대중소설이다. 대중소설도 얼마든지 좋을 수 있다는 걸 그레이엄 그린만큼 잘 보여주는 작가도 별로 없다. 이이는 세계대전 중에 첩보 부대에서 첩보원, 그러니까 스파이로 활약하기도 해서 그런지 권력 구조 안의 역학관계를 묘사하는 데 특별한 설득력을 가졌다. 다만 영국 백인 출신 작가라서 제삼세계 인물 가운데는 정의로운 사람이 별로 없는 반면 영국인이나 백인들 대부분은 적어도 악의로 똘똘 뭉친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즉 주인공과 주인공 주변인들이 아무리 유색인에 관해 관대하다 해도 이들이 유럽 백인들의 지배를 받은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도 눈에 띈다. 더구나 이 작품은 1966년에 출간했다. 미국에서 흑인 분리법인 짐크로 법이 폐기된 지 겨우 1년밖에 안 지난 시점이다. 반 세기가 흐른 다음 자기 작품에 대해 이처럼 이야기하는 독자가 있다는 걸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 상태인 다니 라페리에르가 쓴 좋은 소설 <남쪽으로>를 보면, 유럽의 유한 여성들이 휴가를 맞아 카리브해의 아이티 섬을 찾는다. 천국 같이 아름다운 해변과 길쭉길쭉하게 잘 생긴 흑인 청년들, 그리고 그들의 몸처럼 긴 생식기를 즐기기 위하여. 그러나 세월은 아름다웠던 옛 시절을 무정하게 지나쳐 지금의 아이티 공화국은 거의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로 꼽힌다. 내가 알기로 아이티의 비극은 1820년대 프랑스가 아이티의 독립을 인정하는 대신에 막대한 독립 보상금을 요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더라도 위키피디아에서 아이티를 검색해보면 나쁜 방향으로 참 알뜰하게 말아먹었다.

  산토도밍고 섬을 점령한 스페인 군대와 그들이 지니고 온 바이러스는 섬의 토착민인 타이노인의 99%, 그러니까 모두 죽여버렸고 어찌어찌 생존한 극히 일부마저 학살해버렸다. 이후에 노동력이 없어져버리니 다른 서인도제도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아프리카의 기골이 장대한 흑인을 수입해 거대 플랜테이션 농장을 만들었으며, 우월한 체격과 체력을 보유한 흑인들은 후에 거꾸로 백인과 백인의 피를 물려받은 물라토를 제거하고 독립을 선포해 완벽한 흑인의 나라를 만들었다. 밖으로는 스페인에 이어 식민지를 경영하던 프랑스에 매년 거액의 보상금을 물어주느라 죽을 맛이었으며 안으로도 어려운 살림 안에서마저 곪아버린 부패 왕국이었던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래도 시계는 멈추지 않아 노베첸토가 찾아오고 7년이 더 흐른 1907년.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판사 집안에 똑똑한 아들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태어난다. 아이는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나 1934년에 아이티 대학 의과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의료봉사에 전념하며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공공의료에 관해 배우기도 한다. 귀국한 뒤발리에는 주로 머릿니를 매개로 하는 후진국형 전염병인 발진티푸스를 예방하고, 고질적인 열대병 가운데 하나로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전염병인 말라리아가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말 그대로 “헌신적인” 노력을 해, 아이티 국민들로 하여금 아빠 의사, Papa Doc. 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파파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비”라는 뜻으로 쓰였다니 그야말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었던 것. 그러다가 군부에 의해 탄압을 받아 시골에서 은둔생활도 하는 등 고난의 시간을 조금 보낸 후 1957년에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어떠한 부정도 없이 당당하게 비밀, 경쟁투표에서 72%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오른다.

  거의 모든 경우 거대 악의 근본 문제는 권력이라는 게 내 소신이다. 세상의 모든 자비를 베풀던 파파독은 권력의 단맛을 잠깐 맛보았음에도 단박에 단맛에 도취, 이후 감히 비교의 대상이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야만적인 학정을 시작한다. 과거 도라이 왕들도 쉽게 저지르지 못했을 만행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저지르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아니, 예를 들기에도 잔인할 정도이니 차라리 조금 짬을 내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시기 바란다. 웃기는 거 하나만 이야기해보자. 1961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단다. 이때 투표자 1,320,748 명 가운데 1,320,748 명의 지지를 얻어 1백퍼센트의 득표를 해 당당하게 기네스북에도 올랐으니, 이거 북한의 김씨 왕조에도 없던 일이다.

