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마샤르의 환상 서문문고 318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피종호 옮김 / 서문당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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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미국 극작가의 작품을 읽고 곧바로 독일 출신 극작가의 작품은 연이어 읽게 됐다. 굳이 나이로 구분해보자면,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유진 오닐,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와 테네시 윌리엄스, 이렇게 비교해야 하겠지만, 사실 세대 차이는 이들의 특징과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미국의 극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단위가 주로 가족인 반면, 독일(어권) 극작가들은 한 나라, 도시 등 보다 넓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포착하려 하지 않았나, 하는 의미.
  이것은 필연적으로, 아니, 다시 말해야겠다. 아마추어 독자인 내가 느끼는 한에 있어서, 미국 극작가들의 인간 개별적인 감상이 훨씬 호소력이 있는 반면, 독일 극작가들의 작품에는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과 풍자가 두드러진다. 비록 내가 미국의 극작가들을 더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독일(어권) 극작가 역시 멀리 할 수 없는 이유다.
  여태 읽었던 브레히트는 단 한 권.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 <갈릴레이의 생애>와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들어있는 동서문화사 책이었다. 극작가의 절친한 친구가 작곡한 쿠르트 바일의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의 대본을 통한 것까지 합하면 <시몬 마샤르의 환상>이 다섯 번째 만난 브레히트의 극작이지만, <마하고니…>는 읽지 않은 걸로 치자.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백억 프랑을 들여 견고하게 쌓은 마지노선을 우회해 프랑스를 침략한 독일군에게 어이없이 파리를 내준 1940년 6월 14일부터 6월 22일까지, 생마르탱 시市를 무대로 하고 있다. 6월 22일? 놀랍게도 세계대전 개전 초기인 1940년 6월 22일에 독일과 프랑스는 휴전한다. 물론 후세의 역사가들은 당시 휴전 협정에 서명한 비시 정부를 ‘괴뢰 정부’라 일축하지만, 하여튼 일신상의 이유로 나치에 협력하기로 결정한 앙리 필립 페텡 원수가 휴전 협정에 서명한 것은 사실이다. 이로써 프랑스는 비록 잠깐이지만 독일의 속국으로 편입된 것도.
  베르톨드 브레히트는 이 사실과 저 먼먼 15세기 시절 백년전쟁 당시의 샤를 7세, 즉 오를레앙의 처녀, 잔 다르크가 참전하고 화형을 당했던 시기와 뒤섞어 비교하는데, <오를레앙의 처녀>를 시간 날 때마다 탐독하던 생마르탱 시의 한 여관에 하녀로 일하는 소녀 시몬 마샤르의 꿈과 백일몽을 통해 당시 인물들과 등장인물이 겹치게 만들어 놓았다. 즉, 시몬의 꿈이나 백일몽 속에서 생마르탱의 시장은 샤를 7세로, 탈영한 프랑스 중대장 오노레 페텡은 부르군트 왕국의 공작으로, 여관 주인의 어머니 마리 수포는 샤를 7세의 모후 이자보 등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장소는 현재, 독일군이 코앞에 있거나 이미 진주한 생마르탱 시의 운송업을 겸해 화물차가 몇 대 있는 여관의 큰 마당에서.
  브레히트가 강조하고자 하는 건, 저 옛날 오를레앙의 처녀가 프랑스의 국법에 의하여 화형에 처해졌듯이, 1940년 6월의 생마르탱에서 잔 다르크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시몬 마샤르 역시 프랑스 사람들로 구성된 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모종의 조치가 취해진다는 것. 그럼 법원의 판사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부 친 나치 성향의 인물이냐? 오히려 그러면 그만인데, 그렇지 않다는데 더 큰 비극이 있다. 아니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한 환경의 변화에서 상류의 시민들이 자신의 보전을 위하여 소신을 버리는 행위일 수 있다.
  아쉽게도 브레히트의 작품으로는 특유의 반짝거림이 좀 덜하다. 물론 이건 바로 전에 테네시 윌리엄스의 명작을 읽을 후유증일 수도 있어서 전적으로 작가 탓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하여튼 독자가 읽기에 그랬다. 독자의 눈이 쓸데없이 높아져 그랬다 하더라도 다 그게 팔자라고 생각해 박하게 독후감을 쓴다고 독자를 원망하지는 말 것. 아무리 그래도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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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집필가께서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고 해 득달같이 가봤다. 바로 이 책이다.

