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운명 3 창비세계문학 100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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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네이즈 장면을 생략한 전쟁과 평화. 오랜만에 읽은 진짜배기 리얼리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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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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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발자크. 또? 그렇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대박인 걸. 물론 당연히 촌스럽다. 1839년 작품을 지금 시각으로 읽으면 촌스러운 게 자연스럽다. 게다가 무대도 촌이다. 발자크의 문장으로 썼지만 읽으면서 당대에 발자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필휘지를 날리던 알렉상드르 뒤마가 생각날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발자크보다 겨우 세 살 아래인 대 뒤마를 진짜로 연상했다니까. 근데 역시 발자크인 건, 상황은 뒤마처럼 긴박하게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줄달음을 치건만, 클라이맥스 바로 앞, 여기서까지 특정인의 직업이 어떻고, 생긴 건 또 어떻고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데 이이의 온실에 가면 어떻고 저떤 화초가 있어 그게 원산지 어디서 수입한 거고, 아이고, 아주 턱이 뚝 떨어진다. 웃기겠지? 정말 그렇다. 마음 같으면 그냥 후딱 넘어가고 싶지만 언제 또 결말을 품고 있는 복선 끄트머리라도 나올지 몰라 바득바득 읽고 있으면 실실 새는 웃음, 물론 헛웃음이지만 그걸 멈추지 못한다니까.

  발자크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명문가 출신으로서 파리에 상경해서 파멸하는 가련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니라 빅튀르니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명문가 자제가 말 그대로 “죽다가 깨나는 이야기”다. 발자크는 계속해서 멸망의 원인을 젊은이가 “도박에 의해, 빛나려는 욕망 때문이거나 파리 생활에 현혹당해서, 재산을 증식하려는 시도로 인해서,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랑에 의한 파멸”이라고 미끼를 던지기도 한다. 서문을 읽고 혹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요소가 듬뿍 들었으니 이걸 어째?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돈과 사랑, 특히 불륜이거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주인공 데그리뇽 백작이 지방 출신 젊은이의 다른 유형인 라스티냑의 반대형이며, 여기서 라스티냑은 <고리오 영감>을 비롯해서 <인생의 새출발>, <12인당 이야기>, <루이 랑베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라스티냐크를 말하는데, 능란하고 대담한 라스티냑은 데그리뇽 백작이 패배하는 곳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분명히 그랬지만, 그는 그냥 주인공의 파리 생활에서 엑스트라 급으로 몇 장면에 스치듯 나오고 만다. 워낙 많은 작품을 쓰다 보니, 발자크 역시 사람인지라, 자기가 앞에서 한 이야기를 가끔 잊거나, 헛갈리기도 한다. 독자들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서문에 큰 의의를 두지 말자.


  작품의 서두는 프랑스에서 가장 빈한한 현청소재지 중 한 곳의 도심 길모퉁이 집, “데그리뇽 저택”이라 관습적으로 부르는 집에서 시작한다. 이 저택의 주인의 정식 이름은 샤를르-마리-빅토르-앙주 카롤. 정통 프랑크 족으로 1,300여년 전 북쪽에서 내려와 강력한 골 족을 쳐부수고 봉건제를 확립한 영광스러운 카롤 가문의 후손이다. 그렇다니까. 유럽의 귀족들은 원래부터 사병을 이끌고 여기저기 약탈을 하고 다니던 비적 두목 출신이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게 대를 이어 몇 백 년을 지나다보니 이제 자손들에게 조금씩 공맹의 도를 가르치고, 별 희한한 예절을 만들어 그것을 준수하게 하니 멋있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동서양이 다 그렇다. 이 명망 높은 카롤 가문의 노 귀족을 사람들은 데그리뇽 후작으로 불렀다. 하지만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이어서, 역대 프랑스 왕가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던, 심지어 공작으로 승격을 권유하는 왕의 호의를 싹 무시하고 후작으로 남았던 대단한 가문도 1789년 대혁명을 만나 거의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다. 영지의 대부분을 유실해서 이제 연수입이 겨우 9천프랑 이하로 격감을 해 원래 사용했으나 혁명의 와중에 모든 가구를 약탈당한 성chateau을 유지할 수 없어 포기한 채 청 소재지의 자기집이었던 저택을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넬이 마지막 남은 루이 금화 5백 루이로 마련해주어 들어와 살고 있었다.

