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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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미래주의 문학의 기수.”

  이 말 한 마디 딱 듣고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1년 폴란드에서 출생한 유대계 작가.

  1885년생 스타니슬라프 비트키예비치. 1892년생 브루노 슐츠, 그리고 1904년생 비톨트 곰브로비치. 이 세 명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를 읽으면서 1920년대와 30년대에 폴란드 문학판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냐고 말한 적 있다. 이 절묘한 유대인 트라이앵글 사이에 1901년생 브루노 야시엔스키라는 작가가 소위 “미래주의 문학의 기수”라는 기치를 들고 나타났으니 어떻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내게 비트키예비치를 읽는 즐거운 고통을 선물해준 역자 정보라가 “옮긴이의 말” 첫 마디에 “브루노 야시엔스키(1901~1938?)는 진정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어느 시대에나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역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야시엔스키의 문학을 우리나라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한 역사적, 아니, 오버하지 말고, 문학적 소명을 갖고 번역에 임했다, 이렇게 오해해도 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지.

  브루노 야시엔스키는 1901년 폴란드 클리몬투프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유대계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가족이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전쟁은 더 치열한 국면으로 번졌다가 자동화기, 즉 기관총의 발달로 “전군 돌격 앞으로”라는 명령 대신 지루한 참호전 양상을 띄자, 삼국동맹측은 소위 봉인 열차에 블라디미르 레닌을 태워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을 관통해 북해를 건넌 다음 다시 스웨덴과 핀란드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보낸다. 삼국협상 측의 하나인 러시아로 하여금 전쟁에서 발을 빼게 만들려 했던 것이고 어쨌든 책략은 성공했다. 러시아에 도착한 레닌은 그야말로 어린애 팔목 비트는 격으로 로마노프 왕조를 거덜내고 혁명을 완수해 소비에트 연방을 구축하니, 이걸 소비에트 연방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본 16세 브루노 야시엔스키가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소년 브루노는 성장해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글쓰기를 실천한 시인, 소설가, 극작가, 그리고 공산주의자”가 된다. 이후 1918년에 다시 폴란드로 돌아갔고, 1929년에 소련 레닌그라드로 망명했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스탈린 체제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야시엔스키는 1938년에 소비에트 권력에 의하여 “면회 없는 10년 수용소 형” 즉 사형 판결을 받고 모스크바 부티르카 교도소에서 처형된 것으로 추정한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고, 시신 또한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미 할 말은 다 한 기분.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주인공은 피에르.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였으며, 노동자’였다’는 말은 지금은 불경기 여파로 공장에서 해고당했다는 뜻이고, 자신에게 지급된 측미기, 즉 마이크로미터를 누가 훔쳐가는 바람에 측정기 값 40프랑을 제한 나머지 임금 또한 이미 가불해 썼기 때문에 완전한 거렁뱅이 신세로 처박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머니에 있는 것이라고는 달랑 3수. 15상팀. 15/100프랑.

  피에르에게도 애인은 있었다. 자네트. 상점 점원이다. 모레가 성 카트린 축일인데, 이 상점에서는 점원들의 사기고양을 위해 매년 성 카트린 축일 날 밤마다 제법 큰 규모로 댄스 파티를 열어준다. 그래서 자네트는 며칠 전부터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며, 신발이며, 비단 스타킹 등속을 준비하느라 얼이 빠져 있었다. 미리 확 까놓고 얘기하자면, 자네트가 가을에 입을 옷 한 벌을 사주기 위해서 피에르의 월세 3개월치를 몽땅 가져다 바칠 만큼 피에르는 자네트한테 몰빵하고 있었던 반면, 자네트 입장에서 피에르는 자신한테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여러 남자 가운데 한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처럼 보인다.

  해고당했고, 일주일에 이삼일 정도는 자네트와 저녁식사, 영화 그리고 러브호텔 순례를 도느라 모든 현금자산이 15상팀밖에 남지 않은 피에르는 연인으로 오해하고 있는 여자의 집으로 향하지만 애초 가난한 피에르와 사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자네트의 엄마는, 자네트가 며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현관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아버린다. 피에르는 벌써 3일을 굶었다. 그런데도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을 걸로 보아 착한 남자인 건 맞는 모양이다, 그렇지? 천만의 말씀.

  이어서 피에르가 모진 목숨을 이어가는 몇 십 페이지 분량의 묘사가 이어진다. 문제는, 크누트 함순 선생의 <굶주림>에 필적할 노숙인 피에르의 험한 세상살이를, 브루노 야시엔스키 선생은 어이없게도 다분히 미래주의적인 화법으로 설명한다. 이런 식이다.


  “어둠이 내렸다. 불이 켜진 가로등은 밤의 먹물 같은 표면 위에 굵은 무채색 불꽃이 되어 그 밤 속에 녹아들지도 못하고 밤을 밝히지도 못한 채 구불구불한 거리에 폭포 같은 그림자만 드리우며 바닥 없는 깊은 어둠 속에 둥둥 뜬 환상적인 동물군이 되었다.” (p.18)


  파리 시내에 밤이 내리고 가로등 아래를 며칠째 면도도 하지 않고 밥도 먹지 않은 꺼칠한 얼굴과 차림의 피에르가 지나가는 걸 이렇게 그리고 있는데 이 정도면 치장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다. 은유와 직유 같은 수사법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이 문장이 또 이렇게 이어진다.


