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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이란 무엇인가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44
장웨이 지음, 임명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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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은 잔나비띠라서 그런지 재주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국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라, 중국인도 마찬가지인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까운 산둥성 퉁커우시에서 출생한 장웨이도 그랬던 거 같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 인민은 끊임없는 도취적 이상국가로의 전진사업에 희생되었다. 대약진운동, 반우파운동,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정점을 이룬 문화혁명. 장웨이도 유소년 시절에 이 과정을 거쳤다. 옌롄커, 위화 등 이 또래 많은 작가들이 이 시절, 그리고 이후의 천민자본주의의 해일 속 생존담을 작품화 했다. 그러나 이 책 《흥분이란 무엇인가》는 다르다. 아예 도시생활 징면을 볼 수 없다. 저 다싱안링 산맥과 하얼빈 일대를 무대로 잔잔하게 사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츠쯔젠을 읽고 중국 소설에 이런 작가도 있었구나, 하고 놀랐던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장웨이라는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마음이 흡족했다.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쓴 단편소설 스무 편을 실은 소설집. 평소 제일 신뢰하던 대산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책이라 관심이 있었지만 제목 《흥분이란 무엇인가》 때문인지 선뜻 손을 대지 않게 되던 책. 아주 오래 머뭇거렸건만 왜 이 책이 내가 은퇴한 이후에 내 돈을 내고 구입한 첫번째 책이 되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뒷방으로 물러난 이후에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산 유일한 책이 《흥분이란 무엇인가》이다. 사 놓고 몇 년 만에 읽었다. 마음이 기껍다. 내 마음에 차는 책을 골랐고, 국민연금을 받기도 전에 사서, 책장 속에서 적당히 묵혔다가, 느즈막하게 꺼내 읽어도 좋을 만한 책이라서. 옌롄커나 위화 과가 아니다. 츠쯔젠과 더 비슷하다. 츠쯔젠이 다싱안링 산맥과 하얼빈에 집중했다면, 장웨이는 역시 자기 태가 묻힌 산둥성 룽커우 지역을 흐르는 강 루칭허(蘆靑河)에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이 책의 많은 작품이 루칭허 하류와, 강이 바다에 이르는 연안 해역, 그리고 해변지역을 무대로 한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
무엇보다 지방색이 풍부하다. 오랜만에 도시적 냉정과 투쟁성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작품들을 읽으니 마음도 편안해진다. 당연히 사람 사는 일이라 이들 사이에도 시기도 있고, 질투도 있고, 자잘한 싸움도 있으나, 내가 그동안 읽은 중국 50~60년대 작가들의 주요 활극처럼 독하지 않다. 자연의 폭력 말고 사람 간의 폭력도 없고, 따라서 살상이나 능욕 같은 자극적인 장면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로 사람 사는 일 같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좀 지난 스타일”처럼 읽힐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전쟁 이전의 순수문학처럼. 그동안 얼마나 강박한 세월을 지내왔는지, 아무리 오래 전 스타일이라 할지언정 이런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이 정도 이야기했으니 책과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성격을 짐작하실 수 있을 터.
장웨이는 산둥성 룽커우 시의 가난한 집, 아니면 한 시절 소지주라고 불리는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고무공장 현장직원으로 일하며 습작을 시작했다. 작품을 보면 아마 (조)부모가 소지주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어릴 때부터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나이가 좀 차니, 반우파운동 같은 것에 치여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도 동네 또래들에게 욕을 듣고, 구타도 당하고 했던 것 같다. 그의 학력은 후에 사농(四農)연합중학과정을 마치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 농農 자가 들어가는 중학을 졸업한 이력으로 포도원과 조림지 또는 다른 농업과 어업 관련 일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1980년 이후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중요한 문학적 경험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것. 사는 게 다 그렇다. 다 좋을 수 없는 것처럼 몽땅 나쁠 수도 없다.
1980년에는 옌타이 사범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산둥성 자료관에 근무해 처음으로 ‘펜대’ 잡는 직업을 얻는다. 이 전에도 습작과 단편을 창작하여 교내지 같은 곳에 발표했으나, 1981년에 이 책에도 실린 <대추나무 지킴이> 같은 작품 등으로 산동문학창작상을 받으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린다. 이어 82년에 중국작가협회에 가입하고 전업작가로 나서며 본격적인 프로 작가의 길을 걸어온 소설가.
대표작으로 10권에 달하는 장편소설 <그대는 고원에>를 들지만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지는 않았다. 분량 때문에 접근성이 만만하지 않아 쉽게 번역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어신을 찾아서>가 있다. 동네 도서관에 내가 희망도서 신청해 한 권 비치되어 있다. 이 단편집 《흥분이란 무엇인가》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장웨이라고 해서 루칭허 하류의 강변과 해변을 무대로 한 지방 사람들의 순박하고 자연적인 삶만 노래하지는 않았겠지. 다만 이 책은 그런 작품들만 모은 소설집이다. 《흥분이란 무엇인가》. 기회가 닿으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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