  1802년에 후작은 누아스트르 남작의 딸과 혼인해 아들을 낳았으나 예쁘고 어린 아내가 출산 중에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때 미모의 누이동생 마리 아르망드 클레르 데그리뇽 아가씨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이후에 이 아이, 그러니까 데그리뇽 양의 조카 때문에 어여쁜 아가씨는 파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살다가 죽을 운명으로 결정이 나버리게 된다. 어여쁘고 기품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아르망드도 즉각적으로 자기 팔자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따르기로 했는데,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언감생심,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낮은 신분의 은행가 뒤 크루아지에 씨가 아르망드에게 청혼했으니 이게 통할 일인가? 청혼 자체를 대단한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여긴 후작과 데그리뇽 아가씨는 그때는 몰랐다. 냉혹한 거절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을 대표하게 될 밴댕이 소갈딱지 뒤 크루아지에 씨를 두고두고 스무 해가 넘을 때까지 복수심을 키우게 될 지는. 이이가 품은 극한의 복수심으로 작품은 놀랄만한 출력을 지닌 엔진을 달게 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뒤 크루아지에의 복수혈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데그리뇽 저택은 당연히 현청소재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다. 다른 한 곳도 있다. 데그리뇽 양에게 청혼했다가 미역국 먹은 뒤 은행장이 된 크루아지에의 응접실. 후작 저택의 살롱은 혁명 전부터 귀족이었던 가문 대대로 명망가의 자존심과 자부심과 명예와 예법 등의 이젠 세월이 바뀌어 전혀 돈 안 되는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인간들의 모임. 하도 고릿한 냄새가 진동해 이들이 모인 살롱을, 자유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 등 진보 좌파적 입장을 유지한 부르주아, 웃기지? 진보 좌파 부르주아들이라니, 하여간 그들이 뒤 크루아지에의 살롱에서, 앙시앵레짐의 혜택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인간들이 모이는 데그리뇽 저택의 살롱을 “골동품 진열실”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이게 도시 사람들 입에도 짝짝 들러붙었던 거다. 그러니까 <골동품 진열실>은 19세기에도 여전히 명망가라고 폼잡으려는 철없는 귀족 나리들을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근데 오노레 드 발자크 자신도 평생 왕정을 지지하던 보수 우파 출신이거든. 그가 자신처럼 왕정에 충성하는 오랜 귀족들의 모임을 낮춰 부른 말로 작품의 제목으로 했다고? 그렇다. 발자크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였을 지 몰라도 과학의 세기라고 하는 19세기에 아직도 정처를 모르고 옛 시절의 구태에 머물고 있는 귀족 집단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거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구 귀족과 신규 부르주아의 다툼에서 일방적으로 옛 귀족의 손을 들어주지만, 결코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승리인 듯하지만 결국 흐름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크, 더 얘기했다가는 영낙없이… 스포일러?


  빅튀르니앵은 말했다시피 고모인 아르망드가 업어서 키운다. 낳자마자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 자라면서 어땠겠어? 아버지 후작은 후작 가오가 있지 아들 키우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어 그저 뒷짐 짚고 동생 하는 대로 맡겨 놓았을 것이 뻔하고, 작품에서 가장 교훈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작가가 직접 언급한 고모는 지성이 빠진 가장 순결한 덕성이 아이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면서 희극적으로 이야기한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응석받이 자체로 키웠다는 뜻이다. 매사에 오냐, 오냐만 했지, 직접 낳은 엄마라면 따끔하게 혼을 낼 일조차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감싸는 데만 전력을 기울인 거다. 이렇게 자라는 빅튀르니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자가 하나 있었으니, 이 가문에 앙심을 품고 늘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뒤 크루아지에. 그는 젊은 귀족이 받고 있는 교육의 오류 속에서 가혹한 복수의 가능성을 감지해, 어린 양을 어미의 젖 속에 빠트려 익사시킬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빅튀르니앵은 점점 자라며 우월성의 신조를 뒤집어쓰게 된다. 기막힌 미모로 태어난 데다가 키는 중키라 해도 매우 근육질의 단단한 몸에 놀라운 운동능력을 갖게 됐다. 사실 아름다운 외모라는 건 재산과 재능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귀족신분의 아름다운 청년, 그리고 열렬한 정신,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과 뛰어난 기억력은, 그러나, 왕자처럼 이기적이고 중세의 혈기왕성한 추기경처럼 고집불통이며 무례하고 방약무인의 독선적인 성격으로 진화하면서 드디어 18세가 되어 지방 사교계에 데뷔했다.

  난리가 났다. 사교계의 귀족, 부르주아 아가씨들과 숱한 배우, 가수, 그리고 유부녀들도. 빅튀르니앵은 예전엔 자기 가문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남의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짐승이나 사냥을 해, 가문의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렐로 하여금 돈으로 해결하게 하더니, 처녀들한테 분별없이 결혼 약속을 하고 속고쟁이를 벗기는 바람에 신세를 망친 아가씨들과 가족이 난리를 쳐서 역시 쉐넬이 한 번 더 돈으로 막았으며, 노름판에서 함부로 발행한 약속어음이라는 노름빚도 대신 갚아주는 등, 18세부터 21세까지 쉐렐은 아버지와 고모 모르게 거의 8만 프랑의 자기 돈을 지출해야 했다.

