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브레는 ‘여지없는 작가‘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은 뭐가 있나 봤더니 무려 3권짜리 ˝나는 고백한다˝ 가 국내 출간되어 있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어서어서 많이 번역되기를 희망해 본다여지가 없다는 것은 단편 ‘나는 기억한다‘ 또는 ‘발라드‘ 또는 표제작 ‘겨울여행‘을 비롯 다른 대부분 때문인데 열린 결말처럼 뜨뜨미지근하게 여지를 남기는게 아니라 여지는 확실하게 싹둑 잘라버리고 당길 방아쇠는 확실히 당겨버린다는 뜻인데 그만큼 뒤에 남는 여운에 ‘와 씨 이런 작가를 이제야 알 게 됐단 말이야‘ 했다는 것이다마지막에 수록된 표제작 ‘겨울 여행‘을 다 읽고나면 이미 많이 인용된 마지막 문장을 나 역시 재차 따오지 않을 수 없을만큼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구나 했다인생은 하나의 경로도 목적지도 아닌 여행이며, 우리가 사라질 때는 그 위치가 어디든 우리는 언제나 여행의 중간지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불운은 하필이면 가혹하기 짝이 없는 겨울 여행에 당첨되어,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는 데 있다.285우리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출생을 해버렸듯 겨울 여행에 당첨된 자들의 혹독한 이야기들에 일말의 어정쩡한 여지 따위를 주지 않는 작가의 태도에 광광 호들갑을 떨지 않을수 없었다는 것이지14편의 각각의 단편들이지만 알게모르게 조금씩 얽혀 있다 앞 소설의 인물들이 언급 된다거나 렘브란트의 그림들과 클래식 음악들이 중복되기도 한다근래에 들어 이렇게 관심 폭발하는 작가는 없었기에 3권 1200여 페이지 짜리를 더 빌려왔겠냐고... 완독은 모르겠지만딴 얘기로 내가 출판업자라면 카브레의 소설들을 모조리 국내 출간해서 노벨상 잭팟을 한번 노려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떤 독자는 나는 고백한다 그 하나만으로도 노벨상감이라고 했더라만은스승님의 그리하라 하셨잖아요 -> 스승님‘이‘138ㆍ
그렇게 오랫동안은 아니었어, 고작 몇 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려면 몇 초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나는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생각했다. 밤에는 누워서 가슴에 칼을 꽂는 방식에 대해, 가슴에 칼이 꽂히는 각도에 대해 생각했고, 낮에는 길 위에서는 도로에 뛰어드는 방식에 대해, 내 몸이 그릴 포물선의 정확한 형태에 대해 생각했고, 낯선 얼굴들로 가득한 폐쇄된 공간에서는 역시 칼을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나는 매 순간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몇 초에 한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에 나는 너무 정신이 말짱했어, 그러니까 하루에 한두 번씩, 어쩌면 서너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08ㆍ숨 이라는 제목 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나뉘는 그것은숨이 이어지지 않으면 죽음이 된다 아니면 죽음이 온다숨에 대한 이야기는 동시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 이고 죽음에 관한 이야긴 또 숨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고소설을 감히 내 주제에 쓴다면 이런 소설 같은 소설을 쓰지 않을까 쓰고 싶은게 아닐까 이런 것밖에 못쓰지 않을까 결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긴 하겠지만 작가의 글쓰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분명현실에서 작가는 소설속 사람 처럼 안산에 있는 s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 소설가들이 소설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기도 한다 그러면 소설이 ‘진짜‘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안산의 s대학에서 중앙역 까지의 거리와 그 부근의 동네를 잘 안다 많이도 걸어다녔고 한때 거주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목 매달아 자살 한 친구의 이야기 역시 안산에 살던 때 갑자스런 교통사고로 황망히 죽은 젊디 젊었던 지인의 장례에 가던 그 겨울밤의 혹독했던 풍경을 고스라니 떠오르게 했다유명인의 부고 또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따른 장례는 어쩔수 없이 죽음이라는 그 뭔가를 생각케 하지만 그런 일들이 자연스레 지나가더라도 늘 매일매일 죽음이 생각 나는건 막을 수 없다 매 순간 ‘숨‘을 쉬기 때문이다소설속 사람이 안산에서 서울로 가는 도로에서 비둘기의 사체를 보고 또 반려견들의 죽음을 통해 친구의 죽음을 계속 꺼내어보지만 그런 외부적 자극이 없음에도 내부의 누가 쉼없이 이야기 하는 죽음에 익숙한 나머지 누군가는 터부시하고 회피하는 죽음이란 것이 밍숭밍숭한지 오래다 오히려 삶 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는 나름의 결론 역시 오래 되었다여하튼 구매 당시에 읽었더라면 무엇을 지껄였을까 싶기도 하면서 지금은 또 이런걸 떠들고 있구나 싶고 죽기 전이기 때문에 화자처럼 죽음을 구체적으로는 자살 생각을 할 수는 있는 것이고 그러면 밥을 먹고 뭔가를 읽는 것으로 치욕을 치르고ㆍ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처음 이해한 순간 부터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021나는 죽음이야말로 애매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053나는 죽음에 대해서라면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085나는 나를 치울 수 없었고 나를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고 영원히 나를 버리고 싶었다. 088ㆍ
