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산도르 마라이를 읽는 일을 뭐라고 해야 하나. 쓸쓸한 내용을 매우 감성적인 문장으로 엮어 작품을 쓴 소설가. 작품 곳곳에 반짝이는 문장이 박혀 소박한 빛을 내는 작품들. 마라이는 1939년에 <유언>을 발표하고 3년 후인 1942년에 비슷한 플롯의 작품 <열정>을 출간한다. 이후 47년이 흐른 1989년, 이탈리아에서 <열정>을 다시 간행하고는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고.
  <유언>은 이제 젊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일인칭 화자 에스터가 삼년 전부터 준비해왔던 자신의 인생 마지막 고백, 45세였던 해의 온화하고 따뜻했던 9월 어느 일요일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토요일 정오 무렵에 에스터는 오페라 가사 같은 전보를 받는다. 과장되고 유치했으며 거짓으로 가득한 동시에 거만하고 허풍스럽고 빤히 들여다보이는 허위로 만든 문장들. 22년 전, 에스터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거의 모든 재산과 마음을 훔쳐간 남자. 라요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와 에스터에게 남은 나머지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이야기. 시간적 공간을 전보를 받은 정오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대략 서른여섯 시간.
  <열정>을 함께 쓰지 않을 수 없다. <열정>은 폴란드 출신 가난한 귀족의 자제 콘라드가 헝가리 최고위급 귀족 가문의 장자 헨릭과의 절친한 우정을 깨고 헨릭이 그리도 사랑한 아내 크리스티나와 정분을 맺고 도망한 후 41년 43일 만에 다시 헨릭의 장원을 찾아오는 일을 그렸다. <유언>은 절판 수준의 품절이기 때문에 별 문제 없으나 <열정>은 아직도 절찬리에 판매중이라 깊은 내용은 소개하지 않겠다.
  <유언>에는 에스터를 평생 돌보아주고 누구보다 깊이 이해해주는 친척이자 하녀 비슷한 누누가 있고, <열정>의 헨릭에겐 무려 75년간 헨릭의 수발을 들어준 아흔한 살의 유모 니니가 있다. 이들은 나이가 든 만큼 현명하고 언제나 주인공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대상, 그들이 주인공을 만나 하는 행위는 천양지차다. 이제부터 <열정>은 그만 이야기하겠다. 비슷한 플롯이라 당연히 3년 후에 쓴 작품이, 적어도 내가 읽기에 훨씬 좋았다는 정도만 남기고.
  <유언>에서 에스터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이 22년 전 그토록 사랑하던 에스터 대신, 에스터의 샘 많은 언니 빌마와 결혼해버린 남자. 아이 둘을 낳고 빌마가 세상을 뜬 후에도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최대한 처가의 재산을 탕진하고 이제 다시 돌아오겠다고 전보를 보낸 파렴치한. 에스터가 누누에게 내일 그가 온다는 전보를 보여주자 누누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 그럼 은식기부터 치워야겠네.”
  돌아보면 에스터는 이십 년 동안 밝은 달을 쫓는 몽유병자처럼 살았다. 하루하루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한 발 한 발 낭떠러지 끝을 따라 걸었던 기분. 집과 정원을 제외한 집안의 모든 재산은 라요스의 꾀임에 빠진 부모가 설정한 근저당으로 사라져버렸고, 빌마 언니가 죽은 후에 가문의 유일한 유산으로 라요스로부터 넘겨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는 세련되게 세공한 유리 모조품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말과 행동 가운데 유일하게 진실한 것은 숨소리뿐인 라요스. 오직 나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빌마 언니와 결혼해버린 남자. 그러나 에스터는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았다. 상처가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여름에 쉰 세 번째 생일이 지난 라요스. 오 개새끼, 사랑해1. 에스터의 마음 저 속 아주 자그마한 구석에 이렇게 속삭이는 세포가 아직 하나쯤 남아 있음을 에스터는 부정하지 못했다. 마이너스 미다스의 손. 라요스의 손길이 닿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모조리 거짓이 된다. 또다시 마이너스 미다스의 손이 에스터에 닿을 것을 염려한 누누는 내일 라요스와의 점심 때, 한때 라요스와 우정을 쌓았으나 깨끗하게 결별한 오빠 라차, 늘 조용하고 선량하며 슬픔어린 진실이 배어있는 한 때의 구혼자 티보르, 역시 에스터에게 청혼한 적이 있는 냉정한 인내심의 소유자이며 공증인인 앙드레를 부르라 한다. 앙드레는 라요스가 유일하게 겁을 먹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당신이 이 책을 진짜 읽는다면, 물론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겠지만 도서관에서 대출하겠다면 말릴 의사는 없으니까, 하여튼 읽는다면 읽는 내내, 속으로 에스터에게 그러면 안 돼, 안 된다고 숱하게 뜯어 말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만큼 에스터는 진짜 세상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심성의 소유자이거나, 멍청이거나, 저 멀리 사라져버린 사랑에 환장을 해버린 저능아 또는 병적인 로맨티스트거나, 하여튼, 미친년이다. 설마? 읽어보시면 안다. 마라이 산도르. 아름다운 문장으로 산뜻하게 독자의 가슴을 쥐어뜯은 작가가 어찌하여 이런 내용으로 글을 썼을까. 1939년 작품임을 감안하라고 해도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저 이십여 년 전에 집안의 거의 모든 부동산을 근저당 설정해 대출을 받으라고 꼬드겨놓고 모든 돈을 삼켜버린 달변의 라요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이 하고 싶기만 하면, 그것을 하기 위해 순식간에 거짓을 만들어내는 천재적인 사기꾼. 자신이 낳은 딸에게도 에스터 이모가 엄마의 유물인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지고 있으니 그걸 받아 지참금 삼아 결혼을 하라고 한 철면피.
  드디어 일요일 오전이 되고 당시 기준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승용차를 빌려 타고 도착한 라요스 무리. 모두 다섯 명. 어떤 부인네 올가와 빨간 머리 젊은이, 그리고 딸 에파와 엑스트라 역할인 아들. 모두 열 명이 점심을 마치고 이제 라요스와 단 둘이 된 에스터에게, 자신 역시 한 때 진실한 사랑을 했던 그녀에게, 그는 첫 마디로 이렇게 묻는다.
  “에스터, 말해줄 수 있겠소? 이 집을 담보로 빚을 지지는 않았소?”