  이러다가 1822년 10월이 오고, 현의 한 기사가 골동품 진열실에서 데그리뇽 후작과 면담을 청해, 이제 아들 데그리뇽 백작이 스무 살이 됐으니 파리로 올려 보내 궁에서 일자리를 얻게 해야 한다고 진언한다. 후작이 행각하기에 그 말이 마땅한지라 친척이기도 한 파리의 대 귀족 드 르농쿠르 공작에게 전할 서신을 써서 아들에게 주고 파리로 보낸다. 이때 쉐넬은 자신의 시골 소유지를 담보로 해 10만 프랑을 마련해서 고모 아르망드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빅튀르니앵의 초기 비용으로 1만 프랑을 주고, 한 달에 가용 용돈으로 2천 프랑을 줄 수 있도록 파리에 있는 공증인 동창에게 전권을 주라고 하면서. 하지만, 쉐넬의 동창생은 이미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후임 공증인은 빅튀르니앵에게 한 방에 10만 프랑 전부를 전해주는 기가 막힌 일을 해버렸고, 거의 최고 수준의 사치를 시작한 빅튀르니앵은 마구간과 마차를 보관하는 차고가 하나씩, 마차 끄는 말과 승마용 영국 말 한 필씩, 거처를 꾸미는데 5만 프랑, 이런 식으로 펑펑 써 제친다. 또 젊디 젊어 리비도가 풍풍 솟구치는 청년이 연애를 하지 않으면 말이 되나? 귀족신분에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리하여 열렬한 첫사랑을 시작하니, 상대는 당대 파리에서 예쁘기로 열 번째 안에 든다는 디안느. 이 여인이 바로 드 모프리뇌즈 공작부인이었던 거다. 이렇게 작품은 파란만장한 데그리뇽 백작, 빅튀르니앵의 불꽃 같은 허랑방탕과 급격한 몰락을 향해 급발진을 시작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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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02 05: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이서아, 《어린 심장 훈련》
화요일.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목요일.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쿠코츠키의 경우>
금요일. 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단발머리 2024-08-02 16:06   좋아요 2 | URL
아는 작품(읽은 작품) 다뤄주시는 금요일 기다립니다!

그레이스 2024-08-03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단락!
턱이 뚝 떨어지게 하는 발자크의 묘사들 ㅋ 완전공감합니다. ㅎㅎ

Falstaff 2024-08-04 06:13   좋아요 2 | URL
ㅎㅎㅎ 하여튼 발자크, 못 말리겠더라고요. ㅋㅋㅋㅋ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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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 타킹턴.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니 1919년에 <위대한 앰버슨 가>, 1922년에 <앨리스 애덤스>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당대의 스타 작가였단다. 두 작품 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었다. 그러니 몰랐지. 그래도 조금 이상했다. 유명한 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백 년이 넘어서야 번역했다고? 좀 이상하다. 하긴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품이 오래 간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래도 미국 현대 문학사상 퓰리처 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사람은 부스 타킹턴, 윌리엄 포크너, 존 업다이크,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콜슨 화이트헤드, 이렇게 네 명밖에 안 되고, 21세기엔 화이트헤드가 유일한 인물일 정도이니 가문의 영광이긴 하겠다.

  그러나, 부스 타킹턴은 조선이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도 하기 전인 1869년에 출생한 사람이다. 벨에포크 시대를 젊은 시절에 향유했고,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나이가 많이 들어 눈물을 머금고 참전하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세계의 공장이자 위대한 미국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2차 세계대전까지 승전해 전세계의 패권을 잡는 장면까지 보고 숨이 넘어가 좋은 시절은 다 보낸 셈이다. 취소. 타킹턴은 1920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기 시작해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했기 때문에 다 “보고” 간 건 아니고 주로 듣다가 갔을 거 같다. 원래 제목은 <앨리스 애덤스>이지만 책 좀 더 팔아볼까 싶어서 그랬는지 우리말 제목을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 붙인 책을 읽어보니까, 딱 그 시절, 20년대 전형적인 미국식 소설이라서 또한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을 맺어 독자의 헛심을 푹 빼놓고 말았다. 갈등의 순간까지 흥미진진했다가, 난데없는 절정을 거쳐 “미국식 결말” 즉 한 큐에 급커브를 도는 해피엔드라는 말이다. 읽는 도중 내내 잘만 하면 20년대식 프랭크 노리스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말씀이지. 물론 외모는 미국 최고 미남의 소설가 노리스하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는 애덤스 부부의 맏딸이다. 두루두루 예쁜 아가씨. 집에서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평인데, 무슨 말씀인고 하니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따님이 도시 최고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과 같은 수준의 사교를 하고 싶어, 부모가 진력을 다 하지만 가랑이가 찢어져 마땅하게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메꾸기 위해 안달복달을 하다보니 그만 과하게 오버하게 되고, 그게 또래들 눈에 확실하게 보였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하도 자주 그러는 바람에 쉬운 말로, 내 놨다, 이거다. 그저 외모만 그럭저럭 예쁜 아이라고 할까?

