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기억들
마리야 스테파노바 지음, 박은정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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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야 스테파노바는 따로 바이오그라피를 찾아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 <기억의 기억들> 자체가 자기 가족 이야기다. 스테파노바는 1972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 후, 1990년대 러시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부모는 독일로 이민을 떠났고, 스테파노바는 모스크바에 남았다. 여기까지 다 책 속에 나온다. 이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벌어지자, 스테파노바는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자신도 독일로 이사한다. 울리츠카야도 이때 떠났다. 두 작가가 다 유대인-러시아인이다.

  마리야 스테파노바의 본령은 시인이다. 소설은 아직까지 <기억의 기억들> 하나밖에 없다. 당연히 앞으로 소설도 쓰겠지. 그러나 시인이 쓴 소설임을 감안하시라. 2017년 출간한 작품이며 이 책이 2017~18년도 러시아 최고의 산문에 수여하는 빅-북 상을 받아 2백만 루블(당시 약 3천3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고 해도 쉽게 읽히지 않는다. 작품은 좋지만 너무 사적인다. 스테파노바 개인의 가계를 그린 듯한데 이름은 전부 애칭, 약칭으로 표기했다. 화자는 당연히 ‘나’ 마샤. 마리야의 애칭/약칭이다. 가계를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사진.

  작품 초반부터 당신은 당황할 것이다. 나는 당황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하여간 조심하는 편이 좋다. 보시라.

  “료냐 할아버지는 기술자여서 후방에서 복무했다. 붉은 별 훈장을 받은 또다른 할아버지 콜랴는 전쟁 중 극동에서 복무했다. 전선에서 전투에 참가한 할아버지는 없다.”

  생각하기를, 기술자 료냐 할아버지가 원래 할아버지고, 이 양반이 불귀의 객이 되어 과부가 된 할머니가 새로 시집을 가 콜랴라는 이름의 남편을 두었구나. 어때? 그럴 듯하지? 근데 이게 오산이었다.

  료냐 할아버지는 엄마 나타샤의 아빠인 외할아버지. 콜랴 할아버지는 아빠 미샤의 아빠인 친할아버지다. 우리나라 족보로 생각해보자.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는 룔랴. 여기까지, 외할머니 이름까지는 웬만하면 다 알지? 좋다. 그럼 외할머니의 엄마 이름을 아시는 분, 혹시라도 있으면 거수바람. 좋아, 좋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건 아시나? 외할머니의 엄마를 칭하는 호칭은? 모른다. 검색해보면 외증조모라고 나오는데 웃기는 말씀. 그건 외할아버지의 엄마. 내가 바라는 건 외증조모의 안사돈을 어떻게 부르는지 아느냐는 거. 외할머니의 외가를 외진진外陳陳외가라고 한다면 외진진증조할머니가 정답일 듯. 이게 맞다면 마리야, 마샤의 외진진증조할머니가 사라. 20세기 초에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의학 공부를 한 의사로 그냥 프랑스에서 시집가지 않고 귀국해 혁명 소비에트에서 의사로 일한 신여성이었다. 사라의 부모는 아브람 긴즈부르크와 로쟈 긴즈부르키나. 20세기 초반에 러시아 땅에서 유대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있었던 건 다들 아시지? 당시에 ‘사라 아브라므예브나’라는 이름으로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팍팍했을꼬?

  외진진증조할머니 사라 아브라므예브나가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찍은 사진이 있다. 파리 소르본 대학 의학 실습실에서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학생 사이에서 흰 가운을 입고 찍은 여학생 시절도 있고, 더 어린 사라도 있다. 사라의 시아버지이자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의사였던 다비드 프리드만이 찍은 1906년 사진도 있는데 이건 좋은 품종의 주황색 점박이 무늬 사냥개 세터였다. 여기서 조금 놀랐다는 말이지. 1906년에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4백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컬러 사진”을 찍었다고? 아마 채색사진일 듯하다. 당시에 컬러 사진술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게 시장에 나오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했을 터. 1905년에 (화자 미샤가 “또다른 고조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람 오시포비치는 열네 자녀를 두었는데 이 가운데 사라 증조할머니의 사진이 있었고, 사진 속에 어린 사라는 손이 얼어서 빨갛게 보였다고 한다. 유명한 1905년 12월 혁명 시절이었다. 이 사진도 컬러는 아니고 채색 사진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화자 미샤는 엄마 나타샤, 외할머니 룔랴를 비롯한 무수한 여인들과 함께 앨범을 꺼내 많고 많고 또 많은 사진을 보며 사진 속 할머니, 아주머니, 고모, 이모들에 관해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게 훗날 미샤가 자신의 가계에 대한 책 <기억의 기억들>의 자료가 될 줄은 열 살이었을 때부터 자기 가족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던 미샤 말고는 아무도 몰랐으리.


  근데 왜 이 책이 읽기 쉽지 않느냐고?

  작가는 사진을 보고 있다. 그것을 문장으로 설명한다. 시각을 문자로 옮기는 일. 이건 작가가 원했든 아니든 간에 한 번 더 큰 왜곡이 기다리고 있다. 문장을 독자가 뇌 속으로 옮겨 이를 형상화하는데, 이것이 얼마만큼 작가가 직접 보고 있는 사진과 일치할 것인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작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이 불일치를 의도했을 수도 있다. 의도했다는 건 아니지만.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작가는 사진의 현장에 가려 하거나 최소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 사진의 분위기를 확인 또는 공감하고 싶어한다. 누구 닮았지? W.G. 제발트. 스테파노바도 책 중에서 백 번은 넘게 제발트를 이야기한다. 제발트를 읽은 독자는 누구라도, 작가가 제발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제발트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어법이 다르다. 제발트는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인물이나 풍경을 독자와 공유한다. 그러면서 넓은 벌판을 독자와 함께 걷거나, 외진 도로를 따라 낡은 승용차를 운전하거나, 언덕에 올라 경치를 조망한다.