  “가파른 물가는 인광燐光을 내는 마법의 동굴 같은 보석가게 진열장으로 가득했고 벨벳 바위 어딘가에 조개에서 파낸 콩알만큼 커다람 처녀 진주가 잠들어 있었고―수직의 벽이 헛되이 어둠의 수면을 찾아 위로 위로 길게 솟아올랐다.” (p.18)


  이 장면만 그런 게 아니다. 1부가 끝날 때까지 전체적이고 총괄적으로 궁상스러운 가난의 장면을 작가는 이렇게 풍성한 수사법을 총동원하여 화려하게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짜증나게시리.

  하여간 요점만 말씀드리자면, 이 피에르라는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말씀입니다, 비렁뱅이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프랑스, 하면 무지하게 유명한 연구기관이 하나 있으니 바로 파스퇴르 세균연구소, 여기서 잡일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잡부 한 명이 필요해 피에르를 그 자리에 꽂아 넣어주는 선행을 베풀었건만, 가난과 불평등과 실연과 소외와 기타 등등 사회적 불만에 가득 했던 피에르가 겉으로 보기에는 매사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을 잘 하는 것 같았지만, 하루는 연구소에서 원래 있던 독성보다 월등하게 막강한 전염력을 갖게 배양한 특별 페스트 균이 담긴 시험관을 훔쳐, 파리의 상수도 원에다 살포해버렸던 거다. 나 혼자 죽기 서러우니 다들 한 번 죽어봐라, 하는 심정이었겠지.

  여기까지가 1부이고, 2부 들어가면 인류 역사상 구경해보지 못한 강력한 페스트 균이 전 파리 시내에 창궐해 숱한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가고, 피에르의 싸가지없는 연인이었던 자네트 역시 길거리에 자빠져 죽음을 맞이하는데, 피에르가 달려들어 2부 초장에 꺼멓게 타버린 자네트의 입술에 미친듯이 입을 맞추면서 파리 시민들을 향해, 자신이 페스트 균을 퍼뜨렸노라고 웅변을 토함으로써 메인 스트리트의 만장하신 신사 숙녀의 발뒤꿈치에 짓이겨져 붉은 고깃덩이로 변하고 만다.

  프랑스 정부는 곧바로 긴급조치를 발령해 파리를 완전 봉쇄해 이제 무정부 상태에 접어든 파리에는 인종, 사상 등으로 갈린 작은 독립적 단위로 갈라지지만 궁극적으로, 다, 죽는다.


  인구 증발 사태? 걱정하지 마시라. 그동안 격리구역에서도 완벽하게 격리된 계층이 있었으니 그들은 벽을 부수고 나와 아무도 살지 않는 파리를 파리 역사상 제2의 코뮌, 유토피아로 만들 것이다. 당연하잖아. 작가가 공산주의자 브루노 야시엔스키니까. 흠. 너무 자세하게 가르쳐드린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굳이 권할 만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감상이라서. 야시엔스키가 침을 튀면서 설정한 유토피아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다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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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08-18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췌하신 문장을 읽어 보니 정말 치장이 좀 과하네요. 제목과 표지도 화려하구요. ㅎㅎ

Falstaff 2025-08-18 08:4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아오, 처음부터 계속 저 지랄이라서 좀 지나면 막 짜증이 나더라공요. ㅎㅎ

바람돌이 2025-08-18 2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30페이지쯤 보다가 포기했어요. ㅎㅎ

Falstaff 2025-08-19 04:27   좋아요 1 | URL
아휴, 적당할 때 덮으신 겁니다.
저는 제가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라 양심상 끝까지 읽었답니다. ㅎㅎ

얄리얄리 2025-08-19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이 책 저도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내려버려야 할까 고민됩니다..

Falstaff 2025-08-20 05:46   좋아요 0 | URL
아직 구입하지는 않으셨군요. 다른 분의 감상평도 참고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야 변방의 아마추어일 뿐인데요. ㅎㅎ
 
경세통언 1 - 어리석은 세상을 깨우치는 이야기
풍몽룡 지음, 김진곤 옮김 / 아모르문디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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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명대 말기의 문사. 1574년에 큰 지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 셋이 다 공부 좀 했는데, 둘째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되었으면 해서 시험을 치루었으니, 지방 말단 공무원을 뽑는 시험에 합격, 생원이 된 때가 스물한 살. 생원은 붓 좀 만진다 하면 거의 다 되는 시험이었던 만큼 기껏해야 현 정도에서 말단으로 꼬물댈 수준이라, 합격하면 적어도 거인擧人이라 불리는 향시에 급제를 해야 했다. 풍몽룡이 살던 강소성 소주에서 향시를 보려면 남경, 옛시절 금릉이라 불렀고, 오나라 손권이 자리를 틀어쥐고 꿈쩍도 하지 않은 건업이라고도 했던 난징까지 가야 했다. 그런데 몽룡이 청년기에 접어들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세가 갑자기 기울더니 당장 한 끼니 때우는 것을 걱정할 정도였다고. 이런 시국이었으니 국영수 과외를 받기는커녕 난징까지 거마비도 없이 터덜터덜 걸어야 할 터인데 과거는 무슨. 그래도 1618년 그의 나이 마흔넷이나 되어서야 거인 한 번 해볼까 싶어 난징까지 가 향시를 쳤고, 어쩌면 당연하게, 미역국 사발을 들이켰다. 마흔넷이 될 동안 전설 속 강태공처럼 집안 기둥이 부러져나가는지도 모르쇠, 책만 읽은 건 아니고, 동네 꼬마들 주워 모아 월사금 제대로 받고 서당을 열어 가르치기도 하고, 책을 만들어 팔기도 해서 돈푼을 좀 모은 모양이다. 그것을 또 종자돈 삼아 1624년, 1627년, 즉 쉰 살, 쉰세 살에 또 굳이 소주에서 난징까지 가 미역국을 들이켰으니 미역국 세 그릇 거 참 비싸게 주고 먹었네. 밥이나 말아 자셨을꼬?

