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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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친한 두 여자의 유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우정을 맺기부터 60년 후 결별에 이르기까지를 그린 장편소설. 총 4부로 되어 있으며 2011년 첫 작품 <나의 눈부신 친구> 이후 1~2년 터울을 두고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발표했다.

 

 


 다 합해서 2,300 쪽에 이르는 길고 긴 소설. 이 4부작을 읽기 위해 만 9일이 필요했고, 9일 가운데 이틀은 노느라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음으로 사실은 7일만을 독서하는데 썼으며, 과하게 집중한 때문인지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했음에도 오후 여섯시 이후가 되면 눈이 침침해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은 책. 그러니 참으로 행복한 7일이었다. 낮엔 책 읽고 밤엔 쐬주 마시고, 아침엔 바가지 긁히고. “나하고 얼∼마나 살기 싫으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빼고 만날 술이야, 술이! 내가 지겨워서 살지를 못해, 못살아!” 아, 행복한 나날들이여!
 위에서 말한 2,300 쪽은 원고지 2,300 쪽이 아니라 신국판 판형의 소설책 2,300 쪽을 말하는 것. 원고지 2,300 쪽이라도 출판사만 잘 만나면 두 권짜리 장편소설로 불릴 텐데. 하긴 누구라도 자신의 혼자의 평생만 회상하면서 책을 쓴다 해도 장편소설 한 권은 나올 만한데 화자 엘레나와 화자의 평생 친구 릴라, 두 명의 일생과 둘을 둘러싼 이웃, 가족, 남자들, 그들과의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까지 등장시키고 그들 모두의 대략적인 인생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이런 분량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1부 독후감에서도 말했듯이 엘레나와 릴라, 이 두 명의 똑똑한 친구들은 평생에 걸쳐서 서로 상반된 성격이지만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대단한 독서량을 지닌 것으로 등장한다. 머리 좋고 책을 많이 읽은 것, 나폴리 변두리 빈촌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고, 한 남자를 시간 차이를 두고 사랑해 그의 아이를 낳거나, 그의 아이를 낳았다고 착각하는 것, 그 남자와의 관계가 혼인 상태에서 벌어진 불륜이라는 것이 이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며, 나머지 모든 것에서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엘레나는 초등학교 담임교사인 올리비에로 선생의 강권 비슷한 압력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순서에 입각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지만, 엘레나보다 훨씬 더 우수한 릴라는 부모의 완강한 반대와 여성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구두수선과 구두제작 일에 종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고 획기적인 구두를 디자인 해 오빠를 비롯한 가족을 부유하게 만들기도 하는 번뜩이는 천재. 그래, 내 표현으로는 릴라를 두고 번뜩이는 천재 말고는 달리 표현하기 힘들다.
 이 번뜩이는 천재가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 4권의 604쪽에 이르러 엘레나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평생 품었던 진짜 마음을 이야기하기에 이른다.
 “인생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어디에 쓰여 있는데?”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 대사가,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자질을 가진 책의 진정한 주인공 릴라가 숱한 시도와 도전, 학습과 모진 시련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거진 다 살아낸 다음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에 깊게 동의했다. 글 속에서도 나폴리를 무대로 한 소설을 집중적으로 써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엘레나와는 달리 엘레나에게 계속적인 자극을 주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세 딸을 돌보아줌으로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주기도 했으나, 한 순간도 쉼 없이 긴장하게 만들고 틈이 날 때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직선적인 비난으로 피곤하게 하는 릴라. 그러나 천생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지역 출신답게 법보다는 폭력과 얼굴을 맞댄 대화와 협박에 친숙하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과의 끊임없는 유대를 배반하지 않고, 무엇보다 감정의 표현에 조금의 가림도 없는 전형적인 남부 이태리 현지인으로 늙어가는 번뜩이는 천재. 그녀가 험하디 험한 생을 살아보니, 인생에 꼭 의미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 화자 엘레나는 책이 끝날 때까지 릴라가 긴 세월을 두고 한 작품을 썼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릴라가 썼기 때문에 자기의 작품을 가볍게 능가하는 획기적이고 훌륭하고 흉내 낼 수 없는 걸작일 것이리라는 불안감에 평상심을 잃어버리기까지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느 날 자기 앞으로 릴라의 글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가 배달되어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겁나는 기다림’을 멈출 수도 없다.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고 해서, 내가 ≪나폴리 4부작≫을 “걸작”이나 “명작”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려고 하는 건 아니다. 195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의 전 이탈리아의 사회상과 정치, 문화의 후진성을 샅샅이 그려내고 있고, 동시에 당시 젊은이들의 (순진하기도 했던)사랑과, 불륜과, 성추행과, 무제한적인 폭력과, 사회운동과 불운한 환경 등을 충분히 감상하게 해줌에도. 그래서 역시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나폴리 4부작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작가의 말대로 그건 독자가 읽는 방법이 언제나 옳다는 것으로 귀결한다. 그래서 책 외피를 벗겨내면 표지의 속지에 각 매체와 평론가, 작가들의 다양한 소감이 적혀있는 것처럼 사회소설로 볼 수도 있고, 페미니즘 소설로 볼 수도 있고, 그냥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 성장소설로 본다면 그냥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 이탈리아 변두리에서 전국구 스타로, 무지렁이에서 지식인으로, 짐꾼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벽돌공에서 공산주의 혁명가로 성장하는 성장소설로 볼 수도 있다는 의미.
 내가 여태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갈 인물 하나를 숨기고 있었다. 큰 키에 마지막 페이지 바로 전까지는 늘씬한 몸매를 지닌 밝은 갈색 머리의 기막힌 지성과 외모의 소유자. 이 빌어먹을 작자의 카사노바 행위를 좇아가는 것도 재미있어서, 앞 문단에서 말한 무거운 주제 말고, 니노란 이름의 놈팡이를 미워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이런 다양한 의미에서 재미있는 책.
 소설이 소설 같으려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을 맡는 것이 좋겠다. 이 책에서도 두 명의 주인공 릴라와 엘레나는 대단한 학습능력을 지닌데다가 노력까지 보탤 줄 아는 수퍼 우먼. 이들이 공통점으로 증오하는 동네 악당 솔라라 형제들은 막강한 재력에 뛰어나고 잔인한 폭력성과 기업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라토레 집안의 남자들은 훌륭한 외모에 하나같이 성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이들의 유혹에 무릎 꿇지 않은 여자들이 별로 없고, 사라토레 가문은 높은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지위로 가문의 이름 하나만 대는 것으로 거의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러나, 이런 인간들이 과하게 많으면, 소설이 너무 소설 같잖아?
 말하기 참 힘든데,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비록 명작이나 걸작으로 꼽히기엔 역부족이지만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완전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재미있지만 좀 과하게 평가된 작품 아닌가 싶다. 이토록 세계적으로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니라는 말씀. 21세기 들어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 오션이 있는데, 그게 뭔고 하니,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거. 앞으로도 다양한 이탈리아 작품의 소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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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1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점안액 두 개를 눈알에 투입하면서 책을 읽으시는 열혈 독서가 폴스타프 님! 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소개만 읽으면 책은 참 재미날 것 같습니다. (만...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칭찬은 많은데 안 땡기는 작품이네요.;; ㅎㅎ)
전 이 책 표지만 보고는 한길사 책인줄 전혀 몰랐어요.
마지막에 한국 출판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블루오션이 이탈리아 문학이라는 데 깊이 동감합니다.