  스테파노바는 사진에 등장하는 자신의 가계 구성원을 기억하면서 유대인-러시아인이 20세기를 관통/극복하는 스토리를 부각하기도 하고, 그들이 살던 집, 묻힌 무덤을 답사하기도 한다. 작가는 책을 통해 단 한 장의 사진도 독자와 나누어 감정을 공유하기를 거부한다. 한 세기 내내 학살과 공포, 피해의식 속에 살았던 유대인 집단의 트라우마에 독자는 공감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렇게 오해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근데 이게 맞을까? 제발트는 유대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 태어났다. 학교에서 보여준 홀로코스트 사진에 충격을 받아 전쟁과 박해는 그가 평생에 걸쳐 탐구해야 했던 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라진 사람들의 사진을 독자와 공유한 반면, 당사자의 가족일 수도 있으며 적어도 동족의 한 명인 스테파노바는 굳이 그런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걸까? 단정하지 말자. 그랬으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많고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가계도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것과 비슷하게, 스테파노바의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 길들기도 쉽지 않다. 숱한 독자는 이런 문장을 좋아하여 ‘시적詩的 운율’과 비슷한 말로 이를 칭찬한다. 다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산문은 산문이고 운문은 운문이다. 물론 운문 비슷한 산문이라는 것도 있으며 그걸 좋아하는 독자의 취향을 존중하긴 하지만, 나는 아니다.

  시적 문장이라고 해서 “시적”이 의미하는 것이 감정이 충만하게 밴, 이런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문장은 지극히 건조하다. 작가가 영향받은 것이 틀림없는 프루스트, 제발트 풍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만델스탐 같은 러시아/소비에트 작가/시인과의 유사점은 내가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이 정도면 대충 어떤 분위기인지 감이 잡히실 듯.


  작품 자체의 서사로 읽으려면, 그러지 마시라. 애초 시작할 때부터 특별히 말재주가 있는 작가와 더불어 앉아 말로만 설명해주는 사진을 연상하면서, 사진 속 사람과 배경이 어떨 것인지 마리야 스테파노바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각오”로 첫 페이지를 넘기시기 바란다.

  근데, 만일 W.G 제발트가 <아우스터리츠>를, <토성의 고리>를, <이민자>를 한 권으로 묶어서 6백 페이지 분량으로 출간했으면 어땠을까? 단언하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읽으면서 간혹 사진을 볼 수 있어서 스테파노바보다 훨씬 읽기 편할 것 같다. 달리 이야기해서, 여차하면 스테파노바의 <기억의 기억들>을 지루한 책이라고 여기기 쉽다는 뜻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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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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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에르난 디아즈는 197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두 살 때 군사쿠데타를 피해 스웨덴으로 건너가 열 살까지 살고 다시 귀국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을 졸업한다. 이후 영국 킹스 칼리지를 졸업하고, 다시 뉴욕으로 점프, 뉴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브루클린에 터를 잡아 결혼도 하고 딸도 낳아 키우며 살고 있다. 지금은 컬럼비아 대학의 히스패닉 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데 2023년에 편집한 위키피디아의 기록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자. 이이는 두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2017년에 발표한 <먼 곳에서>. 데뷔작이 나오자마자 퓰리처상과 펜/포크너상의 최종후보까지 올랐다가 미역국 먹었다. 그럼에도 질스 화이팅Whiting 여사 재단에서 주는 화이팅 상을 수상해 5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으니, 으메, 그게 얼마여? 이후 두번째 작품이 2022년에 출간한 <트러스트>이다. 이게 대박. 드디어 미국인의 꿈인 퓰리처 상을 받고, 부커상 최종심에 올라가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뽑은 2022년 10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금수강산 옥토낙원의 개 잡아먹는 이야기, 한강이 쓴 <채식주의자>와 더불어 21세기에 발간한 모든 문학 작품 가운데 백 권에도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세상에나. 이렇게 읽기 지겨운 소설이 말이지!

  지금 감히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 작품을 “읽기 지겨운 소설”이라고 했느냐고? 그랬다, 어쩔래? 퓰리처상이 아니라 부커상, 노벨상, 책상, 걸상, 밥상, 개근상을 가져와봐라, 눈썹 하나 까딱하는지. 겨우 470쪽밖에 되지 않는 책 한 권 읽는데 3일 걸렸다. 보통 이 정도면 길어야 이틀이면 충분하건만, 이거 진심으로 하는 얘긴데, 소설책이 재미가 없으니까 속도도 나가지 않더라고. 그 정도로 재미없었다. 읽다가 그만 읽을까, 이렇게 많이 망설인 책도 별로 없을 듯. 그러니 당신이 이 책을 정말로 읽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데, 단단히 마음 매조져야 할 것.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독자 리뷰 읽어보면 별 다섯 개 만점으로 다섯 개 다 채운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내 눈알이 삐어서 재미없게 읽었다고 보시면 틀리지 않을 듯하다. 읽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라.


  책은 모두 네 개의 장part으로 되어있다.

  1부 “채권”은 소설가 해럴드 배너가 쓴 소설. 부자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 벤저민 래스크의 한평생을 조망했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소설인 셈. 이걸 한 번 따라가 보자.

  벤저민 래스크의 부계 조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1662년에 코펜하겐을 떠나 클래스고로 이주했다. 벤저민의 고조 할아버지 대에 와서 식민지에서 생산한 담배 거래를 백 년 이상 점점 크게, 점점 크게 벌이다가 벤저민의 아버지인 솔로몬 벤저민 씨는 담배회사의 지분을 몽땅 사들인 후, 머지않아 미국 동부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담배 무역상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솔로몬 래스크 씨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시가와 시가릴로(얇은 시가), 파이프 담배를 공급했고, 이런 성공은 씨의 탁월한 대화술과 정치적 연줄을 제공하는 능력이 밑받침이 된 것이 물론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씨는 뉴욕 웨스트 17번가에 타운하우스를 건설해 그곳에서 벤저민을 낳는다. 최고의 부호로 이름을 높인 솔로몬 래스크 씨는 쿠바에 작은 별장을 짓고 그곳에서 월동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고, 아내 윌헬미나는 허드슨강 동안에 여름 별장, 뉴포트에는 오두막을 지어 그곳에서 아들과 오래 묵었다. 그러니까 부부/가족은 여름과 겨울, 일년의 반 동안은 서로 코빼기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는 말이다.

