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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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사 앤드류 D. 맥브라이드 씨와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인 레이철 데버러 쉴스키 여사와의 사이의 유복자로 뉴욕에서 태어난 1957년 닭띠 작가이자 색소폰 연주자 겸 작곡가이다. 앤드류 맥브라이드 목사는 1956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제임스 맥브라이드를 만들기만 하고 제임스가 엄마 레이철의 배 속에 착상한지 백일만인 1957년 4월 초에 천국의 하느님 우편에 앉아보기 위해 세상을 떴다. 제임스는 훗날 루스Ruth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할 엄마 레이철의 나이 35세 때 루스의 첫 결혼에서 낳은 막내이자 맥브라이드 목사의 막내였으며, 루스가 낳은 열두 남매 가운데 여덟 번째 아이였다. 좀 복잡하지? 하여간 독자가 주목할 것은 제임스 맥브라이드가 자신이 ①유대인의 핏줄을 이은 ②흑인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유대인 정체성은 훗날 기독교로 개종한 엄마 루스보다 오히려 더 뚜렷하고, 아프리카계 유색인인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니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다. 연주자/작곡가로서는 모르겠지만 <하늘과 땅 식료품점>을 읽어보니 작가로서 이 두 가지 정체성을 아주 효과적으로 써먹고 있는 것 같다. 아, 지금 비아냥이나 비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얼핏 한 개인의 약점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을 내보임으로서 오히려 자신의 강점으로 바꾼 일이다. 비난 대신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늘과 땅…>이 내가 읽은 유일한 맥브라이드라서 이이의 다른 책은 어떤 경향인지 궁금해 위키피디아를 열어보니 주로 흑인 노예, 노예상태에서 해방된 흑인, 그리고 당연히 주변의 백인, 즉 많이 듣고, 읽고, 본 흑인 장르에 속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23년 작품인 <하늘과 땅…>에 흑인들과 거의 비등한 분량으로 유대인 이민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흑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해방 노예들의 후손들이고, 유대 이민자들은 독일계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가 점점 동유럽,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리투아니아에서 온 유대인 식구들이다. 이들이 서로 이웃해 산다. 같은 백인일지라도 결코 유대인한테는 곁을 주지 않았던, 메이플라워호의 후예들이라고 오랜 세월 착각하고 산, 잉글랜드 출신의 오리지널(로 착각하고 사는) 와스프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유대 백인.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유대인들의 피부색은 허여멀건지라 그들에게 언감생심 친밀하게 접근하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당했고 그런 피학, 천대를 당연하게 여겨온 아프리카계 유색인들이 모여 사는 펜실베이니아주 포츠타운의 치킨힐이라는 동네를 무대로 한다. 그러니까 한 커뮤니티에 유색인 처형을 감행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작가가 악착같이 조금도 선하게 묘사하고 싶어하지 않는 와스프 종족들에게 소외당하고 사는 유색인들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딱 한 명의 흑인 악당을 제외하고, 세상에 이런 선한 집단이 없으며,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 모두 정의롭고 애정 넘치는 천사들이다. 반면에 치킨힐 밖의 포츠타운을 좌지우지하는 백인들은 예외없이 심판의 날에 푸르죽죽한 말을 타고 서양낫을 휘두를 듯한 파렴치한 악당뿐이다. 유대인을 제외한 백인 가운데 그나마 착한 심성을 가진 이는 가난한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늙은 엄마와 젊고, 크고, 힘센 이탈리아 무산자 청년 말고는 없다. 잘 나가는 살 껍데기 허연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건 이 책에서도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 (아이쿠, 이렇게 썼다가 까칠한 아저씨한테 걸리면 또 한 마디 들을 터인데 우짜나....)


  사실 위에서 이 책에 대한 소감은 다 이야기한 거나 다름없다. 우리 착한 약자 연대, 너네 나쁜 백인 부자들 간의 갈등. 작품을 쓴 사람은 아프리카계 유대혈통의 미국인. 그것도 전형적인 미국인. 결론은 뭐라고?

  “악인은 지옥으로.”

  대개 독후감을 시작할 무렵에 내가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를 먼저 쓴다. 오늘 그러지 않은 건, 도무지 왜 내가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아니다, 아니다. 잠깐 미쳤던 것이 틀림없다. 혹시 워낙 광고를 많이 한 작품이어서 그게 뇌 속에 들어박혀 있었는데, 도서관 신간 코너에 올라와 있는 것이 눈에 확 띄어 얘기한 대로 잠깐 헤까닥, 미치게 된 것인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리 혹평한다고 이 책을 경원할 필요는 없다. 단지 내 취향에 지독하게 맞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당신과는 궁합이 딱 맞을 지 누가 아나? 책방 독자 서평에 모두 합해 55개의 별점이 올라왔는데 이 가운데 무려 92.5%가 별 다섯, 만점을 때렸으니, 아마도 내 눈이 삔 것이 틀림없을 듯하다.