Falstaff 2018-06-15 09:56   좋아요 0 | URL
옙.
저도 이 책을 권하기는 좀 그래요. 일단 재미 쪽에서 별 다섯개 정도의 수준이니까 출판사에서도 4부까지 계속 쓰게 했을 겁니다. 출판계에서도 광고가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무시하잖아요. 암만해도 이 사람들이 힘을 좀 쓴 듯합니다.
원래 독후감엔 블루 오션에 이이의 작품들을 포함시키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거였지만, 공포의 검열 단계에서 빼버렸답니다. ㅋㅋㅋ

양철나무꾼 2018-06-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꾸벅~(__)

주관적인 시점과 객관적인 시점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런 님의 리뷰가 웬만한 책보다 더 재밌습니다.^^
전 재미로 보나 작품성으로 보나 이분보단 켄폴릿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Falstaff 2018-06-15 10:5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리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
켄폴릿이라면 학창시절 스카라 극장에서 본 <바늘 구멍>의 원작자 말씀하시는 거죠? 그당시에 책도 읽은 바 있습니다만 워낙 오래 전이라서요. 한 번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6-15 10:58   좋아요 2 | URL
전 ‘바늘구멍‘은 대기 중 아껴읽으려 하구요.
‘대지의 기둥‘ 3권과 ‘20세기 3부작‘ 6권은 빼어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님께 무언가를 권해드릴 깜냥은 아니지만,
켄폴릿만은 강력 추천합니다~^^

Falstaff 2018-06-15 11:29   좋아요 1 | URL
옙. 고맙습니다.
얼른 가서 찾아보겠습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