  태도와 지능, 순종적인 성품이 잘 조화된 아이들을 일컫는 단어인 “모범적”인 어린이 밴저민은 단 한 가지, 다른 아이와 어울리기 꺼리는 것만 빼면 어디 한 구석 나무랄 데가 없었다.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들어간 기숙학교에서 벤저민은 여전히 무감각한 태도로 전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낸 영재였다. 기숙학교 졸업반일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한 방에 훅 갔고, 다음 해 졸업 직전인 5월엔 어머니마저 폐기종으로 숟가락 놨다. 그럼에도 벤저민은 대학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래스크가 특유의 혈통이 벤저민 대에서 끊어진 것으로 봤다. 뉴욕으로 돌아간 벤저민은 거의 대부분 성공을 거둔 분야에서 실패하고 있었다. 그는 선대와 다르게 서툰 스포츠맨이었고, 무감각한 사교가였으며, 열정 없는 술꾼에 냉담한 도박사이자 뜨뜻미지근한 연인이었다. 억눌러야만 하는 욕구도 없는 데다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담배회사의 총수였다. 벤저민한테는 담배사업만큼 재미없는 일이 없어서, 회사 경영을 임원진에 맡겨버린 것도 모자라, 쿠바에 있는 초호화 아버지 별장도 별장 안의 온갖 귀중품과 더불어 현지의 반half 사기꾼 대리인을 통해 홀랑 팔아버렸다.

  그러다가 1907년의 불황이 다가왔다. 성격이 이랬으니 벤저민 래스크는 홀랑 거지가 됐을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장기 유럽 여행 스케쥴을 짜던 벤저민이 갑자기 무슨 냄새를 맡았다. 아버지 별장 판 돈을 비롯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동산current asset을 주식에 투자했었는데, 그걸 한 방에 몽땅 팔아 금채권을 산 거다. 유럽? 거긴 안 가도 돼! 금본위 화폐 시대에 금채권을 확보했으니 이제 기다리는 건 하늘에서 쏟아질 돈벼락뿐이었다. 수많은 은행이 지급불능사태를 맞아 문을 닫건 말건 불황은 벤저민에게 황금알을 쑥쑥 낳아주었고, 그동안 신경쓰지 않은 물려받은 재산도 상당한 규모로 증폭되어 있었다. 자신의 자산을 관리해주고 있던 J.S. 윈슬로 회사의 총수인 윈슬로 2세가 벤저민의 공격적인 투자에 회의를 품자 그동안 불편하지만 긴밀하게 협력해왔던 투자회사를 단박에 해고해버리고 직접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벤저민이 보기에 금융계와 투기는 죽을 수 있지만 균 하나 없는 깨끗한 생물이었다. 생각하고, 말하고, 서명하면 끝나는 일.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만들 필요가 조금도 없는 유일한 무균질 작업. 완전히 자기 성격에 맞는 일이었다. 1907년에 니커보커 신탁회사의 대표 찰스 바니가 자살하자마자 전세계 증시에 공포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고, 벤저민은 민첩하게 탄력성을 확보한 기업의 저평가된 자산을 인수해버리기 시작했다. 돈 놓고 돈 먹기의 귀재 J.P. 모건이 벤저민을 지켜보다가 넋을 잃고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지만, 벤저민은 싹 잘라 거절했을 정도. 이렇게 일이 커지니 아무리 벤저민이라도 직원을 고용할 수밖에. 심부름꾼부터 시작해 타이피스트, 그러다가 이제 제대로 공부한 회계사가 필요했고, 점점 커져 다양한 종류의 인력을 모았다. 초기에 모인 인재 가운데 벤저민이 혐오하는 금융계의 모습을 다양하게 지니고 있던 셸던이란 작자도 있었는데, 그는 어느새 벤저민의 사업을 위한 완전한 대변인으로 변해 있었다. 1914년 취리히 은행가로 출장을 떠난 셸던은 세계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그곳에서 발이 묶였다. 이때 그곳에서 명성은 있지만 재산은 없는 올버니의 오랜 명문가 브레보트 댁의 외동따님 헬렌을 알게 된다. 이 헬렌이 몇 년 흘러 10대 후반이 되자 벤저민 래스크와 혼인을 해 헬렌 래스크가 된다.

  브레보트 씨는 심령술, 연금술, 최면술, 강령술 등 다양한 신비주의에 함몰된 인물로 평소에 딸과 긴밀한 유대를 지니기도 했다. 당연히 상당한 정도로 영향을 미쳤겠지. 그래서 그런지 헬렌은 결혼을 하고 1930년대 대공황을 만나, 벤저민이 1907년 당시의 불황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친 수준의 천재성을 발휘해 지상 최고의 부자가 된 후, 미국의 문화, 특히 음악과 학교, 전시회 등을 위한 활수한 기부를 이어가다가 아빠 브레보트 씨와 비슷한 정신 질환을 앓는다. 헬렌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반드시 아버지가 입원했다가 행방불명이 된 바로 그 스위스의 병원에 입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그곳에서 다양한 치료를 받다가, 별로 효과가 없자, 벤저민이 투자한 독일 제약회사가 제안한 주치의의 처치를 받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독자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죽는다.

  아내의 죽음 이후로 총기가 빠진 벤저민은 이후 그저 그런 투자가 수준으로 급전직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 속에 머물기 시작한다.


  이게 삼류 소설가 해럴드 배너가 쓴 작품 “채권”이다. 근데 당시에 이 책을 읽는 거의 모든 미국사람들은 벤저민과 헬렌 래스크가 실재하는 투자 귀재 앤드루와 밀드레드 베벨 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책을, 평소엔 거의 책을 읽지 않는 앤드루 베벨도 읽었다. 절대 불같이 화를 내지 않는 베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천문학적인 재산의 힘으로 책을 낸 출판사를 통째로 사버린 후, 작가 배너에게 거액을 주고 평생 저작권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시중에 나도는 책의 전량 회수, 창고에 쌓인 회수품과 재고품 전량 소각. 평생 저작권 계약을 맺을 때 지불한 거액의 계약금은 막강한 변호사 집단에 의한 연속적 소송으로 거덜을 낸다. 소송을 해서 벤저민 측이 져도 상관없다. 배너가 방어하기 위해 변호사를 고용할 것이고 그때마다 거액의 변호사 비용이 들 터이니.