  이이가 향시에 붙었는지 여부를 내 검색 솜씨로는 찾을 수 없었다. 하여간 쉰일곱 살이던 1630년에 드디어 공생貢生이 되고, 다음해 고향 소주 서북쪽에 있는 단도현의 훈도 자리를 얻고 또 4년 후엔 수녕현의 부현령으로 승진해, 1638년 예순다섯 살에 길지 않은 공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다. 그렇게 믿자. 그래야 속이 편하니.

  이이가 과거 준비를 하는 오랜 세월 동안 호구지책을 위하여 훈장을 업으로 하면서, 특히 이러저러한 책을 편집하면서 주로 잘 팔린 책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모았을 것이 분명한데, 그리하여 민간에 인기가 있을 민담, 야사, 남녀상열지사 등을 특히 신경 써서 수집하지 않았겠느냐 싶다. 풍몽룡이 그래도 수십년 간 과거를 준비한 문재가 있는 인물이다. 이이가 민담, 야담을 그냥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소설, 그것도 정상급의 소설에서 보이는 것처럼 글 속에 적절한 사, 부, 절구 같은 시 또는 곤곡崑曲 비슷한 가락을 실어 수십 편의 단편소설을 만들었으니, 놀라지 마시라, 지금 읽어도 낯설거나 ‘매우 낡았다’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작품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풍몽룡의 흔히 《삼언》이라 칭하는 단편소설집은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警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 이렇게 각 마흔 편의 단편소설을 묶어 3부작으로 엮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 아모르문디에서 각 부를 다시 세 권 세트로 만들어 출판했는데, 일단 어떤 류의 책인지 맛을 보기 위하여 《경세통언 1》 한 권만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해 읽었다. 우선 《경세통언》을 세 권 다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읽은 《경세통언 1》이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주장하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그저 평범한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엮은 가벼운 대중 취향의 모음집이라고 폄훼할 이유도 없다. 그냥 이야기. 외팔이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속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깊은 문학적 함의가 있었나? 혹시 말이지, 세기에 세기를 걸쳐 생명을 이어오면서 그걸 읽은 독자들이 ‘자기들의 감상평을 스스로 절차탁마해’ 이슬방울이 모여 한강수가 되듯이 어느 시점부터 이 작품들 속에 “처음엔 있지도 않았던 갖가지 메타포”가 스르륵 생겨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워낙 위대한 작품들이니까 그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혹시, 혹시다 혹시.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경세통언》과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프랑수아 라블뢰의 선지적 작품 <가르강튀아>는? 불문학 공부한 사람들은 시방 이 글을 읽으면서 《삼언》이 무엇이관대 감히 <가르강튀아>를 입끝에 올리고 있는 거디냐! 라고 침을 튈 수도 있겠다. 반면에 중문학 공부한 사람들은 그저 싱긋 웃으면서 나더러, 잘 하고 있어. 당연한 말을 당연하게 하고 있군. 독후감 다 쓰고 양장피 잡채에 공부가주나 한잔하자고 할 수도 있다. 뭐 세상 일이 다 그런 것이다.


  《경세열전》에서 제일 먼저 소개하는 것이 귀명창 이야기. 중국 민담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거문고 연주자가 유백아이다.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 사람인데 벼슬은 초나라에서 위로 쪽 올라가면 나오는 기름진 평야지대에 자리한 진晉나라에서 했다. 당시에는 사람이 재주가 뛰어나기만 하면 국적과 관계없이 서로 인재를 스카우트해서 나라 살림과 국방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했다. 백아는 거문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사를 다스리는 이치 또한 막힌 곳이 없어 상대부의 벼슬까지 올랐다. 하루는 왕의 명을 받아 사신의 입장으로 초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이왕 초나라에 가는 김에 오랜만에 고향에도 들를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반가운 고향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푸니 어째 날자는 그렇게 휙휙 날아가는지. 그렇게 한 판 잘 때려먹고 이제 진나라로 돌아가려 배에 올랐다가, 하루는 뭍에 배를 대고 거문고를 튕겼겠다? 근데 멀리서 거문고 소리를 듣고 곡과 내용과 음율을 전부 아는 나무꾼을 만났으니 이이의 이름이 종자기.

  백아와 종자기. 거문고 명인 백아와 연주의 진미를 알아들을 줄 아는 귀명창 종자기. 이 커플의 이야기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전에서 숱하게 나와 더 말을 보태야 괜히 허기질 뿐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7번 위옌커 저 《중국신화전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78번 관한경 외 《원잡극선》, 그리고 심지어 사마천의 <사기 서>에 부록으로 붙은 저 유명한 문文 <보경소임서>에서도 백아와 종자기의 예를 들었다. 우리나라 고전에서도 백아와 종자기의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중국에서는 대개 금string과 관객의 관계라면 우리나라는 주로 소리꾼과 귀명창의 관계인 것이 색다르다. 주로 조선말 판소리 명창과 명창의 진가를 알아듣는 소수의 음감 소지자. 소리 한 마당에 땅뙈기 한 마지기를 덥썩 안겨준 그리 크지 않은 지주. 뭐 그런 거. 아마도 신재효 선생도 이 부류가 아니었는지 싶기도 하고.

