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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
한유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평점 :
1 나는 필경......
팽팽하게 직조된 것 같은 결을 느낀다라고나할까
과연 그의 네 번째 소설은 '대설'이 될 것인가? 설마 저자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따지고 보면 이 소설은 앞서 읽은 카버의 엽편소설 보다 더 불친절하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문장이다(소설로써는 모르겠지만).
2 농담
연이어지는 단어들의 맛깔나는 배치와 그것들을 짜맞추려했을 궁리, 그리고 끌고가는 입담.
과연 이런 이야기 같지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어디로 몰고갈지 궁금하지 않을수 없었다.
서사 따위 늘 등장하게 마련인 남자와 여자 따위 없어도 되는 이런 소설, 소설가로 다시
태어난다면 꼭 써보고 싶은 소설. 말장난? 어차피 모든 소설은 다 말장난 아니던가.
이미 읽은 저자의 앞선 두 권의 소설을 기억하지 못해서인지 세 번째 소설집이 지금까지는
가장 나은게 아닐까 싶다. 벌써 부터 그의 장편이 그리고 네 번째 소설집은 또 어떤 말장난을
쳐댈지 이 작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설렌다.
그가 왼쪽에 있다면 내가 그의 오른쪽에서 말들을 베껴 쓰고 싶은 심정이라면 이해할려는지.
베끼지 않고 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을 베껴써본다.
그의 세번째 만년필이 어떤 브랜드 어떤 색깔인지 모르겠지만 내일 당장 나는 노란 만년필을
사러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잠시 후 검색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란색을 보면 뭔가가
막 터져나올것 같지 않은가? 노란 만년필을 손에 쥐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는 수다가 마구마구
종이 위로 쏟아져 나올것 같지 않은가 말이지. 라미 사파리 옐로우 또는 워터맨 필레아 쿨터
스카이블루 같은 저렴한 걸 질러볼까나 싶은.
3 머리에 총을
여기 세 편까지의 발표 지면을 살펴 보니 2009년 여름에 집중된 것이다.
아직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았지만, 세 편만 보면 세 작품들의 문장 구조나 어법들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꼈다. 물론 뒤이어 나오는 네 번째 작품도 살짝 보긴했다.
이전까지의 저자의 문장들이나 어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세 편들을 연이어(내가
보기엔 어떤 힌트 또는 '삘'을 뭔가로 부터 받지 않았나 싶다) 써보면서 뭔가 실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런 확인할 수 없는 생각을 해 본다.(아님 말구)
여전히 앞의 작품들과 혹독하게 말하자면 '같다'. 작품 속 화자의 말대로 '중언부언'한다.
그렇다해도 폄하할 수는 없다. 중언부언 조차 치밀한 글쓰기의 전략이다. 한번 써봐라 쉽게
되는 방법인가. 네 번째 마저 이런 식으로 썼다면 '머리에 총' 맞을 짓이라고 본다.
그러나 영리한 작가이기에 태만한 글쓰기는 하지 않았을거라 본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능청스러운 작가다. 뻔뻔하게 했던 말 또하고를 반복하며 소설이라고
떠억하니 내놓다니. 그 배짱에 박수 딱 세 번 쳐 준다. 짝 짝 짝.
소설로써의 내용은 '꽝'
4 자연사 박물관
여전히, 문장은 중언부언하고 있어서 읽어나가는 리듬이 매끄럽게 놔두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내게는 하나의 예제가 되는 것이 있어서 즐거운 기분으로 읽어 나갔다.
그 예제라는 것은 문장 하나에 대해 다시 중언부언하는 방식을 택한 것인데 '오호 이런 방법이
좋겠는데'하는 걸 알게 해줬고 저자가 어떻게 해서 이런 방법을 택하게 됐는가 어떤 작품에서
힌트를 얻었는지 궁금해졌다. 아직 검색은 해보지 않았지만 작품에서 언급한 그것인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저자가 펴낸 앞선 두 권의 소설집에 이미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귀
찮다. 하나의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읽혔으나 소설로써는 여전히 글쎄올시다 다.
5 돼지가 거미를 만나지 않다 6 도둑맞을 편지
정지해 있지는 않지만 느리게 이동하는 한 장면에서 집요하게 말하고 또 말하고 부정하기.
단지 그것.
7 인력입니까, 척력입니까 8 인력이거나, 척력이거나
연작. 글쓰기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라고 해두자
잡아당기든 밀어내든 결국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거나 0점에서 멀어진다는 것
9 불가능한 동화
한유주 식으로 말하기로 읽어주는 동화가 어떤 것인지 확인했다. 부정문으로 이야기해 주는 동화와
언젠가 나올지 모를 한유주 식의 장편에 대한 짐작도 조금 할 수 있었다. 짐작컨대 한유주의 장편은
장편이라기 보다 분량만 많아진 단편의 연장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렇듯 아님 말구.
두루뭉술한 동화의 세계를 낱낱으로 잘개 쪼개보는, 샐 수 없는 조각으로 깨진 거울처럼, 시선이 내
딴에는 흥미롭다. 날카롭지 않고 막연한 긍정을 강하게 부정하는 입장의 사람 입맛에 흡족하달까.
동화는 늘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가능한 건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기 때문일거다. 어른
은 동화를 읽어주지만 동화를 믿지 않는다. 아이가 얼마나 동화를 믿는지 아는 어른은 없다. 무관심
하게 대충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내도 무방한 게 동화다. 불가능한 동화. 그 불가능성에 작가
는 예리하고 시니컬한 시선으로 글쓰기를 했다. 가장 잘 읽었다.
얼마나 반복하고 어느 정도 나가 있을지 다음 작품들을 기대하며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