  작품의 시작은 1972년 6월,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의 치킨힐이다. 예전엔 낙농 목장 바로 옆이었던 헤이즈 거리에서 공사를 하다가 오래된 우물 바닥을 파니까 글쎄, 사람의 해골이 나온 거다. 공사 인부들이 즉각 작업을 멈추었다. 경찰이 도착해 우물을 훑어보니 사람의 뼈와 벨트 버클, 펜던트, 오래된 실뭉치가 더 나왔다. 펜던트 뒷면에 뭐라고 글씨가 써 있어 마침 우물 옆에서 이 모양을 내려다보던 유대 노인에게 물어보니까, 이건 펜던트라고 하지 않고, 유대인들의 문설주 겸 문패 겸해서 쓰는 걸로 메주자라고 하는 것이며, 메주자 뒤에 쓰인 히브리어 글씨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댄서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말해준다. 그랬더니 백인 경찰이 유대 노인한테 말하기를, 어디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당신은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 될 것이란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이 누구냐 하면, 본명인지 아닌지 근 반백년 동안 ‘말라기’라고 불린 왕년의 최고 댄서였다. 그는 조금은 녹슬었지만 그래도 나이를 감안해 예의를 갖추어 말하자면 녹슬지 않은 경쾌한 스텝으로 그 길로 치킨힐에서 내빼고는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972년 6월 22일, 47년 전에 하여간 열두 살 이전이었던(멕브라이드의 연도, 날짜 개념이 좀 헛갈리지만 그냥 넘어가자) 건실하고 늙은 유색인 가장이자 3남2녀의 아버지 네이트 러브2세라는 이름의, 자상한 남편이며, 숱한 손주들의 할아버지이지만 오늘 독후감에서는 소개를 생략할 주인공급 조연이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작지 않은 농장의 농장주인 “소년 도도”가 불운했던 초년 팔자 이후에 행복한 여생을 마치고 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채 날아올랐다. 

  47년 전인 1925년의 포츠타운에는 유대인 극장이 있었고, 극장은 타운에서 유일한 루마니아 유대 이민자인 젊은 모셰 러들로우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만만하게, 라기보다는 야심차게 흑인, 유대인, 가난한 백인, 그러니까 착한 우리편을 몽땅 아우르는 댄스파티를 기획하여 당시 천대받았지만 천재성 하나는 알아주었던 미키 캇츠와 웹의 12인조 밴드 공연을 준비했다. 문제는 광고와 자금.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폴짝 뛸 만큼 애를 써도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젊은 모셰는 역시 유일한 불가리아 유대 이민자이자 치킨힐 초대 시나고그의 랍비이자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하늘과 땅 식료품점’의 사장인 야코프 플로르의 가게 지하에서 우거지 죽상을 하고 눈물을 짜고 있었는데,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짧아 약간 다리를 저는 어여쁜 열일곱 살 먹은 딸 초나가 모셰를 격하게 응원하고 기를 살려주어, 엣다 모르겠다, 잘 나가는 사촌한테 돈을 더 빌어 댄스파티를 성황리에 마치는 건 물론이고 큰 돈을 한 방에 벌었다. 이때 춤에는 관심없고 오직 결혼할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극장에 들른 정통 유대인이 바로 47년 후에 치킨홀에서 홀연히 사라질 말라기 청년이었던 거다. 이들은 이 때 인연을 맺고, 친구도 먹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오랜 세월 우정을 돈독하게 쌓아간다.

  그리고 모셰는 어여쁜 초나에게 과감하게 청혼하고, 뜻밖에 초나가 잽싸게 승낙하고, 플로르 씨 부부 역시 흔쾌히 축복을 내려 이후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지만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깨가 쏟아지는 한쌍으로 지냈다. 뭐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겠지만.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지? 없다.


  포츠타운에는 흑인 처형 같은 극단적 주장은 하지 않지만 엄연히 KKK단이 존재하고, 이들은 적어도 1년에 한 번 타운에서 행진을 한다. 유령 같은 흰 두건을 쓴 채. 이 가운데 배가 불룩하게 나오고 다리가 불편한 것이 한 눈에도 확연해 타운 주민들 누구나 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내과의사 닥 로버츠 박사가 있었다. 이이가 스스로 메이플라워호의 후손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타운의 기름종이, 유지 가운데 한 명이다. 초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한 학년 위였다. 우연히 옆 사물함을 쓰다가 한눈에 초나한테 반해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초나는 유대인이 아닌 기독교도와의 이성교제에는 관심도 없고, 어려서부터 옆집에 사는 흑인 친구 버니스와의 우정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배 나온 (아마도) 40대 중년 유부남이 되었어도 초나에 대한 연정은 바뀌지 않았는데, 이게 연정인지 욕정인지는 본인 스스로도 아리송했던 거 같다.

  모셰의 극장과 초나가 운영하는 식료품점 일을 도와주는 흑인 네이트와 애디 부부는 애디의 조카 도도를 키우고 있었다. 똑똑한 도도는 오븐이 터지는 사고를 당해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사람의 입술을 읽을 줄 알고 총명했으나, 청각장애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지체장애 판정을 받아 악명높은 펜허스트 정신병원으로 가야 할 처지로 떨어진다. 초나가 이를 알고 도도를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가, 경찰도 아닌 내과 의사 로버츠 박사가 먼저 도도의 상태를 감정한다는 핑계로 식료품점에 들러 초나와 말다툼을 벌였고, 이미 한 번 (뇌졸중인 것 같은데) 입원 병력이 있는 초나가 경련을 일으키자 와스프 부자 박사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초나의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이를 지하실에서 숨어 보고 있던 도도가 갑자기 나타나서 박사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경찰에 잡히고 만다. 그리하여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니클의 소년들> 보다도 훨씬 열악하기가 한정없는 펜허스트로 끌려가고, 동시에 치킨홀에서는 유대인과 흑인, 그리고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가 힘을 합해 소년의 탈출과 정의실현을 위한 우연을 만들기 위해 작가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타자 속도가 마하를 추월하게 된다. 결론은 위에서 다 이야기했다.

