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플러 - 가장 진실한 허구, 퍼렇게 빛나는 문장들
존 밴빌 지음, 이수경 옮김 / 이터널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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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밴빌이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발표하고 5년이 지나 1981년에 출간한 책이 <케플러>. 하도 오래 태양을 육안으로 관찰하느라 나중엔 거의 맹인 수준이 된 코페르니쿠스. 16세기 초에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바람에 거의 지옥 구경을 한 뻔했던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말에 케플러 교수가 쓴 <우주의 신비>라는 책을 통해 최초로 공식적인 옹호를 받았다. 그러니 코페르니쿠스를 썼으면 후속작으로 케플러를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듯.

  케플러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리고 점성술사였다. 말을 좀 더듬고 도무지 조리있게 이야기할 줄 몰라 교수로써 인기가 거의 빵점 수준이었으나 당대에 비견할 학자가 없을 정도의 천재였다. 근데 사실 이런 교수들 짜증난다. 좋은 학자인 건 알겠는데 입에서 우물우물 하며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게 강의를 해놓고 학생만 때려잡는 교수. 나도 한 명 이상 알고 있다. 아마 이젠 다들 가셨을 거야. 케플러가 그짝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보헤미아에서 제국 수학자로 일하기 전까지 도무지 수입이 변변치 않아 점성술, 즉 별점을 쳐주고 돈을 좀 만들었던 모양이다. 책에 나오기를 당시 달력에는 별점을 쳐 해당 월에 벌이질 수 있는 일을 써 놓기도 했던 모양이다. 한 해는 케플러가 그것을 맡아 예를 들어 1월 백송엔 소식을 듣고, 2월 메조에 나비가 되어, 3월 사쿠라 산보간다. 4월엔 튀르크 인들이 침공을 할 운세라 성을 튼튼히 하고, 5월엔 천연두가 몰려올지니 반드시 손을 씻고 마스크 착용을 게을리하지 말지어다, 이런 메모를 달았다가, 이것들이 덜커덕 들어맞는 바람에 점성술사로의 명성이 드높았다고 한다. 케플러 자신도 점성술, 별점 보는 일이 천문학의 딸이지만 어머니 천문학을 먹여 살린다고 했단다.


