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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장례식 ㅣ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서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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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츠카야가 뉴욕에 떴다. 뉴욕의 다 찌그러진 동네 바로 옆에 붙은 건물. 원래는 창고 건물이었으나 동네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초라한 몰골로 찌그러지던 중, 모스크바에 살다가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유럽 각지(특히 이탈리아!)를 떠돈 후 뉴욕까지 흘러 들어온 화가 알릭이 다락 창고를 개조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나마 방과 작업실을 만들고 세 들어 살겠다고, 절차 같은 걸 귀찮아 하는 알릭이 당시엔 내용도 한 번 안 읽은 채 계약서에 서명해 들어와 살게 된 작업실 겸 집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데, 아마 월 4백달러 정액으로 울릭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조건 아니었나 싶다. 세월이 변하고 빈민들이 들끓는 우범지대 옆에 큰 문화센터 비슷한 것이 생기더니 이에 걸맞은 다른 시설도 따라 들어와 이젠 제법 유동인구가 많은 잘 나가는 상업지대의 모습을 갖춘 거였다. 그리하여 아일랜드 출신의 건물주는 이 정도의 부동산이라면 아무리 디스카운트 해서 평가를 하더라도 월세 4천달러 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이해하지만 무한정, 집세를 내지 않는 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임차인을 쫓아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집세라도 꼬박꼬박 내는가 말이지. 그래서 한 너댓 달 내지 않아, 임대인 입장에서 속으로는 웃으며 그러나 겉으로는 화난 얼굴을 하고 방을 빼 달라고 하면 분명히 울릭은 아닌데, 울릭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방금 집세를 낸 영수증을 보라고 디미니 아일랜드인이 꼭지 가 돌겠어, 안 돌겠어?
근데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울릭이 죽어가고 있다. 제목 “행복한 장례식”의 대상이 바로 주인공 울릭이다. 니나의 남편이며, 둘 사이에 아이는 없다. 천천히 진행되는 마비와 근손실이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육체의 거의 모든 근육이 정지한 상태로, 뇌와 시청각과 언어, 그리고 아주 빈약한 소화기와 횡경막을 지탱하는 근육이 이제 마지막으로 서서히 정지하고 있다. 결국 횡경막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 호흡을 못해 질식사할 것이란 게 러시아 의사지만 영어에 약해 미국에서 치루는 의사자격시험에 번번히 떨어지는 피마 그루버의 정확한 진단이다.
독자가 작품을 빨리 이해하려면 주인공 울릭이 죽어가는 집에 대해서 미리 아는 것이 좋다. 어디까지나 울릭과 니나 부부가 살림도 하고 울릭의 그림 작업도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울릭이 여간 발이 넓은 게 아니다. 발만? 오지랖도 같이 넓어서, 일단 뉴욕에 새로 도착해 정착하지 못한 러시아 이민, 밀입국자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고, 한 시절 러시아의 위성국가나 자치국으로 새로 독립한 지역 사람들도 그들만의 민간 치료법을 들고 언제든지 몰려올 수 있으며, 러시아 지역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림을 그렸다거나 카페에서 재즈를 연주하거나,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인디오 음악을 하는 사람들, 아니면 심지어 술집에서 우연히 울릭과 한잔한 기억이 있는 행인 1, 2도 언제든지 집에 들어올 자격이 있다. 그래서 아예 현관이 없다. 얇은 합판으로 칸을 나누어 작은 부엌과 손톱만한 침실을 만들었고, 널찍한 작업실엔 조명 두 개와 창문도 두 개를 냈으며, 없던 화장실과 샤워실을 만들어 썼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아무나, 때론 십 수 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때는 한 여름이다. 1991년 경으로 보인다. 나중에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고르바쵸프 대통령이 구금당해 벌써 죽임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장면을 보면, 그래, 틀림없이 1991년이 시간적 무대일 것이다. 그해 8월은 여름마다 그랬듯이 백 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뉴욕을 덮친 해이기도 하다. 이 폭염도 당연히 매년 새롭게 경신될 예정이지만.
불행하게 이 집의 에어컨이 고장났다. 뉴욕은 대서양에 면해서 여름엔 남풍에 실린 바다 습기가 유입되어 장마가 끝난 한반도처럼 습기 높은 무더위가 대기를 짓눌러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즉, 대단한 열기와 극에 달한 습기, 이 두 조건이 러시아 태생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에겐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그래서 작품은 “열기가 대단했고 습기는 극에 달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울릭은 당연히 새 에어컨을 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곧 죽을 거 같으니까. 그래도 선한 친구가 있어 책의 중간쯤 에어컨과 실외기를 짊어지고 오는데, 전문가들도 설치를 위해 둘이 작업하건만 잘났다고 혼자 와서 몇 시간 동안 고생고생하며 러시아 식으로 끙끙대다가 설치하지 못한다. 이 불볕더위에 가장 고생하는 사람이, 당연히 주인공은 아니지만, 제일 먼저 등장한다. 퉁퉁한 체형의 발렌티나. 예쁘장하게 통통한 얼굴을 가져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받는 여성이다. 모스크바에 살 때 게이 미국인이 와서 친하게 지냈다가 발렌티나의 매혹적인 모습에 넘어가 최초로 여성과 한 번 하게 된 게이의 고향이 뉴욕이었던 것. 발렌티나도 당시에 처녀의 몸을 처음 개방한 것으로, 둘은 가지가지 첫 경험을 기념하기 위하여 발렌티나의 가족과 친척을 모아 결혼식을 올린다. 먼저 미국인이 뉴욕으로 출발하고, 이제 됐다고, 오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발렌티나가 무턱대고 뉴욕에 와 전화를 걸고,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게이 남편은 캘리포니아로 도망쳐버렸다. 어쨌거나 탈 게이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어엿하고 어여쁘고, 통통한 발렌티나가 며느리라니, 시부모 마음이 흡족했겠지?