  “악인은 지옥으로.”

  또는

  “결국 정의가 이긴다.”

  둘 다 구라일 확률이 높은 엉터리 격언이지만 당장 읽어치우거나 극장에서 구경하기는 편하다. 마침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로 만들려고 한다니까 개봉하면 편한 마음으로 관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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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3-03 1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인이 너무 늦게 지옥 갔어요ㅜㅜ 저는 몽키가 제일 맘에 남았어요. 그 시대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가혹했다지만 너무 안타까웠어요.

사실 처음엔 해골이 발견되고 해서 엄청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더라구요. 허허허

Falstaff 2025-03-03 18:46   좋아요 2 | URL
악당은 언제나 마지막에 지옥으로 가더라고요. 먼저 가버리면 재미가 덜한 거 같더군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ㅎㅎㅎ
 
위대한 집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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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 크라우스라는 이름은 귀에 못이 박이게 익숙하다. 그래서 이이의 작품을 몇 권 읽은 줄 알았다. 확인해보니까 서점 보관함에 그리고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만 올려놓고 세월만 죽이고 있었다. 어째 이랬을까? 저런, 니콜 크라우스와 결혼해 10년을 살면서 두 자녀를 낳아 키운 전남편 조너선 샤프란 포어가 쓴 발랄하고 발칙한 작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밝혀졌다>만 읽은 것을 그의 엑스 와이프가 쓴 것도 그랬거니 했던 거 같다. 이제 정신차리고 크라우스도 계속 읽어봐야겠다.

  니콜 크라우스의 조부모는 헝가리와 벨라루스, 외조부모는 독일과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이며, 십년을 함께 산 포어 역시 유대인이었으니 거의 완벽한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다. 이스라엘이 아닌 아메리카와 유럽에 거주하는 많은 유대인이 자신의 유대 정체성을 더 이상 지키지 않는 것에 반해 (당연히 유대 정체성을 고수하는 사람도 많겠지), 실제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크라우스는 유대 뉴요커라기보다 그저 뉴욕에 거주하는 유대인이라는 의식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점이, 경제적으로 특히 금융 방면으로 세계적인 패권을 쥐고 있으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사력 역시 중동 인근에서는 당할 커뮤니티가 없는 강국으로 이슬람권과의 싸움 정도는 마치 애들 팔목 비트는 수준으로 해치워버리는 (전쟁은 누가 뭐라해도 역시 돈 싸움이다!) 이스라엘의 요즘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나이 전쟁 등에서 이스라엘 국민의 피해에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위를 확 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것만 제외하면 정말 별점 다섯 개, 만점을 줄 터인데 말이지.

  1974년생 범띠 여사님 니콜 크라우스는 이제 꼴랑 한 편의 소설만 읽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교만일지라도, 소설 참 잘 쓴다. 놀라운 건 소설을 쓰기 전에, 1992년에 스탠포드 대학에 입학해 소련에서 추방당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를 사사하며 시를 썼단다. 작품 속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나디아 역시 시를 쓰다가 후에 소설로 이름을 내는 여성이다. 물론 그렇다고 작가의 자전적 모습이라고 여기면 오산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스탠포드와 옥스포드를 거쳐 세계에서 미술사 쪽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쿠톨드 예술 대학에서 렘브란트 연구로 미술사 PhD를 획득했다. 미술사 박사.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뉴욕에서 가장 폼나게 살 수 있는 전공과목과 학위를 얻었다는 말이다. 조금 역겨운 책 오테사 모시페그 쓴 <내 휴식과 이완의 해>에 의하면. 크라우스가 부르주아 유대인이라는 걸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내가 나도 싫군, 흠. 근데 앞에서 말했듯이, 소설은 재미나게 참 잘 쓴다.


  <위대한 집>의 주인공? 진정한 주인공을 고르라면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 페데리코 그라시아 로르카 Federico Gracia Lorca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거대한 책상이다. 1898년 그라나다에서 태어나 서른여덟 살에 고향 그라나다에서 프랑코에 의하여 총살당해 생을 마친 로르카는 스페인은 물론이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도 존경을 받았는데, 토지를 매개로 한 부르주아 집안의 자제 답게 그가 사용했다고 알려진 책상은 무려 열아홉 개의 서랍이 달렸으며, 이 가운데 가장 오른쪽의 가장 꼭대기에 붙은 서랍은 유일하게 작은 열쇠로만 열 수 있는 자물쇠로 봉인되어 있었다. 이 책상이 정말로 로르카가 사용했던 것인지는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는다. 아마 아닐 듯하다. 그러나 예술적, 박물학적, 고가구적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명품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직감할 정도로 여기면 될 듯하다.

  작품은 이 책상에 관한 스토리가 있는 네 명의 주인공이 각각 한 파트에 등장해 자신의 입장에서 책상을 전해준, 물려준 이야기를 1부, 2부에 한 번씩 두 번을 하는 구성이다. 네 명의 주인공 가운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앞에서 작가와 같이 시인 출신의 소설가 나디아이다. 나디아의 1인칭 시점으로 쓰였지만 독후감을 쓰는 편의상 3인칭으로 하겠다.