  아버지 버질 애덤스 씨는 램브 컴퍼니를 근 삼십 년 가까이 나름대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Lamb Company”를 “램브 컴퍼니”라고 번역했다. 회사와 사주 J.A. 램 씨는 버질의 능력과 업무에 만족하여 입사 2년차에 급여를 올려주고 이후 2년마다 꼬박꼬박 다시 올려주었으며 지금은 몇 년째 잡화부서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임원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이며, 스스로는 “자기한테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하여 임원자리를 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램 씨 후계자인 여러 아들들은 “나이가 들며 업무능력이 떨어져 해고시키는 것이 타당하지만 아버지의 평생직장 신념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애덤스 가족이 살고 있는 작은 목재주택은 지은지 15년 남짓 되는데, 애초부터 집장사들이 허술하게 지은 탓에 곳곳에서 수리가 필요하다고, 즉 당장 돈 좀 달라고 입을 벌리거나 삐거덕대고 있지만 용케 잘 견디고 있다. 가구는 주로 애덤스 부인의 어머니가 쓰던 것과 결혼할 때 들어온 선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눈에 잘 띄는 벽난로 선반 위에는 앨리스가 하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램브 컴퍼니의 부서 사람들한테 선물받은 나이아가라 폭포 현수교의 강판 인쇄를 떼고 거대한 콜로세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아버지는 이를 속으로 매우 서운해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나이아가라 현수교 강판 인쇄나 콜로세움 흑백 사진이나 오십보 백보였다나? 애덤스 가족의 문화적 수준을 타킹턴 씨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애덤스 가족은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앨리스를 지원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말썽꾸러기 아들은 아예 빼놓고 이야기하겠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에덤스 씨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마 약한 뇌졸중 아닌가 싶은 병이 들어 휴직을 하고 집에서 간병인을 고용해 치료 중이다. 사장 J.A. 램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집에 들러 안부를 물으며 요양을 하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급여를 지급했으니, 이만한 사장 있으면, 한 명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두 명만 나와보라 그래. 집의 가장이 이렇게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데 오늘 앨리스의 하루 일정을 보면, ① 도시의 최고 부르주아의 딸인 밀드레드네 집에 가서 오늘 그 애가 주최하는 댄스 파티에서 어떤 옷을 입을 지 확인하고, ② 시내 양품점에 가서 시폰 한 개와 댄스용 구두에 묶을 얇은 리본을 사오는 거였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앨리스가 찾아오는 게 지긋지긋해 그냥 건성으로 응, 응, 대꾸하는 것뿐이고, 앨리스가 오늘 무슨 옷을 입든, 무슨 댄스화를 신든 쳐다보거나 심지어 신경 쓰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을 예정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물론 아직 친구가 아니라 타지에 와서 오늘 처음 시내 젊은이들 사교계에 데뷔하는 아서 러셀은 예외로 하자.

  이런 집의 딸이 길을 나서는데, 어떻게 차려 입었는지 한 번 볼까? 잉글랜드 식으로 옅은 금색 밴드가 둘린 풋사과 색깔 터번을 머리에 쓰고, 황갈색 베일이 달린 모자에, 대단히 현대적으로 단순하게 디자인한 황갈색 코트를 입은 채, 전신거울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매무새를 살핀 후, 테두리에 섬세한 은빛 무늬가 들어간 비어 있는 검은 가죽 명함지갑에 자기의 두 가지 명함 가운데 어느 것을 넣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평범하게 미스 애덤스라고 쓴 명함을 골라 넣고, 산뜻한 흰 장갑을 낀 후, 화룡점정 나온다, 상아 손잡이가 달린 말라카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현관문을 열었다는 거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애덤스 여사의 마음은 찢어진다. 저렇게 아름답고 착하고 참한 딸을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 자기 생각에, 앨리스 혼자서 절친이라고 여기는 밀드레드한테도 따돌림을 받는 거 같고, 램 씨네 세 딸은 대놓고 앨리스가 차리고 다니는 걸 비웃는 것 같아서. 어머니 가슴이 멍들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이때마다 자기네가 밀드레드 네나 램 씨처럼 갑부가 아닌 것을 한탄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한 클릭, 한 클릭 방향을 바꾸어 남편 버질 애덤스 씨한테 바가지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렘브 컴퍼니의 사장 J.A. 램 씨가 지시하여 기술자와 애덤스 씨가 책에서는 ‘풀’이라고 하는데 이게 죽 쒀서 만드는 풀인지, 접착제인지, 공업용 본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풀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이때 완성된 제품을 상업화하지 않고 그냥 기술을 잠재우고 있는 동안 기술자가 죽어 이제 애덤스 씨 혼자 제조 기술을 알고 있게 된 것. 마나님은 애덤스 씨한테 풀 공장을 차리라고, 그래서 사업을 시작해 돈을 왕창 벌어오라는 게 바가지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애덤스 씨 생각엔 그건 어디까지나 램 씨의 지시에 의하여 연구한 결과니까, 램 씨 기술이어서 자기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 비슷하게 어진 성품과 활수한 사업가 J.A. 램 씨를 배반하는 일이라면.

  그러나 딱, 보면 아시겠지? 앨리스를 왕따 시키지 않고 오히려 홀딱 반한 새로운 청년, 하긴 서른 살이면 청년도 아니지만, 아서 러셀은 앨리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애덤스 씨는 결국 마나님 바가지를 견디지 못해 탄탄하고 좋은 회사를 때려 치우고 풀 공장을 차리게 되며, 원래 착한 사람이 한 번 화딱지가 났다 하면 제대로 오지게 나는 법이라 램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애덤스 씨를 파산하게 만들 것임을? 처음엔 아서 러셀이 육촌 누이인 밀드레드의 약혼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잘 생기고 우아하고, 친절해 보이고, 완벽한 데다가, “굉장한 부호” 남자가 약혼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자기 딸하고 열라 데이트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집에 초대해 저녁 한 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신세가 어머니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

  하지만 걱정 마시라. 많은 20년대 미국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엮다가 기꺼이 아름다운 해피엔드를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해봤자 당신 머리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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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8-01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식 결말. 알아둬야겠네요. 참, 제가 뭐 미국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모 아니면 도인 게 많아 선뜻 고르기가 뭐하더군요. 근데 뭔가 이책은 관심이 가네요. 아름다운 해피엔드라니. ㅋ

