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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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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지난 달이다. 크리스토프 하인의 <처음부터>를 생각 밖으로 재미있게 읽어 곧바로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넣었다가 읽은 책. 아뿔싸. 근데 서간체 소설이다. 나는 서간체 소설 싫어한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 없다. 저 멀리 몽테스키외의 <어느 페르시아인의 편지>부터 새무얼 리차드슨의 <파멜라> 그리고 추밀고문관 괴테가 쓴 불후의 명작이라 일컫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까지 뭐 재미있게 읽은 책이 책/작품이 없다. <나폴레옹 놀이>도 마찬가지. 처음엔 그것 참 서간체라도 괜찮네, 싶었는데, 이 책이 2008년에 나온 것이라 요즘 책과 비교하면 글씨가 빽빽하게 박혀 있고, 서간체라서 A가 B한테만 늘어놓는 독백이라 흔한 대사 한 마디 없는 상태로 본문이 263쪽까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일지언정, 이게 백페이지를 넘어 화자의 과거 소년 시절부터 변호사로 번창하기까지 과정이 끝나고, 자신이 저지른 나폴레옹 놀이에 관한 변설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지니까, 아무리 말빨 좋은 크리스토프 하인의 문장이라도 이건 뭐 숨이 턱턱 막히는 건 물론이고, 도대체 이 양반이 지금 무슨 주장을 하는 지, 앞뒤 따져볼 엄두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안다, 알아. 20세기 문명에 관한 독특한 문명/문화 비평이란 건.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주제이다. 삶은 놀이, 독일어로 Spiel, 영어로 하면 game을 그냥 ‘게임’이라 번역하지 않고 내나 ‘놀이’라 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게임, 이라고 할 때보다 조금 가벼운 느낌의 우스개 장난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임과 편지를 쓰는 변호사 ‘나’도 삶은 게임이라고 여긴다. 삶이 게임? 돈 또는 돈과 비슷한 무엇을 걸고 하는 게임. 또는 놀이.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이면 도박? 인생은 도박. 인생이 도박이라고?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어먹으며 섰다 도박을 하는 꼬마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이외수의 단편 제목이 뭐였더라? <고수>? 아마 그 작품에서 나오는 말일 거다. 인생이 도박이라고? 인생을 도박만큼 진지하게 열중해서 살면 실패할 인생이라곤 없을 거라고. 딱 이렇게 말한 게 아니라 이 비슷한 취지로 쓰여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거 읽을 때가 대학 다닐 때였나 그랬는데, 그럴듯하네 싶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오직 돈을 따기 위하여 놀이, 즉 게임을 하면 그건 하수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나폴레옹.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하여간 바다 건너 영국 빼고 유럽 대부분을 포식한 나폴레옹은 쳐들어가면 깨질 것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했다고 단정한다. 지겠지만 이길 수도 있다. 다만 확률이 무지하게 적을 뿐. 수하 장군들조차 적극 만류했던 러시아 침공. 거의 최초로 파리를 향해 대포를 쏴 권력을 차지한 나폴레옹 자신도 알았으면서도 러시아로 진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생 자체가 놀이, 게임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었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건데, 그래도 그렇지, 아군 적군 합해서 무려 40만 명을 귀신으로 만들었던 전쟁광을 세상 사람들은 너무 과하게 칭송해왔던 건 아냐?
주인공이자 살인죄 피의자로 법률적인 심리 절차를 밟고 있으며, 당연히 유치장에 구속 중인 ‘나’가 자신의 변호인 피아르테스에게 보내는 편지 두 통이 작품의 전부이다. 첫번째 편지 한 통이 무려 245페이지에서 끝난다. 그러니 얼마나 지긋지긋하겠어? 에필로그로 볼 수 있는 두번째 편지는 20페이지 분량에 미치지 못하니까 껌이고.
하여간 ‘나’가 기억하는 첫번째 놀이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프리더 뵈를레 사탕공장’에서 시작했다. 공장엔 사장인 아버지를 빼고 18명의 종업원이 있었고, 이 가운데 16명이 여자였다. ‘나’는 외동아들. 엄마는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슈테틴 사교계에서 깃발을 날리는 귀부인으로만 지내고 싶어해 ‘나’를 하녀, 유모에게 맡겨 놓아 ‘나’는 자동적으로 응석받이로 자랐다. 아버지는 ‘나’를 아들이라기보다 공장의 후계자로 대하고자 하는 눈치여서 ‘나’는 1주일에 한 번씩 매주 수요일마다 공장을 방문했다가, 생산 현장도 순시하는 척했다.
생산직원 여자들은 ‘나’를 사장의 외아들이라 ‘아기씨’라고 불렀는데, 11살, 12살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12살이지 우리나이로 하면 열셋, 열넷 정도. 중학교에 입학해 배꼽 12cm 아래엔 벌써 솜털이 빠지고 짙고 검은 털이 돋을 때다. 시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직원들 대부분은 전쟁 과부이거나, 남편이 참전했다가 지금 다시 독일로 터덜터덜 걸어서 퇴각 중이거나, 벌써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 노동 수용소에서 노역 중이거나, 다 자랐지만 남자가 없어서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였는데, 1년 안에 슈테틴을 점령할 소련군에게 아마도 대다수가 강제 능욕을 당할 운명이었을 걸?
