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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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고를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믿을 만한 작가의 추천 책을 읽는 것이다.


돈을 받고 쓴 적당한 추천사는 제외하고 진심을 다해 추천하는 책, 팬임을 자처하며 소개하는 책은 대부분 만족도가 높다. 스테디셀러 『자기만의 방』으로 잘 알려진 버지니아 울프가 8개월에 걸쳐 해즐릿의 방대한 전작을 읽고 사후 100주년 기념 에세이를 썼다는 책은 당연히 믿음직하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는 1800년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불렸던 윌리엄 해즐릿의 국내 첫 번역본이다. 뛰어난 문학 비평과 에세이를 남긴 그는 철두철미하고 급진적 정견 때문에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공격받았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윌리엄 해즐릿의 에세이집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는 제목처럼 우리가 기피하는 감정을 깊숙이 파고든다. 장강명 작가의 추천의 말, 버지니아 울프의 서문을 제외하고 6편의 에세이를 담고 있는데 제목부터 날카롭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죽음의 공포에 관하여>, <질투에 관하여>,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에 관하여>, <학자들의 무지에 관하여>, <맨주먹 전부>.

자칫하면 투정을 부리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소재인데, 해즐릿은 솔직함으로 이를 돌파한다. 포장하지 않고 오롯이 그 감정을 들여다보고 우리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논리적이면서 동시에 위트 있게 설명한다. 책을 읽는 내내 웃다가도 뜨끔한 경험을 한 건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밑줄. 그리고 또 밑줄>

최근 내가 독서를 하며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은 막연하게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 붙이지 않기이다. 그런데 추천 에세이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공감 가는 문장 · 반성하는 문장 · 배우고 싶은 문장이 쉴 틈 없이 등장해서 형광펜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괜히 1800년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불린 게 아니구나 하고 납득했다. 아마 많은 독자가 나처럼 밑줄을 그으리라 짐작한다. 도대체 이 책을 읽고 와닿는 문장이 없다면 어떤 책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한 명의 작가 지망생으로서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처럼 뛰어난 책을 만나면 질투심이 생긴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질투에 관하여>를 읽으며 부질없음을 느꼈다. 모두가 행복과 쾌락을 찾는 시대다. 반대로 어둡고 불편한 감정은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이 가진 감정이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외면하는 감정도 제대로 알고 다스리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판이 된다. 윌리엄 해즐릿이란 200년 전의 시니컬한 에세이스트에게 마음껏 조언을 구하자.


(아티초크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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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의 모든 것 - 신비주의, 마법, 타로를 탐구하는 이들을 위한 시각 자료집
피터 포쇼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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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장한다는 건 내 공간을 내어준다는 의미다.
나의 경우 좀 많이 내주어 온방이 책으로 뒤덮여 있다. 이렇다 보니 정기적으로 책장을 정리한다. 당시에는 재밌게 읽었지만 다시 볼 것 같진 않은 책,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구매했지만 세월이 지나 가치가 떨어진 책, 무언가에 홀린 듯 구매한 책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떠나보낸다. 하지만 절대 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소장하고픈 책도 많다.

『오컬트의 모든 것』은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사상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피터 포쇼의 저서다. 오컬트외 신비주의 종교 관련 책을 여러 권 집필했는데 국내에는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크게 1~3부로 나뉜 책은 1부에서 오컬트 관련 기초 학문(점성술 · 연금술 · 카발라)를 다루고, 2부에서 오컬트 철학을 이야기한 뒤, 3부에서 오컬트의 부활을 다룬다.


<미지의 신비. 완벽한 오컬트 입문서>
오컬트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이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예술계, 문화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연금술을 주제로 다양한 그림을 그린 살바도르 달리가 있고, 오랜 기간 사랑받은 미국 드라마 <슈퍼내추럴>은 천사와 악마를 소재로 했으며 <해리포터 시리즈> 또한 오컬트와 연관이 있다. 국내에서는 2023년 연말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파묘」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신비하고 오묘한 무엇'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역사가 긴 만큼 배울 점도 많고 활용 방안도 다양하다.

