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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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 개가실을 거닐다가 눈에 띄는 이름 하나, 리처드 브라우티건. 음. 이 양반이 미국의 이름난 문제적 작가 가운데 한 명 아니었나? 싶어서 얼른 집어 들었다. 그랬더니 표지 뒷면에 있는 사진부터 예사롭지 않다. 서부 개척시대의 양아치 같기도 하고, 20세기 히피 같기도 하다. 책 속에서는 자칭 마지막 비트 세대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모르긴 몰라도, 잭 케루악이 1961년에 쓴 소설 <빅 서>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당시 케루악이 비트 집합! 외치자마자 이게 웬 술 건이냐 싶어 마리화나 챙겨 모였던 젊은 떨거지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수 있겠다.

  이이의 이름만 들어봤지 어떤 작품을 쓰고, 어떤 평가를 받고 이런 거 전혀 몰라 위키피디아 한 번 뒤졌다. 그랬더니, 아이고, 거 참, 웬 팔자가 이리도 독하누. 특히 초년 팔자가 기막히다. 1935년 1월 말이니까 빠른 35년생이면서도 갑술 개띠, 버나드 브라우티건 2세와 매리 루 케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냥 그렇다는 거다. 이들이 결혼을 한 사이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임신 4주 혹은 5주만에 헤어져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평생 친아빠의 얼굴을 딱 두 번 봤다고 하고, 아빠는 아들이 진짜 자기 아들인지, 리처드가 죽은 다음에야 알았다고 한다. 부모 중에 누가 더 방종한가 따지는 일이 여포와 장비 가운데 누가 더 쌈을 잘 하느냐, 하는 수준이었나 보다. 엄마 매리 루는 적지 않은 남자와 동거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딸 낳고, 다시 헤어지고 뭐 이런 생활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아홉 살 먹은 리처드를 네 살 먹은 이복동생 바바라와 함께 몬태나의 한 모텔 방에 방치한 채 놀러다녔다고도 한다. 다시 결혼한 남자는 알코올 중독자에다가 술만 마셨다 하면 마누라 두드려 패기를 강아지 옆구리 걷어차는 시집살이 하는 며느리 같았다니 그것도 다 업이다, 업. 그래도 학교는 보내주었는지 사우스 유진 고등학교에 들어가 품행은 모르겠고, 빼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단다. 당연히 이 시절부터 글쓰기에 여러가지로 두각을 나타냈고.

  하지만 그걸로 끝. 1955년이 오고, 스무살이 되고, 그래도 하염없이 배가 고파 궁지에 몰린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배나 곯지 말아야겠다, 작심을 하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져 붙잡혔다. 참 나.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라도 있니? 난동죄에 걸려 당시 없는 살림에 적지 않은 금액인 25달러의 벌금을 맞고, 열흘만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루돌프 사슴 대신 앰뷸런스를 타고 오레곤 주립 병원 신경정신과에 강제 입원 당한다. 얼핏 생각하면 워낙 싱거워서 그렇지 암만해도 병원 밥이 교도소 밥보다 나을 거 같지? 낫겠지. 근데 문제는 편집증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나 봤던 전기충격 요법을 무려 열두 번이나 당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 안 되고 무사히 나온 거 하나 만으로도 참 다행이랄 수밖에. 이후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잠깐 일본과 몬태나에서 보낸 시간 말고는 평생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다.

  대개 초년 팔자가 드러운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인격형성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크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60년대까지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생활을 묘사한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에서는 한 마디도 없고, 책 속에 든 작가소개에서 입도 벙긋하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바에 힘입어 브라우티건 본인도 대책없는 알코올 중독증과 우울증에 빠져든다. 그리하여? 나처럼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귀여워지는 사람이 흔한 줄 아시나? 우울한 데다가 술까지 마시니 세상은 전부 다 때려 부수어야 할 것으로만 만들어졌다고 여겨 대책없는 폭력 가장이 되었는데, 다행히 폭력의 대상에 딸 이안테 엘리자베스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 같다.


  브라우티건 하면, <미국의 송어낚시>와 <워터멜론 슈거에서>가 제일 유명하다. 나도 제목은 알 정도이니 뭐. 이럴 경우, 아직 저자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는 일단 대표작을 먼저 읽는 것이 여러가지로 좋다. 나도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데, <워터멜론…>은 책이 없었고, <미국의…>는 아주 오래 묵은 책이라 손이 가지 않아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를 골랐다가 후회했다. 지금 세어보니 무려 64편의 단편, 초단편, 메모(라는 장르의 문학작품)이 실려 있다. 본문이 11쪽에서 시작해 229쪽에 끝나니까 net로 229-11+1=219쪽이다. 229/64=3.6. 한 작품이 평균 3.6쪽인데 앞뒤로 잘라먹는 거 생각하면 대강 아시겠지? 후루룩, 배고픈 복날 콩국수 삼키듯 눈 깜박할 순간 다 읽어 치운다.