‘나’가 생산실에 들어가 짐짓 어떻게 일을 하고 있나 ‘참관’하는 시늉을 하면 제일 먼저 소피아 여사가 아기씨, 하고 ‘나’를 불러 무릎 위에 앉힌다. 말만 아기씨고 정말 기회만 있으면 진짜 아기의 씨를 뿌릴 수도 있을 법한 총각 놈을 무릎에 앉히면, ‘나’는 처음엔 무릎 끝에 엉덩이만 댄 것처럼 앉아 있다가 조금씩 뒤로, 뒤로, 즉 소피아의 몸 쪽으로 밀착해, 여자의 숨결과 냄새와 말랑말랑한 살의 감촉을 만끽하는 거였다. ‘나’가 1932년 8월생이고 1945년 3월 이전의 일이니까 만 12세, 거의 다 큰 ‘사내새끼’인 걸 여공들은 몰랐을까? 천만의 말씀. 그렇게 소피아의 무릎에서 비비적거리고 있으면, 조금 지나 옆에서 컨베이어를 타고 흘러오는 초코릿을 포장하던 테레제가, 아기씨 이제 이리 오세요, 하고 인터셉트를 한다. 이어서 마리아. 마리아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유일한 직원이어서 유난히 말랑말랑해 ‘나’의 입장에서 제일 죽여줬고, 4번타자인 게르티는 절대 몸을 기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아 다 큰 애하고 몸을 비비적거리기 싫었던 모양이다. 브리기테, 힐데, 요제피네, 요한나… 일과가 끝나면 지하실에 있던 목욕실에 함께 가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수건으로 몸을 가린 채 욕탕으로 들어가던 그녀들. ‘나’도 욕탕 안까지 들어가거나 커튼 사이로 훔쳐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나? 이것이 ‘나’가 기억하는 첫번째 놀이, 장난, 게임, Spiel이었다.
여기까지는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으로 여길 수 있겠지.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이제 다른 나라의 땅이 된 슈테틴을 떠나 1945년 튀빙겐의 티펜오르트에 도착한 후에는 달라진다. 7월, 한 시절 사교계의 잘 나가는 마담이었던 어머니는 이곳에서 심근경색으로 한 많은 세상 하직하고, 목재공장 지배인으로 취직했던 아버지마저 생계형 범죄로 해고당한 후, 전에 튀링겐 우표 판매소를 하던 남자의 과부댁을 꼬드겨 결혼에 성공한 이후 이제는 장난이 아니다. 계모에겐 아들이 하나 딸려 있었는데 ‘나’보다 두 살이 적지만 덩치도 크고 완력도 만만하지 않아 상대를 겨룰 만했다. 근데 얘가 머리도 좀 있어서 (나중에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할 정도로) ‘나’를 골탕 먹이고 곧바로 계모한테 달려가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리하여 열을 잔뜩 받은 ‘나’는 아버지의 넥타이 세 개를 가위로 조각조각 내 나무에 걸어 놓고 시침을 뚝 뗀다. 누가 봐도 ‘후레자식’이라 칭하는 계모의 아들이 잘라놓고 죄를 ‘나’에게 덮어 씌우는 것처럼 연기 또는 놀이에 성공한 ‘나’. 후레자식은 밥 먹다 아버지한테 오지게 귀싸대기를 얻어 맞고, 이어서 계모한테도 야물딱지게 귀싸대기를 파박, 얻어 터지고 이후 집에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이어서 동쪽 독일에서는 대학 입학 허가가 나지 않아 서쪽 베를린에 가서 대학에 입학해 법을 전공해 법학박사와 변호사 자격을 따는 일. 서쪽으로 넘어온 아버지와 계모가 사는 촌동네에 가서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일, 다시 베를린으로 와서 크게 성공을 하는 일. 이건 모두 생략. 딱 여기까지가 재미있다.
변호사인 ‘나’는 백만 마르크를 초과하는 부를 이루었다. 변호사 직을 유지한 채 정치에 뛰어들어 이젠 거국적인 놀이를 펼쳐 언제나는 아니지만 줄곧 이기는 편이었다. 더 올라갈 곳이 없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숙명적으로 질 것임을 감지하면서도 러시아를 침공하는 나폴레옹처럼 이기지 못할 놀이에 도전하는 것. ‘나’는 수년동안 놀이의 상대를 물색해, 드디어 찾아냈고, 그를 지하철 동베를린 지역에서 죽여버린다. 이래서 책을 열면 변호사 ‘나’가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자신의 살인이 결코 범죄가 아니라 일종의 정당방위라는 걸 설명하기 시작한다. “정당방위란 외부의 위협과 내면의 위기로 유발된 대안이 없는 상황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 놀이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살인도 정당방위라는 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차마 못하겠다. 그게 결론이라서. 서간체 소설을 좋아하기만 하면 대박일 텐데, 하여간 나는 앞에서 말한 딱 거기까지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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