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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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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타킹턴.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니 1919년에 <위대한 앰버슨 가>, 1922년에 <앨리스 애덤스>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당대의 스타 작가였단다. 두 작품 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었다. 그러니 몰랐지. 그래도 조금 이상했다. 유명한 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백 년이 넘어서야 번역했다고? 좀 이상하다. 하긴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품이 오래 간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래도 미국 현대 문학사상 퓰리처 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사람은 부스 타킹턴, 윌리엄 포크너, 존 업다이크,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콜슨 화이트헤드, 이렇게 네 명밖에 안 되고, 21세기엔 화이트헤드가 유일한 인물일 정도이니 가문의 영광이긴 하겠다.
그러나, 부스 타킹턴은 조선이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도 하기 전인 1869년에 출생한 사람이다. 벨에포크 시대를 젊은 시절에 향유했고,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나이가 많이 들어 눈물을 머금고 참전하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세계의 공장이자 위대한 미국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2차 세계대전까지 승전해 전세계의 패권을 잡는 장면까지 보고 숨이 넘어가 좋은 시절은 다 보낸 셈이다. 취소. 타킹턴은 1920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기 시작해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했기 때문에 다 “보고” 간 건 아니고 주로 듣다가 갔을 거 같다. 원래 제목은 <앨리스 애덤스>이지만 책 좀 더 팔아볼까 싶어서 그랬는지 우리말 제목을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 붙인 책을 읽어보니까, 딱 그 시절, 20년대 전형적인 미국식 소설이라서 또한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을 맺어 독자의 헛심을 푹 빼놓고 말았다. 갈등의 순간까지 흥미진진했다가, 난데없는 절정을 거쳐 “미국식 결말” 즉 한 큐에 급커브를 도는 해피엔드라는 말이다. 읽는 도중 내내 잘만 하면 20년대식 프랭크 노리스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말씀이지. 물론 외모는 미국 최고 미남의 소설가 노리스하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는 애덤스 부부의 맏딸이다. 두루두루 예쁜 아가씨. 집에서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평인데, 무슨 말씀인고 하니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따님이 도시 최고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과 같은 수준의 사교를 하고 싶어, 부모가 진력을 다 하지만 가랑이가 찢어져 마땅하게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메꾸기 위해 안달복달을 하다보니 그만 과하게 오버하게 되고, 그게 또래들 눈에 확실하게 보였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하도 자주 그러는 바람에 쉬운 말로, 내 놨다, 이거다. 그저 외모만 그럭저럭 예쁜 아이라고 할까?
아버지 버질 애덤스 씨는 램브 컴퍼니를 근 삼십 년 가까이 나름대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Lamb Company”를 “램브 컴퍼니”라고 번역했다. 회사와 사주 J.A. 램 씨는 버질의 능력과 업무에 만족하여 입사 2년차에 급여를 올려주고 이후 2년마다 꼬박꼬박 다시 올려주었으며 지금은 몇 년째 잡화부서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임원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이며, 스스로는 “자기한테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하여 임원자리를 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램 씨 후계자인 여러 아들들은 “나이가 들며 업무능력이 떨어져 해고시키는 것이 타당하지만 아버지의 평생직장 신념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애덤스 가족이 살고 있는 작은 목재주택은 지은지 15년 남짓 되는데, 애초부터 집장사들이 허술하게 지은 탓에 곳곳에서 수리가 필요하다고, 즉 당장 돈 좀 달라고 입을 벌리거나 삐거덕대고 있지만 용케 잘 견디고 있다. 가구는 주로 애덤스 부인의 어머니가 쓰던 것과 결혼할 때 들어온 선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눈에 잘 띄는 벽난로 선반 위에는 앨리스가 하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램브 컴퍼니의 부서 사람들한테 선물받은 나이아가라 폭포 현수교의 강판 인쇄를 떼고 거대한 콜로세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아버지는 이를 속으로 매우 서운해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나이아가라 현수교 강판 인쇄나 콜로세움 흑백 사진이나 오십보 백보였다나? 애덤스 가족의 문화적 수준을 타킹턴 씨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애덤스 가족은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앨리스를 지원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말썽꾸러기 아들은 아예 빼놓고 이야기하겠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에덤스 씨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마 약한 뇌졸중 아닌가 싶은 병이 들어 휴직을 하고 집에서 간병인을 고용해 치료 중이다. 사장 J.A. 램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집에 들러 안부를 물으며 요양을 하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급여를 지급했으니, 이만한 사장 있으면, 한 명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두 명만 나와보라 그래. 집의 가장이 이렇게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데 오늘 앨리스의 하루 일정을 보면, ① 도시의 최고 부르주아의 딸인 밀드레드네 집에 가서 오늘 그 애가 주최하는 댄스 파티에서 어떤 옷을 입을 지 확인하고, ② 시내 양품점에 가서 시폰 한 개와 댄스용 구두에 묶을 얇은 리본을 사오는 거였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앨리스가 찾아오는 게 지긋지긋해 그냥 건성으로 응, 응, 대꾸하는 것뿐이고, 앨리스가 오늘 무슨 옷을 입든, 무슨 댄스화를 신든 쳐다보거나 심지어 신경 쓰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을 예정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물론 아직 친구가 아니라 타지에 와서 오늘 처음 시내 젊은이들 사교계에 데뷔하는 아서 러셀은 예외로 하자.