그건 벌써 몇 년 전 이야기고, 이제 발렌티나는 지금은 빈민가까지는 아니지만 하여간 이 동네에 살면서 더욱 살이 쪘는데 특히 유방이 그랬다. 발랴는 귀찮아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7월, 8월엔 어쩔 수 없었다. 큰 유방을 풀어놓으면 더위에 가슴 밑이 눌려 살이 짓무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당연히 무료로, 알릭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지냈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가지고 출연한다. 그걸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제일 먼저 등장한 발랴만 간략하게 언급한다. 다른 이들은 생략한다.
그리고 사실상의 주인공 이리나. 어린 시절 모스크바에서 서커스 생활을 할 때부터 알릭을 알고 지냈다. 그러다가 제법 대가리가 커지고, 다리 사이에 거뭇한 털이 돋을 즈음, 알릭하고 손잡고 며칠 동안 페테르부르크로 도망갔다. 이때 서커스 연습에 빠졌다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할아버지의 뜻을 어겨 이틀은 석달이 됐고, 이때 한 청소년 소설작가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이를 알게 된 알릭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귀싸대기를 날려 사실상 관계는 끝이 났다. 그래도 2년을 더 버텼다. 미국에 도착해 처음에는 낮엔 센트럴 공원에서 서커스에서 주로 하던 묘기 버스킹으로 돈을 벌고, 생각을 바꾸어 밤엔 미국 교육과정을 밟다가, 제법 돈이 생기자 캘리포니아로 넘어간 후 반대로 낮엔 로스쿨을 다니고 밤에 서커스로 돈을 벌어 저작권 전공 변호사가 된다. 이 사이에 다시 동쪽으로 와 결혼도 했고, 딸 마이카(영어로 하면 “티셔츠”)도 낳고 나름 즐겁게 살기도 했는데, 많은 미국 부부가 그랬듯이 짝 갈라져 이혼해버리고 말았다. 돌싱이었을 때 하루는 신문을 보니 알릭이 개인전을 한다기에 LA에서 뉴욕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마이카와 함께 알릭을 보게 됐다. 근데 이상한 자폐형태로 자기 갑옷 속에 박혀 있는 듯, 세상의 모든 어른을 경멸하는 마이카가 알릭하고는, 신기도 하지, 별의 별 장난도 다 치고 말도 쾌활하게, 웃으면서, 때로는 화딱지도 내 가면서 하는 거다. 놀랠 놋자네.
알릭도 그새 결혼했다. 니나라는 이름의 러시아에서 온 백치 같은 여성. 이리나가 보기에는 거의 지적장애 가깝게 어리석고, 병적으로 게으르고 단정치 못한데 어떻게 알릭이 이 여자를 견뎌왔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알릭-니나 커플 주변의 다른 친구들처럼 이들과 함께 시간을 하다 보니, 니나는 자신의 끝없는 무력감으로 주변인들, 특히 남자들에게 높은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여기에 덜커덕 걸린 것이지. 니나는 현대 의학이 포기한 알릭을 살리기 위하여 벨라루스에서 친척의 병을 고치고자 동유럽 특산의 온갖 약초를 몰래 갖고 들어온 노파 마리아 그르나찌예브나에게 민간 치료약을 구하고 조언을 받는다. 러시아 정교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극한까지 충동과 변덕, 공상을 몰고가는 경향이 있는 니나는 그래서 유대인이기도 한 알릭에게 정교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기 권하고, 선한 마음에 그리 하는 줄 이해하는 알릭은, 랍비와도 협의해보는 조건에서 이를 승낙한다. 이렇게 뉴욕의 한 찌그러진 화가의 작업실에서 서로 적대적일 것 같은 종교의 지역 대장끼리 안면을 트게 되는 별난 일까지 생기는데 거 참.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당연히 알릭이 죽지 뭐. 그래야 행복한 장례식이 열릴 테니까. 장례식이 끝나고 고인을 추도하기 위해 작업실에 모인 많은 사람들. 핏줄, 즉 친척은 아내 니나를 빼고 한 명도 없고 전부 미국에 와서 새로 사귄 무수한 인물들이 총망라하고 있는 가운데 작품은 마지막 희극의 커튼을 열어젖힌다. 나는 이 장면을 예전에 신문기사를 통해 읽은 적 있다. 우리나라의 실제 장례식에서 생긴 일이었다. 나도 죽으면 내 장례식에서 써먹어볼까,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뭔지 알려드리고 싶지만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라 그럴 수 없는 게 아쉽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이 작품 보다 한 길 위라서, 울리츠카야가 재미있게 쓰긴 했지만 내게 미소 이상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다 그런 거지. 누가 써먹기 전에 터뜨려야 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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