  1972년 겨울에 나디아는 애인 R과 헤어졌다. R은 이별의 변辯으로 “나디아가 모르는 R의 비밀이 있는데 그게 비겁하고 역겨워 나디아에게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 스스로 그걸 개선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도 되겠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병든 짐승처럼 물러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 마디로, 쉬운 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개소리다. 거의 2년 동안 함께 살았던 R은 며칠 후, 자기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인부를 몇 명 보내 자기가 산 모든 가구와 그랜드 피아노를 몽땅 실어갔다. 이때 나디아는 스물네 살. R은? 모른다. 많이 먹어봤자 서른 안쪽이겠지. 그런데 ‘모든’ 가구와 그랜드 피아노를, 다른 곳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뉴욕에서 그런 가구와 악기를 놓을 수 있는 공간에서 살 수 있는 부르주아가 아파트에서 이것들을 홀랑 가져가 버리니까, 나디아는 말 그대로 침대가 아니라 그냥 매트리스 하나만 달랑 남은 거하고 비슷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별을 당한 직후 특유의 공황상태가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학창시절의 친구 폴 엘퍼스가 불현듯 나타나더니, 미국식으로 다시 사랑의 불꽃이 활짝 피운 건 아니고, 칠레에서 온 젊은 시인 다니엘 바르스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친구 폴은 말 그대로 친구, 요즘 말로 남사친 자체여서 나디아의 R도 알고 R과 헤어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R 역시 많아봤자 서른 안쪽으로 보는 거다. 이렇게 나디아는 다니엘 바르스키를 만나, 미국식으로 그와 사랑을 불태우는 건 역시 아니고, 칠레 출신이라니 당연히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조개껍질 수집가이며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 이야기도 하다가, 분위기가 삼삼해져 심각하지 않은 키스 한 번을 나누고, 다니엘이 칠레에 가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기간 동안 나디아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보관해주기 바란다며 문제의 책상과 훗날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가 들이쳐 썩어버리고 마는 소파, 그리고 몇몇 가구를 인계 받았다. 그랜드피아노가 놓였던 집이니 그깟 책상쯤 아무리 커봤자 그게 그거겠지? 천만의 말씀. 책상은 나디아의 공간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책상의 그늘에 매트리스를 놓은 채 잠을 청해야 했단다. 그동안 좀 작은 셋방으로 옮겼다는 말은 없지만 하여간 그렇다. 1년 반이 흐른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다니엘 바르스키는 한밤중에 피노체트의 국가정보국장 마누엘 콘트레라스가 이끄는 비밀경찰에 끌려가 친구들은 그가 고문 끝에 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디아는 자신이 알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칠레에 있는 다니엘의 친지들에게 편지를 보내 책상과 가구 일습의 처리를 상의했지만 회신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1999년 3월 말이 됐고, 자신이 다니엘 바르스키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자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레아 바이스. 다른 가구는 됐고 책상만 돌려 받았으면 한다면서. 당연히 레아 바르스키인 줄 알았는데 바이스였으며, 산티아고가 아닌 예루살렘에 살고 있단다.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인 레아의 어머니가 70년대 초반에 잠깐 산티아고에서 살았는데 이때 다니엘 바르스키와 연애를 했다가,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벌이자마자 칠레를 떠나 이스라엘로 갔단다. 벌써 레아를 임신한 상태였고, 예루살렘에서 여러 번 칠레로 편지를 했건만 이미 체포당한 이후였다고. 나디아는 레아를 본 첫눈에 이이가 다니엘의 딸임을 알아보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책상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곧바로 밀려드는 공황. 나디아는 그동안 시에서 소설를 썼는데, 전부 이 책상 위에서 쓴 거였다. 나디아 입장에서는 이 책상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작품의 원형이 든 ‘위대한 집 Great House’이었을 수 있었던 것인데, 그게 자신의 한 마디에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니 어찌 공황을 맞은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인생이 그렇다. 둘은 약속을 마치고 집 밖으로 나와 환한 태양빛 아래 섰고, 다시 레아의 모습을 관찰한 나디아의 눈에는, 이제 레아의 모습과 어투에서 다이넬 바르스키와 비슷한 것을 거의 찾지 못하겠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디아가 한 파트. 누군가가 책상을 다니엘 바르스키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가 책상을 사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다니엘에게 책상을 물려준 영국의 늙은 작가가 한 파트, 나디아에게 책상을 가져간 이스라엘 사람이 또 한 파트. 그러면 이제 한 명이 남는다. 그건 직접 확인하시라.

  재미있는 것이, 스토리 소개에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나디아는 S와 결혼생활 10년을 하고 아이 없이 이혼했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이 2010년. 4년이 지난 2014년, 작가 니콜 크라우스는 자기하고 작풍이 완전하게 다른 작가 남편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10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한다. 그것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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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2-28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제임스 맥브라이드, <하늘과 땅 식료품점>
화요일. 박솔뫼, 《겨울의 눈빛》
목요일. 야마다 에이미, 《솔뮤직 러버스 온리》
금요일. 찬쉐, <오향거리>
 