  나는 이 책에서 제일 앞, 1번으로 백아와 종자기 이야기 나오는 걸 보고, 중국어 발음은 사성으로 되어 있어 음악을 문장으로 쓰는 데 세상에서 가장 최적화된 언어가 아닐까 싶어, 과연 거문고 소리를 어떻게 묘사했을까, 무지하게 궁금했는데, 역시 음악을 문자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백아의 절륜한 거문고 연주를 듣는 종자기의 감상/소감은 이렇다.

  “아름답도다, 빼어나도다! 나리의 뜻이 높은 산봉우리에 있군요.”

  또는

  “아름답도다, 호호탕탕하도다! 나리의 뜻이 흐르는 강물에 있군요.”

  역시 음악을 문자로 표현하는 건 지난한 어려움이 뒤따른다. 거문고 연주가 왜 빼어나고 호호탕탕한지 당대의 이야기꾼 풍몽룡도 설명해줄 수 없었던 거다. 이후 천년이 지나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쓴 글을 나는 읽어보지 못했다.


  당연히 중국의 최고 음악가와 귀명창 커플은 백아와 종자기이지만 이에 버금가는 연주가와 귀명창이 아직 진나라가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루기 바로 전에 연나라에 있었으니 고점리高漸離와 형가荊軻. 고점리는 거문고가 아니라 거문고보다 조금 작은 금인 축을 연주하는 악사였고, 형가는 고점리 연주의 진가를 알아주는 당대의 건달이었다. 세월이 험해지자 연나라 태자 단이 진晉의 왕실 인질 동기동창이자 훗날 진秦나라 시황이 될 영정을 죽여달라고 형가에게 부탁을 했고, 형가는

  風蕭蕭兮易水寒   바람 소소하고 역수는 찬데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

  노래 한 방 때리고 진나라로 가 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해 자기가 죽고 만다.

  귀명창이 사라지니 축의 거장이 살아남아 연주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리오. 때마침 진의 조정에서 고점리 축 연주의 명성을 들어 그를 초청했으니, 고점리마저 그의 벗이자 귀명창이자 정의의 암살범인 형가의 뒤를 따라 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형가를 좇아 사지가 결딴나 세상 하직하고 만다.

  이 이야기 역시 사마천의 《사기열전》 가운데 <자객열전>에 쓰여 있다. 글쎄, 사마천의 <사기> 읽어두시라니까. 두고두고 할 말이 많아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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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트리트 대산세계문학총서 195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미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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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클레어 루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그리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이다. 그가 193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 1925년에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지명되었으나 문학상 제도에 대한 불만 때문에 수상을 거부했던 <에로스미스>와 1922년작 <배빗>, 그리고 20년작 <메인 스트리트>를 꼽는다고 한다. <배빗>은 2111년부터 열린책들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69번으로, 이전에는 아마도 같은 회사의 “미스터 노Mr. Know” 시리즈로 번역 출판되어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에로스미스>와 <메인 스트리트>는 글쎄 올해 2025년에 한 방에 두 작품이 다 시중에 나왔지 뭐야. <에로스미스>는 직업이 의과학자라서 <의사 과학자 에로우스미스>라는 제목으로 776페이지, 두 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주로 의학, 약학, 질병 등에 관련한 책들만 전문적으로 내는 군자출판사(교재)라는 곳에서 냈다. <메인 스트리트>는 문학과지성사가 대산세계문학총서 195번으로 출간한 798쪽 분량의 벽돌책이다. 이 두 작품, 세 권의 책을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 <메인 스트리트>가 먼저 도착해 읽었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에로스미스>도 들어왔다 할 거 같다. 지난 달엔 스타니스타프 렘과 로버트 그레이브스를 팠다면 이번 달엔 아무래도 싱클레어 루이스를 파는 달인가 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일이 곧잘 생긴다. 이번에도 루이스의 책이 또 나온 거 있나 싶어서 검색해봤더니 두 작품이 눈에 들어왔고, 평소에 루이스는 안 보이면 몰라도 눈에 띄기만 하면 읽어조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 게다가 이제는 내돈내산도 아님에 망설일 필요도 전혀 없으니 당장 희망도서 신청해버렸다.


  싱클레어 루이스의 책이 나오는 족족 찾아 읽는다지만, 루이스를 선택할 때마다 작품에 크게 공감하거나 작가의 성향이 나와 맞아서 이번엔 어떤 스토리일까, 궁금해하고 그러는 건 아니다. 심지어 제임스 A. 미치너는 그의 작품 <소설>을 통해 과대포장된 미국 작가 네 명을 뽑는데 제일 먼전 입에 올리는 작가가 싱클레어 루이스다. 뒤를 이어 펄 벅,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존 스타인벡. 제임스 미치너 역시 한 명의 소설가일 뿐이라서, 굳이 미국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네 명을 딱 골라서 과대평가되었다,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한다, 이렇게 발언하는 것도 좀 웃기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은 반드시 평가절하되어야 하는 작가라고 주장하면, 누가 주장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 국민에게 딱밤 한 대씩 맞아 자칫하면 한 많은 세상 절명하셔야 할 걸? 반면에 진정한 서사를 품은 네 명의 미국인 작가로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를 꼽았다. 허먼 멜빌하고 윌리엄 포크너는 당연히 평생 까방권을 가진 작가들이지만 크레인과 워튼이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을 깔고 앉을 수 있다고? 이런 건 그냥 재미로 읽는 게 몸과 마음이 축나지 않는다, 흥분하지 말자.