  작품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스승인 메스틀린 교수에게 실망해 슈타이어마르크 주의 그라츠에서 하던 수학교사 일을 때려 치우고 바르바라 뮐러의 세번째 남편이자 의붓딸 레기나의 양아버지가 된 3년차 유부남으로 한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코페르니쿠스와 천문학의 쌍벽을 이루었던 덴마크 사람 튀게 브라헤의 조수를 하기 위하여 프라하로 향하는 마차 안 풍경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주목. 튀게 브라헤. 덴마크 사람이지만 먹고 살기 위하여 보헤미아에 거주하며 천문학 공부를 위한 자신만의 천문대 “우라니보르그”를 소유하고 있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와 달리 프톨레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아 지동설이 아니라 천동설을 굳게 믿는 학자이다. 이런 브라헤 선생이 학문의 적수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최초로 공식 옹호한 <우주의 신비>를 쓴 케플러를 고용한 것이다. 브라헤는 성인일까 잡인일까? 당연히 반반이다. 케플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은 누가 봐도 이해가 가고, 하여튼 책에 의하면 직속 조수도 아니고 조수의 조수로 일하게 했다는 점을 들어 하필이면 그를 “고용”해 손아귀에 잡았다 해서 옹졸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자신이 죽은 다음에 후임 제국 수학자로 케플러를 추천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실력을 인정한 학자적 양심을 가진 인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둥글고 매끈한 대머리에 금속으로 만든 인조코를 달고 다니는 튀게 브라헨 선생은 젊은 시절 사건에 휘말려 섣부르게 결투에 나섰다가 코가 달아나는 운명을 가진 이로, 요하네스 케플러가 <우주의 신비>를 출간한 다음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기도 하고, 자기 학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 유럽 각지의 학자들에게 책을 발송했을 때,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는 수준의 짧은 편지를 보낼 뿐이었던 이탈리아의 거만한 갈릴레오와 달리 꽤 길게 쓴 따뜻한 편지를 보내 건투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이이는 자신의 천문대인 우라니보르그를 대대적으로 개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가 후원하기는 하지만 황실 재정집행관인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대인 카스파르 폰 뮐스타인이 정말 집행을 할지, 한다면 얼마나 서두를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유대인의 이름까지 밝히는 건, 앞으로 케플러한테도 마찬가지로 체불 임금 지불 같은 돈이 나가는 일을 그저 글로만 “지불하겠다.”고 확인해주는 증서로 때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요하네스 케플러의 팔자가 앞으로도 그리 편하지 않을 거란 거다. 장인 욥스트 뮐러 씨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알부자로 딸이 두 번에 걸친 결혼에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버리자 평생 혼자 살라고는 할 수 없어서 삼혼으로 그나마 괜찮은 인간을 찾는다고 찾은 것이 케플러였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쉬웠던 쪽이 뮐러 씨였지만 결혼하자마자 안면을 싹 바꾼 장인은 사위 알기를 구변, 즉 개똥으로 알아 늘 시원치 않은 돈벌이 같은 걸로 시비를 걸었다. 자기는 딸한테 적지 않은 돈을 지참금으로 주었다는 게 사위 타박의 근거이기도 했다. 아내 바르바라 역시 아버지를 탁해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고 늘 불평불만을 일삼아, 의붓딸 레기나, 창백할 만큼 흰 얼굴과 은색이 도는 금발, 예쁘지는 않고 야위기까지 했으나 스스로 모든 것을 충족할 수 있는 완성된 존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에게 정을 붙여 살았다. 그러나 처복 없는 남자가 자식 복이 있겠는가? 열일곱 살에 결혼해버린 레기나는 결혼과 동시에 지난 날의 부녀간 정을 싹 무시해버리고 만다. 다행스럽게 바르바라가 남편보다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만, 자기가 일찍 죽자마자 케플러 선생이 화장실에 가서 키득키득 웃을 것임을 벌써 알아버린 아내는 자신의 전재산을 첫번째 남편의 딸 레기나한테 백퍼센트 증여해버리는 유서를 남긴 채였다. 아내 바르바라는 남편이 옆에 있든 없든 사람들에게 늘 무시당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을 뿐임에도. 하지만 믿지 마시라. 존 밴빌은 케플러를 주인공으로 하는 픽션을 쓰고 있는 중이니.


  뭐 대충 이렇다. 작가는 뒤에서 이 책이 막스 카스파어의 전기 <케플러>와 욘 드라이어의 전기 <튀코 브라헤>를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어 작품 가운데 주요 사건은 모두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깝다고, 아니면 적어도 틀린 내용은 자기 탓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설이라는 픽션이라는 걸 읽는 내내 염두에 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전기傳記를 좋아하지 않아 이런 류는 <닥터 코페르니쿠스> 한 편으로 충분했던 거 같다. 쉽게 얘기해서 <케플러>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건 내 취향에 국한해 드리는 말씀이오니 다른 분께서는 아무쪼록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시기를 앙망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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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4-05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주 삽질
월요일: 에마뉘엘 보브, <나의 친구들>
화요일: 구젤 야히나, <나의 아이들>
목요일: 왕팅팅, 스류, <재∙봉 – 고할머니편>
금요일: 바이센융, <서자孼子>

포스트잇 2024-04-05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케플러를 너무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그렇잖아도 이책 궁금했거든요. 거기에 존 밴빌이라. ...

Falstaff 2024-04-05 16:25   좋아요 0 | URL
저는 밴빌의 <바다>를 좋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독후감 말미에 썼다시피 취향에 맞지 않아서 좀 고전했습니다.

stella.K 2024-04-05 1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 어떤건지 알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봐야겠군요.^^

Falstaff 2024-04-05 16:29   좋아요 2 | URL
˝시퍼렇게 빛나는 문장˝이라고요? 헥...
설마 제가 이렇게 멋있는 말을 하진 않았습죠?

그레이스 2024-04-05 16:35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stella.K 2024-04-05 18:28   좋아요 1 | URL
아, 책소개에 그렇게 나와 있어서요. 앞의 시 자는 제가 붙인거고요. ㅋ

Falstaff 2024-04-05 19:38   좋아요 1 | URL
아휴.. 전 제가 그렇게 쓴 줄 알고 본문을 한 다섯 번 훑었을 겁니다. ㅋㅋㅋㅋ

stella.K 2024-04-05 19:41   좋아요 1 | URL
아유,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ㅠ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04-05 22:25   좋아요 1 | URL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