Falstaff 2024-08-01 19: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미국식 결말이라고 소설만 말하는 거 아니고요, 거 있잖아요, 결말은 전혀 걱정할 필요없는 헐리우드 영화 같은 거요. 이거 완전 헐리우드 판이랍니다.

moonnight 2024-08-01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Falstaff님 글이 재밌긴 한데.. 앨리스 모녀 이야기 읽으면서 속 터질 것 같..ㅠㅠ;;

Falstaff 2024-08-02 05:0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모녀간에 치열한 독자 복장 터뜨리기 대회를 치룹니다. ㅎㅎㅎ
 
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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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소설 셋, 단편 하나를 실은 모음집. 중편 셋은 요즘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장편소설로 치는 분량이며, 옌롄커의 소설적 모태인 바러우 산맥 인근, 허난성 충현崇縣의 비옥하지 않은 농지를 삶의 근거지로 하는 하층 농민 이야기이다. 단편소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은, 옌롄커 소설에서 처음 읽은 듯한, 중국의 북방지역을 무대로 했다. 58년 개띠 작가인 옌롄커의 책은 여섯 권을 읽었는데, <캄캄한 낮, 환한 밤>에서 보듯이 분명히 세계 최대의 도시 가운데 하나인 베이징에서 돈을 벌고, 먹고, 자는 도시인임에도 언제나 농촌을 무대로 하는 작품만 쓴다. 내가 처음 읽은 옌롄커인 <풍아송>에서 주인공 양커가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부교수가 직업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역시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는 결말을 맞는다. 왜 <풍아송> 이야기를 여기서 하느냐 하면, 모옌과 위화 같은 이들의 작품을 처음 읽을 때도 조금은 그랬는데, 특히 옌롄커의 문장과 서술방식이 상당히 낯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똑같이 먹고 살기 힘들고, 가난과 기근이 넘실거려도 우리 작가들한테 보지 못했던 생경함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두번째로 읽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비슷했고. 대개 이쯤이면 특정 작가의 작품을 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어떡하다 몇 권을 더 읽는 일이, 우연히, 생겼고 이 우연을 지나면서 옌롄커의 문법이 이제는 낯설지 않게 되자, 세상에 이런 일이, 그만 마음에 들어버린 거다. 바러우 산맥 근방에서 근근이 명을 이어가는 농투성이들. 간혹 장애나 질병을 갖고 사는 인물들이 주축이 되기도 하는 맨 아랫것들의 질긴 생명. 그걸 이어가려면 어찌 늘 선할 수 있을까? 옌롄커는 이 방면으로 귀신이다, 귀신.


  《연월일 年月日》의 한국어판 서문을 보면, 29년 전인 1990년에 작가는 지독한 허리 통증과 목디스크를 앓았다고 한다. 의자에 앉을 수 없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침대에 누워서 해야 했을 정도였다니 상당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치료하기 위하여 중국 전역을 돌며 용한 의술과 명약을 찾아다녔다는데, 시안西安에서 떨어진 황량한 들판에 옥수수가 가득한 모습을 보았단다. 우리나라와 같거나 비슷한 들판의 옥수수 밭을 생각하지 마시라. 어쩌면 눈 닿는 지평선까지 옥수수 밭이 펼쳐졌을 수 있다. 하여간 황량하지만 넓은 들 가득했을 옥수수 밭은 그러나 텅 비고 조용했었는데, 이때 한 순간 “쾅”하고 작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

  “한 편의 소설이 한 사람과 옥수수 줄기 하나만을 묘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 날 곧바로 의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에 베이징 아파트로 돌아와 <연월일>을 썼다고. 다만 작가가 시안에서 본 옥수수 밭의 풍경을 역시 바러우 산맥 근방으로 옮겨왔다. 아무래도 자기가 낳고 자란 곳이어서 묘사하는데 훨씬 수월할 터이니.


  바러우 산맥 인근에 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닥쳐왔다. 한발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기우제를 올렸다. 제단을 설치하고 공양물 세 접시와 용왕의 형상을 그린, 물이 가득 찬 물 항아리 두 개를 제단에 올린다. 그리고 개 한 마리를 머리가 하늘로 향하게 물 항아리 사이에 묶어놓고, 목이 마른 거 같으면 물을 주고, 배가 고픈 거 같으면 먹을 것도 준다. 꽁꽁 묶인 개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해 해를 향해 미친듯이 울부짖을 수만 있을 뿐이다. 개가 짖는 소리 때문에 겁에 질리거나, 하도 시끄러워 도무지 들어주지 못하게 되면 해가 물러가고 그 빈 자리를 검은 용, 비구름이 대신 채워 주기를 기대한다. 이렇게 짧으면 사흘, 길어도 이레면 충분하리라. 그러나 이번 한발은 얘기가 달랐다. 보름이 지나도 여전히 해는 하늘 가운데에서 위용을 거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번 기우제를 망쳤다고, 하늘도 이 고장을 버린 모양이라고 체념하면서 개를 풀어주고, 바싹 마른 공양물을 내다 버린다. 개는 보름동안 잘 먹고 마셨지만 태양의 직사광선을 받아 눈알이 다 말라 앞을 보지 못한다.