  나오는 족족 찾아 읽지만 그때마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 작가 싱클레어 루이스. 여태까지 몇 권이나 읽었나? 별로 되지 않는다. 여태 네 권. 뚜렷하게 스토리를 연상할 수 있는 작품도 없다. 희미하게 그 책이 이러저러한 내용이었지 아마? 이런 정도의 작가. 대공황을 이겨낸 루스벨트 대통령의 뒤를 이은 민주당 모 대통령이 30년대 당시 유럽 일부국가처럼 강력한 전체주의적 성향을 드러나 전 국민을 감시, 통제한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가 탁, 생각나는데 그것도 작품 때문이 아니라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종사자 가운데 한 명이 이 소설을 기반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그게 우리 눈에도 익숙한 외계인 침공을 다룬 드라마 <V>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 있잖아. 산 쥐를 잡아 꼬랑지를 들고 거꾸로 삼키는 아름다운 외계인 아가씨 다이아나.


  서론이 길었다. 스토리 소개하자.

  매사추세츠주 출신으로 박식하고 장난을 좋아하며 매사에 친절한 밀퍼드 씨는 법학을 공부해 대학 졸업 이후 미네소타주 맨카토/맨케이토Mankato에서 내내 판사로 재직했던 양반이다. 때는 19세기 말 벨에포크 시대. 세기말적 분위기라고는 1도 없었던 건실한 판사 선생은 어쩐 일인지 결혼 상대가 얼른 나타나지 않아 연식이 꽤 된 상태에서 혼인을 하고 딸 둘을 낳았다. 두 딸 가운데 두번째 아이 이름이 소설 <메인 스트리트>의 주인공 캐럴. 애칭 캐리. 캐럴이 아홉 살 되었을 때 먼저 어머니가 세상을 접었고, 열한 살 때 아버지가 판사직에서 사임하고 맨케이토에서 미니애폴리스로 이사했는데 이로부터 2년 후에 아버지마저 엄마를 따라 아이들을 등졌다. 그러니까 우리의 캐럴은 열세 살에 고아가 되었다. 이제 캐럴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오직 한 명인 언니.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름도 한 번 나오지 않는 언니는 그로부터 얼마 후 미니애폴리스하고 딱 붙어 있는 대도시이자 미니애폴리스와 함께 트윈시티라고 불리는 세인트폴에 사는 안경사와 결혼해버렸다.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언니는 아버지가 남긴 거의 모든 돈을 휘리릭 날려 버렸는데, 모텔비를 포함한 데이트 비용으로 쓰거나, 결혼비용으로 쓰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풀방구리에 새앙쥐 드나들듯이 아버지 통장에서 조금씩 빼 쓰다보니까 홀랑 다 써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러니 자매 간에 정이 있겠어? 남이 아니지만 남보다 못한 언니. 이걸 보고 뭐라 그래? 맞다. “웬수.” 웬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종이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캐럴 밀퍼드는 미니애폴리스 끝자락에서 건전한 종교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블로젯 칼리지를 졸업할 수 있었다. 독실한 종교학교를 다닌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캐럴은 이후 기독교에 아주 냉담한 거리를 두었는데 그렇다고 반종교적 성격까지 띈 것은 아니다. 자기가 필요하면 매주는 아니더라도 침례교회도 가고, 장로교회도 가고, 가톨릭 교외엔 안 가고 뭐 그렇다. 물론 그것도 나중 일이다. 학교 졸업할 즈음엔 교회 꼴도 보지 않았다.


  캐럴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숭배자였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절대로 정체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수시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이라서 작품을 따라가면 어떻게 줄줄이 그렇게도 사람들한테 물을 먹는지 그것도 팔자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도 전인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여성이 실형을 받기도 하던 때였는데, 잘 교육받았다고 보이는 젊은 여성이 ‘정체된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하는 건, 사회를 위하여 이바지하고 자신의 발전을 계속 도모하겠다는 이야기이다. 생산직과 서비스직을 제외하고 여성이 직업을 갖는 건 속념상 두 개의 선택지만 있던 시절이었다. 타이피스트와 속기사.

  캐럴 밀퍼드 양은 블로젯 칼리지에 다닐 당시 영문과 교수가 조언해주는 대로 시카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한 후 그곳에서 1년 동안 도서관 일을 습득했다. 시카고는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세계적으로 고급 문화가 밀집해 있는 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이때 캐럴은 연주회, 미술관, 연극, 고전무용 등을 섭렵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좋을 거 같지? 촌 동네에서 살 팔자면 나중에 그게 다 너무 그리운 추억이 될 뿐인 걸 그땐 모르지. 하여간 1년 후 다시 트윈시티로 돌아와 세인트폴의 공공도서관에 일자리를 얻는다. 일이 불만스럽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게 사람들의 삶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자매가 만나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하는데, 언니의 친구 마버리 부인이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마버리 씨는 보험회사의 순회 영업사원, 쉬운 말로 보험 외판원이다. 20세기 초에 보험외판원은 아서 밀러의 작품 속 윌리 로먼 씨와 달리 괜찮은 직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캐럴은 이들 부부가 세인트폴의 문학과 예술의 대변자 정도로 여겼으니까.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들 부부의 파티에 서른예닐곱 살 먹은 것 같은 키 크고, 체격 좋은 외지인인 외과의사 윌 캐니컷 박사가 와 있었던 거였다. 고퍼 프레리 카운티 일대에서 대단한 의사라는 명망을 즐기고 있는, 책을 다 읽은 내가 보기에도 당시엔 최상급의 남편감이었다. 보건복지부 의견은 다음으로 하고, 법무부 쪽으로 말하자면 한 번도 ‘총각’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도 하다.

