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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나 1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73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지리아 출신의 재원. 사실은 재수 없는 인간. 나이지리아에서 어쨌든 1990년대 후반 또는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집 따님이지, 나이지리아 슈카 대학, 드렉셀 대학,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 존스 홉킨스 대학, 예일 대학 등을 두루 섭렵하고, 섭렵한 만큼 의약학, 언론정보학, 정치학, 문예 창작, 아프리카 학 등을 공부했으며, 발표한 소설을 읽고 감격 먹은 미국의 평론가들로부터 미래를 이끌 젊은 작가 20인으로 뽑히기도 한데다가, 예쁜 얼굴에, 오동통하지만 보기 좋은 신체까지, 좋은 것들은 몽땅 갖춘 이. 우린 이런 사람들은 가끔 재수 없는 남자 또는 여자, 이를 다 합친 개념으로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딱 보면 그림이 그려지실 것.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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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은 뽀샵을 해서 원래보다 밝게 나온 거 같다
나이지리아 작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무래도 아프리카 삼부작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을 쓴 치누아 아체베. 그의 조국에서는 아디치에를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이라고 할 정도란다. 그래서 그런가, 유심히 읽어보면 이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와 주위에서 작품을 끌어가는 인물들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끝 장면에서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해버리는 오콩고와 같이 이보족族 출신이기도 하다. 아체베는 조국이 영국 식민지 치하에서 어떻게 투쟁했고 스러져갔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그의 ‘21세기의 딸’은 어쨌든 독립을 쟁취한 나이지리아 사회의 전반적인 부패와, 서구를 향한 열망과, 영·미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 흑인으로 사는 것과, 다시 귀국하여 중산층 이상의 계급으로 편입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의 주인공 이페멜루는 1960년에 독립을 하고도 신생국이 거의 다 그렇듯 일정기간 (특히 군사정권 기간 중) 거치기 마련인 경제, 문화적으로 반식민半植民 시절의 막바지에 똑똑한, 그리고 나름대로 보통의 시민들보다 여유가 있던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이 흔히 그랬듯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중등학교 시절부터 연애를 해온 첫사랑 오빈제를 내버려두고. 대한민국도 기억한다. 부잣집 똑똑한 도련님이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더라도 접시 닦아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1960년, 70년대를. 제삼세계 국가에서 ‘좀 사는’ 정도로는 미국에선 생활도 못하는 수준. 이페멜루는 두 가지 핸디캡을 더 견뎌야 했으니, 나이지리아에 살 때는 조금도 실감 또는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이 흑인종이란 사실과, 여성이라는 젠더. 이거 참. 미국 안에서는 ‘흑인-미국인’과 ‘흑인-비미국인’이라는 간극도 있단다.
두 권으로 된 작품의 1권(1부와 2부)은 이페멜루가 뽀글뽀글한 아프리카인 특유의 머리를 땋기 위해 미장원에 들러 무려 여섯 시간 동안 머리를 하면서, 중등학교와 나이지리아의 대학에 다니면서 오빈제와 사랑을 하고, 첫 경험을 하고, 75%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떠나고, 미국에서 아프리카 출신 비미국인으로 살고, 나머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유사매매춘을 겪고, 유사매매춘을 했다는 절망으로 첫사랑 오빈제와 결별을 하고, 다른 사랑을 만나고,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미국에서 흑인-비미국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여 유명인사가 되고, 성공적인 블로그로 인해 돈도 무척 벌고, 나이지리아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그러기 위해 남자와 이별을 하는 걸 회상하는 걸로 꽉 메워져있다.
2권에는, 이페멜루가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첫사랑 오빈제가 교수 엄마가 학회 참석하는 걸 조수 명분으로 함께 런던에 갔다가 불법체류를 하다 위장결혼의 순간 체포되어 추방을 당해, 다시 나이지리아로 와서 오히려 부패한 정부와 ‘끈 대기’에 성공해 부동산 재벌이 되는 이야기인 3부, 반흑인 오바마와 흑인 미셸 여사가 대통령 후보로 나와 결국 당선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유색인종들의 모습과, 드디어 나이지리아로 돌아온 이페멜루의 정착과정, 그리고 이페멜루-오빈제의 재회를 그려낸다. 오빈제는 그동안 어여쁜 아내 코시와의 사이에서 역시 어여쁜 딸 부치를 둔 유부남으로 변신했고, 이페멜루 역시 블로그를 통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름을 알린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가 됐는데, 과연 어떤 결말이 나올까. 이들 사이에 나이지리아 특유의 변형·고착된 기독교적 가치관이 마구 섞이는데.
어떤 결말인지는 절대 알려드리지 않을 것이고,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평생 온전한 극동아시아 황인종이자 한 번에 열흘 이상 아메리카의 호텔방에서 고단한 머리를 뉘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기회가 확실하게 없을 내게, 길고 길게 이어지는 흑인과 흑백 혼혈과 유색 미국인, 유색 비미국인 등등 복잡하기 그지없는 피부색 타령은, 나이지리아에서 살던 소년시대 당시의 작중 주인공들인 이페멜루와 오빈제처럼, 이해는 가되 실감까지는 나지 않았다는 거. 근데 피부색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묘사의 파도에 둥둥 떠다녔다는 거. 2017년 3월 허핑턴 포스트에 나온 바와 같이, 페미니스트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트랜스젠더의 성적 정체성에 대하여 비판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의견을 낸 건 자신이 트랜스젠더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듯이, 나도 미국에 오래 살았던 적이 있는 흑인이 한 번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에 조금 질렸단 핑계를 대야할 거 같다. 반면에 1990년대 후반의 나이지리아, 특별히 군사정권 치하에 있는 그들의 조국 안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는, 나도 직접 겪어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이겠다.
아디치에가 책 속에서 이페멜루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것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백인 중심사회인 미국 문화계에서는 영어로 작품을 쓰는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시민권자인 아디치에가 인종간 차별을 강조한 작품을, 그들이 진심으로 좋게 생각했든 아니든 관계없이,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을 수도 있다. 즉, 조금 삐딱하게 말하자면, 역 어드벤티지를 받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심정.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아체베의 ‘21세기의 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