  그래도 날은 가서 어느덧 파종할 때가 왔다. 날에 맞춰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이에 기운을 얻은 마을사람들은 너도나도 몰려나와 북과 꽹과리를 치며 “파종을 합시다, 가을 파종을 합시다!” 외치고 다녔다. 천쯔두의 희곡 <뽕나무벌 이야기>를 보면 중국 시안 지방에서 먹구름을 쫓아낼 때 북과 꽹과리를 치며 “여기는 그냥 지나가고 저 남쪽 마을에 머물러라!” 외친단다. 먹구름은 비를 몰고 다니는 흑룡이니, 북과 꽹과리로 놀라게 해서 쫓아버리는 일. 근데 오랜 가뭄에 시달리는 바러우 산맥 사람들이 먹구름 조금 몰려왔다고 북과 꽹과리를 치고 있으니 이게 될 일이냐는 말이지. 아니다 다를까, 짙은 먹구름은 3일 동안 동네 하늘에 빽빽하게 몰려 있다가, 농민들이 비 오기 전에 얼른 옥수수 종자 파종을 끝내자마자, 그만 시새푸새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름 후, 마을사람들은 지독한 가뭄을 피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피난 행렬은 사나흘 이어졌고, 음력 유월 열아흐레가 되자 주인공 션先 할아버지도 마지막 이주 대열에 끼어 피난길에 나섰으니 이때 일흔두 살이었다. 할아버지는 동쪽으로 40일이나 50일 동안 걸으면 나오는 쉬저우徐州에 도착해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바리반八里半까지 왔을 때 더 이상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기 같은 노인이 계속 걷다가는 쉬저우는커녕 며칠 가지도 못해 객사할 것임을 알아서. 마침 이곳에는 셴 할아버지의 옥수수 밭 1무3분, 260평이 있기도 했다. 자기 밭에 주저앉은 할아버지, 이제 마을을 통틀어, 산맥을 통틀어 일흔둘의 노인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공허와 적막, 그리고 황량한 바람이 가슴에 휙 스쳐 지나갔다.

  옌롄커는 사람 하나와 옥수수 줄기 하나만 등장하는 소설을 쓰려 했다. 근데 성씨가 옌閻, 마을, 거리, 한길이라는 뜻을 가졌으며 천생 설레발꾼의 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 등장인물이 오직 하나. 이게 어디 말이 되나? 그리하여 주인공 셴 할아버지한테 필수불가결한 말상대, 라기보다는 말을 들어줄 대상을 하나 마련했으니 할아버지가 “장님”이라고 이름을 붙인 눈먼 개였다.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인 기우제 제단 위의 바로 그 개. 그렇게 해서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 장님이는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8리 반 떨어진 바리반의 옥수수 밭에 그 중에도 양지바른 땅에 심어놓은 한 줄기의 옥수수 싹에, 직접 그럴 수는 없고 주변을 따라 졸졸졸졸 오줌을 누는 일이었다. 황토만 풀풀 날리는 260평의 밭에 오직 한 포기, 근처에 오줌을 눈 옥수수만 촉촉하게 약간의 물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유였다. 원래 제일 좋은 거름은 오줌이 아니라 인분이지만 가뜩이나 먹는 게 없고 소화기능도 왕창 떨어진 일흔 고개의 할아버지가 똥을 눈들 얼마나 눌까? 할아버지의 땀에 전 적삼은 빨래를 한 지 하도 오래라서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천도 두툼하니 뻣뻣해졌어도 보름만 더 지나고 빨아 그 빤 물을 옥수수 거름으로 쓸 생각이다. 이 와중에 사람의 것보다 훨씬 영양분이 많은 개의 오줌을 앞 못 보는 장님이가 옥수수 뿌리, 수염 말고 뿌리 바로 밑에다 분사하는 바람에 오줌독이 올라 비실비실하는 일까지 생겼으니, 할아버지가 열을 받아 눈먼 장님이 옆구리를 모질게 걷어차기도 했다.

  그러나 비는 안 온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결코 비는 오지 않는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 장님이는 과연 옥수수를 길러낼 수 있을까? 옥수수의 의미는? 바러우 산맥을 둘러싼 허난성 일대의 하층 계급인 농민들의 생존과 생명의 영속이다. 그러니 아무리 환난과 궁상 묘사의 끝판왕인 옌롄커라 할지라도 차마 한 그루 남은 옥수수를 지옥 염천 아래 태워 죽이지는 못하리라는 건 눈치챘다. 다만 방법이 문제지. 물론 극도의 과장으로 결말을 향해 치닫기는 하지만, 또 그러지 않으면 옌롄커가 아니다. 이 황당한 옌롄커 식 문법에 처음엔 지독하게 적응하기가 어렵더니 점점 익숙해져 지금은 부담스러운 친숙함으로 즐겨 읽는 작가가 됐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 그려.