 

_____________

 

1. "개새끼, 사랑해"는 어느 시에서 읽은 귀절이다. 유감스럽게 어떤 시인지는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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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3-15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것 읽으려고 했는데... 도서관에서 대출할게요.^^;;;

Falstaff 2021-03-15 12:15   좋아요 1 | URL
윽, 조심하세요.
착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신 분들은 책 읽다가 속 터져 돌아가십니다. ㅋㅋㅋㅋ
 
에티오피아 구지 지게사 - 5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또 주문해서 오늘 도착. 1킬로그램 완료. 이 커피 하나로 스탬프만 스무 개. 산뜻한 향. 진하게 마시는 것이 좋을 듯. 또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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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3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스무개 진심 부럽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킬로그램 사면 스무개주는군요! @_@

Falstaff 2021-03-13 10: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전 귀찮아서 한 번에 500그램씩 사는 겁니다.

새파랑 2021-03-13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시고싶어집니다 ㅎ

Falstaff 2021-03-13 17:35   좋아요 2 | URL
가격에 비해서 착합니다. 추천! ^^
 
제복의 소녀 쏜살 문고
크리스타 빈슬로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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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쏜살문고에서 출간했다. 280쪽에 문고판이지만, 문고판이라고 얕잡아보면 큰 코 다친다. 한 페이지에 스물여섯 줄, 한 줄에 원고지로 서른세 자 남짓. 세계문학전집 가운에 이 책보다 더 빽빽하게 갈피를 채우는 시리즈는 거의 없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독일 여성으로 어머니가 죽은 뒤 포츠담에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경험이 <제복의 소녀>를 쓸 수 있게 했다고 본다. 빈슬로는 단지 기숙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분신이랄 수도 있는 주인공 마누엘라, 애칭 렐라의 출생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성향의 순간을 포착한다.
  렐라는 성탄절에 태어났는데 이때 가족으로 아버지 폰 마인하르디스 중령, 엄마 케테 부인, 알리라고 부르는 열 살의 큰 오빠 알프레트와 베르티란 애칭을 갖고 있는 다섯 살 작은 오빠 베르드람이 있었고, 나중에 렐라의 가정교사 안나 선생과 곰 인형, 렐라의 비둘기 라우라가 합세한다. 전형적인 프러시아의 군인가족.
  처음으로 렐라가 의아했던 것은 집에서 아메리카 인디언 놀이를 하면 베르티 오빠와 오빠 친구 게르하르크는 인디언이 되어 양쪽으로 술이 늘어진 바지를 입고 도끼를 흔들며 뛰어다니는데, 자신은 언제나 여성 인디언 스쿠아 역할만 해야 했던 것. 왜 여자는 멋있는 인디언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지, 체조할 때만 바지를 입게 하는지 불만이었다. 안나 선생이 답을 해주기를, 바지는 여자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서 그렇단다.
  렐라는 집에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가슴에 파묻히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심지어 베르티 오빠가 병이 들어 엄마와 함께 요양을 가야 했던 일을, 오빠가 엄마를 독점한다고 생각해 엄마를 만나러 가는 순간까지 온갖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프랑스와의 국경 요새도시인 뮐베르크로 이사를 하고 새로 생긴 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때가 꼬질꼬질하고 집에서도 냉대를 받는 아멜리와 자주 어울린다.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된 오빠 베르티가 렐라의 상급생 에바 폰 마르스도르프에게 관심을 가져 렐라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이때 에바의 반응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숭앙을 받는 에바를 만나게 된 렐라는, 자신도 오빠처럼 바지를 입고 활기차게 에바와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포함해, 오빠는 다음으로 하고 렐라 자신이 자꾸 에바를 연상하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뮐베르크의 작지 않은 행사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하고 능숙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프리츠가 렐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렐라를 어머니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렐라는 프리츠가 아닌 그의 어머니 레나르츠 부인에게 더 큰 호감을 갖게 된다.