 

 

 "새 번역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새로운 역자가 새롭게 작업해서 기존 김규종 번역을 극복하는 서적이라고 이해해왔었는데, 거 참. 좋다, 좋아. 새 번역본이란 다만 기존의 번역과 다른 번역본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면 반박할 여지가 없으니.

  이 책을 번역한 추영현 씨는 1930년 생으로 2019년에 생을 마감했다. 일간스포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박정희 유신정권의 함정수사에 걸려 긴급조치 1호와 4호, 그리고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로 옥고를 치룬 전력이 있다. 출감 후에도 이어지는 유신과 전두환 정권 치하에 감히 긴급조치와 반공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인사를 재취업시켜줄 회사는 한 곳도 없어 틈틈히 번역 일을 하고는 했다.

 2011년에 긴급조치와 반공법이 위헌으로 판결이 나 사면 복권이 되었어도 지난 세월을 어찌 돌이킬 수 있었을까. 나름대로 굴곡많은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큰 희생을 당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추영현 씨가 1930년생. 해방이 될 때 나이 열여섯. 일본어를 국어인줄 알고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추 씨는 출감 후에 스피노자, 로크 등을 번역했고, 특히 나도 읽어본 <겐지 이야기>는 유려한 문체로 빛나는 번역을 만들었다.

 

 

 추 씨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괴벨스 프로파간다!>를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 지금 보니 이것도 저작이 아니라 번역이다.

 

 

 

 그런데, 1930년에 식민지 조선 땅에서 태어나 활발하게 일본 책을 번역하고, 서양 책을 중역해온 추영현 씨가 러시아 말에도 능통해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이번에 영혼이나마 다시 환생해 번역했다....고 믿을 수도 있는 얘기를, 그것도 유명인이 하시면 안 되지.

 차라리 해당 포스트를 통해 전에 책을 낸 출판사 열린책들에게 역자 김규종과 조속히 판권 협의를 거쳐 중판을 내라고 독촉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독자들 또는 자신의 수강생들로 하여금 중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중역의 의심을 받는 책을 구입하게 할 수도 있는 언행은 삼가는 것이 옳았을 듯하다.

 자신의 강의에 이 책을 쓰건 말건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이 두 권의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양은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수백년이 흐른 다음의 존재 의의는 20세기에 70년간 존속했던 소비에트 연방에서 인민들의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만든 대표적인 의식화 교재라는 것. 21세기에 이 책을 읽는 일은, 백년 전 지구인들 가운데 일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나도 <강철은....>을 좋아하지만 결코 문학작품, 소설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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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13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대학생 때 읽었는데 21세기에 읽기엔 참 낡은 작품이기는 하죠. ㅎㅎ

Falstaff 2021-01-13 09:51   좋아요 1 | URL
이런 작품들의 운명적 종착점이 다 그런 거 같더라고요. 쉽게 헤지는 거.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13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작권 따위는 아몰랑하는 출판사
의 책은 도저히 사 줄 수가 없네요.

게다가 중역의 의혹까지 있다면
더더욱! 왜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지...

아니 중역이면 중역이라고 당당하게
라고 수정해야 하나요.

Falstaff 2021-01-13 10:27   좋아요 2 | URL
대단히 슬프게도, 일어 중역의 수준이 직역보다 ˝읽기가˝ 나은 경우가 왕왕 있더군요. 일본인들은 번역에 무척 공을 들이는 반면, 우리나라는 전통의 속도전, 빨리빨리, 후딱 번역을 해치우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 결과가 오히려 일어 중역이 직역보다 읽기가 수월해지는 ㅋ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현상이 벌어지곤 했던 거 같습니다.
맞습지요. 중역이면 어떠냐 이겁니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체코 언어 번역이 사실은 중역이다, 하면 어디가 덧나나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1-01-13 10:31   좋아요 1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느 출판사에서 포르투갈
어를 사용하는 작가가 쓴 책을 냈는데,
역자가 독일어 번역하시는 분이라 이거
슨 중역이다라고 유추해서
별점 테러(1개!)를 가했더니 관련자인지
마구 뭐라해서 식겁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 책은 사긴 했는데 그 때의 트라
우마 때문인지 아직도 못 읽고 있습니다.