  작가는 그렇게 처리하면 끝이다. 그러면 이왕 퍼져 있는 소설은 어떻게 할까? 앤드루 베벨은 직접 자서전을 쓰기로 한다. 그게 2부. 3부로 들어가면, 자서전을 쓰기 위한 도우미, 한 번도 정식 문학 수업을 받아본 적 없는 글 좀 쓰는 여성 타이피스트 아이다 파르텐자를 고용한다.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노년에 접어든 아이다 파르텐자가 뉴욕 웨스트 17번가의 베벨 박물관에 들어 자료를 다시 찾아보며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마지막 4부는? 투자의 귀재 앤드루 베벨의 아내 밀드레드가 쓴 일기. 이게 “일기”이니 유일하게 사실과 근접한 기록일 터.


  정말 재미없게, 지루하게 읽은 책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별점을 주면 다섯 개 만점에 넷 정도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왜? 앤드루 베벨은 자신이 가진 무소불위의 능력, 돈의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진짜로 그렇게 행동을 한 인물이다. 삼류작가 해럴드 배너의 책을 읽고 인생을 무참하게 끝내버렸을 수 있고, 남들이 보이게 베벨이 배너의 조종을 울렸다고 “오해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독자 마음이다.

  혹시 말이지, 천하 제일의 부자 앤드루 베벨이 뭔가 아내 밀드레드한테 꿀리는 것이 있어서 삼류작가이기는 하지만, 삼류작가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해럴드 배너를 고용해 신경정신 질환으로 숨을 거두는 아내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던 건 아닌가? 재무적으로 거덜을 냈다고 하지만 천문학적인 현금을 가지고 있는 베벨이 그정도 보상을 해주는 건 일도 아니었을 터. 여기저기 내가 그 새끼 손 좀 봤어, 소문이 나게 만드는 건 말 그대로 껌 씹는 수준일 거고. 이미 책을 읽어볼 사람은 다 읽은 다음이니까. 애초에 자서전도 출간할 마음이 없었으면서 그냥 쓰는 흉내만 냈던 거고. 이미 죽은 아내에게 그리도 헌신적인 남편이란 소문만 나게 말이지. 그래서 3류 작가가 쓴 소설 속의 소설 <채권>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 것일까? 내 생각이 맞다는 건 아니다. 그저 그랬으면 어떨까, 만일 그렇다는 전제로 별점을 주면 네 개 정도이다, 하는 수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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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10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역국도 어디서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다르겠죠? 어떤 상은 후보만으로도 영예가 되기도 하겠죠. 약간의 호불호가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작가가 난 사람이긴 한가 봅니다. ㅋ

Falstaff 2024-09-10 18:33   좋아요 1 | URL
이 양반 꽤 인기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같은 언어가 아니라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는 지도 몰겠습니다. ^^;;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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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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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의 정사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그레이엄 헨드릭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스스로 껄걸 웃기까지 했다. 손을 뻗어 딸의 눈을 가려야 되겠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첫 문단이다. 으, 튄다. 그러니까 아빠와 딸이 보는 앞에서 엄마가 다른 남자와 정사를 벌였다는 얘기 아냐? 근데 그걸 보면서 딸의 시선과 관계없이 껄껄 웃었다는 거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반스라고 해도 이거 쇼킹한 걸, 흠. 당연히 다음 문단에서 의문은 해소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바버라가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아내 바버라는, 스크린 상에서 정사를 즐기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앤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니까 남편과 딸이 극장에 가서 지금의 아내 앤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는데, 여기에 그레이엄도 모르고 있던 두 번째 아내 앤의 정사 씬이 나왔다는 거다. 알았다.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간다. 당연히 결혼 전이기는 하지만 앤이 한 시절 영화배우였고, 그래서 영락없는 B급 영화에 출연을 했으며, 스타였던 적은 없으니 단역이었는데,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장애인 형사와 약 2분에 걸친 말 그대로 베드 씬을 찍었던 거다. 근데 이상하다. 단역이 2분간? 영화에서 2분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 2분 동안 앤은 놀라움, 노여움, 경멸, 의심, 뉘우침, 공포, 또다시 노여움을 번갈아 연기했고, 잠깐 벌거벗은 어깨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 2분이라?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

  그레이엄과 결혼 전이고, 예술의 한 형태인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불과하니 그가 껄껄 웃을 수 있었다. 심지어 청소년 관람불가인 영화임에도 보호자 동반이란 명목으로 딸 앨리스와 함께 보면서. 근데 더 웃기는 건 전처 바버라가 전남편 그레이엄에게는 영화 속에 딸이 다니는 학교가 나온다고 해서 학교 친구 여럿이 함께 보기로 했다고 하고, 딸 앨리스한테는 아빠 그레이엄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쓰레기 또는 형편없는 매춘부, 앤이라는 여자의 가장 자신하는 배역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면서 이 사달을 만든 거였다. 바버라는 앤이 예전에 영화배우를 했으며 어떤 영화에 출연했고, 그 영화에 무슨 장면이 있는데, 지금 런던의 빈민구역에 있는 재개봉관인 할레웨이 오데온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정답: 바버라가 스파이를 많이 두고 있었다고, 나중에 자기 입으로 말한다.


