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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ㅣ 창비시선 34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평점 :
시집을 보다가 까무룩 잠 들었다 잠은 혼몽이었다
얼떨결에 잠 깨 다시 펼쳐진 시집을 본다 아까 보던 시 한 편을 다시 본다
조금 전까지 그냥 지나치려던 페이지가 다시 보는 지금 너무 또렷하게 안으로 온다
제대로 읽어주지 못한 숱한 시편들 생각에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새 시집 나왔다는 전언에 내게 그 시집 어떻냐고 묻는 어떤 이에게 직접 사보슈
했다 지금껏 수없이 해대던 잡 것에 지나지 않은 독후감상이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럴 깜냥도 안되는 주제에 감히 타인에게 품평을 해주는 건 실례이자 무례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하여 뭘 달리 말하겠다는 건 아니다
기대와 설레임이 막연했던가, 그 막연함에 너무 부풀었던가 그것에 대한 말은 하지 않는 게 맞는것 같다
그의 생활과 상황이 슬쩍슬쩍 보인다 그의 생활과 상황과 별천지인 것도 보인다 아무렴 어떠냐 시 한편을
써 본 이라면 한 행을 쓰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기가 얼마나 고단하지 알 터 그 노고를 다만 생각하며
무덤덤하게 나즈막하고 정겨운 돌담을 따라 걸어가듯 시집을 본다
무작위로 행간들을 옮겨와 본다
나무들의 피냄새가 가시지 않아 아주 지겨운 날들이었어. / 나는 그만 손 씻을래.
나도 가만 죽은 척한다 바람 한소끔 지나가자
안녕히! 나는 찢어진 당신 그림자에 인사한다
내게 남은 몇번째의 12월인지 알 수 없으니 건배!
푸드득 비늘을 터는 달의 북쪽
나의 각도와 팔꿈치 / 당신의 기울기와 무릎 / 당신과 나의 장례를 생각하는 밤 // 번개 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아프다
번개 친 후 천둥소리엔 // 사람이 살지 않아서 좋았다
상상해본다 최선을 다해 운다고 / 상상해본다 최선을 다해 웃는다고도 / 최선을 다해 죽는다거나 / 최선을 다해 남는다거나 / 최선을 다해 떠난다거나
희망은 아프다 아픈 곳에서 태어나는 게 희망이므로 / 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불치의 것들과 함께 끝까지 갈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