이런 집의 딸이 길을 나서는데, 어떻게 차려 입었는지 한 번 볼까? 잉글랜드 식으로 옅은 금색 밴드가 둘린 풋사과 색깔 터번을 머리에 쓰고, 황갈색 베일이 달린 모자에, 대단히 현대적으로 단순하게 디자인한 황갈색 코트를 입은 채, 전신거울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매무새를 살핀 후, 테두리에 섬세한 은빛 무늬가 들어간 비어 있는 검은 가죽 명함지갑에 자기의 두 가지 명함 가운데 어느 것을 넣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평범하게 미스 애덤스라고 쓴 명함을 골라 넣고, 산뜻한 흰 장갑을 낀 후, 화룡점정 나온다, 상아 손잡이가 달린 말라카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현관문을 열었다는 거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애덤스 여사의 마음은 찢어진다. 저렇게 아름답고 착하고 참한 딸을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 자기 생각에, 앨리스 혼자서 절친이라고 여기는 밀드레드한테도 따돌림을 받는 거 같고, 램 씨네 세 딸은 대놓고 앨리스가 차리고 다니는 걸 비웃는 것 같아서. 어머니 가슴이 멍들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이때마다 자기네가 밀드레드 네나 램 씨처럼 갑부가 아닌 것을 한탄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한 클릭, 한 클릭 방향을 바꾸어 남편 버질 애덤스 씨한테 바가지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렘브 컴퍼니의 사장 J.A. 램 씨가 지시하여 기술자와 애덤스 씨가 책에서는 ‘풀’이라고 하는데 이게 죽 쒀서 만드는 풀인지, 접착제인지, 공업용 본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풀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이때 완성된 제품을 상업화하지 않고 그냥 기술을 잠재우고 있는 동안 기술자가 죽어 이제 애덤스 씨 혼자 제조 기술을 알고 있게 된 것. 마나님은 애덤스 씨한테 풀 공장을 차리라고, 그래서 사업을 시작해 돈을 왕창 벌어오라는 게 바가지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애덤스 씨 생각엔 그건 어디까지나 램 씨의 지시에 의하여 연구한 결과니까, 램 씨 기술이어서 자기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 비슷하게 어진 성품과 활수한 사업가 J.A. 램 씨를 배반하는 일이라면.
그러나 딱, 보면 아시겠지? 앨리스를 왕따 시키지 않고 오히려 홀딱 반한 새로운 청년, 하긴 서른 살이면 청년도 아니지만, 아서 러셀은 앨리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애덤스 씨는 결국 마나님 바가지를 견디지 못해 탄탄하고 좋은 회사를 때려 치우고 풀 공장을 차리게 되며, 원래 착한 사람이 한 번 화딱지가 났다 하면 제대로 오지게 나는 법이라 램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애덤스 씨를 파산하게 만들 것임을? 처음엔 아서 러셀이 육촌 누이인 밀드레드의 약혼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잘 생기고 우아하고, 친절해 보이고, 완벽한 데다가, “굉장한 부호” 남자가 약혼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자기 딸하고 열라 데이트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집에 초대해 저녁 한 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신세가 어머니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
하지만 걱정 마시라. 많은 20년대 미국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엮다가 기꺼이 아름다운 해피엔드를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해봤자 당신 머리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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