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들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4
구젤 야히나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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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1977년 유월 초하루에 모스크바 남서쪽 서 시베리아 초입의 타타르 자치공화국 수도 카잔에서 엔지니어 아버지 샤밀 야힌과 의사 어머니의 딸로 태어났다. 당연히 타타르어를 사용했고 탁아소에 다니면서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데뷔작 <줄레이카>는 타타르 사람이었던 할머니의 삶을 모델로 쓴 작품이었다. 1930년 초에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 강제적으로 집행한 이주 정책에 의하여 할머니는 유럽권 소비에트 지역이었던 타타르에서 시베리아로 이주해 모진 고생을 한 후 16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주 정책을 따르지 않은 죄목으로 처형을 당했고. 조부모의 내력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나의 아이들>을 읽으며 ①작가 야히나를 독일계 소비에트 혈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라는 것, ②작품의 뒷부분에 나오는 강제 이주 정책은 작가의 조부모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허구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야히나는 데뷔작 <줄레이카>에 이어 두번째 작품으로 <나의 아이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도 할머니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탄생하기 쉽지 않았을 듯하다. 할머니가 시베리아에 가서 생활할 당시 그곳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일종의) 유배자들과 깊은 우의를 맺어 <나의 아이들>의 등장인물인 독일계 소련인들의 사정을 손녀에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나덴탈’이라 명명한, 볼가강 뒤쪽 스텝 지역에 둘러싸인 작은 우주의 중심인 가상의 독일인 집단 거주촌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위 사항은 위키피디아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쓴 것이다. 정확한 자료가 아니다.


  카스피해의 북쪽으로 유입하는 볼가강변의 광활한 스텝지역에는 몽골족의 후예인 칼마크인들이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땅의 지질이 농업에 적합하다는 영국인의 보고서를 읽은 예카테리나 여제는 칼마크인들을 집중 징발하는 등의 교묘한 방법으로 유목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하고 빈 자리에 코사크 사람을 보내 농사를 짓게 한다. 그러나 중서유럽의 농지에 비해 현격하게 생산성이 떨어지고, 때마침 독일에서는 30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빈농이 대폭 증가했던 형편이어서 주로 독일로부터 많은 수의 농업 이민을 받아들이게 된다. 베스트팔렌, 작센, 티롤, 뷔르템베르크, 알자스, 로렌, 바덴, 헤센 등 각지의 독일인들이 최초의 식민지 주민 자격으로 배를 타고 볼가강변 크론시타트에 도착했을 때, 기골이 장대한 독일여성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제 예카테리나 2세는 발목까지 털이 숭숭 난 하늘 같은 말 위에 앉아 큰 목소리의 표준 독일어로 동족에게 외쳤다.

  “나의 아이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러시아의 아들 딸들이다! 우리의 든든한 날개 아래로 오라! 우리가 그대들을 보호하고 아들딸처럼 보살펴주겠노라! 대신 그대들은 새로운 조국에 그 어떤 조국보다 충성하고 복종해야 할 것이다! 거부하는 자는 지금 당장 오던 길로 돌아가라! 썩은 심장과 연약한 손을 가진 자는 원치 않느니!”

  이래서 작품의 제목 “나의 아이들”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외친, 러시아 제국 황제의 아이들 가운데 과거에는 독일인이었으나 이제 러시아에 충성하는/해야 하는 러시아 이민자를 가리킨다.

  그나덴탈에는 독일 각지에서 이민을 온 바람에 별의 별 독일어가 다 섞여 있어, 1910년대 후반 기준으로 통일 독일에서 사용하는 독일 표준어와 많이 다른 이 지방 고유의 사투리가 정착되었다. 이곳에서 낳고 자란 토박이이지만 표준 독일어를 사용하는 학교 교사 야코프 이바노비치 바흐도 러시아어라고는 학교에서 배운 백 개도 되지 않는 단어밖에 알지 못한다고 하니 이들만의 작은 섬을 이루고 살았던 셈이다. 나중에 공산 권력을 쥐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스탈린 입장에서 이 공동체를 탄압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내용도 작품 속에 나온다. 이 탄압은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후 결성한 볼가 독일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해산 장면이며, 이전에도 볼가강변의 독일 이민들은 예카테리나 대제가 약속한 징집 면제 혜택을 취소하고, 1920년대 초 대기근 당시 식량 공급 중단으로 수십만 명이 아사하는 등의 환란 속에 속속 볼가강을 떠나 귀국하거나 새로운 이민지로 향하기도 했다. 이렇게 1918년부터 1938년까지 볼가강변의 독일인 지역을 배경으로 그나덴탈의 학교 교사였던 바흐의 삶을 쓴 작품이 <나의 아이들>이다.