카이로스 - 2024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유영미 옮김 / 한길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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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알겠으나 읽는 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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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빛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5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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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립 마이클 온다치는 1943년에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태어난 캐나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대학교수 기타 등등인데, 부계 혈통이 조금 복잡하게 꼬여 있다. 알코올 오남용으로 평생 고생하다 일찌감치 세상을 등진 아버지 머빈 온다치 Mervyn Ondaatje는 스리랑카 타밀족과 더치 브루거Dutch Brugher의 결합으로 태어났는데, 더치 브루거는 네덜란드인, 포르투갈인, 그리고 스리랑카 싱할라인이 섞인 상태를 의미한다. 독후감이 길어지는 위험이 있어도 스리랑카에 대해 좀 알아보자.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스리랑카에는 산 속에서 힌두교의 3억 마리가 넘는 숱한 신을 믿으며(신을 세는 단위로 ‘마리’를 써서 나는 지옥 갈 거 같다) 제일 큰 부족을 이루었던 싱할라 족과, 바닷가에 불교를 믿는 소수민족 타밀족이 사이좋게 살았다. 이후 마르코 폴로와 바스코 다 가마가 출몰하고, 섬 저 먼 바다에 앞을 가릴 만큼 큰 돛을 단 상선과 군함이 들이닥치더니 하늘 같은 흰 말을 타고 섬에 내린 하얀 피부의 서양 것들이 총을 쏘며 섬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착해 제일 먼저 만난 원주민이 당연히 바닷가에 살던 타밀족. 서양인들은 타밀족에게 먼저 기독교를 전파하고 그들을 수하에 두고 온갖 잡일과 막일을 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다 개중에 똑똑한 사람도 눈에 띄어 조금씩 하찮은 권력을 쥐어 주었는데, 타밀족이 저 산 위의 싱할라 족보다 그나마 권력이 세지기 시작하고, 먹고 사는 것도 여유가 있어서, 싱할라 족은 이를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세월이 몇 백 년 흘러 이제 실론 섬에서 백인들이 떠나버리자, 여태 상대적 박탈감에 치를 떨며 불만이 고조된 다수부족 싱할라는 타밀족을 아예 거덜을 내기 위해, 차라리 학살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으로 탄압을 하면서, 나라의 이름도 실론에서 싱할라 족의 땅이라는 의미로 스리랑카로 했단다. 내가 뭐 아나, 셰한 카루나틸라카의 <말리의 일곱 개의 달> 독후감을 쓰기 위해 메모했던 것을 참고하면 이렇다는 거다. 그래서 정상적이면 타밀족과 싱할라족의 피가 합쳐지기 곤란하건만, 알코올 오남용자 머빈 온다치 씨는 싱할라족은 싱할라족이지만 포르투갈 또는 네덜란드의 피와 혼혈인 싱할라족이라서 출생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 도리스 그라티앤Doris Gratiaen은 하필이면 재수없게 오빠의 친구한테 시집간 거다. 20대 말에 과부가 되어 살기 팍팍했던 엄마 아래에서 배울 것 없이 커서, 알코올 사용장애가 심한 남편 머빈 온다치 소령과 결혼해 마이클과 질리언을 낳고 살다가 못살아, 못살아, 더 이상은 못살아 세 번 부르짖고 이혼을 감행해 영국으로 떠나버렸다. 아들이 11세가 되자 영국에서 마이클을 만나고 다시 캐나다 퀘벡으로 이주했다. 결과적으로 참 잘했지. 그리하여 마이클 온다치는 스리랑카 캐나다인으로 비숍대학, 토론토대학, 퀸즈대학을 거치며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에 영국 요크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다가 지금은(지금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데, 설마 2025년은 아니겠지, 사실이면 올해 여든두 살인데?

  왜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이의 대표작 <영국인 환자: English Patient>를, 만일 영화만 보고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당신한테 원작을 꼭 읽어보라고, 그리고 영화가 왜, 어떤 방식으로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를 빼먹었는 지, 그게 고의였는지, 구성 상 어쩔 수 없어서였는지 한 번 판단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데, 아뿔싸, <영국인 환자>의 우리말 번역문이 좋지 않아 차마 권하지 못하는 심정이 애달파서 그렇다. <영국인 환자> 독후감에도 썼던 것을 다시 인용한다면, 스리랑카인으로 갈색 피부를 갖고 있는 온다치의 핵심 메시지(가운데 하나)는 이런 거였다.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난 아무런 상관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피부가 갈색인 사람들에게 폭탄을 투하한다면, 영국인인 거죠.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있나 싶더니, 이제는 미국에 해리 트루먼이라는 빌어먹을 인간이 있는 거죠. 모두 그런 것을 영국인으로부터 배운 겁니다.’ (중략) 그는 젊은 군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백인 국가에는 그런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 사랑 줄리엣 비노쉬에 넋이 나가 내용은 뭐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데 온다치의 핵심 논점은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 온다치는 하여튼 <영국인 환자>에서 아시아인으로 전쟁과 전쟁의 종결을 바라보는 비관적인 관점을 드러냈는데, 오늘 소개하는 <기억의 빛>은 조금 다르다. <기억의 빛>만 가지고 온다치를 판단한다면, 그를 유색인이라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실제로 이이는 한 해에 한 번 정도 고국인 스리랑카를 방문한다고 하고, 이젠 다 늙어서 여전히 그러는 지는 내가 전화를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콜롬보 공항에 내릴 때마다 누이동생 질리언을 만나 쌓인 회포를 풀고, 동생 식구들과 함께 정을 돈독히 쌓는 데 게으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의 빛>에서 주인공 ‘나’ 엄마가 부르는 이름 스티치, 아빠가 부르는 주민등록상 이름 너새니얼과 누나 렌 또는 레이철을 백인이 아니라고 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리지널 잉글랜드인. 마이클 온다치 자신이 세계인, 코스모폴리탄이니까 불만은 없다.