  이런 바지에 대한 경도와 자신보다 더 나이든 여성을 향한 애정은, 어머니가 죽고 호흐도르프의 기숙학교에 들어가 만나게 되는 자애로운 교사 엘리자베트 폰 베른부르크를 대상으로 최고조에 이른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겠으나, 마누엘라는 엄숙하고 고지식하고 까탈스런 여자 기숙학교에서 예상 외로 처음 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하지만 이어서 곧바로 결말로 치닫는다는 정도는 밝혀도 좋겠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소녀 마누엘라 Das Maedchen Manuela>였는데 우리말 제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명한 영화 <제복의 처녀>를 본따 <제복의 소녀>로 지었다고 한다. 제복이란 중의적 단어의 선택은, 역자 해설에 의하면, 책의 판매를 위해 널리 사용되어 좀 더 익숙한 것으로 바꾸었겠지만, 정작 이 책을 읽고나면, 청소년 마누엘라가 여자 기숙학교에 입학해 입게 되는 제복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좁게 얘기해서 바지를 입지 못하는 모든 여성의 옷이며, 넓은 의미로 여성이란 젠더에게 가해진 당대의 모든 율법과 제재를 포함한 일체의 ‘여성답지 못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하겠다. 물론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행위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책에 실은 사진처럼 모직으로 만든 남성 수트에 넥타이까지 맨 복장을 하고 다녔다.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빈슬로의 외모는 여자로 봐도, 남자로 봐도 잘 생긴 얼굴이다. 빈슬로 자신은 비록 고통스럽고 외로웠겠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았으면서 <제복의 소녀>의 결말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빈슬로가 이 책의 주인공 마누엘라의 청소년시절까지만 그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이 점이 많이 아쉽다. 마누엘라가 끝까지 마누엘라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타 빈슬로처럼 당당하게 세상에 자신을 알리며,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8년 선배 레드클리프 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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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2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복의 소녀> 결말은 저도 참 씁쓸했던 거 같아요. 시대적 한계였을까요. 그나저나 <고독의 우물>의 스티븐은 제가 예전에 읽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주인공은 레즈비언(동성애자)이 아닌 거 같은데....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이는 트랜스젠더라고 명명하는 게 올바를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래드클리프 홀 참 여러 가지로 대단한 작가.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1 | URL
아, 댓글 읽자마자 팍 떠오르네요. 스티븐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그렇군요. 그게 더 맞겠습니다.
당시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할머니(1901년~10년 사이 생)한테 들은 이야기들 중에 여자들끼리 연애하면 그 질투가 남녀 사이보다 훨씬 어마어마 하답니다. 여자들은 무조건 혼인을 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가본데, 아하, 그런 이들도 트랜스젠더 쪽이 아니었나 싶군요.

잠자냥 2021-03-12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책 표지가 참 말랑말랑해서 폴스타프 님이 전철에서 이 표지에, 이 제목에, 이 크기의 책을 읽고 있다고 상상하니(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하니) 웃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전철에서 읽으시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저도 될 수 있는대로 표지가 안 보이게 몸 비틀고 막 그랬습지요.ㅋㅋ

새파랑 2021-03-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북커버 사용을 추천드립니다~!

