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명한 문학평론가이자 집필가께서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새 번역본으로 나왔다고 해 득달같이 가봤다. 바로 이 책이다.
"새 번역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새로운 역자가 새롭게 작업해서 기존 김규종 번역을 극복하는 서적이라고 이해해왔었는데, 거 참. 좋다, 좋아. 새 번역본이란 다만 기존의 번역과 다른 번역본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면 반박할 여지가 없으니.
이 책을 번역한 추영현 씨는 1930년 생으로 2019년에 생을 마감했다. 일간스포츠 기자 생활을 하다가 박정희 유신정권의 함정수사에 걸려 긴급조치 1호와 4호, 그리고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로 옥고를 치룬 전력이 있다. 출감 후에도 이어지는 유신과 전두환 정권 치하에 감히 긴급조치와 반공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인사를 재취업시켜줄 회사는 한 곳도 없어 틈틈히 번역 일을 하고는 했다.
2011년에 긴급조치와 반공법이 위헌으로 판결이 나 사면 복권이 되었어도 지난 세월을 어찌 돌이킬 수 있었을까. 나름대로 굴곡많은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큰 희생을 당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추영현 씨가 1930년생. 해방이 될 때 나이 열여섯. 일본어를 국어인줄 알고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추 씨는 출감 후에 스피노자, 로크 등을 번역했고, 특히 나도 읽어본 <겐지 이야기>는 유려한 문체로 빛나는 번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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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씨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괴벨스 프로파간다!>를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 지금 보니 이것도 저작이 아니라 번역이다.
그런데, 1930년에 식민지 조선 땅에서 태어나 활발하게 일본 책을 번역하고, 서양 책을 중역해온 추영현 씨가 러시아 말에도 능통해서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를 이번에 영혼이나마 다시 환생해 번역했다....고 믿을 수도 있는 얘기를, 그것도 유명인이 하시면 안 되지.
차라리 해당 포스트를 통해 전에 책을 낸 출판사 열린책들에게 역자 김규종과 조속히 판권 협의를 거쳐 중판을 내라고 독촉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독자들 또는 자신의 수강생들로 하여금 중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중역의 의심을 받는 책을 구입하게 할 수도 있는 언행은 삼가는 것이 옳았을 듯하다.
자신의 강의에 이 책을 쓰건 말건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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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권의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양은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수백년이 흐른 다음의 존재 의의는 20세기에 70년간 존속했던 소비에트 연방에서 인민들의 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만든 대표적인 의식화 교재라는 것. 21세기에 이 책을 읽는 일은, 백년 전 지구인들 가운데 일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나도 <강철은....>을 좋아하지만 결코 문학작품, 소설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