  1977년 4월 22일. 그레이엄은 바버라와 별 불만 없이 15년의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며, 10년 동안 같은 직장에 다니며 직종을 바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런던대학 현대사 교수다. 여전히 바버라를 좋아하지만 적어도 최근 5년간 바버라와의 관계에 대해 긍지를 느끼지는 못했다. 딱 이날, 그의 새로운 사랑의 꿀맛이 스타트 라인을 출발했다. 랩턴 가든스에서 열린 잭 랩턴의 파티에서 호스트가, 낙하산을 타는 여성이라고 앤을 오랜 친구 그레이엄에게 소개했다. 그레이엄이 신경외과 의사이긴 한데 전문의는 아니고 지금 수련의 과정이라면서. 잭 랩턴의 직업은 대중 소설가. 특기는 지금처럼 이야기 만들어내기. 앤의 진짜 직업은 옷을 구매하는 바이어였다. 여섯 단위의 금액, 그러니까 백만 파운드 미만까지 권한이 있는 구매팀 대리였다. 당연히 이전 직업을 이야기해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이때 그레이엄의 나이가 서른여덟. 앤은 서른하나. 물론 처음 만나자마자 “사랑의 꿀맛”을 본 건 아니었다. 영국인으로는 믿기지 않게 그레이엄은 결혼 생활 15년 동안 단 한 번도 외도의 경험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을 속이고 2973-8013, 전화로 데이트를 신청했으며, 만났고, 저녁밥을 같이 먹었고, 그냥 각자 집에 갔다. 두 번째 만나서 또 밥을 먹고 헤어졌다. 앤은 자연스러웠고, 솔직했지만 어느새 그레이엄은 육체의 통신망을 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세 번째 만나서, 했다. 이제 비로소 그레이엄은 쾌락에 눈뜨고, 복잡한 접근법과 얼떨떨한 향락까지 알게 됐다. 다 그런 거다. 늦바람이 무섭다니까.

  앤이 생각하기에 (1977년 기준으로) 여자가 서른 살이 넘으면 만날 수 있는 남자라고는 ①유부남, ②동성연애자. ③정신이상자뿐인데, 이 가운데 그래도 유부남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커플은 쉬지 않고 섹스를 하더니 이제 자신들의 관계를 바버라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당연히 바버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말이 쉽지 어디 이런 말을 꺼내기가 만만하겠어? 그레이엄은 결심 세 번째에 자기한테 애인이 생겼음을 (건조하게) 말하고, 그래서 집을 나가야겠다고 선언했으며, 아내한테 (당연히) 독한 말을 들으면서 최소의 옷가지만 챙겨 그날로 처자식을 집에 두고 떠난다. 바버라는 즉시 이혼, 완전하고도 진부한 간통이혼을 요구해, 그레이엄이 주택 융자금을 계속 내고, 딸의 양육비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집기와 가구와 자동차까지 바버라의 소유로 남긴 채, 바버라가 평생 노동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조건으로 이혼서류에 인감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곧바로 앤과 결혼식을 올린다.

  서양 사람들, 너무 성급해. 뭐가 급해서 이혼하자마자 다시 결혼을 하나 그래. 더 시간을 두고 주민등록부터 시작해 바이오그래피와 건강진단서를 비롯한 제반 조건을 교환하고 토론한 이후에 해도 좋을 것을 말이지. 어차피 할 거 다 하고 살면서. 이렇게 대화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결혼을 했으니 앤은 자신의 전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겠지. 혼인신고서에 지장 찍은 후엔 굳이 얘기해 줄 필요가 없었을 터이고. 근데 그게 비극의 씨앗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이야기가 필요해요, 이야기가. 아니면 간혹 오셀로로 변신하는 수가 있거든.


  오셀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오셀로한테는 원래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 것이었던 손수건이 있고, 토스카에서는 스카르피아의 부채가 있듯이, 그레이엄한테는 바버라가 보게 만든 영화의 베드씬이 있었던 거였다. 처음에 그레이엄이 장면을 보면서 껄껄 웃었다고 했다. 맞다. 웃었다. 뭐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지. 누가 자기 마누라가 훌떡 벗고 영화에 나오는데, 그걸 알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보고나서 거 기분 좋다, 하겠나? 하여튼 그레이엄은 영화를 보고 와서 앤에게 영화 이야기를 했고, 하다가 보니, 베드 씬의 남자와 영화 말고 영화를 찍는 중이나 찍은 후에 정말로 섹스를 하긴 했느냐, 라고 물어봤는데,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앤이 워낙 솔직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저 위에서 앤의 미덕 가운데 하나가 솔직함이라고 했잖여, 그래서 처음엔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전성기에 최고를 즐거운 시절을 보낸 추억의 이야기이기도 했겠지. 이왕 결혼을 했고, 다 지나간 것을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 그런데, 그게 자기 생각이지.

  아내의 과거에 집착하는 남자. 그것도 매우 심한 질투심을 느끼면서. 본인도 의아하게 생각한다. 아내의 과거를 질투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집착하게 되는 난센스. 아내가 출연했던 모든 영화를, 몇 번씩 보고, 함께 출연해 베드 씬을 찍은 모든 남자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뒤지고, 도서관이나 영화 관련 기관에서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을 복사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없는, 진짜로 없는 일도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스토리는 이쯤에서 그만. 이 책이 지금 절판 상태라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지 아니면 벌써 그쳤을 텐데, 혹시라도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복간될 지 모르니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 그 장면이 내가 좋아하는 쪽은 아니지만 하도 뒤통수를 때려 정신이 다 얼얼하다. 이걸 일러드릴 수는 없겠다.

  이렇게 끝을 맺는 줄리언 반스는 또 처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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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09-09 0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게 뭡니까 폴스타프님. 마지막 장면을 알려주셔야죠 -_-

Falstaff 2024-09-09 07:19   좋아요 1 | URL
아휴, 안 됩니다. 진짜 충격적이었습니다. 헉! 했다니까요.
혹시 읽어보실 분을 위해 저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걸 무릅쓰고... 흑흑...