속도전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절대 우리의 영업 비밀을 까지 마라가
아닌가 싶더군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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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읽었다고 착각한 것은 책 표지 그림으로 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봤기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은 후로 유진 오닐,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 등의 미국 극작가들의 작품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경제와 자본주의, 반공주의 체제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제일 기초적인 단위인 가족 사이에서조차 의사소통 부재에 의한 단절과 소외, 물질에 대한 집착을 집요하리만큼 사실적으로 그린 미국의 극작가들. 그 가운데 인간의 허위의식과 그것에 대한 역겨움, 욕망으로부터의 소외, 단절, 탐욕 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명품 극작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를 보탠다. 물론 같이 실린 <유리 동물원>도 명품의 관을 써야 마땅하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정확한 비교가 가능하지 않겠지만, 한정된 공간을 사용하는 희곡을 영화화한 것보다는 극작이 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폴 뉴먼 등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배우들을 감상하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미시시피 강 연안의 델타 지역에 잭 스트로와 피터 오첼로라는 동성 애인 소유의 거대 농장에 일꾼으로 들어간 폴리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관리자 자리에 올랐고, 세월이 흘러 잭 스트로가 죽는다. 애인이 죽자 외로움 때문에 그랬는지 거의 곡기를 끊은 피터 오첼로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래 2만8천 에이커에 달하는 거대 농장을 소유하게 된, 천생 농장의 경영주이자 자본가인 폴리트 씨. 세월은 그에게도 손톱을 숨기지 않아 어느덧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되고, 결장에 생긴 심각한 암종이 폐와 간, 신장 등 온몸에 전이가 되어 죽음을 예약하게 된다.
  변호사 큰아들 구퍼와 그의 아내 메이, 풋볼 해설가인 둘째 아들 브릭과 매기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이다에게 아버지의 예비 개복수술 결과, 암이 아니라 단순한 결장 경련증이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큰아들 내외는 아버지가 평소에 둘째를 편애해 그에게 농장을 물려주지는 않나 싶어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가假 유언장을 만들어 온다. 작은아들의 처 매기는 구퍼에겐 다섯 명의 자녀와 곧 여섯 번째 자식이 나올 예정인 반면에 자신들에겐 아직 아이들이 없는 것이 유산 상속에 걸림돌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굳이 주인공이라면 둘째 브릭과 매기, 그리고 아버지 폴리트 씨라고 할 수 있다. 브릭은 타인들로부터 동성애 관계라고 의심을 받을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쌓은 풋볼 동료이자 친구였던 스키퍼가 죽은 이후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버리는데, 자신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아버지에게 허위에 대한 역겨움이라 설명한다. 당사자인 브릭의 말을 제외하고 스키퍼와의 관계가 우정을 넘어선 동성애 관계였다는, 또는 아니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극에서는 찾을 수 없다. 만일 동성애 관계였다면, 브릭이 주장하는 허위, 허위 행위를 스스로 행하고 있기도 한 것이리라.
  브릭의 처 매기가 바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오른 고양이’. 남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 매기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너무도 잘 아는 삶을 살다가 부잣집 아들인 브릭과의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브릭의 입장에서는 매기를 사랑해서 결혼했다기보다 그녀가 스키퍼와의 관계에 절묘하게 파고들어 어떻게 하다 보니 연을 맺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스키퍼의 죽음에 매기가 관련된 걸 안 이후 브릭은 여전히 빼어난 미모로 타인의 시선과 욕망의 한 가운데에서 남자들의 욕망이 가득한 시선을 즐기는 매기와의 접촉을 거부하고 산다.
  결혼 후에야 부유한 환경의 여유를 즐기기 시작한 매기 입장에서는 알코올 의존증에 점점 깊게 빠져가는 남편과의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리하여 햇볕에 달궈진 양철 지붕 위에 오른 고양이처럼 가문의 상속을 받기 위해 팔짝팔짝 뛸 수밖에 없는 처지. 상속 논의가 결국 자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이르자 건조한 결혼생활을 이어온 매기는 결정적인 마지막 뛰어오름을 감행하는데, 어떤 것인지는 매우 훌륭한 작품의 클라이맥스이니 직접 확인하시기 권하는 의미에서 알려드리지 않겠다.
  나는 예순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폴리트 씨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결장암인 것을 알고 난 뒤 집안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내가 산다면 얼마나 더 산다고 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그저 지나가는 풍경처럼 바라만 보다가, 생일을 맞아 이젠 단순하게 결장 경련증에 불과하다는 판정을 받아 앞으로 적어도 십오 년이나 이십 년은 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갑자기 얻은 천부적인 사업가이자 농장주. 폴리트 씨에게 주어진 허위의 새 생명은 그를 원래보다 더 공격적이고, 여태까지 참아온 것을 만회하기 위해 매사를 모진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강했던 사람이 약자의 위치에 떨어졌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점점 공격적으로 바뀌는 것이 인지상정. 그도 역시 새로운 삶을 얻자마자 아들 브릭에게 젊은 여성을 향한 욕정과, 이젠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 며느리들의 이전투구 등 세상 잡사에 대한 속물적 욕망을 드러낸다. 말기 암이 수반하는 극심한 고통까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 채로. 자기의 2만8천 에이커에 달하는 거대 농장과 몇 천만 달러의 현금재산을 사랑하지만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것 같고, 동성애 성향인지도 모르는 둘째에게 상속해주느니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쪽을 선택한다.
  애초에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부르주아 가정 속에서의 불협화음. 이 혼돈의 와중에서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매기는 매사에 의욕을 잃어버린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자 남편인 브릭조차 어이없어 그냥 웃어버리게 만드는 마지막 발톱을 날리며 드라마를 완전한 비극 속에서 건져낸다.


