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평점 :
.
“기너의 인생에 닥친 변화는 집에 떨어진 폭탄처럼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렸다.”
작품은 이 같이 격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주인공 비터이 게오르기너는 불과 열네 살. 언뜻 생각이 들기를, 아직까지는 행복할 권리만을 향유해야 하는 헝가리 군대 장군의 외동딸인데 무슨 특별한 곡절이 있을까 싶지만, 때는 1943년, 2차 세계대전에 헝가리가 참전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에 같은 부다페스트에서 열네 살 동갑내기 청소년 시절을 지내던 다른 헝가리 작가 한 명이 얼핏 생각난다. 케르테스 임레.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3부작을 쓰게 될 유대인 소년. 임레는 유대의 피를 타고 났다는 누구나 아는 질곡을 짊어졌으나, 기너는 왜.
오늘 <아비가일>의 독후감은 쓰기가 매우 어렵다. 작품의 앞쪽에 소설의 방향을 확 바꿀 결정적인 전환점이 닥친다. 그러나 나는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걸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작품의 초반 스토리 위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또한 아쉽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렇게 해야 다른 이들이 이 책을 더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을.
게오르기너, 기너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위었다. 홀아비가 된 아버지 비터이 장군은 기너의 양육과 교육을 위하여 동유럽 귀족들이 항용 그러하듯 프랑스 여성 마르셀을 고용해 기너를 맡겼으니, 기너에겐 마르셀이 거의 어머니와 비슷한 존재였으리라. 마르셀은 프랑스 동부의 알자스 출신이어서 기너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이것들과 비슷한 체계를 갖고 있는 라틴어를 능숙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너의 인생에서 폭탄처럼 모든 것을 앗아가버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4년이 지난 해엔 헝가리가 히틀러의 위협에 굴복할 수밖에 없어서 프랑스는 헝가리의 적국으로 변했고, 적국의 여성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대편 장군의 집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동안 마치 모녀 사이처럼 파리, 런던, 베를린, 로마, 스위스 등지를 함께 여행하기도 하는 등 숱한 인연을 맺었던 현명한 마르셀은, 전쟁이 끝난 후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자신의 물품을 많이 남겨놓은 채 프랑스행 열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르셀 한 명이 기너가 뺴앗긴 모든 것은 아니었다. 기너는 부다페스트 집에서 공립인 쇼코러이 어털러 국립 김나지움을 통학하고 있었다. ‘미모’라는 이름의 고모가 있어서 매주 목요일에 고모네 집에서 무도 티파티가 열렸고, 부다페스트의 상류층 인사들이 많이 왕래를 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이 가운데는 연극배우, 오페라 가수, 그리고 열네 살 먹은 기너가 언젠가는 아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쿤츠 페렌츠 대위 같은 젊은이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맹렬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기너는 쿤츠 페렌츠, 즉 쿤츠 페리 대위도 자신을 그만큼 사랑한다고 믿었다. 미모 고모네에서 열리는 주간 댄스 티파티. 하지만 마르셀은 페리 대위를 좋게 보지 않았다. 반면에 고모는 첫사랑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이해하고 기꺼이 기너의 수호천사를 자청했으니, 기너는 얼마나 고모를 좋아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듯.
상류사회의 화려함과 부드러움, 즐거움을 대변하는 이 모든 것을, 그러나 아버지 비터이 장군은 한 순간에 몰수해버렸다. 대신 동부 헝가리 대평원을 넘어 국경 근처 가상의 교육도시 ‘아르코드’로 보내 머툴로 주교의 이름을 딴 여자 기숙하교로 전학하게 만든다. 아버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어머니처럼 지내던 마르셀이 귀국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실제로 마르셀에게 자신의 경솔한 여동생 대신 어떤 군인도 딸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던 적이 있었기도 해서, 마르셀 대신 미모 고모를 집으로 들여 함께 지내면 어떻겠느냐는 기너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는 기너를 그저 멀리 보내려 할 뿐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고모는 기너에게 언질을 준다. 네 아버지가 갑자기 결혼할 것 같아. 그래서 널 멀리 보내려 하는 것일 거야. 기너 생각으로는 아버지의 재혼은 당연한 것이고 자신도 새어머니와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고모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오빠가 변했어. 더 우울해하고 더 말이 없어. 비현실적이야. 여자가 있을 거야. 이제 두고 봐라.”