수이 2024-09-09 07:23   좋아요 1 | URL
내일 도서관 가야겠군요 🤔

잠자냥 2024-09-09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전 압니다.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9-09 16:20   좋아요 1 | URL
ㅋㅋㅋ 자냥 님 알고 있는 걸 아는 폴. ㅋㅋㅋㅋ
그럼 결말을 차마 얘기 못하는 것도 느므느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충복
하인리히 만 지음, 남기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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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만은 1871년에 독일 북부 뤼베크 자유시의 곡물상인이자 시의원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과 브라질에서 온 마리아 루이사 다 실바 사이의 다섯 아이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독일 혈통이 반, 포르투갈과 원주민 혈통이 각각 반의 반이었다. 맏이 하인리히는 엄마 쪽을 탁해 활달하고 감정적이었던 반면에 동생 토마스는 오리지널 독일 성향으로 무뚝뚝하고, 재미없고, 엄격하던 모양이다.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다시 형제 상봉한 뒤로 토마스의 아들 클라우스 만을 비롯한 토마스의 자식들마저 아버지보다 다감하고 다정한 하인리히를 더 따랐다고 한다. 작품 성향도 완전히 다르다. 1929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마스 만이야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읽기 위해서 조금의 인내가 필요한 상징과 아이러니, 심리묘사, 서사, 성서를 기본으로 한 작품을 주로 쓴 반면에, 내가 읽은 하인리히는 (<충복>을 포함해 <운라트 선생 또는 어느 폭군의 종말>과 <앙리 4세> 이렇게 세 작품밖에 안 되지만) 기성의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해학 섞인 풍자로 엮어낸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 형제들이 다 늦게 화해할 때까지 우애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만 형제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첫 발자국을 이 소설 <충복 Der Untertan>이 찍는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쓴 <충복>은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치하의 좌익 진영으로부터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는다. 작품 속에서 하인리히 만은 빌헬름 2세 치세의 민족주의와 황제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말로는 자유주의를 주장하면서 고용주 (쁘티)부르주아로 살고 있는 변질된 자유주의한테도 서슴없이 손가락질을 날린다. 따라서 책 좀 읽겠다 마음먹은 독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등장하는 <마의 산>에서 완쾌되지 않은 7년의 요양소 생활을 뿌리치고 1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에서 보듯, 초기에는 다분히 민족주의적 입장에 섰던 토마스와 뜻을 같이 할 수 없었을 터이다. 훗날 토마스는 자기 친형이 쓴 <충복>을 “국가적 중상모략”이니 “무자비하고 무자비한 유미주의” 작품이니 하고 내놓고 반대의견의 개진하기도 했다. 그러니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형제간 싸움박질 하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가지 않게 해야지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이냐는 말이지.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상봉했을 때, 둘 다 반전주의자요, 반 나치, 즉 반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굳어졌고, 그래서 화해할 수 있었으니.


하인리히(왼쪽)과 토마스 만


  충복忠僕. 주인을 진심으로 섬기는 사내 종. 사전적 의미는 이렇지만 풍자적으로 쓰면 충복보다 충견忠犬, 주인을 진심으로 따르는 개와 비슷하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하인리히 만이 제시한 충복의 전형은 네드치히 시의 제지공장 사장 헤슬링 씨의 맏이이자 외아들인 디데리히. 아버지 헤슬링 씨는 오래된 제지공장에서 수공예지를 만드는 공원 생활을 오래 하다가, 마지막 전쟁으로 불리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몸에 포탄 파편이 박힌 상태에서 돌아와, 이제는 늙어 공장 운영을 지속하기 힘든 사장으로부터 제지 기계를 구입해 창업을 했다. 아무리 19세기였다 해도 적수공권에서 시작해 가업을 이루어 유지하기 위해서 치밀한 사업가로 변모해야 했고, 만사가 불여튼튼, 매사 엄격하고 신중한 몸가짐을 일상화해야 했는데 이는 아내와 아들과 두 딸로 이루어진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 특히 아들을 훈육하기 위한 최선, 최고의 방법은 회초리였다. 헤슬링 사장 역시 사소한 잘못이라도 외아들 디데리히의 엉덩이에 가차없이 회초리를 날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이한테 제일 무서운 존재로 등극해버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이는 공상을 좋아하고, 겁이 많고, 귓병을 자주 앓았다.

  엄마 헤슬링 부인은?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가 자주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음, 아빠가 저리 아이를 훈육하는데 엄마가 가만히 있으면 남들이 나더러 물러 빠진 엄마라고 할 지도 모르지, 분명이 이렇게 생각해, 타당한 일 없이 고의적으로 디데리히를 매질하기에 이르렀다. 디데리히 입장에서 아빠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때리는데 엄마는 심심풀이 하기 위해 때리는 것 같아, 엄마에 대한 존경심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별로 생각이 없는 엄마. 심지어 나중에 디데리히가 베를린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아버지가 늙어 숟가락 놓아 장례를 치르러 아들이 오자, 엄마는 아버지가 외아들한테 이런 걸 희망했다고 없는 일을 지어낼 정도다.

  “나는 아들 디데리히를 통해서 영생할 것이고, 디데리히는 아버지(사실 주장하는 바는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들이 척 들어보니 거짓말이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병적으로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거든. 어떤 집안인지 감이 딱 잡힌다. 이런 부모에게 배운 것이 있어서 디데리히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린 여동생들에게 권력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받아쓰기를 시키고, 일부러 어려운 문제만 내서 동생들을 매우 잔인하게 처벌해놓고, 시간이 가면 눈물을 짜던 동생들한테 마음이 좋지 않아 용서를 빌고는 했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약하다니까. 근데 마음도 상대를 봐 가며 약해지는 모양이다.

  김나지움 4학년 시절에 학급에 딱 한 명 있던 유대인 급우 앞에 십자가를 턱 내려놓고, 이 앞에 무릎을 꿇으라 요구했다. 유대인 아이가 십자가 앞에서 조아릴 수는 없는 법, 아이는 완강하게 거절했고, 그러자 자신을 둘러싸고 행악을 방관하는 급우들 다중의 힘을 믿어 유대 아이를 줘 패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디데리히한테 박수와 지지를 보냈다. 아직 1차 세계대전도 터지기 한참 전인데도 그랬다. 하여간 디데리히는 이 일을 네트치히 시의 기독교인 전체를 대표한 일이라 조잘댔고, 학급에서의 권력이 무한상승 했으며, 유대인 징벌의 책임과 죄의식을 집단이 공유하니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당연히 교사들도 이 일을 방관하기만 했다. 당시에 전 유럽이 비슷했다. 이후 디데리히는 새로 전임해 온 담임의 총애를 받아, 명예를 감안해 학급 반장과 비밀 감시자를 겸임했으니, 권력의 맛을 제대로 본 것. 그리고 교사와 교장이라는 학교 내 ‘권력’과 가까워야 한다는 진리를 배운 계기였다.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베를린대학에 입학한다. 당연히 연애사도 있지만 디데리히의 저급한 인간성이 두드러질 뿐 별것 없으니 연애사는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19세기에 처녀 신세 조져놓고 가세가 기울자 트집을 잡아 아가씨의 아버지한테 모욕을 주어 관계를 끊어버리면 나쁜 인간 맞지? 같은 동네에서 약국 약사를 지망했던 1년 후배 호르눙이 입학하자 “노이토이토니아”라는 클럽에 들어간다. 당연히 처음부터 흔쾌히 들어간 건 아니다. 몇 달간 간을 보다가 앞뒤 사정 보고 들어간 건데, 남자다운 씩씩한 기상과 이상주의를 배우는 걸 목표로 하고, 정식 회원이 되려면 결투를 해야 했다. 진짜 펜싱 칼을 들고. 경기용은 날이 없고 뾰족한 첨단 끝을 동그랗게 만들어 다치지 않게 했지만, 진짜 칼엔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 이때 비벨이라는 이름의, 법학을 전공한다는 것만 가지고 디데리히한테 절대적 존경을 받는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선배가 있어서 기꺼이 결투에 응해주는데, 이때 디데리히는 평생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써먹게 될 뺨에 길게 꿰맨 흉터를 갖게 된다. 이게 당대 독일 대학생한테 큰 유행이었다. 남자를 더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일종의 성형술이라 보면 된다. 게다가 머리에도 상처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으니 운동을 하지 않아 퉁퉁한 비만 스타일의 디데리히한테는 얼마나 좋은 액세서리였는지!