  <유리 동물원> 역시 수작. 이 두 편을 함께 담아 책은 만든 민음사에게, 실로 오랜만에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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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2 0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가족간 막장 대화 한 장면

작은 아이가 오랜만에 집에 왔습니다. 때마침 양철지붕을 다 읽은 참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 표지를 보여주면서, 얌마, 너 말야,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눈에 욕망이 가득해서 얼굴을 어깨에 기댄채 바라보고 있는 거야. 해야겠냐, 안 해야겠냐.
아이 말하기를, 해야 합니다. 안 하면 천하의 나쁜 새낍니다.
근데, 저 폴 뉴먼이란 작자는, 안 해.
와, 때려 죽일 놈 같으니라고. 말도 안 됩니다.

이때 냉장고 문을 열던 아내가 책 표지를 슬쩍 쳐다보고 한 마디 합니다.
야, 나 같아도 했겠다. 그새끼 정말 나쁜 새끼네.

제가 이렇게 삽니다.

잠자냥 2021-01-12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별 다섯 개 주시니 왠지 제가 다 기분이 좋군요. ㅎㅎ 여기 실린 두 작품 모두 제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라서요. 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보다 여기 실린 작품들이 더 좋더라고요. <유리 동물원> 때문에 닥치고 테네시 윌리엄스 팬이 되었다는. ㅎㅎ

Falstaff 2021-01-12 10:42   좋아요 2 | URL
저는, 정情도 첫정이라고 미국 극작 가운데 <밤으로의 긴 여로>가 젤 좋고요, 양철지붕이 그 다음 순서 정도 되겠군요. 아휴, 괜히 버터 냄새 운운하면서 부정하고 싶은데 도무지 미국의 극작가들, 대단하다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실 윌리엄스는 욕망이라는... 때문에 그리 기대하지 않고 읽었습지요. 그래 더 화들짝 놀랐는지도 모릅니다. ^^

유부만두 2021-01-12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NT live 영상으로 보고 희곡을 읽어서인지 그 작품이 맘에 들었어요. 퇴폐적이고 출구 없는 지옥.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런데 전 그 지붕 위에 고양이 대신 바이올린으로 제목을 헷갈려 하고 있고요.

