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언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한다. 비슷한 연배 작가의 소설이기 때문인가, 어떤 문장들에서는 냄새가 나고 어떤 골목이나 옛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비슷한 '아버지'를 가졌었을까. 그가(또는 화자) 아버지를 이야기 할 때 의도치 않게 깊숙한 어떤 곳에서 내 아버지 생각에 잠시 느꺼워 혼나기도 했다. 단편소설들을 모아 놓은 소설들의 '집'인 소설집『랑의 사태』를 읽어나가다보면 여러 편의 화자가 어느 정도 중첩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탁구장 삼촌'이 각기 다른 소설에서 언급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장편소설 속의 한 화자의 여러 이야기들이 진열되어 있다고나 할까. 이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고 아무렴 어떠랴 싶긴 하지만. 몇몇 작품들의 결말은 너무 서두르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전무후무한 퍼스트베이스맨」에서 작가 또한 야구를 좋아하나 싶어 급 호감이 가기도 했다.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나름 '팬'이라면 팬인 나로써도 야구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딱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권태주의자」라고 하겠다. 이거다 싶은 문장들도 있고 여하튼 굿. 「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은 가장 몰입해서 읽었다. 언젠가 y군과 이야기 도중 역시나 김성동의 『만다라』 이야기가 나왔고 그 화두에 대한 이야길 했었던 터라 이거 뭔가가 있나 싶어 뚫어지게 읽어내려갔다. 형은 아직 『만다라』도 안읽었단 말이야?, 하고 살짝 실망끼로 쳐다보던 y군 생각이 난다. 「백하동 가는 길」의 마지막 문장과 「내 생애 최고의 연인」의 마지막 행갈이 한 다음의 마지막 단락은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도언의 장편은 모르겠지만 단편들의 맺음은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를테면 이런 기분이다. 신경숙의「부석사」를 보면 결국 그들은 부석사에 가 닿지 못한다. 소설도 그냥 거기서 끝이다. 더이상 뭐라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여운이라면 여운 뭐 그런 게 있다고 본다. 할머니나 이모가 해주던 옛날이야기 끝에 '그래서 그들은 잘 먹고 행복하게 잘 살았대요-'하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에서 그런 '마무리'는 그냥 쌩 까버리는 거라고 본다. 아님? 마는거고 뭐. 여하튼 매끄러운 문장들 따라서 즐거운 독서였다. 다음엔 장편을 한번 탐독해봐야겠다는 기대도 든다.