그러나 장군은 누구에게도, 미모 고모에게조차 기너의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았으며, 장군이 기너와 부다페스트를 떠나는 것도 비밀로 부친 채, 엄격한 칼뱅주의 신교 기숙학교라 별로 챙길 짐도 없는 기너만 태워, 예외적으로 군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새벽에 직접 차를 운전해 동부 헝가리 평원을 건넌다. 헝가리 동부를 흐르는 티서 강변의 작은 마을에 도착해 장군은 기너에게 묵직한 달이 달린 아주 곱고 가는 목걸이를 선물한다. 엄격하고 작은 달. 기너는 이에 대한 답례로 왜 그랬는지,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아버지에게 작은 재떨이를 사 건넨다. 아버지의 눈길이라니. 그는 말한다. 언젠가 이 순간은 아주 소중해질 거야. 신이시어,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소서.
드디어 교육도시 아르코드 근방에 도착한 부녀는 시내가 보이는 벌판에 서서 마주본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한다.
“자신을 돌보겠다고 약속하렴. 다 큰 성인처럼 조심하겠다고. 네가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난 네 엄마처럼. 들었니, 기너? 키스해주렴. 그리고 학교에 내가 널 놓고 가더라도 제발, 울지 말아라. 적어도 내 앞에서는.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
건조하게 스토리만을 전해서 그렇지, 나는 이 대목에서 책을 읽으며 첫번째 눈물이 흘렀다. 얼핏 인용한 부분만 읽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신파 같을 수도 있다. 신파 기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외동딸이 두 살 됐을 때 홀아비가 되어 평생 혼자 살면서 장군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딸 아이를 저 먼 지방에 홀로 보내 놓았다고 이런 약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군인, 그것도 장교, 장군으로서는 격이 떨어진다. 그러나 왜 이렇게 격 떨어지는 대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는 차마 밝힐 수 없다. 오히려 여태까지 이야기도 말짱 생략한 채 “정말 재미있으니 그냥 읽어보시라.”라고만 하고 독후감을 끝내고 싶다.
서보 머그더는 <도어>보다 <프레스코>보다 이 책에서 더 매력적인 문장과 호소력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물론 앞서 읽은 책보다 “더 좋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화적이기도 하고, 서보 시절의 강압적인 헝가리 체제를 충분히 은유하기도 했지만, 반전을 주장하며, 희생에 저항하는 아름다움 등을 넘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물론 성인들에게도 그러하지만 특히 고등학생 정도의 젊은이들이 읽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이제 스토리는 겨우 10 퍼센트 정도 왔다. 드디어 기너는 자신이 다녀본 세상의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아르코드의, 땅딸막하고 하얗고 차갑고 창문들이 작고, 철을 두른 철창문으로 닫힌 머틀로 주교 학교를, 완고한 수위의 확인을 거쳐 들어가게 된다. 이곳에 힘든 짐을 진 무수한 학생들. 엄격한 계율과 금지와 검열과 의무와 획일과 고집과 벌과 수많은 죄와 상상할 수도 없는 청결과 경쟁과 비밀과 소녀들의 모임과, 소근대는 웃음과, 장난과, 배신과, 따돌림과, 협의와, 작은 정의와, 다툼과, 화해와, 즐거움과, 눈물과, 갈증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었다. 우리의 부다페스트의 소녀 기너는 당연히 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오직 하나, 기너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었으니 정원 저 편에 물항아리를 든 조각상. 그것의 이름이 바로 “아비가일”이었으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