  캐럴과 윌이 띠동갑 혹은 조금 더 터울이 있지만, 당시엔 이건 터울도 아니다. 그래서 둘은? 1년 후에 결혼한다.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거나 비슷하듯이, 당시에 캐럴은 일에 조금 지친 상태였으며, 앞날의 성공이나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남자도 나타나지 않은 시점이었거든. 이럴 때 결혼 많이 한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날, 윌은 캐럴에게 자기 고향(결혼하면 둘이 가서 살아야 할 곳)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이미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던 캐럴은 사진을 보는 눈에도 뭔가 필터가 끼어 있는 것을 몰랐으며,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자기가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깨우쳐 더 나은 삶의 환경 속에서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약 3천 명쯤 되는 주민이 사는 미네소타의 광활한 밀 초원지대의 중심지. 정말로 중심지. 양 옆으로 단층, 2층, 가끔 3층짜리 목조, 석조 건물이 서 있고,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자마자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평원지대, 혹은 눈 쌓인 광막한 벌판인 곳.

  호기심 어린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 속에 열차에서 내린 캐럴과 윌 캐니컷 부부. 윌은 신속하게 의사 업무에 복귀하고, 캐럴도, 시골 사람 모두 캐리를 상세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차리면서 고퍼 프레리 카운티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각해둔 개선 프로젝트를 모색한다. 캐럴의 선한 개선의지가 지극히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완고한 애국주의적인 작은 도시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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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폭스트롯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8
무스잉 지음, 강영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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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무스잉. 한자어로 목시영穆時英. 《상하이 폭스트롯》이 단편집인데, 열강들의 중국 조차지가 득시글했던 상하이를 무대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청춘들이 세상이야 뒤집어지거나 말거나 댄스홀, 카바레 등지를 휩쓸면서 춤과 젊음을 즐기는 작품이 많아서, 하여간 무대가 20세기 초중반이니까 이렇게 생각했던 걸 용서해준다면, 작가가 여성인 줄 알았다. 이름에 꽃부리 영英자를 쓴 것이 그리 단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기도 했고. 외갓집에 여동생이 일곱이 있으니 순서대로 선영, 은영, 수영, 혜영, x영, 신영, 지영, 아이고, 다섯 번째는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딸들한테 마지막에 돌림자로 영英자를 썼다. 이런 내력 때문에 무스잉을 여성인 줄 알았으니 웃기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든 자기 형편을 기준으로 생각해버리는 거. 설마 세상에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무스잉은 1912년 중국 저장성에서 은행가이자 금 투자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위키피디아 기록에는 아들과 성씨가 다른 무武 씨로 썼는데, 친아버지 맞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무穆씨가 맞을 듯하다. 세상의 위키피디아도 타이포 에러는 생기나 보다. 주목할 것은,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에서도 나오는 바, 1932년에 동아시아를 휩쓴 대형 사건이 있었으니 관동대지진. 당시 천하 진재를 바로 앞두고 무스잉의 아버지 모징팅 선생이 금을 대량 사들였던 모양인데, 일본의 천재지변 때문에 하루 아침에 금값이 6백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 쳐버렸단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이해가 될 듯하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한 상황인데, 이런 거 따지기 전에 하여간 무스잉 집안은 마른 하늘에 번개를 맞아 하루 아침에 쪽박을 차게 된 거다. 책에 실린 <나이트클럽의 다섯 사람>에서 “황금왕 후쥔이”라는 등장인물이 있어 하루아침에 자산이 6백분의 1로 줄어들어 마지막으로 애인이자 왕년의 은막 스타 황다이첸과 함께 상하이의 최고급 나이트클럽에서 최후의 만찬과 댄스파티를 즐기고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무스잉의 아버지 무징팅은 관동대지진 1년 후인 1933년에 죽었지만 어떤 형태로도 자살은 아니고 쫄딱 망한 후유증으로 탈진과 우울증을 겪다가 숟가락 놨단다. 이것도 위키피디아에서 따 왔다.


  1920년대부터 중국의 문단 역시 세계 사상계의 주류에 맞추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이 팽배했다. 그렇단다. 내가 뭐 아나. 검색하다 보니 2017년에 고려대에서 있었던 심포지움 내용이 눈에 들어와서 냅다 인용한 것뿐이다. 독후감 하나 쓰려고 별것을 다 검색한다. 이렇게 한 문예사조가 팽배할 때, 작가가 그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양식만 고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봤다. 1980년대 중반, 연도로 보면 1985년 이전의 시부터 시작해, 이후로 전 문예장르가 일제히 리얼리즘 참여문학으로 기울었다. 이때 함부로 서정시나 모더니즘 문학을 거론하면 입 떼기가 무섭게 발언의 장에서 물러나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 모더니즘 계열, 당시 표현대로 문지파들은 전부 사망했느냐고? 아니지. 일종의 지하에서 끈질기게 흐름을 이어갔지. 하지 말라고 해서 그게 안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무스잉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했던 193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작품집 《상하이 폭스트롯》를 읽어보고 그리 짐작했다. 작품집의 표제 《상하이 폭스트롯》와 어울리지 않는 작품 <팔이 잘린 사람>은 아들 하나를 키우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남편)이 벽돌 공장의 기술자가 아닌, 단순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숱하게 많은 노동자의 팔, 다리, 목, 그리고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허리까지 한 순간에 싹둑 절단해버리는 절삭기에 한 손을 잃어버리고, 회사로부터 보상금 30위안을 받고 해고당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무스잉은 애초에 서양문학에 경도되었다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해 중국으로 유입된 ‘신감각파’에 뜻을 둔 작가로 <팔이 잘린 사람>이라는 작품을 (뭘 알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읽기로는) 무지하게 한심한 수준으로 쓰고 (염치도 없지!) 작품을 팔았다. 아무리 단편이라도 초장에 다른 것도 아니고 ‘꿈’을 빙자해 복선을 와다다닥 쏟아버리면 그게 ‘현대’ 소설이야? 같은 기계가 거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같은 사고를 내는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행동이 1도 없는 것이 어째 사회주의 리얼리즘, 쉽게 말해 소설 같지도 않은 고리키의 <어머니>나 오스트롭스키의 <강철은…>에 비할 수 있느냐는 말이지. 무슨 말이냐고? 소설 같지도 않은 소설보다 못하다는 얘기지 뭐. 아이 씨. 너무 과하게 썼다. 반성한다. 그래도 취소하고 싶지는 않다. 출판사와 역자에게 미안하지만.