  그러나 대학 졸업과 동시에 1년 동안 군대 복무를 해야 했다. 군의관이 디데리히를 척 보고 하시는 말씀이, “우리는 조만간 네 배 속에 가득 든 기름 덩어리를 제거할 것이다.” 하여간 입대를 해 신병 훈련소에 가서도 이리저리 뺀질거리다가 네트치히 살 때 어린 시절의 주치의 오이토이펠 원장한테 편지를 보내 자기한테 갑상선종과 구루병 증세가 있다고 증명서를 만들어 보내줄 수 있느냐고 편지를 보낸다. 의사 오이토이펠 선생은 우리 주인공에게 답장을 보내지 않으며, 훗날 디데리히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후에 자유주의자 당원이자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의 신분으로, 민족주의당 디데리히 헤슬링과는 철천지원수로 만나게 된다. 디데리히는 도저히 군대, 특히 훈련소의 격한 훈련을 견딜 수 없어 노이토이토니아 클럽 회원의 권력층 아버지한테 부탁해 거의 모든 훈련에서 열외 조치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조기 제대를 한다. 그래도 권력이 좋기는 좋다. 나중에 네트치히 시의 재향군인회 간부까지 되는 걸 보면.


  이제 대학도 졸업하고, 아버지도 세상 뜨고, 병역도 마쳤으며, 학위도 따 화학 박사가 되어 금의환향, 네트치히 시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인 민족주의자당의 실세로 등극한다. 당연히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게. 처음엔 아버지가 남긴 작은 제지공장의 사장으로 시작한다. 황제를 위한 황제에 의한 황제의 나라를 꿈꾸며 전 세계를 지배할 독일 제국의 영광을 위해 봉사할 마음이지만, 처음부터 잘 나가는 건 아니다. 젊은 디데리히 헤슬링 사장은 작은 네트치히 시에서도 권력 있는 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온갖 치사한 일을 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한다. 이런 것을 전부 다 하인리히 만 특유의 골계와 풍자 속에서 진행한다. 본문만 759페이지로 작은 분량이 아니다. 그걸 거의 다 이렇게 가공한 블랙 유머로 채우면 독자는? 그렇다. 멀미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지막 결말이 재미있다. 당연히 어떤 장면인지 안 알려드린다. 세상의 찌질한 남자 디데리히 헤슬링의 출세길을 따라가 보시라. 32,800원. 책값이 비싸서 행여 취향에 맞지 않으면 낭패일 터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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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06 0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줄리언 반스,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화요일. 에르난 디아스, <트러스트>
수요일. 마리야 스테파노바, <기억의 기억들>
목요일. 아고타 크리스토프, 《잘못 걸려온 전화》
금요일. 제임스 볼드윈, <조반니의 방>
 
먼고 해밀턴
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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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출생해 스물네 살 때 뉴욕으로 건너가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단다.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잭 스페이드 같은 곳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니 틀린 말은 아니다. 수석 디자이너면 뭐해, 열두 시간 교대근무 하는 데. 스튜어트가 대단한 게, 맞교대 하면서 무슨 시간이 났는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소설을 썼으니 소설가로도 이름을 높이게 만든 <셔기 베인>이란다. 이게 영국과 미국의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했지만 (32곳의 미국 출판사, 영국 출판사 12군데) 하여튼 결국 미국의 독립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어 시장에 나왔고, 2020년에 덜컥 부커상을 받는 바람에 이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부커상이 그렇다. 무명이었다가 한 방에 스타로 뛸 수 있게 만드는 권위.

  우리나라에서도 <셔기 베인>이 센세이셔널했지 아마? 그래서 한 김 빠지길 기다렸다가 읽겠다고 마음먹었었다가, 날이 가면서 그만 잊고 지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3년 가까이 지났다. 그러다가 인터넷 책방 알라딘의 AI가 나를 위해 이 <먼고 해밀턴>을 추천했다. 나는 무릎을 치며, 아, 이 작가가 <셔기 베인>을 쓴 이지? 기억이 나서 얼른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가 읽었고, 모두 5백 페이지 분량인데, 270페이지까지 읽은 다음, 도무지 읽어주지 못해 그냥 덮어버렸다. 그러면서 만일 2001년 말에 <셔기 베인>을 읽었다면 분명히 내 돈 내 산이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이 책의 독자평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나 말고 감격에 겨워 읽는 독자가 있을 것일 터, 위안을 삼자, 뭐 이 정도 선에서 마감을 하고, 도서관 “내 서재”의 “관심도서” 목록에서 얼른 <셔기 베인>마저 지워버렸다.


  먼고 해밀턴. 원래 책 제목은 <젊은 먼고> 또는 <어린 먼고>다. 열다섯 살이긴 하지만 애가 좀 늦게 되는 아이라 여전히 어린 아이 수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3. 당연히 알 거 다 알고, 어차피 이왕 해볼 거 할 준비가 완료된 ‘일상 거총’ 상태의 탱탱한 사춘기 소년 생각하지 마시라. 주워듣기로 <셔기 베인>에서도 주인공 셔기가 열다섯 살 난 늦된 아이로 알고 있으며, 그 작품처럼 <먼고 해밀턴> 속에도 자전적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고 하니 스튜어트도 좀 그랬지 않나 싶다.

