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하우스
욘 포세 지음, 홍재웅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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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욘 포세를 읽는다. 1959년 노르웨이 Haugesund(스칸디나비아 발음 자신 없어 알파벳으로 표기함)에서 경건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포세는 10대 시절에 <보트하우스>의 주인공 화자 ‘나’처럼 록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웠다고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이후 연주 대신 작곡과 작사에 몰두하는 십대 시절을 보냈다. 베르겐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해 1990년대초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걸은 소설가, 극작가. 2023년에 노벨상을 받아 한 방에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나도 이전까지 포세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자칭 히피로 지내면서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은 기독교 경건주의 가정의 일원.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이 성격 변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 딱 한 권 읽었을 뿐이지만, 그랬을 거 같다. 2023년에 하도 선풍적 인기를 끌던 작가라서 열풍이 좀 죽은 다음에 읽기로 마음먹게 했던 작가. 이제 김 좀 빠진 거 같아 읽었다.

  책 판권을 보니 초판이 2020년. 그러니까 이이가 노벨상을 받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소개가 됐던 작가였다. 아뿔싸.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의 작가들은 대개 폭력, 엽기 살인, 범죄, 스릴러, 기업간의 암투 같은 소설만 쓴다는 선입견에 푹 젖어 있어서, 아마도 포세의 이름을 책등에서 발견했다 해도 아예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지냈을 거 같다. 그러나.

  욘 포세는 202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노르웨이 작가 프로데 그뤼텐은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를 써서 2023년 브라게 문학상을 받았다. 공통점은 빙하가 녹은 골짜기로 바닷물이 들어와 생긴 깊고 좁은 해역을 일컫는 피오르 해안을 무대로 한, 사람과 죽음의 이야기라는 것. 분위기는 놀랍도록 흡사하다. 주인공들의 연령대와 직업, 가족 구성과 친구들이 완전히 다르더라도 피오르 해변을 둘러싸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착 가라앉은 저기압 같은 과하게 차분한 분위기. 자연이 이래서 상당히 오랜 동안 스칸디나비아 반도 주민들의 자살률이 세상에서 제일 높았었나 싶었다. 우리나라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이기는 하지만.


  <보트하우스>는 시작부터 지독한 반복으로 점철됐다.

  “나는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나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 불안감이 엄습해 온 것은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나는 적어도 10년은 보지 못했던 크누텐과 다시 마주쳤다. 크누텐과 나, 우리는 늘 함께였다. 내게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p.8)

  이 불안감은 신체적 이상으로도 표시가 되는데, 왼팔과 손가락이 쑤시는 증상이다. 화자 ‘나’는 이 불안감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시민무도회 같은 곳에서 기타리스트로 나이든 지역 중학교 교사 토르셸이 아코디언 연주에 반주를 맞춰주면서 몇 푼씩 벌기도 했다. 그것 말고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오고, 어머니 대신 장 보고, ‘나’의 방인 다락방에서 몇 장 되지 않는 음반을 듣고, 책도 읽으며, 가끔 배를 타고 피오르에 가서 낚시를 했다. 물론 요리는 어머니가 했다. 어머니? 그렇다. 서른 살이 훌쩍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산다. 어머니의 영토는 1층의 침실과 거실과 주방과 식당 등이고 ‘나’는 2층에서 별 일 없으면 나가지 않는다. 책에는 한 마디도 없지만, 이렇게 사는 건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 얹혀 사는 것”이며, 이런 형태를 캥거루 증후군이기도 하고, 히키코모리라고도 하는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수입의 대부분은 어머니가 매달 받는 연금으로 충당하니 더욱 그러하다. 어머니는 연금을 받고, 장 보고, 음식을 만들고, 전기료, 전화요금 등 고정비용을 지불하고,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나’의 옷을 세탁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대부분의 시간은 투덜거”린다고 불만이다. 한 마디로 ‘나’는 마이너리티다. 아예 집 밖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피오르 지역에서 나가본 적도 없다. 여행도 싫어한다는데 정말 싫어하는 건지, 여행할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연애? 한 번의 사정을 위하여 원나잇 같은 걸 해본 적은 있겠지만 심각한 사랑하고는 인연이 없다.