  표제작 <연월일> 말고도 두 중편 <골수>, <천궁도>도 참 환난과 궁상과 가난으로 점철된 것들이지만 내가 읽기에 <연월일>보다 더 흥미로웠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도 독자의 뒤통수 한 방 때리는 단편이다. 별점을 준다면 넷은 많이 아쉽고, 다섯까지 올리기는 거시기하고, 이런 심정이다. 당신이 읽어보고 결정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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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장례식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서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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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리츠카야가 뉴욕에 떴다. 뉴욕의 다 찌그러진 동네 바로 옆에 붙은 건물. 원래는 창고 건물이었으나 동네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초라한 몰골로 찌그러지던 중, 모스크바에 살다가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유럽 각지(특히 이탈리아!)를 떠돈 후 뉴욕까지 흘러 들어온 화가 알릭이 다락 창고를 개조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나마 방과 작업실을 만들고 세 들어 살겠다고, 절차 같은 걸 귀찮아 하는 알릭이 당시엔 내용도 한 번 안 읽은 채 계약서에 서명해 들어와 살게 된 작업실 겸 집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데, 아마 월 4백달러 정액으로 울릭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조건 아니었나 싶다. 세월이 변하고 빈민들이 들끓는 우범지대 옆에 큰 문화센터 비슷한 것이 생기더니 이에 걸맞은 다른 시설도 따라 들어와 이젠 제법 유동인구가 많은 잘 나가는 상업지대의 모습을 갖춘 거였다. 그리하여 아일랜드 출신의 건물주는 이 정도의 부동산이라면 아무리 디스카운트 해서 평가를 하더라도 월세 4천달러 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이해하지만 무한정, 집세를 내지 않는 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임차인을 쫓아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집세라도 꼬박꼬박 내는가 말이지. 그래서 한 너댓 달 내지 않아, 임대인 입장에서 속으로는 웃으며 그러나 겉으로는 화난 얼굴을 하고 방을 빼 달라고 하면 분명히 울릭은 아닌데, 울릭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방금 집세를 낸 영수증을 보라고 디미니 아일랜드인이 꼭지 가 돌겠어, 안 돌겠어?

  근데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울릭이 죽어가고 있다. 제목 “행복한 장례식”의 대상이 바로 주인공 울릭이다. 니나의 남편이며,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천천히 진행되는 마비와 근손실이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육체의 거의 모든 근육이 정지한 상태로, 뇌와 시청각과 언어, 그리고 아주 빈약한 소화기와 횡경막을 지탱하는 근육이 이제 마지막으로 서서히 정지하고 있다. 결국 횡경막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호흡을 못해 질식사할 것이란 게 러시아 의사지만 영어에 약해 미국에서 치루는 의사자격시험에 번번히 떨어지는 피마 그루버의 정확한 진단이다.


  독자가 작품을 빨리 이해하려면 주인공 울릭이 죽어가는 집에 대해서 미리 아는 것이 좋다. 어디까지나 울릭과 니나 부부가 살림도 하고 울릭의 그림 작업도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울릭이 여간 발이 넓은 게 아니다. 발만? 오지랖도 같이 넓어서, 일단 뉴욕에 새로 도착해 정착하지 못한 러시아 이민, 밀입국자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한 시절 러시아의 위성국가나 자치국으로 새로 독립한 지역 사람들도 그들만의 민간 치료법을 들고 언제든지 몰려올 수 있으며, 러시아 지역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림을 그렸다거나 카페에서 재즈를 연주하거나,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인디오 음악을 하는 사람들, 아니면 심지어 술집에서 우연히 울릭과 한잔한 기억이 있는 행인 1, 2도 언제든지 집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 그래서 아예 현관이 없다. 얇은 합판으로 칸을 나누어 작은 부엌과 손톱만한 침실을 만들었고, 널찍한 작업실엔 조명 두 개와 창문도 두 개를 냈으며, 없던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어 썼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아무나, 때론 십 수 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때는 한 여름이다. 1991년 경으로 보인다. 나중에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구금당해 벌써 죽임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장면을 보면, 그래, 틀림없이 1991년이 시간적 무대일 것이다. 그해 8월은 여름마다 그랬듯이 백 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뉴욕을 덮친 해이기도 하다. 이 폭염도 당연히 매년 새롭게 경신될 예정이지만.

  불행하게 이 집의 에어컨이 고장났다. 뉴욕은 대서양에 면해서 여름엔 남풍에 실린 바다 습기가 유입되어 장마가 끝난 한반도처럼 습기 높은 무더위가 대기를 짓눌러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즉, 대단한 열기와 극에 달한 습기, 이 두 조건이 러시아 태생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겐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그래서 작품은 “열기가 대단했고 습기는 극에 달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울릭은 당연히 새 에어컨을 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곧 죽을 거 같으니까. 그래도 선한 친구가 있어 책의 중간쯤 에어컨과 실외기를 짊어지고 오는데, 전문가들도 설치를 위해 둘이 작업하건만 잘났다고 혼자 와서 몇 시간 동안 고생고생하며 러시아 식으로 끙끙대다가 설치하지 못한다. 이 불볕더위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지만, 제일 먼저 등장한다. 퉁퉁한 체형의 발렌티나. 예쁘장하게 통통한 얼굴을 가져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받는 여성이다. 모스크바에 살 때 게이 미국인이 와서 친하게 지냈다가 발렌티나의 매혹적인 모습에 넘어가 최초로 여성과 한 번 하게 된 게이의 고향이 뉴욕이었던 것. 발렌티나도 당시에 처녀의 몸을 처음 개방한 것으로, 둘은 가지가지 첫 경험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렌티나의 가족과 친척을 모아 결혼식을 올린다. 먼저 미국인이 뉴욕으로 출발하고, 이제 됐다고, 오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발렌티나가 무턱대고 뉴욕에 와 전화를 걸고,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게이 남편은 캘리포니아로 도망쳐버렸다. 어쨌거나 탈 게이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어엿하고 어여쁘고, 통통한 발렌티나가 며느리라니, 시부모 마음이 흡족했겠지?