Falstaff 2021-01-12 20:17   좋아요 0 | URL
ㅎㅎ 유쾌하신 유부만두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바이올린. ㅋㅋㅋㅋ
뭐 독자가 다 같은 감상이면 재미없잖아요. 전 욕망전차가 좀 폭력적이라서 그냥 에그머니, 했던 겁니다. 영화에서도 말론 브란도가 걍, 아이고, 그 아까운 비비언 리를 말입죠.
근데, 양철 고양이, 꼭 읽어보셔요. 물론 기대가 크면 안 됩니다. ㅎㅎㅎㅎ
 
콜롬비아 아스무까에스 톨리마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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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카제 1.3kg 구입 이후 0.5kg 사서 마심. 맛있음. 순한 맛. 산미 약간 못 미치지만 가격 대비 대박. 뭘 더 바라?
진하게 마시면 더 좋음. (여기에 ˝죽임!˝이라 썼었는데 어감이 좀 그래서 삭제) 여리게 마시면 약간 덜 죽이지만 그래도 홀랑 넘어감. 다만, 구입한 후에 얼른 얼른 드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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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기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264
레오 페루츠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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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강명순에 의하면 함부르크 대학에서 현대 독일문학을 전공했던 은퇴교수 한스-하랄트 뮐러는, 레오 페루츠를 브로흐, 무질, 에른스트 바이스 같은 거장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뮐러 교수는 자신의 대표 저작이 바로 <페루츠 전기>라는 점이 좀 거슬린다. 에른스트 바이스는 (읽어본 책이 없으니)제쳐두고, 브로흐와 무질에 대고 비벼? 자신이 전기를 쓴 인물이니 조금 과장했거나, 뮐러 교수의 독특한 기호가 페루츠하고 딱 맞아 떨어진 경우라고 보이는데, 뭐 아니면 말고.
  또 다니엘 켈만은 페루츠를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했고, 오스트리아 작가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환상소설의 거장’이라 했다 하지만, 진짜로 <스웨덴 기사>를 읽어보면 이 책을 근거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환상소설을 운운할 수는 있겠으나, 대가나 거장이란 칭호까지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라틴 아메리카의 붐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또는 ‘환상소설’이란 말 대신에 그냥 우리가 흔히 쓰는 ‘액자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서문과 결론 형식의 마지막 장 사이에 세 개의 장part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서문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본문 세 장이 독립된 단위로 이를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을 굳이 ‘마술적’이라거나 ‘환상’이란 말을 쓰는 건, 서문에 등장하는 한 여인, 결혼 전의 성姓이 토르네펠트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네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여섯 살 때의, 이미 죽은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가 9년 전과 당시에 만나게 될 어찌 보면 악마 또는 악마가 현현한 주교의 시종 정도 되는 물레방아 주인의 영혼 장면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괜히 거창하게 말하지 말자. 우리가 쉽게 빠지는 함정이, 다니엘 켈만과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가 어떤 환경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걸 간과하는 일이다. 신문 문화면 한 페이지 전체를 장식했던 서평일 수도 있지만 책 뒤표지에 작은 글씨로 쓰인 한 마디의 추천사일 수도 있으니.
  이 책? 재미있다. 마음먹으면 휴일 하루 동안 책 다 읽고 독후감도 쓸 수 있다. 3백 쪽 분량의 장편이라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책의 스토리가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다. 물론 명작이나 수작이란 수식이 달리기는 힘들다. 그래 위에서 브로흐와 무질에게 비빌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했던 것. 하지만 나더러 무질을 읽을래, 페루츠를 읽을래? 묻는다면, 어차피 끝까지 읽지 못할(지도 모르는) 무질이 아니라, 하루 이틀의 즐거움을 확실하게 줄 수 있는 페루츠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스토리는 딱 서문만 소개한다. 