  작품 속에는 한 번도 파파독이 직접 원고지 위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파파독 프랑수아 뒤발리에 대통령은, 거의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하듯이 항상 죽음/암살의 두려움 속에 사느라 대통령궁에서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최후는 언제나 죽지 않기 위해 권력을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비극이다. 파파독은 서인도제도의 가장 빈번했던 권력교체 방법인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친위 세력을 키웠으니 웃지 마시라, 이름하여 “통통 마쿠트.” 국가보안자원민병대. 민담 속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가는 자루를 든 아저씨로 우리나라의 “망태 할아버지” 정도로 생각하면 딱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부리는 악귀로 여기면 된다. 날씨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검은 선글래스를 쓰고 다니는 무소불위의 집단. 군대보다 더 막강한 힘과 권세를 자랑했으나 참으로 다양하게 무식한 인간들의 집합이기도 했다. 왜 이렇게 상세하게 쓰느냐 하면, 작품의 큰 스토리가 영국인 등장인물(들)과 통통 마쿠트로 대변하는 아이티의 공포권력과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코미디언에 대하여. 누가 코미디언인가? 넓게 이야기하자면 전부 다,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인류가 코미디언일 수 있다. 살다보니 “웃기지도 않는”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 지구 행성의 모든 이들. 작품에서는 대표적으로 세 명의 백인이 등장한다. 물론 콕 집어서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화자 ‘나’ 브라운은 1906년에 몬테카를로에서 영국인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나지만 아버지는 브라운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떠나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확실히 영국인은 아니었던 어머니는 어린 브라운을 기숙학교인 예수회성모방문 칼리지에 떠맡겨놓고 사라져 등록금도 치루지 않아 끝까지 학교에 대한 부채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한 시절엔 학년에서 가장 유력한 사제 후보생이었으나 어떻게 하다 예상치 못하게 총각 딱지를 떼게 됐고, 이 사실이 알려져 억지로 졸업만 한 후에 영국 각지를 떠돌며 사기 비슷한 행각을 하다 최종적으로 명함에 “라스코빌리에 백작부인”이라 파고 다니는 엄마가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할 때 아이티 공화국으로 불러 호텔 “트리아농”을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처음엔 호텔이 드라마틱하게 호황을 만나 이게 무슨 대박인가 싶었다. 바로 이 시절이 저 위에서 말한 다니 라페리에르가 쓴 <남쪽에서>의 무대 같은데, 브라운한테는 이 시절이 딱 3년 갔다. 이후 파파독이 정권을 잡고 학정을 시작해 곳곳에서 불법체포와 고문과 학살과 시신 유기가 벌어지는 바람에 여차하면 브라운한테도 목발이라는 기념품이 전달될까 싶어 뉴욕으로 날아가 호텔을 팔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짱구인가, 그걸 사게. 맨손으로 돌아오게 된 브라운은 네덜란드 왕립 증기선 회사의 화물선인 메데이아 호에서 1948년에 미국의 대통령선거 후보자였던 윌리엄 에이블 스미스 씨 부부와, 인도와 버마전선에서 대 일본 밀림 게릴라 전을 지휘했다고 주장하는 H.J. 존스 자칭 소령과 동승한다.

  순박한 시인이나 지방대학 총장 스타일의 스미스 씨 부부는 아이티의 사회복지부 장관 닥터 필리포의 초청을 받아 포르토프랭스에 채식주의 기념관을 짓는 등 채식주의 활동을 모색하기 위한 방문길이었다. 소설에서도 극히 드문 인자한 미국인 할아버지인 스미스 씨도 지금 말하기는 그렇지만 확실한 코미디언이다. 마음 좋고 선한 코미디언. 그는 당연히 아이티에서 하는 모든 일이 생각과 어긋나는 경험을 당할 팔자라서, 결국 일을 진척시키기도 전에 담당 장관만 거액의 부당 이익이 생기는 방향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좌절해 국경을 면한 도미니카로 가버린다.

  존스 소령은 ‘나’ 브라운과 비슷한 성향의 사기꾼이거나 적어도 사기꾼으로 보인다. 이이는 손보다 입과 혀가 앞서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고 자신만만해 결국 브라운에 의해 자기 덧에 걸려버려 어처구니없게도 과거 버마에서 경험한 게릴라전을 아이티에서 재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버마 밀림은 바닥이 보들보들한 진흙이기라도 하지 아이티는 거의 산악 지형이라 존스 자칭 소령이 가지고 있는 평발로는 그리 쉽지 않을 걸?

  여기에 한 가지 더 흥미진진한 대중소설의 MSG, 사랑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우리의 주인공 브라운은 남미 어떤 나라의 대사 부인, 독일 출신인 마르타와 사랑에 빠진다. 대사 부인과? 그렇다. 사랑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를 돋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하고 유난히 재미있는 것이 불륜. 맞지? 수도 포르토프랭스 곳곳에 시퍼런 눈을 검정색 선글래스 뒤에 숨긴 채 도사리고 있는 통통 마쿠트를 피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설마 그곳에서 연애 행각을 벌일 것이라 생각지도 못하는 컬럼버스 동상 앞에 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서 질펀한 몸의 유희를 벌이는 남녀. 근데 소설 속에서 연애 이야기는 뭐라? 맞다. 이별 이야기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란 거 보셨어? 이 책에서는? 흐흐,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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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막간극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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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Viva 오닐! 더 이상 드라마틱할 수 없는 끝장의 신파가 이렇게 멋있어도 괜찮은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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