  그리하여 무스잉, 이이의 본류는 1930년대에 돈과 시류와 정치와 외세의 침략과, 마오와 장의 투쟁과는 전혀 관계없이 노동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부르주아 자제들, 이 가운데서도 서양, 그리고 일본의 신문물에 흠뻑 취해 신세대 연애와 폭스트롯을 선봉으로 하는 댄디즘 신봉자들의 풍속도만 그려도 충분했을 듯하다. 누구나 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혁명에 대한 봉사로 문학을 구상할 때였다. 그래도 그런 가운데 천생 부르주아의, 그것도 적수공권에서 시작해 대부분 중국인들의 로망인 거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아빠 물총 잘 맞아 날 때부터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으로 태어나 사타구니에 터럭이 돋고 처음엔 은근히 시작해 조금 지나 노골적으로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이 쏟아질 무렵에 대도시 상하이, 베이펑(北平: 베이징 이전 이름)에서 나이트클럽, 카바레를 섭렵하며 연애활동에 매진하는 모습도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나? 아니라고? 나는 그리 생각하는데?

 차라리 무스잉은 그쪽 방면으로만 몰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기 홈 그라운드 장르가 그쪽이면, 그쪽에서만 열라 글을 써도,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아닐지언정 그나마 세계문학에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있으면 “중국 신감각파의 스타”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

  그러나 비극이 탄생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신감각파”라는 것이 유럽의 모더니즘이 일본을 거쳐 일본 작가들 특유의 아리삼삼한, 미안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아리삼삼한 경항을 본뜬 것이라 당시 문학은 물론이고 살벌한 정치와 사상으로 양분된 중국 영토에서 무스잉은 잠시 홍콩으로 몸을 피했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신감각파”의 나라 일본과 친한 친일신문 “중화신문”의 문예 부록지 편집을 하다가 반대파에 의하여 암살당해 죽었으니 1940년,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현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당연히 부일 친일파였던 이이의 작품이 읽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친일파 작품이라고 굳이 멀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뭐 돈과 시간을 내서 읽을 필요까지 있을까? 나는 이 책을 도서관의 신간 입고 탁자 위에서 발견해 읽었다. 무지하게 조심하면서 이야기하자면,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하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거의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죽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지적재산권에서 자유롭게 출판할 수 있는 작가들. 근데 말씀인뎁쇼, 그리 오랜 작가들의 작품인데 왜 이제야 처음으로 책을 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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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8-12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 물총 잘 맞았다니. 금수저였단 말을 아빠 물총으로 표현하신 것에 이마 한번 탁 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암살을 너무 일찍 당했네요. 스물 여덟이라니.
왜 이제야 처음으로 액을 냈을까요. 흠....... 별로 재미가 없나요?????

Falstaff 2025-08-12 16:37   좋아요 1 | URL
길기만 하고 지루한 독후감을 다 읽으셨군요! 고맙습니다. ㅋㅋㅋ
좀 외설적인 표현이라 벌써 쓰고 싶었지만 꾹꾹 눌렀다가 여기서도 뒤쪽에서 슬쩍 흘렸는데요...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을 보면 이 양반 젊어서 암살 당하는 건 정말 시간 문제였던 거 같아요. 인간 조건 읽어보셨겠지만 혹시 아니면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

케이 2025-08-12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위 댓글에 오타가. 액이 아니라 책으로 써야하는데. 팔스타프님 독후감 재밌어요. 절대 지루하지 않아요.ㅋㅋ 말씀하신 책 아직 못 읽었는데 지금 읽는 책 다음 책으로 꼭 읽어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은빛 2025-08-17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문장이 가장 인상적이네요. 글 하나 쓰려고 많은 정보를 찾아보시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를 본인만의 입담으로 술술 풀어놓는 솜씨 역시 탁월하시네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5-08-17 16:08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힐러리 맨틀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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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 홀>과 <시체를 끌어내라>로 남들은 살아생전 한 번 받기도 힘든 부커상을 2009년과 2012년, 3년 터울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라는 걸 나는 두 작품을 읽을 때야 알았다. 그리고 뭐 남의 나라 발정한 왕의 허리하학적 이야기, 원래는 가톨릭에 충성했던 영국 국왕이 이혼하고 싶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도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별 관심도 없던 터여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설마 오직 이혼 문제 하나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리 말하는 것이니 그냥 그렇거니 해 주시라.