  <영국인 환자>가 2차대전 막바지와 종전 직후의 장면을 그렸다면, <기억의 빛 War Light>는 전후 끈질기게 이어지는 전쟁의 후유증에 관한 소묘라고 생각할 수 있다. 1945년에 주인공 ‘나’ 스티치가 열네 살, 곧 열여섯 살이 될 누나 렌. 어린 남매가 특별하게 전쟁의 후유증을 겪을 일은 없다. 다만 후유증의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 그러면 누구? 부모겠지 뭐. <영국인 환자> 같이 전투에 나가 싸우다가 심각한 상이를 입었나? 아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도 도브 샴푸, 바셀린, 기타 생활용품을 제조 판매하는 다국적기업 유니레버의 고위급 간부직원이었으며, 전쟁이 끝나면서 그간의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 승진을 의미하는 유니레버 아시아 사무소의 총 지배인 자리에 임명되었다. 이는 아버지의 개인적 커리어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 동시에 가정에서도 중산층에서 한 단계 도약해 어쩌면 남들이 부러워할 부르주아 끝자리 정도에 도달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아버지는 당연히 제안을 수락해야 했고, 아이들도 만날 일에만 열중해서 덤덤해진 아버지쯤이야 1년 정도 안 본다 해도 뭐 그렇게 서운해할 이유가 없었다. 근데 문제는 이상한 데서 터졌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 싱가폴에 가야 한다는 거다. 세상에. 세상에 어떤 어미가 남편 따라 가느라 런던에 의지가지 없는 십대 남매 둘만 달랑 남겨 놓겠느냐고? 그러나 아직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런 일도 있는가 보다 싶어, 그냥 그랬다. 부모는 3층에 세들어 사는 월터에게 남매의 후견을 부탁했단다. 평소에 그냥 그런 이웃인가 싶었는데 부모와는 일로 좀 친했던 모양이지?

  이래서 아버지는, 때는 바야흐로 1945년이라 랭커스터 폭격기의 후예인 신형 아브로 튜더1에 올라 시속 480킬로미터로 몇날 며칠을 날아 싱가포르에 도착했고, 어머니는 런던에 남아 몇 주 아이들 뒷바라지를 마감한 다음에 작은 은색 트렁크에 자기 짐을 챙겨, 떠났다. 남매를, 남매가 별로 정을 느끼지 못하는 후견인 월터, 남매가 ‘나방’이라 불러 훗날 진짜 이름 월터를 기억하지 못할 거구의 남자에게 맡긴 채.

  이쯤 해서 원래 제목 War Light가 무엇인지 설명을 해야겠다. War Light, 전시에 적기의 폭격에 방어하는 동시에 아군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당연히 수송도 이에 포함되고. 이 책에서 수송이라 함은 나중에 밝혀지기를 런던 모 성당에서 제조한 니트로그리셀린과 폭탄을 런던 시내에 있는, 기상천외해서 누구도 그곳에 화약을 집결시킬 줄은 꿈에도 모를 장소까지 트럭에 싣고 야밤에 운송하는 일이었는데, 독일 공군의 공습을 받을까봐 헤드라이트를 켤 수 없어서, 아주 미미한 광도의 빛만 비추고 포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길을 헤쳐가야 했다. 이때 이 ‘아주 미미한 광도의 빛’을 War Light라고 한다. 다른 뜻도 있지만 하여간 책에서 말하는 War Light는 그렇다. 사전 찾지 마시라.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찾아보시는 분 꼭 한 명은 있다. 누군지도 안다. 흐흐)


  한 눈에 보기에도 범죄자 비슷한 남자인 나방. 시간이 조금 지나 그나마 친해지자, 자신이 어떻게 어머니를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준다. 나방은 전시에 어머니와 함께 그로스브너 하우스 호텔 옥상에 있었다는 “새둥지” 참호에서 화재 감시원으로 일했단다. 독일 폭격기가 런던을 공습하면 공습경보를 발령하고 화재가 집중된 곳을 소방서에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

  그러다가 이건 그냥 하는 말이고, 진짜 했던 일은 새둥지에 세워진 고성능 안테나를 이용해 독일에서 발신한 모스 부호를, 놀라운 재능으로 누구보다 쉽고 정확하게 풀어내는 어머니가 이를 다시 대륙의 대 독일 저항투쟁 단체에 알리는 일을 담당했다는 거다. 쉽게 얘기해서 렌과 스티치의 엄마는 전직 정보원. 이를 알게 된 건, 엄마가 집을 떠난 얼마 후, 렌이 엄마가 가지고 가려했던 트렁크를 집에서 발견하고, 트렁크 속에 든 모든 물건 역시 그대로 있는 걸 알게 된 이후이다. 엄마는 결코 싱가포르에 가지 않았다. 어디로 갔을까? 모르지. 엄마는 여전히 영국 외교부 소속 정보부원이었으니까. 그래도 골든 부커상을 수상한 마이클 온다치가 주인공의 엄마로 상정한 인물이니 정보부 요원이라도 그냥 정보부 요원이면 좀 그렇지?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때에 따라서 피도 눈물도 없는 요원이었다. 이런 요원은 같은 정보원 사회에서 당연히 적들이 비일비재하고, 언제 그들의 습격을 받아 피해를 입을 지 늘 각오를 해야 하는 법. 저 위에서 말한 전후 후유증은 이걸 말하는 것이었고, 때에 따라 후유증은 간혹 피도 눈물도 없이 한 집단의 학살의 시발을 만들기도 했었으니, 이런 요원의 자식 역시 후유증 또는 복수의 대상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이한 판단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방과 훗날 화살이라 불리는 요원에게 딸과 아들의 보호를 요청하고 잉글랜드 외무부의 새로운 지령을 수행하러 저 멀리, 발칸으로 숨어들어갔던 거였다. 어떠셔, 흥미진진하겠지? 그렇지는 않고, ‘나’ 스티치, 너새니얼의 성장기와 경험이 더 많거나 비슷한 분량이어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기대하지 말고 읽는 편이 훨씬 좋을 듯하다. 그럼에도 다양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다.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455번으로 중판을 찍었다. 초판은 1만9천원, 중판은 1만8천원. 천원 차이라도 이런 시도는 칭찬받아야 한다. 박수 세 번, 짝, 짝, 짝! 초판 번역은 아밀, 중판은 김지현.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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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2-27 0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매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저는 사전 찾지 않았습니다 ㅎㅎ)