  지난 여름에 적어도 10년 만에 만난 친구 크누텐과는 늘 함께 했던 친구 사이다. 열 살을 넘기자마자 죽이 맞아 록 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먹고 정말로 실행에 옮기려고 애쓴 ‘나’와 크누텐. 청소년회관의 젊은 관리인 한테 마이크 스탠드로 사용할 수 있는 낡은 전시대를 선물 받아 그것을 둘 공간을 찾던 중 피오르 가에 방치된 보트하우스가 생각나 그곳으로 무거운 전시대를 가지고 갔던 것도 ‘나’와 크누텐이었다. 보트하우스에서 오래되어 삭아버린 면 그물을 조각내 포대 안에 쑤셔 넣어 소파를 만들어 아지트로 삼기도 했던 곳. 그러나 여간해 찾아오지 않던 성질 고약한 거구의 늙은 스베이넨 씨, 동네 과수원과 보트하우스의 주인으로 자기 과수원에서 사과나 배를 서리하다 잡히기만 하면 거의 반죽음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스베이넨 씨가 갑자기 보트하우스의 문을 열어 그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먼지 가득한 어두운 구석에서 숨을 참으며 숨어 있던 기억까지 공유한 친구.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피오르를 떠났다. 대학을 졸업해 음악교사가 되었으며, 한갓진 피오르 지역의 기준으로 치면 대단한 미모를 지닌 아내와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나’는 그가 피오르를 떠난 이후 지난 여름에 처음 다시 만날 때까지 십년 동안 보지 못했다. 어릴 때 나를 떠난 친구. 소리쳐 불렀지만 그냥 몸을 돌려 가버렸고, 돌아왔을 때는 음악교사였으며, 더 이상 연주는 하지 않았고, 아름다운 여자의 남편이자 예쁜 두 딸의 아버지였다. 그를 만난 이후에 ‘나’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일상적 일을 하지 못하기 시작했으며 왼팔과 손가락에 쑤시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불안감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어, 지금 쓰고 있는 거였다.

  지난 여름 이후 ‘나’는 스스로 다락방에 갇혀 있다. 전에는 장도 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오고, 배 타고 피오르에 나가 낚시도 하고, 가끔 청소년센터에서 열리는 무도회에서 토르셸 이중주단의 일원으로 연주해주고 적지만 돈을 얻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락방에서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하여 이 글만 쓰고 있다. 전에 어머니는 ‘나’더러 “너도 직장을 알아봐야지, 기타를 퉁기며 다락방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니.”라고 말했으나, 지금은 “너는 글 쓰는 걸 당장 멈추어야해. 그래야 나가서 장도 봐 오고, 어디라도 다녀야지 이렇게 어떻게 살겠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동안 투덜거린다.


  지난 여름에 책을 빌리려 가는 중에 십년 만에 크누텐 가족을 만났다. 반가웠을 거 같지? 크누텐의 아내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음악교사를 하는 크누텐은 이제 아내와 두 딸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휴가가 길다. 그러나 알려진 좋은 휴가지에 가서 오래 지낼 만큼의 보수는 받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일단 숙박비와 체류 고정비의 상당액을 어머니에게 덮어 씌울 수 있는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하지만 다 좋지는 않다. 십년 이상 전혀 연락이 없다가 단박에 기억 속의 친척, 친구, 이웃을 만나야 한다. 십년 전의 관계는 휘발되었거나 여전히 남아 있어도, 그렇다고 기억을 끄집어 내기도 쉽지 않다. 관계라는 것이 언제나 좋았던 건 아니니까. 그누텐은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게 반갑지 않다. 어린 시절 정말로 록 밴드를 만들어 주말마다 이곳저곳의 청소년센터 강당을 빌려 공연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담배도 피우다가 여자 애들도 만나던 때, ‘나’와 함께 어울린 또래 여자들도 마찬가지.

