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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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프레드 울만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01년에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유복한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 뮌헨, 튀빙겐 대학에서 공부하고 22세 때 교회법과 민법으로 두 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해 변호사가 된다. 10년 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 자리에 오르자 프랑스로 이주한 울만은, 급여를 받는 외국인은 고용하지 못하며 만일 급여를 받는 것이 발각될 경우 즉각 추방한다는 법령이 발효됨에 따라 울만 변호사는 엉뚱하게 그림을 그려 그것을 팔아 돈을 만들고 모자라면 열대어를 팔기도 했다. 울만의 그림 수준이 대단했음에도 대중들에게 어필하지는 못했단다.
  독일에서 유대인 탄압을 시작하자 유럽 각지에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렸다. 그래 울만은 1936년에 스페인 코스타 브라바 인근의 작은 어촌 토사 데 마르로 또다시 옮겼지만 곧바로 내전이 터진다. 이 바람에 다시 마르세유를 거쳐 파리로 가려 하다가 여권과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는 소설 같은 우여곡절 끝에 런던의 친구 다이애나 크로프트의 전화를 받고 영국으로 향한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여권이 없는 난처함은 레마르크의 소설 <리스본의 밤>에 잘 나와 있다. 이렇게 돈도 없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으면서 영국에 도착한 울만은 1936년 11월에 대표적인 우익 정치가인 헨리 페이지 크로프트의 딸인 다이애나와 결혼해 1985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런던에서 살았다.
  변호사이자 화가인 프레드 울만한테는 또 글쓰기의 뮤즈까지 있었는지 비록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1971년에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동급생>를 출간한다. 그러다가 1977년에 깨나 종교적이고 재미없는 소설을 쓰는 아서 캐스틀러, 또는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가 서문을 써주는 바람에 대박을 쳤다고 한다.
  <동급생>의 화자 한스 슈바르츠는 대략 1915~16년생으로, 1933년에 자신의 출생지인 슈투트가르트의 슈바벤에서 혼자 당숙이 사는 뉴욕으로 일종의 망명을 한다. 한스는 당숙의 강권으로 제2의 휠덜린이 되리라는 시인의 꿈을 접고 법과대학을 졸업해 변호사로 성공한다고 설정했다. 자신이 30대에 유대인으로 경험한 독일 사회를 10대의 눈으로 관찰하게 되는데, 그리하여 1930년대 초에 전 독일의 대지를 뒤덮던 음울한 유대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진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슈바벤의 언덕들” 같은 낭만적 분위기를 고수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비극을 낭만적 아름다움으로 채색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는 1932년 2월, 한스 슈바르츠의 삶에 들어와 다시는 떠나지 않을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전학을 오면서 시작한다. 한스의 집안도 최하 2백 년 전에 슈투트가르트 슈바벤으로 이주한 유대계로 자신들이 독일임을 한 번도 잊지 않았다. 한스의 의사 아버지 역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슈바벤 사람이며, 독일인이고 마지막으로 유대 혈통을 지녔음을 강조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두 번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운 장교 출신이다. 시대는 20세기로 접어들고 벌써 한 세대가 지났다. 그리하여 주변에 숱하게 많은 귀족 찌꺼기들이 있어 웬만한 프라이헤어, 바른. 프리츠가 있더라도 전혀 꿀릴 것이 없었음에도 폰 호엔펠스라는 이름이 주는 위압은 처음부터 대단했다.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 호엔펠스 백작.
  힐데브란트 폰 호엔펠스는 1190년 소아시아에서 호엔슈타우펜의 왕 프리드리히 1세를 구하려다 사망했다. 안노 폰 호엔펠스는 프리드리히 2세의 친구로 1247년에 황제의 품에 안겨 죽었다. 프리드리히 폰 호엔펠스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포로로 잡은 뒤 전사했고, 발데마르 폰 호엔펠스는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전사했다. 프리츠와 울리히 형제는 보불전쟁 당시였던 1871년 샹피니 전투에서 울리히가 먼저 전사했고, 동생을 구하려 적진을 뚫고 들어가다 프리츠마저 죽음을 맞았다. 또다른 프리드리히는 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베르됭 전투에서 전사했다. 무려 천 년에 가까운 명문의 자제와, 랍비의 손자이며 증손자이고, 상인과 가축 장수의 혈통을 가진 의사의 아들 유대 소년의 거리는 지구와 해왕성만큼은 되었으리라.
  마르틴 루터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왕인 카를 5세 앞에 섰던 1521년에 설립되었으며 뷔르템베르크에서 가장 이름 높은 학교인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에 클레트 교장 선생과 함께 교실에 들어선 콘라딘. 한스는 그를 보자마자 멋지게 차려입은 우아함에 압도당했고, 날이 가면서 그와 친구가 되기로 작정을 한다. 한스는 몇 년 후 말도 통하지 않는 뉴욕으로 건너가 쉽게 법과대학을 마치고 변호사가 될 정도의 공부 머리가 있고, 여태 튀지 않기 위해 자진volunteer하지 않아서 그렇지 높은 수준의 체육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스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해 금세 닭 무리 속 한 마리 학이 되었고, 혼자서도 학교생활을 얼마든지 꾸려나갈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인 콘라딘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독일의 각 지역에서는 하켄크로이츠 표식들을 담벼락에 그려놓고, 유대계 시민들을 괴롭히며 공산주의자들한테 공개적으로 린치를 가하기 시작했으나 슈투트가르트의 삶은 대체로 평상시처럼 흘러갔다. 콘라딘과 한스는 독일 곳곳에서 나타나는 지구 종말의 기미보다는 후기인상파와 표현주의, 연극과 오페라, 그리고 굉장한 순결함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여자애들에 대한 숭배 등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세상 물정을 한스보다 더 넓게 보는 안목이 있던 콘라딘의 배려였음이 속속 드러난다. 이에 한스는 콘라드의 배려에 어쩌면 당연히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지만 며칠 만에 화해한다. 그러나 서먹한 건 피할 수 없다.
  젊은 학생들의 우정이 이렇게 흘러가는 동안 베를린에서 시작한 유대인 박해에 어느덧 슈투트가르트마저 전염됐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육군 장교 출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스를 뉴욕으로 보낸다. 그들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뉴욕에 도착한 한스는 곧이어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전쟁은 끝이 나고, 이제 성공한 변호사가 된 한스는 여전히 독일 출신 미국인과 독일 국적인을 만나는데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건다. 그러던 어느 날, 한때 자신이 다녔던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부터 전쟁에 희생된 동문들을 기리는 회관을 건설하기 위한 기금 마련 관련한 편지 한 통을 받으며 큰 회한에 젖는다.

