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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3.봄호 - 77호
염건령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3월
평점 :

어떤 분야의 문학 장르가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지 꼽을 수 있겠지만, 가장 필요한 건 신인 작가들을 위한 무대라 생각한다. 경력직 신입 사원을 찾는 사회이지만, 누군가는 신인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려 노력해야 한다. 한국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추리/미스터리 장르의 발전을 위해 그런 장소를 제공하고 있는 곳이 『계간 미스터리』와 『미스테리아』다.
『계간 미스터리』는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국내 최장수 추리/미스터리 전문 잡지이다. 한국에서 작은 시장에 속하는 추리 문학의 명맥을 이어온 계간 미스터리는 꾸준한 신인 발굴과 더불어 양질의 칼럼을 통해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잡지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 ‘송시우’를 발굴한 계간 미스터리는 정기적으로 원고를 받아 봄 · 여름 · 가을 · 겨울에 걸쳐 신인상을 발표하고 있다.(수준 미달의 작품이 많을 때는 선정작이 없다)
<한국의 교코쿠 나츠히코, 미쓰다 신조의 탄생?>
2023년 봄호의 신인상은 1985년생 고태라님에게 돌아갔다. 일본의 민담, 설화 등을 소재로 추리 소설을 쓰는 ‘교코쿠 나츠히코’와 ‘미쓰다 신조’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설곡야담>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비유하자면,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해당 단편은 클로즈드 서클(눈 내리는 산장), 설화, 트릭 등의 사용으로 본격추리소설의 틀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폐쇄된 배경이 지니는 긴장감과 불가사의한 살인 사건, 그리고 해결 파트에서 밝혀지는 트릭은 추리 + 미스터리의 매력을 충분히 담고 있다.
인물 서사와 개연성, 문장의 매끄러움 등은 아쉽지만 본격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를 제대로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높은 점수를 받은 듯싶다. 일본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분에겐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호남 지역의 무속신앙을 토대로 하기에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벌써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저자의 당선 인터뷰를 보며 기대감이 커지는 건 그런 이유 덕분이다.
<수준 높은 범죄 · 미스터리 칼럼>
『계간 미스터리』 2023년 봄 호에는 해당 잡지를 통해 등단한 4명의 작가, 홍선주 · 여실지 · 홍정기 · 김형규의 단편 소설 외에도 다양한 칼럼이 실려있다. 이 중 인상 깊은 건 백휴 작가의 글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깊은 분석을 담은 글이라 술술 읽히진 않지만, 문학 · 철학 · 역사 등의 다양한 관점으로 해당 장르를 조명하기에 의미 있다. 특히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해당 잡지의 한이 편집장도 언급하셨던 부분이다)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범인을 A라고 하고, 용의자 B와 용의자 C가 있다고 합시다. 지능이 평범한 형사가 피살자를 살해한 방법과 주변 행적을 샅샅이 탐문한 결과, 수사 활동으로 모은 자료의 모든 내용이 용의자 B를 가리킬 때 우리는 ‘A는 B다’라고 말합니다. 천재 탐정의 실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전혀 내용(내포)의 수정 없이 같은 자료가 B가 아니라 C를 가리킴을 보여줄 때입니다. 이제 ‘A는 C다’인 것이죠. 통상의 경우 용의자 C는 깰 수 없는 알리바이가 있거나 때로는 살해 수단조차 불분명했기에 천재 탐정에 의한 ‘A=B’에서 ‘A=C’로의 전도는 충격을 줍니다. 이 충격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입니다.
꽤 오랜 기간 『계간 미스터리』를 구독했는데, 올해는 운 좋게도 서포터즈로 선정되었다. 책값이 굳었다는 기쁨과 함께 『계간 미스터리』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에 걸쳐 받게 될 4권의 책 속에 담길 좋은 작품과 함께 잡지의 매력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하고픈 말이 많지만 조만간 계간 미스터리의 역사를 조사해 포스팅할 생각이기에 오늘은 2023년 봄호의 평만 담으려 노력했다.
한국 추리 소설 문학의 현 위치와 참신함을 느껴보고 싶은 분, 추리/미스터리 관련 칼럼을 찾는 분에게 『계간 미스터리』의 독서를 권해본다.
<나비클럽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