Falstaff 2025-02-27 15:59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

은하수 2025-02-27 0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재밌는데요~~^^
근데 1945년에 발칸으로 숨어들었다니.. 설정도 참으로 위험할진데 흥미진진 합니다~~

Falstaff 2025-02-27 16:00   좋아요 1 | URL
엄마의 첩보 활동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 정말 스릴러가 됐을 텐데 말입니다. ^^

stella.K 2025-02-27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님의 뮤즈가 비노쉬라는 건 오늘 첨 알았네요. ㅋㅋ
요즘 뭐하며 지내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그 시절 여배우들 그립네요.ㅠ
근데 책값을 내리는 경우도 있군요.

Falstaff 2025-02-27 16:02   좋아요 1 | URL
비노쉬, ㅎㅎㅎ 좋잖아요. 꿈 속에서야 뭔들 못하겠습니까. ㅋㅋㅋㅋ
아마 초판이 하드커버였을 겁니다. 그래서 포장비에서 천원 빠졌나 싶기도 하고요.
 
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호밀밭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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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세레나데>를 쓴 쥴퓌 리바넬리? 헛참, 그거…

  책을 열면 O.Z. Livaneli가 쓴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나온다. 한국에서 출판한다니 기쁘다는 얘기다.  문제는 다음 장에 실린 소설가 장강명의 “추천사”.


  “낙원과도 같았던 작은 공동체에 탐욕스러운 외부인이 들어오고, 마을은 점점 망가져 마침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2008년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독재 정부를 비판하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2022년 한국 독자들에게도 울림이 크다.”


  출판사 호밀밭의 편집부장과 장강명은 몰랐을 걸? 이 추천사로 인하여 <마지막 섬>은 첫 두 페이지, 딱 두 페이지만 읽고도 앞으로 무슨 이야기를 전개할 지 눈에 훤히 보이고 말게 될 것임을. 다른 독자는 모르겠고, 나는 정말로 소설 초반부터 작가가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전개하든 읽는 행위 자체가 너무도 지루해 어쩔 줄 몰랐다. 지루한 책을 읽을 때는 유독 허리와 무릎이 조근조근 쑤셔, 읽다가 벌떡 일어나 도서관 열람실 창밖을 내다보는 일도 잦았다. 이게 뭐야, 마치 1980년대 의식화 교재, 의식화 교재이기는 한데 그것도 성인용도 아니고 고등학생용도 아닌, 초등생이나 중학생을 위한 생 기초 교재 수준에 그친다. 그런 거 있잖아. “아름답고 평화로운 다람쥐 나라에 너구리가 신발을 팔러 왔어요. 너구리는 늘 맨발로 사는 다람쥐한테 무료로 신발을 나누어 주었어요. 다람쥐들은 몇 년 동안 신발을 신고 다녀서 발의 굳은 살이 다 풀려 이제는 맨발로 다니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자마자 너구리는 갑자기 신발을 돈 주고 팔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신발 값을 받지 않아 많이 밑졌다고 하면서 아주 비싼 값으로 신발을 팔았답니다. 다람쥐들은 신발을 사기 위해 다 가난해졌고, 돈이 떨어지자 할 수 없이 자기 땅을 팔기 시작했어요. 다람쥐들의 땅도 다 팔 수밖에 없게 되자 너구리는 다람쥐들을 다람쥐 마을에서 쫓아내 버렸답니다.” 대충 어떤 식인지 기억날 거다.

  아, 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 그래도 리바넬리인데 혹시 알아? 마지막에 신묘한 뒤집기 결말이 놓여 있을 지? 결국 혹시 했다가 역시로 끝났지만.