 

  중편소설 정도 분량의 작은 작품. 그러나 매우 아름답다. 아서 쾨슬러가 이 작품에 대하여 기막힌 서문을 썼다. 본문을 읽기 전에는 그저 의례적인 미화문美化文인 것처럼 스치듯 지나갔으나 책을 다 읽고 다시 읽어보니 정말 기막히게 이 작품을 정의해놓았다.

 

  “주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데도 향수 어린 단조minor로 쓰였다.”

 

  물론 분노가 없어서 바그너가 아니라 모차르트가 쓴 <신들의 황혼> 같다는 허언을 망라했지만 “단조로 쓴 비극”보다 <동급생>을 저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을 듯.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성인보다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고 싶다. 아니면 적어도 심장만큼은 아직도 십대의 그것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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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26 10: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읽었을 때 마지막에 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스무살이지만 아직 심장만큼은 십대라서 이 작품이 좋았었나 보군요! 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Falstaff 2021-07-26 10:47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울었어요? 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시 결말이 대단한데 차마 그걸 밝힐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26 11:41   좋아요 3 | URL
아흑 저도 책읽고 울고싶습니다. 40넘어 책을 읽으니 눈물이 안납니다.ㅠㅠ 욕만 찰지게 하구요

Falstaff 2021-07-26 12:26   좋아요 1 | URL
쿨캣님은 욕도 찰지게는 못 하시는구먼요 뭘.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26 12:38   좋아요 0 | URL
뉴스볼때 잘 합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6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지막에 아! 했더랬는데 리뷰 읽어보니 막 새로우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그렇지만 책이 없네요... 인생..... 하하하하하. 잽싸게 팔아치우는 것은 이럴때 불편합니다.

저는 스물한살이지만 심장은 십대 입니다...

이만 총총.

잠자냥 2021-07-26 11:50   좋아요 2 | URL
전 신간 읽고 웬만하면 파는데 이 책은 안 팔았어용! 헤헤
다락방 님은 스물한살이고 심장은 열아홉이라서 팔았나보군요.
전 스무살에 심장은 열네살이라서 안 팔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26 12:28   좋아요 1 | URL
아웅. 다락방 님 저번 프로필 보니까 스물네 살이셨던 거 같은데, 그게 작년이니까 지금 스물다섯이구먼요. ㅋㅋㅋㅋ
잠자냥 님도 지금은 스물하나.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7-26 12:42   좋아요 0 | URL
자꾸 나이먹어서 큰일이네요...

coolcat329 2021-07-26 1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작품 맞습니다.
올 3월, 15살 아이 생일선물로 준 책이에요. 조카나 자녀에게 선물하시면 좋을 책입니다.

잠자냥 2021-07-26 11:51   좋아요 3 | URL
전 왜 제가 읽고 욹고 제가 갖고 있죠?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7-26 12:29   좋아요 2 | URL
근데 만점에서 하나 뺀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10대 취향의 과한 회상형이라서. 뭐 인생입죠.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7-26 12:39   좋아요 1 | URL
아! 10대 취향의 과한 회상형! 저도 이 거때문에 별하나 뺐습니다~

새파랑 2021-07-26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0대취향이라고 하니 읽어봐야 겠군요~!! 비극과 향수라니 슬플거 같아요 ㅜㅜ

Falstaff 2021-07-26 16: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깜놀!
재미나고요, 감동주려 애쓴 소설입니다. ^^

북극곰 2021-07-26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 다섯 개를 마구 주었었는데. ㅎㅎ 중단편의 길이도 딱 맞춤하다 생각했어요.

Falstaff 2021-07-26 17:19   좋아요 2 | URL
별점 주는 거야 전적으로 독자 마음이지요. ㅋㅋㅋ
저는 좀.... 이 책 읽다가 우신 분도 계셔서 (이 분이 손도 맵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하염없이 귀싸대기 맞을 거 같지만, 어째 아주, 아주, 아주 조금 뽕끼가 있는 거 같아서 별 다섯 개는 도무지 못 주겠더라고요. ㅎㅎㅎㅎㅎㅎ

잠자냥 2021-07-26 21:51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 ! *찰싹*

Falstaff 2021-07-27 08:36   좋아요 1 | URL
아이쿠! 아파라...
내 이럴 줄 알았지. ㅜㅜ

파이버 2021-07-26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을 때 반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낭만적인 부분을 소홀히 넘겨버린 아쉬운 독서였어요^^;; 저는 다행히? 전자책으로 사서 아직 가지고 있네요

Falstaff 2021-07-27 08:37   좋아요 1 | URL
전체 분량이 얼마나 되나, 싶어서 마지막 문장을 글쎄 먼저 읽어버린 거 있잖아요.
에휴. ㅋㅋㅋㅋ

파이버 2021-07-27 10:53   좋아요 1 | URL
으악 너무 안타까운 실수를 하셨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