죽음에 관한 19편의 단편 소설을 묶은 책누군가는 죽거나 죽음에 관한 소설들이기에 각 작가들은 누구를 어떻게 죽게 할 것인가 또는 죽음을 어떻게 형상화 했을까 주시하며 읽었다납득이 되지 않는 죽음은 이미 우리 도처에 널렸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소설 역시 납득이나 이해의 영역이 아니어도 상관 없었다죽음은 당도한 현재 그것이게 마련인데 그것의 이해 여부가 죽음을 부정해주지는 않는다 죽음 자체와 죽음 직전 까지의 시간은 별개의 일이다 인간의 이해 관계가 아닌 자연적 현상 말이다 죽음만큼 일생일대의 사건도 없지만 그에 비해 아주 하찮고 어처구니 없음으로 죽음은 닥치기도 한다간단명료하게 죽음 이라고 하든 아니면 살짝 인간적으로 인생의 끝 이라고 말하든 어쨌든 죽음이라는 이 삶의 끝에 대해 자주자주 생각한다 코 찔찔이 때부터 죽는다는 걸 생각했다고 하면 뻥 치고 있네 그러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냐 비웃겠지만 나 역시 그러하다만 그러거나말거나 상관 없다잭 런던의 불 피우기의 사내처럼 서서히 자각하는 죽음도 있겠고 번개처럼 순식간에 번쩍하는 죽음도 있겠고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이 어쨌든 죽음이라는 그 무엇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해보거나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 대부분은 순종적으로 죽음을 어쨌든 기다리고 있는 상태를 유지중이다이와중에 유튭은 75세의 남자가 운영하는 단식자연사 채널을 띄워준다 때때로 유튭 알고리즘이야말로 21세기의 전지전능인가 싶다죽음에 관한 소설을 읽고 소설 자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해서 뭐하나 싶고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로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끝없이 과거를 반추할 수 있기 때문이라던가 아니면 영화 선리기연의 대사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 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과거를 돌이키며 나즈막히 진술해나가는 소설을 따라 읽는 일은 살아갈 날들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서인지 그간 쌓은 지난 날들의 기억에 후회와 허망에 빠지는 나이든 나를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작가의 낯선 이름에 검색해보니 국내 번역본이 많지는 않았고 읽어볼까 하면 부피가 있거나 흥미롭지 않은 내용이었다 적당한 두께의 다른 작품이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읽어볼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인간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좋았다는 말‘알렉시‘ ‘은총의 일격‘ 공통으로 화자와 작가의 성정체성을 엮어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해설에서 확인) 나는 타인의 성정체성에 무관심해서 두 작품에서 공통으로 읽을수 있는 소설의 어조(라고 하는게 맞나 싶지만)가 좋았다 그래서 ‘~황제의 회상록‘이 급 궁금해졌지만 두 권 610페이지에 지레 겁먹고 일단은 포기알렉시의 번역에서 ~하였소 ~했다오 투의 오그라드는 번역을 선택했는데 너무 고루한 어투가 아닌지근대 소설에서나 썼을 법한 말투를 아무리 편지글 형식이라고 누가 편지에 저런 어투로 쓰나 생각해보면 좀 어처구니가 없어 가독성을 획기적으로 폭망 시켰다 하겠다 ㄱㅐ짜증이...26살 작가 초기에 알렉시를 썼고 10년 후 은총의 일격 출간... 와 씨 잘 쓴다 잘 써은총의 일격 인물 세 사람이 오래 기억될 소설이겠다 싶음간만에 국내번역이 많이 되었음 하는 작가 발견오지랖으로유르스나르는 꿀이 변하고 그것을 비유적으로 각 소설에 썼는데 1903년 생이다보니 그 당시엔 그런 인식이 맞았는진 모르겠으나 통상적 보관일 때 꿀은 변하지 않는다는게 팩트다 한국에선 옛날?부터 꿀은 안변한다고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유럽꿀은 다른가수천년 전 이집트 유물에서 변하지 않은 꿀이 발견 되었다는 쳇지피티 의견도 있긴 함 뻥인진 몰라도아무리 좋은 꿀도 결국은 발효되어 시큼해진다153ㆍㆍ오, 신이시여, 전 언제 죽나이까?...... 모니크, 기억날 거요. 독일 옛 기도의 첫 구절이잖소. 미래가 없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 초라한 존재, 나와 갈라설 수 없으니 결국 ‘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존재가 난 정말 진절머리 나오. 그 ‘나‘는 자기의 슬픔을, 자기의 아픔을 나에게 떠안긴다오. 물론 그 나보다 내가 더 낫소. 난 그에 대해 남 얘기 하듯 말할 수 있으니까 . 그런데 무슨 이유로 내가 그에게 사로잡혀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는 모르겠소.71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아마도 스스로를 길들이는 방법일 거요. 하지만 육체의 힘이 고갈되고 나면 영혼 역시 무뎌지지. 불안에 젖은 영혼이 잠든 영혼보다 차라리 낫지 않은지, 모니크, 한번 생각해 볼 일이오.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에 관해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행위를 통해 해결했을 불안을 우리는 말을 통해 이겨냈다. 어차피 그냥도망침으로써 불안을 피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164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