  정말 20세기를 산 사람인지, 아니면 누백년 동안 죽지 못하는 삶을 이어온 연금술사 혹은 악마인지 정체가 아리송한 플러드라는 야매, 가라 신부神父 이야기인 <플러드>까지, 내가 읽은 힐러리 맨틀은 하여간 조금은 중세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터, 도서관 개가실을 거닐다가 맨틀 여사가 난데없이 마거릿 대처 수상이자 남작부인의 암살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 책을 발견했으니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올해 탄생 백년을 맞는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이 아마 늙어 죽었을 걸? 그럼에도 “암살 사건”이라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암살 ‘미수’ 사건에 관한 픽션이겠지? 이렇게 감을 잡았다. 우스운 것이 한 국가, 그것도 20세기 말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극점을 찍은 영국 총리의 암살 사건을 소설화한 책이니까 당연히 장편소설이겠지, 했지만, 단편집이었다는 거. 힐러리 맨틀의 단편소설집이 딱 두 권 있는데,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201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말미에 책에 실린 작품이 언제, 어느 매체에 발표한 것인지 밝혔지만 표제 작품은 예외다.


  돌아보니 영국 작가가 쓴 소설책도 꽤나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숱한 영국 소설가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을 좋게 묘사한 사람이 1도 없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20세기 들어 가장 오래 영국 총리를 해먹은 인물이기도 하고 최초의 여성 영국 총리이기도 한 대처 남작부인이라면 다른 건 모르겠고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으리라 싶은데, 보수당 출신이어서 그런지 작가들한테는 1급 비추였던 모양이다. 하기는 내가 아는 보수 지지 작가라고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파운틴 헤드>를 쓴 애인 랜드밖에 없기는 하다. 뭐 대개 그렇지. 진보주의자로 불리고 싶지만 사는 건 부르주아로 살고 싶은 게 요즘 인지상정이니까. 대강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 바라고 자신을 그렇게 정의하기도 했던 바, “강남 좌파”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인생 목표가 강남 건물주인 "자칭" 진보주의자들.

  단편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1984년 런던 남쪽에 있는 도시 브라이튼의 그랜드 호텔에서 IRA에 의해 저질러진 폭탄 테러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예 정확한 제목도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1983년 8월 6일>이니까 실제 암살 미수 사건이 생기기 1년 2개월 전이다. 작 중에서 대처 수상은 가벼운 안과 시술 차 런던 시내의 병원에 갔고, 시술을 마치고 나올 때, 의사와 간호사, 기타 관계자가 도열한 가운데 한 명씩 악수를 나누며 병원문을 나설 것이고, 이때 병원 현관이 잘 보이는 민간 아파트에 들어가 창문에서 저격용 소총으로 암살한 다음, 암살범은 총을 든 채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다가 경호원과 교전 중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시나리오이다. 잡혀봤자 그래도 20세기 잉글랜드니까 심하지는 않겠지만 고문 또는 고문에 준하는 신문을 당할 것이고, 신문 끝에 관계자 여러분의 명단을 줄줄 읊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암살자 한 명 때문에 IRA 조직이 와해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게 여러모로 영웅답다, 이거다.

  이 작품을 읽는 영국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아시아 독자들과는 달리 암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러면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궁금하기는 궁금한데 어떤 방식으로 궁금한지 알아내기 위하여 한 번 더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힐러리 맨틀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심신이 건강하지 못했다. 신경정신과 적으로 질환이 있어 약물을 복용해야 했고, 산부인과적으로도 질환이 있어 27세에 조기 폐경을 해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는 아니고 2022년에 70세의 나이로,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과 비슷한 질환인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접었다.

  가볍지 않은 질환을 가진 채, 달리 말해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태로 늘 약을 복용하며 살았던 맨틀은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등장한다. 이를 미디어의 서평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잔인한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좀 과한 평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은 반어법적 그로테스크, 이것을 묘사하는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여간 뭐 그렇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탄 힐러리 맨틀이지만 단편들이 그리 즐길 만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스토리의 적절한 반전도 그냥 그렇고, 문장이나 구성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단편소설의 나라”에 사는 독자라서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눈이 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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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1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단편소설에 대해 눈높으시죠
근데 장편소설에 대해서도 눈 높으시잖아요. ㅎㅎ
이 작가는 이름이랑 작품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주로 역사소설이군요. 헨리8세 근처 시대 딱히 관심이 없는데 고민좀.... 저는 요즘 아민 말루프 너무 좋습니다. 사마르칸트도 나쁘지 않았어요. 후반부의 딕션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전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Falstaff 2025-08-11 16:09   좋아요 1 | URL
눈높이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라딘이 책 가게이지 않습니까? 마음 먹은 별점보다 한 반 개 정도는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런 심정으로요. ㅋㅋㅋ
저는 사마르칸트, 이 중부 아시아 지역에 로망을 갖고 있어서 언제가 기대가 크거든요. 말루프의 <사마르칸트>는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타니오스의 바위>는 괜찮았습니다만.

blanca 2025-08-11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힐러리 맨틀이 이미 고인이 된지도 몰랐어요. 엄청난 작가라는 것만 알았는데... 단편집은 기대에 못 미치는군요. 단편과 장편 각각 특화 분야가 다른 것 같아요.

Falstaff 2025-08-11 16:12   좋아요 0 | URL
부커 2회 수상자면 굉장한 필력을 인정받은 거겠지만 ㅎㅎ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 장면이라 아시아 변방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끌리지 않더라고요. 단편집 읽어보니 역사 장편이 더 좋았습니다.

yamoo 2025-08-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읽가 때려치웠어요. 부커상 받은 작가 모아놓고 읽는데 이 책은 읽다 때려친 2권 중 한권입니다..ㅎㅎ

Falstaff 2025-08-12 04:5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돈 주고 사신 건데 웬만하면 걍 달리시지 그랬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