  거의 모든 포유류가 그렇지만 특히 어린 인간종에게는 끔찍할 만큼 슬픈 본능이 있다. 부모, 특히 어미가 아무리 새끼에게 모질어도 새끼는 어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 스스로 먹고 살 능력이 없는 새끼 시절에 생존을 위해 이런 본성이 특화해 진화했을 것이다. 이러다가 대가리가 커져 자기 혼자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힘이 세지 않은 엄마한테 박박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기성세대는 이걸 ‘제2의 탄생’이라 주접 떨며 아무쪼록 여드름이 돋기 시작하는 자식 새끼가 큰 탈 없이 사춘기 시절을 지나기 바라는 거고. 근데 그것 마저 지나 이제 성인이 되면 전세 역전이다. 그러니 사춘기 자식을 둔 부모들이여, 미리미리 자식새끼한테 잘 하시라. 나중에 후회 말고.

  우리의 먼고는 그러나 이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엄마 모모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엄마 이름이 모모다. 몸에 털이 많아 모모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모모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기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 그렇게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듣는 거다. 원래 이름은 모린. 지금은 대외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인 AA 클럽에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서 “월목 모린”이라 불린다. 실제로는 책에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열다섯 살 때 지금은 ‘빅 하하’라고 부르기로 한 해밀턴 군을 만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해서 맏이 하미시, 대외적인 호칭으로 ‘하하’를 낳았고, 이어서 줄줄이 둘째 조디와 막내 먼고를 출산했으니 이 때가 열여덟 살이었다. 동네 논두렁 건달 가운데 대빵이었던 빅 하하는 어울리지 않게 패싸움에 가담을 했다가 칼을 맞아 드런 세상 겨우 스무 해를 살고 숟가락 놨다. 이후 모모는 술에 빠지기 시작해 곧장 깊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접어들었다. 술만 취했다 하면, 혹은 몸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대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많은 의존자들이 그러하듯이 전혀 다른 인격체로 돌변해 집구석에 뭐 제대로 남아남는 것이 없었다. 그럴 때면 어린 조디는 동생 먼고를 데리고 모모가 찾을 수 없는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 지금 엄마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건 엄마 모모가 아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인간 ‘태티 보글’이라고, 이렇게 달래면서 열여섯 살이 되었다. 이젠 모모도 함부로 자식들 앞에서 테티 보글로 변신할 수 없다. 힘이 달리니까. 완력도 달리니까. 까불면 오히려 제압당하니까. 그러게 내가 뭐랬어, 잘 하라고 했잖아.

  맏이 하미시는 벌써 열여덟 살. 아빠 빅 하하의 대를 이어 글래스고 빈민가이자 개신교 구역 논두렁 건달의 왕초 자리를 꿰찼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완력으로 무지르고 그게 괴롭힘으로 나타나고, 특히 늦된 먼고를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거칠게 “키우려고” 나름대로 열심이다. 열여덟짜리 형이 열다섯 살짜리 동생을 키운다고 고생이 자심하겠지? 읽어보시라. 그것도 고생일 듯하다.


  엄마 모모는 자식들한테 관심이 없다. 혹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아이 셋 달린 홀아비 조키와 열애중이다. 자기 생각엔 서로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독자가 보기엔 조키 생각으로는 그저 섹스 파트너 아닐까 싶다. 집에 불러 며칠 살다가 싫증나면 쫓아버리고, 며칠 지나 또 아래가 궁금해지면 전화 찍 해서 불러올 수 있는 여자. 문제는 모모가 조키와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는 거. 처음에 말했듯이 내가 책을 다 읽은 게 아니라 단정하지는 못하지 믿지도 마시라. 그리하여 모모는 조키의 집에서 살다가 쫓겨나야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제정신일 수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엄마. 모모 역시 맏아들 하미시처럼 먼고가 사내답지 못하다는 것이 고민이다. 그래서 같이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다니는 두 남자, 문신이 촘촘한 젊은 갤러게이트와 쉰 살 이상으로 보이는 세인트 크리스토퍼에게 먼고를 남자답게 대해달라고 함께 2박 3일의 낚시 여행을 떠나게 한다. 이래서 대한민국 천안시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북위 55도 51분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도 북쪽으로 아무리 5월(6월인가?)이라도 반바지에 점퍼 하나 입혀서 캠핑을 떠난다.

  두 명은 같은 알코올 중독자 모임인 AA 클럽 회원이면서, 발리니 교도소 감방 동기이며, 여전히 하루 종일 맥주와 위스키, 기타 에틸 알코올을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액체를 섭취하기에 조금의 게으름이 없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둘 다 양성애자이다.

  먼고는 엄마의 무관심과 엄마를 간절하게 원해서 곱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조금의 불편한 상황에 처하기만 해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일종의 틱 증상을 보인다. 자신도 그것을 알아 얼굴을 긁어대 잘 생긴 모습이기는 하지만 흉터가 많다. 선한 누나 조디 역시 틱 증상이 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히히익, 하며 엽기적으로 웃어버리는 것. 이외에도 아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 유독 나이 많은 남자한테 끌려, 학교 선생과 밀회 끝에 임신하는 바람에, 선생은 교장한테 전화 한 통으로 사표를 가름한 채 도망쳐버리고, 아랫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중절수술을 받는다.

  이 정도면 내가 도무지 더 이상 읽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듯하다.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이 참담한 광경, 특히 먼고한테 벌어지는 참혹한 장면을 발갛게 묘사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불과 몇 달 만에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았던 베스트 셀러 <리틀 라이프>를 다른 버전으로 읽는 일이 생겼던 거다. <셔기 베인>도, <먼고 해밀턴>도 그리고 <리틀 라이프>는 말할 것도 없이 독자 평이 좋다. 굳이 내 독후감을 믿을 필요 없다. 단지 나는 이런 스타일의 작품하고 도무지 맞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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