국내에도 관련 책이 몇 권 나왔지만 만족할 만한 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출간된 『오컬트의 모든 것』은 입문자와 전문가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책이다. 큰 판형의 책과 컬러 사진 덕에 참고 자료로 활용하기 좋고, 기초 학문과 역사를 다루기에 오컬트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3부에서 현대에 다시 오컬트가 각광받는 이유를 분석하는데 창작자에게 특히 도움 될 부분이다.


<미술 서적 전문 출판사의 역량>
책을 잘 고르는 팁 중 하나는 출판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책을 출간한다. 책이 몇 권 없을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쌓일수록 역량이 드러난다. 『오컬트의 모든 것』의 출판사인 '미술문화'는 1990년대부터 책을 펴낸 곳으로 미학 · 예술론 · 동서양 미술 · 한국미술 · 패션 · 공예 · 디자인 · 건축 등을 다룬다. 한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낮은 주제의 책을 취급하는데, 그럼에도 꾸준히 신간을 출시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출판사의 역량을 보여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전 같은 출판사에서 구매한 알릭스 파레의 『악마』도 그렇고 이번에 협찬받은 피터 포쇼의 『오컬트의 모든 것』을 읽으며 높은 만족도를 느꼈다. 디자인, 판형, 번역, 구성까지. 독자가 원하는 니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르소설 마니아로서 소장하고픈 책이 생기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꽉꽉 들어찬 책장을 정리하고 공간을 만드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좋은 책을 들이기 위해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오컬트의 모든 것』은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책이다. 토막상식을 늘리기에도 좋고 관련 장르를 더욱 깊이 이해하기에도 적합하며 무엇보다 창작자에게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지식을 레벨업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을 권한다.

(미술문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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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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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월드를 모아둔 책장을 볼 때면 항상 뿌듯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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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마스터 클래스 - 작가와 작품의 모든 것을 담다
베브 빈센트 지음, 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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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읽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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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캐드펠 수사 시리즈 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이창남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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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5편으로 전작과 마찬가지로 1139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전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려 하는 낌새가 보이는 혼란스러운 당시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이번 작품은 본편 이야기와 별개로 캐드펠의 어린 조수로 등장했던 마크 수사의 성장과 캐드펠 수사의 과거 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다는 관전 포인트를 담고 있다.



<범인 찾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작품>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여타의 추리소설과 달리 '범인 찾기'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추리소설하면 떠오르는 후더닛(범인은 누구인가?), 하우더닛(어떻게 죽였는가?), 와이더닛(왜 죽였는가?)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만 화려한 트릭이 등장한다던가 범인의 정체에 관한 충격적 반전이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 추리소설을 즐겁게 읽는 방법 중 하나는 당시 분위기와 상황을 상상하며 왜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또한 왜 남작이 살해당하였는지, 그리고 범인은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 추리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유추하다 보면 자연스레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가 된다. 주인공인 캐드펠 수사가 종교인이라는 점도 한몫하는데, 이 작품을 볼 때는 추리소설적 장치보다는 '인물'에 집중할수록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감동이 있는 역사 추리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며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은 '감동'이다. 내전으로 사람을 죽고 죽이는 상황이 너무나 흔한 그 시기에 사랑하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서로를 도와가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의지하며 극복하는 모습에서 인류애를 느꼈다.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는 이러한 감동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인데, 저마다의 사랑과 신념으로 행동하는 모습에서 일종의 경건함이 전해진다.

주로 세인트자일스 병원과 캐드펠이 머물고 있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오가는데, 순수하지만 무모해 보이는 연인들을 위해 캐드펠 수사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그들을 돕는 모습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지금 봤을 때는 고리타분하고 말도 안 되는 관습도 그 당시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거부란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얻을 수 있는 감정이다.



시리즈물을 연속해서 읽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지만 '몰입'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상의 독서법 중 하나다. 특히 <캐드펠 수사 시리즈>처럼 역사 추리소설이라면 등장인물과 함께 더 큰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다.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그런 장면은 많지 않지만 잘 우려낸 홍차를 마시는 듯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게 <캐드펠 수사 시리즈>다. 이어질 그들의 여정을 손꼽아 기다린다.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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