  들어보니까 특히 (미국 작가를 유독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무라카미 시절에는 이게 그렇게 특징적이었나……봅니다. 대강 1940년대부터 20년간 캘리포니아, 때때로 네바다, 오리건, 워싱턴 주의 삽화들이 빼곡한 짧디짧은 기억의 조각들. 그러나 기억이라고 하는 건, 그게 사실이라 믿는 독자들은 바보 중에서도 큰 바보일 정도로 개인의 뇌 속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에 의하여 왜곡, 필터, 채집된 것이라,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하여튼 그저 개인의 것이라고 하면 안 될까? 하긴 브라우티건의 초년 팔자를 있는 그대로 썼다면 재수없는 독자들은 다시한번 “리틀 라이프”를 읽어야 했는 지는 모르지만.

  무려 예순네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당연히 64편 가운데 재미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공감하는 것, 그렇지 못한 것, 별 게 다 있어서 만일 다양한 이야기라는 측면만 본다면 세상에 이런 비빔밥이 없을 터. 하여튼 꼭 이 말은 하고 독후감을 끝내야 하겠다. 아무리 다양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도,

  “이젠 너무 촌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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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9-20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옌렌커, <작렬지>
화요일. 저메이카 킨케이드, <미스터 포터>
수요일. 토니 모리슨, <가장 파란 눈>
목요일. 아르투어 슈니츨러, 《슈니츨러 작품선》
금요일. 아리스토파네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망고 2024-09-20 0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처럼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귀여워지는 사람이 흔한 줄 아시나?˝
아 그러시구나🤔 좋은 정보 알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9-20 09:21   좋아요 3 | URL
망고님 (간발의 차로) 찌찌뽕!

망고 2024-09-20 09:23   좋아요 2 | URL
저 문장이 확대되어서 눈에 들어왔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9-20 10:25   좋아요 2 | URL
전부터 많이 들은 말이라 놀랍지도 않은 1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9-20 12:34   좋아요 1 | URL
술도 기분 좋을 때 마셔야 하거든요. ㅋㅋㅋ

건수하 2024-09-20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어디서 들어봤다 했더니 <미국의 송어낚시> 작가였군요.

술 마시면 귀여워지시는 폴스타프님 후기 감사해요 :)

Falstaff 2024-09-20 12:35   좋아요 1 | URL
어제 너무 귀여워졌다가 오늘 도서관 조퇴했습니다. ㅎㅎㅎ

2024-09-20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9-20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4-09-20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하루키도 좋아질 때가 따로 있는거지 영원히 좋은 건 아닌 거 같더라구요. 그나마 에세이는 읽을만하던데 이 사람 영향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근데 술 마실수록 귀여운 거 팔님만의 생각이신 거죠? ㅎㅎ 하긴 옛날에 제의 아버님도 평소 땐 과묵하신 편인데 그나마 술 드시니까 재밌어지시긴 하더군요. 그 이상 꽐라되면 그땐 좀...ㅋㅋ

Falstaff 2024-09-20 12:39   좋아요 1 | URL
저 술 마시면 귀여워지는 거, 마누라 의견입니다. 아니면 벌써 이혼당했을 거라 하더군요. ㅜㅜ
아빠 닮아서 그래요. 제 아부진 장하게 술 자시면 스탠딩 코미디언이 되셨더랬습니다. ㅋㅋㅋㅋ

stella.K 2024-09-20 12:5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다면 인정해드려야죠. 팔님 술 드시고 귀여워지심 저도 뵙고 싶은데 아쉽네요. 😂

잠자냥 2024-09-20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전 이 사람 책 집어 들고 끝까지 읽은 적이 없어요! 늘 미완독...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9-20 12: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제 이 양반하고 끝입니다. ㅎㅎㅎㅎ

레삭매냐 2024-09-20 1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춘수 씨의 책들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좀 끼깔났을 지는
몰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저 그
런 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Falstaff 2024-09-20 12:42   좋아요 0 | URL
춘수 씨.... 라 하셔서 우리나라 시인 김춘수를 떠올렸다가... 3초 후에 무라카미의 이름이 춘수인 게 생각나더라고요.

coolcat329 2024-09-20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귀여우실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 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9-20 20: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제는 게다가 에스트로젠 분비가 많아져서 더 그렇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