  시냇물(der Bach) 바흐는 젊은 날부터 시에 대한 애정이 커서 노발리스, 프리드리히 실러, 하이네 등을 가르칠 수 있는 독일어 수업을 좋아했으나, 아뿔싸, 비쩍 마른 몸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말도 별로 없는 교사라서 지독하게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매일 아침 여섯 시에 학교 종루에서 종을 울려 그나덴탈의 하루를 여는 것으로 거의 매일 같은 일과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시냇물 선생한테 저녁 식사에 초청하는 편지가 도착한다. 오늘 오후 다섯 시에 볼가강변에 도착하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우도 그림 씨. (독일인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귀에 익숙하다. 바흐, 그림, 바그너, 프롬, 디트리히, 심지어 괴물 ‘코흐’까지. 야히나가 독일계가 아닌 게 분명하다.)

  책에서는 강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 왼쪽엔 절벽에 둘러싸인 산지라 사람 살기에 적당하지 않고, 오른쪽에는 광활하게 흑토로 덮인 농경지와 스텝지역으로 구분하지만, 강의 상류에서 하류로 본 것과 하류에서 상류로 볼 때 헛갈릴 수 있다. 강의 서쪽이 산악지대, 동쪽이 평야지대인 거 같다. 어린 시절 나도 이런 가사의 노래를 줄곧 부르고 했다.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강물 위에 / 스텐카라친 배위에서 노랫소리 드높다 / 돈코사크 무리에서 피어나는 아우성 / 오만할 손 공주로다 / 우리들은 주린다.” 아무래도 민란의 무리들이 숨어 있기엔 벌판보다 산이 좋을 터. 그림 씨는 거의 산 꼭대기 숲 속의 빈터에 거대하고 기다란 통나무 집과 부속건물로 창고, 가건물, 가축 우리, 얼음창고를 짓고 살았다.

  그림 씨한테는 오는 성령강림절에 열일곱 살이 되는 딸 클라라라고 하는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자기가 생각하기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바보라서, 이제 곧 결혼을 시켜야겠는데, 라이히, 즉 독일인에게 시집을 보내려면 뭐를 좀 가르쳐야 할 거 같아, 바흐에게 클라라한테 바보라는 티만 좀 나지 않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클라라는 바흐 생전 처음으로 다 큰 여학생 상대로 개인수업을 하는 학생이 된다. 클라라 그림은 열일곱 해를 사는 동안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단다. 물론 강을 건넌 적이 없다는 의미일 터. 어차피 고립된 지형이라 집 밖에 나가더라도 강만 건너지 않으면 집안의 일꾼 말고는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일찍 아내를 여읜 우도 그림 씨는 마치 독일의 옛이야기에 나오는 완고한 왕처럼 클라라를 산 위의 집에 가두어 두고 세상 모든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던 거였다. 바흐 선생이 이 악한 것 무리에 포함될지 안 될지 모르는 그림 씨의 지시로 20세기도 벌써 훌쩍 흐른 시절에, 선생과 학생 사이에 병풍을 치고 병풍 뒤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다. 클라라는 예의 바르지만 지식적으로는 거의 백지 상태였다. 바흐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클라라보다 상처를 더 잘 받고 더 감수성이 예민한 경우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가을. 그림 씨는 가족 전부 내일 당장 독일로 돌아갈 거라고 통보해버린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바흐. 며칠 후 집 앞에 앉은 바흐의 눈에 클라라가 등장한다. 강을 따라 배로 사라토프로 가서 열차로 모스크바를 거쳐 독일까지 가는 일정이었지만, 사라토프에서 두 번째 정거장에서 내려 아버지한테 탈출해 운 좋게 별 탈 없이 그나덴탈에 도착해 학교 사택까지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바흐의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클라라를 밤새도록 내려다보는 바흐.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이 부시게 예쁜 클라라. 바흐의 눈에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미인이었다. 이윽고 잠이 깨고, 바흐가 묻는다.

  “이제 어쩌죠?”

  클라라가 대답한다.

  “이제 우리, 부부가 아니던가요?”

  이렇게 우리의 시냇물 씨, 바흐 선생은 젊은 클라라와 결혼을 해 볼가강 건너 언덕 위 빈터의 통나무 집에 그들 만의 세상을 만든다. 혁명, 기근, 내전, 살육, 피난, 귀향 등 세상 밖의 모든 세파를 뒤로 한 채. 오래 오래. 물론 세상살이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바흐의 인생도 늘 행복한 건 아닐 수밖에.


  구젤 샤밀레브나 야히나는 카잔 출신의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해서 <나의 아이들> 출간 이전인 2016년에 영화 <선물>의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야히나의 다른 직업이 시나리오, 주로 시각에 호소하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정도로 <나의 아이들>에는 시각적 묘사가 훌륭하다. 한쪽에는 절벽, 다른 쪽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진 경계를 흐르는 거대한 볼가강. 강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과 고난의 이야기.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작품 속에 작지 않은 서사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질 것이고, 사실이 그러하다. 빼어나고, 거대하고, 광활하고, 난폭한 자연 현상과 기막히게 어울러진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 읽어보기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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