Falstaff 2021-03-12 11:07   좋아요 2 | URL
걍 내놓고 읽는 거지요 뭐. ㅋㅋㅋㅋ 저도 알고보면 마음은 말랑말랑합니다. ^^

잠자냥 2021-03-12 11:16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께 추천합니다. ㅎㅎ
 
민촌 - 이기영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8
이기영 지음, 조남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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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책. 앞뒤 따지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게을러서 다 늦게 대표작 이기영의 <고향>을 읽어보고 언젠가 단편집도 꼭 찾아보겠다, 결심했다가 이번에 읽었다. 열네 편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말 그대로 카프 문학이다. 크게 나누어 소작을 짓는 빈농, 도시 소시민 가운데서 억지로라도 먹고는 사는 쁘띠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공장 노동자 등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이렇게 세 부류의 주인공이 등장해 소작쟁의를 일으키거나 도모하고, 도시 소시민의 삶을 자조하고, 파업을 준비한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 더 이상 진한 감흥은 없지만 1920년대, 30년대에 읽었다면 짜릿한 의식화 교재로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카프 문학이 흔히 그렇듯이 무산자와 동경유학을 다녀온 인텔리겐치아는 거의 조건 없이 선하고, 부르주아 가운데 인텔리겐치아를 제외한 모든 족속들은 무산자들이 생산한 것을 수탈해 배를 불린다. 배만 불리는 것을 넘어 무산자의 딸과 유부녀의 성을 착취하기도 한다. 카프 문학 자체가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봐서 다분히 계몽적인 성격을 띠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런 단순한 이분법은 책 읽기를 식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소작인 가운데 주인공을 맡은 이는, 경성유학을 한(이상도 하지, 경성유학생은 악랄한 아비 지주보다 한 술 더 뜨는 악독한 세습지주인 반면, 동경유학생은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준 혁명가 같다. 이이가 동경유학을 해서 그런지는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지주 아들하고 같은 보통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지주의 아들보다 더 총명했으며, 시류에 밝고, 무엇보다 체격과 체력이 걸출하고 생각하는 바가 애초부터 정의파다. 정의파로 말할 거 같으면 첫 번째로 실린 <농부 정도룡>의 주인공 정도룡이 특히 그런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정감록의 정도령이라도 되는 듯이, 소작이 떼인 이웃에게 자신의 소작논을 짓게 하고 지주에게 쫓아가 새 땅을 내놓으라고 닦달을 할 정도의 뱃심이 있는 자다.
  많은 주인공들이 지주에 대항해 그들이 저지른 비행을 탄핵하거나 소작쟁의를 선동하지만 어쨌든 당시의 율법과 법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장리쌀 두 섬에 동생을 지주의 첩으로 보내야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민촌>), 가뜩이나 병든 몸이 먹지를 못해 굶어죽기도 한다(<아사>).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이 어떤 내용인지는 짐작하실 수 있을 것. 소작쟁의든 공장 파업이든, 그것들이 발생하는 과정과 굳건한 단결의 필요를 이야기하는 것들. 지주와 도시 부르주아들에 의한 노동자, 농민의 노예화 현상을 스케치한 작품들, 사회주의자를 등장시킨 운동 소설, 그리고 생계 능력에 관한 한 별 볼일 없는 인텔리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겠다.  물론 읽으면 안 읽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기영이 그리도 소원했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가 70년의 생명을 끝내고 안녕을 고한 지금, 설마 이 책을 아직도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의 책이라 주장할 사람은 없겠지? 식민지 시절의 국민의 노예화 과정과 현상, 도시에서 지식인들의 좌절을 알고 싶다면 좋을 듯하다.
  이기영의 시각도 좀 문제가 있다. 무대가 1920년대 이후라고 한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소작인들이 좋았던 시대라고 여러 작품에서 자주 언급하는 시절이 구한말이다. 비록 무너지고는 있었지만 봉건 양반들과 지배계급에 의한 수탈이 저질러지던 신분사회를 그리워하는 것도 의아스럽다. 아무리 검열 때문이라고 해도 그렇지 농민들이 최악의 환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인 식민지 현상에 관해서도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건 유감스러울 뿐이다.
  어쨌든 <고향>과 단편집을 읽었으니 이것으로 이기영 졸업장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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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간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14