  작품은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절대 비밀’로 지켜왔던 그 지상 낙원에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외딴 섬. 사계절 내내 온화하고 밤이면 자스민 향기에 뒤덮이는 숲 속에 자리한 낡고 오래된 집과 함께 세월에 맡겨진,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된 세상. 쥴퓌 리바넬리의 이 섬에 관한 묘사를 조금 더 읽어보자


  “섬의 평화로운 자연환경은 마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명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이면 해수면에 드리우는 우윳빛 안개와 저녁 무렵에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풍을, 그리고 갈매기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바람의 속삭임과 라벤더 향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매일 동이 떠오를 무렵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해무에 휘감겨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쌍둥이 섬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건? 바닷물 속으로 잠수했다 나오며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은? 집마다 피어있는 보라색 부겐빌레아꽃은? 그리고, 한밤의 린덴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말 한 마디로 하자면 율도국이요, 결국 목이 잘려 죽은 토마스 모어 경의 말에 의하면 유토피아 자체인 섬, 마지막 남은 지상 낙원으로, 마지막 섬이다. 오래전에 대단한 자산가가 섬 전체를 매입해 자산가 수준으로 봐서 매우 소박한 별장을 짓고 살다가, 혼자 살기 적적했는지 지인 몇을 불러 자기 집 근처에 크지 않은 별장을 짓고 함께 살게 배려했다. 이렇게 해서 딱 40개의 별장, 절대로 40호를 넘지 않는 작은 촌을 이루어 그들끼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바지 차림에 매우 간소한 웃옷만 입은 채 수영을 하든지, 그늘에 매인 해먹에 누워 잠을 자든지, 낚시를 하든지, 하여간 무슨 수를 써서 매일의 권태만 벗어나면 그걸로 만족하다가, 드디어 해가 넘어가면 뜻 맞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얇고 긴 화이트와인 잔을 기울이며 살던, 율도국이요 유토피아였던 섬. 며칠에 한 번 육지에서 연락선이 도착하지만 접안 시설이 큰 배를 맞이할 수 없어 작은 보트를 타고 짐을 가져와 판매를 하는 구멍가게가 하나 더 있을 뿐. 그런데 잘 보시라. 처음부터 섬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건물, 즉 39개의 별장은 자산가(의 아들) 말고 초대에 응한 이들이 지어 그들 소유이지만, 섬, 즉 토지는 전부 죽은 자산가에게 상속을 받은 아들, 작품 속 40호 가운데 1호 별장 주인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건 언제나 작지 않은 문제가 될 것임을 독자는 애초부터 짐작하고 있을 수밖에.

  그리고 나의 끈질긴 고질인 계급의식. 이 율도국 거주민 40가구는 도대체 무얼 해서 먹고 살지? 해가 뉘엿뉘엿 지면 아무렇게 막 우려낸 포도주가 아니라 육지에서 수송해온 질 좋고 비싼 화이트와인을 홀짝일 수 있으려면 그만한 수입이 있어야 할 터. 나중에 알려지지만 섬에서 유일한 소득원은 주민들 스스로 저 높은 나무에 기어 올라가 따서 껍질을 벗겨 내다 팔아 돈과 바꾸는 잣 수확밖에 없다. 그것도 사실 모두 1호 소유이기는 하지만 마음씨 좋고, 마음이 좋은 만큼 돈도 많은 1호가 눈 감아 주어 여태 팔아먹은 것인데, 잣이 아무리 겁나 많이 달린다고 해도 오직 그거 하나 따서 팔아 날마다 화이트와인 음용이 가능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그리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기를, 원래 출신이 대단한 자산가 1호가 초청한 1호의 지인이었으니 1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부르주아 또는 부르주아에 가까운 인간들이었고, 노동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육지에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자가증식하여 꼬박꼬박 통장에 새로운 돈이 입금되는 인간일 것이라는 짐작. 이거 틀렸어? 율도국, 또는 유토피아에도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이런 인간들이 목숨을 걸고 저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잣을 따온다고? 왜? 차라리 염병을 하지.


  그래도 치사하게 이렇게 미리 딴지 걸지 말고 읽기 시작하자. 이렇게 우아하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마을에 찾아온 인간은, 이미자 노래가사처럼 총각 선생님이 아니라 장기집권한 후 어쩔 수 없이 사임한 대통령이었다. 소설 속 계속 ‘전 대통령’이라 불릴 전직 군인 장군 출신의 이 무지막지한 깡패는 피노체트나 전두환 같은 기질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이이가 섬에 들어오게 된 것은, 24호 별장의 변호사가 숲속에서 조깅 도중 심장발작으로 죽는 바람에 공실이 된 24호 건물이 매물로 나온 것을 전 대통령의 수하가 보고하여, “전 대통령의 조용한 은퇴생활을 하기 위해” 육지에서 멀고, 거리가 멀면 관심도 멀어지는 법, 오래 계속된 철권통치 후에 국민에게 외면당해 혁명의회가 겉으로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자발적으로, 속으로는 거의 강제로 사임시켜, 될 수 있으면 국민의 입방정에 오르지 않기 위하여 선택한 곳이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아버지는 36호 입주자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 잠시 빈 상태로 있었는데 ‘나’가 이혼 후에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던 유부녀 라라와 야반도주를 해 떠나왔을 때의 ‘나’는 수많은 상처와 실망 그리고 큰 아픔을 경험한 후였다고 주장한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자, 주인공이니까. ‘나’와 라라는 7호에 사는 소설가와 친하게 지냈는데, 7호가 전 대통령이 섬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악과 함께 크게 걱정을 하며,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섬 전체가 황폐화될 것이며, 불행이 온 섬을 뒤덮을 것이라고 신음한다.

  그리고? 당연히 7호 소설가의 예언대로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전 대통령의 불 같은 성격과 폭압적인 의사결정과 결정의 집행. 어디까지나 주민투표를 통한 민주적인 절차를 거친 민주적 행위인 것은 틀림없지만, 전 대통령의 기만과 현혹과 유혹적인 선동으로 인해 섬은 급격하게 지옥으로 변해간다. 리바넬리가 그린 지옥도.

  리바넬리 씨, 미안하다. 나는 지옥처럼 지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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