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의 소녀 쏜살 문고
크리스타 빈슬로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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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쏜살문고에서 출간했다. 280쪽에 문고판이지만, 문고판이라고 얕잡아보면 큰 코 다친다. 한 페이지에 스물여섯 줄, 한 줄에 원고지로 서른세 자 남짓. 세계문학전집 가운에 이 책보다 더 빽빽하게 갈피를 채우는 시리즈는 거의 없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동성애 성향을 가진 독일 여성으로 어머니가 죽은 뒤 포츠담에 있는 여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 경험이 <제복의 소녀>를 쓸 수 있게 했다고 본다. 빈슬로는 단지 기숙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그린 것이 아니고 자신의 분신이랄 수도 있는 주인공 마누엘라, 애칭 렐라의 출생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성향의 순간을 포착한다.
  렐라는 성탄절에 태어났는데 이때 가족으로 아버지 폰 마인하르디스 중령, 엄마 케테 부인, 알리라고 부르는 열 살의 큰 오빠 알프레트와 베르티란 애칭을 갖고 있는 다섯 살 작은 오빠 베르드람이 있었고, 나중에 렐라의 가정교사 안나 선생과 곰 인형, 렐라의 비둘기 라우라가 합세한다. 전형적인 프러시아의 군인가족.
  처음으로 렐라가 의아했던 것은 집에서 아메리카 인디언 놀이를 하면 베르티 오빠와 오빠 친구 게르하르크는 인디언이 되어 양쪽으로 술이 늘어진 바지를 입고 도끼를 흔들며 뛰어다니는데, 자신은 언제나 여성 인디언 스쿠아 역할만 해야 했던 것. 왜 여자는 멋있는 인디언 바지를 입으면 안 되는지, 체조할 때만 바지를 입게 하는지 불만이었다. 안나 선생이 답을 해주기를, 바지는 여자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서 그렇단다.
  렐라는 집에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가슴에 파묻히는 것을 더욱 좋아했고, 심지어 베르티 오빠가 병이 들어 엄마와 함께 요양을 가야 했던 일을, 오빠가 엄마를 독점한다고 생각해 엄마를 만나러 가는 순간까지 온갖 심통을 부리기도 한다.
  프랑스와의 국경 요새도시인 뮐베르크로 이사를 하고 새로 생긴 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때가 꼬질꼬질하고 집에서도 냉대를 받는 아멜리와 자주 어울린다.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된 오빠 베르티가 렐라의 상급생 에바 폰 마르스도르프에게 관심을 가져 렐라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이때 에바의 반응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학교에서 많은 학생들로부터 숭앙을 받는 에바를 만나게 된 렐라는, 자신도 오빠처럼 바지를 입고 활기차게 에바와 대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포함해, 오빠는 다음으로 하고 렐라 자신이 자꾸 에바를 연상하게 되는 것을 발견한다. 뮐베르크의 작지 않은 행사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하고 능숙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프리츠가 렐라에게 호감을 느끼고 렐라를 어머니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렐라는 프리츠가 아닌 그의 어머니 레나르츠 부인에게 더 큰 호감을 갖게 된다.
  이런 바지에 대한 경도와 자신보다 더 나이든 여성을 향한 애정은, 어머니가 죽고 호흐도르프의 기숙학교에 들어가 만나게 되는 자애로운 교사 엘리자베트 폰 베른부르크를 대상으로 최고조에 이른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생략하겠으나, 마누엘라는 엄숙하고 고지식하고 까탈스런 여자 기숙학교에서 예상 외로 처음 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활보하게 되는 절정의 순간을 경험하지만 이어서 곧바로 결말로 치닫는다는 정도는 밝혀도 좋겠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소녀 마누엘라 Das Maedchen Manuela>였는데 우리말 제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명한 영화 <제복의 처녀>를 본따 <제복의 소녀>로 지었다고 한다. 제복이란 중의적 단어의 선택은, 역자 해설에 의하면, 책의 판매를 위해 널리 사용되어 좀 더 익숙한 것으로 바꾸었겠지만, 정작 이 책을 읽고나면, 청소년 마누엘라가 여자 기숙학교에 입학해 입게 되는 제복만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좁게 얘기해서 바지를 입지 못하는 모든 여성의 옷이며, 넓은 의미로 여성이란 젠더에게 가해진 당대의 모든 율법과 제재를 포함한 일체의 ‘여성답지 못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봐야하겠다. 물론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행위를 포함시켜도 무방하다.
  작가 크리스타 빈슬로는 책에 실은 사진처럼 모직으로 만든 남성 수트에 넥타이까지 맨 복장을 하고 다녔다. 사십대 정도로 보이는 빈슬로의 외모는 여자로 봐도, 남자로 봐도 잘 생긴 얼굴이다. 빈슬로 자신은 비록 고통스럽고 외로웠겠지만 겉으로는 이렇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았으면서 <제복의 소녀>의 결말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빈슬로가 이 책의 주인공 마누엘라의 청소년시절까지만 그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이 점이 많이 아쉽다. 마누엘라가 끝까지 마누엘라라는 이름으로 크리스타 빈슬로처럼 당당하게 세상에 자신을 알리며,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8년 선배 레드클리프 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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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3-12 10: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복의 소녀> 결말은 저도 참 씁쓸했던 거 같아요. 시대적 한계였을까요. 그나저나 <고독의 우물>의 스티븐은 제가 예전에 읽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주인공은 레즈비언(동성애자)이 아닌 거 같은데.... 싶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이는 트랜스젠더라고 명명하는 게 올바를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래드클리프 홀 참 여러 가지로 대단한 작가.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1 | URL
아, 댓글 읽자마자 팍 떠오르네요. 스티븐은 동성애자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그렇군요. 그게 더 맞겠습니다.
당시에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할머니(1901년~10년 사이 생)한테 들은 이야기들 중에 여자들끼리 연애하면 그 질투가 남녀 사이보다 훨씬 어마어마 하답니다. 여자들은 무조건 혼인을 해야 했던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는가본데, 아하, 그런 이들도 트랜스젠더 쪽이 아니었나 싶군요.

잠자냥 2021-03-12 1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책 표지가 참 말랑말랑해서 폴스타프 님이 전철에서 이 표지에, 이 제목에, 이 크기의 책을 읽고 있다고 상상하니(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하니) 웃음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전철에서 읽으시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Falstaff 2021-03-12 10:2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저도 될 수 있는대로 표지가 안 보이게 몸 비틀고 막 그랬습지요.ㅋㅋ

새파랑 2021-03-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보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ㅎㅎ 북커버 사용을 추천드립니다~!

Falstaff 2021-03-12 11:07   좋아요 2 | URL
걍 내놓고 읽는 거지요 뭐. ㅋㅋㅋㅋ 저도 알고보면 마음은 말랑말랑합니다. ^^

잠자냥 2021-03-12 11:16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께 추천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