  크누텐의 아내가 남편의 생각과는 달리 ‘나’를 집에 초대한다. 이날 저녁 때가 되자 ‘나’는 배를 타고 피오르에 나가 낚시를 하러 가면서 크누텐의 집 근처 쪽으로 둘러 간다. 아마도 크누텐의 아내가 창에서 ‘나’를 본 거 같다. 크누텐의 아내는 노란 우의를 입고, 옆집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배를 빌려 ‘나’의 배 옆으로 온다. ‘나’는 커다란 대구 한 마리를 잡았지만 대구가 얼마나 힘이 좋은지 배 선창에서 튀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조금 후, 이번엔 크누텐의 아내가 거의 비슷한 크기의 대구를 낚아챘고, 어쩔 줄 모른다. ‘나’는 그녀를 도와 대구를 잡고, 숨통을 끊은 다음 몸에서 피를 뺀다. 안 그러면 대구가 상할 수 있어서. 이제 돌아가려 할 때, 크누텐의 아내가 피오르 안에 솟은 작은 섬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자고 제안한다. 그걸 받아들여 ‘나’와 그녀 단 둘이 아무도 없는 외딴 섬에 오르고, 이 광경을 저 멀리 해안가에서 크누텐이 지켜보고 있다. 저 섬엔 아무도 살지 않는데, 둘이 저곳에 무엇을 하러 들어가는 걸까? 크누텐은 속이 뒤집어진다. 부부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고, 크누텐은 조금의 의처증 비슷한 편집 증상이 있었으며, 아내의 초청을 받아 집에 들른 ‘나’와 아내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의심했다.

  그해 여름에 크누텐을 십년 만에 만난 후에 불안감에 휩쓸려 신체적으로도 왼팔과 손가락이 쑤실 정도인 ‘나’.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하여 글을 쓰게 되었지만, 다락방에 갇혀 집 밖으로 여간해 나갈 수 없게 되는 일. 길고 긴 낮과 길고 긴 밤이 지속되는 땅. 얼음처럼 차갑고 깊지만 좁은 바다를 둘러싼 지역. 여름이라도 싸늘한 바람과 인적이 드문 외진 동네. 그런 이야기.

  나는 잘 읽었다. 읽은 다음에 스마트폰의 책읽기 앱 북적북적에 별 네 개 반을 평점으로 매겼다. 그러나 조심하시라. 취향 차이가 독자마다 심할 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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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0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헉! 욘 포세~~~
인용한 문장만 봐도 멜랑콜리아의 문장들이 연상되네요...ㅋㅋㅋ
어후야~~~ㅎㅎ

그나저나 뽈스타프님은 욘 포세를 계속 읽으시겠습니다! 별4개면...
별5개도 분명히 취향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오래된 빛>은 완전히 대실망이었거든요~~ㅎㅎ

Falstaff 2025-11-21 05: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오래된 빛>에 실망하셨으면 포세도 힘드실 거 같은데요.
휴대폰 앱에는 별 넷반이라니까요. 다섯은 아무래도 과하다 싶어 넷에서 멈춘 겁니다.
<멜랑콜리아>에 비하면 문장이 아주 순한, 순하디 순한 맛입니다!

yamoo 2025-11-21 10:19   좋아요 0 | URL
포세는 절대 안 읽을 거에요...절대!!

Falstaff 2025-11-21 15:27   좋아요 0 | URL
저도 ˝앞으로는 안 읽을 것이다,˝라고 하도 여러번 말했다가 부도를 낸 바람에... 디킨스, 워튼 같은 사람이요, 야무 님 다짐도 반 만 믿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