  그건 벌써 몇 년 전 이야기고, 이제 발렌티나는 지금은 빈민가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 동네에 살면서 더욱 살이 쪘는데 특히 유방이 그랬다. 발랴는 귀찮아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7월, 8월엔 어쩔 수 없었다. 큰 유방을 풀어놓으면 더위에 가슴 밑이 눌려 살이 짓무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당연히 무료로, 알릭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지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가지고 출연한다. 그걸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제일 먼저 등장한 발랴만 간략하게 언급한다. 다른 이들은 생략한다.


  그리고 사실상의 주인공 이리나. 어린 시절 모스크바에서 서커스 생활을 할 때부터 알릭을 알고 지냈다. 그러다가 제법 대가리가 커지고, 다리 사이에 거뭇한 털이 돋을 즈음, 알릭하고 손잡고 며칠 동안 페테르부르크로 도망갔다. 이때 서커스 연습에 빠졌다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할아버지의 뜻을 어겨 이틀은 석달이 됐고, 이때 한 청소년 소설작가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를 알게 된 알릭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귀싸대기를 날려 사실상 관계는 끝이 났다. 그래도 2년을 더 버텼다. 미국에 도착해 처음에는 낮엔 센트럴 공원에서 서커스에서 주로 하던 묘기 버스킹으로 돈을 벌고, 생각을 바꾸어 밤엔 미국 교육과정을 밟다가, 제법 돈이 생기자 캘리포니아로 넘어간 후 반대로 낮엔 로스쿨을 다니고 밤에 서커스로 돈을 벌어 저작권 전공 변호사가 된다. 이 사이에 다시 동쪽으로 와 결혼도 했고, 딸 마이카(영어로 하면 “티셔츠”)도 낳고 나름 즐겁게 살기도 했는데, 많은 미국 부부가 그랬듯이 짝 갈라져 이혼해버리고 말았다. 돌싱이었을 때 하루는 신문을 보니 알릭이 개인전을 한다기에 LA에서 뉴욕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마이카와 함께 알릭을 보게 됐다. 근데 이상한 자폐형태로 자기 갑옷 속에 박혀 있는 듯, 세상의 모든 어른을 경멸하는 마이카가 알릭하고는, 신기도 하지, 별의 별 장난도 다 치고 말도 쾌활하게, 웃으면서, 때로는 화딱지도 내 가면서 하는 거다. 놀랠 놋자네.

  알릭도 그새 결혼했다. 니나라는 이름의 러시아에서 온 백치 같은 여성. 이리나가 보기에는 거의 지적장애 가깝게 어리석고, 병적으로 게으르고 단정치 못한데 어떻게 알릭이 이 여자를 견뎌왔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알릭-니나 커플 주변의 다른 친구들처럼 이들과 함께 시간을 하다 보니, 니나는 자신의 끝없는 무력감으로 주변인들, 특히 남자들에게 높은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여기에 덜커덕 걸린 것이지. 니나는 현대 의학이 포기한 알릭을 살리기 위하여 벨라루스에서 친척의 병을 고치고자 동유럽 특산의 온갖 약초를 몰래 갖고 들어온 노파 마리아 그르나찌예브나에게 민간 치료약을 구하고 조언을 받는다. 러시아 정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극한까지 충동과 변덕, 공상을 몰고가는 경향이 있는 니나는 그래서 유대인이기도 한 알릭에게 정교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기 권하고, 선한 마음에 그리 하는 줄 이해하는 알릭은, 랍비와도 협의해보는 조건에서 이를 승낙한다. 이렇게 뉴욕의 한 찌그러진 화가의 작업실에서 서로 적대적일 것 같은 종교의 지역 대장끼리 안면을 트게 되는 별난 일까지 생기는데 거 참.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당연히 알릭이 죽지 뭐. 그래야 행복한 장례식이 열릴 테니까. 장례식이 끝나고 고인을 추도하기 위해 작업실에 모인 많은 사람들. 핏줄, 즉 친척은 아내 니나를 빼고 한 명도 없고 전부 미국에 와서 새로 사귄 무수한 인물들이 총망라하고 있는 가운데 작품은 마지막 희극의 커튼을 열어젖힌다. 나는 이 장면을 예전에 신문기사를 통해 읽은 적 있다. 우리나라의 실제 장례식에서 생긴 일이었다. 나도 죽으면 내 장례식에서 써먹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뭔지 알려드리고 싶지만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라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이 작품 보다 한 길 위라서, 울리츠카야가 재미있게 쓰긴 했지만 내게 미소 이상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다 그런 거지. 누가 써먹기 전에 터뜨려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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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7-29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민자들의 가난한 삶이 그려지네요.
장례식! 저는 아프리카 미국인들의 장례행렬이 먼저 생각나요. 이 행복한 장례식은 막이 오른채 끝나나보네요.

Falstaff 2024-07-29 07:38   좋아요 1 | URL
장례식 진행합니다. 러시아 정교 신부와 유대교 랍비가 장례식장에서 만나기도 하는 즐거운 난장판이 벌어지지요.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