궈스싱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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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궈스싱에 관해서는 2018년에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1952년에 중국의 대표적인 바둑 명가에서 태어났으나 바둑에는 별로 자질을 보이지 않았던 궈스싱은 1979년에 북경만보에 수습 기자로 들어가 연극비평을 쓰기 시작해 15년간 천여 편의 연극을 관람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극에 관한 일가견이 생긴 궈스싱은 자연스럽게 직접 희곡을 쓰기에 이르러 현재는 중국을 대표하는 부조리극 작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다. 그의 작품 가운데 <물고기 인간>과 <청개구리>는 우리나라에서 낭독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 바 있으니 현대 동아시아의 대표 희곡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불러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해설을 보면 궈스싱의 작품 가운데 <물고기 인간>, <새 인간> 그리고 <바둑 인간> 이렇게 세 편을 한량閑良 시리즈라 하는 모양이다. 대개 한량이라고 하면 “일정한 직업 없이 놀고먹는 말단 양반계층” 즉 룸펜 부르주아를 말한다. <새 인간>은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물고기 인간>과 <바둑 인간>만 보고 얘기하자면, 한량 시리즈라기보다 초절정 고수 또는 초절정 마니아 시리즈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물고기 인간>에선 큰 저수지 대청호에서 30년에 한 번 기회가 있다는 전설적인 물고기 대청어를 낚기 위한 ‘낚시의 신’이, <바둑 인간>에선 바둑에 미쳐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가는 줄도 모르고 이제 그 여인이 낳은 새로운 바둑 영재와의 마지막 한 판 승부를 겨루는 최고의 바둑 고수 허윈칭이 등장하는데, 암만 봐도 이들이 룸펜인 건 맞지만, 부르주아 비슷하지는 않다.
  궈스싱의 작품을 부조리극이라고 해도, 베케트나 이오네스코, 엘비 같은 극작가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이 사람들의 작품을 읽어봐 극작가들의 이름을 인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뭐 이들을 연상한다고 해도 이제 부조리극이란 타이틀 때문에 미리부터 쫄 독자도 없을 터이긴 하지만.
  큰 줄거리는 위에서 잠깐 짚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은 역시 중국 최고의 바둑 고수로 보이며 이제 갓 60세에 진입한 허윈칭(何雲淸 구름이 어찌 맑으랴?). 이이의 상대역은 30년 전 옛사랑이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스무 살 먹은 아들 쓰옌(司炎). 이름 옌炎, 불이 아래위로 두 개나 있다. 그러니 얼마나 뜨겁겠는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너무 많아 병이 된 청년. 겨우 스무 살에 산더미 같은 책을 다 독파하고도 사는 의미를 별로 찾을 수 없는 고독하고 불행한 천재. 과학연구소에서도 머리 좋은 건 알겠지만 쓰옌이 생각하는 걸 너무도 좋아해서 받아주지 않았을 정도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뇌세포가 자꾸 증식하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해 복잡한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단다. 그래 쓰옌이 생각해낸, 가장 복잡하게 경우의 수를 따지는 작업이 바로 바둑.
  그러나 쓰옌의 엄마 쓰후이(司慧)는 이름 후이慧같이 전혀 지혜롭지 못해 평생 30년 전의 첫애인 허윈칭이 바둑에 너무 몰두해 자신을 위한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은 것을 한으로 지니고 살았다. 그러니 아들이 아무리 뇌세포가 무한 증식한다고 해도 바둑을 허락하지 않을 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쓰후이는 그걸 넘어서 옛 애인과 죽은 남편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돌봄을 아들에게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쓰후이가 허윈칭을 찾아와 아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지 않도록 요구하자, 허윈칭은 쓰옌과 바둑 대결을 벌여 (쓰옌이 먼저 두 점을 깔고), 자신이 이기면 쓰옌은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고 어머니를 지성껏 돌보기로 맹세를 한 후 드디어 마지막 대국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이 마지막 대국의 장면이 흥미롭다. 두 바둑 기사가 단기필마로 장창을 빗겨 들고 단판 승부를 벌이는 걸 관람하는 등장인물, 바둑광인 작가 '마구잡이'의 말 그대로 장판파에서 헌 칼로 조조의 친조카 하후은을 비롯한 조조군 병사 도륙내는 광경을 그리는 듯이 흥미진진하다. 허윈칭이 궁지에 몰리자 급격하게 신경을 쓰는 바람에 코피가 터지고, 필살기를 구사하는 초절정 고수들의 칼부림이 흥미진진 긴박하다.
  이 장면이 마지막 막인 4막 1장. 여기까지 오느라고 독자는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부조리극이란 걸 잠깐 잊었을 수도 있다. 부조리 극작가, 이오네스코나 올비, 그리고 베케트의 작품이 행복하게 마감하는 거 보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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