소설 자체가 서문에 나오는 일종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 크리스티네는 첫 남편과 사별하고 덴마크 왕국 추밀원 의원이자 훌륭한 외교관인 라인홀트 미하엘 폰 블로메와 재혼을 하는데, 18세기 중엽, 50세가 되자 옛 기억들을 모은 책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풍경화>를 집필했고, 이 자료는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난 19세기 초에 원고를 발견한 손자가 이를 출간한다. 책에는 18세기의 다양한 폭동사건, 이를테면 잘츠부르크 대교구에서 발생한 개신교 소작농 추방사건, 콘스탄티노플 필경사들이 일으킨 폭동 같은 것들 들어 있고, 이들 사이에 가장 인상 깊고 강력한 이야기가 있었으니, “스웨덴 기사”라는 제목을 붙인 자신이 어렸을 때 돌아간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마리아 크리스티네 폰 블로메는 슐레지엔의 대단한 집안이 소유한 거대 장원에서 태어난 소위 은수저였는데, 매우 매서운 눈빛을 가졌지만 딸을 바라볼 때는 파란 하늘이 열리는 것 같았던 아버지가, 마리아가 여섯 살 때 스웨덴 왕 칼 12세의 악명 높은 군대에 들어가기 위해 러시아로 떠난다.
  칼 12세는 강력한 스웨덴을 건설하고 더 큰 왕국의 기틀을 닦고자 러시아와의 전쟁에 돌입했으나, 아뿔싸, 당시 러시아엔 불세출의 영웅이자 2미터가 넘는 신장, 건장한 남성을 품에 안고 팔로 조여 갈비뼈를 부러뜨려 죽이는 완력의 소유자, 게다가 젊은 시절에 네덜란드를 비롯한 서유럽 방면에 직접 가서 조선술 등을 배워온 실천가인 공포의 표트르 대제가 집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전 초기의 스웨덴 군은 파죽지세로 러시아 영토를 침공해 들어가고 있었고, 마리아의 아버지 토르네펠트 경은 전투에서 용맹하고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 예타 강 서부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고 이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스몰란드 용기병 연대의 사령관으로 진급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골스크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원동력이 되어 숱한 병사들과 장교들이 보는 앞에서 왕이 토르네펠트 사령관을 직접 포옹하고 양쪽 볼에 키스까지 해주는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그 해 7월, 스웨덴 군은 폴타바에서 전투 초기에 용기병을 지휘하던 토르네펠트 사령관이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죽고, 스웨덴 군도 표트르 대제가 이끄는 러시아 군에 쌍코피가 터져 심지어 칼 12세는 어머나 뜨거워라, 맹렬하게 도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토르네펠트 경이 장원에서 떠나기 전날, 외동딸 마리아 크리스티네는 아버지와 함께 전장으로 떠날 하인에게 들은 주술, 흙과 소금으로 속을 채운 오자미를 아버지의 군복 안감 사이에 꿰맨다. 이것이 두 사람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 위한 이미 검증된 방법이라면서. 몇 주 후, 밤에 누군가 마리아의 침실 창문을 누군가 두드렸고, 러시아로 떠난 아버지가 한 시간에 만팔천 킬로미터를 날 수 있는 말을 타고 와서 잠에서 깬 마리아의 얼굴을 감싸고 십오 분 가량 머물다 가버린다. 이후 가끔 찾아오긴 하지만 십오 분을 넘지 않는 시간만 이야기하고 얼굴을 감싸주고는 떠난다.
  그러다 파발마가 러시아 전장에서 도착해 아버지가 삼 주 전에 이미 죽어 매장을 했다는 기별을 가져오고, 이후 정말로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는데, 마리아는 도무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버지의 유령? 영혼? 마리아의 꿈? 몽유? 그러나 생생하게 와 닿는 피부와 목소리는 틀림없이 마리아의 진짜 아버지였던 것을.
  재미있는 작품. 읽어보셔도 후회하지는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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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11 09: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보다 먼저 번역된 <9시에서 9시 사이> 소개 문구 중에는 카프카와 비교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ㅎㅎㅎ 너무 엄청난 거장들하고 자꾸 이름을 나란히 올리는 감이 없잖아 있는 듯하네요. 아무튼 또 다른 작품이 번역되어 나오면 계속 읽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일단 재미는 있어요.

Falstaff 2021-01-11 09:40   좋아요 2 | URL
넵? 카프카요? ㅎㅎㅎ 재미있습니다.
<9시 - 9시>도 함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까지 썼다가 책 검색해보니, 이거 영, 재고해봐야겠습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1-11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무섭지만 ... 내 아빠도 아닌데 머...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1-01-11 10:07   좋아요 1 | URL
아하, 제가 제목을 무섭게 달아놨군요. ㅋㅋㅋ
재미있으니 금방 읽으실 겁니다.

붕붕툐툐 2021-01-12 00: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내 아빠도 아니래..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